결산 시즌

일상 2017. 3. 26. 22:42

재무제표

  아직도 악감정이 남아 있는 전 회사에서 3월은 최고로 일하기 힘든 시즌이었다. 왜냐면 12월말 결산 법인의 법인세 신고 마감이 3월 마지막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회사 특성 상 유형자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그 많은 재고자산이 1년 내내 전혀 체계적으로 관리가 되지 않았다. 1년 내내 엉망으로 내보내고 들여오던 무수한 재고자산을 3월에는 어쩔 수 없이 정리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 일을 내가 싫어했던 최악 부장이 전권을 쥐고 책임졌다. 그 부장이 3월 내내 우리에게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히스테리와 짜증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끔찍하다.

  그 부장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하기도 한 게, 3월 내내 거의 철야로 일을 했다. 대체 그런 회사에 대한 무한 충성심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마흔 넘은 나이에도 연장자에게 칭찬받고 인정 받기 위해서 모든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어쩌면 회사 생활에 가장 필요한 재능이 아닐까.

  2016년은 1월부터 12월까지 온전히 나 혼자 일을 해서, 결산하는데 훨씬 덜 힘들었다. 회계법인 도움을 받긴 했지만, 꽤 힘든 일이어서 재무제표가 나오면 막 감격스러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냥 그렇다. 아무렇지도 않다. 뭐 워낙 구멍가게 같이 작은 회사라 수월한 것도 있었지만, 난 결산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전 회사의 최악 부장같이 주변에 온갖 짜증 부리고 징징 거리진 않았으니 스스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음 주 중에는 완전히 마무리될 것 같다.


사랑의 정의

  내가 혐오하는 사람 중 한 부류가 모든 일을 쉽게 정의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뭔가에 대해 단정 짓는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기대를 애초에 접는다. 사랑에 실패해서 상심이 깊은 사람에게 '사랑은 타이밍이다.' 같은 말 하는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지 모르겠다. 안그래도 가슴 찢어지고 끝없이 자학하고 있을 사람에게 왜 그딴 근거 없는 말을 지껄이는가. 본인이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사랑' 에 대해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내리는가.

  내가 너무 순진할 걸수도 있지만, 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타이밍이 아무리 안 좋아도,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끝내 서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타이밍'이 서로 안 맞아서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졌던 그 감정이 정말 사랑이었을까? 난 절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기로도 썼지만, 내가 '사랑'에 대하여 탐구한 각종 글과 영화, 음악 통틀어 이정도면 정말 사랑의 절대 정의 에 가깝다 생각했던 건 단 두 작품 뿐이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사랑에 대하여' 와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사랑에 대해서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안톤 체호프나, 키에슬로프스키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걸까? 하여튼 정말 싫다.


다이어트

  다이어트라고 말하기도 뭐하지만, 요즘 평일 저녁에 계란과 채소, 과일만 먹고 있다. 요즘 퇴근 하고 와서 몸무게 재면 50키로다. 내 인생 최초로 50키로를 돌파했다. 앞자리가 바뀐 체중계의 몸무게를 처음 본 날 너무 슬퍼서 내 방에서 막 비명을 질렀다. 이건 별로 영광스럽지 못한 기록 갱신이다. 3월이 되면 뭐라도 하자. 는 결심의 '뭐' 중에 운동도 포함이었는데, 주말마다 미세먼지가 너무 심하고 겨울이 깊어지면서 체력이 고갈되어 심하게 몸이 늘어져서 운동도 못했다. 요즘 저녁 때 채소 먹는 것도 다이어트보단 유지가 목적이다. 내 몸무게 목표가 이렇게 소박해졌다. 이렇게 살찐 중년이 되어가나보다.


쭈꾸미

  내 성격과 체력 모두 사회생활의 걸림돌이지만, 입맛도 꽤 큰 걸림돌이다. 난 매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한다. 신라면도 매워서 못먹을 정도니 이 정도면 '전혀' 못 먹는다는 표현이 어색치 않다. 대체적으로 한국인들이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또 먹고 싶어하는데, 난 매운 음식을 먹으러 가면 차라리 굶는 것을 택하다보니, 그런 자리 가면 괜히 천덕꾸러기가 된 기분이 든다.

  맨날 맛있는 거 타령하는 부장님 때문에 저번주 어느 날에는 마리오 아울렛을 30분이나 헤맸고 금요일에는 쭈꾸미 먹으러 꽤 멀리까지 갔다. 나는 혼자 먹겠다고 주장해봤지만, 어떻게 혼자 먹게 두냐면서 자꾸 같이 가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쭈꾸미 식당 가서 혼자 양푼에 김치찌개를 먹었다.

  저번 금요일에 사장도 없고 전무도 외근 가서 부장급 들이 아주 놀기로 작정을 하고 쭈꾸미 먹으면서 소주랑 맥주를 내리 마셨다. 그 광경을 보자니, 이 회사도 3년 넘으면 미련 갖지 말고 떠나는 게 내 미래를 위해 유리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뭐 그 때 되면 나이가 꽤 있어서 어디 다른 회사 가지도 못할 가능성이 많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불판의 쭈꾸미를 물끄러미 보다가 술도 싫고, 아줌마 아저씨들이 IMF 이전에 얼마나 회사 일 하기 편했는지 그리워 하면서 말하는 거 듣기 싫단 생각을 하며 난 정말 체질적으로 단체 생활이 맞지 않음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거기 앉아서 술 마시느니 일하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어서, 난 그냥 중간에 와서 열심히 일을 했다. 오후 늦게 부장들이 들어왔는데 역겨운 술냄새 풀풀 풍겨서 그 냄새 참고 일하느라 힘들었다.


불행한 여자들

  내 주변에는 50살이 훨씬 넘었는데 아직도 남편한테 맞고 사는 분도 있고, 선물 옵션으로 이미 2억 넘게 재산을 날렸는데 아직도 실시간으로 일이천만원씩 날리는 남편을 둔 분도 있다. 이 얘기를 다 이번 주말에 들었다. 대체 행복하게 사는 대한민국 중년 여성이 존재하긴 하는걸까. 교회 사람들도 친척들도 엄마 친구들도 죄다 마찬가지다. 우리 엄마와 친한 친구분 딸은 대학 기숙사 세탁실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고 하고. 큰 엄마는 진지하게 황혼 이혼 고민 중이시고... 그래도 우리 엄마는 내가 시집가서 애기 낳고 남편이랑 살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딱해 죽겠댄다.


