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만에 처음 가서 느낀 건 미녀들이 참 많다는 거였다. 첫날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미녀들이 자꾸 버스에 탑승해서 친구와 감탄했다. 미녀일 뿐 아니라, 다들 늘씬하기까지 하다. 체감 상 한국 여자들보다 2.5 배 정도 예쁜 것 같다. 전부 상향 평준화 되어 있는 느낌이다. 중국 여성 전통 의상인 치파오가 왜 다리를 강조하게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었을 정도로 대만 여성분들 다리가 다 하나같이 예뻐서 여자인 나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중년의 여성들도 예쁜 여성분들이 참 많았다.

 

2. 그 예쁜 여자들이 다 전혀 멋지지 않은 남자와 손잡고 팔짱끼고 다닌다. 남자들은 한국 남자가 훨씬 낫다. 대만 남자들은 복받았다.

 

3. 남자들이 잘생겼다는 생각은 안들지만, 평균적으로 우리나라보다 키가 큰 것 같다. 젊은 남성들은 별로지만, 중년의 남성들이 다 키가 크고 깔끔하고 옷도 잘 입고 다니시는 편. 우리나라의 배나오고 목소리 크고 상식 없어 보이는 등산복 차림의 중년 아저씨들과 천지차이였다. 배나온 아저씨를 3박 4일 내내 한번도 못본 것 같다. 올 때 탔던 택시 기사 중년 아저씨는 배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멋졌다.

 

4. 집에 와서 대만 미녀들에 대해 엄마께 말씀드렸더니, 우리 엄마가 볼 때마다 진짜 예쁘다고 생각한 동네 아가씨도 대만 출신 화교 집안 딸이라고 한다. 난 그 분을 못봤지만 엄마 말로는 얼굴은 연예인 수준이고 다리가 그렇게 예쁠 수 없다고. 앞으로 대만은 나에게 늘씬한 다리를 가진 미녀들의 나라로 기억될 것 같다.

 

5. 중국말이 시끄러운 게 아니라 중국 사람들이 시끄러운 거였다. 같은 중국어를 쓰지만, 대만 사람들은 조용했다. 지하철 플랫폼에서도 우리 목소리만 들릴 정도였고, 길가는 사람들 목소리도 그리 크지 않았다. 어디선가 엄청 큰 소리의 중국어가 들려서 보면 중국 본토 관광객들. 공중 도덕 잘 지키고 길 깨끗한 건 일본 수준이었다. 건물들이 좀 낡았지만, 성숙한 시민의식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것에서 우리나라보다 선진적인 느낌이 팍팍 든다. 신호등을 어기거나 무리해서 끼어드는 차량,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 차, 무리하여 세게 달리는 차는 전혀 없다.

 

6. 난 현지 음식에 대해 큰 집착도 없고 꼭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안하는 편이다. 언제나 어떤 나라에 가도 그랬던 것 같다. 이번에도 내가 대만 음식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고, 깨작거려서 친구가 좀 서운했다고 한다. 더운 나라라서 그런지 향이 강하고, 좀 짰다.

 

7.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40장도 안 찍은 것 같다.

 

8. 마오콩 이라는 곳에 가서 차밭을 보고 산책로를 걸을 계획이었지만 엄청난 비로 인해 모든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식당에서 밥 먹고 차만 마셨다. 2시간 넘게 가만히 앉아서 비오는 소리 듣고 차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래 동영상은 우리가 밥먹고 차마신 식당에서 찍은 비오는 모습인데... 앞이 안보일 정도의 엄청난 비가 2시간 30분 정도 쉬지 않고 왔다. 그래도 우리가 식당에 들어온 후에 비가 쏟아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9. 대만 사람들이 많이 마신다는 우롱차가 맛있었다. 조금 사왔다. 홍차, 녹차보다 좋았다. 우롱차가 뭔지 몰랐는데 지금 찾아보니 홍차와 녹차의 중간이구나...

 

10. 대만에서 제일 가볼만한 곳은 스린 야시장인 것 같다. 하지만 스린 야시장 갔을 땐 내가 너무 지쳐 있었다.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아휘가 장의 부모님이 하는 야시장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한그릇 하고 그 포장마차에 있던 장의 사진을 훔쳐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영화에서 봤던 그대로의 분위기다. 야시장에 먹거리가 넘쳐나지만, 나는 너무 지쳐 있었고, 야시장 오기 직전에 먹은 아이스크림 때문에 약간 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많이 먹지도 못했고, 구경도 못했다. 친구에게 미안했다. 친구는 먹고 싶은 것 많은 것 같았는데...

 

11. 다시 말하지만,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 해외 여행이 될 것 같다. 당분간은 해외 생각이 전혀 나지 않을 것 같다. 여행도 힘이 들고 다리도 발도 너무 아프고.. 느끼는 것도 있고 잠시 동안 회사와 완전히 담 쌓을 수 있는 점은 좋지만 여행을 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 체력으로는 앞으로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


나같은 경우는 여행 후 계속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건 유물, 유적지, 자연경관 이런 게 아니더라.
난 여행 중 길에서 봤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난다. 그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애써 집중하여 쳐다본 것이 아니었어도 말이다. 그래서 내가 갔던 해외 여행지 중 기억나는 사람들을 여기에 쓴다.

