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는 관계

일상 2018. 5. 30. 16:04

1. 친한 사람의 기준

  나에게 친한 사람이란 상대방을 만날 수 밖에 없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시간을 내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학창시절에 학교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친구들과 학생이 아닌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하고 얼굴을 보니 그들과 나는 아직까지도 정말 친한 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 지금까지도 얼굴 보고 연락하는 사람은 오로지 단 한명이다. 이제까지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직장에서 같이 일할 땐 분명 친했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하지만 더이상 그 사람들을 볼 기회 혹은 의무가 사라지고 나니 전혀 연락을 할 생각도 들지 않고, 볼 마음은 더더욱 안든다.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들과 직장에서 보낸 그 시간과 관계는 대체 뭐였을까? 동료애? 이렇게나 거창한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글쎄.. 모르겠다. 가끔 그들과 나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퇴직은 고사하고 업무시간이 종료됨과 동시에 서로 메시지 하나 주고 받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아쉬울 것 전혀 없는 관계. 이걸 어느 정도 인정하고 거리를 두는 게 내 직장생활에 이롭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좀 슬프지만 어쩌겠나...


2. 병원 사람들

 우리 엄마 때문에 병원을 자주 왔다갔다하면서 그곳의 의료인들에게 경외감을 느낄 때가 많다. 나는 고등학생 때 '교련' 과목을 마지막으로 배운 세대인데, 교련 수업시간에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을 구하는 순서 같은 걸 배웠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나에게 수업 내용 중 가장 충격이었던 건, 가망이 없어보이는 사람은 포기하고 살 가능성 있는 사람부터 구하라는 내용이었다. 간신히 숨이 붙어 있으면 그냥 죽으라고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라니.. 이게 아무리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방법이라고 해도 나는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그 사람들 유언이라도 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가 입원하신 병원은 전국에서 더이상 가망없다고 포기한 사람들이 많이 오는 병원인데, 원래 가던 병원에서 아무 것도 안해주겠다는 우리 엄마 상태를  담당 선생님께서 보자마자, 수술 날짜 잡고, 우리 엄마보다 심했던 사람들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시는데 난 정말 그 자체로 너무 고마워서 의사선생님께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수많은 죽음을 목격할텐데, 수없이 많은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더라도 죽음에 초연해지지 않는 의료인이 정말 좋은 의료인이 아닐까. 정말 존경스럽다.



산본역/ 석촌호수

일상 2017. 6. 2. 13:14


  우울을 이겨내보기로 굳게 마음 먹은 것도 잠시, 5월의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황폐화 되어, 군포에 사는 친구를 찾아갔다.

  그 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책을 제일 많이 읽는 사람인데, 신기하게도 자기의 고급 취향을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다. 가끔 다독하는 사람들 중에 은근한 우월감을 과시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 친구는 가장 친한 친구인 나에게 조차 그런 내색 한 번 한 적이 없는 대인배다. 그 친구와 얘기하고 와서 다시 나쓰메 소세키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내가 느끼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함부로 사람에 대해 단정짓지 않는 것' 이다. 그래서 그런지, 의외로 다독인들은 조언도 잘 해주지 않는다. 다년간의 독서로 사람 마음은 다른 사람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일까.

  사람들에게 언제나 좌절하고 상처받고 그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 오히려 더 고독해지는 것을 이해해주는 친구가 나에게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가 속상하다 말하면, 보통 사람들은 뭘 그런 거 가지고 속상하냐고 거 참 이상하다고 하거나, 그거 다 니 탓이라고 하는데, 친구는 진짜 속상하겠다고 공감을 해준다. 요즘 육아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어서 나 만날 시간이 없었을텐데, 나와줘서 너무 고마웠다. 

  산본역 카페에서 바깥을 보는데 비바람이 몰아쳤다. 친한 친구와 비바람 바라보며, 얘기를 딱 2시간 했는데 그제서야 좀 살 것 같았다. 친구와 얘기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오랜만에 다시 읽으며, 내 맘 이해해 주는 사람이 친구 말고 여기 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그 후' 는 몇 년전 읽었던 책인데도 너무 새롭고, 요즘 나의 유일한 위안이다.




  저번 주말에 회사 동료 결혼식 때문에 잠실에 갔다. 이상하게 요즘 잠실갈 일이 많이 생겨 평균 2주에 한번 꼴로 가게 된다.

  회사에서 워낙 같이 많은 일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축의금은 전혀 아깝지 않았지만, 1시 30분까지 가느라 부산하게 움직여야 했다.

  잠실까지 갔는데 그냥 오기 아쉬워서 친구를 만나 석촌호수를 좀 걸었다. 나는 잠실에 볼 일 있을 때만 가기 때문에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 날 친구와 주변을 좀 걷다 보니, 사람들이 왜 강남 강남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깨끗하고 쾌적했다. 석촌호수와 가까운데 살면서 거기서 운동할 수 있으면 난 정말 매일 매일도 할 수 있을 것 이다.