아기

  요즘 고양이 사진을 너무 많이 본다. 고양이만 키워도 고양이가 이뻐 죽겠다는데, 만약 내 자식을 키우면 고양이를 사랑하는 감정의 백배 천배는 내 애기가 예쁘고 사랑스럽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신혼일때 아빠가 가끔 숙직 때문에 집에 못 들어오셨는데, 엄마 혼자 자려면 그렇게 외롭고 무섭고 슬프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태어난 후 나랑 같이 자니깐 그렇게 든든하고 좋았댄다. 그래서 갓난 아이가 엄마를 지켜주지도 않는데 든든해? 하고 물었더니 그래도 아기가 옆에서 자고 있으면 전혀 외롭지 않다고, 근데 넌 아직도 아기를 못 낳아서 어떡하냐 면서 엄마는 또 슬픔에 빠지셨다. 이 얘기를 들은 후에는 나도 좀 슬펐다. 나는 동물은 키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기는 좋다. 가끔 아기들을 가까이서 보면 마음이 찡해진다.  아기 처럼 예쁜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요즘

일상 2017. 3. 12. 22:02


  아무일 없음을 감사하자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내 인생은 언제나 지겨웠고, 심심했다. 매년 3월만 되면 스무살 때가 떠오른다. 이제 엄청나게 오래전 일인데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애들과 선배들은 내가 어디에서 왔다고 말하면 못 알아들었다. 나는 내 소개 하는 게 싫었다. 큰 병이 한번 났고,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난 왜이렇게 못생기고 촌스러울까... 하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처럼 심심한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건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보낸 후였던 것 같다. 그때 심각하게 대학을 때려치고 전주로 내려갈까 고민했다. 옆에 아무도 없는데도 난 집에서도 꼭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고, 매일같이 혼자 술을 마셨다. 그냥 맥주 한캔 수준이 아니라 공부하면서 소주를 유리컵에 따라 마시거나, 새벽에 자다 일어나서 냉장고의 위스키를 마시고 술기운에 겨우 잠들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알코올 중독 초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한없이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던 그 시기를 어찌 어찌 견뎌내고 졸업도 하고 직장생활도 해서 그나마 지금 사람 구실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가끔 머리에서 뜬금없이 떠오르는 생각 같은 게 있다. (내 나름대로는 이게 신의 계시라고 생각함) 며칠 전, 작년을 잘 넘겼으니 또 너는 앞으로 잘살 것이다. 조바심내지 말고 기다려라.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다.

  봄이 되면 뭐라도 해야겠지. 정말 뭐라도 하자. 이런 다짐을 겨울 내내 했는데, 진짜 봄이 되니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우리집 화분에도 봄이 찾아왔다. 카메라가 후져서 잘 안보이지만, 수선화다. 작고 귀엽고 노란 수선화가 베란다에 피어 있으니, 문득 문득 기분이 좋아진다.



  공기가 좋은 날은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외출을 한다. 저저번주 공기가 좋아 공원에 가서 하늘도 보고 사진도 찍었다. 야외에서는 엑스페리아 카메라가 꽤 잘 찍힌다.


  회사에서 올해 연말정산 하면서도 회계 법인 담당자랑 싸웠다. 여러 회사 일을 하고 있으니 바쁜 건 이해하지만, 내가 메일에 적은 것도 아예 안 읽고, 간소화 자료에 있는 건강보험료도 틀리게 해놓고선 자꾸 사장 탓을 해서 열이 받았다. 예전 회사에서 부장이 회계법인한테 갑질하는 거 보면서 너무 추해서 그러지말자 주의 하는데도 자꾸 나도 갑질을 하게 된다.


  한동안 안나오던 최민용 이 TV에 나와서 볼 때마다 상념에 잠긴다. 최민용은 내가 죽도록 좋아했던 어떤 남자와 너무 닮았다. 내가 좋아했던 남자는 그렇게 키크고 늘씬하진 않았지만, 눈이 너무나 닮은 것이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지만, 나도 참 귀엽고 순진했던 것 같다.


  며칠 전 꿈에 정읍까지 전철을 타고 갔는데 길에 황금이 막 떨어져서 있어서 엄마랑 바구니에 황금을 가득 담았다. 꿈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로또를 5천원 어치나 샀는데, 숫자가 단 하나도 맞지 않았다.!! 정말 이러기도 쉽지 않다. 어제 꿈에는 고양이 두마리를 키우는 꿈을 꿨다.

 


설연휴 후 근황

일상 2017. 2. 11. 16:50

1. 연휴동안
  동생과 나 둘 다 시집장가를 못가서 우리 집 명절은 언제나 단촐하다. 동생의 이번 여자친구는 진짜 결혼까지 갈 것 같기도 한 게, 명절 이나 부모님 생신 때마다 선물 보낸다. 이번 설에 그 아이가 보낸 떡을 맛있게 먹었다.
  아빠가 새해 세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원하는대로 하질 않아서 작년 설에는 집안이 시끄러웠다.
 
  작년 설 때만 해도 2016년 우리집에 그렇게 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는데... 올 설에는 아빠께서 원하시는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배하고 예배를 드렸다. 점심 때는 시흥에 사는 이모네 가서 또 예배를 드리고 기도했다.
  우리 엄마는 머리카락만 없다 뿐이지 편찮기 전과 똑같이 생활 하신다. 한창 아프셨던 작년 추석 때는 음식 거의 못하셨는데, 이번 설 때는 식혜 를 비롯하여 갈비, 동태전, 월남쌈 까지 만들어 주셨다. 내가 무리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지만, 할 수 있다고 자꾸 요리하고 싶어 하셔서 나도 음식장만을 도왔다.

2. 친척들 근황
  설에 이모네 가서 우리집이랑 친하게 지내는 사촌 남동생이 결혼을 하자마자, 회사를 그만두고 경찰 공무원 시험준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난 사표 쓴 건 너무 이해할 수 있지만, 공무원 하고 싶어하는 건 절대 이해를 못하겠다. 며칠전에도 관할 세무서에 전화하면서 화가 나 죽는 줄 알았는데. 정말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안일하고 게으르고 불친절 끝판왕의 표본인 공무원이 되고 싶을까? 심지어 뉴스에서 가끔 듣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갉아 먹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범죄 들과 밀접한 업무를 하는 경찰공무원이라니! 사명감이 있어서 도전하는 거면 존경스럽지만, 만약 그저 공무원이어서 하고 싶어서 공부하는 것 이라면... 나와 친한 지인이 그런 결심을 했다면 다시한번 생각해보라고 했을 것이다.

3. 동물적 감각
  매달 생리가 돌아오고, 또 배란 때가 되면 인간도 역시 동물이구나... 하고 느낀다. 초경을 시작한 이래 매달 느끼는 기분이지만 정말 좋지못한 기분이다. 평소 남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 전혀 안하는데 이럴 땐 남자들은 얼마나 편할까 싶다.

4. 재입사한 직원
  작년에 퇴사하는 날, 뜬금없이 수트를 입고와서 기억에 남았던 직원이 재입사했다. (우리 회사는 개발자들 대부분 청바지에 티 입고 다님)
  그 직원 캐주얼 입을 땐 몰랐는데, 차려입은 모습이 평소랑 다르게 멋져보여서 당시 좀 놀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 날 사표내고 다른 회사 면접 볼 작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인사업무를 하다보니, 서류로 파악되는 직원의 가족관계나 개인사정 같은 게 있는데, 그 직원은 계속 불행하게 살아온 것으로 추정이 되서 잘됐으면 했는데, 또 우리회사에 입사하다니..이 회사에 다시 돌아온 건 실패라는 뜻인데 좀 안타까웠다.
  그래도 퇴사 전 급여보다는 높게 계약한 거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수트 입었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서인지, 서류 안내 등을 하는데 그 직원의 눈을 제대로 못 쳐다봤다. 내 나이가 몇 인데 또래 남자한테 이렇게 내외를 심하게 하나 싶어서 스스로 웃겼다. 결혼해서 애 낳으면 젊은 남자 봐도 아무렇지도 않고 쳐다보거나 말하는 거 하나도 어렵지 않을까? 아마 그것도 사람 나름이겠지.

