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킹

단문 2016. 5. 16. 21:19

스타킹만큼 가격 대비 품질이 정확하게 비례하는 공산품도 드물다.
토요일에 친구네집 갈 때 신었던 스타킹이 하나에 8천원 짜리였는데 카페 의자에 뜯겨서 빵구가 났다.
비싼 스타킹은 하나에 삼만원도 넘지만, 내 기준에 하나에 8천원이면 대단히 비싼 편에 속하는 스타킹인데 아까워 죽는 줄 알았다.
오늘 신은 스타킹은 이천원 짜린데, 신은 느낌이 8천원짜리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흐물거리고 색도 별로고 하여튼 맘에 안든다.
난 털털해서 스타킹 대부분 5번 정도 신으면 다 빵꾸나서 버린다. 저번에 백화점 가서 검정 스타킹 10개를 샀는데 벌써 2개 밖에 안남았다.
나같이 스타킹 오래 못신으면 그냥 싼 거 사서 버리고 버리고 해야 하는데, 이 싸구려 스타킹은 아무리 싸구려라지만 너무 심히 구리다. 불쾌할 정도로.
예전에 큰 맘먹고 이태리제, 일본제 스타킹을 거금 주고 사서 신어봤는데, 좋긴 진짜 좋았다. 근데 그 스타킹들도 다 빵꾸나서 5번도 못신고 버렸다.


회복

단문 2016. 5. 12. 19:21

세상 끝난 것 처럼 우울해서 찌질하기 그지 없는 일기를 쓰다보니 이제 좀 회복이 된 것 같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뭐 그렇게 아쉬울 일이 아니다.
즐거운 상상을 하고, 읽던 책을 읽고, 제일 친한 친구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내일 술을 마시기로 결심했고, 월요일 오후에는 상담실을 한번 가보기로 했다.
퇴근 후 신도림역까지 와도 하늘이 낮처럼 밝고, 내가 좋아하는 여름도 다가오고 있고, 또 언젠가는 좋은 일도 생길 것 같고 그렇다.
친구​들도 부지런히 만나고 혹시 기회가 생긴다면 낯선 사람과도 만나고 싶고 그렇다.
우울하다고 엄청나게 유난 떠는 게 나름대로 내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엄청나게 중요한 대부분의 결정은 장고 끝에 내려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단 몇 초, 몇 분만에 감정적으로 결정되는 일이 허다하게 많으며 그 여파는 불행히도 일평생 간다.
이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포기할 건 포기하고 살면 오히려 속이 편하다.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살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나이들 수록 자주한다.
감정적으로 대처했다가, 죽도록 후회하다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피똥을 싸며 노력해도 결국 이미 늦었다.


취하고 싶다.

일상 2016. 5. 11. 22:12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지만, 난 술을 잘 마시는 편이다. 취하지 않겠다 마음 먹고 취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알코올 분해를 잘해서 술을 잘 마시는 게 아니라, 그냥 정신을 놓지 않는 걸 잘한다고 해야하나. 취하려고 맘 먹으면 작은 맥주 캔 하나에도 취하는데..
대학 시절 혼자 살 때 비틀거리면서 술취해서 들어와선 많이 울었다.
비틀거리긴 해도 정신은 온전해서 언제나 목욕재계하고 개운한 상태로 누웠다.
아무리 즐겁게 술을 마시고 들어와도 하수구 냄새가 나던 그 방에 가면 어김없이 눈물을 쏟았다.
방에 혼자라 아무도 듣는 사람 없는데 나는 굳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나중에는 이어폰 사이에 눈물이 자꾸 들어가서 이어폰을 뺄 수 밖에 없었지만.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들 찾아다니면서 나 몰래 상담 받고 다닐 정도로 한동안 못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어서, 우리 부모님은 내가 울거나 조금만 취해 집에 들어가도 심하게 눈치를 보고, 걱정을 하신다. 그럴 때마다 중학생 때 내 얼굴을 쳐다도 못보시던 게 생각나서 너무 슬퍼진다. 그냥 그런 일 없었던 것 처럼 날 대해주시는 건 불가능한거겠지.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산 뒤로는 술마시고 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취한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안들지만, 다음날 일어나면 변한 건 하나도 없고 기분이 나아지기는 커녕 항상 더 우울해진다. 하지만 요즘 같아선 재능 발휘해서 진탕 마시고 펑펑 울고 싶다.
어제는 대학시절 이틀이 멀다하고 봤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긴 수진이한테 메일을 썼다. 아마 그 메일주소를 사용도 안하고 그 편지도 영영 안 읽을 것 같다.
걔가 나와 연락을 끊은 이유가 뭘까.
걔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지만, 걔가 없었으면 온전히 대학시절을 보내지 못했을텐데, 고마운 마음을 보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갑자기 사라진 친구가 밉다.
오늘 아침에도 자느라 정거장을 지나쳐서 지각했다. 회사에서는 되는 일 하나 없고, 엉망진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청첩장 준다고 만난 언니 앞에서는 즐겁게 사는 척했다.


