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생

  우여곡절이 좀 있긴 했지만, 3월 둘째 토요일에 동생의 결혼식을 잘 마쳤다. 구두에 불편한 옷 입고 정말 엄청나게 뛰어다녔다. 이제는 동서가 된 신부네 집이 남양주라서 천호동에서 식을 올렸는데, 오전 9시반까지 가서 아침 먹고, 머리하고 화장하는 것만으로 난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런데 그 날 인천-천호동 왕복 운전까지 내가 다 해서, 결혼식 끝나고 완전히 뻗었다.

  중간에 동생에게 들어온 축의금을 입금하라는 특명을 안고 남자친구랑 은행가서 어마어마한 거액을 입금했다. 축의금 받아주는 두 친척오빠가 너무 빨리 데스크를 정리해버리는 바람에, 늦게 온 몇몇 하객들은 식권을 못받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내 남자친구를 처음으로 가족과 친척들에게 공개했는데, 양복입은 남자친구 모습이 너무 멋져서 가슴이 뛰어 한동안 정신이 아득했다. 그런데 너무 바빠서 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다. 제일 친한 이종사촌 언니들이 남자친구 잘 생겼다고 칭찬해서 기분 좋았다.

 

2. 엄마

  내일 모레 PET 검사 결과가 나온다. 아주 드물게 PET 에서는 암이 발견 안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암이 아니리라 하고 기대하면 처음 암판정 받을 때처럼 너무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결과가 너무 참담하다면 도저히 감당이 안될 것 같다.


3. 회사

  회사에서 자꾸 일을 너무 많이 시키려고 한다. 난 이미 두 사람 만큼의 일을 하고 있다. 누가봐도 두 사람의 일을 하지만, 내 월급은 정말 한숨나는 수준이다. 바로 전 직장을 쫓겨나다시피 그만둬야 했고, 대학 졸업하고 첫발을 들였을 때 부터 이미 망한 경력이지만, 가끔 정말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내 연봉가지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다. 요즘 수십번 씩 때려치겠다고 말하는 상상을 한다.

  그런데 바로 전 직장에서 정말 최악의 상사 밑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그때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진 않다. 난 아무리 연봉 올려주신다고 해도 회사에서 제시하는 업무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고 말해놨는데, 그 말 한 지 벌써 3주가 지났는데 아무 말이 없다. 이것도 솔직히 말하면 자기들끼리 이미 다 결정해놓고 나한테 통보만 할 작정인 것 같다. 이기적인 인간들. 자기들은 놀고 먹으면서.


4. 급체

  저저번주에 남자친구의 친남동생과 재수씨 그리고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났다. 평소 남자친구가 집이나 부모님 얘기를 전혀 안해서 내심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건가 했는데, 막상 집에 가서 어머님께 인사를 하니 왜 이제야 나타났냐며 안아주고 어화둥둥 좋아해 주셔서 한시름 놓았다. 재수씨가 결혼하고 처음 맞는 생일이라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데 나를 초대한 자리였다. 그런데 그 분이 보령 굴단지 가서 굴먹자고 하셔서 하는 수 없이 보령까지 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굴을 전혀 좋아하지 않고,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가서 평소 내가 먹는 양의 2배를 먹었다. 결국 급체해서 차안에서 토했다. 1차로 던킨도너츠 먼치킨 담는 종이 컵에 토하고, 토하는 와중에 오빠가 겨우 찾은 허술해보이는 비닐봉지에 2차로 토하고, 나때문에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3차로 모든 음식을 다 토해버렸다.

  남자친구 부모님께 너무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지만, 차안에 토하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5. 사랑

  주말에 오빠가 결혼하자고 했다. 정식으로 청혼을 안해서 서운하냐고 말했지만, 내가 서운할 리가 있을까. 좋아서 울 뻔했다. 결혼 얘기를 꺼낼 때 너무 좋아하는 티를 안내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는 표정을 지어 자기가 무슨 한류 아이돌이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결혼하자고 말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니깐, 홧김에 말하고 후회 중은 아닌 것 같다.

  한 때는 결혼 같은 거 안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애인 없어도 외롭다는 느낌 전혀 없었는데.... 사람 일이란 정말 알 수 없나보다. 남자친구를 만날 때 마다, 매 순간 반하고 가슴이 뛴다. 어떻게 나같은 인간이 누군가를 이토록 좋아하고 원할 수 있는건지 신기할 뿐이다. 난 진정한 사랑 이런 거 불가능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평생 안들 줄 알았는데...

  지금 내 소원은 오직 하나, 매일 매일 오빠를 보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이뤄질 소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꽃피는 봄봄봄 2편

일상 2017. 5. 23. 13:02

  4월~5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일기를 미루다 보니, 이제 별로 기억나는 일이 없다. 다 별일 아니었나보다. 우선 기억나는 일들만.


 1. 절약 (이어서)

  재작년에 짤린 회사는 직원들 의식수준이 너무 수준이 낮아서 그렇지 임금은 지금보다 높았다. 당시에는 내가 이 험하고 드러운 꼴 참는 대가로 이 돈 받는다 생각도 했다. 근데 그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랬던건지,쓰기도 엄청나게 많이 썼다.

  그런데 지금은 월급이 워낙 적다 보니 조금이라도 원래 수준에서 벗어난 돈을 쓰면 한 몇개월은 혹독한 절약을 해야만 한다.

  평생 부족하게 살아왔으니 절약하는게 큰 어려움은 아닌데, 친구네 집 갔다온 뒤로 좀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 월급 얼마인지 아예 관심도 없다가 그 날 이후, 인터넷에 친구네 회사 연봉 검색해보고는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다.  동생에게 이 얘기하니 큰 회사는 다들 그 정도 받는댄다. 다시 한번 내가 모르는 세계는 어마어마 하구나 싶었다. 비겁하게 친구 연봉 몰래 검색하고 놀라고 부러워한 게 스스로 좀 속물 같아서 우울해졌다.


2. 비둘기

  여름을 앞두고 에어컨을 수리했다. 우리집 에어컨은 순전히 비둘기똥 때문에 고장났다. 실외기에 매일 같이 앉아서 똥만 싸대는 비둘기놈들 때문에 실외기 부품이 부식되어 버린 것. 심지어 그 부품 교체비가 25만원이나 되서 작년에는 수리도 못하고 그냥 덥고 더운 여름을 보냈다.

  나는 여름마다 실외기에 앉은 비둘기놈들 울음 소리에 단잠을 깼고, 베란다 문을 열고 컴퓨터를 하는 계절에는 내 컴퓨터 바로 옆에서 똥싸며 날개를 푸드덕 거리는 비둘기를 진심으로 증오했다. 하지만 이 지독한 비둘기들은 내가 아무리 부지런히 쫓아내도 10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우리집 실외기에 앉아있곤 했다. 똥냄새는 또 어찌나 심한지.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동물이 무어냐 물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비둘기' 라고 답할 것이다.

