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인선



집 앞에 전철역이 생겼다. 우리집 역사상 전철과 이렇게 가깝게 살아본 적은 없었다. 아직 역주변 정리가 끝나진 않았지만, 사진에서 보다시피 내부는 깨끗하다.

안산, 시흥 가기 좋아진거라 나와 큰 관계가 없다는 게 좀 슬프다.

일요일에 AS 맡긴 부츠 찾으러 갈 때 수인선 체험도 할 겸 한번 타고 가봤는데, 버스 타면 넉넉잡아 30분 잡아야 하는 인하대가 한 정거장 밖에 안되고, 시내버스로 가려면 배차간격이 너무나도 긴 버스를 타야했던 송도도 정말 가까워졌다. 

우리집에서 원인재역까지 가며 창 밖을 보았는데, 도저히 2016년의 풍경이라 볼 수 없는 후진 풍경이 내내 나왔다. 다시한번, 그래 인천이 이런 곳이었지 하는 생각을 했다. 뭐 그런 동네까지 전철이 다니게 된 거니 좋다면 좋은거다.

아, 그런데 원인재역은 인천같지 않았다. 인천같지 않다는 건 후지지 않고 좋다는 뜻이다.


2. 승리

호들갑 떠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돌과 알파고의 경기는 관심이 갔다. 일요일에 이세돌이 승리했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 솔직히 세번 다 졌을 때 다섯번 다 질 줄 알았는데, 그런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다니..
쉽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는 걸 직접 보여준 이세돌 구단, 정말 멋졌다.

괜히 세계 최강 자리를 오래 지킨 게 아닌 것 같다.

한가지 안타까웠던 점은 이세돌 구단의 몸매와 비율이 옷발 참 잘 받을 것 같은데 너무나도 펄럭거리는 양복을 입은 모습이 전세계로 생중계되었다는 점.


3. 마른 손

제일 친한 친구와 나는 정말 상극의 남자 이상형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번에 이세돌 구단 보면서 다시한번 깨달은 건, 난 흔히 어른들이 듬직하다고 표현하는 몸매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친구는 약간 나온 뱃살에 평균 몸무게보다 살짝 더 나가면서 키가 큰, 전형적으로 듬직한 남자를 좋아하고, 나는 그와 정반대 스타일을 좋아한다.

이제까지 좋아했던 남자들을 돌이켜봐도 대부분 마른 편이었고, 손과 손목이 가늘고 긴 편이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바둑을 하나도 볼 줄 모르는데도 이세돌 구단의 손과 얇은 손목을 몇 시간 내내 감상할 수 있어 즐거웠다는 것이다. 이세돌 부인 부럽다.


4. 티어가르텐

독일을 다녀와서 의외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베를린에 있던 티어가르텐 이라는 공원이다. 런던에서 갔던 유명한 공원들보다 백배는 좋았다. 나무가 엄청나게 크고, 조용하고, 가로등 모양이 고전적이어서 예쁘다.

만약 베를린에 다시 한번 갈 수 있다면 티어가르텐에 하루종일 있으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도 보며 음악을 듣고 싶다.

그런데 티어가르텐 안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난 험한 일을 겪었다.

시내로 가는 길에 장이 요동쳐서 하는 수 없이 그 화장실에 뛰어 들어갔는데 쥐가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너무나도 긴박하고 진땀나는 상황이라 난 죽은 쥐가 있던 그 칸에서 일을 볼 수 밖에 없었다. 흑흑.

어딘가에 깨끗한 유료 화장실이 있었겠지만 찾을 시간이 없었다. (사실 그 때는 죽은 쥐 따위 아무 문제도 아니긴 했지....)

내가 이런 일을 겪고도 티어가르텐이 그리운 걸 보면 베를린의 티어가르텐이 얼마나 좋은 공원인지 알 수 있다.


5. 결산

생전 처음해보는 년 회계 결산이 끝났다. 뭐, 회계사사무실에서 거의 알아서 한다지만 좀 힘들었다. 어쨌든 하나만 끝나면 재무제표도 끝날 것이다. 큰 일 하나 끝낸 것 같아서 후련하다.


6. 문제적 남자

일요일 밤마다 문제적 남자를 보며 월요일이 다가와서 우울한 마음을 위로한다. 내가 문제적 남자를 보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하석진. 이장원도 매력있지만, 하석진 외모 너무 훌륭하시다. 못푸는 문제만 주구장창 나오는데도 오로지 하석진 하나로 기분 좋게 잠드는 일요일 밤.