오사카 여행 -2008년. 1. 오사카에서 히메지성을 보러 히메지시까지 갔었다. 성 다 보고 내려올 때가 마침 그 동네 중학교가 끝나는 시각이었다. 교복입고 자전거 타던 중학생 애들. 귀여웠고 2월인데 겉옷도 없이 그냥 다녀서 춥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2. 그 다음 오사카 오는 기차에서 맞은편에 앉았던 털모자 쓴 예쁜 여자애. 얼굴이 참 예뻤다. 3. 우리가 사려는 티켓보다 더 싼 왕복 티켓을 알려주느라 화이트보드에 그림 그리고 가격 쓰며 애쓰던 역무원 아저씨. (난 영어도 일본어도 못했으니까) 아저씨는 참 차분해보였고 특히 내성적인 눈동자가 기억에 남는다. 눈만 봐도 그의 성격을 누구라도 간파할 수 있을 정도였다.

큐슈 여행-2008년. 1. 구마모토역에 있던 젊은 역무원 총각. 한국에서는 절대 못봤던 피부색에 놀랐다. 까매도 너무 까맸다. 그런데 그 총각은 아직도 나에겐 최고 잘생긴 일본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2. 역시 구마모토 에서 전차 안에서 봤던 중학생 남자애들. 촌티가 줄줄 흘렀는데 플라스틱 안경같은 걸 티셔츠에 걸고 다녔다. 걔네도 너무 까맸다.

도쿄 여행-2009년. 돌아오는 날 전철에서 봤던 남중학생(근데 나 중학생들만 열심히 봤나…변태같이)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인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오사카 큐슈에서는 일본인이 내 예상과 다르군…생각했는데 그 남자애는 누가봐도 일본인이었다.

영국, 독일은 나중에 적겠다. (이래놓고 또 안 쓰겠지만)


보고 싶은 복숭아 뼈

일상 2015. 2. 15. 23:51

 1.  발의 붓기가 안 빠지고 있다. 저번 주말도 이번 주말도 거의 아무 것도 쉬고 있는데도 나아지질 않는다. 내 왼쪽 발을 잘 보면 발가락 사이 사이에도 멍이 들어 있다. 발의 멍과 붓기를 볼 때마다 넘어졌을 때 고통이 생각난다. 정말 아팠다.  복숭아뼈가 붓기 때문에 사라져서 아직도 안 보이는 상태다. 반깁스를 한 이후로는 입을 수 있는 옷이 한정되어 매일 매일 고무줄 바지만 입고 있다. 그 바지만이 무릎까지 접어서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바지는 전부 스키니라 올라가지 않고.. 스타킹은 한 쪽을 무릎 까지 자르지 않는 이상은 못신을 거다. 

 

2.  폴 토마스 앤더슨의 새 영화가 나왔다. 이번 영화 포스터도 역시 멋지다. 아마 영화도 멋질 것이다. 난 아직 There wil be blood 도 안보고, Master 도 못봤지만, 그 이외 다른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는 무지 좋아하니까. 언젠가는 다 보리라 생각하고 있다. 사실 There will be blood 는 어린 애가 귀 머는 장면부터 불쌍해서 보기를 멈춘 뒤로 못보고 있다. 새 영화가 나왔다길래 할일도 없고 심심해서 구글에서 Paul Thomas Anderson 을 쳐봤다.


 


  만 27세에 부기나이트 같이 대단한 영화를 만드신 분이 얼굴도 이렇게 잘 생기셨다니. 오늘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를 모조리 찾아서 봐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어떻게 생긴지 모를 때도 그의 영화를 좋아했지만, 얼굴을 보니 더 좋아지는 이 마음은 어쩔 수가 없군.

 

3.  친구와 4월 말에 대만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일기에 종종 등장하는 친구와. 가장 친한 친구인데 친구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함께 1박 2일 여행도 한번 못가봤다. 올해 정말 큰 맘 먹고 시간 내서 가는 거라 기대가 된다. 서로 게으른 편이라 맘이 편하다. 오늘 여행상품을 검색해서 싼 걸 찾긴 찾았는데 비행기가 불안하다. 오늘 내가 찾아서 예약 걸어놓은 대로 확정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4.  작년에 본 영화가 대부분 다 좋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을러서 여기 다 감상평을 쓰진 못했지만, 정말 전부다 괜찮았다.

 

원데이, 이터널 선샤인, 킬러들의 도시 (한국 영화 제목 왜 이러는지... 원제: In Brugge) , 어바웃 타임, 남자사용설명서, 싱글맨, 노트북, 부기나이트, 겨울왕국, 주먹왕 랄프, 언어의 정원, 인 디 에어, 공주와 개구리,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저, 그랜토리노, 아이 엠 러브, 좋은 친구들 (마틴스콜세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늑대아이, 아르고, 그녀, 로마 위드 러브, 초속 5cm, 엣지 오브 투마로우, 컨저링, 풀 메탈 자켓,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드래곤 길들이기2, 블루 재스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바스터즈: 거친녀석들, 보이후드, 제인에어, 나를 찾아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시리어스 맨

 

이 중에서 어바웃 타임, 로마 위드 러브,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엣지 오브 투마로우, 초속 5cm, 드래곤 길들이기 2 빼고 다 좋았다. 진짜로.

 

어바웃 타임은 너무 교훈을 주려고 해서 싫었고,

로마 위드 러브는 아무리 이게 영화 컨셉이라지만 너무 성의 없이 만들었고,

혹성탈출2 는 인간 쪽 이야기가 너무 약해서 지루했고,

엣지 오브 투마로우 는 로봇 수트 입은 전투신이 너무 투박하고 약했고,

초속 5cm 는 나쁘진 않았지만 일본 애들의 첫사랑에 대한 집착은 그만 보고 싶다는 생각을 좀 했고,

드래곤 길들이기2 는 안 만드는게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기억나는 장면이 없다.  