  부품교체를 하기 직전에는 비둘기 두마리가 쉴새없이 우리집 실외기에 왔고 급기야 실외기 주변에 둥지를 틀고 알낳고 부화까지 했다. 내가 너무 싫어하는 비둘기와 동거까지 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난 더 참지 못하고 실외기 수리하면서 실외기 주변에 어떻게든 비둘기가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자고 했다.

  부랴부랴 A/S 를 예약했고, 평일 엄마아빠만 집에 계실 때 실외기 부품 교체가 진행되었는데, 이미 다 큰 우리집 실외기 비둘기가 자기 둥지 주변에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데도 꼼짝도 안하더란다. 실외기 교체해야하니 빨리 날아가라고 별 짓을 다해도 그 비둘기는 멀뚱멀뚱 사람만 쳐다보고 있어, 결국 하는 수 없이 A/S기사님이 밀어 떨어뜨렸더니 그제서야 날아갔다고 한다.

  자기가 무슨 카이저 소제도 아니고, 그렇게 못 나는 척을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끝까지 실외기에 버티고 있다니. 안그래도 싫어하는 비둘기를 더 싫어하게 됐다.


3. 동생집

  동생이 이사한 뒤로, 엄마가 동생집에 한번도 가보지 못하여 성남에 갔다. 나는 안가고 싶었는데 엄마가 너도 가야한다고 하도 그래서 생리 이튿날이라 아파 죽겠는 몸을 이끌고 갔다. 결국 동생네 집 침구에 피만 잔뜩 묻혀서 이불이랑 요를 인천으로 다 들고 와야 했다. 아 정말 죽을 맛이었다. 이번달에 생리통도 유난히 심했고.

  우리 엄마는 예전에 동생 군대 갔을 때도, 당시 출근만 하면 자살충동 날 정도로 회사 생활에 지쳐있던 나를 한 달에 한번씩 죽어도 동생 부대 면회에 데려가서 미칠 노릇이었다. 면회가서도 뭐 두시간 있다오는게 아니라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9시에 부대 도착해서 저녁 5시까지 좋지도 않은 부대 면회실 딱딱하고 추운 의자에 앉아있다 왔다. 거기 한번 갔다오면 머리가 너무 아파서 타이레놀만 4알을 먹고 별 짓을 다했는데. 진짜 지금 생각해도 이건 엄마 너무 원망스럽다.

  동생은 다른 한국 남자들 대부분이 그렇듯 본인이 군생활 잘한게 인생 최고의 자랑거리인데, 나는 동생이 군대 얘기하면 너 군생활 하는 동안 엄마가 한달에 한번씩 면회와서 하루 8시간 있다 가셨단 말 꼭 하라고 덧붙인다.

  나중에 동생이 결혼하여 며느리될 사람이 우리 엄마의 끔찍한 아들 사랑을 알면 좀 무서울 것 같아서 엄마한테 제발 좀 그만 좀 하라고 해도 도저히 제어가 안되는 모양이다.

   연휴동안 찾은 동생네집이 위치 대비 월세가 엄청 싼 편이었는데, 집안 꼴을 보니 동생이 좀 불쌍하기도 했다. 바로 아래는 노래방이라 엄청 시끄럽고, 동생방은 참 덥고 축축하고 어두웠다. 솔직히 나보고 거기 살라고 하면 도저히 못살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남자라도 그렇지 집이 지저분해도 너무 지저분했다. 책상이 너무 어지러져 내 안경 올려놓을 작은 자리 조차 없었다. 정말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아무리 성별이 다르다지만, 어쩜 이렇게 남매가 다른지. 걔네집에서 1박 2일 동안,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싶은 맘을 억누르느라 힘들었다. 대체 어떻게 그러고 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4. 꽃

  올 봄에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 난 꽃을 너무 좋아한다. 우울할 때도 꽃을 볼 수 있음에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봄이 지나 벌써 여름이 되어 좀 아쉽다. 여름에도 꽃이 피긴 하지만, 봄만큼 다양하게 피진 않으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기는 늦봄과 초여름인 것 같다. 더운 게 좋진 않지만, 늦봄 그리고 여름 입구에서 여름이 아직 무지하게 많이 남아 있고, 아직 1년이 많이 남아 있고, 추운 겨울이 닥칠 날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안도를 하는지 아무도 모를 거다.  

그러니까 요즘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때이고 그래서 막 기쁜 사건이 없어도 그 자체로 좋다. 


저번주에는 일이 정말로 많아서 매일 매일 10시 넘어서 집에 왔다. 마음이 막 피폐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삶의 질은 퇴근시간이 빠를 수록 높아지는 것 같다. 

업무 조정이 되면서 나한테 좀 책임이 있는 일이 많아졌는데 걱정이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확신도 없고.

월화수목 계속 10시 쯤 퇴근하다가 금요일에는 칼퇴를 해서 예전 회사 후배를 만났다. 그 후배랑은 하도 회사에서 함께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고등학교 동창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 회사는 파티션도 없어서 정말 고등학교 짝꿍처럼 맨날 붙어서 일했는데, 회사 동료로서 맨날 붙어 있으면서 그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그 후배는 170cm 의 키에 얼굴도 예쁘고 눈도 엄청 큰데 여전히 예쁜 모습에 얘기를 들어보니 벌서 그 회사에서 5년이 되어가기 때문에 맡고있는 일도 엄청 많은 것 같았다. 

내가 그 회사에 계속 있었으면 대리 달고 걔가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고 있었을까. 싶었다. 나 있을 때는 직원이 350명이었는데 지금은 500명 이랜다. 

다른 건 안그리운데 솔직히 충무로는 좀 그립네. 퇴근 후에 서울 시립 미술관도 가고 명동도 갈 수 있었는데.


원래는 금요일에도 남아서 일해야 하는걸 무리해서  칼퇴를 한 덕에 토요일에는 눈뜨자마자 밤 11시까지 일만 했다. 회사는 가기 너무 싫어서 그냥 집에서 내 컴퓨터로 일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토요일 하루에 목표를 달성했다. 다음주도 이번주처럼 일이 바쁘면 안되는데. 오늘 교회도 안갔네. (교회가서 기도를 좀 해줘야 하는데) 

집에서 일을 하면서 중간중간 음악도 찾아 듣고 검색도 하고 했는데, 정말 사고 싶은 음반이 있는데 미국 이베이에서만 중고로 팔아서 처음으로 해외 구매를 해봤다. 대만 사람이든데 그 사람이 나한테 사줘서 고맙다고 이메일도 보내줬으니. 잘 오겠지. 


오랜만에 동생이 집에 왔다. 여름옷이 없다고 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백화점 가서 동생 옷을 골라줬다. 50만원 어치나 샀는데, 동생은 그 돈 다 갚을 수 있는건가. 대단한 놈. 한번에 50만원 어치를 사다니... 

