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동안 날은 덥고 할 일은 없어서 극장과 집에서 영화를 엄청 봤더랬다. 토요일 일요일 한 편씩. 아무것도 안하고 영화만 본 거 같아서 민망하지만 어쨌든 리뷰 쓴다.



  좋아하는 소설을 영화화 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보고, 역시 책이 낫다고 거의 매번 영화에 실망하지만, 그래도 괜히 궁금해서 본다. 실망할 때 하더라도 보고 실망하고 싶어서.

  아주 아주 평이한 연출이었다. 소설은 전혀 그런 분위기 안나는데 영화는 뭔가 교훈을 주려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고. 소설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토니의 딸이 태교하고 출산하는 등의 이야기는 왜 넣은건지 당최 모르겠다. 태교와 출산을 돕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소설보다는 토니가 덜 혐오스럽게 보이긴 한다. 흠. 이게 목적인가???

  소설에서는 베로니카가 158cm 의 아담한 키로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170cm 넘는 키에 어마어마하게 몸매 좋은 여자가 베로니카로 나온다. 내가 이걸 왜 기억하냐면 내 키가 158cm 기 때문에, (자랑은 아님)  그 부분 읽으면서 영국에도 160cm 안되는 여자가 흔한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 아마 흔하지 않으니 굳이 줄리언 반스가 158cm 라고 썼겠지만. (저번 여름에 쟀을 때 158.7 정도 나왔는데, 이건 키가 컸다기 보단 일자목이 되서 그런듯 ㅋㅋㅋ)

  런던 여행 갔을 때 가장 좋았던 순간 중 하나가 테이트 모던 앞에 있는 밀레니엄 브릿지 걸었던 시간인데, 노인이 된 토니가 베로니카랑 재회하는 장소가 바로 그 다리였다. 화면으로 세인트 폴 대성당이랑 테이트 모던 미술관 보니 여행 갔다온 보람 느끼고 또 가고 싶고 그랬다. 하지만 영국이나 아일랜드는 다신 못갈 것 같긴 하다. 물가가 비싸도 너무 비싸서...

  소설보면 토니가 베로니카가 나랑 사귄지 꽤 됐는데도 같이 안 자준다. 이 나쁜년..  뭐 이런 말은 안나오는데 결국 토니는 그로 인해 자꾸 상처받고 나중에 베로니카가 몸을 허락한 후 아주 보란 듯 베로니카를 차버린다. 소설과 영화에서 토니는 나는 헤어지고 나서야 베로니카와 잤다고 하지만, 아니야 앞뒤 맥락 따져보면 토니는 드디어 베로니카랑 자고 아주 미련없이 차버린 꼴이거든. 뭐... 잠자리 문제 외에도 나 혼자만 베로니카에 목맨 기분 들고 그러니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베로니카와 헤어졌겠지만. (또 마침 펍에서 만난 다른 여성도 있었고) 토니가 한 짓이 비열하긴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 토니라는 인물에 정이 가는 건 아니고.... 나이 먹고 베로니카 만나서도 어떻게 한 번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게 애처롭기도 하고. 결국 남자란 끝내 마음 안준 여자한테 집착할 수 밖에 없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뭐 그랬다.

  주연 배우들이 영국에서도 주목받는 신예들로 다들 풋풋한데, 난 애드리언 핀이 너무 몸이 건장한 청년이라 놀라버렸다. 내가 상상한 애드리언의 이미지는 그게 아니었는데.... 소설에서 키가 크다고는 나오지만 이미지 상 그리 건강해 보이면 안될 것 같았는데. 럭비 잘하게 생긴 어깨 넓고 보기좋게 살집 붙은 금발 청년이 애드리언으로 나와서 의외였다. 얼굴은 엄청 잘 생겼다. 베로니카가 첫 눈에 반할만 해. ㅋ

  이 영화에 내가 좋아하는 남자 배우가 두 명 나오는데 소설에서는 노인으로 나오는 역사 선생 조 헌트 역을 매튜 구드가 맡았다. 어우. 이름 모를 어린 청년들 보다가 갑자기 화면에 매튜 구드 나와서 너무 놀랐고 눈부신 외모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열올리며 리뷰 썼던 모리스의 제임스 윌비 아저씨가 베로니카 아빠로 나온다. 젊은 시절 윤기 촤르르 흐르던 아름다운 금발은 이제 온데 간데 없었다. 머리 숱 너무 많이 빠져서 안타까웠다. 하긴 58년 개띠시고 내년에 환갑이시니... 흑 ㅜㅜ 그래도 아저씨 젊은 시절 미모는 내가 기억하니까.

  제일 놀란 건 베로니카 엄마 사라 포드로 나온 여배우 분. (이름은 에밀리 모티머 라고 함.. 처음 보는 배우심..) 중년의 나이 임에도 어쩜 그렇게 상큼하신지? 스포일러가 되니 더 말은 못하지만 사라 포드는 중년의 여성이어도 꼭 매력적이어야만 하는 인물인데, 정말 잘된 캐스팅이었다. 빨래 걷으면서 토니한테 막 손 흔드시는데 베로니카보다 더 예쁘셨다.

  나이든 베로니카 맡은 샬롯 램플링 이 배우 역시 난 처음 보는 배우였는데 (영국에서는 무지 유명하신 분인듯) 카리스마가 대단해서 집에와서 젊은 시절 사진 찾아보고 그랬다.

  영화는 너무 올바르고 교과서적으로 찍은 느낌이라 굳이 꼬집을 것도 없지만 또 칭찬할 거리도 없었다. 그래도 난 이런 분위기 영화 워낙 좋아해서, 보고 나선 기분 좋았다.


* 사진 출저 - Daum 영화



  영어권이 아닌 나라의 영화를 얼마만에 본 건지 모르겠다. 원래 이 영화 극장에서 보고 싶었는데, 시기를 놓쳐서 집에서 봤다.

