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사진
국내도서
저자 : 핼 부엘(Hal Buell) / 박우정역
출판 : 현암사 201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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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에는 소설을 보면서 감정을 소모하는 것 조차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어, 잘 안보고 있다. 소설을 읽지 않으면서 대부분 읽는 책들이 그림 혹은 사진에 설명이 있고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책들이다. 하긴 그마저도 잘 안 읽고 있지만.

  퓰리처상 사진 이라는 책은 어마어마하게 무거워서 침대에서 읽을 때 애를 좀 먹었다. 확실히 재미있었고, 읽으며 역사에 대한 나의 무지를 다시 한번 깊이 반성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큰 사진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난 상을 수상할 당시의 세계적 사건을 작은 사진과 함께 짧게 기술한 부분이 오히려 더 재밌었다. 또 나는 이 책 덕분에 어마어마하게 충격적인 사건을 처음 알게 되었다.

 

두산백과

가이아나인민사원집단자살

[Guyana-, ─ ]

요약
1978년11월 18일 남아메리카 가이아나의 정글에 위치한 사교집단인 인민사원에서 교주를 포함해 914명이 집단 자살한 사건.
언제 1978년 11월 18일
어디서 가이아나의 정글에 있는 인민사원
누가 교주 짐 존스 및 신도 914명
무엇을 집단 자살
어떻게 교주 존스가 신도들을 모아놓고 강제로 독극물을 마시게 함
혼자 목숨을 끊기 싫어서

1978년 11월 18일 남아메리카 가이아나밀림에 위치한 사교집단인 인민사원에서 이 사교집단의 창설자이자 교주인 짐 존스(Jim Jones)를 비롯해 총 914명에 달하는 신도들이 집단 자살한 사건을 말한다.

존스는 감리교 교리를 비틀어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사교집단인 인민사원을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사회개혁을 내세우며 좋은 목적으로 출발하는 듯하였다. 그러다 근거지를 가이아나밀림으로 옮겨 신앙촌을 건설한 뒤에는 제2의 예수, 진정한 사회주의자, 최후의 인도주의자 등으로 자처하며 사설 왕국의 제왕이자 군주로 군림하였다.

그의 개인 자산이 1,500만 달러에 달했고, 거의 신적인 존재로서 마음껏 권력을 휘둘렀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자 존스의 정신도 병적으로 변하였고, 갈수록 폐해가 심해졌다. 심지어 자신이 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던 차에 인권유린 여부를 조사하러 온 미국 하원의 조사단원 3명이 이들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정부의 추궁이 두렵고, 또 자신이 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한다고 믿고 있던 존스는 결국 미국 정부의 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자신 혼자만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이 죽음의 여행에 신도들을 동참시키로 결심하였다. 그는 11월 18일 모든 신도들을 신앙촌 광장에 모아놓고 오렌지주스에 독극물을 타 강제로 마시게 한 다음, 연설을 통해 '이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세상에 대한 개혁 혁명'이라고 설파하였다.

이 사건은 종교에 대한 그릇된 광신과 맹신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으로 세계인에게 경종을 울렸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이아나인민사원집단자살 [Guyana-, ─人民寺院集團自殺] (두산백과)

 

 

  바로 이 사건이다.

 

  나는 한 때 기독교인으로서, 그리고 심리학을 조금이나마 배운 사람으로서, 극단적으로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을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평생 못할 연구겠지만... 말도 안되는 종교에 깊이 빠지는 사람 중 대부분은 삶을 포기하고 싶을만큼 큰 시련을 겪은 사람들일 것이다. 라고 짐작만 한다. 

  과거 유럽에서 신교와 구교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절, 개종하면 살려준다고 회유해도 개종하지 않고 돌도 안된 어린 아이를 안고 스스로 화형대에 서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도 작년에 읽었던 미술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중세가 아닌 현대에 전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인 미국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다니, 정말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나는 극단적으로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어리석고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궁지에 몰렸을 때는 진심어린 말 한마디도 그렇게 힘이 되고 고맙다. 그들은 아마도 종교인이 교세를 확장하기 위하여 진심인양 위장하여 건낸 격려에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던질 정도로 약한 사람들일 것이다.

  인종차별이 심하던 1970년대에 교주인 짐 존스는 인종차별의 완전한 철폐를 주장했다고 한다. 때문에 많은 수의 흑인이 신도였고, 그들은 가이아나에서 기꺼이 자살을 택했다. 이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듯, 결국 약자들이 상처받는 사회일수록 종교가 기승을 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유럽의 신교, 구교 전쟁의 근본적 원인은 비정상적으로 병든 당시 사회였을 것이다.

  모든 종교가 종말을 이야기 하고 종말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세상이 내일 당장 망할 것 처럼 어둡다면 당연히 종교의 힘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나는 아무 증거도 없이 성경을 믿고, 한번도 본 적 없는 주님도 믿는 기독교인다. 분명 나는 하나님 때문에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갈 힘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으로 종교를 믿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대답에 쉽게 답하지 못하겠다. 사실 '종교' 라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이성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 믿다보면 내 삶에 적정한 수준의 신앙을 나 스스로 찾아가는 것 같다. 또 하나님 팔아먹는, 꼭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 같은 거짓 기독교인 구별하는 눈도 어느정도 생기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 종교를 혐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들을 혐오해 마지 않고.

 

  지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우리집에는 조선 말기를 살았던 증조할아버지의 자서전이 있었다. 다 한자라서 나는 못 읽었지만, 우리 증조할아버지의 친아버지가 도저히 증조할아버지를 키울 여력이 안된다며, 증조할아버지의 양아버지 될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들었다. (원래 양자로 가려던 집이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한 집안이라 입양을 철회하는 이야기도 나옴) 평범한 조선말기 전라남도 사람이었던 증조할아버지가 자서전을 남긴 이유는 종교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믿게 되고 숨어서 예배드린 이야기를 남기셨고, 결국 우리 할아버지는 침례교 목사님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집안은 아마도 대한민국에서도 기독교를 믿은 역사로만 따지면 대한민국 1% 이내일 것이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대형 교회 다니는 사람 친척 중 단 한 사람도 없다. 나는 확신한다. 유명하다는 대형 교회 목사들은 만약 이 땅에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제일 앞장서서 예수님을 못박을 사람들임을.

 

  결론은 기독교인으로서 가이아나인민사원집단자살사건 접하고 생각이 많아졌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건데, 괜히 솜씨도 없으면서 글이 길었다.