 

최고를 뽑기 어려울 정도로 다 좋았지만, 역시 최고 재밌었던 건 샤이닝이고, 보면서 깔깔 웃었던 건 좋은 친구들 이다. 특히 가발 선전 하던 아저씨가 로버트 드니로한테 맞는 장면이 최고 웃겼다. 다시 본 영화였는데 역시 명작.

 

5.  집에서 가만 있다보니 핸드폰에 있는 음악 랜덤 플레이 하기도 지쳐서 가지고 있는 CD 좀 찾아서 들으려고 오랜만에 CD 장을 봤다. 그런데 내가 Pat Metheny Group 의 Letter from Home 앨범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난 내가 이 앨범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는데, 아마 사놓고 한번이나 듣고 안들었나보다. 지금도 그 앨범을 들으며 일기를 적고 있다. 이 좋은 앨범을 내가 왜 사놓고 열심히 안들었는지 모르겠다. Simon and Garfunkel 앨범도 있는지 몰랐는데 CD 장에 고이 꽂혀 있었다. 그나저나 사이먼 앤 가펑클 아저씨들 CD 표지에 있는 사진 진짜 촌스럽다.

 

6.  아빠가 인터넷 쇼핑을 못하셔서 내가 가끔 CD를 사서 드린다. 그런데 아빠에게 사줬던 CD 를 또 사드리는 실수를 범하였다. 내가 전에 브람스,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이미 사드렸댄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또 브람스,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샀다.. 아빠는 그래도 다른 연주 버전이니 비교하며 듣는다고 받으시긴 했는데 다른 때처럼 기뻐하지 않으셨다. 왠지 죄송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매년 똑같은 제도 선물세트 받는 에단 호크 보면서 어떻게 자기가 준 선물도 기억을 못하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똑같은 짓을 했다.

 

7.  오늘 배철수의 음악캠프 아티스트 스페셜은 스매싱 펌킨스 였다. 난 스매싱 펌킨스가 해체 했을 때 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그들의 전성기 시절을 모른다. 당연히 공연 같은 것도 볼 수 없었다. 배철수 아저씨가 스매싱 펌킨스의 한국 공연 대단했다고 말하는데 부러워 죽을 뻔 했다. 난 Nirvana 보다 Smshing Pumpkins 가 더 좋다. 물론 둘다 좋고 둘다 대단한 매력이 있고, 너바나도 좋아하지만, 굳이 꼭 하나를 꼽으라면 스매싱 펌킨스 음악이 더 세련되고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바나는 뭐... 음악적 완성도 이런게 필요 없을 정도로 멋지고 상징적인, 락스타라는 말이 그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밴드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바나 에 비해 저평가 된 스매싱 펌킨스에 좀 딱한 마음이 든다.

   첫 곡으로 Today 의 기타 간주가 나오는데,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다. 난 여전히 이 노래의 가사를 다 외우고 있고, I'll burn my eyes out 이라는 가사가 이렇게 좋은데, 나이만 33살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Smashing pumpkins 의 Siva 라는 곡을 참 좋아한다. 이 노래 뮤직비디오를 보니 빌리코건 너무 젊어서 적응이 안된다. 이 곡은 Sprinkle all my kisses on your head 라는 가사가 좋다.

 

 

 

7.   다음 주는 이틀만 일하면 된다. 설 연휴 끝난 후에는 구두 신을 수 있을 정도로 내 발이 나아 있었으면 좋겠다. 쓸 데 없이 일기가 참 길었는데, 알다시피 할 일이 참 없어서 그렇다.

 


  다른 블로거들처럼 여행 사진 별로 시간 별로 여행기를 적을 엄두도 안나고 그정도로 부지런하지도 않아서 결국 이런 식으로 여행기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원래 여기 블로그에 쓰던 사진 별로 없는 여행기 시리즈는 때려치고  작년 여행부터 다시 간단명료한 여행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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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애 첫 유럽의 도시를 런던으로 정한 건 순전히 어렸을 적 좋아했던 락밴드들 때문이었다. 특히 Blur  의 London Loves 라는 곡이 아니었다면 난 아마 평생 런던을 안갔을지도 모를 일었다. 

  런던 사람들은 무표정하고, 친절하지 않지만, 우산도 없이 비를 그대로 맞으며 인상쓴 체 걸어다니는 런던 사람들이 딱 내가 그리던 모습이라 한편으론 흡족했다.  

  런던에 도착한 첫날 밤 낯선 호텔에서의 밤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말 내가 멀리 왔구나 하는 생각과 우리집에서는 안들리던 이상한 전기 발전기 소리와 높았던 호텔의 천장. 생각보다 기대되지 않는 여행 첫날밤 기분에 적잖게 당황하면서 깊게 잤다. 

  런던에서 좀 힘들다 싶은 일 그러니까 서비스 직이나, 공항 세관, 음식점 같은 덴 어김없이 이주민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 왜이렇게 친절하지? 하고 보면 영어 발음이 약간 정통 영어 발음이 아닌 이주민들...)  런던 사람 5명 중 1명은 영어 아닌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 이라더니 진짜 그렇구나 싶었다. 타국에 와서 자국민들은 힘들어서 안하는 일 하는 이주민들을 보니 좀 딱했다. 

  나보고 런던 같이 날씨는 수시로 우중충하고 음식은 더럽게 맛 없는 곳에서 평생 살라고 하면 정말 크게 절망할 것 같다. 특히 런던 식당에서 먹었던 수많은 맛없는 음식들을 생각하면, 런던 사람들도 참 불쌍하구나 싶다. 