  결혼식 때문에 평소 잘 입지 않던 불편한 원피스를 입었는데, 정말 불편하고 힘들었다. 운동화에 청바지 입고 갔으면 훨씬 더 기분이 좋았을텐데.

 

  엄마가 아빠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어서, 둘이 여행이라도 가시라고 제주도 비행기 티켓을 사드렸다. 평일에 출발하니 2인 왕복이 9만원도 안한다. 숙박도 제주도에서 게스트 하우스 하는 친척이 그냥 방을 내준다고 하셔서 편히 다녀오실 것 같다. 예의상 10만원은 드리려고 한다.

  돈한푼 못버는데 왜 그런거 예약하냐고 하지 말라고 만류하던 엄마가 막상 내가 예매를 해드리니 그렇게 좋아하셔서 마음이 좀 찡했다. 어린 애 처럼 들 뜬 마음으로 옷 뭐 가져갈지, 가서 뭐 신을지 고민하는 엄마를 보니 귀여웠다.

 

  나도 요즘 부쩍 혼자 1박 2일이라도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또 막상 떠오르는 곳이 없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의 배경인 시코쿠를 좀 가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 하는데, 여름에 일본 여행 갔던 20대 기억을 떠올리면 다시 고개를 절래 절래 하게 된다. (일본의 여름 너무 덥고 습하고 불쾌하다!!)

  이제 금방 대한항공에서 소멸예정 마일리지 안내 메일이 왔다. 어떻게든 2018년 전에 여행을 가야 하는데, 나 이번 마일리지는 좋아하는 사람이랑 여행가는데 쓰고 싶었는데 크크크크. 너무 큰 꿈이었나보다. 그냥 나 혼자 빨리 써야겠다.


꽃피는 봄봄봄봄 1편

일상 2017. 5. 1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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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콜드플레이 콘서트 끝나고 하남 사는 친구네 집에 갔었다. 원래는 그냥 집에 돌아오려고 했는데, 9호선 줄이 계단까지 늘어져 있고, 늦게라도 9호선을 탄다 한들, 노량진에서 1호선 막차를 놓칠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옷이랑 세면도구를 챙겨오긴 했던 참이라, 잠실에서 하남까지 버스타고 갔다. 친구가 하남에서 잠실 가깝다고 하남도 살 만 하다고 했는데, 내 기준에서는 엄청 멀었다. 그리고 하남까지 가는 파란 버스 배차간격은 왜 그리 길든지. 우여곡절 끝에 버스에 탑승하여 여행하는 기분으로 바깥 풍경을 보는데 비싸다는 동네 지나갈 때는 과연 쾌적함이 느껴졌고, 서울 변두리 지날 때에는 여기가 서울이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낙후함이 느껴졌다. 버스타고 가며 오늘 콘서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말할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네 집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친구의 고양이를 봤다. 친구가 자기네 고양이는 모르는 사람 오면 안보이는데 들어가서 나오지도 않는데, 나를 보고도 별로 경계를 안한다고 신기하다고 했다. 복실복실한 연회색 털에 동그란 눈을 가진 고양이가 먼 발치에서 '넌 뭐냐?' 라는 표정으로 내 행동을 빤히 쳐다보는데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면서 가까이는 오지 않았다. 내가 자려고 누워서 불을 끄니 그제서야 고양이는 내 머리 맡으로 와서 정수리 냄새를 킁킁 맡았다. 영광스럽게도.

  이번에 친구네 집에 가서 대기업의 위엄 같은 걸 느꼈다. 친구는 여전히 몸이 좀 아프긴 하지만, 첫 직장이자 현재 직장인 국내 굴지 대기업에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고 있다. 경력도 계속 쌓고 있고, 연봉도 계속 올랐겠지. 아무리 친구사이여도 연봉이 얼마냐 물어볼 순 없는거라, 친구의 월급이 얼마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 날 친구네 집 가서 친구가 버는 돈이 어마어마함을 새삼 실감했다. 물론 내가 지금 하는 일보다 훨씬 힘드니 그 보상으로 많은 월급을 받겠지.

  친구는 대학졸업후  근 10년만에 하남시내에 대단지 아파트를 부모 도움없이 온전히 자기 힘으로 사고, 며칠 전에는 새 차까지 샀다. 친구가 너무 잘나서 대단하다는 생각 자주 하고 몸도 안좋은데 좋은 아파트에 살게 되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대체 30대 중반이 되도록 뭐한건가. 싶었다.

  다음날 하남에서 인천까지 지하철 타고 왔는데 배차간격이 똥이라, 3시간 넘게 걸렸다. 오는 길에 핸드폰을 두번이나 떨어뜨려서 산지 3개월도 안된 핸드폰이 순식간에 1년은 쓴 거마냥 후져졌다. 액정 안 깨진 건 다행이지만.

 

2. 친구네집 가서 한번도 느끼지 못한 박탈감 같은 걸 느낀 건 이유가 있다. 요즘 내 모든 역량을 절약에 쏟고 있기 때문이다. 3월말에 목돈 쓸 일이 있어서, 3개월 할부로 목돈을 쓰고 (내 기준에서는 엄청난 목돈) 건강보험정산까지 하고나니, 정말 돈이 없어도 너무 없다.