  역시 어떤 책이든 읽으면 인생에 도움이 된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
국내도서
저자 : 전원경
출판 : 시공사(시공아트) 201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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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은 지 꽤 됐지만, 게을러서 이제서야 기록한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후로 양질의 글을 읽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었다. 책 읽는 시간이 엄청 줄어서 요즘 나는 책 한권 읽으려면 엄청 긴 시간이 필요한데, 이 책은 너무 재밌어서 금방 읽었다. 다 읽고 나서 더 읽을 수 없음에 아쉬웠다.


  한 때 사람들은 왜 글에 매료되는가...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예술이 태초에 어떤 이유로 생겨났을까 생각해보면 다른 건 몰라도 글은 아마도, 인간이 가장 괴로울 때, 사람이 가장 고독할 때 생겨났을 것이다. 음악은 여러 명이 함께 할 수 있고, 춤은 기쁠 때 덩실덩실 추면서 생겨났을 것 같다. 그림이나 조각도 글처럼 혼자하는 예술이지만, 재능이 전혀 없는 사람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분야다. 하지만 글은 누구나 펜만 가지면 좋은 글이든 부끄러운 글이든 어쨌든 쓸 수는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몇 년 전 의미도 모르고 읽었던 나츠메 소세키의 '풀베게' 서문이 떠올랐다.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知)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단지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나라로 갈 수밖에 없다. 사람답지 못한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p.7


    이 책의 마지막에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전원경 선생님의 글이 나온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이익은 바로 '치유와 자유'에 있을 것이다. 삶에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슬품과 고통이 분명히 있다. 우리의 생명은 유한하고 그 유한한 삶에서 우리는 소중한 이를 잃거나 타인에 의해 고통을 받으며, 때로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벗이 주는 배신감으로 번민한다. 뛰어난 예술 작품은 바로 그러한 우리의 마음을 고요히 안아 주며 감동을 통해 슬픔에서 벗어나 삶의 기쁨으로 접근하도록 도와준다.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듯이, 만약 우리의 삶이 늘 평온하고 만족스럽기만 하다면 우리는 예술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고통스럽고 슬픈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세계를 접하게 되며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고뇌와 슬픔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예술은 우리가 우리의 제한된 현실 속에서나마 자유와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것이 우리가 예술을 늘 바라보며 더 많은 예술 작품을 향유하려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은 각 시대별 주요 미술 걸작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한다. 덤으로 각 장마다 클래식 음악 추천까지 실려있어 찾아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나같이 배경지식이 전무한 사람도 쉽게 이해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포함하여 이제까지 나온 전원경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마네' 와 '카유보트' 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마네 그림은 영국 갔을 때 꽤 봤는데, 카유보트 그림은 한 번도 못봤다. 언젠가 볼 기회가 오리라... 믿어야지.

 

  이 책에 나온 클래식 추천음악을 잠들기 전에 가끔 틀어놓곤 하는데, 왜 클래식 음악을 사람들이 그토록 사랑하는지 좀 알 것 같다.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를 반추하고, 눕기만 하면 찾아오는 우울한 생각에 몸부림 칠 때, 배경음악으로 클래식 처럼 좋은 음악이 없다. 어두운 가운데 음악을 들으면 틀림없이 눈물을 흘리곤 하지만, 내 눈물과 음악이 함께 흐르며 슬픔이 날아가는 느낌 같은 게 있다.

 

  예술은 의식주 처럼 사는데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예술이 없었다면 모든 인간은 숲속의 동물처럼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예술을 보고 읽고 느끼며, 과거 놓쳐버린 기회에 대한 아쉬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현실의 무료함을 겨우 견뎌내는 것 같다.


  이 책 3부작이라고 들었는데 왜 두번째 책이 안나오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전원경 선생님들 책 처럼 역시 좋았다. 두번째 책을 기다릴 뿐.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
국내도서
저자 : 김상근
출판 : 21세기북스(북이십일) 201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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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었다고 표현해도 될까. 아무래도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감상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현존하는 카라바조의 모든 그림을 볼 수 있는 점이 좋았고, 책 구성이 읽기 편리했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신용카드 항공 마일리지가 7만 마일이 되면 (아마도 내년쯤 가능할듯) 로마에 가기로 했다. 맘이 변할지도 모르지만, 카라바조의 그림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로마 보르게제 미술관에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특히 과일바구니를 든 소년 을 꼭 실물로 보고 싶다. 이 책에서는 그 그림을 두고, 그림 밖으로 걸어나와서 바구니를 내밀 것 처럼 생생하다고 표현했는데, 비록 프린트한 그림으로 봤지만 저자의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

'카라바조,이중성의 살인미학' 은 카라바조의 그림을 시기별로 나열하고 간단한 설명을 하며, 남아있는 자료를 근거로 카라바조의 삶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개신교 신자인 나는 이 책에 수록된 카라바조의 종교화를 보며, 내가 성경을 알아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안도했다. 아마 성경 내용을 몰랐다면, 카라바조의 그림이 조금 덜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책의 마지막 쯤에 카라바조가 어처구니 없이 죽는 장면에서는 헉 하면서 찔끔 울었다. 그만큼 가슴이 아팠다.

비록 성격이 괴팍하고 난폭하여 평생 고생스럽게 살았지만, 카라바조는 최고의 화가였다. 하지만 정말 허무하게 로마로 돌아가는 길에 죽고 만다.

중학생 때 음악 선생님께서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장면 중 모차르트가 죽은 뒤 제대로 된 관도 없이 땅에 묻히는 장면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하셨다. 나에게 신과 같이 대단한 모차르트가 그렇게 비참히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울 수 밖에 없었다고 하셨는데, 카라바조가 죽는 구절을 보며 내가 딱 그 심정이었다. 살아 있었으면 아마 멋진 그림을 더 많이 남겼을텐데 안타깝고 슬펐다.

한편으로는,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의 안목이 대단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당시 이탈리아 귀족들은 카라바조가 살인자 임에도 불구하고 극진한 대접을 하며, 어떻게든 카라바조의 그림 한장 얻으려고 그렇게 용을 썼다고 한다.

저번 오르세 미술관전에서 본 살롱전 입상 그림들은 대부분 색감이 촌스럽고 나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 그림이 그려진 당시에는 최고의 그림이라고 칭송받던 그림들 아닌가.

하지만 카라바조의 그림은 16세기에도 최고였고, 지금도 당연히 최고다.