동생네 집은 엄청 후미진 곳에 있는데 며칠전서부터 바퀴벌레가 보인다고 한다. 걔네 동네 바퀴벌레 뿐 아니라 쥐도 엄청 우글우글 할 것 같다. 나는 곤충은 안 무서워 하고 나한테 다가와도 그냥 그런데 정말 바퀴벌레 만은 너무 너무 싫다. 거의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 같다. 그 반짝이는 등도 싫고 빠른 움직임도 싫고. 그냥 혐오 그 자체다. 불쌍하다. 그런 바퀴벌레와 함께 살아야 하다니. 

동생의 회사 상사들 얘기를 들으니 좀 재밌었다. 남의 회사 얘기는 언제나 재밌다. 특히 회사 사람들 얘기 같은 거. 난 엄청 좋아한다. 


24일 받은 급여명세서에 6월 부산 지점 근무를 희망하면 말하라는 메세지가 적혀 있었다. 이 메세지가 나한테만 적힌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회사에서 나보고 부산 내려가라고 하면 진짜 관둘거다. 3월 경에 필요하면 미혼자들 중심으로 내려보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엄청 심란하다가 잊고 있었는데 또 "부산" 이라는 말을 보니 심란했다. 내가 지금 최고 싫어하는 사람 두명이 부산 확정이라는데 거길 왜가. 미쳤다고.


어제 영화를 보면서 또다시 든 생각인데 난 아직도 결혼하기가 너무 싫다. 결혼하면 완전한 생활인이 되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또 동생한데 니 누나 소개팅 좀 시켜주라고 성화셨다. 

동생이 대학 다닐 때는 누나 너무 늙었다고 그랬는데 회사에 가더니 자기네 회사에서 어리다고 생각한 선배가 딱 내 아이였다며 그 뒤로는 나보고 늙었단 소리를 안한다. 


일과 공부하고 있는 사이버대 시험 때문에 여행 관련 책을 하나도 못 읽었다. 그래놓고 어제 또 책을 샀다. 다음 주는 기아 타이거즈가 야구도 3일씩이나 안하지만, 그래도 퇴근 빨리 해서 책 좀 읽고 이제 도착할 음반들도 좀 듣고 그러고 싶다. 


나쓰메 소세키 - 행인

위로 2010. 10. 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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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行人)

나쓰메 소세키

문학과 지성사


나는 . 애초에 이 세상이라는 건 기쁜 일보다 슬픈일이 훨씬 더 많고 신발을 신고 바깥에 나가면 즐거운 일 보다는 괴로운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근거도 책임도 없이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강요하는 문구나 사람 사상 등을 마주대하면 "실망하면 책임질거냐" 고 따지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 반사회적 인물로 불만투성이로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실은 행복한 일은 극히 적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뿐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많으니까.  
이런 나에게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출근하면서 오늘도 힘차게 즐거운 하루가 될 거라고 강요한다면 그건 얼마나 괴로울까? 내 괴로움을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 죽어라 위로를 해줘봤자 그 사람은 더 외로워질 뿐이다.  
예전 회사를 출근 하면서 출근길에 홧김에 자살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갔던 때가 있었다. 단지 회사 자체가 괴로운 것을 떠나서 이렇게 매일 매일 아둥바둥 살면서 일시적인 즐거움으로 난 괜찮다고 자위하는 삶을 평생 살다가 늙어 죽는다고 생각을 하니 너무 우울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런 내가 행인의 "형" 을 보면서 연민이 드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물론 형이 고민하는 문제는 내가 고민하는 "먹고 사는 문제" 보다 훨씬 고차원 적이고 심각한 문제였지만 말이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이걸 아껴 읽어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로 한페이지 한페이지 줄어드는 것이 아쉬웠다.
뒷면에 옮긴이 해설 을 보면 '인간존재에 깃든 에고이즘' 이라고 적혀 있는데 사실 저건 뭘 말하는 지 잘 모르겠고, 난 소설 행인을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내 수준 답게  간단히 말하고 싶다.

가장 빨리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넘겼던 부분은 역시 형수와 책 주인공인 '나' 가 와카야마에 하룻밤 머무르는 장면이었다. (긴장감도 긴장감이고, 그 하룻밤의 형수님과 나의 대화를 보면 형수님의 성격과 분위기 등이 눈에 보일 듯 그려지기 때문에) 쓸쓸한 보조개를 가지고 있는 형수도 형의 딸도 동생도 부모도 모두 형의 구원이 되어주 질 못하는데 나쓰메 소세키가 제대로 서술해주지 않은 결혼 전날 형 앞에서 울던 하녀 '오사다' 는 형의 구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위에까지는 10/22에 쓴거고 지금부터는 11/3 에 쓴 내용임-

밑에 책에서 발췌한 부분을 적고나서  다시 덧붙이지면, 난 형도 참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여자라 그런가 더 인상깊고 애정이 갔던 인물은 형수님 이었다. (밑에 책에서 발췌한 부분도 형수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 친구와 어제 네이트 쪽지로 이야기 하다가 생긴 의문인데 이 책의 주인공인 '동생' 이 형수에 대해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동경? 존경? 연민? 분명 애정 쪽은 아닌데 말이다.
책의 주제는 맨 마지막 페이지 370쪽에 나온 내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나마 이 형에게 다행스럽고 위안이 되는 점은 자신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친구가 딱 한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일 거다.  믿을 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가끔 친구나 아직은 없는 애인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아마 이 소설 쪽 '동생' 처럼 생각기가 쉽겠지. (어떻게 끝맺을 해야할 지 모르겠음;)

P. 156
  방 안은 촛불로 인해 소용돌이 치듯 동요했다. 나도 형수도 눈살을 찌푸리고 타오르는 불꽃 끝을 응시했다. 그리고 불안한 쓸쓸함이라 형용될 법한 심정을 맛 보았다.
  조금 있다가 우리는 누웠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 나는 창문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까지 다소 잠잠하던 폭풍우가 이때는 밤이 깊어짐에 따라 거세지는지, 새까만 하늘이 새까만 대로 활동하며 한 순간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무서운 하늘에서 검은 전광이 맞부딪쳐 서로 검은 바늘 비슷한 걸 쉴 새 없이 내보내어, 이 어둠을 굉장한 소리로 유지하는 거라 상상하며 또한 이 상상 앞에 위축되었다.

P.159
  나는 이때 비로소 여자에 대해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형수는 어디를, 어떻게 떼밀어도 밀려나지 않는 여자였다.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아가면 마치 포렴처럼 흐물흐물했다. 하는 수 없이 이쪽이 물러나면 돌연 엉뚱한 곳에서 강한 힘을 보였다. 그 힘 가운데는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무서운 것도 있었다. 또는 이 정도라면 상대해줄 수 있으니 한번 시도해볼까 하다가 미처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도 있었다. 나는 그녀와 이야기하는 동안 내내 그녀로부터 농락당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농락당하는 기분이 내겐 불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P.162~P.163
  나는 형수의 뒷모습을 응시하면서 다시 그녀의 사람 됨됨이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평소에 형수의 성격을 어느 정도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고 믿었으나, 막상 정식으로 그녀의 입을 통해 진심을 듣게 되고 보니 도무지 깊은 미로에 빠진 듯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모든 여자는 남자가 관찰하려 들면 누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형수 같은 모습으로 귀착되는 게 아닐까? 경험이 부족한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또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다른 여자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형수만의 특징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쨌든 형수의 정체는 전혀 알지 못한 채, 하늘은 파랗게 개고 말았다. 나는 김빠진 맥주같은 심정으로, 앞서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줄곧 바라보았다.