어떤 편지의 주인공

일상 2015. 5. 11. 00:53

모교에 일하면서 졸업생과 재학생 모두의 학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난 대학 다닐 때 알았던 모든 이의 학적을 조회해봤다.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는 물론이고 졸업 성적, 석차, 주소, 졸업 후 취업한 회사, 출신 고등학교, 입학 전형 등등 대학교 직원으로서 알 수 있는 개인 정보는 생각보다 많았다.

당연히 나와 관련 있었던 남자들의 정보를 더 자세히 볼 수 밖에 없었고, 그들 중 일부는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다른 건물 갈 때마다 제발 만나지 않기를 기원하곤 했다.

 

저번에 용인 친구네 집 놀러가서 새벽 4시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에게 그동안 전혀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기억 저편에 있던 남자애가 떠올랐다. 대학교 근무할 때 걔 정보도 조회를 해봤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렇구나.. 하고 그 뒤로는 그냥 잊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걔 이름이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신기했다.  

 

갑자기 생각난 그 아이는 2003년에 입학했고 나보다 1년 늦게 입학했지만 재수를 해서 나와는 동갑이었다. 사투리를 심하게 썼고, 덩치가 컸다. 어느날 걔와 내친구 이렇게 셋이 함께 저녁을 한번 같이 먹은 후, 학교 앞 당구장에 갔다. 걔는 가끔 나에게 연락을 했지만, 딱히 의미있는 연락은 아니었다. 당시 남자친구는 걔를 무척 싫어했다. 결국 얘가 나에게 연락하는 것 때문에 나는 남자친구와 크게 싸웠고, 어쩔 수 없이 걔와는 점점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게 걔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의 전부다.

 

그런데 2005년 4월에 뜬금없이 걔에게서 편지가 왔다. 보낸 주소를 보니, 얘는 공군에 입대했고, 벌써 상병이었다. 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고 얘는 대체 누굴까... 싶었다. 나는 이름의 주인공을 기억해내기 위해 엄청 애를 써야만 했다. 마침내 이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된 나는 편지를 읽었다.

 

학교에 있을 때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던 이 남자는 예상 외로 글을 무척 잘썼다. 정말 잘 쓴 편지라, 난 그 편지를 200번도 넘게 읽은 것 같다. 나 따위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줬다는 것이 황송할 지경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 편지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걔는 여전히 구만리 같이 군생활이 남아있었고, 걔가 전 남자친구의 후배라는 것이 당시 나에게는 무척 꺼려졌다. 전 남자친구와 관계된 모든 것이 싫었기 때문에. 2005년 부터 나는 여러가지 일을 겪었고, 원래 살던 집에서 이사까지 하면서 걔와는 결국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가끔 편지의 내용이 떠올라 위로를 받곤 했지만 그것도 그 뿐이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것이다.

 

용인에 다녀온 뒤 왜 이런 생각이 나는건지 신기해서 편지를 모아놓는 박스를 뒤졌고, 걔 편지가 나왔다. 어디서 그런 미친 짓을 할 용기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모교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이 남자의 학적조회를 부탁했고, 학적에 있는 핸드폰 번호로 걔가 2005년에 나에게 보낸 편지사진을 찍어 보냈다.

 

솔직히 좀 망설였다. 내가 이 남자 애라면 정말 황당할 것 같았다. 또 중간에 전화번호를 바꿨을 수도 있고, 자기 전화번호를 무단으로 빼돌렸다는 사실에 화가 날 수도 있고, 문자를 받았음에도 아예 무시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방에서 일하는 기계 처럼 살고 있을 사람한테 이런 황당한 문자는 반가웠으면 반가웠지 절대 짜증날 문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낸 황당한 문자에 답장이 왔는데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가 보낸 편지 맞고, 부대 주소 보니 본인이 근무했던 부대도 맞는데, 내가 누군지 기억이 안난다는 것이었다. 정말 재밌는 반전이었다.

내 일생에서 남자에게 받은 편지 중 그 편지는 단연 제일 잘 쓴 편지였고, 이 정도 편지면 엄청 오래 고민하고 썼겠구나 생각했는데 정작 그 편지를 쓴 사람은 나를 기억조차 못하고 있다니.