책 속의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면 그저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정말 재밌는 책.

P.S 나는 이 책을 e-book 으로도 사고, 실물 책도 구입하여 아직까지도 시도때도 없이 심심하면 그림을 보고 설명을 읽고 있다. 



입맛이 없어서 혼자 출판사 건물 1층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안톤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 를 읽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서점에서 서서 다 읽고 정말 좋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다시 읽으니 소설의 문장이 전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흐르려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바닐라라떼를 마시는 중이다. 청승맞게.
정말... 이렇게 짧고 이렇게 아름다운 소설이 존재한다니.


  영국 여행을 준비하면서 전원경 작가의 책을 3권이나 읽었다. 아래 사진에서 밑에서 부터가 내가 읽은 순서이다.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는 전원경 작가와 그의 남편이 3년동안 영국에 살면서 직접 보고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견해와 특징을 적은 책인데, 서점에 있는 멋진 여행 사진에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은 여행 책들보다 훨씬 재밌다. 그렇고 그런 여행 에세이 책 보면서 느낀 것이, 다른 나라에 대하여 책까지 만들 정도가 되려면 본인이 여행 혹은 체류하면서 느낀 바만 적어서는 안된다는 거다. 남의 생각이나 느낌을 책으로 읽는 것이 생각보다 별로 재미가 없다. 그냥 이런 블로그의 글이라면 라면 모를까.. 여행 책에 대단한 정보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느낀 바 이외에 견해와 의견이 있어야 읽을 맛이 나는 것 같다.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는 여행기는 아니지만, 영국 여행 앞두고 읽은 여행 책 중에 제일 재밌었다.  몇시간 만에도 술술 읽힌다. 

   


  런던 미술관 산책은 읽으면서, 책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로 재밌고 유익했다. 런던 미술관에 걸린 그림 중 전원경 작가가 좋아하는 그림에 대한 간단한 정보와 그 그림을 볼 당시의 전원경 작가의 상황 등을 적은 책인데 주변인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 


  그 다음 책인 런던 숨어 있는 보석을 찾아서 덕분에 난 런던 여행 중 코톨드 미술관을 찾아갔고, 세잔의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런던에서 남들은 잘 안가는 장소를 소개해주는데, 예술비평을 하는 작가인만큼 미술과 관련된 장소가 많다. 


  예술가의 거리는 유럽 내 예술가들이 머물렀던 장소를 찾아가며, 작가가 예술가들의 삶을 소개하는 여행책인데, 전문 사진작가가 함께한 여행이 아니라서 사진이 책에 올리기 좀 민망할 정도로 아쉬운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유럽 여행책보다는 훨씬 재밌다. 그 전 책들이 대부분 화가에 대한 이야기 였다면, 예술가의 거리에는 모차르트나 베토벤, 슈베르트 같은 음악가 이야기도 많다. 


  그 다음에 있는 목요일의 그림은 읽고 있는 중인데, 매주 목요일 중앙일보에 그림에 대하여 비평을 썼던 것을 모아놓은 책인 듯 하다. 정말 글을 잘 쓰신다. 잘 쓰신다는 게 어렵게 정보를 많이 주면서 잘 쓰는 게 아니라 그림에 대하여 전혀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읽으면 재밌다고 느낄 수 있게끔 쓰신다. 한 절반정도 읽었는데 이 책 역시 줄어 드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재밌다. 책의 서문 중 


알프레드 롤 '농장 처녀 만다 라메티리의 초상'


----생략


  그러나 이 그림에는 하나의 중요한 진실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매일의 노동을 대하는 만다의 담담한 태도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기를, 그것도 고된 노동을 반복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단언컨데 '반복되는 매일의 고단한 노동'을 즐기는 사람은 이 세상에 통틀어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 대다수에게 주어진 불가피한 운명이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만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운명을 담담하게, 결코 시니컬하거나 패시미즘에 젖지 않은 채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그림이 우리에게 와닿는 이유는 바로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바래지 않은 만다의 건강함과 여전히 싱그러운 젊음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처녀 만다의 얼굴에서 나는 또 다른 여성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얼굴들을 떠올린다. 평일 아침에 지하철을 타면 늘 맞닥뜨릴 수 있는, 일터로 향하는 수많은 직장 여성들 말이다. 나 역시 오랫동안 엇비슷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사실 나는 누구보다 지독한 올빼미형 인간이어서 늘 아침 출근에 허덕였었다) 그녀들이 아침미다 느끼는 고단함과 피로함을 잘안다. 조금이라도 더 누워 있고 싶은 마음을 애써 떨쳐내고 오늘의 '밥벌이'를 위해 그녀들은 화장을 하고, 옷을 걸쳐 입고,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바쁜 걸음으로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 직장으로 향하는 만원 지하철에 올라탔을 것이다. 그녀들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정들이 감추어져있다. 


----중략


  나는 이 책을 그런 여성들, 매일의 노동을 묵묵히 감당하면서'더 나은 날'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후배들을 위해 썼다. 그 '더 나은 날'이 단순히 주말이건 아니면 지금보다 발전한 미래에 대한 기대이건 간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 즉 '희망'은 많은 순간 현재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최고의 수단이 되어주곤 했다. 그것이 비록 헛된 희망이라 해도 좋다. 희망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피로하고 무미 건조한 매일의 일상을 견뎌 나가겠는가. 


  이렇게, 지하철에서 무표정한 표정으로 아침에 일터로 향하는 여자가 바로 나인데, 바로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썼다고 적혀 있다. 

  책이 무척 예쁘다. 색도 그렇고, 그림의 인쇄 상태도 참 좋다. 글도 물론 좋고.

  

  맨 위에 있는 책인 '역사가 된 남자'는 절판이 되어 중고로 샀다. 이 책은 아래의 모든 책들보다 나온지 오래된 책으로, 전원경 작가가 영국으로 가기 전에 쓴 책이다. 프로이트, 처칠, 피카소 등 총 10명의 남자에 대한 일생과 전원경 작가의 견해를 적은 책인데, 아마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글인가 보다. 평소 프로이트를 싫어했는데 이 책을 읽고 좀 좋아졌다. 그리고 융이 나치의 지지자 였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그리고 칼 구스타프 융에게 홀딱 깼지..)


