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은 겨울 근황

일상 2018. 2. 13. 17:39

1. 엄마 

  동생 결혼준비를 하면서, 엄마를 지켜보는 것이 괴롭다. 가끔 우리 엄마가 암에 걸린 원인 1위는 아빠, 2위는 성격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 엄마는 걱정이 너무 많다. 또 걱정이 있으면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한숨 주무시질 못한다. 소심하긴 얼마나 소심한지... 아들이 싫어할까봐 마음에 있는 말은 하나도 못하고, 또 그걸 말할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나한테 속마음을 털어놓는데, 그걸 듣고 있다보면 나도 답답하고, 저러다 또 엄마가 크게 탈이 나면 어쩌나 싶고.. 그렇다.

  고부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내 아들을 객관화 하여 바라보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보는데, 보통의 중년 여자들은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남자 즉, 남편을 대한민국 평균 남성의 모습으로 생각한다. 대부분 남편보다는 아들들이 시대적 요인에 의해 더 진보적인 사고를 갖게 되니, 엄마들 눈에는 자기 아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편감 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 아들은 외모도 그만하면 미남이라고 생각들을 하니.... 거 참.

  동생이 선울 본 것도 아니고, 강제로 결혼시키는 것도 아니니, 당연히 둘이 좋아해서 만나고 결혼도 하는 거고, 그 얘기는 둘 다 결국 똑같다는 거라고, 제발 동생 아까워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소용 없다. 요즘 우리 엄마는 너무 너무 사소한 것에도 백년의 실망을 하고, 마음 다스리느라 한시간씩 식탁에 앉아 기도하고 그러신다. 또 우리집 특유의 종교 문제까지 얽혀서 요즘 너무 괴롭다. 이 모든 걸 아들 앞에서는 전혀 티를 안내려고 하니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하고...

  난 아들도 있고 딸도 있는 게 좋지 않나? 란 생각 자주 했는데 요즘 보면 아들은 정말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엄마가 여기 생활 다 접고 시골 내려가고 싶다고 하실 때마다 병원도 먼데 어딜 가시냐고 말렸는데, 요즘 보면 아들 딸과 소식 끊고 그냥 1년에 몇 번 애틋하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 소녀

  남자친구에 대해 딱히 표현할 말을 못찾다가 어제 별명을 지어줬다. 소녀라고...내가 지었지만 참 잘 지었다. 난 은근히 남자같은 면이 많은데, 특히 연애에 있어선 더더욱 그런 편이다. 뭐 내 성향을 남자같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난 애교가 없고, 질투도 별로 안하고 연락도 잘 안하고, 은근히 남자한테 고백도 잘한다. 

  사귀자는 말은 남자친구가 먼저 했지만, 내가 어마어마하게 티를 냈기 때문에, 남자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어서 사귀자는 말을 한 경향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엊그제 내가 너무 잘 대해줘서(?) 사귀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 말에 좀 속상했다. 나는 남자친구도 날 어느 정도는 좋아했기 때문에 사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엄청 자주 했는데, 남자친구는 내 맘도 모르고 자꾸 그런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내가 너무 슬프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나중에 이 분이 살아온 세월을 헤아려보니 그런 생각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미스테리다. 남자친구의 인생... 어떻게 그 나이에 그렇게 순진할 수 있는지, 볼 때마다 신기하다. 나도 순진함으로 말하면 어디가서 빠지지 않는 사람인데... 끙. 하여튼 아직까진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너무 순수해서 상처주지말고 앞으로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 자주 한다.


 3. 겨울

  정말 이번 겨울 너무 악랄하지 않나. 너무 춥다... 이렇게 추운데 남자친구가 차도 없어서 외출도 엄청 많이 하고 있다. 정말 나이들어 추운 겨울에 연애하기 힘들구나.


4. 설

  설연휴 때 아마 며느리될 분이 올 예정인데, 휴... 벌써부터 피곤하다. 엄마 아프신 뒤로 기도할 때, 맨 첫번째 기도는 항상 엄마 안아프게 해주세요. 였는데 요즘에는 제발 엄마가 며느리 때문에 속상하지 않게 해주세요. 가 되었다. 제발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성수기

단문 2018. 1. 11. 13:01

  11월 중순 부터 바쁘더니, 요즘에는 회사에서 정말 한시도 안쉬고 일만 한다. 남자친구가 생길 줄 모르고 9월에 덜컥 1년 코스로 등록한 학원은 학원대로 다녀야 하고, 일주일에 간신히 한번 보는 남자친구와 토요일에 한번 보고, 일요일에는 늘어지게 낮잠자고 평일에는 또 미친 듯 일을 한다. 간간히 지친 몸을 이끌고 학원까지 간다.

  지난 여름에는 약 한달 뒤의 일을 땡겨서 다 해도 할 일이 전혀 없어서 매일같이 민망할 정도로 블로그에 자주 글을 썼는데, 요즘 너무 블로그를 버려두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 한켠이 항상 불편하다.

  책 읽는 시간도 많이 줄었다. 아직도 '죄와 벌' 을 읽는 중인데, 이제 2권 60% 지점을 읽었다. 소냐에게 라스콜니코프가 죄를 고백하는 부분 읽으며 감탄을 거듭했다. 정말 신들린 글솜씨다.

  올해 겨울은 엄청 춥지만 맑은 공기, 별로 안 춥지만 미세 먼지 이 두가지 외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겨울답고 아름다운 건 역시 춥고 맑은 공기지만, 추운 날 지하철 플랫폼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전철을 기다리다보면, 빨리 봄이 왔으면 하는 생각만 든다. 

  점심시간에 잠깐 짬이 나서 쓴다. 나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니.


'렛 미 인' 을 보고

위로 2017. 8. 14. 11:26


" 난 살기 위해 살인을 하지만, 넌 마음 속으로 수도 없이 살인을 했지.

  오스칼... 넌 나와 같아. 제발 한 번만 내가 되어봐. "

* 내가 기억하는 대사일 뿐 정확한 대사는 아님.