P.176
  나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기차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래도 내 밑에 있는 형수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유쾌했다. 동시에 불쾌했다. 어쩐지 부드러운 구렁이에게 온몸이 휘감기는 느낌이었다.
  형은 통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누워 있었다. 그는 마치 몸이 누워 있다기보다 참으로 정신이 누워 있는 듯 여겨졌다. 그리고 이 누워 있는 정신을, 예의 흐물흐물한 구렁이가 비스듬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친친 휘감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내 상상으로 그 구렁이는 때로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했다. 그리고 느슨히 휘감았다 옥죄었다 했다. 형의 안색은 구렁이의 열기가 변할 때 마다, 또는 휘감기는 힘이 변할 때마다 달라졌다.

P.244
  밖은 바람이 어지럽게 불어댔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이 가루처럼 보잘것없는 힘을 모아 이 바람을 버티며 반짝였다. 나는 쓸쓸한 가슴 위에 양손을 얹고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차가운 이불 속으로 곧장 파고 들었다.

P.260
  긴 듯하나 짧은 겨울은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하면서도 일어나지 않는 내 앞에 찬비, 녹아드는 서릿발, 강바람....... 등의 짜여진 일정을 평범하게 반복하며 이렇게 지나갔다.

P.272
  그리고 나서 사나흘 동안 내 머리는 끊임없이 형수의 유령에 쫓겨 다녔다. 사무실 책상 앞에 서서 중요한 도면을 그릴 때조차 나는 이 화(禍)를 물리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중략)...
  어느 순간에 그녀는 인내의 화신처럼 내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인내에는 고통의 흔적조차 용납하지 않는 고상함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녀는 눈썹을 찌푸리는 대신 미소지었다. 쓰러져 우는 대신 단정히 앉았다. 마치 그렇게 앉은 자리 밑에서 자신의 발이 썩기를 기다리는 듯이. 요컨데 그녀의 인내는 인내라는 의미를 넘어 거의 그녀의 자연에 가가운 무엇이었다.

P.357
   형님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 앞에 머리 숙여 눈물을 흘릴 만큼 바른 사람입니다. 굳이 그렇게 할 만큼 용기를 지닌 사람입니다. 굳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판단할 만큼의 식견을 갖춘 사람입니다. 형님의 머리는 지나치게 명민하여 자칫하다간 자신을 내버려두고 앞서가고 싶어합니다. 마음의 여타 도구가 그의 이지(理智)와 보조를 맞춰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데에 형님의 고통이 있습니다. 인격으로 보자면 거기에 빈틈이 있습니다. 성공으로 보자면 거기에 파멸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 부조화를 형님을 위해 슬퍼하는 나는, 모든 원인을 너무나 민첩하게 움직이는 그의 이지의 죄로 돌리면서도 역시 그 이지에 대한 경의를 버릴 수 가 없습니다. 형님을 그저 까다로운 사람, 그저 고집센 사람으로만 해석한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형님에게 가까이 다가갈 기회는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형님의 고통을 덜어줄 가능성은 영원히 멀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겠지요.

P.370
  여러분들은 형님의 장래에 대해 특히 명료한 지식을 얻고 싶다고 바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예언자가 아닌 나는, 미래에 참견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구름이 하늘을 어둡게 덮었을 때, 비가 내릴 수도 있고 또한 비가 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구름이 하늘에 있는 동안, 햇볕을 보지 못하는 건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은 형님이 곁에 있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하여, 딱한 형님에게 다소 비난의 의미를 던지는 모양입니다만,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이에게 남을 행복하게 해줄 힘이 있을 리 없습니다. 구름에 가린 태양에게 어째서 따스한 빛을 주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건, 다그치는 쪽이 무리겠지요.

게으른 블로거.