  작년 런던 여행에서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가는 박물관을 한군데도 안갔다. 그 이유 중 첫째는 해외까지 가서 실내에  갇혀 있는 게 싫어서였고, 두번째 이유는 잉글랜드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 약탈해 온 진열품들을 보기 싫어서였다. 이게 약탈당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복수라 생각했다. 묵었던 호텔에서 대영박물관까지 걸어서 3분이었는데도 여행 끝날때까지 결국 끝끝내 안들어갔다.  이런거 보면 나도 참 별 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데, 별로 후회는 없다. 대영박물관 말고도 런던에 볼 건 차고 넘쳤다. 

  런던 다녀온 지 얼마 안되서 드라마 셜록을 보는데 내가 걸었던 곳, 갔던 장소가 나오니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았지만, 아마 앞으로 다시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런던 갈 돈이 있으면 다른 나라 가겠지. 물가도 너무 비싸니까.


  가이드 따라 다녔던 건 작년 런던 여행이 처음이었다. 가이드 투어 하면 재미 없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도 않았다. 비용만 별로 비싸지 않다면, 난 다음에도 가이드 투어 하고 싶을 정도다. 처음에는 트레팔가 스퀘어랑 버킹검 궁전 그리고 옆에 있는 그린파크 갔었는데 사진이 쓸만한 게 없어서 그 다음으로 왔던 피카딜리 서커스 부터 시작. 

 

   나는 여행 프로그램 같은 거 볼 때도 풍광 이런 거 보다 그 나라 사람들이랑 이야기 하고 대화하고 이런 거 보는 걸 더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 여행을 더 선호하는 지도 모르고. 영어도 안되고 또 원래 낯선 사람한테 말 같은거 잘 못붙이는 성격이라, 런던 가서도 뭐 말한마디 안하고 오긴 했지만, 피카딜리 서커스에 놀러 나온 런던 시민들 구경이 재밌었다. 저 에로스 동상 밑이 런던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날 때 애용하는 장소라고 한다. 

  이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우리나라 서울은 얼마나 사람이 많은 곳인지... 런던 사람들이 약속장소로 제일 많이 애용하는 장소라는데도 저렇게 한가하고 계단에 앉을 자리가 넘쳐난다. 서울도 아닌 인천에서 사람들 많이 만나는 부평역 지하상가 분수대만 해도 저 사진에 있는 거 보다 사람이 약 20배는 많은 거 같다. 서울은 뭐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코엑스 중앙 광장을 생각해보더라도. (그곳은 지옥) 

  아침에 좋았던 날씨가 피카딜리 서커스 갔을 쯤에는 급격히 흐려져서,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저런 날씨로 변해있었다. 

  일요일 낮시간이 사람이 많을 시간은 아니지만, 서울에 비한다면 정말 한가롭다. 난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한가지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것은 바로 런던 남자들이 무지무지 멋있다는 거다. 크크크크. 맘 같아선  그냥 저 에로스 동상 밑에 앉아서 잘생기고 옷 잘입은 남자들 구경이나 하루종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영국 남자들 멋있다는 건 여행 갔다와서 보는 사람마다 아는 사람에게 한 백만번씩은 한거 같아서 그만 말해야 하지만, 오 그것은 진리! 내가 만약에 다시 영국에 간다면 그것은 아마도 영국 남자 때문일지도.

 

  가끔 뉴스에서 우리나라 시내 간판이 너무 천박하다 어지럽다면서 유럽 사례를 보여주는데, 보다시피 런던의 시내에는 건물에 간판도 별로 눈에 안 띄고 예전 건물 그대로 쓰고 있어서 그런지 엄청 고상하다. 근데, 난 우리나라가 유럽 시내처럼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휘황찬란하고 도무지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는 무자비하게 큰 간판이 오히려 유럽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국적일 수 있는 거니까. 얘네들은 매번 이런 건조하고 고상한 건물만 보고 살았으니 오히려 그런 거에 매혹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난 어렸을 때 왕가위 영화 속 홍콩 시내 한자로 된 형형색의 네온사인이 엄청 멋있어 보이고 그랬으니까.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웨스터민스터 사원. 원래는 천주교 성당으로 쓰이다가, 영국이 국교를 성공회를 바꾸면서 부터는 성공회 예배 보는 사원으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아름답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다. 미학적으로 막 뛰어난 건물은 아닌 거 같다. 문에 새겨진 조각은 정말 예뻤지만, 건물 자체로만 보면 균형이 안 맞는 느낌이었다. 

 

  이번에 영국 여행 갔다온 이후로는 유럽에 있는 나라 검색할 때 반드시 종교도 함께 검색해서 보곤 한다. 천주교가 몇% 인지, 프로테스탄트는 몇% 인지 이런 거 말이다. 워낙 유럽의 건축이나 문화 자체가 종교랑 밀접하다보니 그런 거 같다. 


  영국에서도 종교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수많은 사람이 순교했다. 그 때 수많은 사람이 죽은건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는 교리가 지배층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지만, 어차피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데 천주교와 개신교는 왜 그렇게도 죽도록 싸운걸까? 

  나야 개신교도라 그런지, 천주교가 당시 워낙 부패했었기 때문에 개신교가 탄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개신교가 천주교 보다 도덕적이라는 건 아니다. 미국가서 걔네들이 학살한 인디언들만 봐도... 난 전생에 인디언이었는지 그 생각만 하면 머리에 피가 막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든다.) 종교 간의 갈등이 한창 심했을 때는 개종하면 살려주겠다고 해도 절대 개종 안하고 갓난아이를 안고 스스로 화형을 청하는 여자들도 많았다고 하니, 사람들이 신념을 한번 품으면 정말 무섭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빅벤을 보러 왔을 때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도시를 상징하는 무언가가 있는 건 행운인 거 같다.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물은 뭘까? 숭례문? 남산? 