5. 점심시간 은행 가는 길 

 
  며칠 전 직장인들 중 '혼밥' 하는 직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학교에서 일할 때 여자들끼리 모여서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며 맞장구 쳐줘야 하는 것에 너무 큰 피로를 느꼈다. 밥먹으며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어쩔 수 없이 나도 말을 해야 하는 것이 너무 피곤해서, 혼자 밥 먹을 핑계를 찾다가 그 핑계도 마땅치 않아, 일부러 학교에서 하는 영어 수업을 점심시간에 듣는 걸로 신청해서 몇 달동안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적도 있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 중, 남들이랑 밥 먹는 것 조차 싫으면 회사생활 때려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댓글이 있었다. 나도 동감이다. 나 같은 인간은 인간관계를 최소한으로 하고 혼자 하는 일을 해야 여러 사람이 편한 인간이다. 그런데 먹고 살려면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난 내 맘대로 일할 만큼 큰 능력도 없다.

  친한 친구가 며칠 전에 자기랑 같이 맛있는 걸 꼭 같이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 아니냐고 자기는 그런 사람 너무 괴롭고 힘들다는 애기가 나왔다. 그 말을 듣고 역시 나랑 친한 친구구나 싶었다. 왜냐면 나도 줄곧 똑같은 생각 하고 있었으니까.

  이건 순전히 나 혼자만 믿고 있는 이론이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인생의 최고 기쁨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들과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면 남들도 좋아할 것이라 확신한다는 점에서. 나는 점심시간에 맛있는 거 먹고 싶다는 생각 별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식판 밥도 맛없다는 생각 별로 안 들고, 먹는 것이 내 일생의 가장 큰 기쁨은 더더욱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맛있는 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는데 그것도 전혀 나한테는 해당 사항 아니다. 그런데 먹을 걸 밝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같이 매 식사 맛있는걸 찾아 다니며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인 줄 안다. 마치 대부분의 애완견주들이 내 애완견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며 만지고 싶어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거랑 비슷하다. 

  결론은 나는 먹는 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과 함께하면 피곤하고 마음이 불편하고 하여튼 친하게 지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너의 편견이라고 욕해도 하는 수 없지만 난 그렇다. 대학생 때도 친구한테 난 먹기 싫은데 계속 먹으라고 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니, 예전부터 난 그랬던 것 같다.

  불행히도 우리 회사에 내가 밥을 꼭 같이 먹어줘야만 하는 여자 부장님이 딱 이런 과다. 먹는 걸 너무 좋아하셔서 매 점심시간마다 뭐 먹을지 고민하고 맛있는 걸 먹자고 하고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는 엄청 먼 곳까지 기꺼이 찾아가고 기다린다. 예전 성수동 있을 때는 점심시간에 그 부장님의 차 타고 건대 앞도 가고 롯데백화점도 가고 그랬다. 단지 점심 시간에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 더 환장하는 건, 난 전혀 가고 싶지도 않았던 비싼 음식점에 나를 끌고 가서는 죽어도 밥값은 더치페이를 한다는 것이다. 그 부장은 그러면서 내가 맛있는 걸 먹었으니 행복할 줄 안다. (내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본인이 먹고 싶은 걸 먹느라 날 끌고 다니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설마..) 올해 우리 엄마 보험료도 오르고, 내 통신요금도 늘어나고 해서 나는 요즘 만원 단위로 돈 아끼면서 꼭 필요한 것만 제일 싼 걸로 찾아 사는 등 간신히 생활하는데, 먹고 싶지도 않았던 비싼 음식을 먹고 만원 넘는 돈을 내고 나면 맛있는 걸 먹어서 좋기는 커녕 한없이 우울해진다. 이런 걸 보면 내가 먹는 데 큰 관여를 안하게 된 게, 일생 맛있는 걸 양껏 먹을 만큼 여유가 있어본 적이 없어서 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 많은 돈이 생긴다고 해도 난 그 돈으로 뭘 할까. 고민할 때 비싸고 맛있는 걸 먹는 것이 우선 순위에 들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이유로 나는 혼자 먹을 핑계가 생기면 어떻게든 혼자 먹으려고 한다. 며칠전에는 마침 OTP 갱신 시점이 되서 은행갈 일이 생겨 은행 때문에 혼자 좀 다녀오겠다고 하고, 가산디지털단지 내 산업은행을 찾아 나섰다. 사무실에서 신는 슬리퍼 신고 나왔는데 육교도 건너고 2km 넘게 걸었지만, 혼자 걷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위에 사진은 육교 건너는 중에 보이는 풍경을 찍은 건데, 막무가내로 지어 올린 아파트형 공장이 범람하는 가산디지털단지는 내가 보기엔 정말 정 없고 멋 없다. 비행기가 엄청 낮게 나는 구간이라 비행기가 지나가고 전철까지 지나가면 시끄럽기도 엄청 시끄럽고. 하지만 뭐 아무리 그래도 성수동 보단 백배 좋다.

  그런데 지금이 2017년인데, OTP 같은 실물 도구를 지참해야만 금융거래가 되고 갱신 시점이 되면 반드시 본인이 은행까지 찾아가야만 한다는 거 너무 미개하지 않나. OTP 가 없으면 금융거래 아무 것도 못한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은행 사이트가 보안이 엄청나게 잘되냐. 그것도 아니고.. 어쨌든 이번에 갱신 했으니 3년간은 OTP 갱신하러 은행 안가도 되지만 3년 뒤에도 똑같이 이 OTP 를 사용한다면 난 아직도 미개한 한국의 은행 시스템이라고 욕하면서 은행에 가겠지.


햇빛 잘드는 우리집

일상 2017. 1. 22. 21:55

  이 동네로 이사온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변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낙후되어 있고 지저분하다. 하지만, 난 지금 집에 정이 많이 들었다. 특히 겨울의 우리집은 정말 좋다. 고양이 처럼 따뜻한 햇빛을 쬐며 집에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보일러보다 더 강력한 건 햇빛이다. 겨울 낮의 우리집은 정말 무적이다.


   어제는 눈다운 눈이 하루종일 왔다. 아무데도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나는 식탁에 앉아서 앞이 안보이도록 오는 눈을 보며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다 읽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재밌었던 책도 어제 다 읽어버렸다. 어서 이 겨울이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 뿐 이지만, 역시 겨울은 분위기 있는 계절이다.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겨울의 매력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쉽고 화가 난다. 파란 하늘의 상쾌한 공기의 겨울날이 요즘에는 정말 귀하고 귀한 것이 되었다. 썩을 중국 때문에.