 

이 얘기를 들은 남동생은 군대에서 여자에게 쓴 편지를 기억 못하는 남자는 이 세상에 없다고 그 남자가 거짓말 하는 거 같다고 했지만, 내가 볼 때는 정말로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얘가 군대에서 외로운 마음에 이런 편지를 한 열댓명한테 보냈나보다.. 했다. 그래서 정 기억 안나시면 기억 안하셔도 된다, 직장생활 어차피 매일 똑같은데 그냥 저 때문에 잠시 재밌는 일이 있었다 생각했으면 좋겠다. 하고 말았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기억이 났다고 그 남자에게 연락이 왔고, 어찌저찌 하다가 그 남자를 10년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사투리는 여전히 심하게 썼고, 평일에는 무조건 야근, 주말에도 근무를 밥 먹듯이 하며 영혼없는 사람처럼 피폐하고 살고 있었다.

 

내가 벌인 황당한 일 때문에, 며칠동안 꽤 재밌었다. 편지의 주인공인 이 사람과 내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또 어떻게 보면 10년이나 지난 편지 가지고 여자가 남자에게 수작을 건 거니깐 걔한테 좀 쪽팔리기도하다.

하지만 요즘 가만히 있다가도, 밤낮 일만 하는 걔가 참 딱하다는 생각이 종종 들고, 걔도 가끔 내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 있는 걔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1. 남자의 연봉

30살 넘어 만난 남자들은 심심치 않게 자기 연봉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 본인 연봉 얘기를 하는 것이 과연 나에 대한 관심의 표현인건지, 아닌지 혼란스럽다. 나는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들 말하니 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참 난감하다. 우와. 능력 있으시네요? 이래야 하는건지... 보통은 아~~ 하고 마는데.

묻지도 않는 연봉을 첫 만남에 말한 어떤 남자와 2번 함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지금 내 처지에 그 정도 남자가 연락하고 시간 같이 보내주면, 적극적으로 해도 될까 말까 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참 심드렁하다. 3월의 비극적 사건 이전의 평온한 마음으로 되돌아 간 것 같다. 남자에게 집착도 노력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그런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2. 학원까지 차 끌고 가기

평생 발이 완쾌되지 않을까봐 두렵다. 엄마 말로는 내가 걸을 때 아직도 약간의 절뚝거림이 느껴진다고 한다. 나는 나름대로 정상적으로 걸으려고 무지 노력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평생 약간 절뚝거리면서 걷게 되는건 아닐까 싶어서.. 너무 우울해지고 불안하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겠지 싶다.

학원에 너무 많이 빠져서 이제 더이상 빠질 수 없고, 전철은 계단 때문에 발에 무리가 가서, 저번 주에는 차를 끌고 학원이 있는 광화문까지 갔다. 내가 생각한 인천에서 광화문까지의 드라이빙은 한강 다리를 쌩쌩 달리고 창 밖으로는 여의도의 마천루가 보이는 그런 드라이빙이었는데, 상상과 실제는 달랐다.

토요일 아침인데도 차는 더럽게 밀렸고, 전철타면 1시간30분 걸리는데 운전을 해서 갔더니 1시간 10분 걸렸다. 올때는 차가 더 밀려서 1시간 24분이나 걸렸다.

거기에 주차료가 3만4천원이 나왔다. 미친 주차료... 결국 이번주에는 그냥 전철타고 학원에 갔다.

 

3. 피아니스트 언니

학원에서 친해지고 싶은 피아니스트 언니가 생겨서 언니 친해지고 싶어요. 라고 말했더니 친하게 지내자고 해서 이번 주말에 언니의 연습실로 놀러 갔다. 언니가 독일에서 유학하다가 한국 온지 얼마 안되서 친구가 별로 없고, 친하게 지내면 자기는 좋다고 해서 나도 좋았다.

언니는 잘난 체도 안하고, 고집이 좀 있긴 하지만, 특유의 순수함 같은 게 느껴져서 좋았다. 나이에 비해 순진한 게 더 이상 자랑이 아닌데 아직도 순진한 나는 내 또래 다른 직장인들과 이야기 할 때마다 그들과 심한 괴리감을 느끼고 거북해진다. 그들의 세상물정 밝음과 모든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과 조언을 들을 때마다 얘네는 뭐 이렇게 만사에 자신만만할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언니와 한 3시간 대화 하는 데 그런 느낌이 없었다. 종종 놀러가려고 한다.