2번 부터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짐. (회사에서 쓴건데, 바빠서 더 쓸 시간이 없는 관계로. )


1. 크리스마스 

  요 근래 매년 크리스마스 쯤 만나던 (남자인) 친구가 있었다. 올해는 그 친구한테도 메리크리스마스라는 형식적 메시지 조차 없는 정말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틀 뒤면 내 생일. 매년 별 거 없었다. 아마 난 죽을 때까지 이럴 것 같다. 나는 누군가와 이 정도면 많이 친해졌고, 상대방도 나를 진짜 친구로 받아들여주겠지? 라고 착각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이런 애정결핍적 행동과 태도가 스스로 짜증이 나서 날이 갈수록 사람을 멀리 하게 된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 없는 곳에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길 바랄 뿐이다. 27일 내 생일에는 가족 제외한 누구한테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단 한번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내 생일은 언제나 회사에서 제일 바쁜 시즌이라 생일답게 보낸 적 거의 없기 때문에 크게 의미부여 안하지만, 2016년은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해 라, 혼자서라도 의미깊게 보내고 싶다.

2.  사무실 이전

  사무실 이전이 드디어 끝났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난 사무실 이사도 가정집 포장 이사처럼 그날 아침에 다 싸고 옮겨주고 정리까지 해주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랑 막내만 죽어라 짐싸고, 죽어라 전화하고 일했다. 걔랑 전우애 같은 감정을 느꼈다. 어쨌든 끝났고, 나는 가산디지털단지 내 수많은 아파트형공장 중 한 건물 안의 한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다. 인천에서 비정상적으로 멀었던 성수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사무실이 이전한 덕분에 출퇴근시간이 약 90분 줄었다.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나마 보람 있다. 만약에 2년 뒤 여기 계약 연장 안하고 또 이사간다고 하면 정말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할 것 같다. 사무실 이사는 일반 가정집 이사와는 차원이 다르더라. 우리집은 이사만 한 15번 정도 했는데, 15번 이사하는 동안 이번 사무실 이사 처럼 힘든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사를 토요일에 해서 어쩔 수 없이 토요일에도 출근했는데, 휴일 근로 수당 같은 것도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심하게 몸살이 나서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화요일에는 도저히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라 결근했다. 할머니 체력인 나는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힘든 노동을 하면 무조건 탈이 난다. 나같은 체력의 소유자는 규칙적으로 살 수 밖에 없다.

 

3. 내 자리

  나는 언제나 딸린 짐이 많은 편에 속한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내 짐만 세 박스가 나왔다. (다른 직원들은 보통 한박스) 짐을 줄이려고 회사에서 쓰던 컵과 커피 드리퍼, 원두, 우롱차잎, 커피 필터, 잎차용 필터를 집으로 가져왔다. 아침에 커피를 내려 먹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라고 할만큼 2008년 부터 쭉 아침에 원두커피를 마셨지만, 요즘 나오는 아메리카노 믹스가 워낙 훌륭해서 이제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직접 내려 마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컵은 회사 싱크대를 열어보니 아무도 안 쓴 것으로 보이는 컵이 있어서 그냥 그 컵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짐을 줄여도 내 왼쪽에 있는 서류 들은 정리할 수 없었다. 안쓰는 파일이 하나도 없이 다 수시로 꺼내보는 것들이라.. 어쩔 수 없다.

 


  회사를 워낙 많이 옮겨 다녀서, 내 자리 사진을 웬만하면 남겨 놓는 편이다. 위 사진은 성수동 사무실에 있을 때 내 자리다. 지금 가산동에도 거의 똑같이 정리해놓았다. 우리 사무실에서 내 컴퓨터가 제일 후지고, 모니터도 나만 유일하게  4:3 비율 모니터를 쓴다. 근데 뭐 상관 없다. 일하는 데 아무 문제 없다. 난 어차피 오피스 패키지 외 다른 프로그램은 하나도 안쓰니.

 

4. 고독한 삶

  12월 10일에 너무 우울하여, 혼자 산책을 나섰다. 하루종일 늘어져서 TV 보다, 책보다, 음악듣다, 석양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삶도 그리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생일인데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요즘 필요한 게 없다. 아니, 내가 갖고 싶은 것 중에서 남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건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너무 슬프고, 자주 좌절한다. 교회에서 기도할 때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내 맘을 알고 들어주리라 확신하지만, 요즘들어 부쩍 마음이 약해진다. 의심하면 될 것도 안되는 건데.

 

 

 

 

  이 동네 살면서 셀 수 없이 자유공원에 자주 갔지만, 비가 억수로 오던 어느 여름날 이후 이렇게 사람이 없는 자유공원은 처음 봤다. 찬 겨울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추운 바다 속으로 야속하게 사라져가는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순간 인천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느낌이었다.