   영화를 보고 호들갑 떠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난 남의 호들갑 때문에 본 영화는 대부분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어떤 영화에 너무 호들갑을 떠는 건 앞으로 그 영화를 감상할 사람들에게 오히려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스' 보고는 어마어마하게 호들갑 떨고 말았지만, 이 영화에 대해서도 호들갑을 떨어야할 것 같다. 영화 '렛 미 인'은 내 인생 영화 중 한 편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 영화를 앞으로 10번 연속 시청하라고 해도 즐겁게 시청할 수 있을 정도다.

  혹자는 거의 대사가 없고 과감하게 대부분의 배경 이야기를 생략한 이 영화가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여름에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스웨덴의 겨울 풍경을 보는 것 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습하고 무더운 여름 밤에 이 영화를 보며 살을 에는 추위와 마법에 걸린 듯 신비롭고 하얀 겨울을 꿈꿨다. 추운 걸 혐오해도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겨울을 어느 정도는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존재, 꼭 허락을 받아야 가까이 할 수 있는 존재, 언제나 타인에게 해로운 존재인 뱀파이어 '이엘리' 가 피눈물을 흘리며 '오스칼' 에게 애원하는 장면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며칠이고 이 영화의 환영에 시달리고 눈물지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존재의 본질이 어떻든, 어떤 죄를 저질렀든, 무슨 일을 당했든 모든 이는 외롭고 종종 도저히 입밖으로 내뱉지도 못할만큼 사악한 상상을 하며 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나간다. 결국 너와 나의 구별이 무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누구나 서로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애초에 사랑받지 못할만큼 추악한 존재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잔혹한 장면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조차 아름답게 느껴지는 마지막 수영장 장면에서는 전율했고, 어린 남녀의 사랑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본 그 어떤 사랑 영화보다 에로틱했다. 특히 이엘리가 밤에 창문을 통해 들어와서 오스칼 침대로 들어오는 장면에서 어찌나 가슴이 뛰든지. 어린 남녀의 첫 사랑이야기를 단지 순수하게만 연출하는 흔한 일본 영화들과 비교해 보면 이 영화가 얼마나 훌륭하고 특별한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에 대해서 찾아봤는데 원래는 주로 코메디를 연출하던 감독이라는 정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남을 웃길 수 있는 능력은 남을 감동시키는 능력보다도 훨씬 더 우월한 능력인가 보다. 처연한 분위기에서도 끝끝내 웃긴 구절 하나씩은 섞여 있는 체호프의 단편소설이나, 진로를 잘못 택한 듯 탁월한 정극 연기를 보여줬던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짐캐리를 봐도 역시 남을 웃길 수 있는 능력이 최고인 것 같다. 웃길 수 있으면 뭐든 잘할 수 있다.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은 '렛 미 인'의 성공 후, 헐리우드에 진출하여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연출했다고 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는 소설을 먼저 읽고 보려고 아껴두고 있다. ('렛 미 인' 보다는 별로라는 소문이... 하긴 이보다 잘만들기 쉽지 않겠지.)


P.S 1. 어쩌다보니 엄마랑 같이 '렛 미 인'을 시청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는 '호러' 영화 참 좋아한다. 초등학생 때도 여름방학 때 낮에 여름 특선으로 해주던 13일의 금요일이나 사탄의 인형 같은 호러 영화를 맨날 엄마랑 같이 시청했다. 재작년 '샤이닝' 이랑 또 몇 년전 '컨저링' 도 엄마랑 같이 봤다. 대부분 영화는 시청하다 1시간 정도 지나면 결국 쿨쿨 주무시는 우리 엄마인데, 호러영화는 웬만하면 끝까지 다 시청하시고, 이번 '렛 미 인' 역시 재밌으셨다고.


P.S 2. 유럽영화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공식 개봉하는 영화는 어느 정도의 수준을 보장하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 특히 서유럽 영화 아닌데 정식 개봉한 경우라면 더더욱.


PS 3. 처음 이엘리를 봤을 때는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뱀파이어와 이미지와 안맞는다 생각했다. 오히려 오스칼이 내가 생각했던 뱀파이어 이미지에 가까웠다. 하지만 영화 설정 상 이엘리의 나이가 모호하게 느껴져야 하고, 어느 정도 무자비함도 느껴져야 하는데 그런 이미지에는 딱이다. 오스칼을 맡은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북유럽 어린이 그 자체 였다.  감독은 두 아역 남녀배우를 찾느라 1년 동안 오디션을 봤다고 하던데, 역시 공들여 뽑은만큼 담백한 연기가 최고다. 우리나라 아역 배우들이 보여주는 귀여운 척의 함정에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래도 귀엽지만)


사진출처-Daum 영화


설연휴 후 근황

일상 2017. 2. 11. 16:50

1. 연휴동안
  동생과 나 둘 다 시집장가를 못가서 우리 집 명절은 언제나 단촐하다. 동생의 이번 여자친구는 진짜 결혼까지 갈 것 같기도 한 게, 명절 이나 부모님 생신 때마다 선물 보낸다. 이번 설에 그 아이가 보낸 떡을 맛있게 먹었다.
  아빠가 새해 세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원하는대로 하질 않아서 작년 설에는 집안이 시끄러웠다.
 
  작년 설 때만 해도 2016년 우리집에 그렇게 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는데... 올 설에는 아빠께서 원하시는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배하고 예배를 드렸다. 점심 때는 시흥에 사는 이모네 가서 또 예배를 드리고 기도했다.
  우리 엄마는 머리카락만 없다 뿐이지 편찮기 전과 똑같이 생활 하신다. 한창 아프셨던 작년 추석 때는 음식 거의 못하셨는데, 이번 설 때는 식혜 를 비롯하여 갈비, 동태전, 월남쌈 까지 만들어 주셨다. 내가 무리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지만, 할 수 있다고 자꾸 요리하고 싶어 하셔서 나도 음식장만을 도왔다.