나는 클래식은 안 듣지만, 책에서 클래식 작곡가들의 삶 같은 건 좀 읽었고, 유명한 작곡가들 중에 슈베르트가 유독 너무 불쌍했다. 볼품없는 외모, 살아 생전에 명성도 못 얻었고, 평생 단 한 명의 여자도 사귀지 못하였고, 짝사랑만 하다 창녀에게 옮은 매독으로 혼자 죽어간 슈베르트.

그래서 언니에게 슈베르트 너무 불쌍하다고 말했더니, 뭐가 불쌍하냐는 답이 돌아왔다. 몇 백년 지난 지금도 우리가 슈베르트 얘기 하는데 전혀 불쌍하지 않다는 거다. 나는 여전히 너무 불쌍한데 말이다. 난 후대에 내 이름 석자 아무도 몰라도 상관 없으니까 현생에서 행복하게 살다 죽고 싶다.

 

4. 한단계 위 수업

영어 학원에서 레벨 업을 해줬다. 어제가 그 수업 첫번째 수업이었다. 그런데 내 앞에 앉은 의사 언니가 자기는 외국인 선생님 아니면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맘을 먹은건지, 노골적으로 날 무시하고 얘기를 안하려고 해서 기분 나빴다. 그 언니 매주 오는 것 같든데 다음부터 절대 같이 안앉기로 했다. 영어 그렇게 잘하는 거 같지도 않든데 흥.

한단계 위 수업이 별로 재미가 없다. 선생님도 한단계 아래반 선생님보다 재미 없고. 이 수업이 대체 언제 끝나나 싶어서 시계를 몇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5. 미용실 언니

날이 갈수록 내 성격이 유해지는 걸 느낀다. 예전에는 택시 기사 아저씨나 미용실 언니들이 말거는 게 너무 싫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들은 아직도 좀 싫은데, 미용실 언니들하고는 이제 한 15분이면 친구가 될 수 있다. 어제 광화문 뒷골목에 있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는데 미용사 언니와 즐거운 대화를 했다. 내가 머리 감고 대충 드라이로 말리기만 하는 걸 알아 챈 언니가 드라이하여 헤어스타일 예쁘게 하는 열심히 방법을 설명해주셨다. 유익해서 열심히 듣고 계산을 하고 나서는데, 언니가 나에게 "즐거웠어요." 라고 인사를 했다.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오늘 아침에 언니가 말한대로 드라이 해봤는데 확실히 그냥 마구잡이로 드라이 한 것보다 예쁘게 되서 앞으로도 계속 언니 말대로 하려고 한다.

 

6. 잘못된 결혼

대학 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남자는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했다. 나는 아직 혼자인데 그 남자는 결혼해서 이번 달에 애도 낳는다고 하니, 난 실패자인 것이다. 하지만, 가끔 문자로 안부만 묻는 그 남자는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미혼 여자이기 때문에 일부러 불행한 체를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에게 아직 맺힌 감정이 있는지, 가끔 악담을 하며 내 속을 뒤짚어 놓곤 한다.

며칠 전에는 그 남자가 나에게 미친 제안을 했다.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하면 안된다는 걸 그 남자가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나를 인생의 패배자 취급을 하니, 좀 딱하다. 나도 딱하지만 그 남자도. 하지만, 뭐 내가 남 걱정할 때 아니니, 신경 끄기로 했다.  

 

7. 목련

나는 만개 했을 때 목련이 벚꽃보다 더 좋다. 목련은 나중에 질 때가 별로라고들 하지만, 그 나중을 다 고려해도 목련이 더 좋다. 흰 목련.

우리 아파트 앞 다른 아파트에 목련이 피는데, 10년 째 그 목련을 봄마다 보고 있다. 아직 피진 않았는데, 목련이 필 날만 기다리고 있다. 목련은 꽃이 내 주먹만 하고 색도 순결하고, 고귀한 느낌이 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아무래도 목련인 것 같다.


용서

단문 2015. 3. 25. 19:41

요즘은 나 빼고 우리팀이 다 바빠서, 할 일이 없는데 눈치는 보여서 회사에 오래 머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업무시간에 딴 짓도 하고 이렇게 블로그 글도 쓰고 그러고 있다. 