  이것도 그냥 잡지에서 읽은 건데, 사실 영국애들이 만든 저 시계는 워낙 오차가 많아서 몇 년에 한번씩 시간을 수정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세종대왕 때 천문학 연구를 바탕으로 만든 칠정산이라는 달력은 그런 오차가 전혀 없다고 한다. 세종대왕 당시 그정도로 오차 없이 달력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을 비롯하여 세계에서도 5개국 미만이었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우리나라가 전세계에서 top of top 이었던 건 세종대왕 때고 그 이후로는 그냥 계속 후퇴하는 과정인 거 같다. 과학 면에서 보자면.

  영국 여행기 쓰면서 또 뻘소리로 중국 애기가 나와서 말인데, 옛날 중국 사람들은 다 천재 였던 거 같다. 사람들은 중국은 안된다고 무시하지만, 난 솔직히 중국 사람들이 맘만 먹으면 화성에다가 만리장성 자금성 같은 것도 뚝딱 지어놓을 거 같고 그렇다. 무시할 수 없는 나라야. 정말.

  일단 인구가 14억.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이번 영국 여행가서도 중국 사람들의 인구에 다시 놀랐는데, 내가 갔던 모든 관광지의 외국인 중 중국 사람이 50% 고 나머지 나라가 50% 정도 되는 거 같았다. 정말 전세계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중국 사람들. 난 중국을 경외하는 쪽이지만 그래도 중국 사람들은 싫다.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러우니까.

 

  독감으로 집에 갇혀 있는데 여행기를 쓰니 괜한 말이 너무 길었다. 빅벤 이후 본 국회의사당이랑 세인트폴 대성당은 다음 포스팅으로 미뤄야겠다.


  내가 가본 해외는 일본이 유일했다. 일본이야 멀어봤자 2시간. 10시간이 넘는 비행은 처음이었다. 나는 가운데 3명 앉는 자리의 복도 쪽 자리였는데 맙소사 나는 그 긴 시간동안 한잠도 못잤다. 우선 비행기에서 나는 소음이 너무 너무 컸고, 혼자 먼 곳을 가는 거라 긴장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거깃다 우리 비행경로에 문제 생겼다고 비행기 안에서 한 40분 멀뚱멀뚱 기다렸다. 총 비행기만 13시간 탄 건데 나중에는 무릎 어깨 등 안아픈 데가 없었다.

  그렇게 최악의 신체 상태로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히드로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실내임에도 한국과는 다른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고, 바로 엄마와 통화를 했다. 우리 엄마는 내 전화 기다리느라 잠도 못 주무셨다고 했다.

  영국 입국 심사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난 전혀 그런 거 없이 어디 호텔? 여기 처음? 이 두가지 질문만 하고 쿨하게 도장을 찍어줬다.

  전철을 타기 위해 지하로 내려왔고, 티켓을 사려고 러셀 스퀘어 라고 말했는데 표파는 여자는 스퀘어 라는 말을 못 알아들었다. 영국 사람들 스퀘어 발음 참 특이하게 하던데 난 따라도 못하겠다. (약간 스쿠에어? 라고 하는 느낌)

  내가 런던에 도착한 시간이 토요일 밤이었기 때문에 피카디리라인 전철 안에는 놀러 나가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정말 철저히 이방인 이었다. 갑자기 위축이 되서 캐리어만 쳐다보고 사람들 얼굴을 쳐다도 못보고 약 50분 가량을 갔다. 러셀 스퀘어 역에 내렸는데 바람이 쌩쌩불고 너무 너무 추웠다. 

 

 

  내가 묵었던 호텔은 호텔 러셀이라는 호텔인데, 별 4개짜리 꽤 큰 호텔이었다. 러셀 스퀘어 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호텔. 나는 밤에 호텔 제대로 못 찾으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체크인할때 호텔 프론트에서 나한테 무슨 무슨 질문을 한 것 같았는데, 기억은 안나고, 그냥 말이 전혀 안 통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저녁도 못먹어서 배고팠는데 뭘 사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비도 약간 흩날리고 있기도 했고.

  조속히 샤워를 하고 난 후에도 배가 고파서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룸서비스를 시키기로 했다. 수프와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큰 실수였다. 수프가 우리나라 냉면 그릇만한 그릇에 담겨 왔고, 샌드위치는 내 팔뚝길이만 했다. 비싸기도 비쌌고.

  룸서비스를 온 인도 아저씨께서 체크아웃할 때 계산하면 된다고 말하는 거 같아서, 오케이라고 대답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그 아저씨가 다시 와선 너 지금 당장 계산해야 한다고 하는거다. (이유는 못 알아들음) 그래서 프론트로 가서 되도 않는 영어로 이러저러 설명하면서 계산을 하긴 했는데, 하... 프론트 있던 남자애의 도저히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다고 황당해하는 무표정은 나를 더욱더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외국 호텔에서는 룸서비스 시켜 먹으려면 Pre-Authorization 이라고 해서 카드를 등록해야 하는데 내가 그 카드 등록이 안되어 있어서 당장 계산을 했어야 하는 거였다. (스코틀랜드 호텔에서 카드 등록하면서 알게 됨)

  호텔은 정말 좋았다. 화장실도 넓고, 욕조도 있고, 이번 여행 중 묵은 4개의 호텔 중 유일하게 난방을 해준 호텔이기도 하고. 비행 때문에 엉망이 된 피부를 보며 속상했고, 짐을 대충 풀어놓으며 난 벽돌같이 딱딱한 샌드위치와 냉면 그릇만한 볼안의 노란 수프를 종종 떠 먹었다.