우리 엄마는 늦게 생겼으면 그냥 어디가서 자고 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자유 방임이라고 해도 될만큼 어렸을 때 잔소리를 안하셨다. 공부해라는 말은 한번도 안들어본 것 같고, 치워라, 씻어라. 이런 잔소리도 거의 들어본 기억이 안난다.
그런 부모님 밑에선 난 이상하게 엄청 계획적인 사람으로 자랐다.
그래서 내 계획에도 없는 회식에 가고, 원래 자던 시각보다 늦게 잠을 자야하는 것에 다소 거부감이 있다.
결정적으로 난 여러 사람이 모여서 술 마시기 대회를 하듯 쏘맥을 연거푸 마시며 취하가는 걸 보는 그런 술자리가 너무 싫다. 유흥을 못하고 싫어하는 한국인으로 사는 게 정말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나같은 성격 아니면 모르겠지.
업무 후 술자리가 어떻게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 것인지 난 아마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왜 사회생활에 특화된 사교적 한국인 성격을 타고나지 못한 것일까. 하고 직장 생활 초기에는 좌절도 했지만, 고칠 생각은 없다. 어차피 고쳐지지도 않을 걸 아니까.


근황과 푸념 가득

일상 2016. 4. 25. 18:24

1. 바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유방암으로 수술을 하고 복직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수술한 가슴에 다시 뭔가 만져져서 병원에 가는 중이라는 메세지를 보고, 내 가슴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유방암이 재발하면 (내 입에 이 단어를 올리기 싫지만) 사망 위험이 크다는 말을 어디 선가 봤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내 곁을 먼저 떠날 것이란 상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가 검사결과 말해주기까지 몇 분 동안 만약에 만약에 결과가 최악이라면, 친구는 어떻게 해야하고, 난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의사에게 암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눈물이 또 핑 돈다.

2. 요즘 다시 읽고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을 보면 (정확친 않지만) 주인공 소피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자신의 인생에 대단한 일이 벌어질 확률이 매우 낮음을 너무 빨리 알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책은 이래서 좋다. 내가 느꼈던 걸 정확히 표현해주니까.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 보다는 내가 더 경제적으로 발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한 때는 동화 작가 같은 꿈을 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난 언제나 사회진출에 유리한 쪽으로만 행동하고 그 방면에서 뛰어나길 원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다 부질없었단 생각이 든다. 점점 더 내 인생이 내 기준에서는 실패한 인생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 내 자신이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다. 내가 더 강하게 버텼다면, 지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 때문에 점점 더 제 정신으로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

3. 이 말을 글로 쓰는 순간 더 사무칠 것을 알기 때문에 웬만해선 일기에도 안쓰던 말이지만, 요즘 들어 정말 외롭다. 내 짝을 찾은 사람들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이 짝을 만난 게 하나같이 다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알고 그들은 행복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4. 주말에 영어학원에 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인터넷으로 영작한 후, 첨삭 받는 걸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두번 써서 내는 게 그렇게 힘들다. 호기롭게 써서 내면 온통 빨간색으로 틀린 부분이 표시되서 되돌아온다. 벌써 6번 정도 썼는데 자꾸 틀린 걸 또 틀린다.