어제 동생이 누나의 자업자득이라고 말했던 걸 들으며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한테도 말 안했다. 동생이 자업자득이라고 말하며 내가 찬 남자들의 목록을 보낼 때 그 목록에도 전혀 없는 사람이다. 가족도 친한 친구도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그 남자에게 저지른 잘못이 워낙 크기 때문에 도저히 정말 친한 사람한테도 이 남자에 대해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 남자에게 저지른 짓을 말하면 아마 남자들은 다 나한테 오만정이 떨어질 것이고, 정말 친한 친구도 왜그랬냐고 다그치겠지.  

잊고 있다가 나쁜 동생 때문에 다시 쓰린 기억을 떠올렸다.

벌써 엄청 오래된 일인데, 아직도 그 일이 생생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나는 그 남자에게 용서를 구할 시간이 엄청 많았다. 그 남자를 멀리서 발견했을 때 난 비겁하게 숨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그냥 뒤돌아서 그 사람이 날 안봤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난 그때 뒤를 돌아서 가면 안됐다. 욕을 한사발 먹더라도 내가 정말 잘못했다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했다.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했다면 난 오랜 시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남자 연락처를 구할 수 있는 언니에게 연락처를 물어보며, 그냥 아주 예전에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려고 한다고 말했더니, 죽고 사는 문제로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면 지금 연락하는게 더 미친 짓이라고 말렸다.  

나는 가끔 말도 안되게 불행한 일이 닥칠 때 마다, 이게 다 그때 걔에게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다. 생각하곤 한다. 이상하게 효과를 발휘하여 이번에 정신병자처럼 찌질하게 아래 지껄여놓은 사건도 그래 내가 지금 당한 건 내가 걔한테 한 짓보단 덜하잖아. 하는 생각을 하고, 남자가 나에게 주는 고통에 대하여 충분히 수긍하게 되고 심지어 이 생각을 하면 마음이 엄청 편안해진다.

그런데 다신 연락하지 못할 것 같았던 그 사람에게 연락할 방법을 오늘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하는 건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이니 가만히 입닥치고 있어야겠지만, 정신이 나가서 순간 연락을 할 뻔 했다.

물론 나보다 더 나쁜짓을 남자에게 해놓고도 아무런 일 없이 잘만 사는 여자들도 많다. 하지만... 내가 걔한테 저지른 잘못은 내 기준에서는 너무 큰 잘못이었다. 걔는 다 잊었을지 모르는데... 차라리 걔가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지른 잘못이 너무 크다면, 용서를 구하는 데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난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가끔 하나님이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지만, 이 죄는 하나님은 용서해도 내가 내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겠다. 난 행복할 자격을 그때 상실했다.


사귄 것도 아닌데.

일상 2012. 8. 15. 23:18


오늘 자유공원에서 바라본 석양




올해 4월 초에 만나자마자 반한 남자 이야기를 썼다. 그 순간만큼은 그 남자는 정말 내 인생의 최고의 남자였다. 하지만 여러가지를 알게 된 후에는 최고의 남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게 되고,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고민을 혼자 좀 했었다. 

고민을 하면서도 한 4개월간 가끔 만났다. 보통 소개를 받은 후 3번 이상 만나면 남자 쪽에서 사귀자 말자 이런 말이 있다는데 아무 말도 없는 걸 보면서 이건 뭔가 싶으면서도 나와 친구 하고 싶은건가. 그럼 만약에 사귀자고 하면 내가 사귈 용기는 있는건가. 이런 김칫국 실컷 마시는 남 부끄러운 고민을 하면서도 또 만나서 얘기하면 계속 같이 있고 싶은 느낌도 들고 그랬다.

하지만 도무지 그 사람이 다니는 직장 상황 상 주말에 진득하게 보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도 쓰리고. 보고 싶은데 또 그런 말을 하지도 못하고. 내가 용기를 낸다고 해도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이렇게 그냥 혼자만 기다리다가 결국 아무 사건도 사고도 없이 몇 번 본 걸로 그 남자와의 관계는 끝이 났다.

이제까지 잠깐 잠깐 만난 남자들은 항상 서울에서 만나거나, 인천에서 만나도 번화가에서만 만났는데 그 남자는 우리집 앞에서 보거나 내가 진짜 자주가는 동인천이랑 자유공원을 같이 가서 그런지 자꾸 생각이 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동인천을 가고 오늘도 자유공원에서 석양을 보고 왔으니 생각이 안날 수가 있느냔 말이다.