일상 2010. 1. 12. 10:18

1월 4일에는 눈이 엄청 와서 정상적으로도 1시간 반 씩이나 걸리는 출퇴근 거리를 1호선 타고 일주일 동안 왔다갔다 했다. 블로그에 포스팅 했을 당시에는 엄청 화가 났지만, 한 수요일 쯤에는 이미 내 힘으로 어떻게 되는 부분이 아닌 걸 깨닫고 포기를 했다. 내가 화를 낸다고 해서 수도권에 엄청 쌓인 눈이 다 녹아버리는 것도 아니었고, 얼어붙는 전철문의 결함이 고쳐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놀라운 자연의 힘이여~)
수요일에는 부모님과 일생일대의 중요한 대화를 하다가 속상해서 엄청 울었다. 지금 오면 내가 너무 오바해서 생각한 면이 있긴 한데, 그냥 단 한번도 내가 하려는 일이 성공할 것이라고 용기를 주지 않는 부모님이 야속했다. 부모님도 젊었을 때 꿈도 있고, 희망도 있고, 최악의 경우보다 최상의 경우를 먼저 생각했던 시절이 있으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그렇게 최악의 경우만을 말씀하시는 부모님이 가여웠다. 내가 태어나기 전 태어난 후 최상을 생각했다가 숱하게 최악을 경험하셨을 것이고, 당연히 내가 지금 시도하려는 모든 행동은 최악을 향해 달려가는 것 처럼 보이겠지만, 세상의 이치는 어쩔 수 없다. 난 28살이다. 50살이 넘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알게 될 일을 지금 알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세상에 멋지게 살고싶지 않았던 인간은 없다. 부모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날 믿지 못하셔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기 보다는 세상을 믿지 못하셔서 그랬다고 생각하고 싶다.
1월 13일 부터 14일까지는 경북 문경까지 워크샵을 갔다. 말이 워크샵이지 가서 배드민턴, 사격, 골프, 알까기, 다트, 볼보이 등등 별의 별 운동을 시켜서 그걸 다했다. 하루종일.그리고 이틀동안. 13일 아침 7시까지 회사에 집합하라고 해서 새벽 4시반에 일어나서 용산역직통 첫차인 5시 28분차를 기다렸다. 올해 들어 최악의 추위라는 영하 15도의 새벽이었다. 너무 서둘러서 5시 10분쯤 동인천역에서 첫차를 기다리는데 지독하게 외롭고 추웠다. 아무래도 지구에 빙하기가 도래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북극 남극에는 얼음이 녹고,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벤쿠버는 이상고온이라는데 그날 인천은 필요이상으로 추웠다. 레깅스, 얇은 츄리닝바지, 조금 두꺼운 츄리닝바지까지 총 3겹을 입었는데도 추웠다. 위에는 총 5겹. 5겹이고 3겹이고 춥고 외로웠다.
동생이 말년휴가를 나왔다. 17일 복귀하여 하룻밤 자고 18일 제대라고 한다. 내동생이 군대를 갈 때도 난 직장인이었다. 지금도 직장인이다. 동생이 말하길 가만히 있다가도 "나 18일에 제대." 이 생각만 하면 좋아서 미칠 것 같다고 한다. 하루에도 자신이 드디어 제대라는 생각을 100번이상 하는 것 같다. (옆에서 보기에 그렇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기분 좋은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저번 주 금요일 내 심경의 이상징후를 느낀 나랑 가장 친한 중학교 친구는 늦었어도 잠깐 자기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주는 친구가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고, 1호선이 또 종각역에서 연착되었음에도 친구를 만났다. 그때 놀라운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입사한지 두달쯤 되었을 때 내가 친구한테 그랬더랜다. "나 이 일 적성에 안 맞아. 아닌 것 같아." 라고. 2007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난 미련하게 참았다. 내 동생은 이게 다 누나가 소신없는 삶을 살아서 그런 거라고 했고, 친구는 너무 착해서란다. 소신없고 착한척 한 걸 다른 말로 하면 바보 같아서 겠지. 난 바보다. 바보. 으하하하하하.
대학 때도 전공이 무지하게 내 성격과 안 맞는다고 대학교 1학년 때 이미 뼈져리게 깨달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과로 가봤자 졸업해도 실업자가 될 것이 뻔하다고 생각하여 꾹 참고 4년을 허비했다. 취직을 할 때도 이 일이 내 성격과 정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래도 돈을 벌자. 해서 취직을 했다.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무식하게 버티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1월 초에 하도 답답해서 썼던 인턴 서류에 붙었다. 썼는지 안 썼는지 까먹고 있었던 이력서였다. 당장 월요일에 인적성을 보러 오라는데, 머리가 나빠서 아이큐 테스트 비스므리한 문제는 절대 못푸는 나는 자신이 없다. 그런데 이 죽일놈의 오지랖 때문에 후배, 선배에게 사실대로 다 말했다. 사실 다른 데 알아보고 있다고. 내가 없으면 힘들 후배만 아니면 얏호 하고 회사를 박차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후배만 생각하면 진심으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남 생각해준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1년 넘게 "같은 적" 을 두고 하루 8시간 이상 함께 한 정이 만만치 않은가보다. 진짜 전우애 비슷한 기분. 그래도 후배는 나보다 2살이나 어리고 키도 크고 얼굴도 이쁘니까 괜찮을거야. 하면서도 못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과거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아서. 농담이 아니라 이 블로그에 맹세하는데 지금 후배 결혼하면 축의금 30만원 이상 낼거다.
워크샵 다녀와서 일하고, 금요일에는 야근하고 월요일에는 되도 않는 머리로 시험도 봐야하지만, 2주일 사이에 성인이 된 이후 가장 큰 결심을 해서 그런가 기분이 꽤 괜찮다.  


군대간 동생한테 면회 갔다온 얘기를 갑자기 하고 싶었다. 우리엄마는 필요이상으로 음식을 엄청나게 많이 싸 가는데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메뉴 개발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저번에는 심지어 새우랑 꽃게를 저기 연안부두 가서 엄청 많이 사서 삶아갔다. 내동생은 굿 초이스라고 미친듯이 새우 까먹고. (맛있긴 하더라)
언제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원래 맨날 토요일에 가다가 일요일에 한번 면회간 적 있었다. 우리 엄마는 동생이 다니는 교회는 어떻게 생겼는지 가봐야겠다고 가자고 그래서 결국 우리 가족 4명이 군대에 있는 교회에 갔다. 결국 우리만 사복입고 맨 뒤에 앉았다. 사람들이 신기한지 힐끔힐끔 쳐다보고 어휴. 진짜. 찬송가도 거기서 들으니 완전 군가야.

이제 거기 젊은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했는데 군인 애들이 아예 대놓고 엎드려서 자는거다. 내동생 말로는 교회오는 이유가 일요일에 내무반에 멀뚱멀뚱 앉아있기 싫어서 그냥 자러 오는 거랜다. 뭐 그 목적에 충실하게 거기 있는 거의 3분의 2 이상이 다 엎드려서 자는데 설교하던 목사님 옆에 있던 드럼에서 갑자기 챙! 하는 소리가 나는거다. 그래서 아니 이건 뭔소리인가. 하고 쳐다봤더니 그 목사 왈 이제부터 예배시간에 2분의 1이상이 자면 드럼을 치기로 했다고. 크크크크. 별 거 아니지만 예배보다 갑자기 드럼 치는 그 상황과 아이디어가 너무 웃겨서 혼자 킥킥 댔다.

내동생 밑으로는 이제 3명이나 들어오고 대구에서 온 애는 오자마자 일주일만에 12키로가 빠져서 얼핏보면 주진모 같이 생긴 미남이 되었다고 그러고 울산에서 온 애는 경상도에서 왔는데도 사투리 하나도 안 쓰는 애고 서울에서 온 애는 뭔가 맘에 안든댄다. 서울에서 온 애가 89년 생이랜다. 맙소사. 군인아저씨가 89년생이래. 대단하다.
국군의 날 행사 때문에 두달 넘게 연습하고 대통령 앞에서 깃발들고 미친듯이 뛰어다녔는데 휴가도 안준다고 짜증부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2008년 내에는 휴가 못나올 듯 싶다. 아.. 추운데 또 우리 엄마는 면회가자고 하겠지. 내동생네 부대 짱추워. 미안하다 동생아. 난 이기적인 누나야. 누나는 추워서 가기 싫어.

대학 때 그나마 최고 친했던 친구를 안 만난지 1년이 되간다. 보고싶긴 한데... 솔직히 말하면 이 친구 뿐 아니라 대학 때 알던 모든 사람을 안만난지 거의 6개월 이상이다. 이상하게 시간이 안나는데 주말에 보면 하는 건 잠 퍼자고 인터넷 하는 것 뿐이니..
갑자기 허하고 그래서 걔 이메일로 꽤 긴 편지를 보냈다. 답장 확인하는 걸 까먹고 있다가 일주일 지나서 확인했는데 너무 짧은 답장이 와 있었다. 별 거 아닌데 갑자기 너무 외로웠다.

주말마다 시간을 내서 매주 누구 만날지 시간표 만들어서 만나고 다녀야 모든 인간관계가 유지되는 걸까? 사교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참으로 힘들구나.