2. 친척들 근황
  설에 이모네 가서 우리집이랑 친하게 지내는 사촌 남동생이 결혼을 하자마자, 회사를 그만두고 경찰 공무원 시험준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난 사표 쓴 건 너무 이해할 수 있지만, 공무원 하고 싶어하는 건 절대 이해를 못하겠다. 며칠전에도 관할 세무서에 전화하면서 화가 나 죽는 줄 알았는데. 정말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안일하고 게으르고 불친절 끝판왕의 표본인 공무원이 되고 싶을까? 심지어 뉴스에서 가끔 듣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갉아 먹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범죄 들과 밀접한 업무를 하는 경찰공무원이라니! 사명감이 있어서 도전하는 거면 존경스럽지만, 만약 그저 공무원이어서 하고 싶어서 공부하는 것 이라면... 나와 친한 지인이 그런 결심을 했다면 다시한번 생각해보라고 했을 것이다.

3. 동물적 감각
  매달 생리가 돌아오고, 또 배란 때가 되면 인간도 역시 동물이구나... 하고 느낀다. 초경을 시작한 이래 매달 느끼는 기분이지만 정말 좋지못한 기분이다. 평소 남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 전혀 안하는데 이럴 땐 남자들은 얼마나 편할까 싶다.

4. 재입사한 직원
  작년에 퇴사하는 날, 뜬금없이 수트를 입고와서 기억에 남았던 직원이 재입사했다. (우리 회사는 개발자들 대부분 청바지에 티 입고 다님)
  그 직원 캐주얼 입을 땐 몰랐는데, 차려입은 모습이 평소랑 다르게 멋져보여서 당시 좀 놀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 날 사표내고 다른 회사 면접 볼 작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인사업무를 하다보니, 서류로 파악되는 직원의 가족관계나 개인사정 같은 게 있는데, 그 직원은 계속 불행하게 살아온 것으로 추정이 되서 잘됐으면 했는데, 또 우리회사에 입사하다니..이 회사에 다시 돌아온 건 실패라는 뜻인데 좀 안타까웠다.
  그래도 퇴사 전 급여보다는 높게 계약한 거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수트 입었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서인지, 서류 안내 등을 하는데 그 직원의 눈을 제대로 못 쳐다봤다. 내 나이가 몇 인데 또래 남자한테 이렇게 내외를 심하게 하나 싶어서 스스로 웃겼다. 결혼해서 애 낳으면 젊은 남자 봐도 아무렇지도 않고 쳐다보거나 말하는 거 하나도 어렵지 않을까? 아마 그것도 사람 나름이겠지.

5. 점심시간 은행 가는 길 

 
  며칠 전 직장인들 중 '혼밥' 하는 직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학교에서 일할 때 여자들끼리 모여서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며 맞장구 쳐줘야 하는 것에 너무 큰 피로를 느꼈다. 밥먹으며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어쩔 수 없이 나도 말을 해야 하는 것이 너무 피곤해서, 혼자 밥 먹을 핑계를 찾다가 그 핑계도 마땅치 않아, 일부러 학교에서 하는 영어 수업을 점심시간에 듣는 걸로 신청해서 몇 달동안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적도 있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 중, 남들이랑 밥 먹는 것 조차 싫으면 회사생활 때려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댓글이 있었다. 나도 동감이다. 나 같은 인간은 인간관계를 최소한으로 하고 혼자 하는 일을 해야 여러 사람이 편한 인간이다. 그런데 먹고 살려면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난 내 맘대로 일할 만큼 큰 능력도 없다.

  친한 친구가 며칠 전에 자기랑 같이 맛있는 걸 꼭 같이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 아니냐고 자기는 그런 사람 너무 괴롭고 힘들다는 애기가 나왔다. 그 말을 듣고 역시 나랑 친한 친구구나 싶었다. 왜냐면 나도 줄곧 똑같은 생각 하고 있었으니까.

  이건 순전히 나 혼자만 믿고 있는 이론이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인생의 최고 기쁨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들과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면 남들도 좋아할 것이라 확신한다는 점에서. 나는 점심시간에 맛있는 거 먹고 싶다는 생각 별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식판 밥도 맛없다는 생각 별로 안 들고, 먹는 것이 내 일생의 가장 큰 기쁨은 더더욱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맛있는 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는데 그것도 전혀 나한테는 해당 사항 아니다. 그런데 먹을 걸 밝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같이 매 식사 맛있는걸 찾아 다니며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인 줄 안다. 마치 대부분의 애완견주들이 내 애완견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며 만지고 싶어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거랑 비슷하다. 

  결론은 나는 먹는 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과 함께하면 피곤하고 마음이 불편하고 하여튼 친하게 지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너의 편견이라고 욕해도 하는 수 없지만 난 그렇다. 대학생 때도 친구한테 난 먹기 싫은데 계속 먹으라고 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니, 예전부터 난 그랬던 것 같다.