  이제까지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를 보며, 독일인들은 이런 영화들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영어권 영화에서는 독일군들이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나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워호스'에서는 독일 소년병 형제 얘기가 나온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그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독일에 갔을 때, 유태인 기념비에 적힌 글을 보고 나치 정권이 유태인과 집시 뿐 아니라 수많은 독일인도 학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에 나는 무척 놀랐다. 많은 독일인들 역시 나치 정권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나치들은 신체적으로 열등한 자국민들을 갖가지 생체실험을 하여 어마어마하게 많이 죽였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현재 독일 의학이 발달한 것도 그때 쌓은 엄청난 생체실험 데이터 때문이라고 주장하던데, 역사적 아이러니다. 그러한 잔인한 만행이 지금 의학기술 발전의 밑거름이 되다니.  

  그때 독일 고모께서 여기는 아직도 주말마다 히틀러 다큐멘터리해서 지겨워 죽겠다고 하셨다. 모든 다큐멘터리의 결론은 앞으로 다시는 히틀러 같은 선동가에게 흽쓸려 과거와 같은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유럽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독일 사람들은 전쟁 이야기만 나오면 죄인 마냥 입닫고 시무룩해진다고하니, 전쟁 후 그들이 느끼는 죄책감이나 수치심은 대단한 것 같다. 심지어 패전 후에는 국기를 공개적으로 거는 것 조차 망설이고, 독일인으로서 자랑스럽다 는 등의 민족을 들먹이는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랜드 오브 마인' 은 덴마크에서 지뢰 해체를 했던 포로 독일 소년병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소개된 영화 중 세계대전의 피해자로서 독일을 다룬 거의 유일한 영화 아닐까. 절대 독일인이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 리는 없고, 자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바탕으로 덴마크 감독이 만들었다.

  패전 후, 덴마크에서 독일 소년병들은 아무런 안전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심지어 최소한의 식량도 먹지 못하고, 그들에게 가해지는 모진 폭력과 학대를 견디며 쉬지 않고 전쟁 중 독일군이 해변에 묻어놓은 지뢰 해체를 한다.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소년병들은 힘들지만, 지뢰를 다 해체하면 독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극한의 지뢰 해체 작업에 임하지만, 결국 한명씩 비참하게 죽어간다.

  이 영화는 일단, 아름다운 해변에서 어린 애들이 엎드려서 지뢰를 해체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대단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위 포스터에서 오른편에 있는 여리게 생긴 아이가 자기 바로 옆에서 지뢰 폭발로 쌍둥이 형이 죽는 것을 본 충격으로 괴로움에 시달리다 끝내 자살을 택하는 장면이다. 저 아이는 지뢰 매설구역에 들어가 위험에 처한 덴마크 어린 여자애를 안전하게 아이 엄마에게 넘겨주고, 전우들이 제발 거기서 멈추라고 절규하는데도 계속 지뢰 구역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자살을 택한다. 하얀 모래사장에서 덤덤하게 지뢰구역으로 걸어가던 아이의 모습과 그 아이가 지뢰 폭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 자살장면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심각한 고민도 없이 감히 '죽고싶다' 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던 요즘의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주인공은 포스터의 왼쪽에 있는 아이인데, 웃을 때는 엄청 해맑은데 소년병들 사이에서 리더역할을 할 때는 카리스마도 있고, 무자비하게 자기 전우를 때리는 덴마크 군에게 그만 하라고 용기있게 말하는 장면에서는 어린 애가 벌써부터 멋있다. 또 영어를 안쓰는 백인 배우를 영화에서 보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라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유럽영화 더 보고 싶은데, 한국에는 수입이 잘 안되니 참 슬픈 노릇이다. 이 영화가 나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오른 영화인데, 누적 관객이 만2천8백명이라니, 수입을 안하는 배급사 입장이 이해가 되긴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이 영화를 보니 내가 알게 모르게 미국 사람들 입장에서 사고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우울하고 슬픈 영화를 보고 우울함을 극복한 것이 신기하다. 지뢰 폭발 신이 많이 나오지만, 많이 잔인하지는 않아 보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사진출처-Daum 영화





1. 마이 리틀 자이언트 

로알드 달, 스티븐 스필버그, 디즈니.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이 3가지의 조합이라 기대를 많이 했지만, 영화는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가 지루하다니!!!! 정말 당황스러웠다.

이 영화의 원작을 쓴 로알드 달이 손녀 소피(실제 손녀 이름이 '소피 달' 임. 원작동화 주인공 이름도 '소피') 에게 BFG 같은 착한 거인이 되어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쓴 동화일 것고, 그 부분은 감동적인 부분이나, 일단 재미가 없다.

주인공 여자애가 어마어마하게 귀엽지만 그게 유일한 이 영화의 미덕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팬으로서 너무 안타까운 심정이다.

아마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중 최악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어흑. 스필버그 감독님, 왜 그러셨어요...)



2. 프랑켄 위니

오랜만에 옛날 팀버튼 영화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긍정적 의미로) 괴상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좀처럼 웃지 않으며 언제나 다크서클 진하게 내려와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이 흑백 애니메이션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저번 포스팅에서도 썼지만, 이 세상은 나쁜 사람보다 이상한 사람을 더 못견디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을 싫어하면서도 감히 그들을 괴롭힐 생각은 못하는데, 이상한 사람들에게는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이상하고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 만으로 그들을 마음껏 조롱한다. 아마도 나쁜 사람들에게는 악(惡) 이라는 힘이 있지만, 이상한 사람들은 그마저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주제는 내가 지금 말하는 것에는 조금 벗어나 있지만, 주인공 빅터의 이웃집 소녀, 학교에서 쫓겨나는 과학 선생님, 따돌림을 당하는 학교 친구 등을 통해 특이한 사람들에 대한 팀버튼의 애정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예전 '크리스마스의 악몽' 이나 '유령신부' 그리고 이번에 '프랑켄 위니' 까지 딱봐도 팀버튼이 창조했음을 알 수 있는 캐릭터들의 동작, 눈빛, 표정, 인체 비례 등은 하나같이 묘하게 깜찍해서 좋다.