끝난 관계에 여러가지 의문을 품고 결론을 내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나와 그냥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지 참 궁금하다. 솔직히 말하면 난 그 남자도 날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느낌이 모두 다 허구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괘씸스런 마음도 든다. 대체 그러려면 나한테 나중에 어디 가보자. 뭐 해보자는 말은 왜 한건가 싶고. 크크크크. 근데 그런 말은 누구나 그냥 할 말 없으면 할 수 있는 말인데 내가 심하게 의미부여를 하는건가 싶어서 쪽팔리기도 하고 심각하게 나한테 피해망상 같은 게 있는건가 하는 생각도 좀 든다. 

난 사귀지도 않은 남자랑 영원히 안녕한 것에도 이렇게 혼자 괴로워하는데 내가 죽도록 좋아해서 사귀다가 헤어지면 대체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안된다. 

이런 걸 보면 연애를 하고 헤어지고 또 지금도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에 비해서는 얼마나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것인가 하는 생각에 경외감마저 들고, 올해도 그냥 난 혼자로 마무리 하겠구나 하는 나의 이 예감이 또 진짜가 되겠구나 싶다.

그런데 저번 토요일에 급히 나가고 싶지도 않은 소개팅에 어쩔 수 없이 나갔다가 전철 안에서 아이구 기구한 내 팔자야. 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린 나는 당분간은 차라리 혼자가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기로 했다. 뭐 당분간이 아니고 영원이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결국 이렇게 여름이 지나가고, 2012년을 불과 4개월만 남겨놓은 9월이 되면 나는 가을을 탈 것 같다. 더울 땐 괴로웠는데 침대에 누워서 벌써 창문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공기가 느껴지면 어쩐지 좀 서운하다. 하루하루 난 늙어가고 생기를 잃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함께 할 수 없음

일상 2012. 5. 27. 01:08

나는 아무래도 올해 상반기, 또 올해 하반기에도 아니 영원히 서서히 내리막을 걷는 지금 상태를 유지할 것 같다. 나는 일생동안 너무 우울해서 겪었던 몇 번의 위기에서 나름대로 잘 빠져나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우울함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다른 게 아니라 친한 친구 만나고, 집에서 혼자 영화보고 책보고 음악 듣는 거다. 내가 우울함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는 큰 돈도 별로 안들고 사람도 별로 필요없고... 내가 이런 방법으로 우울함을 풀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좋아하게 된 남자가 하필이면 나와 전혀 다른 생활패턴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이렇게 주말에 시간이 남아돌고 집에서 혼자 매니큐어 바르고 낮잠자고 놀고 있는데 볼 수가 없다. 한마디로 도저히 발전할래야 발전할 수가 없는 사이다.  얼굴을 못본지도 3주가 다 되가서 벌써 가물가물하다. 그냥 저쪽서 다 포기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자꾸 우울해진다. 우리 둘은 도저히 안될 것 같으니 알아서 나한테 연락하지 말고 내가 연락해도 외면해 주시면 편할텐데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될 사이라는 생각을 하고나니 마음이 쓰려서 못견디겠다.

 

내가 바라는 삶은 거창하지 않다. 죽을만큼 출근하기 싫은 직장이 아니면 되고, 외롭고 심심할 때 만날 수 있는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뿐이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이후 들어간 직장은 전철에 몸을 던지고 싶을만큼 출근하기 싫은 직장이었고, 25살 이후로 처음으로 좋아하게된 남자는 만날 수가 없으니 원.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최고로 싫은 걸로 이력서 쓰기로 정하기로 했다. 정말 세상에서 최고로 싫다. 금요일 오후에 커리어 사이트에서 구직광고를 보는데 정말 어느 한군데도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보였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점점 계약 만료일은 다가오고, 난 전혀 모르던 계약직의 설움을 몸소 체험 중이다. 월급이 너무 적어서 불만이었는데 금요일에 구직사이트를 보다보니 그나마 월급주면서 나같은 사람을 써준 것만으로 고마울 지경이다.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겠지 라는 생각도 하긴 하는데... 니들 정말 구역질 난다고 때려치고 나온 회사 사람들이 내가 비참히 살고 있는 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 지 생각하면 당장 죽고 싶은 기분이 되고만다.