  불행히도 우리 회사에 내가 밥을 꼭 같이 먹어줘야만 하는 여자 부장님이 딱 이런 과다. 먹는 걸 너무 좋아하셔서 매 점심시간마다 뭐 먹을지 고민하고 맛있는 걸 먹자고 하고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는 엄청 먼 곳까지 기꺼이 찾아가고 기다린다. 예전 성수동 있을 때는 점심시간에 그 부장님의 차 타고 건대 앞도 가고 롯데백화점도 가고 그랬다. 단지 점심 시간에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 더 환장하는 건, 난 전혀 가고 싶지도 않았던 비싼 음식점에 나를 끌고 가서는 죽어도 밥값은 더치페이를 한다는 것이다. 그 부장은 그러면서 내가 맛있는 걸 먹었으니 행복할 줄 안다. (내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본인이 먹고 싶은 걸 먹느라 날 끌고 다니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설마..) 올해 우리 엄마 보험료도 오르고, 내 통신요금도 늘어나고 해서 나는 요즘 만원 단위로 돈 아끼면서 꼭 필요한 것만 제일 싼 걸로 찾아 사는 등 간신히 생활하는데, 먹고 싶지도 않았던 비싼 음식을 먹고 만원 넘는 돈을 내고 나면 맛있는 걸 먹어서 좋기는 커녕 한없이 우울해진다. 이런 걸 보면 내가 먹는 데 큰 관여를 안하게 된 게, 일생 맛있는 걸 양껏 먹을 만큼 여유가 있어본 적이 없어서 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 많은 돈이 생긴다고 해도 난 그 돈으로 뭘 할까. 고민할 때 비싸고 맛있는 걸 먹는 것이 우선 순위에 들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이유로 나는 혼자 먹을 핑계가 생기면 어떻게든 혼자 먹으려고 한다. 며칠전에는 마침 OTP 갱신 시점이 되서 은행갈 일이 생겨 은행 때문에 혼자 좀 다녀오겠다고 하고, 가산디지털단지 내 산업은행을 찾아 나섰다. 사무실에서 신는 슬리퍼 신고 나왔는데 육교도 건너고 2km 넘게 걸었지만, 혼자 걷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위에 사진은 육교 건너는 중에 보이는 풍경을 찍은 건데, 막무가내로 지어 올린 아파트형 공장이 범람하는 가산디지털단지는 내가 보기엔 정말 정 없고 멋 없다. 비행기가 엄청 낮게 나는 구간이라 비행기가 지나가고 전철까지 지나가면 시끄럽기도 엄청 시끄럽고. 하지만 뭐 아무리 그래도 성수동 보단 백배 좋다.

  그런데 지금이 2017년인데, OTP 같은 실물 도구를 지참해야만 금융거래가 되고 갱신 시점이 되면 반드시 본인이 은행까지 찾아가야만 한다는 거 너무 미개하지 않나. OTP 가 없으면 금융거래 아무 것도 못한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은행 사이트가 보안이 엄청나게 잘되냐. 그것도 아니고.. 어쨌든 이번에 갱신 했으니 3년간은 OTP 갱신하러 은행 안가도 되지만 3년 뒤에도 똑같이 이 OTP 를 사용한다면 난 아직도 미개한 한국의 은행 시스템이라고 욕하면서 은행에 가겠지.


햇빛 잘드는 우리집

일상 2017. 1. 22. 21:55

  이 동네로 이사온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변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낙후되어 있고 지저분하다. 하지만, 난 지금 집에 정이 많이 들었다. 특히 겨울의 우리집은 정말 좋다. 고양이 처럼 따뜻한 햇빛을 쬐며 집에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보일러보다 더 강력한 건 햇빛이다. 겨울 낮의 우리집은 정말 무적이다.


   어제는 눈다운 눈이 하루종일 왔다. 아무데도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나는 식탁에 앉아서 앞이 안보이도록 오는 눈을 보며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다 읽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재밌었던 책도 어제 다 읽어버렸다. 어서 이 겨울이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 뿐 이지만, 역시 겨울은 분위기 있는 계절이다.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겨울의 매력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쉽고 화가 난다. 파란 하늘의 상쾌한 공기의 겨울날이 요즘에는 정말 귀하고 귀한 것이 되었다. 썩을 중국 때문에.

  핸드폰을 구입했다. 아이폰5를 4년이나 썼고, 사실 내 아이폰5는 아직도 완전 멀쩡하고 보는 사람마다 완전 새거라고 놀랐지만, 용량이 16GB 밖에 되지 않아 음악용 핸드폰을 하나더 들고 다녀야했다. 운전해서 출퇴근 할 때는 음악용 핸드폰이 한 개 더 있는 것이 훨씬 편했지만, (아이폰은 티맵으로 쓸 때가 많았기에) 전철로 출퇴근 하며, 화장품에 핸드폰을 두개씩 들고다니니 가방이 너무 무거웠다.

  내 주변에서 아무도 쓰는 것을 보지 못했던 소니 엑스페리아를 샀는데, 아이폰에서 다시 안드로이드로 돌아와서 한동안 좀 버벅댔다. 그리고 왜 엑스페리아 쓰는 사람들이 그토록 엑스페리아를 욕하는지 아는데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엑스페리아를 예전부터 사야지 결심한 건 순전히 계속 이용했던 소니 음악 어플리케이션이 너무 편리해서였다. 그런데, 운영체제 업그레이드를 하니 음악 어플리케이션에서 음악검색이 안되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나는 미국 어느 사이트에서 해결법을 찾은 뒤에야 이 증상을 고칠 수 있었다. (해결법은 SD 카드에 든 음악 전부를 PC 에 옮겼다가 다시 업로드 하는 것이었다. )

  또 한가지 정말 이해 안되는 것이, 엑스페리아 퍼포먼스에는 영국에서 만든 Swift keyboard (원래는 유료 인 것 같음) 가 내장되어 있는데, 반응속도가 너무나 느리고, 정말 놀랍게도 추천 단어를 끄는 기능이 없다!! (정말 난 설마 설마 하면서 소니코리아 콜센터에 까지 전화해서 확인했다니까)

  그리고, 카메라가 마음에 안든다. 이 엑스페리아 퍼포먼스 모델 내가 알기론 소니에서 꽤 밀던 모델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니 대체 왜 4년전 아이폰보다도 사진이 좋지 않은 것인지. 나중에 여행갈 땐 사진기용으로 아이폰5 들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

  그런데 이 핸드폰 외장 스피커가 짱짱하고, 음질은 만족스럽다. 또 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아이폰에서 리모콘이 되지 않아 사놓고 사용하지 않았던 JVC 이어폰을 사용하니 좋다. 또 핸드폰 하나만 들고다니니 편하다. 원래 사려던 색상이 모두 품절되서 하는 수 없이 검정색을 사용중이지만 뭐 25만원 밖에 안주고 싸게 샀으니 큰 불만은 없다.

  엄마가 오늘은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막 엄청 열심히 춤을 추셨다. 그 장면을 녹화하며 난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요즘에는 아빠도 잠잠하고, 엄마도 머리카락이 새로 나고 아프신 데 없다.