팀버튼은 감독이 되기 전에 이미 애니메이터였으니까, 앞으로도 종종 애니메이션 작품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 Daum 영화


P.S 윈도우즈 기본 어플 중에 캡처 도구로 화면을 캡처하고 바로 Ctrl+V 하면 티스토리에 그대로 붙여지는 거 오늘 처음 알았다. ㅜㅜ 이제까지 다시 그림파일 저장하고 업로드 하는 거 귀찮아서 영화평 쓸 때 글만 쓴 거였는데... (원통!)



(스포일러 많음 & 스크롤 압박 & 호들갑 경고)


  지난 주말에 영화 Maurice 를 보고,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아있다. 영화를 본 후, 가슴이 뛰어 잠을 설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영화 '모리스' 는 E.M 포스터가 죽은 뒤에야 공개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빅토리아 말기 동성애가 엄격하게 금지된 영국에서 중간 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난 '모리스 홀'은 1910년대에 캠브리지에 입학하여 비밀 토론 모임에 가입한다. 그 곳에서 한학년 선배인 '클라이브 더럼'을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영국 최상위 가문의 아들이었던 클라이브는 동성애를 부정하던 당시 사회의 규율에 굴복하고, 결국 위험한 사랑 대신 안정을 택하며 귀족 가문의 여성과 결혼을 한다. 클라이브가 결혼을 한 후에도 여전히 클라이브 곁을 맴돌며 방황하던 모리스는 뜻밖에도 클라이브 저택에서 하인으로 일하던 알렉 스카다와 다시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한다.




  아아.. 정말 이 영화는 아름다운 영화였다.


  위에 첨부한 트레일러에는 휴 그랜트 이름이 1등으로 나오고 엄청 중요한 사람인 양 나오는데, 현재 휴 그랜트가 가장 인지도 높은 스타이기 때문에 저렇게 편집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리스'는 영화 제목처럼 모리스가 완벽한 주인공이다. 그리고 포스터에서 유일하게 정면 얼굴이 나오는 중요한 인물이 마지막 사랑인 알렉인데, 트레일러에는 알렉 관련 영상이 코빼기도 나오지 않아 서운하다.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


1. 우아한 화면과 음악

  트레일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 알 수 있듯, 이 영화의 음악은 정말 서정적이다. 나는 음악과 함께 바닷가에서 연을 날리는 첫 장면부터 이 영화에 마음을 완전히 빼았겼다. 1910년대의 캠브리지와 런던, 클라이브의 저택, 그리고 당시 남성들의 멋진 복식 등 볼거리가 차고 넘친다. 특히 내가 기억에 남는 장면은 캠브리지에서 저녁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을 멀리서 잡은 캠브리지 대학 풍경인데,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의 색과 캠브리지 대학의 건물의 모습이 아름답다. 1987년도에 만든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꽤나 파격적인 카메라 촬영 장면이 많다. 폐쇄적 느낌이 나도록 하늘에서 캠브리지 전경을 보여줬던 화면도 굉장히 멋있었고, 클라이브가 결혼한 후 방황하는 모리스의 권투 스파링 장면의 촬영도 인상 깊었다.

  2시간이 넘는 영화의 모든 장면이 다 구도, 색감, 조명 등이 감독이 엄청나게 고민한 흔적이 보여,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이 즐겁고 귀가 즐거웠다. 결과적으로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는 감동에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다.


2. 해피엔딩

  이 영화를 보고 부랴부랴 원작소설 '모리스'를 읽으려고 인터넷 서점을 뒤졌는데, 2005년에 열린책들에서 한번 출판되고 현재는 절판되서 중고책 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중고서점 세군데에 주문을 넣어놨는데, 한군데는 벌써 재고 없다고 주문을 취소시켰고, 두군데는 찾는 중이라는데 제발 재고가 있어서 내 손에 왔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모리스'는 E.M 포스터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부끄럽지만, 난 이제까지 포스터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아서,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것도 이제서야 알았다. 오늘 집에 친척이 온다고 하여 인천에 새로 생긴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부랴부랴 도망쳤는데 거기에 '전망좋은 방'이 있어서 얼른 구매했다. 카페에서 '전망좋은 방' 책 뒤에 있는 작가 연보를 보니 그가 사랑했던 남자들이 결국에는 모두 여자와 결혼했더라. 내 사랑을 남 앞에서 철저하게 숨기며 내 애인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걸 일생동안 몇 번씩 지켜보는 심정은 어땠을까. 그래서 포스터는 소설 '모리스' 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택하는 결말을 쓰지 않았을까.


3. 젊고 잘생기고 멋진 배우들

  애초에 '모리스'를 보려고 마음 먹은 것도, 잘생긴 남자를 좀 보고 싶어서였다. 그렇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 나의 가장 큰 목표는 귀족미 넘치는 팽팽하고 귀엽고 어린 휴 그랜트 를 마음껏 감상하는 것 이었다. (목표는 당연히 초과 달성)

  원작 소설에서는 모리스가 흑발로 나온다는데, 제임스 아이보리는 금발의 '제임스 윌비'를 모리스 역으로 캐스팅했다. 역시 E.M 포스터의 원작을 영화화한 '전망좋은 방' 의 주인공 '조지'도 소설에서는 흑발인데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금발 배우를 캐스팅 했다. 아마도 감독이 금발 미남을 선호했던 것 같다. 뭐 나는 원작을 안봐서 금발이든 흑발이든 아무 상관 없었다.


밉상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휴 그랜트 진짜 너무 잘생김.


  처음에는 너무나 샤방하고 잘생긴 클라이브역의 휴 그랜트에 비해 모리스 역 맡은 제임스 윌비의 외모가 미적으로 한단계 아래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영화를 계속 보다보면 그런 생각 전혀 안든다. 제임스 윌비도 그 나름대로 이 영화에서 너무나도 멋지다.


금발 미남 모리스.


모리스 역 맡은 제임스 윌비 님. 188cm 의 키에 양복 입은 모습 진심 멋졌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제일 멋진 건 바로 바로 '알렉 스카다' 역을 맡은 '루퍼트 그레이브스' 다. 나는 이 배우 셜록에서 레스트레이드 경감으로 처음 봤을 때도, 와 진짜 저 정도면 세상에서 제일 멋진 50대 아저씨 중 하나 아닐까.. 라고 감탄하며 멋있다고 생각했다.