  혼자 침대에 누워서 내가 정말로 런던에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 다음으로는 이것이 과연 꿈인가 생시인가 확인도 할 겸, 잠을 청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침대에 누웠고 창문 밖의 전기 돌아가는 나지막한 소음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추석 연휴 때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물론 궁금해하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지만) 지금부터 가끔씩 일기와 더불어 여행에 대해서도 기록하기로 하고, 이번이 그 첫번째.

  이번 여행에 나는 카메라를 안 들고 갔다. 대신 예전에 사용하던 MP3 Player 용 핸드폰 1개, 지금 사용하는 핸드폰 1개. 이렇게 2개로 모든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여행 갈 때마다 사진기가 가방에 굴러 다니는게 너무 귀찮았기 때문이다. 또 막상 사진 찍느라 정작 제대로 여행도 못 즐기고... 결정적으로 난 사진 찍으면 그냥 찍을 뿐 거의 다시 안 보니까. 아무래도 이건 내가 사진을 워낙 못 찍어서, 다시 보고 싶을 만큼 멋진 사진이 없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하다. 여하튼, 이런 이유로 이번 여행에서는 사진이 거의 없다. 있더라도 완전 이상한 사진 뿐? 이번에 깨달은 게 아무리 핸드폰 카메라가 좋아도, 우리집에 있는 익서스 보다 못하다는 거다. (익서스 처럼 작은 카메라도 귀찮았다는 나) 카메라 없이 사진도 별로 안 찍고 편히 다니긴 했지만, 이제와서 살짝 아쉽다. 사진이 없어도 너무 없네.

 이번 7박 9일 여행 일정은 이러했다. 런던 2밤-에딘버러 2밤-더블린 1밤-런던 2밤. 도착하는 날은 밤 7시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은 밤7시 40분쯤 이었고. 대한항공 직항. 이번 여행 덕분에 제주도 왕복 마일리지가 쌓였다. 영국이 멀긴 먼 모양이다. 내 여행일정은 꽤 이동이 많았기 때문에 짐을 최소화 했는데 출발 전날 밤에 원래 가져가려던 짐을 쌓아놓고 엄마와 이것도 빼고 저것도 빼고 줄이고 줄여서 결국 캐리어는 기내용 1개로 줄이는 데 성공했고, 그 외에 작은 배낭1개, 그리고 크로스백 1개가 생겼다. 작은 캐리어로 줄인 건 정말 잘한 짓이었다. 저거보다 한 사이즈 큰 거 들고 여행 갔으면 여행이 훨씬 힘들었을 거다. 작은 캐리어 하나라 계단도 잘 올라가고 편히 다녔다. (대신 배낭이 꽤 무거워서 어깨가 좀 아팠지만)

 우리 엄마는 남동생 군대보낼때랑 기분이 비슷하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그래도 난 무사히 다녀왔다. 다행히도.

 아 그리고 다 다녀와서 생각해보면 난 이동 많은 여행이 성격에 더 맞는 것 같다. 만약 뭐... 한 두달 한 곳에서 머무를 수 있다면 모를까, 그냥 일주일 정도면 이동하는 게 조금 힘들긴 해도 재밌는 것 같다. 예전에 도쿄에만 4박 5일 있을 땐 정말 좀이 쑤셔 못견딜 것 같았는데, 적어도 이번에는 그런 기분은 안 들었다.

 짐을 안 부치니까 체크인은 15분도 안되서 끝났다. 여행사에서 출국하는 사람 무지 많다고 3시간 전에 가라고 해서 3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말이다. 커피를 못 마신 게 생각나서 혼자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이제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과연... 사람이 많긴 많았다. 그래도 난 1시간 반 정도 일찍 출국장에 들어갔다. 커피까지 다 마시고 들어갔는데도 말이다. 영국 내에서 이동이 많아 면세점 쇼핑 해봤자 짐만 될 것 같아 생략하고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나 보면서. 원래 면세점에서 뭘 사본 기억이 없다. 돈도 별로 없기도 없고.

  내가 탈 비행기. 난 비행기 타기 전에 화장실이나 한번 더 가자 하고 화장실에 갔는데 모르고 남자 화장실로 직진 했다. 어색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칸에는 누군가 있는 것 같았지만. ) 한동안 아동용 남성 소변기가 왜저렇게 크지? 생각하고 서 있었다. 그 순간 건장한 남자분이 걸어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그때서야 내가 남자화장실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엄청 빨리 뛰쳐 나왔다. 휴.

 화장실을 다녀온 후 부터, 나는 게이트 바로 앞에 앉아서 1시간 30분 동안 14번 게이트야 열려라 참깨만 마음 속으로 수십번 외치며 비행기를 타기를, 내가 런던으로 향하기를 기다렸다.

 



잊은 사람도 많겠지만 1월 29일 30일은 2011년 들어 최저 온도였다. 영하 18도였나? 친구와 이미 호텔 예약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날 남이섬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다녀와서 저번 주말에 남이섬 다녀왔다고 하니 모든 사람이 놀랐다. 그 추울 때 다녀왔냐면서.
나름 핫팩도 붙이고, 오리털로 무장했지만 추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추워서 더 기억에 남는다. 그 친구와 난 큐슈 갔을 땐 정말 너무 더워서 문제였고 이번에는 너무 추워서 문제고.

