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경계

단문 2017. 1. 4. 19:26

저번주는 2016년, 이번주는 2017년이다.
나는 평소대로 주말을 보냈는데 일주일 만에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좀 억울하다.
가끔, 일주일, 한달, 1년 같은 시간의 단위가 왜 만들어졌을까 생각한다.
매일 매일 해가 뜨는 시간에 뜨고, 달이 지는 시간에 지는 것 뿐인데 날짜가 있고 요일이 있는 이유는 사람이 희망을 품을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아닐까.
나는 뭘해도 안된다고 절망하고, 겁쟁이로 시간을 보내는 나를 스스로 안타까워 하면서 1년을 보내다가, 새해가 밝으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다짐하게 되고, 작년보다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이라 확신한다. 아무 증거도 없이, 단지 새해가 밝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1. 지금은 병원을 옮기신 것 같지만, 지난 여름 엄마가 입원 하셨을 때, 7층에 상주하는 간병인이 있었다. 그 간병인 아주머니는 밥 때가 되면 병실을 돌아다니며, 거동이 힘드니 환자들의 식판을 대신 반납을 해주시겠다고 말하며 식판들을 수거하고 다니셨다. (식판 반납하는 곳은 층의 가운데에 위치) 신판 반납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저렇게까지 온 병실을 돌아다니시면서 수고를 할까 하고 의문스러웠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분은 환자들이 남긴 밥과 반찬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2. 엄마가 입원하시는 층은 여성전용 입원 층이다. 그 층을 청소하시는 분이 일이 끝났는데도 안가시고 가끔 우리 엄마 손, 어깨, 발 같은 데를 마사지 해주신다. 힘드실텐데…엄마가 하지말라 해도 기어코 해주신다. ​

​3.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수다를 떠는 한 환자 아주머니가 우리 엄마를 너무 쫓아다녀서 저번 항암 치료 때 너무 고생했다. 한시도 안쉬고 떠들면서 우리 엄마 입원 침대 바로 옆으로 침대까지 배정받아 우리 가족 모두 밤낮으로 심히 괴로웠다. 내가 엄마 힘드시니 그만 말 걸어달라고 한마디 하려다 엄마가 불편해하실까봐 참았다.

4. 심보가 못된 건지, 가끔 전철에서 연인들을 보며 속으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가끔 한다. 오늘 내 옆에 있던 커플은 여자가 남자에게 죽고 못사는 것 같은데, 여자가 자꾸 남자몸을 더듬고 과하게 예쁜 척, 귀여운 척을 해서 안보려고 엄청 노력했다. 그 여자는 자리에 앉고 남자친구는 내 옆에 서 있었는데 남자친구를 올려다보며 남자의 허벅지 엉덩이 등을 계속 더듬었다. 남자친구 눈에는 저 과한 표정도 사랑스럽겠지. 나 점점 꼰대되가나…

5. 일요일에 엄마 가발 다듬으러 동네 미용실에 갔다. 인모가 아닌 건 원래 안해준다는데, 사정해서 간신히 손질했다. 엄마가 항암 치료 금방이라고 비싼 거 사지말라고 하셔서, 인모 가발을 안샀는데​ 살걸 그랬나 싶다. 지금 산 가발도 일본 브랜드라 자연스럽고 가발인 거 티 하나도 안나는데 엄마는 어색하다고 한 번도 안쓰셨다.

6. 미용실에서 나왔는데 웬 중국인 아저씨가 술에 잔뜩 취해서 회색 내복만 입고 동인천 일대를 활보하고 다녔다. 늙은 중년 남성이 내복만 입은 모습이 너무 역해서 괴로웠다.

7. 친구가 공들이던 남자와 사귀기로 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난 근데 진짜 아직 먼건지…어째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 남자가 진심으로 친구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 예감이 제발 틀리길.


퇴근 길에 트위터를 보다 젊은 이자벨 위페르 사진을 봤다. 사진을 보니 보다가 중단했던 영화 피아니스트가 떠올라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말 악몽같았던 영화 피아니스트.
난 이 여자배우를 유일하게 피아니스트 에서만 봤는데, 텅빈 눈동자에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너무나도 잔인해서 도저히 끝까지 볼 수 없었다.
영화가 재밌는데도 끝까지 시청 못한 영화가 두개 있는데, 하나는 데어윌비블러드, 두번째가 피아니스트 다. 두 영화 다 주인공이 한도끝도 없이 혐오스럽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 장면은 아직도 뚜렷하게 떠오른다. 정신적 충격을 버틸 용기가 생기면 두 영화다 언젠가는 시청해야지…하고.다짐해본다.