5. 고용노동부에서 보낸 대표이사 출석요구서 사유를 보고, 이 회사 역시 오래 있을 회사는 아니라는 생각에 또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이 되서 이력서 쓰는 게 너무 힘들고, 그거 때문에 올 봄은 꽃 한번 제대로 못봤다. 그렇게 4월이 끝나간다.

6. 어떤 남자의 메세지 혹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엄마는 또 일단 사귀라고 성화다. 이제 내 의견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남자가 좋다고 하면 무조건 만나야 되는 나이인가 보다. 동생 부모님 다 협공 중이다. 너 그럴 나이 아니니까 정신 차리라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어쨌든 여러가지로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아침 간식

일상 2016. 3. 22. 19:27


아침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옷도 안 벗고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유난스러워 보이겠지만 나는 매일 아침 드리퍼로 혼자 원두커피를 내려 먹는다.
이렇게 내려서 마시는 커피가 내 직장 생활의 유일한 낙이라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한국야쿠르트에서 나온 콜드브루 라는 제품을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어서 앞으로 내려 먹지 말고 이거 매일 시켜 먹을까 고민하다가 가격 때문에 포기했다.
이미 난 매일 흰우유 하나에 요일마다 하루야채, 윌, 바나나우유를 돌려가며 시켜 먹고 있기 때문에 커피까지 시키면 한달 음료 값으로만 거의 7만원 이상이 나올 것이다.
아침에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라 꼭 과자도 같이 먹는다. 편의점에서 2+1 하는 과자를 쟁여놓고 먹는데 오늘은 큰 맘먹고 초코하임을 사놓았다. 비싸고 양은 적은 초코하임은 먹을 때마다 감탄한다. 우리나라 과자 중 최고 맛있는 것 같다. 오늘 초코하임 계산할 때 카운터에 있던 킨더가든의 달걀모양 초코렛도 샀다. 패키지 디자인이 귀엽고 안에 작은 장난감이 들어있고 초코렛이 엄청 고급이었지만 너무 비쌌다. 내가 어린이라면 볼 때마다 사고 싶을 것 같긴하지만, 난 어른이니까..
보통 오레오나. 사브레, 과일샌드 많이 사놓고 너무 우울할 땐 편의점에서 절대 세일 안하는 빈츠도 사먹는다.
역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이 더 크지만 회사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편의점을 선호하는 이유는 사장님이 무척 친절하기 때문이다. 저녁에 퇴근 시간에 일하는 알바 총각은 엄청 미남이라 한번 이상 쳐다보리라 하고 결심했다. 근데 오늘은 깜박했네.
오늘 출근길에는 대학 4학년 때 대기업 면접 봤던 거랑 크리스 마틴을 생각했다.
웬만해선 안 떨어진다는 경쟁률 1.2 대 1 이었던 3차 최종 면접에서 난 떨어졌다. 그 회사에 붙었다면 난 지금 월급보다 훨씬 받으면서 자부심 갖고 일했을까? 우리 부모님은 친구 친척들한테 내 자랑 많이 했을까. 낯선 이를 만날 때 좀 자신감이 있었을까.. 붙었어도 단체 생활 못하는 종특 때문에 그만 뒀을 수도 있지만, 괜히 슬퍼졌다.
콜드플레이는 어느 순간부터 찾아 듣진 않고 있지만, 20대 초반을 함께 보낸 밴드라 애착이 간다. 수능 끝나고 집에 있으면서 콜드플레이의 1집을 참 많이도 들었다. 크리스 마틴은 내가 좋아하는 남자 체형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 아닐까. 최근 나온 앨범을 들으며 이게 밴드 음악이 맞는거야? 라는 생각을 좀 했지만, 비욘세랑 부른 노래는 좋더라. 크리스 마틴의 상쾌한 느낌의 목소리는 1집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내가 싫어하는 기네스 펠트로랑 결혼한단 소식 듣고 참 슬펐는데....
이런 생각 하다보니 벌써 성수역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핸드폰으로 퇴근길에 일기를 쓴다. 일기 쓰다보니 벌써 제물포역이다. 2월부터 급행이 제물포, 개봉 두개 역에 추가로 정차한다. 안그래도 오래 걸리고 사람 많은데... 더 느려지고 사람은 더 많아졌다.
이제 다음 정류장이 동인천이다. 휴. 오늘도 무사히 퇴근해서 다행이다.