  핸드폰을 구입했다. 아이폰5를 4년이나 썼고, 사실 내 아이폰5는 아직도 완전 멀쩡하고 보는 사람마다 완전 새거라고 놀랐지만, 용량이 16GB 밖에 되지 않아 음악용 핸드폰을 하나더 들고 다녀야했다. 운전해서 출퇴근 할 때는 음악용 핸드폰이 한 개 더 있는 것이 훨씬 편했지만, (아이폰은 티맵으로 쓸 때가 많았기에) 전철로 출퇴근 하며, 화장품에 핸드폰을 두개씩 들고다니니 가방이 너무 무거웠다.

  내 주변에서 아무도 쓰는 것을 보지 못했던 소니 엑스페리아를 샀는데, 아이폰에서 다시 안드로이드로 돌아와서 한동안 좀 버벅댔다. 그리고 왜 엑스페리아 쓰는 사람들이 그토록 엑스페리아를 욕하는지 아는데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엑스페리아를 예전부터 사야지 결심한 건 순전히 계속 이용했던 소니 음악 어플리케이션이 너무 편리해서였다. 그런데, 운영체제 업그레이드를 하니 음악 어플리케이션에서 음악검색이 안되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나는 미국 어느 사이트에서 해결법을 찾은 뒤에야 이 증상을 고칠 수 있었다. (해결법은 SD 카드에 든 음악 전부를 PC 에 옮겼다가 다시 업로드 하는 것이었다. )

  또 한가지 정말 이해 안되는 것이, 엑스페리아 퍼포먼스에는 영국에서 만든 Swift keyboard (원래는 유료 인 것 같음) 가 내장되어 있는데, 반응속도가 너무나 느리고, 정말 놀랍게도 추천 단어를 끄는 기능이 없다!! (정말 난 설마 설마 하면서 소니코리아 콜센터에 까지 전화해서 확인했다니까)

  그리고, 카메라가 마음에 안든다. 이 엑스페리아 퍼포먼스 모델 내가 알기론 소니에서 꽤 밀던 모델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니 대체 왜 4년전 아이폰보다도 사진이 좋지 않은 것인지. 나중에 여행갈 땐 사진기용으로 아이폰5 들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

  그런데 이 핸드폰 외장 스피커가 짱짱하고, 음질은 만족스럽다. 또 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아이폰에서 리모콘이 되지 않아 사놓고 사용하지 않았던 JVC 이어폰을 사용하니 좋다. 또 핸드폰 하나만 들고다니니 편하다. 원래 사려던 색상이 모두 품절되서 하는 수 없이 검정색을 사용중이지만 뭐 25만원 밖에 안주고 싸게 샀으니 큰 불만은 없다.

  엄마가 오늘은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막 엄청 열심히 춤을 추셨다. 그 장면을 녹화하며 난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요즘에는 아빠도 잠잠하고, 엄마도 머리카락이 새로 나고 아프신 데 없다.

  난 새로 이사한 사무실이 가끔 참을 수 없이 춥긴 한데, 옷 두꺼운 거 갖다 놓고 핫팩도 이용하고 담요도 두 개 덮고 하면서 그럭저럭 일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는 정말 월급 올라야 할 것 같다. 뭔가 항상 부족하다. 단돈 10만원이라도 좋으니 진짜 올라야만 한다. 안 올려준다고 하면 크게 좌절할 것 이다.

  오늘 원래 제일 친한 친구 생일이라 만나기로 했는데, 예정보다 빨리 시작한 생리 때문에 약속을 취소했다. 원래 변태같을 정도로 주기가 잘 맞는데, 이번 달은 이상하게 불청객이 먼저 왔다. (33일 째 되는 날 오후 1시 쯤에 시작하는 것이 나의 표준인데) 약속 취소하는 거 못견디게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겨울에 유독 생리통이 심할 때가 있어서 외출하기 겁났다. 다행히 수월하게 넘긴 것 같다. 친구에게 미안해서 기프티콘을 하나 보내줬다. 친구 생일 선물도 포장해놨는데, 미안하다. 연휴 중 하루 잡아서 봐야지.


1. 크리스마스 

  요 근래 매년 크리스마스 쯤 만나던 (남자인) 친구가 있었다. 올해는 그 친구한테도 메리크리스마스라는 형식적 메시지 조차 없는 정말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틀 뒤면 내 생일. 매년 별 거 없었다. 아마 난 죽을 때까지 이럴 것 같다. 나는 누군가와 이 정도면 많이 친해졌고, 상대방도 나를 진짜 친구로 받아들여주겠지? 라고 착각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이런 애정결핍적 행동과 태도가 스스로 짜증이 나서 날이 갈수록 사람을 멀리 하게 된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 없는 곳에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길 바랄 뿐이다. 27일 내 생일에는 가족 제외한 누구한테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단 한번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내 생일은 언제나 회사에서 제일 바쁜 시즌이라 생일답게 보낸 적 거의 없기 때문에 크게 의미부여 안하지만, 2016년은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해 라, 혼자서라도 의미깊게 보내고 싶다.

2.  사무실 이전

  사무실 이전이 드디어 끝났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난 사무실 이사도 가정집 포장 이사처럼 그날 아침에 다 싸고 옮겨주고 정리까지 해주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랑 막내만 죽어라 짐싸고, 죽어라 전화하고 일했다. 걔랑 전우애 같은 감정을 느꼈다. 어쨌든 끝났고, 나는 가산디지털단지 내 수많은 아파트형공장 중 한 건물 안의 한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다. 인천에서 비정상적으로 멀었던 성수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사무실이 이전한 덕분에 출퇴근시간이 약 90분 줄었다.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나마 보람 있다. 만약에 2년 뒤 여기 계약 연장 안하고 또 이사간다고 하면 정말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할 것 같다. 사무실 이사는 일반 가정집 이사와는 차원이 다르더라. 우리집은 이사만 한 15번 정도 했는데, 15번 이사하는 동안 이번 사무실 이사 처럼 힘든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사를 토요일에 해서 어쩔 수 없이 토요일에도 출근했는데, 휴일 근로 수당 같은 것도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심하게 몸살이 나서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화요일에는 도저히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라 결근했다. 할머니 체력인 나는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힘든 노동을 하면 무조건 탈이 난다. 나같은 체력의 소유자는 규칙적으로 살 수 밖에 없다.

 

3. 내 자리

  나는 언제나 딸린 짐이 많은 편에 속한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내 짐만 세 박스가 나왔다. (다른 직원들은 보통 한박스) 짐을 줄이려고 회사에서 쓰던 컵과 커피 드리퍼, 원두, 우롱차잎, 커피 필터, 잎차용 필터를 집으로 가져왔다. 아침에 커피를 내려 먹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라고 할만큼 2008년 부터 쭉 아침에 원두커피를 마셨지만, 요즘 나오는 아메리카노 믹스가 워낙 훌륭해서 이제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직접 내려 마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컵은 회사 싱크대를 열어보니 아무도 안 쓴 것으로 보이는 컵이 있어서 그냥 그 컵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짐을 줄여도 내 왼쪽에 있는 서류 들은 정리할 수 없었다. 안쓰는 파일이 하나도 없이 다 수시로 꺼내보는 것들이라.. 어쩔 수 없다.