  전원경 작가의 글이 좋은 이유는 그녀가 결혼하여 자식을 둘이나 두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적 감수성을 잃지 않고 글을 쓰기 때문이다. 어차피 난 결혼을 할지 안할지도 모르지만, 가끔 내가 결혼을 한 후에, 생활에 쪼달리며 사는 내 자신을 꾸밀 여유조차 없는 흔한 아줌마가 되어 지금 처럼 책을 읽어도 감명 받지 못하고, 좋은 음악을 찾았을 때 기쁘지도 않으며, 슬픈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플까 생각한다. 

  나의 기본 정서는 우울함에 가깝기 때문에,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하루 하루 살다보면 우울함을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내가 남들보다 더 자주 슬퍼지고, 상처 받기 때문에 얻은 것도 꽤 많다고 생각한다.

  전원경 작가가 계속 감수성 예민한 글을 쓸 수 있는 건 좋은 예술 작품을 계속 접하고 있기 때문도 있을 것이고, 타고난 성격도 있겠지만, 남편 분이 그런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참 부러운 분이다. 여러모로. 또 책을 내신다면 꼭 또 사서 보겠다.   


4월을 끝내며.

일상 2013. 4. 28. 23:59

사이버대 시험기간이라 몇주동안 블로그 업데이트를 못했다.  그간 나의 행적.

1. 스팸 댓글 - 블로그에 글은 자주 안쓰지만, 회사에서도 적어도 두번이상은 내 블로그에 접속을 했다. 아는 사람 이외에는 댓글이 없는 깨끗한 블로그였던 내 블로그가 며칠 전서부터 이상한 댓글이 하루에 몇십개씩 달리고 열어놓지도 않은 방명록에도 역시 외국 사이트의 이상한 글이 하루에도 30개씩 달렸었다. 다음 고객센터에 글 남겼더니 스팸 차단 하는 방법을 한 두가지 정도 알려줬다. 그래서 그걸 다 실행했더니 이틀만에 효과 만점이군. 

2. 여행책 관련 책 구입

한동안 여행가서 묵을 호텔을 결정하지 못하여 회사에서도 몰래몰래 계속 호텔 검색을 했었다. 호텔을 결정하고 나니 이제 맘이 편해져서 일단 관련책을 읽기로 하고 책을 구입했다. 요즘 나는 한 책을 진득하게 읽지 못하고 이거 읽었다 저거 읽었다 하고 있는데 침대에서 읽다가 다시 이불 박차고 나와서 이 책 가져갔다 저 책 가져가서 좀 읽다가 잠들고 있다. 한꺼번에 너무 책을 많이 사놔서 그런가. 

이제까지 읽은 걸로는 "런던 미술관 산책" 이라는 책이 제일 재밌다. 사실 저 책을 산 이유는 이번 여행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과감하게 다 생략하기로 한 내 계획이 괜찮은 것인가 하고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책을 다 읽어보고 미술관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가야겠지. 

론리플래닛 런던은 큰 지도가 들어 있어서 가끔 그거 확인하고 갈만한 식당을 물색할 때 주로 보고 있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한게 영~ 어색하다. 전문 번역가가 번역한 게 아닌가.. 여하튼. 

스카치데이라는 책은 너무 얇고 글씨도 작은데 가격이 그에 비해 비싸다. 하지만 거의 유일한 스코틀랜드 여행에 포커스 맞춘 책이라 구입한 책이다. 그 책 보고 알게 된건데 찰스다윈이 에딘버러대학교 출신이었다. 음... 그래서 에딘버러대학교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루나파크 라는 만화를 그리고 있는 홍인혜 작가(? 어째 어색하지만 이 표현) 가 쓴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 라는 책은 술술 읽히긴 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런던이 싫어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저 작가 너무 곱게 자란 것 같기도 하고. 런던에 6개월 간 있으면서 외로웠단 얘기 밖에 없어. 어떻게 된 게.... 그런 성격이면 런던 말고 누구나에게 말걸고 쾌활하다는 이태리를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책에 런던이 좋았단 말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런던 느리게 걷기" 라는 책은 서울대 교수가 쓴 책인데 "파리 느리게 걷기" 와 시리즈인 책이다. 지금 한 3분의1정도 읽었는데 책은 분명 "런던 느리게 걷기" 인데 자꾸 파리 얘기가 나온다. (두도시를 비교하고 결론은 파리가 더 좋다.는 문장이 너무 많다)  아마 저 교수가 파리가 훨씬 좋았던 모양인데. 내가 원하는 책과는 한참 핀트가 어긋나는 책이었다. 

"내사랑 아일랜드" 는 내용을 떠나서 책 종이 재질이 번쩍거리는 재질이라 내 침대에서 스탠드 켜고 보면 눈이 부신다. 대체 왜 저런 재질로 했는가. (예전 학교 사회과부도 종이 재질) 그런 번쩍 거리는 무거운 종이 재질이면 사진이라도 선명하게 잘 인쇄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도와 사진의 질이 너무 조잡하다. 흑흑. 그리고 여행 루트가 다 차를 렌트 했을 때만 가능한 코스라 잘못샀지 싶다. 그래도 맨 첫장에 있는 더블린에 대한 내용은 나중에 유용할 것 같다. 

슬픈 아일랜드는 아직 5페이지도 안 읽었으니까. 나중에 괜찮으면 다시 포스팅 하겠다. 


3. 최고의 자유공원 


인천은 이번 주말이 벚꽃 절정기였다.  이동네 산지도 거의 10년이 되어 가는데 벚꽃이 피는 계절에 부모님과 한번도 제대로 구경을 못해서 밤늦게 자유공원에 갔었다. 나무가 어찌나 크고 예쁜지 황홀했다. 내가 여러군데 다녀보진 않았지만, 진짜 벚나무 자유공원처럼 예쁜 곳은 못봤다. 크고 탐스럽고... 다시 한번 자유공원이 좋아졌다. 나이 좀 들면 자유공원 밑에 있는 일본식 주택 많은 신개항로 부근에 좀 고급 주택 같은데서 사는 게 작은 소원이 되었다. 회사만 집이랑 가까우면 퇴근해서도 매일 매일 가고 싶은데.... 겨울에 가고 얼마만에 갔던 자유공원이었는지. 

4. 회사 - 자꾸 내가 싫어하는, 내 전체 업무 중 가장 하찮다고 생각했던 일이 나의 메인 업무가 되어가고 있어서 차장님께 지금 회사에서 자꾸 나한테 그 일 시키는 게 싫다고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진 않았지만 의도는 이거였다) 말씀드렸다. 이번에는 차장님께 투정 부리고 너무 죄송했다. 예전 회사에서는 투정이고 뭐고 시키면 다 했으면서.... 내가 왜 차장님께 그랬을까 싶었다. 여하튼 그래도 우울한 건 우울한거야.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해야지 별 수 없을 것 같다. 