개와 고양이

일상 2016. 2. 4. 18:32

1. 개
얼마전에 신도림역에서 맹인 안내견을 봤다. 큰 골든 리트리버 였다. 그 개는 굉장히 의젓했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행하는 모습에서 숭고함 까지 느껴져 울컥했다.
애완견 과는 다르게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눈에는 피곤함이 서려 슬퍼 보였다.
하루종일 그 슬픈 눈이 나를 쫒아다니는 느낌이었다.
맹인 안내견이나 수색견들은 개로서 본능을 억제하는 훈련을 받아서 다른 개들 보다 평균 수명도 짧다는 걸 어디서 봤다.
난 실내에서 개를 키우는 건 질색이고, 평소 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개는 때론 사람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하고 인류에 꼭 필요한 동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보고 하루종일 맹인 안내를 시키면 아마 반나절도 안돼 포기하고 말 것 이다.
한국에는 개와 관련된 욕이 많지만, 실제 개만도 못한 인간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2. 고양이
고양이 척추의 움직임은 언제나 유려하다.
고양이들은 움직일 때나 멈춰 있을 때나 그 몸이 만들어 내는 선이 참 아름답다. 고개를 갸우뚱 하는 것 조차 미적으로 가장 알맞은 각도 만큼 움직이는 느낌이다.
우리집 앞 곡물상가 제일 첫번째 집에 살던 고양이를 거의 5년 넘게 봤는데, 털 색이 은색이고 얼굴도 어찌나 예쁜지 운 좋게 그 고양이를 길에서 만나면 기분이 좋았다.
한 2년 전에는 자기를 꼭 닮은 새끼 몇마리를 낳았는데, 주인이 다른 집에 다 줘버린건지 한 2주 뒤엔 새끼 고양이가 한마리도 남지 않았고 나까지 슬펐다.
그런데 몇 달동안 그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살면서 본 고양이 중 제일 예쁜 고양이였던 그 은색 고양이가 아무래도 죽은 모양이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도 아니고 이름도 모르는데 서운하다. 이제 영원히 못보게 되는거니, 우연히 만나 기분 좋을 일도 없겠지.


겨울

단문 2016. 1. 18. 18:30

오늘은 파란 하늘에 해가 밝게 빛나고 엄청나게 추운, 전형적인 한국의 겨울 이었다.
퇴근길 전철 안에서 창밖을 보며 미세하게 낮이 길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3일전까지만 해도 퇴근시간 하늘은 깜깜하기만 했는데 오늘은 하늘이 검붉다. 찬 겨울 저녁에 태양이 간신히 남겨놓은 석양을 보며 월요일을 무사히 보낸 것에 감사드린다.
바쁜 주가 될 것이고, 추울 것이다.
새해부터 즐거운 생각을 하고, 무력함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억지로라도 노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난 급한 업무를 끝내는 것에 급급하고, 내 미래는 아직도 어둡기만 하다.
거짓말같이 나아질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은지 올해로 몇 년 째인지 헤아릴 수 없다.
아직까지는 생명이 붙어있으니, 내일도 내일모레도 바람을 뚫고 출근하여 노동을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할 것이다.
부디 아주 조금이라도 어제보다 나아졌길 바라지만, 슬프게도 난 어제보다 그저 더 늙었을 뿐이다.