 


  회사를 워낙 많이 옮겨 다녀서, 내 자리 사진을 웬만하면 남겨 놓는 편이다. 위 사진은 성수동 사무실에 있을 때 내 자리다. 지금 가산동에도 거의 똑같이 정리해놓았다. 우리 사무실에서 내 컴퓨터가 제일 후지고, 모니터도 나만 유일하게  4:3 비율 모니터를 쓴다. 근데 뭐 상관 없다. 일하는 데 아무 문제 없다. 난 어차피 오피스 패키지 외 다른 프로그램은 하나도 안쓰니.

 

4. 고독한 삶

  12월 10일에 너무 우울하여, 혼자 산책을 나섰다. 하루종일 늘어져서 TV 보다, 책보다, 음악듣다, 석양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삶도 그리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생일인데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요즘 필요한 게 없다. 아니, 내가 갖고 싶은 것 중에서 남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건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너무 슬프고, 자주 좌절한다. 교회에서 기도할 때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내 맘을 알고 들어주리라 확신하지만, 요즘들어 부쩍 마음이 약해진다. 의심하면 될 것도 안되는 건데.

 

 

 

 

  이 동네 살면서 셀 수 없이 자유공원에 자주 갔지만, 비가 억수로 오던 어느 여름날 이후 이렇게 사람이 없는 자유공원은 처음 봤다. 찬 겨울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추운 바다 속으로 야속하게 사라져가는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순간 인천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느낌이었다.

 

5. 건강

  아직 감기 몸살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화요일에 받아놓은 약이 떨어져 어제 병원에 가서 2시간을 대기했다. 정말 지루해 죽을 뻔 했다. 너무 심심해서 신문도 봤다가, 핸드폰도 보다가, 너무 심심해서 혈압도 쟀다. 혈압이 최고 87 에 최저 54 가 나왔길래, 네이버에서 저혈압에 대해 찾아봤다. 몇 년 전 신문에서 의사가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위험하다는 건 완전히 잘못된 의학상식이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난 저혈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안쓰고 산다. 네이버에서 보니 저혈압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증세는 만성피로 라는데, 정상 혈압인 사람들의 일상은 나보단 훨씬 덜 피곤하고 활력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평생 저혈압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현재 내 상태가 피곤한지 어쩐지도 모른다. 다만, 남들보다 쉽게 피로하고 지치는 게 운동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체질적인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뭐 이런 취약점이 있는데도 운동 안하고 체력 키울 생각 안한 건 100% 내 잘못이다.

 

6. 엄마의 치료

  내가 엄마에게 감기몸살을 옮긴 것 같다. 암환자는 다른 병에 걸리지 않게 엄청 조심해야 하는데, 오늘 우리 엄마는 내가 사무실 이사 후 앓은 증세와 완전히 동일한 증상의 감기에 걸려서 앓아 누우셨다. 죄책감이 든다. 다행히 내일 원래 병원 가는 날이라, 의사 선생님께 관련해서 상담을 받을 예정이다. 문제는 요즘 병원마다 내과에 감기 때문에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엄마도 2시간 이상 대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15분 이상 앉아 있지도 못하는 상태인데, 나도 힘들어 죽을 뻔 했던 장시간 대기를 하실 수 있을지..

  엄마께 항암용으로 투약하는 약이 3개에서 한 개로 줄었다. 하지만 6차 항암 후 C.T 사진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나쁜 소식이 내 감기 몸살의 결정타가 됐다.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있는데 그렇게 힘들게 6번이나 항암을 받았는데, 복수가 다시 찼다는 소식을 사무실에서 전해 듣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물을 마시는데 손이 덜덜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결근했다.

 

7. 그리운 친구

  자유공원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동인천 파스쿠치에 갔다. 그 카페는 지금은 시집간 친구와 같이 가던 곳이었다. 대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친구는 엄청난 독서가였다. 어느 날은 자기가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로 유명한 주요섭 소설가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면서, 그 책 이야기를 신나게 해줬다. 그런데 주요섭 소설 이야기를 한 다음부터 친구는 자꾸 주요섭 소설 속의 말을 따라했다. "처녀티 좀 나면 나아디갔디."  같은 말로 대화를 할 때마다 난 배꼽을 잡고 웃었다. 혼자 파스쿠치에 앉아서 듣고있기 힘든 멜론 최신가요 100 곡 중 하나로 추정되는 구린 가요를 들으며 (예전에는 선곡이 좋았는데..) 주요섭 소설체 생각이 나서 혼자 베시시 웃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헤어진 옛 애인을 그리워 하는 것 만큼이나 절절할 수 있음을 그 때 느꼈다. 그 친구에게 이런 저런 고민을 이야기 하고 푸념을 하면 항상 최상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근데 그게 거짓말로 나 위로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친구는 정말로 내가 언젠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 질 것이라 믿고 있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친구의 말이 정말 이뤄지기 힘든 일 임을 알면서도 너무 힘들때는 이상하게 듣고 싶다. 다 잘될거라는 진심어린 친구의 말이.

 

 

 

메리크리스마스


물음

일상 2016. 12. 7. 13:03

이 글은 어떤 평론가 때문에 충격 받아서 핸드폰 메모장에 써 놓았던 건데 논리도 없고 내가 봐도 비약도 너무 심하고 뒤죽박죽이라 이 블로그에 올려도 되나 하고 고민하다 그냥 옮겨 적는다.


어떤 평론가 때문에 며칠에 걸쳐 쓸데없는 의문점이 많이 생겼다.


1. 영화 "그녀" (정말 좋은 영화) 에서 테오도르가 실체도 없는 운영체제 사만다를 사랑하고 이별하며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을 보고, 두가지 생각을 했다.

  첫번째, 내가 이야기하고 싶을 때만 대화하고, 데이트 하고 싶을 때만 함께하는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라 할 수 있을까. 즉, 내가 감내할 것이 전혀 없는 사랑이 진짜 사랑일까.

  두번째. 얼굴을 모른다 해도 서로 오랜 시간 진솔한 대화를 했다면, 서로 진심으로 사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본 직후에는 첫번째 생각이 강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두번째 생각이 더 강해졌다. 소위 랜선 연애라 말하는 관계를 오래 유지하다 실물을 보고 서로 실망하여 허무하게 그동안의 사랑이 순식간에 끝나버릴 수도 있지만, 이건 평범한 연애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연인이 어느 순간 전혀 예상치도 않은 계기로 인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은 희귀한 일이 아니다.


2. 뜬금없이 재능도 없는 영화 감상문을 짧게나마 쓴 이유는 두번째 생각 때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의 정체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은 글 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물론, 글로는 뭐든 할 수 있다. 거짓말도 실감나게 할 수 있고, 매사 연연하지 않는 멋진 사람으로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장시간에 걸쳐 일관성 있고 치밀하게 글로 완벽하게 남을 속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믿는다.