 

5. 건강

  아직 감기 몸살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화요일에 받아놓은 약이 떨어져 어제 병원에 가서 2시간을 대기했다. 정말 지루해 죽을 뻔 했다. 너무 심심해서 신문도 봤다가, 핸드폰도 보다가, 너무 심심해서 혈압도 쟀다. 혈압이 최고 87 에 최저 54 가 나왔길래, 네이버에서 저혈압에 대해 찾아봤다. 몇 년 전 신문에서 의사가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위험하다는 건 완전히 잘못된 의학상식이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난 저혈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안쓰고 산다. 네이버에서 보니 저혈압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증세는 만성피로 라는데, 정상 혈압인 사람들의 일상은 나보단 훨씬 덜 피곤하고 활력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평생 저혈압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현재 내 상태가 피곤한지 어쩐지도 모른다. 다만, 남들보다 쉽게 피로하고 지치는 게 운동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체질적인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뭐 이런 취약점이 있는데도 운동 안하고 체력 키울 생각 안한 건 100% 내 잘못이다.

 

6. 엄마의 치료

  내가 엄마에게 감기몸살을 옮긴 것 같다. 암환자는 다른 병에 걸리지 않게 엄청 조심해야 하는데, 오늘 우리 엄마는 내가 사무실 이사 후 앓은 증세와 완전히 동일한 증상의 감기에 걸려서 앓아 누우셨다. 죄책감이 든다. 다행히 내일 원래 병원 가는 날이라, 의사 선생님께 관련해서 상담을 받을 예정이다. 문제는 요즘 병원마다 내과에 감기 때문에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엄마도 2시간 이상 대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15분 이상 앉아 있지도 못하는 상태인데, 나도 힘들어 죽을 뻔 했던 장시간 대기를 하실 수 있을지..

  엄마께 항암용으로 투약하는 약이 3개에서 한 개로 줄었다. 하지만 6차 항암 후 C.T 사진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나쁜 소식이 내 감기 몸살의 결정타가 됐다.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있는데 그렇게 힘들게 6번이나 항암을 받았는데, 복수가 다시 찼다는 소식을 사무실에서 전해 듣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물을 마시는데 손이 덜덜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결근했다.

 

7. 그리운 친구

  자유공원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동인천 파스쿠치에 갔다. 그 카페는 지금은 시집간 친구와 같이 가던 곳이었다. 대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친구는 엄청난 독서가였다. 어느 날은 자기가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로 유명한 주요섭 소설가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면서, 그 책 이야기를 신나게 해줬다. 그런데 주요섭 소설 이야기를 한 다음부터 친구는 자꾸 주요섭 소설 속의 말을 따라했다. "처녀티 좀 나면 나아디갔디."  같은 말로 대화를 할 때마다 난 배꼽을 잡고 웃었다. 혼자 파스쿠치에 앉아서 듣고있기 힘든 멜론 최신가요 100 곡 중 하나로 추정되는 구린 가요를 들으며 (예전에는 선곡이 좋았는데..) 주요섭 소설체 생각이 나서 혼자 베시시 웃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헤어진 옛 애인을 그리워 하는 것 만큼이나 절절할 수 있음을 그 때 느꼈다. 그 친구에게 이런 저런 고민을 이야기 하고 푸념을 하면 항상 최상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근데 그게 거짓말로 나 위로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친구는 정말로 내가 언젠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 질 것이라 믿고 있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친구의 말이 정말 이뤄지기 힘든 일 임을 알면서도 너무 힘들때는 이상하게 듣고 싶다. 다 잘될거라는 진심어린 친구의 말이.

 

 

 

메리크리스마스


1. 지금은 병원을 옮기신 것 같지만, 지난 여름 엄마가 입원 하셨을 때, 7층에 상주하는 간병인이 있었다. 그 간병인 아주머니는 밥 때가 되면 병실을 돌아다니며, 거동이 힘드니 환자들의 식판을 대신 반납을 해주시겠다고 말하며 식판들을 수거하고 다니셨다. (식판 반납하는 곳은 층의 가운데에 위치) 신판 반납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저렇게까지 온 병실을 돌아다니시면서 수고를 할까 하고 의문스러웠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분은 환자들이 남긴 밥과 반찬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2. 엄마가 입원하시는 층은 여성전용 입원 층이다. 그 층을 청소하시는 분이 일이 끝났는데도 안가시고 가끔 우리 엄마 손, 어깨, 발 같은 데를 마사지 해주신다. 힘드실텐데…엄마가 하지말라 해도 기어코 해주신다. ​

​3.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수다를 떠는 한 환자 아주머니가 우리 엄마를 너무 쫓아다녀서 저번 항암 치료 때 너무 고생했다. 한시도 안쉬고 떠들면서 우리 엄마 입원 침대 바로 옆으로 침대까지 배정받아 우리 가족 모두 밤낮으로 심히 괴로웠다. 내가 엄마 힘드시니 그만 말 걸어달라고 한마디 하려다 엄마가 불편해하실까봐 참았다.