지난 화요일에는 회사에서 아주 중대한 나쁜 사건이 있었다. 그 일을 해결하려고 사장님과 면담하고 부장님과도 고민을 했지만, 아무래도 달라질 건 없는 것 같다.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 마다 왜 난 왜이렇게 운이 더럽게 없는가. 하는 생각과 아무래도 이 팔자가 내 인생의 전부인가 보다하는 생각, 이직하면 장 땡이다 라는 생각 등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을 압도할만큼 큰 감정은 바로 수치심이다. 남들은 다들 잘 이겨내는 일에 왜 난 이렇게 괴로워하는가. 난 왜이렇게 약해 빠졌나. 난 왜 충분히 좋은 직장에 가지 못했나.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수치심에 목요일에는 버스정류장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 수치심을 없앨 수만 있다면 뭐라도하고 싶었다.

다행히 이제까지 직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상기하며 이보다 더 심한 일들도 견뎌내고 지나갔다고 억지로라도 이 아픔을 이겨낼 수 있다고 세뇌하며 정신 차렸다. 하지만 여전히 속상하다.

힘든 마음에 좋아하는 소설인 로알드 달의 카티나 를 다시 읽었다. 카티나가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그렇다. 카티나를 읽고 울지 않을 도리는 없다.

금요일에는 투병 중 인 친구에게 선물을 주고 저녁을 같이 먹었다. 친구도 나에게 아이섀도를 줬는데 색이 마음에 쏙 든다. 내가 선물 받을 입장이 아닌데, 너무 속없이 넙죽 받았나 싶다.

토요일에는 전 직장에서 제일 친했던 대리님의 결혼식에 갔다. 신랑신부 모두 행복해 보여서 흐믓하고 부러웠다. 싱글벙글한 신랑신부와 곱게 차려 입은 친척들까지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가끔 어떤 결혼식은 엄청 우울한 분위기 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결혼식 때문에 전 회사 사람들을 사장님 포함하여 잔뜩 만났다. 다들 나보고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그런가… 실상은 그렇지도 않은데. 뭐 그래도 다행이다. 날 욕보인 그 회사에 약한 모습 보인 건 아니니까.

오늘은 회사에서 실수 연발 이었고 말도 막 헛나왔다. 난 평소 실수 많이 안하는데 한번 하면 큰 실수인 경향이 있다. 다음부터 검토를 잘하는 것 밖에 별다른 수가 없지만, 오늘 또 나에게 실망했다. 역시 사람은 교만하면 망한다.


학원 가는 길

단문 2015. 5. 17. 09:30

2월에 다치면서 학원을 한달 이상 빠졌다. 지금 다니는 학원은 레슨40개를 정해진 기한 내 소진해야 하는 방식인데, 평일 수업은 들을 수 없으니 꽤 빠듯하다.
안그래도 빠듯한데 한달이나 빠졌으니 난 매주 학원에 갈 수 밖에 없다.
어제도 두개 레슨을 듣고, 일요일인 오늘도 학원에 가고 있다.
한동안 무역 파트로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그냥 지금 부서에 남기로 하면서 영어 공부에 대한 동기가 없어졌다. 또 해외 여행도 그만 갈 예정이니 더더욱 영어공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학원에 가야하니 죽을 맛이다. 더군다나 요즘 가르치는 강사들은 수업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성의도 없고, 그따위로 할거냐고 따지고 싶지만 영어를 못하니 그것도 안된다. 어제 가르친 강사처럼 가르치는 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주말에 하는 일이 고작 학원에 가는 거라니 내 인생이 말할 수 없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공부는 지금 나만큼 공부해서는 절대 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번 레슨만 끝나면 때려치리라 결심했다.
엊그제는 3개월만에 뛰었다. 발다친 뒤로 뛴 적이 없었다. 요즘 퇴근 후 가까운 상고 운동장에서 운동하는데 갑자기 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뛰는 걸 지독히 싫어했는데, 발이 아픈 동안 뛰고 싶을 때 뛸 수 있는 게 큰 복 임을 사무치게 깨달았다.
5바퀴 정도 뛰었는데 발이 크게 아프지 않아 기뻤다.
유명 마라토너 중 에선 혈압 100 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혈압만 봐서는 난 최고의 마라토너인데, 그래서 그런지 천천히 오래 달리는 건 별로 괴롭다는 생각이 안든다.
운동의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니, 당분간은 뛰기, 걷기를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영어는 때려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