울보

단문 2016. 10. 5. 18:21

원래 잘 우는 편이지만, 엄마가 편찮아지신 뒤, 시도때도 없이 감동받고 훌쩍 거린다.
이것 또한 늙었다는 증거 인건지..
며칠전 전철에서는 갓난아이를 안고가는 젊은 엄마가 아기 머리를 쓰다듬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다 울고 말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의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이대로 몇 년 더 지나면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르는데.. 슬프겠지. 영영 엄마가 되어보지 못한다면.
나보다 더 사랑하는, 대신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생기는 건 어떤 기분일까.
TV같은 데서 생각보다 암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나오는 이야기의 90%이상 결말이 투병 중 사망이다. 투병 중 완쾌되었다는 이야기는 별로 없다. 그게 옛날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요즘에는 견딜 수 없이 슬프다.
결국 난 점점 더 주책맞아지고 있다. 날 아는 누군가의 앞에선 아직 한번도 운 적 없지만, 하루에 한번씩은 찡해지고 혼자 눈물을 닦곤 한다.
즐거운 일이 전혀 없다.


엄마가 걸린 난소암은 4기 환자의 5년 생존율이 11% 밖에 안되고, 재발확률은 70% 가 넘는다고 한다.
건조하게 적혀 있는 난소암 관련 수치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다.
수술도 굳세게 이겨내고, 1차 항암도 씩씩하게 견디고 있는 엄마가 항암을 마침내 다 마쳐도, 평생 재발하지 않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원하면서 사는 수 밖에 없다.
출퇴근 길에 개신교 목사들이 쉽게 쓴 성경을 조금씩 읽고 있다. 개신교에서 만든 성경이라 그런지 구약이 뒤에 있고 신약인 마태복음이 제일 처음 나온다. 하루 두 세장씩 마태복음을 읽는 중인데, 난 마태복음에 이렇게 의심하지 말라는 말이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이제까지 일요일 신앙 이었던 내가 이번 일을 계기로 내 곁에 예수님이 계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기도를 하며 우리 엄마가 완치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나면 거짓말같이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 엄마는 9월 5일에 2차 항암 치료를 앞두고 있다. 1차 보다 훨씬 힘드시겠지만, 이겨내시리라 믿는다.
유방암을 이겨내고 직장생활을 하던 친구에게 유방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번 주 금요일에 조직검사 결과 듣는다고 했는데 어제까지 아무 연락이 없어 나쁜 소식임을 예감했다.
아직도 3주에 한번씩 치료를 받는데, 항암 끝난지 5개월 밖에 안됐는데, 왜 또 재발을 한건지... 병원에서도 흔치 않은 경우라고 했다는데, 또 수술을 해야 하는 친구가 너무 안타깝다.
그리고 겁이 나기도 했다. 치료는 너무 어려운데 암이 생기는 건 친구 사례를 보더라도 정말 순식간이니까..
친구는 복직 후,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동호회에 가입했는데, 그 활동을 평일 밤 12시까지 종종 하곤 했다. 피로감을 쉽게 느끼는 나는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리한 스케줄 이었다.
암에 직접적 원인은 없겠지만, 동호회 때문에 늦게자고 일찍 일어났던 게 재발에 약간의 원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로 일도 많이 하고 여행도 하고 동호회도 하던 친구가 이제 정말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할 것 같다. 힘들겠지만..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는데,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고, 고백을 해도 차일 것 같다.
사실 잘 모르겠다. 정말 걔를 좋아하는건지.. 내 상황이 힘들어서 누구라도 필요해서 자꾸 생각이 나는건지.
금요일에는 진짜 오랜만에 카페하는 친구네 가기로 했다. 오정세를 좋아하는 친구가 한국 코메기 영화의 명작 '남자사용설명서'를 아직도 안봤다고 하여 맥주와 함께 감상하기로 했다.
얼마만에 가족 혹은 회사 사람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기다려진다.