잘생긴 남자로 태어나면, 일생내내 멋진 남자로 살 수 있다는 불합리함. -드라마 셜록 속 레스트레이드 역을 맡은 50대 아저씨 루퍼트 그레이브스-


  그런데 이 영화에서 24살의 '루퍼트 그레이브스' 님 너무 남성미 넘치고 멋지셨다. 요즘 자려고 누우면 어김없이 알렉이 모리스에게 고백하는 떠올라서 스스로 이게 뭔 남사스러운 일인가 싶다. 그만큼 이 영화의 알렉 스카다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기타 생각


I. 매력없는 클라이브의 부인


클라이브 부인보다 모리스가 더 예쁨.


  위에서 말했듯, 클라이브는 모리스를 배신하고 '앤 우즈' 와 결혼을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나온 앤 우즈 역할 맡은 배우가 (내 기준으로) 너무 매력없이 못생겨서 클라이브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그래서 좀 쌤통이라 생각했다.


II. 클라이브와 알렉

  영국에 대한 책을 읽으며 정말 이해가 안갔던게, 아직도 신분제가 존재하고 심지어 각 신분 별로 영어 발음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이 그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점 이었다.

  영화를 보면 클라이브가 쓰는 고급스럽고 나긋나긋한 영어와 거친 알렉의 영어를 비교해서 들을 수 있다. 영어 발음 뿐 아니라 귀족 가문의 자제인 클라이브의 행동과 정육점 주인의 아들 알렉의 행동도 비교하여 보여주는 장면이 많은데, 이 모든 장면이 이번 사랑(알렉) 은 클라이브 때와는 다를 것임을 암시하는 장치일 것이다. 예를 들면, 클라이브는 웃을 때도 조용히 웃지만, 알렉은 입을 크게 벌리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막 호탕하게 웃어 재낀다.

  또 좀 웃겼던 장면은 크리켓 하는 장면인데, 알렉은 운동신경이 좋아서 공 오는 족족 다 받아치고, 뛰기도 엄청 잘 뛰어다니는데, 나중에 합류한 클라이브는 공도 엉거주춤하게 치고, 뜀박질도 알렉보다 훨씬 못한다. 크크크큭. 그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는 모리스를 보며 나도 혼자 흐믓했다.


III. 과거의 나와 닮은 사람

  캠브리지 시절, 클라이브는 모리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해놓고는 다 잊어달라고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하여 모리스의 애간장을 태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모리스는 클라이브의 기숙사 창문으로 몰래 기어 올라가, 클라이브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황급히 떠난다. 그 후, 모리스는 클라이브와의 관계에서 완벽한 약자가 된다. 언제나 클라이브를 기다리고, 클라이브가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하면, 가만히 있고, 클라이브가 아프면 지극정성으로 병간호해주고, 클라이브가 기분 안 좋은 것 같으면 눈치보고, 클라이브가 우리집에 놀러 오라고 하면 놀러가고.

  그런데 알렉은 거의 완벽하게 과거의 모리스 자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모리스를 사랑한다. 모리스가 잠 못 이루는 밤, 과거 자기가 그랬던 것 처럼 알렉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모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만나고 싶다고 편지를 쓰고, 보트하우스에서 잠도 안자고 이틀 내내 모리스가 와주기만을 기다리고, 자신에게 차갑게 대하는 모리스를 향해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고.

  가끔 연애를 하면서 완벽한 약자가 되면, 지금의 나처럼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엄청 많이 하게 되는데, 아마도 E.M 포스터도 그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모리스는 과거 E.M 포스터의 분신과도 다름없는 캐릭터니까.


IV. 자연스러운 옛날 배우들의 몸

  요즘 나오는 영화를 보면, 남자 배우들이 다 하나같이 복근이 있고, 등근육이 있고, 팔뚝은 근육으로 굴곡져 있다. 미디어에서도 그런 근육질의 몸을 치켜세우며 칭찬한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그런 몸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백명 중 한명이나 될까? (나는 1년 내내 한 명도 못본 거 같기도)

  모리스가 권투를 하며 옷을 갈아입는 장면과 클라이브 저택에서 일기를 쓰는 장면에서의 뒷모습을 보면, 근육 하나 없이 마른 몸이다. 알렉 역시 당당한 체구지만, 요즘 영화에 나오는 심한 근육은 없다. 하도 부자연스럽게 가꾼 요즘 배우들의 몸만 봐서 그런지, 영화 '모리스' 의 남자 배우들의 몸이 훨씬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보기 편했다. 새롭기도 했고.


V. 대영제국의 위엄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빅토리아 시대가 끝난지 얼마 안되는 시기로서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셜록'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어느 정도 일치한다. (셜록은 빅토리아 절정기가 배경이기 때문에 '셜록'이 조금 더 앞서긴 한다) '셜록'이 워낙 재밌어서 다 읽긴 읽었지만, 중간 중간 제 3 세계 사람들을 동물과 사람의 중간 정도 되는 미개한 존재로 묘사하는 게 기분이 나빠서, '대영제국' 이라는 말에 개인적으로 거부감이 있었다. 자기들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기에 이렇게 영국 이외 나라를 무시한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데 '모리스'에서 묘사된 당시 영국을 보니, 과거 영국이 세계 최고의 나라였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1910년도의 영국은 한국과 같은 지구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어마어마한 세계였다.

  그 당시에 택시를 불러 타고, 주식거래를 하고, 전화를 하고, 아침에 전보를 치면, 오후에 전보를 받았다. 그런 생활상을 보는 것 역시 영화 '모리스' 의 큰 재미 중 하나다.