  난 새로 이사한 사무실이 가끔 참을 수 없이 춥긴 한데, 옷 두꺼운 거 갖다 놓고 핫팩도 이용하고 담요도 두 개 덮고 하면서 그럭저럭 일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는 정말 월급 올라야 할 것 같다. 뭔가 항상 부족하다. 단돈 10만원이라도 좋으니 진짜 올라야만 한다. 안 올려준다고 하면 크게 좌절할 것 이다.

  오늘 원래 제일 친한 친구 생일이라 만나기로 했는데, 예정보다 빨리 시작한 생리 때문에 약속을 취소했다. 원래 변태같을 정도로 주기가 잘 맞는데, 이번 달은 이상하게 불청객이 먼저 왔다. (33일 째 되는 날 오후 1시 쯤에 시작하는 것이 나의 표준인데) 약속 취소하는 거 못견디게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겨울에 유독 생리통이 심할 때가 있어서 외출하기 겁났다. 다행히 수월하게 넘긴 것 같다. 친구에게 미안해서 기프티콘을 하나 보내줬다. 친구 생일 선물도 포장해놨는데, 미안하다. 연휴 중 하루 잡아서 봐야지.


혹한

일상 2014. 12. 8. 00:07

  겨울이 참 싫다. 하지만, 4계절 중 가장 나를 들뜨게 하는 계절도 겨울이라는 것도 부정할 순 없겠다. 우선 내가 겨울에 태어났고, 겨울에는 눈도 내리고, 또 애인이 있는 것도 로맨스도 겨울이 더 어울리고, 책도 잘 읽히고 겨울에는 일기도 잘써진다. 난 내가 겨울에 태어난 게 좋다.

  우리집은 엄마와 동생은 초여름에 태어났고, 나랑 아빠는 12월 생인데, 신기하게 취미나 성격이 아빠랑 내가 비슷하고 엄마랑 동생이 비슷하다.

 

1. 뽁뽁이

 

 

  저번주에 엄마와 함께 열심히 창문에 뽁뽁이를 붙였다. 요즘에는 저렇게 눈꽃 모양 들어간 뽁뽁이도 나와서 저 모양이 그냥 뽁뽁이보다 비싼데도 저걸로 구입했다. 내방은 365일 햇빛 한번 안드는 방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춥고 서늘한지 모른다. 그런데 뽁뽁이와 문풍지가 큰 효과가 있는 거 같다. 작년에 안 붙인 게 억울할 정도다.

 

2. 후회

  내가 다니는 영어학원이 그냥 영어학원보다 비싼편인데 거기에 여러 소셜 활동 같은게 포함되서 그런 것도 있다. 금요일 밤에 무슨 캡션 없이 영화 상영회도 하고 평일에는 에프터눈 티 같은 것도 마신댄다. 그리고 Pub night 라고 학원생들 모여서 맥주마시러 가기도 한다는데, 9개월을 다니면서 그런 행사에 한번도 참석을 안했다. 부끄러워서... 그러다가 학원이 12/18 날짜로 끝나니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자는 심정으로 Pub night 를 갔다.

  그 행사 주관하는 영국인 영어 선생은 런던 출신이라는데, 별로였다. 좀 무시하는 기분 들고. 런던 출신은 다 그렇게 재수 없는건가? 싶었다. 나 런던 여행 갔을 때 느꼈던 사람들이랑 똑같았다. 영어 못한다고 무시하는 거 말이다. 자기네들이 모국어 잘하고 외국인이 영국 모국어 못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쳇. 

  난 그 술자리에서 영어로만 대화해야 하는 룰을 깨고 어떤 언니랑 신나게 한국말로 떠들었다. 그 언니가 독일에서 10년동안 살다가 한국와서 피아니스트 하는 언니라고 해서 너무 신기해서 그만 이성을 잃었던 것 이다.

  집에와서 누워서 이불을 뻥뻥 찼다. 맥주 두병 마시고 약간 취했던 거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너무 말을 안하고 앉아 있으니 혼자 민망해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왜 그렇게 혼자 떠들었을까 싶었다. 후회하며 잠들었다.

 

3. 선호

  내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게 더 많을까 싫어하는 게 더 많을까? 아마 좋아하는 게 더 많으니 자살하지 않고 살아 있는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난 아주 사소한 것에 있어서도 선호가 확실한가보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싫어하는 게 있어도 표현을 안하든가. 위에 말한 학원 행사에서 어떤 학원생이 나보고 싫어하는게 엄청 많다고 벌써 싫다는 말을 몇 번한거냐고 말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싫다고 말한 건 영화 About time, London (에딘버러보다다 싫었고, 영국 전체가 체코보다 비싸서 싫었다고 말했다), Radiohead 의 Kid A  앨범 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이렇게 싫은게 많냐는거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난 싫어하는게 나오면 바로 너무 싫어. 말하는 거 같기도 하다... 는 생각을 했다. 이 비슷한 얘기를 동생한테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선호를 갖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근데 상황에 따라서는 옆에 사람이 짜증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난 누군가가 1Q84 얘기를 하면,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 진짜 싫던데. 라고 바로 말해버리니 말이다. 재수 없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가도, 그럼 어떤 대상에 대해 좋다 싫다 조차도 모르는 멍청이가 되란 말이야? 라는 생각에 나에게 싫은게 왜 그렇게 많냐고 물은 그 남자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어떤 선호를 갖는 데에도 정말 엄청나게 긴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앞으로는 바로 싫다고 말하지 말고 이래서 싫다 저래서 싫다 이유 정도는 말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4. 러시아 해군들

 

 

 

  이 동네 살면서 별걸 다 본다 싶었다. 오늘 운동하러 자유공원 가는데 이마트 앞에서 해군 복장을 한 무리들이 줄담배를 피고 있는거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풍경인 것이야? 라는 생각에 난 일부러 그 무리 옆을 지나가며 옷을 살폈다. 팔 뚝에 러시아 국장과 러시아 글자가 찍혀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무서워서 그만 쳐다봐야겠다 결심하고 자유공원으로 항했다. 그런데 동인천 일대에 여기 저기 저런 해군 무리들이 여기 저기 보였다. 군인들이 입은 군복은 검정 모직코트에 금색 단추가 달려있었고, 바지까지 까매서 멋있어 보였다. 내가 오늘 본 군인 중 가장 계급 높아 보이는 아저씨가 최고 멋있었고 다른 애들은 백인 기준으로보자면 못났다고 볼 수 있는 얼굴들이었지만, 다들 기껏해야 한 23살 정도 밖에 안돼 보이고 하나같이 순진한 표정들이었다.