오늘 아침에 아파트 통로를 나왔는데 바닥에 눈이 쌓이고 있었다. 눈은 오는데 우산가지러 올라갈 시간이 없어서 그냥 눈 맞으며 걸어갔다. 새벽에 혼자 출근하면서 맞는 첫눈이라. 꽤 괜찮은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다시 외로워졌다. 이젠 새벽이 괴로운 계절 시작이구나.

오늘은 회사에서 하나에서 열까지 다 꼬였다. 짜증이 폭발하기 일보직전인데 그나마의 위로는 내 눈이 겉 보기에도 조금 부어 있어서 이번 토요일 행사에는 빠지게 되었다는 거. 나 이번 토요일에 안과나 가려고 했는데 하필 이런 때 대학 선배가 보잰다. 그 선배는 참~~ 특이한게 꼭 내가 동생면회에 가 있거나 다른 친구 만날 약속 잡아놓고 이러면 뭐하냐고 물어보더라. 크크큭 안만난지 거의 8개월이 넘었네. 아 근데 별로 안 땡긴다. 이제 사람 만나는 것도 어색해져버렸는지 귀찮다.


군인 동생

일상 2008. 4. 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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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첫 면회.
난 군인들한테 면회가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예전 남자친구는 공군이라 6주마다 한 번 나오는데 무슨 면회냐 싶어서 한번도 안갔다. 그리고 너무 산골이라서 혼자 면회갈 엄두도 안났고. (그래 결국은 사랑이 부족했던거야)
동생네 부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2시간이 넘는 거리지만 차를 타면 한시간 정도면 충분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별 부담은 없었다.
우리 엄마는 첫 면회라고 음식을 너무 오바해서 많이 싸서 민망할 정도였다. 동생이 아직 오바로크가 안되서 다른 사람 이름 적혀진 군복을 입고 나왔더랬다. 우리 엄마는 눈물 뚝뚝 흘리고, 동생도 눈물 뚝뚝. 하여튼 우리 엄마는 좀 극성스러운 면이 있다니까. 난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그런가 눈물은 커녕 무덤덤 했는데.
처음 면회가서는 동생이 있는 지역대 건물에 들어갔다. 70년대 지어진 시골 교육청 같은 느낌이었다. 학교로 치면 행정실 같은데 들어가서 얘기를 하는데 거기 있는 사람이 엄마 아빠를 어떻게든 안심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예리한 내 눈으로 보건데 거기서 말했던 사람 우리회사 루꼴라랑 성격이 99% 일치할 것 같아 보였다. 나중에 동생한테 물어보니 싱크로율 거의 100%. 그래 어딜가나 그런 골치 아픈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 아주 흔한 유형의 사람이기도 하고.
그 행정실서 들은 얘기 중 가장 웃긴 얘기는 동생이 여기 부대(그냥 육군보다 훈련 多)  로 오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여자관계가 깨끗해서. 라는 거다. 상담 하는데 "여자관계가 아주 깨끗하더라구요. 내가 하도 여자친구 때문에 이상한 행동 하는 애들을 많이 봐서 이번에 뽑은 애들은 다 여자친구 없는 애들로만 뽑았어요." 하는거다. 동생한테 " 이야.. 여기서는 여자친구 없는게 특장점이다?" 하고 놀렸다. 여자친구 없는 것도 서러운데 그것 때문에 특공부대오고. 어떻게 생각하면 불쌍한거지. 훈련이 많은 대신 잡일은 없다고 하니까 나름 장점이 있을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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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두번째 면회.
4월 19일은 원래는 부대에서 벚꽃축제라고 한건데, 벚꽃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서 한일은 앞에 블로그에도 썼듯이 동생 내무반 사람들 밥 먹이기. 그러다가 그 한눈에 반한 병장을 본 거고.
밥을 다 먹고 나서는 무슨 군인들이 준비한 공연를 앉아서 구경하는 거였는데, 군복입고 creep 을 부르고, 마지막엔 땡벌로 마무리 되는 신기한 공연이었다. 애들이 어찌나 땡벌을 크게 따라 불렀던지 (당신을 사랑해요 땡벌~ 땡벌!!!!)  엄마, 아빠, 나 는 면회 갔다온 며칠동안 땡벌 이 생각나서 미칠 것 같았다. 엄마 아빠한테 "아.. 나 계속 땡벌 생각나 미치겠어. " 라고 말했더니 "너도 그러냐." 고 하셨음.
공연은 운동장 천막 아래서 봤는데, 테이블엔 과일이랑 먹을 게 좀 있었다. 나는 평생 그렇게 남자들이 많은 곳에는 있어본 적이 없어서 공연을 볼 때도 정신집중해서 공연하는데만 눈을 집중하다가 테이블에 있는 거 뭐 좀 먹을까 하고 뒤 돌았다가 허걱 하고 다시 앞만 봤다. 내 뒤에 30명쯤 되는 군인들이 드글드글 하고 일순간에 걔네들 모두와 눈이 마주쳐서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원래 프로 마술사로 활동하가다 입대한 애 공연을 봤다. 근데 정말 프로로 활동한 거 맞나? 너무 어설펐다. 물론 기구가 얼마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빈약한 음향효과와 무대 때문에 더욱더 그 허술함이 부각되는 마술이었다. 거기 서서 마술하고 있는 애도 불쌍하고 보고 있는 우리까지 다 불쌍해지는 마술이랄까?
근데 그 내가 눈여겨 보고 있던 병장은 연신 내 뒤에서 큰소리로 "언빌리버블!!!" 을 외치는거다. 웃겨서 난 쿡쿡대며 웃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걔한테 관심 있어서 stereo 로 들린게 아니라 걔 목소리 자체가 원래 큰 걸지도.  아님 둘 다 거나.
공식적 행사는 그걸로 끝나고 우리는 부대 안에 있는 동산 가서 동생이랑 마지막 인사를 한답시고 다시 자리를 펴고 앉았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거기서 그냥 누워서 잠들었고, 차를 타고 오면서도 자고, 집에 와서도 샤워하고 8시도 안되서 바로 잤다.

p.s 민양하고 민양동생한테 면회 갔다온 얘기를 하는데, 동생네 부대가 아주 약간 특수부대라 애들이 다 키가 크다고 완전 지상낙원이라고 얘기했더니 민양 동생이 "나 내일부터 입대준비한다." 이래서 엄청 웃었다. (민양동생은 88년생 여자) 그리고선 진짜 진지하게 "언니. 그 여군은 공부 잘해야 가는 거 아니야?" 라고 물어보는거다. 또 다른 내 친구한테는 "나 한달내내 볼 남자 다 보고 온 거 같애." 라고 얘기했더니 다음번에 제발 나도 데려가 달라고 난리다. 아.. 내가 '젊은'남자 볼 수 있는 기회가 동생 면회 가는 거 밖에는 없다니. 나 좀 불쌍한 거 같다.