 

인생이 17살 이후로 지속적으로 한계단씩 내려가고 있다는 느낌도 끔찍해서 엊그제는 저번에 밑에 집에 불나서 우리집에 연기가 가득찼을 때 비상벨이 안울렸다면 난 어쩌면 좀 편히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좀 했다. 마음에 여유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데 난 회사에서 친한 후배랑은 엄청 친하게 지내고 저번 회식 자리에서는 내가 하도 웃겨줘서 나랑 친한 언니는 소화도 잘 안됐댄다. 이렇게 웃고 떠들면서 잘 지내는 중이고 순간순간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행복하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밤이 되면 좀 반 미친 상태가 되는 것 같다. 다 극복하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내면 어떻게든 시간이 가겠지라고 생각하지만, 힘이 조금 든다.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진짜로 묻고 싶은 말

일상 2012. 5. 13. 00:48

오늘부터 주말마다 운전 연습을 하기로 했다. 더불어 주차연습도 함께. 오늘 동생을 옆에 태우고 롯데백화점에 가서 주차하는데 진짜 어찌나 진땀을 뺐는지 땀한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난 이런식으로 약 1년은 더 해야 남들하는만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운전을 해보니 괜히 조바심 낼 필요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장 운전할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좀 늦더라도 뭐 언젠가는 하겠지. 이런 식으로 그냥 1년동안 하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가고 싶은 곳도 가고 주차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동생과는 어벤져스를 보러 갔었는데, 난 토르도 안보고 아이언맨, 헐크도 안보고 하여튼 거기 나오는 모든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단 한편도 보질 않아서 당최 뭔 소린지 알아먹기가 힘들었다. 그런데도 영화는 유쾌했다. 모든 스토리 다 몰라도 나름 깔깔 웃으면서 웃을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스케일도 장난이 아니고. 

영화를 한창 보고 있는데 카카오톡이 왔다. 자기는 집에서 쉬고 있는데 나는 뭐하냐는 물음였다. 동생과 있다고 했더니 이내 포기를 하고 재밌게 놀라는 대답이 왔다. 난 갑자기 술이 확 땡기는 바람에 동생을 먼저 보낼 생각으로 보자고 했고, 결국 만났다. 

난 솔직히 연락을 왜 이렇게 안하냐고 묻고 싶었다. 

아마 그 남자도 나에게 묻고 싶은 말이 따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맥주 500cc 두잔을 마시면서 실없는 얘기로 서로 극존칭을 쓰며 얘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나는 아직도 "미영씨"다. 

겨울코트 입을 때 만나서 반팔입을 때까지 이게 뭔지 모르겠다. 진짜 나랑 친구를 하고 싶은 건가.



우리 집 앞

단문 2012. 4. 29. 19:58

어제는 원래 정한 시각보다 한시간 반 늦는 것에 대하여 이러려면 그냥 나중에 보자고 짜증을 좀 부리다가 다시 변덕을 부려서 택시타고 오라고 해서 늦은 시각에 남자를 만났다. 나는 지나치게  감정적인가보다. 처음에는 그렇게 좋았던 사람이 한번 두번 보다 보니 편해지고, 이젠 내가 처음에 느꼈던 감정이 또 아득하기만 하다.

솔직히 이렇게 남자랑 단둘이 얘기하고 술마시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이게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는 건지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친구하고 싶은 감정을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상대방이 이렇게 나오면 저렇게 나오면? 하고 상상해보면 나는 진심으로 답이 없다.

어제 헤어진 시각이 너무 늦은 시각이라 우리집 앞 진짜 아파트 통로 앞까지 날 데려다 줬는데, 23살 이후로 우리집 앞까지 온 남자는 어제 그 남자가 처음이었다. 음... 생각해보니 밤에 지금 사는 우리집 앞에 온 남자는 최초네

이상한 기분이었다. 뭔가 내 활동반경을 침해당한 것 같기도 하고,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기도 하고. 우리집 앞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엄한 상상이 갑자기 들어서, 결국 또 눈을 피하며 급히 들어가 보겠다고 얼버무렸다. 아 모르겠다. 나 잘하고 있는건가... 일만 벌이고 있는건가. 역시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면 괴로움이 뒤따르는 것이다. 남이 받는 상처에 무관심해지면 참 쉬울 것 같은데. 난 남녀관계에서 갑이 아니라 을이었던 적이 더 많아서 그런가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Second Date