저저번주 부터 회사 사람들과 점심 먹기가 싫어져서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장님이 자꾸 여러 사람 앞에서 결혼하라고 구박하는 게 듣기 싫어서. 한 두번은 웃으면서 들었지만, 정말 일주일 주5일 근무하는데 매일 매일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지금 회사의 단점이 회사가 워낙 작다보니 가족적이라는 미명아래 직원 개개인의 사생활에 정신병자스러울 정도로 관심이 많다. 관심꺼줘 제발.... 내가 누굴 만나든 그래봤자 지금 회사 사람들은 나를 안지 1년도 안된 사람들인데 왠 오지랍들인가 싶다. 

뭐 내 사생활 간섭도 그렇고 회사에서 식당이 너무 멀어서 무조건 차를 타고 나가서 밥을 먹고 그러다보니 들어오면 이미 내 피같은 점심시간이 끝나 있어서 피곤하기도 하고... 유일한 내 오아시스 같은 점심시간이 뺏기는 기분이 들어서 점심 싸오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가 좀 귀찮으시겠지만, 난 아주 좋다. 단 한곡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가끔 공부도 하고 눈치 안보고 여행 사이트도 보고. 어차피 차 끌고 다니니 도시락 들고 다니는 것도 안 귀찮고. 

5. 나의 기아타이거즈 - 올시즌은 기형적인 프로야구다. 아니 프로야구의 최고 장점이 매일 매일 한다는 건데 지금 홀수 구단 체제라 주기적으로 한팀이 3일 내내 경기를 안하고 쉬고 있다. 기아 타이거즈가 3일 내내 쉬는 주간이면 나는 너무 슬프다. 흑. 

지금 까지는 기아타이거즈가 엄청 잘 나가고 있어서 야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제 윤석민 돌아오고 김주찬까지 돌아오면 완벽하다!!  근데 대체 언제오니. 


 

11월말 12월 초까지 차 수리비만 80만원 가량이 나왔다.(사고 안나고 그냥 점검 받은건데...) 제너레이터라고 하는 걸 갈고, 배터리도 갈고, 뭐 크고 작은 것들도 다 갈았다. 원래 우리집 차가 SUV 라 다른차보다 시끄러운 줄 알았는데, 수리를 마친 뒤로는 별로 시끄럽지도 않고 속도도 그 전보다 훨씬 잘 난다. 난 이제 이만하면 출퇴근길은 마스터구나 하는 생각 많이 하는데 주말에 교회갈 때 동생 차 태우고 운전하면 동생은 맨날 나보고 운전 너무 못한다고 타박이다. 뭐 운전이 사고 안내는 게 중요한거지 동생 말처럼 막 민첩하게 빠르게 하는 게 능사는 아닌 거 아닌가? 여하튼 요즘에는 사고 위험 없이 운전하는 건 하루 하루 충실히 하고 있으니까. 하도 구박을 하니까 동생이랑 차를 같이 타고 싶지가 않다. 뭐 맨날 못한다고 타박이야. 아무도 나한테 빵빵대지도 않는구만. 나중에 여자친구나 부인이 운전 가르쳐 달라고 하면 어쩌러고 저러는지 원.  운전을 하다보니 날씨에 민감해 지는데 겨울이 접어들면서 금요일 마다 눈 예보가 있다. 그래서 금요일마다 차 안끌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는데 심각하게 김포공항에서 인천까지 택시탈까 고민을 했었다. 아 진짜 눈 왜이렇게 싫으니 모르겠다. 저번에는 눈온다고 좋아하는 친구한테 한번 버럭할 뻔 했다. 아... 이런말을 하는 와중에 또 눈이 오네. 화이트 크리스마스.

드디어 썩은 갤럭시S 와 이별을 했다. 아이폰5가 나오자마자 바꿨다. 12월 7일이 출시일 이었는데 금요일은 퇴근이 늦어서 못가고 토요일에 핸드폰 받고 12월 10일에 바로 개통. 내 예전 갤럭시S 가 워낙 썩었기 때문에 이번 아이폰을 받으니 좋긴 좋았다. 처음에는 버튼이 너무 작아서 고생 좀 했다. 난 남들보다 손 엄청 작은 편인데도 문자 치기가 너무 힘들었다. 지금은 완벽 적응해서 잘 치고 있는데 처음에는 그게 좀 힘들었고, 지금까지도 아이튠스는 그지 같다. 벨소리 하나 바꾸려고 해도 컴퓨터의 아이튠스를 이용해야 하다니.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핸드폰 자체를 메모리로 인식해서 MP3 파일 넣고 빼는 것도 안되는 것 같고.... 쿼티 치기 힘든 거랑 아이튠스가 짜증나긴 하지만 그 이외 것들은 예전 핸드폰과 비교하면 엄청 좋다. 원래 쓰던 갤럭시S는 초기화 하고 32GB 메모리 사서 낀 다음에 mp3 Player 로 이용 중이다. 내 방에서 스피커 연결해서 라디오로도 듣고. 스마트폰이 두개니 편하긴 편하더군. 아이튠스로 음악 넣어 들을 일은 앞으로 별로 없을 것 같다. 난 아무리 스마트폰이 좋다고 해도 음악 듣는 건 플레이어 따로 있는 게 좋더라.

중3 끝날 때 부모님이 사주셨던 오디오가 고장난 줄 알고 썩혀 두고 있다가 요즘 다시 연결했다. 고장 난 게 아니라 CD 넣는 접시(?)와 오디오의 틈새에 CD 가 한장 껴 있어서 CD 를 못 읽었던 거였고, 내 작은 손을 이용해 틈새로 손을 밀어넣어 문제의 CD 를 꺼냈더니 여전히 잘 돌아간다. 가지고 있던 CD가 문제인 건지, 오디오의 CD 읽는 렌즈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는데, 가끔 CD 가 엄청 튄다. 하지만, 그래도 MP3 파일과는 비교되지 않는 아름다운 음질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리모콘으로 누워서 음악을 켜고 끄는 것이 가능한 건 큰 메리트. 저 오디오로 학창시절의 나는 라디오도 듣고 Elliot smith 음악도 듣고 coldplay 1집도 듣고, Ryuichi sakamoto 1996 앨범도 듣고, Smashing pumpkins 음악도 들었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인천에 있던 Sharp 공식 수입창고에 가서 샀는데 아직도 수입원가 T스티커가 붙어 있다. 저 오디오의 수입원가는 51만9천원. 중3때 산 거 치곤 비싼 가격 이었다.  