4. 심보가 못된 건지, 가끔 전철에서 연인들을 보며 속으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가끔 한다. 오늘 내 옆에 있던 커플은 여자가 남자에게 죽고 못사는 것 같은데, 여자가 자꾸 남자몸을 더듬고 과하게 예쁜 척, 귀여운 척을 해서 안보려고 엄청 노력했다. 그 여자는 자리에 앉고 남자친구는 내 옆에 서 있었는데 남자친구를 올려다보며 남자의 허벅지 엉덩이 등을 계속 더듬었다. 남자친구 눈에는 저 과한 표정도 사랑스럽겠지. 나 점점 꼰대되가나…

5. 일요일에 엄마 가발 다듬으러 동네 미용실에 갔다. 인모가 아닌 건 원래 안해준다는데, 사정해서 간신히 손질했다. 엄마가 항암 치료 금방이라고 비싼 거 사지말라고 하셔서, 인모 가발을 안샀는데​ 살걸 그랬나 싶다. 지금 산 가발도 일본 브랜드라 자연스럽고 가발인 거 티 하나도 안나는데 엄마는 어색하다고 한 번도 안쓰셨다.

6. 미용실에서 나왔는데 웬 중국인 아저씨가 술에 잔뜩 취해서 회색 내복만 입고 동인천 일대를 활보하고 다녔다. 늙은 중년 남성이 내복만 입은 모습이 너무 역해서 괴로웠다.

7. 친구가 공들이던 남자와 사귀기로 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난 근데 진짜 아직 먼건지…어째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 남자가 진심으로 친구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 예감이 제발 틀리길.


  요즘 주중에 회사에서 너무 바쁘다 보니, 주말에 아무것도 안하고 축 쳐져 있다가 일요일 밤에 우울함에 몸부림 치며 책 몇 장 읽다 잤다. 주말 내내 너무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아닌가.. 하고 죄책감이 들 때도 있지만, 제일 중한 건 건강이니까.. 푹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1. 사랑스러운 후배

  첫 회사 후배를 만났다. 내가 워낙 좋아하는 애라 맛있는 걸 많이 사줘야지 했는데, 도리어 내가 얻어먹었다. 생일도 챙겨주지 못해서 내가 저녁을 꼭 사고 싶었는데.. 그 약속 때문에 오랜만에 명동에 갔다. 첫 회사의 추억이 어린 명동에 가면 기분이 좀 이상해진다. 좀 슬픈 기분 들기도 하고. 제대로 적응해서 죽으나 사나 그 회사에서 버텼으면 지금보다 나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나이가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어도, 사회적 지위(?)는 오히려 지금보다 높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하지만 언젠가는 때려치고 말았을 첫 회사라 미련은 없다. 첫 회사에서 유일하게 얻은 건 이 후배 하나다. 후배 만나기로 한 명동 롯데 백화점 안에 들어갔다가 한창 길 잃고 헤맸다. 정말 갈 때마다 다신 오고 싶지 않은 곳이라 생각하게 되는 복잡한 곳이다. 갈 때마다 한번에 뭘 찾은 적이 없다. 

  내가 처음 직장생활 할 때는 명동 일대가 모두 일본인들이었다. 어디서나 일본어가 들렸고, 일본인들은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돌아다녔는데, 지금 명동은 모조리 중국인들 이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우리 동네에 배타고 내리는 중국인들과 다르게 명동 중국인들은 부유해보였다.

  자라 매장 가면 항상 건성으로 보고 뭘 사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후배와 자라에 들어가서는 원피스를 하나 샀다. 바느질 상태는 정말 한숨나는 수준이지만, 사이즈가 나한테 딱 맞고 디자인이 예뻤다. 가끔 가서 사야지 하고 마음 먹었다. 워낙 저렴해서 부담이 없기도 하니까.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서 사는 얘기도 듣고 내 이야기도 하니 기분이 좋았다. 너무 오랫동안 이런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


2. 우편함

  퇴근 길에 우편함에 우편물이 그대로 있으면 '오늘도 엄마가 한 번도 바깥에 나오시질 않았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번 5차 항암 치료는 4차보다 더 수월하게 넘기셨다. 4차 항암 치료가 초등학교 4학년 같은 건지.. 저번 4차 항암 치료 끝내고는 너무 힘들어 하셨는데 오히려 5차를 쉽게 넘기셨다. 정말 다행이다.


3. 대전 결혼식

  원래 어제는 대전에 갔어야 했다. 유일한 초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돈만 보냈다. 그 친구는 8살 어린 남자와 결혼을 한다고 한다. 연애한다는 말 들었을 때 행여나, 중간에 헤어지면 걔(남자)는 아직 팔팔한 나이 인데, 얘(내친구)는 어떡하나 싶었는데 결혼까지 해서 다행이란 생각 들었다. 8살 어린 남자는 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궁금해서 가보고 싶긴 했지만, 안가길 잘한 것 같다. 갔다왔으면 병이 나서 앓아누웠을 것이다.