VI. 결론

  영화 '캐롤' 이나, '해피투게더', 그리고 이번 '모리스' 까지, 영화가 워낙 잘 만들어지면 그 영화의 내용이 동성애든 이성애든 감동적이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니까. 이 영화도 비록 동성애가 주제긴 하지만, 전혀 거부감 없이 아름다운 영화로서 감상할 수 있다. 의외로 IPTV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 아빠는 남자끼리 좋아하는 거 보기 거북하다고 시청을 포기하심)


(스포 조금 있음)

  삼일절에 봤지만, 이제 쓴다. 왕가위 감독이 영화에 대한 감상은 극장에서 누구와 봤는지, 영화보고 뭘 했는지 까지 포함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난 요즘 들어 점점 모든 영화를 혼자 보고 있다. 뭐 어차피 영화야 중3때 부터 혼자 보는 걸 제일 좋아했으니 상관 없지만, 너무 좋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함께 말할 사람이 없는 건 좀 슬프다. 여기에 써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써놓지 않으면 흔적이 남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쓴다.

  삼일절에 혼자 인천 CGV 에 버스타고 가서 봤다. 개봉일이 한참 지나서 극장에서 못볼까봐 초조했는데 다행히 인천 CGV에 딱 좋은 시간대에 편성이 되어 있었다. 인천CGV 가 14관이나 되고, 예술 영화도 많이 해주는 편이라 좋다. 이 영화는 만약에 인천 CGV 에서 안하면 서울에서라도 보려고 했다. 근데 이제 쉬는 날 서울 가는 것도 귀찮고 싫다. 

  개봉일이 많이 지났지만, 상영관에 사람이 꽤 많았다. 혼자 온 사람도 많이 보였다. 드니 감독님 팬으로서 뿌듯했다. 이제까지 본 드니 빌뇌브 감독 영화가 워낙 강력해서 상대적으로 이 영화는 좀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대체 왜 한국 개봉하면서 제목을 조디포스터가 주인공이었던 '콘택트'의 짝퉁 마냥 '컨택트' 로 했는지 끝내 불만스럽다. 원제인 'Arrival' 이 이 영화에 더 적절한 제목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해서 정말 아무것도 안하니까. 거창한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주는 것도 아니고,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뭘 때려 부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괴상한 우주선 안에서 시간에 맞춰 등장하여 루이스와 대화를 나눌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긴장감 넘치고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아카데미에서 시각효과상을 받은 영화답게, 또 드니 빌뇌브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사운드도 좋다.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 루이스(에이미 아담스)가 자신의 미래가 다 정해져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대로 살기로 결심한 것이 참 동양적이라고 생각했다. 동양이 서양에 전복 당하고, 현재 전 세계가 서양을 중심으로 개편된 이유가, 서양의 '운명은 개척할 수 있다' 는 세계관이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자'는 다소 소극적인 동양의 세계관보다 더 진취적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예전부터 가끔 했다. 역사 공부를 자세히 해본 적은 없어서 그냥 추측일 뿐이지만.

  그런데, 헐리우드 영화에서 이런 '운명결정론' 이 나오다니? 라며 굉장히 신선하다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원작의 작가가 중국계 미국인 이었다. 아무리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지만, 역시 이런 근본적 세계관은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햅타포드어가 한자와 같이 표의어 인 점, 글자의 디자인도 약간 큰 먹물 붓으로 동그라미를 그린 것 같이 생긴 점도, 동양적 느낌이 물씬 난다.

  나이가 들수록, 너의 인생은 너의 노력에 달려있다는 주장이 참 공허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타인에게 경박하고 대책없이 격려만 하면 안될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일은 분명 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현재 주어진 이 생을 살아내는 일은 그 자체로 고귀한 것이다. 설령 그 끝에 실패와 불행이 있다 하더라도.


1. 브리짓 존스의 일기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브리짓이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다. 나이가 들고 다시 보니, 이제 마크 다아시 마저 나랑 몇 살 차이 안난다. 어렸을때는 이 영화 즐겁게 시청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 정말 별로다. (올레티비에서 공짜라서 봄)

  아무리 웃고 즐기자는 영화라고 해도 예의상 스토리에 최소한의 인과관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개봉했던 영화인데다가, 유명배우도 많이 나오는데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스토리가 엉망이었다.

  마크 다아시가 진심을 다해 브리짓에게 사랑한다 고백 할 때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너무나도 느닷없지 않은가? 뭘 했다고 갑자기 사랑한대? 푸하하하.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 만 봐도 '유진' 과 '라푼젤'은 둘이 죽을 고비도 넘기고, 모닥불 앞에서 진솔한 대화도 하고, 서로 처지가 좀 불쌍하기도 하고 기타 등등 사랑에 빠지기 위한 최소한의 상황이 주어지는데, 이 영화에서 마크 다아시의 고백은 믿기 힘들 정도로 뜬금없다.

  콜린퍼스 젊은 모습 보는 것 외 아무런 성과가 없는 영화였다. 다시 말하지만 영국 '워킹타이틀' 社 에서 만든 영화들 정말 나랑 안맞는다. 다음부터는 워킹타이틀에서 만든 영화라고 하면 안볼테다.


2. 프리즈너스

(스포일러 없음)

  어렸을 때 부터, 꽤 많은 영화를 봤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처럼 좋은 감독은 처음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만든 '블레이드 러너' 올해 10월에 개봉하는데, 내 일생 이렇게 기대되는 영화 처음이고, 드니 감독이라면 원작에 버금가는 명작이 나올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 드니님이시여~

  프리즈너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인 스릴러 영화인데,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면서 역시 엄청나게 재밌다. 시카리오 랑 이 영화랑 뭐가 더 좋은 지 뽑기 어려울 정도로 최고였다.

  스토리가 스토리이니만큼 보면서 기분이 좋지는 않으나, 역시 일류 감독 답게 영화에 필요하지 않은 잔인한 장면은 나오지 않아서 보기 불편하지는 않다.