  오늘 이 러시아 해군들 때문에 귀여운 광경을 목격했다. 해군 무리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횡단보도 정지선에 정차되어 있는 차 안에서 5살쯤 된 남자애가 창문을 열고 "안녕하세요~~" 이러면서  열심히 손을 흔드는거다. 군인들 중 몇 명은 손을 흔들었고, 자기네들끼리 웃었다. 손을 열심히 흔들던 5살 남자애는 나중에는 "충성~!" 하며 경례까지 하는게 아닌가. 남자애가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정작 동네 어른들은 다 곁눈질만 하고 가까이도 못가는데 5살 짜리는 신나서 인사하고 경례까지 하다니.

  자유공원에 올라가서 보니 군함으로 보이는 배가 2척 정도 보였다. 기사를 찾아보니, 4척 정도 왔다고 하고, 우리나라 해군이랑 뭐 협정 같은 걸 맺는다고 한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러시아 군인 봤다고 말했더니, 처음봤냐고 요 며칠 신포시장에도 한 대여섯명씩 몰려 다니고, 이마트에서 와서 먹을거 사가고 그런댄다. 그리고 여름에도 종종 이동네에서 러시아 해군들 볼 수 있댄다. 우리 엄마가 본 바로는 걔네들 여름 군복은 위 아래 다 흰색이고 이마트오는 애들은 하나같이 다 어리다고 한다.

  저 군인들 디게 심심해 보이든데, 우리 동네같이 후진 동네서 자기네들끼리 돌아다니며 대체 뭘 하는걸까?? 그냥 무작정 배회하고 있는 것 같던데.

 

4. 비관

  저번 주 시리어스 맨의 여파가 아직 이어지고 있는 거 같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 거 같다. 그러니까 인생이 앞으로 더 좋아질 거 같지 않다. 나빠질 가능성이 훨씬 높은 거 같다. 다음 주에는 팀장이 면담을 한다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회사에서 나한테 시키는 일을 보면 한숨이 나고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편하게 잡일만 하면서 세월 보내면 속 편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난 이 회사에서 천년만년 있으려고 다니는 게 아닌데, 지금 하는 일을 봐서는 이직도 못할 거 같다. 이렇게 내가 쓸모없이 소모되고 있다는 게 한숨이 나서 우울한데, 팀장에게 말을 해봤자 좋은 소리도 못들을 것 같다. 답답하다.

 

5. 거짓말

  회사 사람 중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2년 넘게 나를 속여왔다는 사실에 이틀동안 좀 괴로웠다. 회사에 친한 친구 한명 없는게 날 너무 힘들게 하고 있다. 마음 터놓을 친구 말이다. 엊그제 학원 행사 때문에 광화문 갔을때 편의점에서 대충 저녁 먹는데 그 건물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 여자 2명이 웃고 떠드는걸 보며 부러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나도 예전 회사에선 저런 친구 있었는데 싶어서 말이다.

  너무 충격적이다.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사람을 속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난 왜 이렇게 전혀 눈치도 못채고 바보같이 속고만 있었단 말인가.

  나도 날 속인 그 직원처럼 지금 보이는 내 모습이 전부가 아니고 아무한테도 말안한 비밀 같은게 있으면 참 좋겠단 생각도 잠깐 했는데, 내 성격에 그건 불가능이다. 뭐가 더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철두철미할 수 있다는 게 부러운 한편으로는 소름끼치고 무서웠다.

 휴. 무서운 사람들이다. 애초에 나와 유전자 자체가 다른 것 같다. 이제 그 분을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우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제 지금 회사에는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


우울한 계절

일상 2013. 12. 16. 01:09

  다른 사람도 이렇게 겨울이 되면 우울한지 모르겠다. 오늘 하루종일 낮잠이나 자고 먹고 그랬다. 부모님이랑 함께 살면 엄마가 방청소도 해주시고, 밥도 해주시고, 청소도, 빨래도 모두 다 해주신다. 그리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대화를 할 수 있다. 혼자살 때 힘들었던 게 바깥에서 무슨일이 있어도, 그 일에 대해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이랑 술마시고 실컷 떠들다 와도 버스타고 오는 중에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오는 중에 이미 다시 우울해져 버리곤 했다. 

  나는 혼자 사는 것이 지독히 싫었다. 하지만, 한가지 좋았던 점을 꼽자면 (아마 이게 유일하게 좋은 점 일 거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었다는 거다. 부모님이 계시면 마음껏 울 수도 없다. 긍정적 정서를 드러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부정적 정서를 드러내면 부모님이 너무 걱정을 하신다. 어렸을 때는 문 걸어잠그고 울고 그랬지만, 다 커서는 부모님과 다시 같이 살게 된 이후로는 별로 울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부모님과 대화를 하면서 감정이 누그러지기 때문에 우울해도 예전보다 덜 우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감정이 메말랐을지도 모르고.

  난 울고나면 후련하다는 사람들의 의견에는 동조할 수 없다. 울고나면 후련해지긴 개뿔. 오히려 더더 이렇게 비참한 기분으로 세상 살아 뭐하냐. 하는 생각만 들게 되더라. 나는. 그러니까 12월 내내 한번도 울지 않기로 오늘 밤에 다짐을 해본다. 