4. 가을 월미공원

  어제 우리동네에 있는 주차장이 꽤 넓은 유니클로에 가서 세일하는 울트라 라이트 다운을 3개나 샀다. 두 개는 엄마 것, 한 개는 내 것. 나는 이미 두 개 가지고 있지만, 나는 겨울내내 울트라라이트다운을 거의 매일 같이 입기 때문에 한 개가 더 필요했다. 사고나니 너무 든든하고 기분 좋았다.

  차까지 끌고 나왔는데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서 엄마와 월미공원에 갔다. 언제나 주차장에 자리가 남아돌고 한가한 월미공원에서 단풍나무도 많이 보고 은행나무도 봤다.

  월미도 인근을 전 안상수 시장이 얼마나 많이 망쳐놨는지 볼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희대의 뻘짓으로 월미은하레일 이라는 걸 설치해서 그 멋대가리 하나 없는 레일과 큰 기둥이 월미도 인근 풍경을 재앙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하게 망쳐 놓는다. 스산하고 모든 것이 낡은 예전 월미도가 너무 그립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에서 나오던 그 월미도)






5. 사무실 이전

  요즘 사무실 이전 때문에 회사에서 죽을 맛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라는 속담이 뭔지 몸소 체험 중이다. 참견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12월이면 안그래도 바쁜데, 대체 왜 이사날짜를 12월로 잡은 건지 모르겠다. 또 한창 추울 때 아닌가.

  그래도 LSM Effect 로 인해 심하게 스트레스 받고 있진 않다. LSM Effect 는 내가 지어낸 말인데, LSM 이 전회사에서 날 괴롭히던 부장의 이니셜이다. 푸하하하. 막 열이 받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다가도, 그 여자와 함께 일하던 시절을 회상하면 웬만한 일에는 화도 안나고 순식간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앞으로 그 여자보다 힘든 직장 상사는 없을 거라 믿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 전체로 볼 땐 그 여자에게 당한 일들이 완전히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그 여자로인해 직장 상사에 대한 내 기대 수준이 사정없이 낮아진 것은 고마운 일이다. 요즘에는 회사 사람들이 배푸는 정말 작은 배려에도 감사하게 된다. 그 여자와 비교하면 더 나쁜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지금 회사에서 아무리 열이 받아도 좋게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6. 친구의 연애

  친구가 공들이는 남자가 생겼는데, 그 남자가 생긴 뒤로 나에게 보내는 카톡의 양이 10분의 1로 급감했다. 잘되가서 그러는 거겠지. 뭐 우리 나이에 더 중요한 건 우정보다는 사랑일테니 이해는 하지만, 못내 좀 서운하다. 친구에게는 괜히 질투하는 것으로 보일까봐 말은 못했지만, 저번에 카페가서 실제로 본 남자와 내 친구.. 비주얼 적으로는 너무 안 어울려서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응원한다. 걔가 이제까지 고생하면서 산 걸 아니까.


7. 친구의 고양이

  내 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유방암으로 투병 중인 친구가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고양이 사진을 올리려고 인스타그램도 시작했는데, 인스타그램으로 가끔 보는 친구의 고양이는 예쁘긴 진짜 예쁘다. 너무 예뻐서 살아있다는 생각이 안들 때도 있다. 고양이가 비현실적으로, 그리고 충격적으로 귀엽지만, 난 죽어도 못 키운다. 한 생물을 거둬야겠다 다짐하고 실제 행하는 사람들 보면 존경스럽다. 난 정말 용기가 안난다. 그런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절대 아니고.


엄마가 걸린 난소암은 4기 환자의 5년 생존율이 11% 밖에 안되고, 재발확률은 70% 가 넘는다고 한다.
건조하게 적혀 있는 난소암 관련 수치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다.
수술도 굳세게 이겨내고, 1차 항암도 씩씩하게 견디고 있는 엄마가 항암을 마침내 다 마쳐도, 평생 재발하지 않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원하면서 사는 수 밖에 없다.
출퇴근 길에 개신교 목사들이 쉽게 쓴 성경을 조금씩 읽고 있다. 개신교에서 만든 성경이라 그런지 구약이 뒤에 있고 신약인 마태복음이 제일 처음 나온다. 하루 두 세장씩 마태복음을 읽는 중인데, 난 마태복음에 이렇게 의심하지 말라는 말이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이제까지 일요일 신앙 이었던 내가 이번 일을 계기로 내 곁에 예수님이 계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기도를 하며 우리 엄마가 완치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나면 거짓말같이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 엄마는 9월 5일에 2차 항암 치료를 앞두고 있다. 1차 보다 훨씬 힘드시겠지만, 이겨내시리라 믿는다.
유방암을 이겨내고 직장생활을 하던 친구에게 유방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번 주 금요일에 조직검사 결과 듣는다고 했는데 어제까지 아무 연락이 없어 나쁜 소식임을 예감했다.
아직도 3주에 한번씩 치료를 받는데, 항암 끝난지 5개월 밖에 안됐는데, 왜 또 재발을 한건지... 병원에서도 흔치 않은 경우라고 했다는데, 또 수술을 해야 하는 친구가 너무 안타깝다.
그리고 겁이 나기도 했다. 치료는 너무 어려운데 암이 생기는 건 친구 사례를 보더라도 정말 순식간이니까..
친구는 복직 후,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동호회에 가입했는데, 그 활동을 평일 밤 12시까지 종종 하곤 했다. 피로감을 쉽게 느끼는 나는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리한 스케줄 이었다.
암에 직접적 원인은 없겠지만, 동호회 때문에 늦게자고 일찍 일어났던 게 재발에 약간의 원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로 일도 많이 하고 여행도 하고 동호회도 하던 친구가 이제 정말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할 것 같다. 힘들겠지만..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는데,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고, 고백을 해도 차일 것 같다.
사실 잘 모르겠다. 정말 걔를 좋아하는건지.. 내 상황이 힘들어서 누구라도 필요해서 자꾸 생각이 나는건지.
금요일에는 진짜 오랜만에 카페하는 친구네 가기로 했다. 오정세를 좋아하는 친구가 한국 코메기 영화의 명작 '남자사용설명서'를 아직도 안봤다고 하여 맥주와 함께 감상하기로 했다.
얼마만에 가족 혹은 회사 사람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기다려진다.