어그부츠 안에 발에다 붙이는 용 핫팩을 붙이고 등에도 붙이고 했지만, 추위를 막는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친구와 나는 근성으로 남이섬을 구경했다. 나중에 봄에 바깥에 나와앉아도 안 추울때 오면 더 좋을 것 같다.
춘천가는 기차는 결국 못타보고 나와 친구는 춘천가는 전철을 탔는데 엄청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 처럼 춘천으로 놀러가는 것으로 보이는 젊은 무리들이 많았다. 친구가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맡아 준 덕분에 편히 앉아서 갔다.
어렸을 때 원주에 살 때 엄마아빠가 바람 좀 쐬려고 맘 먹으면 종종 춘천으로 갔었다는데, 난 전혀 기억이 없다. 우리 부모님 말로는 우리집은 강원도를 벗어나면서 부터 고난의 시작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강원도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는데도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정관루" 라는 호텔인데 하룻밤에 9만9천원으로 둘이 나눠 낸다면 별 부담 없는 가격이다. 처음에 방 안에 TV 인터넷이 전혀 안된다는 말을 듣고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친구와 나는 과자먹고 라디오 들으면서 자기 직전까지 열심히 떠들었다. 혹시나 하여 핸드폰에 영화도 넣어갔는데 전혀 못보고 왔다. (밤에 먹으려고 컵라면 까지 사갔지만, 과자 때문에 먹지도 못함)
다음날 아침에 배를 타고 나오기까지 못본 곳을 더 둘러보고, 차도 마시고 했는데 그때 들어간 찻집이 정말로 불친절했다. 흐흐흐
기념품 사는 걸 좋아하는 나는 남이섬 가서도 또 하나를 샀다.


 연꽃잎 받침이 맘에 들어서 구입한 잔인데 꽤 비쌌다. (2만원 넘었나 만원 넘었나 기억이 안나네) 저기 있는 수저는 강원도에서부터 썼던 거로 아마 한 27년 정도 됐을 걸로 예상된다.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저 수저로 밥을 먹고 포스트를 우유에 말아 먹고 지금은 유자차를 타 먹는다. 막상 보면 머그컵을 훨씬 많이 사용하고, 저런 컵은 사용할 일도 별로 없다. 저 기념품 잔도 사와서 한 2주 동안은 맨날 쓰다가 이제는 또 별로 사용안한다.



다시 2008년의 여름으로 돌아와서 큐슈로 떠나보겠다. 스이젠지공원을 떠나 처음 탔던 전차를 다시 타고  점심을 먹기 위하여 구마모토 시내로 향했다. 스이젠지 공원을 갈 때도 느꼈지만 돌아다니는 사람이 참으로 없었다.  구마모토 시내는 아담했다.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라멘집으로 들어갔다. 구마모토는 말고기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비쌀 거 같아서 안 땡겼다. 그리고 왠지 말고기는 엄청 질길 거 같고 맛 없을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난 먹을 거에 있어서는 호기심이 없는 편이라 맛이 그닥 궁금하지 않았다. (한번도 안 먹어본 재료로 한 음식은 아무리 맛있다고 소문났어도 웬만하면 먹지 않는 편에 속함-지금 내가 알고 있는 맛있는 음식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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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여행가서 느낀건데 큐슈 쪽 음식점 들어가면 다 잘생기고 귀여운 남자들이 서빙해주고 음식을 해주더라. 물론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도쿄 갔을 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키작고 등치 작고 멋 잔뜩 부린 일본 남자 이미지 그대로의 남자들이 많았는데 큐슈는 러블리 하신 분이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엄청 많았다. 오사카 가서는 남자들 키가 생각보다 너무 커서 놀랐다. 일본놈들은 다 키 작을 줄 알았더니만.
한국 사람 중에는 일본 라멘 느끼해서 싫다는 사람도 많지만 난 완전 좋아한다. 한국에 살면서 신라면을 안먹는 특이한 사람이어서 그런걸까? 매운 음식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나는 신라면은 도저히 매워서 먹을 수가 없다. 이거 뻘소린데 매운 음식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나와 성격이 상극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내가 한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살기가 힘든건가. 으흐흐.
라멘 먹고 편의점에서 커피랑 과자 좀 사먹고 다시 전차를 타고 구마모토 성으로 이동.
히메지성, 나고야성, 구마모토성을 제일 좋은 일본 성으로 꼽는다는데 난 그 중 두개나 가봤다. 반성해야겠다. 우리나라 궁전도 제대로 안가놓고 일본 성만 계속 가서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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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양 사람들이 일본 문화에 열광하는 걸 보면서 서양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의 수준은 그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우리나라 사람이라 그런 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문화가 일본보단 뭔가 더 오묘하고 깊은 게 있는 거 같다니까) 전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유일한 나라도 한국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도 한국만큼 일본을 알게되면 누구나 일본을 무시할 수 밖에 없다고 코웃음을 치기도 했고.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만큼 일본 사람 잘아는 나라가 있을까? 직접 맞대하진 않았더라도 난 집단무의식론을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사람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어느 정도는 일본을 싫어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일본에 여행가면 진짜 책 한 권만 있으면 돌아다닐 수 있고, 사람들은 죄다 친절하고, 또 문화재 관리하는 거 보면 엄청 깨끗하고, 버스도 어쩌면 그렇게 곱게들 운전하는지, 손잡이 제대로 안 잡으면 사망 일보직전까지 갈 거 같은 인천 마을버스를 타는 나로서는 부럽기 그지없고 그렇다.
국력의 차이일 수도 있고, 정신 사나운 현대사를 간직한 나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난 우리나라도 문화재 같은 거 일본 못지 않게 복원 제대로 해놓고 그랬으면 좋겠다. 국보1호 다 불태우게 내버려 두지 말고. 그리고 일본놈들이 빼돌린 문화재도 다 빨리 제대로 돌려다 놓고 말이다. 일본 가면 부러우면서도 갔다온 후 잠시동안은 애국심이 솟구치는 이유도 아마 이런 이유들 때문인 거 같다. 에잇. 일본은 왜 그렇게 깨끗하고 좋은겨.
다다미 바닥에서 차가운 스시를 먹는 일본, 온돌 바닥에서 뚝배기에서 따뜻한 밥 먹는 한국. 이렇게만 생각해도 일본과 우리나라는 다를 수 밖에 없는 나라다. 어떻게 생각하면 일본 사람들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서 행동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항상 최상의 경우를 생각하는 거 같기도 하고. (얼씨구 이런것만 봐선 무슨 일본에서 한 몇년 살다온 사람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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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단체로 온 관광객도 많고, 일본 관광객도 많고 구마모토성은 관광지 분위기 났다. 역시 많이 더웠지만, 천수각 위에서 바람 좀 쐬고 그러니까 기분 전환도 되었다. 바로 옆에 호소카와 법관 주택을 걸어갈 수 있었는데 입장객 받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우리는 서둘러서 걸어갔다.