  

  12월에 들어오면서 일이 많아져서 퇴근시간이 늦어져서 몸이 피곤하니까, 이런 기분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정신은 결국 신체 상태의 반영이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운전에 조금 익숙해지면서 부터는 서운분기점에서 차선 변경하는 것이 까다로워서 피했던 외곽고속도로를 많이 이용한다. 밤에 그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저 멀리 정면으로 인천의 야경이 보인다. 야경을 보다보면 기분이 아득해지고, 어둠 속에서 속도를 한껏 내면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거기에 배경 음악까지 좋다면 그야말로 내 하루의 가장 완벽한 짧은 순간이 된다. 어쩌면 내가 이 퇴근길을 달리려고 오늘 하루 개고생을 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지금 배경음악은 Gorillaz 음악인데, 지금 내가 쓰는 일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구나. 


  이제 와서 말이지만, 내가 더블린 여행가서 돈 오백 들여와서 왜 나는 다쳐서 여행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혼자 서러운 엉엉 울었을때 Black Bird 는 완벽한 배경음악이었다. 근데 웃긴 건 그 배경음악을 내가 유튜브에서 찾아서 손수 재생을 했다는 것이다. 크크크크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우울하고 비통한 사람에게 딱 맞는 배경음악이 나오듯 내가 딱 그 음악을 재생했다. 

  한참 울다가, 이런 와중에서도 배경음악 틀어놓는 내가 너무 웃겨서 피식 웃고 다시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Black Bird는 내가 울기 직전에 갔던 술집에서 연주하던 아저씨가 기타 조율 중에 잠깐 쳤기 때문에 머릿 속에 띠리링 하고 떠올랐고. 


  오늘 일기를 쓴 게 하루종일 한 짓 중 제일 의미있는 짓이었다. 다행이군. 




나는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다. 스무살 때 남자친구를 비롯한 친구들이 스키장에 가자고 했지만 결국 끝까지 안갔고, 난 지금까지도 스키장 한번 못가본 촌스러운 사람이다. 그런데 여전히 난 왜 그 추운날 찬바람 쐬면서 엄청 빠르고 무서워보이는 스키를 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겨울은 애증의 계절이다. 추위에 엄청 취약하지만, 난 내가 겨울의 한가운데 춥고 추운 강원도에서 태어났다는 게 참 맘에 든다. 

싫긴 하지만, 겨울에는 눈이 쌓인 시골에 가서 나가기만 해도 좋고, 차갑고 깨끗하고 순수한 공기도 좋고. 금방이라도 쨍하고 깨질 것 같이 맑은데도 배신감 들게 엄청 추워서 사람 괴롭게 하는 것도 맘에 들고. 겨울은 역시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겨울은 조용한 계절. 눈도 조용하게 쌓이고 겨울에는 음악을 들어도 유난히 크게 들리고. 겨울에는 계절에 맞게 조용하게 보내고 싶다. 겨울이 끝나면 마냥 좋다가도 또 다음 겨울도 다음 겨울도 살아남고 싶고 그렇다.

 

나는 샤워 다하고 15년이 넘은 내 침대위에서 전기장판 켜놓고 오디오로 음악 들으면서 책읽는 게 제일 행복하다. 봄이나 여름 혹은 가을에는 이만큼 행복하지않다. 겨울에는 유난히 책도 잘 읽어지더라. 

나는 이제 서른한살인데도 고민스러울 정도로 여전히, 아직도 혼자 있는 게 최고로 좋다. 

아무도 나의 깊은 마음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슬프고  지독하게 고독하지만 행복한 이 기분과 지금의 내 취향과 영원히 안녕하게 된다면 엄청 슬플 것 같다.  

나는 중3 전까지만 해도 친구가 없이 혼자 밥을 먹는 것은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운명처럼 중3 때 혼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됐고, 하나님께서 운명처럼 나에게 음악을 주고, 또 그 때마다 적절하게 좋은 영화도 보게 해주신 덕분에 외로움에 대처할 수 있게 자라났다.

16살의 그런 고난과 외로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깊이 없고 재미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까.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나 역시 익숙해지진 않아도 남들보다 잘 대처는 하는 것 같다.

회사에 지금도 충분히 유복하고 돈잘버는 남편과 함께인 과장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서초동의 부자들을 부러워 하면서 사는데 그 과장님 때문에 내 장점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열등감 덩어리면서도 그 누구도 크게 부러워하지 않는 이상한 성격을 가졌다. 나는 의외로 그 누구도 별로 부럽지 않다. 진심이다. 


감흥없는 2013년

일상 2013. 1. 6. 01:11

1. 연말 - 연말에는 많이 바빴다. 아직도 회사에서 내 정체성이 무엇일까 고민 중인데, 누군가가 시킨 일을 하다보면 늘 시간이 없고 벅찼다. 가끔 내가 일반 회사를 벗어나 학교에서 2년동안 일해기 때문에 일하는 감이 떨어진 것인가, 못올 곳에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보면 우울하고 자신감이 없어졌다. 난 유능한 직장인 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착각이었나 싶었다. 이 모든 생각이 피곤함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매일 매일 밤 10시 혹은 11시가 다 되서 도착을 하니까 운전해서 들어가는 길도 외롭고 집에 와서도 몸이 녹아버리는 기분이었다. 

2. 생일 - 12월 27일에는 내 생일이었다. 우리 회사는 생일이면 케익도 사주고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주고 10만원도 주는데 한창 바쁠 때 생일이라 차려주는 것만 남이 차려주고 나중에 생일 케익 치우고 음료수 치우고 설겆이 하는 건 내 몫이었다. 이러려면 왜 생일축하 해주나 싶어서 좀 화가 났다. 왜 내 생일에 내 일을 만들어줘. 이러면서 투덜댔지만 그래도 10만원 받았으니까. 10만원은 엄마께 5만원 아빠께 5만원 드렸다. 불행히도 12월 27일에는 회사에 물건이 20개가 넘게 들어와서 하루종일 입고 물품 정리를 했는데 그거 하느라고 그날도 역시 9시가 넘어 집에 갔다. 차장님은 그냥 집에 가라고 하셨지만, 괜히 생일이라는 핑계로 일 안하고 갔다고 안들어도 될 말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12월에는 야근이 너무 잦아서 웬만해선 직장 있는 걸 감사히 알라며 직장에 대하여 불평하면 무조건 회사편 드는 우리 엄마도 니네 회사 사람 더 뽑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셨다. 근데 나는 매일 10시 쯤 집에 가는 것도 힘들어 죽을 것 같았는데 저쪽 팀 다른 여직원은 새벽 1시 2시 어쩔 땐 3시에 간 적도 있다는 얘기가 들려서 혼자 좀 두려워 하고 있다. 난 솔직히 새벽에 퇴근하면서까지 일할 자신은 없어. 