이번 주말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주말일 수도 있는데, 나에게는 꽤 특별한 주말이었다. 회사 사람 외 사람들과 술집에 간 게 언젠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서, 친구를 만나서 술을 마시기로 하고 죽전에 갔다.

죽전역에는 처음 가봤는데, 술집으로 가는 길이 꼭 여행 가는 기분이었다. 워낙 낯설기도 했고, 인천이나 서울보다 좀 한가한 느낌이 좋았다.

내가 남들보다 술에 안취하는 이유는 내가 술이 쎄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이번 금요일에 보니 나는 술을 남들보다 엄청나게 느리게 마시는 편이고, 포만감을 쉽게 느끼는 편이다. 또 일단 배가 부르면 아무리 술이라고 해도 못 마시겠다. 그러니 남들보다 잘 마시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뭐 그렇다고 약한 편은 아닌 것 같지만.. 여하튼 그렇다.

죽전역에서 술을 마시고 나서, 이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용인 친구네 집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이 친구네 카페가 있는 동네를 몰라서 어떤 초등학교 앞에 내렸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친구네 집으로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서 혼자 밤길을 꽤나 헤맸다. 차라리 친구네 집 주소를 찍고 가달라고 할 걸 그랬다.

예전에는 택시 기사들이 말거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직접 운전을 한 뒤로는 혼자 운전을 하다보면 얼마나 외롭고 무료할까 싶어서 요즘에는 대꾸 잘해준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나보다. 기사님이 본인은 미인을 택시에 태우면 원래 길을 헤매신다고 말했는데, 예전 같으면 좀 징그럽단 생각에 무반응이었겠지만 이번에는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마감한 친구네 카페 테이블에서 또 술을 마셨다. 내 친구도 진짜 친한 친구랑 밤에 술 마신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났는데 내가 와줘서 기분 좋다고 했다.

친구와 사온 술을 다 마시고 새벽 3시쯤 집으로 올라가서 너 먼저 씻으라고 난 스타킹와 원피스를 벗고 누웠는데, 렌즈도 안 빼고 화장한 그 상태 그대로 잠들었다. 친구 말로는 내가 그냥 베게에 눕자마자 잠들었는데, 너무 곤히 자서 못 깨웠다고 한다.  

새벽 5시 쯤 목이 말라 일어났다가 안 씻고 잤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 부랴부랴 미친듯 세수를 하고 샤워를 했다. 친구는 나같으면 그냥 잤겠다고 했지만, 난 살면서 안 씻고 잔 게 평생 10번 이내 (어쩌면 5번 이내일지도) 라, 내가 안 씻고 잤다는 사실에 얼마나 놀랐는지... 피곤하긴 했나보다.

토요일 12시쯤 일어나서 친구 카페로 내려갔는데, 저번에 왔던 친구 친척동생인 현역 군인을 또 만났다. 나와 띠동갑인 이 95년생 손병장은 어떻게 된게 내가 친구네 카페 갈 때마다 맞춰서 외박을 나오는지. 집은 전라도인데 군대가 서울이라 외박나와도 갈 데가 없어서 친구네 카페로 온다고 한다. 5월 말에 전역이라는데, 어린 놈(?)이 너무 능글맞아서, 이야기 좀 많이 했다. 내가 걔한테 머리카락이 어쩜 그렇게 곱슬이냐고 했더니, 자기 머리가 얼마나 심한 곱슬인지 머리 안에 담배를 넣어도 그대로 고정되서 안빠진댄다. (이렇게 쓸모 없는 이야기를 했다) 

순대국 먹으러 나가려는 찰나 바로 옆 삼겹살집 가게 사장님을 만나서 하는 수 없이 삼겹살에 냉면을 먹고, 커피를 두잔이나 마신 나는 약한 복통에 시달리며 2시간 10분만에 용인에서 집에 도착해서 또 푹 잤다.

용인에서 인천으로 오는 날도 날씨 좋아서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재밌었다. 죽전에서도, 친구네 집에서도.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취하고 싶다.