3. 그렇기 때문에 난 테오도르와 사만다가 서로 얼굴 한번 안봤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믿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서로 '글'로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3. 어떤 미술평론가의 블로그를 종종 들어갔다. 그 사람의 모든 글을 읽은 건 아니지만, 몇 달 전 홍대 미대생이 만든 일베 손 조각상 파괴 사건에 대해 그가 쓴 글에 상당 부분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평론가가 트위터에서 어떤 여성과 시비가 붙은 뒤 트위터에 쏟아낸 도저히 입에 담기도 싫은 여성 비하 욕설들을 본 뒤로, 나는 심하게 충격을 받았다. 그를 비난할 목적으로 트위터리안들이 그의 블로그에서 찾아낸 십수년전에 그가 예고 여학생을 보며 쓴 역겨운 글은 너무 지저분하고 구역질이 나서 차마 끝까지 읽지도 않았다.


4. 내 파이어폭스 블로그 폴더에 있는 블로그 주인들이 쓴 글을 보며 그들은 항상 (나보다는) 멋지다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미술평론가 때문에 내 믿음이 깨졌다. 그가 쓴 트위터글과 여고생에 대한 그 글 때문에. 내가 본 그의 평론은 그 사람의 아주 사소한 일부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를 반면교사 삼아 나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오랜 기간 블로그를 유지해온 나도, 어쩌면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을 보이며 안그런 척 하면서 멋져보이려고 하진 않았나.. 의도치 않게 남을 속인 적은 없는지 반성했다.

  또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이든 언제나 고귀할 수 없고 추하고 남에게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소망 하나씩은 갖고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을 글로 쓴다고 해서 비난할 수 있을 것인지. 이렇듯 사람이란 꼭 추하고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것을 탐해야만 정상인으로 살 수 있는 것인지. 이것이 정녕 인간의 한계일까.


5. 아무리 누구나 추한 면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가 쓴 글에 깃든 그의 사상은 역겨웠다. 그리고 그 평론가의 글을 사고로라도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 진짜.


6. 나는 그냥 별볼일 없는 회사의 직장인 나부랭이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들보다 잘해온 건 일기 쓰기이고, 평생을 누군가가 쓴 '글' 이 실제보다 더 진실되다 믿어왔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가보다.


7. 그 평론가가 본인이 쓴 여고생에 대한 환상이 비난받을 생각이라면,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이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본인을 변호했는데, 난 진짜 궁금하다.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이 정말로, 날씬한 여고생의 다리를 보며 그 여고생의 팬티를 벗기고 그 안의 체모 혹은 생리대를 상상하며 성적 판타지를 채우는 것인지. (아 진짜 이 문장을 타이핑 하는 내 손이 썩는 것 같이 역겹다)


8. 퇴근하는 길에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다보면 인천에서 유명한 남고생 애들을 많이 본다. 간혹 연예인 뺨치게 잘생긴 남자 학생들을 보며 난 내 성적 판타지를 펼치지 않는다고.. 이건 내가 멋지게 보이려고 하는 거짓말이 아니다. 그 평론가는 자기를 두둔하며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을 본인과 같은 수준의 인간으로 분류했다. 이것도 기분이 나쁘다. 남자들을 원래도 그리 좋아하지도 않지만, 제발 저 평론가의 대한민국 남자 대부분이 그렇다는 말은 거짓이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9. 아 진짜, 끝끝내 욕이 나온다. 내가 왜 그딴 글을 읽어서 이렇게 퇴근 길 내내 더러운 기분이어야 하는지.



1. 지금은 병원을 옮기신 것 같지만, 지난 여름 엄마가 입원 하셨을 때, 7층에 상주하는 간병인이 있었다. 그 간병인 아주머니는 밥 때가 되면 병실을 돌아다니며, 거동이 힘드니 환자들의 식판을 대신 반납을 해주시겠다고 말하며 식판들을 수거하고 다니셨다. (식판 반납하는 곳은 층의 가운데에 위치) 신판 반납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저렇게까지 온 병실을 돌아다니시면서 수고를 할까 하고 의문스러웠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분은 환자들이 남긴 밥과 반찬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2. 엄마가 입원하시는 층은 여성전용 입원 층이다. 그 층을 청소하시는 분이 일이 끝났는데도 안가시고 가끔 우리 엄마 손, 어깨, 발 같은 데를 마사지 해주신다. 힘드실텐데…엄마가 하지말라 해도 기어코 해주신다. ​

​3.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수다를 떠는 한 환자 아주머니가 우리 엄마를 너무 쫓아다녀서 저번 항암 치료 때 너무 고생했다. 한시도 안쉬고 떠들면서 우리 엄마 입원 침대 바로 옆으로 침대까지 배정받아 우리 가족 모두 밤낮으로 심히 괴로웠다. 내가 엄마 힘드시니 그만 말 걸어달라고 한마디 하려다 엄마가 불편해하실까봐 참았다.

4. 심보가 못된 건지, 가끔 전철에서 연인들을 보며 속으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가끔 한다. 오늘 내 옆에 있던 커플은 여자가 남자에게 죽고 못사는 것 같은데, 여자가 자꾸 남자몸을 더듬고 과하게 예쁜 척, 귀여운 척을 해서 안보려고 엄청 노력했다. 그 여자는 자리에 앉고 남자친구는 내 옆에 서 있었는데 남자친구를 올려다보며 남자의 허벅지 엉덩이 등을 계속 더듬었다. 남자친구 눈에는 저 과한 표정도 사랑스럽겠지. 나 점점 꼰대되가나…

5. 일요일에 엄마 가발 다듬으러 동네 미용실에 갔다. 인모가 아닌 건 원래 안해준다는데, 사정해서 간신히 손질했다. 엄마가 항암 치료 금방이라고 비싼 거 사지말라고 하셔서, 인모 가발을 안샀는데​ 살걸 그랬나 싶다. 지금 산 가발도 일본 브랜드라 자연스럽고 가발인 거 티 하나도 안나는데 엄마는 어색하다고 한 번도 안쓰셨다.

6. 미용실에서 나왔는데 웬 중국인 아저씨가 술에 잔뜩 취해서 회색 내복만 입고 동인천 일대를 활보하고 다녔다. 늙은 중년 남성이 내복만 입은 모습이 너무 역해서 괴로웠다.

7. 친구가 공들이던 남자와 사귀기로 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난 근데 진짜 아직 먼건지…어째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 남자가 진심으로 친구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 예감이 제발 틀리길.