내동생이 자대 배치를 받고 우리는 4월 5일에 면회를 갔다. 특공부대여서 그런건지 그 부대가 원래 특이한 건지 모르겠지만 부모님이랑 난 내동생 내무반까지 구경가고, 부대 내 행정실에서 행정보급관, 지역대장, 심지어 대대장까지 면담을 했다. 뭐 난 옆에서 구경하는 거였지만 말이다.
아.. 동생 면회 간거에 대해서는 워낙 할말이 많아서 나중에 또 다시 쓰겠다.
근데 그 이후로 내동생이 전화해서 말하길 군대에 있는 모든 간부가 동생을 볼때마다 나랑 2지역대장 이랑 만나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본다는 거다. 2지역대장이면 중위라는데. 나 참. 군대에서 소개팅 제의가 들어올 줄이야.
우리가족은 4월에 면회 갔으니 이젠 5월달에나 다시 면회 가야지 하고 있었는데 4월 19일에 걔네 부대에서 원래 봄마다 하는 행사가 있다는거다. 우리가 이런 저런 눈치로 살펴 본 결과 그 날은  막내네 집에서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것 같고 행정보급관이 무언의 압박을 주기도 했고 해서 우린 2주만에 또 면회를 갈 수 밖에 없었다. 걔네 내무반 애들한테 먹을 거 줘야 하는 거라서 엄마도 도와줘야 하고 해서 결국 나도 또 갔다.
근데 진짜 4월 19일에 갔을 때도 그 부대 모든 간부가 다 제2지역대장 잘생겼다고 한번 만나보라고 하는게 아닌가. 동생이 이미 누나가 생각없다고 했다고 말해놓은 상태라 나도 뭐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 또 간부들과 인사를 끝마치고 동생 내무반 애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여자초과인생의 표본인 내가 아무리 군인 어린이 들이지만 남자에 둘러싸여 있으려니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말 한마디 못하고 애들 밥먹고 있는 걸 훔쳐보고 있었다.
10명도 안되는 애들이 밥 먹고 있는데 2시방향에 앉아서 밥먹는 놈을 보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다른 애들은 다 2D 로 보이는데 어떤 놈 하나만 3D  입체영상으로 보이는 느낌이랄까? 서로 눈이 마주친 것도 아닌데 난 갑가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난 결국 그 이후로 놈을 한번도 제대로 못 쳐다봤는데 그러고나니 또 그 다음부턴 다른 소리는 다 mono 인데 그 놈 목소리만 stereo 로 들리는 거다.
그 놈은 이제 제대 40일 남겨놓은 병장이라는데. 미쳤나. 어려도 한참 어린놈한테. 동생 부대 소대장이 83년생이라는데 말 다했지.
결국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외면하면서 집으로 왔고 다음날 동생이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내가 집에 가고 나서 그 병장이 나한테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며 내가 자기 스타일이었다고 말했다는거다.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무진장 좋았다. 어찌 안 좋을 수가 있나. 눈 한번 못 마주치고 말 한번 못하고 헤어졌지만 눈에 들어왔던 남자가 관심을 표명하는데. (헉 심지어 나 그 병장 이름도 몰라)
한편으로는 또 슬펐다. 그 병장이 내 나이를  동생한테 듣고 쇼크 받았다는 거다. (자기 또래인 줄 알았다나) 하긴 나도 쇼크 받았다. 86이라니! 아.. 86. 이 3살 아래라는 나이는 호감을 잃기에는 충분한 나이 차 아닌가. 적어도 나한테는. 내가 늙었음을 다시한번 절실히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4월 19일 이후로 가끔 그 병장이 생각난다. 그 병장이 좋아졌다기 보단,
처음보고 서로 괜찮게 생각했다는 그 상황 자체가 신기하고 좋다.
말로만 듣던 게 가능한 거구나. 하는 희망도 갖게 되고 또 나는 남한테 호감을 갖는 데 단 1초도 안걸리는 인간이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고 말이다.

참고로 19일에 하도 들어서 결국 이름까지 외워버린 2지역대장님은 그날 다른데서 훈련을 받느라 자리에 없었다. 소개팅 할 생각이 없긴 해도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긴 했는데. 흣.


p.s 백만년만의 여유라 오랜만에 2개나 포스팅. 아. 내가 4월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렇게 4월이 날 배신하나. 너무 바쁘다.


설레임.

일상 2008. 3. 19. 11:48

3주 연속 우울한 금요일을 맞을까 두려워서 금요일에 휴가를 냈다. 어제 얼마나 눈치를 보며 휴가를 냈는지 모른다. 저번에는 다른 팀 부장이 쟤는 왜저렇게 일찍 퇴근하냐고 뭐라고 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려왔다. 그 얘기 듣고 진짜 열받았다. 님이 뭔상관?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이런 때일 수록, 나는 바빠도 휴가내고 아무리 뭐라고 해도 일 없으면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연한 의지로!
정말 두려운 소문은 따로 있다. 나 그 소문이 진짜면 앞뒤 생각치않고 관둬야지 했는데 나 그럴 수 있을까? 아.. 아니야. 그 소문이 진짜면 관둬야지 어떻게 일해? 그건 인권침해야.

뉴스를 통해 금요일 날씨를 확인하니 비도 안오고 화창하댄다. 재작년 그러니까 24살 때 친구랑 종로 인사동 일대를 놀러다녔던 기억이 났다. 오전 11시쯤 만나서 저녁까지 먹고 어두워지기 전에 들어왔는데 아마 4월 말 정도였지. 24살 봄은 진짜 잔인했다. 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유일하게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나들이가 그 나들이다. 서울은 평일 낮에 보면 한가롭고 이쁘기까지 한 도시다. 저번에는 친구랑 남산, 명동, 경복궁 등등 완전 관광코스로만 하루종일 놀았던 적이 있는데 어찌나 유익하고 기분이 좋은지 다른 사람들한테도 마구 추천하고 싶었다. 특히 남산은 케이블카가 있어서 올라가는데 힘들지도 않고 올라가서 보면 또 기분이 극락이고. (뭔가가 극락이다. 라는 표현은 친구가 쓰는 표현인데 벌써 옮아서 나도 사용하고 있다)

이번 휴가에도 나랑 놀아줄 친구는 24살 4월 말에 놀아줬던 친군데 우리 사진도 그때처럼 찍기로 했다. 엊그제는 그 때 찍은 사진을 다시 보여주면서 우리 완전 늙었어. 나이 왜이렇게 쉽게 먹냐. 라고 했는데.. 얼굴이 완전 애띠고 심지어 지금에 비해선 해맑기까지 한거다. 서글퍼졌지만 그래도 그땐 즐거웠고 그럼 된거지. 어제 마을버스 타고 오면서 이번 주 휴가 낼 생각을 하니까 요근래 들어 최고로 가스이 쿵쾅 거리는 게 아닌가. 휴가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이런다. 아.. 재밌겠다. 벌써부터 기대된다. 서울시청앞 분수대도 이제부터 다시 가동한대고, 잔디에 새싹은 좀 돋았나? 아 신난다. 요즘 내 일상에 너무 뭔가가 없었다. 맨날 퇴근 후 바로 집으로 와서 씻고 어떻게든 10시 반 이전에 취침하겠다는 일념하나로 살아온 3월이여. 점심시간에 청계천 가서 나는 오늘 일 한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며 직장인들 약올려야지. (그래봤자 나도 직장인이지만) 원래는 월요일에 쉴수도 있고 월요일에 쉬는게 나한테 훨씬 유리하지만 이번주 금요일도 안쉬었음 분명히 또 우울했을거다.