  기독교인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고 느낀 바는, 하나님이 나에게 '기쁨' 만을 주실 것이라, 굳게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언제든지 악마의 편에 설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또 내가 믿는 것이 무조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크나큰 죄악 이라는 것. 그 자체가 죄악은 아닐지라도, 그로 인해 사람은 감당치 못할 큰 죄를 범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언제든지 나는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살아야 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이게 된다면, 성인이겠지)

  그저 미끈한 미남 배우라고 생각했던 '제이크 질렌할' 이 영화에서 가장 선에 가까운 로키 형사를 연기하는데, 연기를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 적당히 나온 뱃살 (이 영화를 위해 살을 좀 찌운 것 같다) 이 살짝 접힌 채, 차에서 쾡하고 지친 눈을 꿈벅 꿈벅 하는 장면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

  미스리틀선샤인에서 올리브 오빠로 나왔던 배우는 '데어윌비블러드' 에서도 범상치 않은 사이비 목사 역 맡더니, 이 영화에서도 만만찮은 역할을 맡았다. 이 배우가 맡은 역할 중 올리브 오빠가 가장 정상적인 역할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영화가 나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준 영화였다. 드니 빌뇌브 감독 만세~ 만세~

  드니 감독님 영화 '컨택트' 보러 극장에 가야 하는데 이번 주에도 못갔다. 이러다 영영 극장에서 못볼까봐 초조하다.


3.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 은 좋게 봤다. 하지만 '초속 5cm' 를 볼 때는, 이쯤되면 남자 주인공 '병' 아니야? 란 생각이 들었다. 30살 가깝도록 첫사랑 떠올리며 누구와도 제대로 된 인간관계 맺지 못하는 남자가 내 눈에는 전혀 로맨틱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역시 썩 좋진 않았다.

  이 영화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다음으로 일본에서 관객이 많이 들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두 영화의 급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 (물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하늘임.)

  동일본대지진 으로 인해 상처받은 일본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포부에 비하면 영화가 너무 가벼웠다. 그리고 난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같이 지극히 일본 아니메 스러운 대사에 더이상 가슴이 뛰지도 않고.

  예전에 요즘 젊은 사람들이 과거 시대에 비해 '엄마'와 사이가 특별해진 것이, 가족 외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는데 너무 서툴기 때문이라고 한 글을 보고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딱 그런 경우라. 그런데, 엄연한 성인 임에도 교복입은 남녀의 첫사랑 얘기만 확대 재생산 하는 요즘의 일본 사람들도 약간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80년대를 정점으로 점점 일본 문화가 하락세 인것도 이 이유가 크다고 생각한다. 더이상 교복입은 남녀가 나오는 일본 문화를 접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며  거의 십년만에 일본어를 들어서 반가웠고, 그 자체로 작품인 풍경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오랜만에 일본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는데, 내 통장잔고 보고 다시 마음을 접었다.


  2016년 말 부터 어제까지 본 영화의 단평


1. 화양연화

  내 학창시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왕가위' 감독이다. 다 커서 '중경삼림' 이나 '타락천사' 를 봤다면, 별 것도 아닌 이야기로 폼 잡는다고 비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 본 두 영화는 '도시' 와 외로운 어른들의 사랑에 무한한 동경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영화에서 본 홍콩이 너무 좋은 나머지, 내 책상 밑에는 홍콩 전경을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아직 한 번도 못가봤네. 올해는 혼자라도 꼭 가볼 작정이다.

  위의 두 영화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나는 의외로 왕가위 감독의 모든 영화를 보진 않았고, 심지어 이제서야 왕가위 감독 영화 중 에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화양연화' 를 보았다. 워낙 전설처럼 떠받들어지는 영화기 때문에 걱정도 많았다. 내 경우, 사람들이 대단한 작품이다 하면 기대에 비해 별로 였던 적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또 난 더이상 예민하고 작은 것에도 큰 감동을 받을 준비가 된 어린 애가 아니니까.

  영화를 보니, 내가 늙은만큼 왕가위 감독도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젊은 왕가위가 만들었던 영화에서의 상큼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감각적이고 무심한 듯 절절했다.

  난 솔직히 장만옥이 미녀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이 영화에서 장만옥은 치빠오가 정말 잘 어울리고 아름답다. 영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화면의 구도, 색감, 조명 등이 정말 멋져서 미술에 크게 감탄하며 보았다. 키스신 한번 안나오지만, 초모완(양조위)이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수리첸(장만옥)의 팔을 잡는 장면이나,  택시 안에서 둘이 손을 잡는 장면에서는 혼자 가슴이 쿵쿵뛰고 설레었다.

  듣던대로 좋아서 다행이었다.


2. 비포선라이즈

  이 영화도 이제서야 봤다. 이 영화 역시 전설같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까지 이상하게 전혀 보고 싶은 맘이 안들었다. 올레티비에서 서비스 하고 있는 VOD 의 화질이 너무 구려서 (심지어 비율도 4:3 에 맞춰진) 보는 내내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재밌게 시청했다.

  예쁘고 잘생긴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는 마흔이 되고 쉰이 되도 즐겁게 시청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난 남자와 있을 때 아무런 대화가 없으면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불편하고 도망가고 싶어지고 그런다. 그래서 조용한 상태에 둘만 있어도 평안함과 안정을 나에게 주는 남자가 있다면 영원히 사랑할 수 있으리라.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남자는 비포선라이즈에서 나오는 제시(에단호크)처럼 하루종일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도 즐겁고 지루하지 않고 통하는 사람이겠지..하고 생각했다.

  지금은 중년을 훌쩍 넘긴 에단호크와 줄리델피가 정말 귀엽다. 특히 음악감상실에서 서로 키스하고 싶어서 눈치보는 장면이 맘에 들었다.

  보이후드를 봤을때도 느꼈지만,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실제로도 정말 좋은 사람일 것 같다. 여자를 위할 줄 아는 사람임은 확실하다. 내가 본 그 의 모든 영화가 따뜻하고 밝은 느낌인데, 그 따뜻함이 억지로 보여주기 식으로 만든 따뜻함이 아니다.


3. 마스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내 인생 영화 중 '매그놀리아' 는 무조건 한자리 낄 것이고, '부기나이트', '펀치드렁크러브' 두 개다 여운이 길었고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하지만, 정말 '마스터' 이 영화는 아니었다. 