  요즘 주중에 회사에서 너무 바쁘다 보니, 주말에 아무것도 안하고 축 쳐져 있다가 일요일 밤에 우울함에 몸부림 치며 책 몇 장 읽다 잤다. 주말 내내 너무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아닌가.. 하고 죄책감이 들 때도 있지만, 제일 중한 건 건강이니까.. 푹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1. 사랑스러운 후배

  첫 회사 후배를 만났다. 내가 워낙 좋아하는 애라 맛있는 걸 많이 사줘야지 했는데, 도리어 내가 얻어먹었다. 생일도 챙겨주지 못해서 내가 저녁을 꼭 사고 싶었는데.. 그 약속 때문에 오랜만에 명동에 갔다. 첫 회사의 추억이 어린 명동에 가면 기분이 좀 이상해진다. 좀 슬픈 기분 들기도 하고. 제대로 적응해서 죽으나 사나 그 회사에서 버텼으면 지금보다 나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나이가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어도, 사회적 지위(?)는 오히려 지금보다 높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하지만 언젠가는 때려치고 말았을 첫 회사라 미련은 없다. 첫 회사에서 유일하게 얻은 건 이 후배 하나다. 후배 만나기로 한 명동 롯데 백화점 안에 들어갔다가 한창 길 잃고 헤맸다. 정말 갈 때마다 다신 오고 싶지 않은 곳이라 생각하게 되는 복잡한 곳이다. 갈 때마다 한번에 뭘 찾은 적이 없다. 

  내가 처음 직장생활 할 때는 명동 일대가 모두 일본인들이었다. 어디서나 일본어가 들렸고, 일본인들은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돌아다녔는데, 지금 명동은 모조리 중국인들 이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우리 동네에 배타고 내리는 중국인들과 다르게 명동 중국인들은 부유해보였다.

  자라 매장 가면 항상 건성으로 보고 뭘 사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후배와 자라에 들어가서는 원피스를 하나 샀다. 바느질 상태는 정말 한숨나는 수준이지만, 사이즈가 나한테 딱 맞고 디자인이 예뻤다. 가끔 가서 사야지 하고 마음 먹었다. 워낙 저렴해서 부담이 없기도 하니까.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서 사는 얘기도 듣고 내 이야기도 하니 기분이 좋았다. 너무 오랫동안 이런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


2. 우편함

  퇴근 길에 우편함에 우편물이 그대로 있으면 '오늘도 엄마가 한 번도 바깥에 나오시질 않았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번 5차 항암 치료는 4차보다 더 수월하게 넘기셨다. 4차 항암 치료가 초등학교 4학년 같은 건지.. 저번 4차 항암 치료 끝내고는 너무 힘들어 하셨는데 오히려 5차를 쉽게 넘기셨다. 정말 다행이다.


3. 대전 결혼식

  원래 어제는 대전에 갔어야 했다. 유일한 초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돈만 보냈다. 그 친구는 8살 어린 남자와 결혼을 한다고 한다. 연애한다는 말 들었을 때 행여나, 중간에 헤어지면 걔(남자)는 아직 팔팔한 나이 인데, 얘(내친구)는 어떡하나 싶었는데 결혼까지 해서 다행이란 생각 들었다. 8살 어린 남자는 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궁금해서 가보고 싶긴 했지만, 안가길 잘한 것 같다. 갔다왔으면 병이 나서 앓아누웠을 것이다.


4. 가을 월미공원

  어제 우리동네에 있는 주차장이 꽤 넓은 유니클로에 가서 세일하는 울트라 라이트 다운을 3개나 샀다. 두 개는 엄마 것, 한 개는 내 것. 나는 이미 두 개 가지고 있지만, 나는 겨울내내 울트라라이트다운을 거의 매일 같이 입기 때문에 한 개가 더 필요했다. 사고나니 너무 든든하고 기분 좋았다.

  차까지 끌고 나왔는데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서 엄마와 월미공원에 갔다. 언제나 주차장에 자리가 남아돌고 한가한 월미공원에서 단풍나무도 많이 보고 은행나무도 봤다.

  월미도 인근을 전 안상수 시장이 얼마나 많이 망쳐놨는지 볼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희대의 뻘짓으로 월미은하레일 이라는 걸 설치해서 그 멋대가리 하나 없는 레일과 큰 기둥이 월미도 인근 풍경을 재앙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하게 망쳐 놓는다. 스산하고 모든 것이 낡은 예전 월미도가 너무 그립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에서 나오던 그 월미도)






5. 사무실 이전

  요즘 사무실 이전 때문에 회사에서 죽을 맛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라는 속담이 뭔지 몸소 체험 중이다. 참견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12월이면 안그래도 바쁜데, 대체 왜 이사날짜를 12월로 잡은 건지 모르겠다. 또 한창 추울 때 아닌가.

  그래도 LSM Effect 로 인해 심하게 스트레스 받고 있진 않다. LSM Effect 는 내가 지어낸 말인데, LSM 이 전회사에서 날 괴롭히던 부장의 이니셜이다. 푸하하하. 막 열이 받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다가도, 그 여자와 함께 일하던 시절을 회상하면 웬만한 일에는 화도 안나고 순식간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앞으로 그 여자보다 힘든 직장 상사는 없을 거라 믿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 전체로 볼 땐 그 여자에게 당한 일들이 완전히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그 여자로인해 직장 상사에 대한 내 기대 수준이 사정없이 낮아진 것은 고마운 일이다. 요즘에는 회사 사람들이 배푸는 정말 작은 배려에도 감사하게 된다. 그 여자와 비교하면 더 나쁜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지금 회사에서 아무리 열이 받아도 좋게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6. 친구의 연애

  친구가 공들이는 남자가 생겼는데, 그 남자가 생긴 뒤로 나에게 보내는 카톡의 양이 10분의 1로 급감했다. 잘되가서 그러는 거겠지. 뭐 우리 나이에 더 중요한 건 우정보다는 사랑일테니 이해는 하지만, 못내 좀 서운하다. 친구에게는 괜히 질투하는 것으로 보일까봐 말은 못했지만, 저번에 카페가서 실제로 본 남자와 내 친구.. 비주얼 적으로는 너무 안 어울려서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응원한다. 걔가 이제까지 고생하면서 산 걸 아니까.


7. 친구의 고양이

  내 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유방암으로 투병 중인 친구가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고양이 사진을 올리려고 인스타그램도 시작했는데, 인스타그램으로 가끔 보는 친구의 고양이는 예쁘긴 진짜 예쁘다. 너무 예뻐서 살아있다는 생각이 안들 때도 있다. 고양이가 비현실적으로, 그리고 충격적으로 귀엽지만, 난 죽어도 못 키운다. 한 생물을 거둬야겠다 다짐하고 실제 행하는 사람들 보면 존경스럽다. 난 정말 용기가 안난다. 그런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절대 아니고.


  일기에 몇 번 썼지만, 나는 불행히도(?) 아빠 성격을 훨씬 더 많이 닮았다. 사회성 떨어지고, 외골수인 게 특히 그렇다. 하지만 아빠 덕분에 어린 시절 좋은 음악도 많이 듣고, 그림도 봤고, 책 읽는 습관도 생겼으니 원망스럽지는 않다.