오디오를 새로 설치한 기념으로 fourplay 아저씨들의 앨범을 세장 샀다. 구입한 후로 너무 안와서 주문배송 조회를 봤더니 let's touch the sky 앨범이 일시품절이라고 뜨고 물량 확보 중 이라고 써 있길래, 못 받는 줄 알았는데 저번 주 금요일에 잘 도착했다. 아래 포스팅에서도 썼듯 내가 하루 하루 책도 안 읽고 일만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책도 샀다. 대학교 때 빌려 읽었던 문학동네의 안톤 체홉 단편집도 사고 위화의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도 샀다. 그랬더니 yes24 에서 달력을 줬는데 맘에 든다. 사무실에 있는 못생긴 달력 없애고 저 달력 갖다 놔야지. 달력의 3월은 내가 19일 대선 선거날 부터 어제까지 열심히 읽어서 진도 다 따라잡은 웹툰 "미생"이 배경이다. 사람들이 미생 보고 직장인의 필독 웹툰 어쩌고 말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다음 편이 막 궁금해지는 재미가 있다. 원래 한 3년 전에는 웹툰 엄청 좋아했는데, 다시 챙겨보는 웹툰이 생겨서 반갑다.


50% 세일 책

일상 2011. 10. 14. 23:30

학교에서 천막 쳐놓고 일주일동안 50% 세일 행사를 했다. 시간이 없어서 못 보다가 점심시간에 잠깐 짬을 내서 보는데 "알랭드보통" 의 "동물원에 가기"도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반디앤루니스 같은데서 세일할 때 봤던 책보다 괜찮은 책이 꽤 많았다. 다른 책 하나도 맘에 들었는데... 
내가 마지막날에 가서 그런건지 딱 한권만 남은 책도 많았다.
맨날 지갑을 들고 다니다가 오늘만 그냥 사원카드로 교직원식당에서 먹자 하고 현금을 안가지고 나갔더니만, 그 코너에서는 카드를 안 받아준대네.
퇴근하면서 잊지 말고 사야지 결심했는데, 왠걸 까맣게 잊고 그냥 와버렸다. 젠장. 한권밖에 안남은 책도 아마 팔렸을 거고 동물원에 가기도 팔렸을거야. 내일이라도 가볼까 시험기간이라 학교에 애들 좀 있어서 아직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갑자기 필 받아서 yes24 에 내가 사려던 책 두개 다 찾아보니까 절판이잖아.
책 사기 전에 집에 있는 책이나 좀 읽어야 할텐데. 읽지도 않고.

오랜만에 블로그에 내 일상을 끄적대자면
어제는 예정일이 12일이 지난 생리를 하는데 아랫배가 뒤틀리는 줄 알았다. 평소 생리통이 뭔지 몰랐던 나는 재작년에는 어제처럼 배가 아플 때 뭔지 몰라 응급실까지 갔었다. 알고보니 그게 생리통이었어. (그 통증이 있을 당시에는 생리중이 아니었고 응급실 갔다온 날 밤에 생리 시작) 생리통인 줄 알았으면 그냥 타이레놀 먹었을텐데. 정말 응급한 환자들 사이에서 링겔 맞고 있으려니 쪽팔리기가 한이 없었지. 링겔을 맞고 한 30초 만에 모든 통증이 다 사라졌기 때문에 정말 위급한 사람들을 위해서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는데 안보내줬어 젠장. 산부인과 검사까지 하자는 걸 간신히 뿌리치고 집에 왔는데. (결국 산부인과 관련 검사를 하나 하긴 했었지만) 
어제는 밥먹고 타이레놀 먹으려다가 그때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냥 빈속에 급히 타이레놀 두알을 밀어넣었다. 난 원래 생리통 있는 여자가 아니라 그런지 이내 편안해졌다.
한달주기 33일을 용케도 항상 맞춰서 하던 생리가 12일 씩이나 늦어지니 나는 정말 불안했다. 건강 염려증걸린 정신병자같이 조기 폐경이 온 건 아닐까 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까지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 생리통은 그럭저럭 참을만 했어.

요즘에는 회사에서 능률이 없다. 솔직히 그렇게 어렵고 골까는 일을 하는게 아니라서 그냥 차분히 앉아서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하면 되는 일이 대부분인데도 그게 안되고 그냥 머릿속이 복잡하고 그렇다. 그냥 9시간동안 사무실에 앉아서 잉여롭게 보내다 오는 거 같다. 날이 추워지니까 우울하고, 내일도 내일모레도 혼자 지낼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하다. 다음주는 사이버대 중간고사도 보는데. 강의 노트를 한번은 읽어봐야하지 않을까.

이번 겨울도 왠지 엄청나게 추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번에 구두사러 백화점 가선 전혀 계획에도 없던 긴 오리털잠바를 사왔다. 그것도 아웃도어코너에 가서. 겨울에 난 그냥 동물마냥 동면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다 필요 없이 겨울만 시작되면 오리털에 어그부츠 모자 목돌이 장갑을 도저히 벗을 수가 없다. 만화 사우스파크 주인공들의 실제 버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작년에는 내기준에서 엄청난 거금인 37만원 주고 검정 롱부츠를 사놓고 단 한번도 신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츠를 신으려면 치마를 입어야 하는데 도저히 치마를 입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다리 통이 꽤 굵어져서 바지 입고는 그 부츠가 들어가지도 않아. 굴욕적이게도 매장에 그 부츠 들고가서 부츠 둘레 좀 늘려달라고 부탁까지 했는걸. 지퍼 올리는 부츠 불편해서 지퍼 없는 부츠 샀더니 그건 아무나 신는 부츠가 아니었던 것이다.  

요즘 들어 내 인연은 저기 해외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내가 매일 매일 떠날 궁리를 할 리가 없다. 인도나 태국 중동 캄보디아 터키 이런 데 남자들은 날 좀 좋아해주지 않을까. 나 그래도 생머리에 피부도 하얀 편이니까. 크크크크.