어느 날 외근의 기억

단문 2016. 8. 29. 18:44

마법처럼 날씨가 쾌적해지기 전, 동국대로 외근갈 일이 생겼다.
아침에 바로 동국대로 가야했다.
충무로에서 3년을 근무했지만, 동국대는 충무로에서 가깝다는 것만 알았지 정확히 어디 있는건지 몰랐다. 갈 일도 전혀 없었고..
오랜만에 내 20대 추억이 서린 충무로역에 내려 스마트폰 지도를 켰는데, 아무리 봐도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정말 뜨거워 그대로 녹아버릴 것 같은 날씨에 행인들에게 동국대 가는 길을 물었지만, 누구하나 속시원하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결국 난 학생으로 추정되는 아이들 무리를 뒤따라 갔는데, 다행히 그 아이들은 동국대 학생들이 맞았다.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듯, 애타게 교내 카페를 찾았고 마침내 2500원짜리 찬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동국대는 내가 졸업한 학교와 다르게 경사가 참 많았다. 남산 중턱에 자리해서 그런지 공기도 좋고, 산책로도 있고, 건물도 귀엽고 예뻤다. 동국대를 4년 내내 다니면 매일 하는 등산 때문에 건강해질 것 같았다.
당시 엄마는 아직 병원에서 퇴원하지 못하셨었고 난 혼자 점심식사를 하며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드렸다.
엄마에게 오늘 진짜 더운데 길을 헤매서 힘들었다고 엄살을 좀 피웠다.
밥을 다 먹고 난 다시 오후 1시 뜨거운 태양을 느끼며 동국대역으로 향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외근의 처음부터 끝까지여정이 나중에도 종종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양산을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프리젠테이션 내용을 받아 적으며, 동국대역에서 회사로 오는 전철을 타며 순간 순간 틈이 날 때마다 엄마를 떠올리며, 기도했기 때문이다.


노상

일상 2016. 7. 25. 18:21

퇴근 길 성수역 2번 출구에는 항상 꽃을 판다.
비가 오지 않는 퇴근길에는 항상 크지 않은 평상에 파스텔톤의 이름 모를 예쁜 꽃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노상의 꽃은 일반 꽃집 가격의 4분의 1 가격이다. 어쩔 때는 꽃향기가 얼마나 진한지, 10m 밖에서부터 꽃향기가 난다.
사장님의 안목이 출중하여 꽃의 종류나 색이나 언제나 참 곱다.
그 노상앞을 지나갈 때마다 꽃을 좀 살까 말까 망설이지만, 예쁜 꽃을 들고 신도림역에서 시루떡 같은 동인천급행을 타면 꽃이 다 상할 것 같아서 포기한다.
오늘 같이 더운 날에도 노상의 싱그러운 꽃들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오늘 노상에는 험상궂게 보이는 덩치 큰 아저씨가 손님으로 오셔선 다홍색과 흰색의 이름모를 꽃을 한아름 사셨다. 사장님은 뜨거운 햇빛 아래서 꽃을 포장하셨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꽃을 사는 사람, 꽃을 파는 사람 두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니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 꽃을 받는 분은 누구일까. 정말 부러워.


아침 간식

일상 2016. 3. 22. 19:27


아침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옷도 안 벗고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유난스러워 보이겠지만 나는 매일 아침 드리퍼로 혼자 원두커피를 내려 먹는다.
이렇게 내려서 마시는 커피가 내 직장 생활의 유일한 낙이라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한국야쿠르트에서 나온 콜드브루 라는 제품을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어서 앞으로 내려 먹지 말고 이거 매일 시켜 먹을까 고민하다가 가격 때문에 포기했다.
이미 난 매일 흰우유 하나에 요일마다 하루야채, 윌, 바나나우유를 돌려가며 시켜 먹고 있기 때문에 커피까지 시키면 한달 음료 값으로만 거의 7만원 이상이 나올 것이다.
아침에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라 꼭 과자도 같이 먹는다. 편의점에서 2+1 하는 과자를 쟁여놓고 먹는데 오늘은 큰 맘먹고 초코하임을 사놓았다. 비싸고 양은 적은 초코하임은 먹을 때마다 감탄한다. 우리나라 과자 중 최고 맛있는 것 같다. 오늘 초코하임 계산할 때 카운터에 있던 킨더가든의 달걀모양 초코렛도 샀다. 패키지 디자인이 귀엽고 안에 작은 장난감이 들어있고 초코렛이 엄청 고급이었지만 너무 비쌌다. 내가 어린이라면 볼 때마다 사고 싶을 것 같긴하지만, 난 어른이니까..
보통 오레오나. 사브레, 과일샌드 많이 사놓고 너무 우울할 땐 편의점에서 절대 세일 안하는 빈츠도 사먹는다.
역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이 더 크지만 회사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편의점을 선호하는 이유는 사장님이 무척 친절하기 때문이다. 저녁에 퇴근 시간에 일하는 알바 총각은 엄청 미남이라 한번 이상 쳐다보리라 하고 결심했다. 근데 오늘은 깜박했네.
오늘 출근길에는 대학 4학년 때 대기업 면접 봤던 거랑 크리스 마틴을 생각했다.
웬만해선 안 떨어진다는 경쟁률 1.2 대 1 이었던 3차 최종 면접에서 난 떨어졌다. 그 회사에 붙었다면 난 지금 월급보다 훨씬 받으면서 자부심 갖고 일했을까? 우리 부모님은 친구 친척들한테 내 자랑 많이 했을까. 낯선 이를 만날 때 좀 자신감이 있었을까.. 붙었어도 단체 생활 못하는 종특 때문에 그만 뒀을 수도 있지만, 괜히 슬퍼졌다.
콜드플레이는 어느 순간부터 찾아 듣진 않고 있지만, 20대 초반을 함께 보낸 밴드라 애착이 간다. 수능 끝나고 집에 있으면서 콜드플레이의 1집을 참 많이도 들었다. 크리스 마틴은 내가 좋아하는 남자 체형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 아닐까. 최근 나온 앨범을 들으며 이게 밴드 음악이 맞는거야? 라는 생각을 좀 했지만, 비욘세랑 부른 노래는 좋더라. 크리스 마틴의 상쾌한 느낌의 목소리는 1집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내가 싫어하는 기네스 펠트로랑 결혼한단 소식 듣고 참 슬펐는데....
이런 생각 하다보니 벌써 성수역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핸드폰으로 퇴근길에 일기를 쓴다. 일기 쓰다보니 벌써 제물포역이다. 2월부터 급행이 제물포, 개봉 두개 역에 추가로 정차한다. 안그래도 오래 걸리고 사람 많은데... 더 느려지고 사람은 더 많아졌다.
이제 다음 정류장이 동인천이다. 휴. 오늘도 무사히 퇴근해서 다행이다.