일상 2012. 4. 16. 17:57

대학생 때 어떤 애가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좋아져서 계속 걔 만날 날만 기다리다가 눈빠지게 기다려서 2주일만에 떡하니 만났는데 부풀었던 마음이 풍성 바람 빠지듯 빠져버린 적이 한번 있었다. 진짜 신기했다. 전주에 내려가 있는 동안 진짜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잠을 잘때까지 어쩌면 자면서도 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쓸 한달간의 에너지를 이주일 안에 다 소진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랬을까? 만나자마자 내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 하지만 나같이 이기적인 인간이 그렇게 단시간에 누굴 좋아할 수 있는게 신기했다. 더불어 그렇게 단시간에 마음이 정리할 수 있단 것도 신기했지. 
저번주 금요일에 만났던 그 분은 얼굴이 제대로 기억이 안나서, 한참만에 누군지 알아봤다. 아마 저번 첫번째에 떨려서 제대로 못 쳐다보느라 얼굴을 제대로 숙지 못한 탓도 있겠지. 아.. 이 분 이렇게 생긴분이었구나. 라고 깨닫고, 그 분이 입고 온 남방, 자켓, 면바지, 신발을 보고 예쁘구나 생각했다. 두번째라 어색했고, 잠깐 나갔다가 다시 밥을 먹으러 들어와서 영화보는 장소로 가고.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각자 혼자 팔짱끼고 음료수나 마셨다. 좀 민망한 대사가 나올 때 안쳐다보려고 노력했다. 중간중간 짧게 대화했다가 웃다가 영화가 끝났는데 시간이 좀 애매했다. 그냥 들어가긴 아쉽고, 그렇다고 어디 들어가서 앉아있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는데, 그 분이 갑자기 자기가 가고 싶었던 술집에 가자고 해서 난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따라갔다.
가서 얘기하는 중에 그 분에 대한 여러가지 신상정보를 알게됐는데, 젠장 죄다 실망스러운 것들 뿐이야. 전부 최악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앉아서 같이 마시는 사케는 술술 들어가고. 내 앞의 남자는 오랜만에 마시니까 맛있다면서 술을 한병 더 시킬까 말까 심각히 고민했다. 그러다가 나를 보면서 내일 미영씨 출근하시는데 너무 늦어서 안되겠다고 가야될 것 같다고 일어나서 나왔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어제 알게된 정보를 조합해보면, 이 남자는 정상적인 회사. 그러니까 9시 시작 6시 퇴근 주말 휴식 이런 회사가 전혀 아니기 때문에 서로 쉬는 날이 겹칠 일도 거의 없고, 그러다보니 만나도 항상 이렇게 내일 출근이니까 그만 가자 라는 식으로 헤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 사이가 더 발전한다고 해도 난 항상 외로울 수 밖에 없겠지.
11시에 집에 도착해서 급히 샤워를 하고 누운 한편으로는 내가 왜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고 하필 보자마자 반하게 됐을까. 주님을 원망하며 잠들었다.

근데 이 블로그 점점 진짜 내 진짜 일기장 처럼 되어가고 있구나.


다이어트 계획

단문 2012. 4. 12. 01:09
저번달에 걸린 감기몸살과, 저번주 내내 시달린 설사 때문에 몸무게가 2kg이 빠졌다. 허리와 엉덩이 허벅지 쪽으로 좀 빠진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작년에 입었던 치마와 반바지들이 죄다 커져서 거울보면 좀 웃긴다.
잘보이고 싶은 사람이 생긴만큼, 그런 큰 옷을 입을 순 없다고 생각하여 오늘 대대적인 쇼핑을 했다. 내 아동복 몸매에맞는 옷 찾기 힘들었다. 그나마 작게 나오는 브랜드가서 제일 작은 사이즈 옷을 샀다.
난 이 기세를 몰아서 내일부터 걷기와 뛰기 운동을 해서 2kg을 더 빼려고 한다. 오늘 산 바지를 보니 허벅지 한쪽당 1kg씩 빼면 딱 예쁠 것 같다.
저번주 내내 설사에 시달린 건 안하던 짓을 해서인 것 같다. 소개팅을 연달아서 했더니 금요일밤에는 밑에 포스팅한 분 만나고, 일요일에는 전 소개팅한 분 만나고, 작년 남자 한번 제대로 못만나본 내가 이런 짓을 하니 몸에서 반응이 오는 것이다.
여하튼 마음이 안가는 남자들은 자연히 정리됐고, 난 렉서스 그랜져 건너뛰고 차없는 남자 연락만 기다리고 산다. 빨리 주말이 왔으면 좋겠고 내 허벅지에 붙은 2kg의 지방도 빠져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