금요일 밤에 씻지도 않고 노트북 앞에서 참 잘하는 짓이다. 내일은 동인천 가서 머리 좀 다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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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음

나쓰메 소세키


스마트 폰을 금요일 밤에 사서 이거 저거 여러가지 하던 중에 교보 e북을 시험해보고자 전자 책을 구매하는데 원래 읽고 싶었던 책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마음을 구매하였다.
예전에 충무로로 출퇴근 할 때 스마트폰 샀으면 딱 좋았을 것을. 그때 무거운 책을 시원찮은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끈이 끊어진 적도 있는데, 무려 1시간 30분 동안 무거운 책 들고 왔다갔다 한 거 생각하면 참 억울하다.
책은 종이로 된 거 넘기는 맛이라곤 하지만, 이렇게 사진이 필요 없는 글로만 된 책은 e북도 괜찮은 것 같다. 읽고 느끼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친구의 강력한 추천으로 읽게 된 이 책은 비통한 마음이 들어 중간 중간 끊어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읽다가 다른 책 읽고 또 다른 책 읽다가 다시 돌아와서 읽고. 그렇게 무려 5개월에 걸쳐 끝을 보았다.
미천한 독서 경력으로 미루어 보면, 이 소설은 "문" 랑 느낌이 비슷했는데 "문" 의 주인공이 안고 사는 죄책감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주인공인 선생님의 젊은 시절은 어떻게 보면 비겁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나였다 하더라도 그와 똑같이 행동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자신의 신념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절망감과 어렵게 털어놓은 진심에 대한 묵살 난생 처음 느낀 사랑의 실패 등으로 인해 친구는 결국 자살을 택하고 그 자살로 인해 선생님은 평생을 무거운 마음으로 살 게 된다.
이렇게 쓰다보니 그래도 내 입장에선 선생님보단 그 선생님 친구가 더 불쌍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책을 다 덮었을 때에는 선생님이 너무 안쓰러웠는데.

p.s e북은 북마크가 아주 편해서 인상깊은 부분 표시하기가 좋다.
페이지는 모두 교보e북 기준.

p.29 -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 그렇지만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팔 벌려 안아 줄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었다.
p.80 - "옛날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엔 그 사람의 머리 위로 기어오르게 한단 말일세. 나는 앞으로 그런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서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다네. 나는 지금보다도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참고 견디기보다는, 외로운 지금의 나를 참고 견디고 싶어. 자유와 독립과 자기 자신만으로 가득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모두 그 희생으로 외로움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될 걸세." 나는 이런 각오를 하고 있는 선생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p.87 - 아버지의 의식에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 생기면서 그 밝은 부분이 어둠을 꿰매는 하얀 실과 같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p. 71 - 진정한 사랑이란 종교를 믿는 마음과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다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아름다워지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네. 그녀에 대해 생각하면 고상한 마음이 금방이라도 나에게로 옮겨질 듯했지. 만약 사랑이라고 하는 불가사의한 물체에 두 가지 단면이 있어 그중 높은 곳에 있는 한가지는 신성한 느낌이 작용하고, 낮은 곳에 있는 한 가지엔 성욕이란 것이 작용한다면, 나의 사랑은 정확히 높은 곳에 있는 극점을 취한거라고 생각하네. 나는 원래부터 육체를 떠난 인간을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사람이었으나 이상하게도 그녀를 보는 내 눈이나 마음에는 육체를 탐하는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네.
p.264 - 죽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내 마음은 가끔씩 외부 자극에 놀랄 때가 있다네. 하지만 내가 어느 한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힘이 어디선가 나타나 내 마음을 꽉 움켜쥐고 한치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네. 그리고 그 힘이 나에게, 너는 아무런 자격도 없는 사내라고 마치 압력을 가하듯 말하지. 그러면 나는 그 한마디에 축 늘어져 버린다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일어서려고 하면 또다시 나를 억누른다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남의 일을 방해하느냐고 호통을 치지. 그 어마어마한 힘은 그저 차갑게 웃다가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네. 그러면 나는 다시 축 늘어지고 말지.

나쓰메 소세키 - 행인

위로 2010. 10. 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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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行人)

나쓰메 소세키

문학과 지성사


나는 . 애초에 이 세상이라는 건 기쁜 일보다 슬픈일이 훨씬 더 많고 신발을 신고 바깥에 나가면 즐거운 일 보다는 괴로운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근거도 책임도 없이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강요하는 문구나 사람 사상 등을 마주대하면 "실망하면 책임질거냐" 고 따지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 반사회적 인물로 불만투성이로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실은 행복한 일은 극히 적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뿐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많으니까.  
이런 나에게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출근하면서 오늘도 힘차게 즐거운 하루가 될 거라고 강요한다면 그건 얼마나 괴로울까? 내 괴로움을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 죽어라 위로를 해줘봤자 그 사람은 더 외로워질 뿐이다.  
예전 회사를 출근 하면서 출근길에 홧김에 자살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갔던 때가 있었다. 단지 회사 자체가 괴로운 것을 떠나서 이렇게 매일 매일 아둥바둥 살면서 일시적인 즐거움으로 난 괜찮다고 자위하는 삶을 평생 살다가 늙어 죽는다고 생각을 하니 너무 우울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런 내가 행인의 "형" 을 보면서 연민이 드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물론 형이 고민하는 문제는 내가 고민하는 "먹고 사는 문제" 보다 훨씬 고차원 적이고 심각한 문제였지만 말이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이걸 아껴 읽어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로 한페이지 한페이지 줄어드는 것이 아쉬웠다.
뒷면에 옮긴이 해설 을 보면 '인간존재에 깃든 에고이즘' 이라고 적혀 있는데 사실 저건 뭘 말하는 지 잘 모르겠고, 난 소설 행인을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내 수준 답게  간단히 말하고 싶다.