개와 고양이

일상 2016. 2. 4. 18:32

1. 개
얼마전에 신도림역에서 맹인 안내견을 봤다. 큰 골든 리트리버 였다. 그 개는 굉장히 의젓했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행하는 모습에서 숭고함 까지 느껴져 울컥했다.
애완견 과는 다르게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눈에는 피곤함이 서려 슬퍼 보였다.
하루종일 그 슬픈 눈이 나를 쫒아다니는 느낌이었다.
맹인 안내견이나 수색견들은 개로서 본능을 억제하는 훈련을 받아서 다른 개들 보다 평균 수명도 짧다는 걸 어디서 봤다.
난 실내에서 개를 키우는 건 질색이고, 평소 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개는 때론 사람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하고 인류에 꼭 필요한 동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보고 하루종일 맹인 안내를 시키면 아마 반나절도 안돼 포기하고 말 것 이다.
한국에는 개와 관련된 욕이 많지만, 실제 개만도 못한 인간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2. 고양이
고양이 척추의 움직임은 언제나 유려하다.
고양이들은 움직일 때나 멈춰 있을 때나 그 몸이 만들어 내는 선이 참 아름답다. 고개를 갸우뚱 하는 것 조차 미적으로 가장 알맞은 각도 만큼 움직이는 느낌이다.
우리집 앞 곡물상가 제일 첫번째 집에 살던 고양이를 거의 5년 넘게 봤는데, 털 색이 은색이고 얼굴도 어찌나 예쁜지 운 좋게 그 고양이를 길에서 만나면 기분이 좋았다.
한 2년 전에는 자기를 꼭 닮은 새끼 몇마리를 낳았는데, 주인이 다른 집에 다 줘버린건지 한 2주 뒤엔 새끼 고양이가 한마리도 남지 않았고 나까지 슬펐다.
그런데 몇 달동안 그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살면서 본 고양이 중 제일 예쁜 고양이였던 그 은색 고양이가 아무래도 죽은 모양이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도 아니고 이름도 모르는데 서운하다. 이제 영원히 못보게 되는거니, 우연히 만나 기분 좋을 일도 없겠지.


겨울

단문 2016. 1. 18. 18:30

오늘은 파란 하늘에 해가 밝게 빛나고 엄청나게 추운, 전형적인 한국의 겨울 이었다.
퇴근길 전철 안에서 창밖을 보며 미세하게 낮이 길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3일전까지만 해도 퇴근시간 하늘은 깜깜하기만 했는데 오늘은 하늘이 검붉다. 찬 겨울 저녁에 태양이 간신히 남겨놓은 석양을 보며 월요일을 무사히 보낸 것에 감사드린다.
바쁜 주가 될 것이고, 추울 것이다.
새해부터 즐거운 생각을 하고, 무력함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억지로라도 노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난 급한 업무를 끝내는 것에 급급하고, 내 미래는 아직도 어둡기만 하다.
거짓말같이 나아질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은지 올해로 몇 년 째인지 헤아릴 수 없다.
아직까지는 생명이 붙어있으니, 내일도 내일모레도 바람을 뚫고 출근하여 노동을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할 것이다.
부디 아주 조금이라도 어제보다 나아졌길 바라지만, 슬프게도 난 어제보다 그저 더 늙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