아 그런데 위에 최악의 결과 최상의 결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난 무슨 일을 할 때 항상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대비를 하는 편인데, 자기 개발서 보면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실패를 부른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같은 사람이 부정적이 된 이유는 긍정적이려고 노력했는데도 최악의 결과가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름 상처 덜 받으려고 마련한 자구책이 이건데 어떡하냔 말이냐.


 


아직도 끝나지 않은 2008년 큐슈 여행 이야기. 두둥. 드디어 2010년까지 왔다. 설마 올해는 다 정리할 수 있겠지.

오늘은 우리 숙소가 있었던 후쿠오카에서 JR을 타고 구마모토역에서 내려 스이젠지를 가는 여정까지를 쓰겠다.
우선 일찍 일어나서 호텔 1층 식당에서 조식을 먹었다. 난 이제까지 갔던 호텔 조식들이 다들 참 괜찮았다. 센트럴호텔 후쿠오카도 괜찮은 편이었다. 든든하고. 8월 15일은 일본 오봉 휴가라 호텔에 사람이 꽤 많았다. 그렇다고 밥 먹는데 밀리고, 많이 기다려야 하는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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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는 오사카 도쿄보다 교통비가 매우 매우 저렴한 곳이다. 오사카는 간사이 패스가 요긴하게 쓰이지만 도쿄 같은 경우에는 정말 교통비가 내 여행 경비의 대부분일 정도로 부담이 무지 됐는데, 후쿠오카 버스는 엄청 싸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하카타역으로 출발. 북큐슈 레일패스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느끼며 그 패스로 JR을 탄다. 내가 적어놓은 예전 자료를 보니 아침 9시 30분차 라고 적혀 있다. 1시간 14분 가량 달려서 후쿠오카보다 더 남쪽에 있는 구마모토에 도착.
예전에 읽은 나츠메 소세키의 "산시로" 주인공이 구마모토 출신인데, 그래도 가본 지역이라고 엄청 반가웠다. 구마모토는 기차역도 작고, 건물들도 다 아담하고 조용한 시골마을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난 구마모토가 제일 내 취향에 맞았던 거 같다. 살기에는 도시가 좋지만, 가끔 여행가기에는 시골이 좋은 거 같은데, 또 도쿄나 오사카 같은 도시 갔을 때도 나름 재밌었다. 일본은 시골이라고 해도 교통 등에 불편함이 전혀 없어서 그런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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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에서 찍은 내 사진을 지금 보니, 일본 물이 나한테 안 맞는지 얼굴에는 트러블이 난데다 퉁퉁 부어 있고 눈에서는 잠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이었다. 너무 많이 걸어서 그런 것일까. 비가와서 조금 심란했는데 가면 갈수록 비올 확률 제로에 가까운 바깥 풍경이 펼쳐져서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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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구마모토 날씨는 엄청 더웠다. 구마모토는 작은 전차로 움직였는데 보통 한국에서 에어컨을 풀로 가동을 하면, 아무리 여름이어도 난 대번에 콧물을 흘리거나 추워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가디건을 꺼내 입는데 워낙 더워서 그런지 그런 느낌도 없었다.
후쿠오카 타워에 가서도 느낀 것이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안 쓰는 인력을 많이 소모 하는 것 같다. 버스 안내하는 여자의 경우도, 솔직히 버스 내 방송으로 다 대체할 수 있는 건데 사람이 서서 다 마이크로 방송하고, 후쿠오카 타워도 엘리베이터 내 방송으로 하면 될 것을 안내하는 여자가 하나하나 설명하고 엘리베이터 문 열어주고 닫아주고 다 한다. 선진국이라 그런걸까. 아니면 뭐든지 세분화 하기 좋아하는 걔네들 특성 때문에 그런걸까. 모르겠다.
전차를 타고 스이젠지공원 앞 역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걸어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고 내리자마자 뜨거워서 죽는 줄 알았다. 난 그 더운 와중에서도 긴팔 가디건을 절대 벗지 않았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참 잘한 짓이다. 아마 긴팔 안 입고 다녔으면, 살이 다 타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햇빛을 차단해주는 기능을 해서 오히려 긴팔이 더 시원한 거 같기도 하고.
자외선이 작렬하여 걸어다니는데 힘은 들었지만 덕분에 구마모토에서 찍은 사진들은 웬만한 사진은 다 잘나왔다. 흔들린 사진도 없고, 다 또렷하다.
그런데 이제와서 생각인데 난 왜 휴가가기전에 머리를 안 잘랐는지 모르겠다. 내가 살면서 머리를 제일 많이 길렀던 때가 저 때인데 항상 머리카락이 땀에 절어 있고 감고 말리는 데도 엄청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