가장 빨리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넘겼던 부분은 역시 형수와 책 주인공인 '나' 가 와카야마에 하룻밤 머무르는 장면이었다. (긴장감도 긴장감이고, 그 하룻밤의 형수님과 나의 대화를 보면 형수님의 성격과 분위기 등이 눈에 보일 듯 그려지기 때문에) 쓸쓸한 보조개를 가지고 있는 형수도 형의 딸도 동생도 부모도 모두 형의 구원이 되어주 질 못하는데 나쓰메 소세키가 제대로 서술해주지 않은 결혼 전날 형 앞에서 울던 하녀 '오사다' 는 형의 구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위에까지는 10/22에 쓴거고 지금부터는 11/3 에 쓴 내용임-

밑에 책에서 발췌한 부분을 적고나서  다시 덧붙이지면, 난 형도 참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여자라 그런가 더 인상깊고 애정이 갔던 인물은 형수님 이었다. (밑에 책에서 발췌한 부분도 형수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 친구와 어제 네이트 쪽지로 이야기 하다가 생긴 의문인데 이 책의 주인공인 '동생' 이 형수에 대해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동경? 존경? 연민? 분명 애정 쪽은 아닌데 말이다.
책의 주제는 맨 마지막 페이지 370쪽에 나온 내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나마 이 형에게 다행스럽고 위안이 되는 점은 자신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친구가 딱 한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일 거다.  믿을 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가끔 친구나 아직은 없는 애인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아마 이 소설 쪽 '동생' 처럼 생각기가 쉽겠지. (어떻게 끝맺을 해야할 지 모르겠음;)

P. 156
  방 안은 촛불로 인해 소용돌이 치듯 동요했다. 나도 형수도 눈살을 찌푸리고 타오르는 불꽃 끝을 응시했다. 그리고 불안한 쓸쓸함이라 형용될 법한 심정을 맛 보았다.
  조금 있다가 우리는 누웠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 나는 창문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까지 다소 잠잠하던 폭풍우가 이때는 밤이 깊어짐에 따라 거세지는지, 새까만 하늘이 새까만 대로 활동하며 한 순간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무서운 하늘에서 검은 전광이 맞부딪쳐 서로 검은 바늘 비슷한 걸 쉴 새 없이 내보내어, 이 어둠을 굉장한 소리로 유지하는 거라 상상하며 또한 이 상상 앞에 위축되었다.

P.159
  나는 이때 비로소 여자에 대해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형수는 어디를, 어떻게 떼밀어도 밀려나지 않는 여자였다.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아가면 마치 포렴처럼 흐물흐물했다. 하는 수 없이 이쪽이 물러나면 돌연 엉뚱한 곳에서 강한 힘을 보였다. 그 힘 가운데는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무서운 것도 있었다. 또는 이 정도라면 상대해줄 수 있으니 한번 시도해볼까 하다가 미처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도 있었다. 나는 그녀와 이야기하는 동안 내내 그녀로부터 농락당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농락당하는 기분이 내겐 불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P.162~P.163
  나는 형수의 뒷모습을 응시하면서 다시 그녀의 사람 됨됨이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평소에 형수의 성격을 어느 정도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고 믿었으나, 막상 정식으로 그녀의 입을 통해 진심을 듣게 되고 보니 도무지 깊은 미로에 빠진 듯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모든 여자는 남자가 관찰하려 들면 누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형수 같은 모습으로 귀착되는 게 아닐까? 경험이 부족한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또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다른 여자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형수만의 특징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쨌든 형수의 정체는 전혀 알지 못한 채, 하늘은 파랗게 개고 말았다. 나는 김빠진 맥주같은 심정으로, 앞서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줄곧 바라보았다.

P.176
  나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기차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래도 내 밑에 있는 형수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유쾌했다. 동시에 불쾌했다. 어쩐지 부드러운 구렁이에게 온몸이 휘감기는 느낌이었다.
  형은 통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누워 있었다. 그는 마치 몸이 누워 있다기보다 참으로 정신이 누워 있는 듯 여겨졌다. 그리고 이 누워 있는 정신을, 예의 흐물흐물한 구렁이가 비스듬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친친 휘감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내 상상으로 그 구렁이는 때로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했다. 그리고 느슨히 휘감았다 옥죄었다 했다. 형의 안색은 구렁이의 열기가 변할 때 마다, 또는 휘감기는 힘이 변할 때마다 달라졌다.

P.244
  밖은 바람이 어지럽게 불어댔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이 가루처럼 보잘것없는 힘을 모아 이 바람을 버티며 반짝였다. 나는 쓸쓸한 가슴 위에 양손을 얹고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차가운 이불 속으로 곧장 파고 들었다.

P.260
  긴 듯하나 짧은 겨울은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하면서도 일어나지 않는 내 앞에 찬비, 녹아드는 서릿발, 강바람....... 등의 짜여진 일정을 평범하게 반복하며 이렇게 지나갔다.

P.272
  그리고 나서 사나흘 동안 내 머리는 끊임없이 형수의 유령에 쫓겨 다녔다. 사무실 책상 앞에 서서 중요한 도면을 그릴 때조차 나는 이 화(禍)를 물리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중략)...
  어느 순간에 그녀는 인내의 화신처럼 내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인내에는 고통의 흔적조차 용납하지 않는 고상함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녀는 눈썹을 찌푸리는 대신 미소지었다. 쓰러져 우는 대신 단정히 앉았다. 마치 그렇게 앉은 자리 밑에서 자신의 발이 썩기를 기다리는 듯이. 요컨데 그녀의 인내는 인내라는 의미를 넘어 거의 그녀의 자연에 가가운 무엇이었다.

P.357
   형님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 앞에 머리 숙여 눈물을 흘릴 만큼 바른 사람입니다. 굳이 그렇게 할 만큼 용기를 지닌 사람입니다. 굳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판단할 만큼의 식견을 갖춘 사람입니다. 형님의 머리는 지나치게 명민하여 자칫하다간 자신을 내버려두고 앞서가고 싶어합니다. 마음의 여타 도구가 그의 이지(理智)와 보조를 맞춰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데에 형님의 고통이 있습니다. 인격으로 보자면 거기에 빈틈이 있습니다. 성공으로 보자면 거기에 파멸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 부조화를 형님을 위해 슬퍼하는 나는, 모든 원인을 너무나 민첩하게 움직이는 그의 이지의 죄로 돌리면서도 역시 그 이지에 대한 경의를 버릴 수 가 없습니다. 형님을 그저 까다로운 사람, 그저 고집센 사람으로만 해석한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형님에게 가까이 다가갈 기회는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형님의 고통을 덜어줄 가능성은 영원히 멀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겠지요.

P.370
  여러분들은 형님의 장래에 대해 특히 명료한 지식을 얻고 싶다고 바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예언자가 아닌 나는, 미래에 참견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구름이 하늘을 어둡게 덮었을 때, 비가 내릴 수도 있고 또한 비가 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구름이 하늘에 있는 동안, 햇볕을 보지 못하는 건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은 형님이 곁에 있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하여, 딱한 형님에게 다소 비난의 의미를 던지는 모양입니다만,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이에게 남을 행복하게 해줄 힘이 있을 리 없습니다. 구름에 가린 태양에게 어째서 따스한 빛을 주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건, 다그치는 쪽이 무리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