  아빠 영향으로 좋은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 우리집에는 거의 B4 사이즈만한 그림책 세트가 있었다. 외국책 이었고 해외 유명 화가들의 (어렴풋이 모네 랑 르누아르 그림을 봤던 기억이 남) 고급 종이에 컬러로 인쇄된 책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봤던 모든 책에는 하나같이 다 크레파스 낙서가 가득한데, (우리 엄마는 내가 하도 벽이나 책에 낙서를 많이 해서 벽면에 큰 종이를 하나 붙여주고 낙서하고 싶으면 여기에 하라고 말씀하셨다. 앨범에 그 낙서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음) 어린 내 눈에도 그 책은 비싸고 좋아보였는지 그 책에는 낙서를 전혀 안했다. 너무 무거워서, 아빠가 꺼내서 펼쳐주시지 않으면 볼 수도 없었다. 10번이 넘는 이사를 하며 우리 가족에게 그 책 세트는 너무 큰 짐덩이리였고, 결국 언젠가 아빠께서 헌책방에 그 책을 팔아버렸는데, 책방 주인이 어찌나 좋아하든지 집에 혹시 이런 책 또 있으면 꼭 자기한테 팔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집에는 007 가방 처럼 생긴 갈색 큰 가방도 있었다. 그건 클래식 음악 테이프 세트였다. 이 세트도 역시 수입된 것이었다. 그 옛날 강원도에서 직수입 책이나 음악세트를 구입하셨던 걸 보면 아빠도 꽤 유별난 사람이었던 거 같긴 하다.

  하긴 세계 최초로 Auto-focus 기능 탑재한 니콘 카메라도 강원도 살 때 샀고, 그 카메라가 아직도 우리집에 있으니.. 역시 돈이 좋긴 좋은건가. 싶다. 그때는 아빠도 안정적 직장에 수입도 많았으니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하는 호사를 누리셨다. 그 니콘 카메라 파는 아저씨가 카메라 하나 들고 서울에서부터 우리집인 강원도 홍천까지 오셨고 그 카메라 값을 3년 할부로 갚았다고 하니 당시 엄청난 고가였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 세트 60개 테이프 중 아빠가 많이 들으신 건 막 음악이 늘어지고, 안들으신 건 음질이 깨끗했다. 나는 모든 테이프가 다 늘어나서 그 세트를 버릴 때까지 심심하거나 혼자 있으면 그 클래식 음악들을 듣곤 했는데, 어느 날은 뭔지 모르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재생했다가 음악이 너무 무서워서 울었다. 봄의 제전은 클래식 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곡이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한번 들어봤을때도 역시나 봄의 제전은 전혀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좋아했던 건 유명 협주곡을 모아놓은 테이프였는데, (60번 중에서 30번인가 28번인가 그랬음) 나중에 커서 들어보니 그 테이프에 들은 곡은 슈만의 유모레스크,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등등 엄청 유명한 곡들이었다.  

  원래 쓰려던 걸 안쓰고 말이 길었는데, 우리 가족은 나와 아빠는 정리정돈형이고 엄마와 동생은 어지르기형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난 엄마에게 집을 치우라든가, 니 방 좀 정리하라는 잔소리를 들은 기억이 전혀 없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엄마가 나보다 더 집을 어지르고 정리를 못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심한 편은 아니지만, 약간의 강박 같은 게 있어서, 샴푸나 폼클렌저, 화장품이 상표가 보이지 않게 세워져 있으면 꼭 상표를 보이게 세워놓고, 자동차 열쇠, 가방, 이어폰 같은 소지품이 항상 있던 자리에 있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또 내가 쓰는 서랍은 언제나 찾기 쉽게 정리정돈 되어 있는 편이고. 

  하지만 동생이나 엄마는 손에든 물건은 손 닿는 곳에 두고, 서랍을 열어보면 뒤죽박죽 절대 원하는 물건을 바로 찾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뇌가 좀 다른 것 같다. 동생이 엄마보다 정도가 좀 심한데, 군대를 갔다오면 좀 나아지려나 했는데 뭐 군대 2년은 사람을 변화시키기엔 너무 짧은 시간...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그냥 엄마나 동생이나 뇌가 나와는 다르다 생각하고, 또 한편으로는 엄마가 나보다 더 어지르기형 인간이라 잔소리 안해 좋다... 생각하는데, 아빠는 엄마가 집안 어지르는 것 때문에 가끔씩 크게 화를 낸다.

  휴. 또 이 일기의 결론은 아빠와 엄마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구나. 아빠가 엄마를 좀만 더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나중에 내가 만약에 누군가와 살게 된다면 어지르기형 인간이더라도 화내지 말아야지... 하고 또 다짐해본다.


슬픈 밤

일상 2016. 10. 25. 13:06

  스마트폰이 등장한 후, 길치인 나도 실시간으로 지도를 보며 모르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출퇴근길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스마트폰 때문에 나는 잠들기 직전까지 아무 생각도 안하는 바보가 되었다.

  하루 중 가장 나다워지는 시간은 아마도 잠들기 전이 아닐까. 그래서 잠들기 직전의 나는 하루 중 가장 위험하다. 간밤의 나의 모습을 밝은 아침에 돌이켜보면 기가 막힐 때도 많다.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를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어제 혼술남녀를 시청하고 누워서 음악을 듣는데, 갑자기 슬퍼서 1시 넘은 시각까지 울다 잠들었다. 나이가 좀 더 들어 현명해지고, 내 삶이 충만하다고 느끼면, 이런 밤을 보내지 않는 것이 가능할지. 낮에 아무 사건도 없었고, 평범한 하루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가끔 이런 아무 일도 없었던 날에도 베개가 흠뻑 젖을 정도로 울다 잠이 든다.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다들 종종 울다 잠이 들곤 하는건지. 나만 이런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웃긴 건, 우는 와중에도 잠은 또 꼬박꼬박 잘 잔다는 거다. 정말 슬픈 일이 있어서 울 때도, 어느새 눈을 떠보면 아침이니, 이런 면에서 나는 묘하게 긍정적인 거 같기도 하다. 걱정이 되어 잠을 못 이룬 경험이 아직까진 한번도 없으니까. 내가 태어난지 몇 달 안됐을 때 대전에서 강원도까지 날 보러 오신 할아버지께서 엄마에게 무슨 애기가 이렇게 잠을 잘자냐고 이러다 어디 잘못되는 거 아니냐고 말씀 하셨다고 한다. 엄마도 나 키우면서 잠 때문에 고생한 기억은 전혀 없다고 하셨고. 요즘에도 새벽에 천둥번개가 미친 듯 휘몰아쳐도 언제나 나는 꿀잠자고 일어나니, 잠복은 타고난 거 같다.

  유태인의 교육철학을 숭배하지도 않고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예전에 유태인 부모들이 지켜야할 덕목 중, 아이를 훈계하되, 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마음을 풀어주고 울면서 잠들게 하지 말라는 건 크게 공감했다. 어렸을 때도 종종 이렇게 울다 잠들곤 했는데 언제일까. 처음으로 울다 잠이 든 밤이.

  점심 때 입맛이 없어서 간단히 샌드위치에 커피 마시고 사무실 와서 일기를 쓴다. 울다 잤지만, 오늘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길 기원해야겠지.

  극장에 가고 싶다. 혼자 영화를 보고 싶은데, 이조차도 여의치 않다.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았는데... 엄마 편찮으신 뒤로 한편도 보질 못했구나. 10월말까지 안쓰면 포인트도 사라진다고 메일 왔는데,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