아 군대가서 아직도 훈련받고 있는 동생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부대로 배치될 것 같다. 키 175 이상만 간다는 소문도 있고, 그냥 군인보다 훈련 두배 행군 두배 라는 소문도 있다. 우리 엄마는 어디서 그렇게 안좋은 소문만 듣고 오시는지. 내무반도 일반 군인과 다르게 10명 밖에 안 쓰고 월급도 무려 4만원이 많댄다. 거기서 많이 하는게 헬기 에서 줄타고 내려오는 거라는데 이거 생각하니까 블랙호크다운에서 블랙번인가? (블랙호크다운을 5번 넘게 봐놓고 그거 하나 모른다. 하핫) 그.. 반지의 제왕에서 꽃미남 아. 이름 기억안나. (결국 네이버에서 찾았다. 올랜도 블룸!) 하여튼 그 놈이 헬기가 흔들려서 땅에 떨어지고 의식불명 되는 게 생각났다. 고작 생각난게 이런 불길한 거라니! 우리 엄마가 대령으로 제대한 삼촌한테 여기 어떤데냐 물어봤더니 요즘 군대 죽을만큼 훈련 안시킨다. 다 할 수 있을만큼 시키는거다. 라고 말씀하셨댄다.  근데 그것까진 좋은데 삼촌은 왜 마지막에 엄마한테 기도 많이 해야겠다는 말을 덧 붙이신건지 원. 그 말에 우리 엄마는 다시 심란해지셨다.

휴가를 이틀 앞두고 있는 수요일. 오늘도 불길하게 일이 없다. 그리고 나 일하기가 너무 싫다. 오늘은 특히 싫은걸. 좀있다 점심먹고 치과에서 스케일링 받기로 했는데 아프면 어떡하지. 제대로 된 이가 거의 없고 금니도 엄청 많은 나는 치과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너무 많다. 설마 스케일링 하다가 또 뭔가를 발견해서 견적 100만원 입니다. 하는 건 아니겠지. 무사히 스케일링 받고 오늘도 결연한 의지로 될 수 있는 한 빨리 퇴근해야겠다.


동생이 군대에 갔다.

일상 2008. 2. 27. 11:27

어제는 동생의 입대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의정부에 갔는데 그곳이 바로 306보충대. 눈이 별로 없는 겨울이었는데 어제 아침에는 눈이 엄청 쌓여 있었다.
어제 군대가는 인원이 약 2400명이라는데 다들 어찌나 어리든지 내가 나이 먹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일이 많으셔서 못갔는데 지금 생각으론 안가시길 잘한 거 같다. 가면 100% 많이 우셨을 것 같아서..
집앞에서부터 우셨는데 가셨음 많이 우셨겠지.
내가 보기엔 그냥 군대 보낼때 안울고 잘가~~ 라고 말하는게 가는 사람한테나 가족한테나 좋은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냥 잘 갔다오라고 하고 울진 않았다. 몸 아파서 안가는 거 보단 낫잖어~ 하고 말았지.
2월 말에 들어가는 거고 3월부턴 점점 따뜻해질테니까 날짜는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100일휴가가 없어졌기 때문에 동생은 7월 경에나 휴가를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아직은 실감이 안나는데 나중에 동생 옷이 소포로 도착함 진짜로 실감 나겠지.

내가 가봤던 훈련소는 친구들 & 나 & 전 남자친구가 갔던 공군 진주 훈련소 인데, 4월이라 날씨가 징그럽게도 좋았다. 걔 갈 때는 눈물 났는데. 흐흐. 뭐 많이 어렸으니까.
근데 내 주변에 의외로 그 진주 훈련소 다녀온 여자들이 많다. 흠.. 공군 가는 애인 둔 사람들은 많이들 가는건가? 내가 그냥 흘리는 말로 나 진주 훈련소는 가봤는데. 라고 말하면 주변에서 나도. 나도. 이런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란다는 거.

동생을 보내고 차를 타고 오는데 차가 어찌나 밀리든지,(밀리는 게 당연하지만) 5시쯤 집에 도착해서는 눈알이 튀어나올 듯 머리가 아파서 허겁지겁 타이레놀 이알을 먹고 잤다. 자고 일어나니 8시. 그렇게 자고도  밤 되니까 졸려서 컴퓨터 좀 하다가 12시 쯤 잤다.

오늘 아침까지도 우리 엄마는 기분이 완전히 다운된 상태. 하지만 뭐.. 내동생이 바보도 아니고 대부분은 몸 건강히 다녀오는 군대니깐 잘 다녀오리라 믿는다.

거기 있던 2400명 남자애들 오늘부터 어제와는 전혀 다른 하루가 펼쳐질 거란 생각이 하니 쌩뚱맞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하는 일을 안해도 되고, 매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당연해지지 않아 지는, 한 사람의 인생이 변하고 인생이 너무 거대하다면 하다못해 한 사람의 생활패턴이 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은 얼마일까?
난 단 1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귀던 사람이 헤어지자고 하는 순간. 내가 사표를 내는 순간. 한국을 떠나는 순간. 결혼하는 순간. 등등 모든 게 다 순간인데. 그 순간을 전후해서 더 행복할 수도 더 불행할 수도 있는건데.
쉽게 변할 수 있을 것 같은 내 일상은 왜이렇게 하루하루가 구질구질하고 재미없고 지루한걸까. 다만 지금 여기만 아니면 어디라도 더 즐거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뭐가 있을까.
문득 내가 직장인이 되었다는 게 지금 인생에서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적어지는 거 아닌가 싶었다. 사실은 그럴만한 용기가 없어진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몸이 안좋아서 그런지 우울한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 제발 뭐라도 하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여행은 이미 한 1년전에 갔다온 것 처럼 까마득해진지 오래고.

P.S 저번에 엘리베이터에서 이사님을 만났다. 처음 들어올 때 면접을 보셨던 분이라 날 기억하고 계셨는데, 오랜만에 본거라 그런가 "일은 이제 좀 재밌나?" 하고 물어보시는 거다. 한심하게도 난 거기에 대고 되물었다. "근데.. 일을 재미로 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나요? " 라고. 크하하하하. 나 참. 간도 부었다. 그 때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진 못할지언정 이런 망언을. ;; 내 물음에 대한 이사님의 대답은 당연히 있다면서 그 사람 중 하나가 나라고 하시는거다.
난, 흥! 거짓말! 말도 안돼! 라고 생각했다. 물론 속으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