  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걸까. 보는 내내 불쾌했고, 끝까지 보느라 힘들었다. 영화를 학문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영화가 엄청 훌륭할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요 근래 본 영화 중 최악 세 손가락 안에 든다. 관객이 이런 더러운 기분을 느끼길 원해서 폴 토마스 앤더슨이 '마스터' 를 만든 것이라면, 완전히 성공한 영화. 당분간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영화는 안보기로 했다. 또 이런 영화라면 실망이 너무 클 것 같아서 두렵기 때문에..


4. 라라랜드

  드디어 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람들이 열광하는만큼 좋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세바스찬'이 피아노를 치며, 진심으로 사랑했던 '미아'와의 '만약' 을 상상하는 장면에서는 찡했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결국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고 믿는다. 다만 얼굴을 볼 수 없을 뿐. 그러니, 사랑에 빠지는 건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결국 나는 평생 그 사람을 사랑하게될테니. 하지만, 알다시피 그게 뭐 뜻대로 되진 않는다.

  감독이 나보다 더 어린데, 위플래쉬와 라라랜드 두 영화 모두,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 감독 각본도 직접 쓴다고 들었는데, 헐리우드에서 난 놈들 중에서도 정말 최고로 난 놈 중 하나 아닐까.

  라라랜드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고로 꼽는 세바스찬과 미아가 우주에서 춤추는 장면에서는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아마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을 것이다. 영화관에서 훌쩍 훌쩍 하는 소리가 꽤 들렸던 걸로 봐선 그 장면이 나한테만 감동적이었던 건 아니었나보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거하게 취해서 과거 혹은 현재의 연인을 더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마법같은 영화지만, 역시나 나는 뮤지컬 취향이 아님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나저나 다미안 차젤레 감독, 어지간히도 재즈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위플래쉬에서도 이 영화에서도 시종일관 좋은 재즈 음악은 원없이 들을 수 있다. 이쯤되면 거의 재즈 전도사 수준.


5. 추신- 영화 '만추' 이야기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영화 두편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만추) 이 모두 김태용 감독 작품 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즘 본 영화 가 '마스터' 를 제외하곤 다 멜로 영화인데, 내가 보고 싶은 멜로 영화는 '만추' 같은 여운을 줄 영화였다. 그런데, '화양연화', '비포선라이즈', '라라랜드' 세 개 다 '만추' 만큼 좋진 않았다. 영화 '만추' 는 내가 멜로영화에서 보고 싶은 모든 것을 가진 영화였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도 볼 때마다 훌륭해서 감탄해 마지않는 영화인데... 김태용 감독은 과연 탕웨이 언니가 선택할 만한 남자다. 조만간 한번 더 볼 작정이다. (이미 두 번 봄)


1. 칠드런 오브 맨

  이 영화, 라디오에서 2006년 영화 임에도 불구하고 재개봉 한다고 들었는데, 웬일인지 올레 티비에서 공짜로 볼 수 있었다. 보통 재개봉 하면 신규작으로 분류되서 처음 몇 주간은 만원 내고 봐야 하는데, 운좋게 공짜로 봤다.

  어렸을 때 내가 제일 좋아하던 동화책 세트 (전래동화, 창작동화 등을 묶어놓은 책) 에 유럽 쪽 전래동화로 '거인과 어린이' 라는 동화가 있었다. 정확한 동화 제목은 기억 안나지만, 그 동화의 삽화와 내용은 뚜렷히 기억 난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거인이 혼자 사는 집의 정원에 동네 어린이들이 매일같이 몰려와서 시끄럽게 놀았는데 어느 날 거인이 어린이들을 다 쫓아내고 다시는 정원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거인의 정원에 어린이들이 사라진 후로, 정원에는 더이상 꽃도 피지 않고 나무들도 하나둘씩 죽어간다. 심지어 바깥 세상은 다 봄인데, 거인의 정원만 눈보라가 몰아친다. 그제서야 거인은 다시 어린이들을 정원에 초대하고, 아이들과 신나게 논다. 어린이들이 다시 정원에서 놀기 시작하니 드디어 거인의 정원에도 따뜻한 봄이 찾아온다.

  이 영화를 보니 자연스럽게 그 동화가 떠올랐다. 어린이가 없는 세상이란 얼마나 끔찍할까.

  블레이드러너 못지않게 거대하고 어두침침하고 우울한 미래 세계를 완벽에 가깝게 스크린에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주는 메시지도 진지하고 철학적이었다. 특히 이 영화에 나오는 난민 문제는 현재 상황에도 너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특수효과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2006년 영화임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유명한 후반 롱테이크 신은 과연 일품이었고, 여러가지 설정을 성경에서 따온 것도 흥미로운 점 중 하나였다.

  씬시티에서 매우 학구적인 얼굴로 드와이트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하여 인상깊었던 배우 클라이브 오웬이 인류의 구세주 이면서도 구세주 답지 않은 모습으로 호연을 했다.


2. 셔터 아일랜드 (스포일러 없음)

  케이블 TV에서 해주는 영화 잘 안보는 편인데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시청하게 되었다. 원래는 안보려고 했는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길래 시청 했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중 비교적 범작으로 분류되는 '뉴욕, 뉴욕' 조차 꽤 재밌게 시청했던 나였기에, 셔터 아일랜드도 나름 재밌었다. 역시 영화 감독이 나이와 연륜이 쌓이면 보통 이상은 하는 것 같다.

  평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대해 잘생기고 연기도 곧잘 배우라는 것 외에 다른 감정이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그의 연기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퇴역군인이면서 현재는 능력있는 보안관으로 살고 있는 주인공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는 다카우 수용소에서 목격한 처참한 광경과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간혹 환상을 보고 악몽에 시달린다.

  군복무시절 테디는 다카우 수용소에서 아무렇게나 길가에 쌓여서 얼어붙은 시체더미 위에 엄마 품에 안겨 죽은 어린 여자아이를 본다. 테디는 너무 끔찍하여 보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여자애의 시체를 곁눈질로 보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려버리고 만다. 여기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끔찍함에 진저리 치는 연기가 너무 예술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린 후 다시 총을 어깨에 매고 걸어가는데, 눈을 감는 것부터, 걸음걸이, 뒷모습, 그리고 자세까지 이 모든 상황을 진심으로 경멸스러워 하는 것이 순간적으로 느껴진다. 이 장면을 보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먼 훗날 로버트 드니로나 잭니콜슨 같은 무조건 믿고 보는 배우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셔터 아일랜드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중 뛰어난 편이라 볼 수 없고, 모든 갈등과 의문이 한순간에 너무 쉽게 풀려 맥이 빠지는 감도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꽤 가치있었던 영화였다.