일상 2016. 5. 11. 22:12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지만, 난 술을 잘 마시는 편이다. 취하지 않겠다 마음 먹고 취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알코올 분해를 잘해서 술을 잘 마시는 게 아니라, 그냥 정신을 놓지 않는 걸 잘한다고 해야하나. 취하려고 맘 먹으면 작은 맥주 캔 하나에도 취하는데..
대학 시절 혼자 살 때 비틀거리면서 술취해서 들어와선 많이 울었다.
비틀거리긴 해도 정신은 온전해서 언제나 목욕재계하고 개운한 상태로 누웠다.
아무리 즐겁게 술을 마시고 들어와도 하수구 냄새가 나던 그 방에 가면 어김없이 눈물을 쏟았다.
방에 혼자라 아무도 듣는 사람 없는데 나는 굳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나중에는 이어폰 사이에 눈물이 자꾸 들어가서 이어폰을 뺄 수 밖에 없었지만.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들 찾아다니면서 나 몰래 상담 받고 다닐 정도로 한동안 못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어서, 우리 부모님은 내가 울거나 조금만 취해 집에 들어가도 심하게 눈치를 보고, 걱정을 하신다. 그럴 때마다 중학생 때 내 얼굴을 쳐다도 못보시던 게 생각나서 너무 슬퍼진다. 그냥 그런 일 없었던 것 처럼 날 대해주시는 건 불가능한거겠지.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산 뒤로는 술마시고 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취한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안들지만, 다음날 일어나면 변한 건 하나도 없고 기분이 나아지기는 커녕 항상 더 우울해진다. 하지만 요즘 같아선 재능 발휘해서 진탕 마시고 펑펑 울고 싶다.
어제는 대학시절 이틀이 멀다하고 봤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긴 수진이한테 메일을 썼다. 아마 그 메일주소를 사용도 안하고 그 편지도 영영 안 읽을 것 같다.
걔가 나와 연락을 끊은 이유가 뭘까.
걔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지만, 걔가 없었으면 온전히 대학시절을 보내지 못했을텐데, 고마운 마음을 보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갑자기 사라진 친구가 밉다.
오늘 아침에도 자느라 정거장을 지나쳐서 지각했다. 회사에서는 되는 일 하나 없고, 엉망진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청첩장 준다고 만난 언니 앞에서는 즐겁게 사는 척했다.


근황과 푸념 가득

일상 2016. 4. 25. 18:24

1. 바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유방암으로 수술을 하고 복직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수술한 가슴에 다시 뭔가 만져져서 병원에 가는 중이라는 메세지를 보고, 내 가슴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유방암이 재발하면 (내 입에 이 단어를 올리기 싫지만) 사망 위험이 크다는 말을 어디 선가 봤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내 곁을 먼저 떠날 것이란 상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가 검사결과 말해주기까지 몇 분 동안 만약에 만약에 결과가 최악이라면, 친구는 어떻게 해야하고, 난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의사에게 암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눈물이 또 핑 돈다.

2. 요즘 다시 읽고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을 보면 (정확친 않지만) 주인공 소피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자신의 인생에 대단한 일이 벌어질 확률이 매우 낮음을 너무 빨리 알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책은 이래서 좋다. 내가 느꼈던 걸 정확히 표현해주니까.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 보다는 내가 더 경제적으로 발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한 때는 동화 작가 같은 꿈을 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난 언제나 사회진출에 유리한 쪽으로만 행동하고 그 방면에서 뛰어나길 원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다 부질없었단 생각이 든다. 점점 더 내 인생이 내 기준에서는 실패한 인생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 내 자신이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다. 내가 더 강하게 버텼다면, 지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 때문에 점점 더 제 정신으로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

3. 이 말을 글로 쓰는 순간 더 사무칠 것을 알기 때문에 웬만해선 일기에도 안쓰던 말이지만, 요즘 들어 정말 외롭다. 내 짝을 찾은 사람들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이 짝을 만난 게 하나같이 다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알고 그들은 행복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4. 주말에 영어학원에 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인터넷으로 영작한 후, 첨삭 받는 걸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두번 써서 내는 게 그렇게 힘들다. 호기롭게 써서 내면 온통 빨간색으로 틀린 부분이 표시되서 되돌아온다. 벌써 6번 정도 썼는데 자꾸 틀린 걸 또 틀린다.

5. 고용노동부에서 보낸 대표이사 출석요구서 사유를 보고, 이 회사 역시 오래 있을 회사는 아니라는 생각에 또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이 되서 이력서 쓰는 게 너무 힘들고, 그거 때문에 올 봄은 꽃 한번 제대로 못봤다. 그렇게 4월이 끝나간다.

6. 어떤 남자의 메세지 혹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엄마는 또 일단 사귀라고 성화다. 이제 내 의견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남자가 좋다고 하면 무조건 만나야 되는 나이인가 보다. 동생 부모님 다 협공 중이다. 너 그럴 나이 아니니까 정신 차리라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어쨌든 여러가지로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