퇴근 길에 트위터를 보다 젊은 이자벨 위페르 사진을 봤다. 사진을 보니 보다가 중단했던 영화 피아니스트가 떠올라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말 악몽같았던 영화 피아니스트.
난 이 여자배우를 유일하게 피아니스트 에서만 봤는데, 텅빈 눈동자에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너무나도 잔인해서 도저히 끝까지 볼 수 없었다.
영화가 재밌는데도 끝까지 시청 못한 영화가 두개 있는데, 하나는 데어윌비블러드, 두번째가 피아니스트 다. 두 영화 다 주인공이 한도끝도 없이 혐오스럽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 장면은 아직도 뚜렷하게 떠오른다. 정신적 충격을 버틸 용기가 생기면 두 영화다 언젠가는 시청해야지…하고.다짐해본다.


영화 네이든 을 보고

위로 2016. 7. 14. 17:37

배철수 음악캠프에서 김세윤 평론가가 추천해서 보고 싶었던 네이든을 봤다.

주인공인 네이든이 어린시절 자폐 진단을 받으며, 의사가 이 아이는 빛과 패턴에 민감하다고 부모님께 설명하는 장면이 나와서 그런지, 영화 중 네온사인이 필요이상으로 많이 등장한다. 그거 빼고는 만족스럽게 보았다.


마틴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휴고에서 저 아이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CG 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아름다운 어린이였던 아사 버터필드가 다 큰 청년이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휴고 얼마 안된 영화 같은데... 아직 완성된 외모는 아니지만, 충분히 멋지게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폐 혹은 정신적 장애가 있지만, 특출난 능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는 외국이나 우리나라에서나 영화의 단골소재다. 젊은 톰 크루즈 오빠를 볼 수 있는 레인맨, 뷰티풀 마인드도 있었고 우리나라 영화 중에는 말아톤 이 대표적이고.

그러나 이 영화는 여타 다른 자폐를 다루는 영화들과 다르게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좋았다.

자폐를 가진 사람들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울 때, 일반인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로만 그리는 것도 어쩌면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끔 했으니까.

 
네이든은 자폐를 가졌지만, 수학에 특별한 능력을 보이며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 영국 대표 후보 16명 중 한명으로 선출된다. 영국 대표 후보들은 최종 참가자 6명을 가리기 위해 14일간 대만으로 합숙 훈련을 가게 된다.

네이든은 중국팀과 함께 합숙훈련을 하는 중에 장메이 라는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제서야 눈 앞에서 아빠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며 사랑의 아픔 또한 알게 된다.


이 영화는 네이든에 대한 성장스토리이기도 하지만, 네이든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는 근육경화증에 걸린 선생님에 대한 성장스토리이기도 하다. 촉망받는 수학 영재였지만, 근육경화증에 걸린 후 크게 상심하여 결국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험프리스는 네이든을 제자로 가르치며 과부인 네이든의 엄마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면서 먹지 않던 약도 먹고, 다시 제대로 된 삶을 살기로 한다.


사람은 절대 안변한다는 말을 믿는다. 하지만, 만약 사람이 변할 수 있다면, 그 계기는 아마도 '사랑' 뿐일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상대방이 변하지 않을 경우, 변하지 않는 상대방이 밉기도 하지만, 내 사랑이 그 사람을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 그 사랑이 끝나버리면 '역시 사람은 안 변한다.' 고 믿는다. 어쩌면 '절대 안변한다.'고 말하는 건 누구나 쉽게 납득시킬 수 있는 편한 변명이니까, 습관처럼 그리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로 인해 이 사람이 변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 사람의 단점까지 사랑하는 건 엄청 힘든 일이다. 또 내가 누굴 변화시킬 수 있을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내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앞설 때도 많다.

하지만 영화 속 장메이는 세상을 향해 닫힌 마음을 가진 네이든을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해준다. 장메이의 용기있는 사랑이 멋졌다.

하이틴로맨스지만, 다른 하이틴로맨스들처럼 선남선녀들의 쿨내나는 사랑 놀음이 아니라 좋았다. 

남자주인공이 지나치게 샤방샤방 하게 멋지지 않아 좋았고, 장메이로 나온 중국 여자 배우는 어찌나 깜찍한지, 요근래 본 소녀 중 (우리나라 걸그룹 멤버, 영화배우 통틀어) 제일 예쁜 것 같다.

서양에서 만든 영화에 등장하는 아시아 여자들은 진짜 아시아 인들은 전혀 선호하지 않는 외모일 때가 많아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이 영화에 나오는 장메이는 한중일 사람 누가 봐도 귀엽고 깜찍하고 예쁜 외모의 소유자다. 난 특히 장메이의 적당히 근육 있고 탄탄하고 날씬한 종아리와 매고 다니는 책가방의 너구리 인형이 참 맘에 들었다.


영국과 대만 두군데 모두 가본 나라라서 배경을 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영화 속에서 다시 보니 영국보다 대만이 더 그리웠다. 신기한 일이다.


P.S1.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고등학생 시절의 튜링을 연기했던 배우가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영국 대표 중 한명으로 또 등장한다. (수학영재 전문 배우인건지?) 얘도 많이 컸지만, 동그란 이마는 아직도 귀엽다.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제일 슬픈 장면이 어린 튜링이 짝사랑하는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선생님께 듣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 어린 튜링역 맡은 배우가 연기 엄청 잘해서 기억에 남았는데 또봐서 반가웠다.

P.S2. 네이든의 모델인 실제 주인공은 중국인 여자친구(장메이 역)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P.S3. 국제수학올림피아드의 최강국이 중국인 걸 이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다. 거참. 중국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