3. 팀의 변화 - 새해가 되면서 팀의 변화가 좀 생겼다. 나 있던 부서에서 무역 관련 업무가 다 빠지고 나는 원래 부서에 머무르게 되었다. 나중의 내 경력을 고려해서는 무역일을 하는 게 더 좋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원래 팀의 차장님이 좋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근데 나 같은 애가 경력 얘기하면 웃기기도 하네. 계속 옮겨다니고 계속 새로운 일을 해 왔으니... 딴 부서로 안 가게 되서 원래 자리에 그냥 있으면 되기 때문에 짐 옮기는 귀찮은 일이 하나 줄었다. 하지만 난 금요일 저녁에 새로운 업무와 부서에 대한 공지를 받는 순간 표정관리가 안됐다. 왜냐하면 입고 물건 확인 업무를 그대로 나한테 남겨놨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힘든 건 그냥 니가 계속 해라 이 말인데 우리 부서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나한테 떡하니 그 업무가 남아있는 걸 보니 화가 나고 그 쪽 부서 사람들 속도 보이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꼴찌로 들어와서 그런건데 누구를 탓하나 싶었다. 뭐 이 힘든 일은 내 밑으로 누군가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냥 영원히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로. 한편으로는 물건 확인할 때는 전화안받아도 되고 딴 일 안시키니까. 

4. 운전 - 점점 운전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난 이제 출퇴근 길은 어느 정도 잘 하는 것 같다. 아직 비가 억수로 내리는 밤이나 눈이 오는 날에는 안해봤지만 요즘에는 처음 운전 했을 때 처럼 심장이 차창 밖으로 나갈 것 같은 상태도 아니고 음악도 흥얼거리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내가 모르는 길은 못가겠다. 네비게이션이 어디로 가라고 말해도 아직 찬스도 잘 못잡겠고, 겁도 엄청 많으니 말이다. 이제 회사에서 어디 갔다오라고 하면 갔다올 수준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팀원이 줄어들면서 더욱더 그런 압박이) 하다보면 되겠지라는 생각도 하는데 여하튼 새해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운전 더 잘하는 것이. 아 그리고 운전하면서 더욱 더 깨달은 게 내가 심각한 길치라는 것이다. 어디를 가야한다 생각을 하면 대략적으로라도 길의 방향이 생각나야 하는데 전혀. 전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 신이시여. 난 대체 잘하는 게 뭡니까. 

5. 서른한살 - 신기할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없다. 내가 서른한살이라는 것이. 아마 서른살이 이미 지나가버렸기 때문이겠지.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고. 조금 외롭긴 하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그렇게 부럽지도 않다. 참 다행스러운 점이 난 의외로 남을 부러워하지 않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 나를 딱하고 불쌍한 여자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다. 가끔 은연 중에 내가 혼자 늙어가는 걸 불쌍하고 큰일이라고 얘기하면서 은근히 자기가 나보다 낫다는 걸 주지시키려는 사람들을 보면 화도 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자기 인생이 재미 없으면 남을 깍아내리면서 자기 자신을 위로할까 싶다. 

내일은 끔찍한 월요일 한동안 휴일이 중간중간 끼어 있어서 좋았는데 이제... 지겨운 5일을 버텨야만 주말이 오겠구나 싶어서 한숨이 난다. 날씨도 너무 춥고. 난 기본으로 4겹을 입고 (가끔 5겹도 입는다. 나도 놀랐다. 내가 5겹을 입고도 자유롭게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털달린 레깅스에 니트 치마를 입고 발바닥에 핫팩까지 붙이면서 이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은 한 겨울에 자기가 마신 커피잔 설거지를 시켰었다. 그 여자는 자기 혼자 마신 커피잔 하나를 닦으라고 한 것도 아니고  다른 선생들까지 마신 커피잔 까지 다 닦으라고 했는데 그 차는 커피도 아닌 쑥가루 같은걸 넣어서 마시는 쑥차였다. 그래서 매번 설겆이를 하러 가져가면 다 말라 비틀어진 그 쑥가루들이 컵에 덕지 덕지 붙고 바닥에는 상당한 양이 가라앉아서 말라붙어 있고 입구에는 빨간 립스틱 자국이 항상 엄청 묻어 있었다. 그 놈의 쑥가루는 아무리 물로 해도 진짜 안 닦여서 차디 찬 물에 내 손을 넣거 계속 박박 문질러도 어림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자는 나한테 고무장갑도 안줬고 (지금도 어른용 고무장갑이 커서 안 맞으니 그때는 고무장갑을 줘도 끼지도 못했겠지만) 수세미도 안줬다. 그리고선 내가 최선을 다해 찬 물에 오로지 손만으로 박박 문질러 닦은 그 커피잔을 가져가면 깨끗이 안닦였다고 쑥을 불려서 설거지 해야 잘 닦이는 것도 모르냐고 더럽게 쑥가루가 컵에 붙어 있다고 타박하기 일쑤 였다. 많은 애들 앞에서 타박을 받은 나는 수치감에 더 열심히 닦으려고 노력했지만 그 여자는 또 타박을 했다. 결국 그 여자는 그 뒤부터는 나를 안 시키고 다른 여자애를 시켜서 그 컵을 닦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쑥가루가 다 말라붙어서 나중에 컵을 닦기 힘들거 같으면 다 마시고 나서 물을 부어서 쑥가루가 컵에 달라붙지 않게 불려 줄 수도 있는거였고, 수세미를 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지가 점심시간에 수다나 떨면서 다른 선생들이랑 쳐 마신 건 지가 닦아야 맞는 거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어린 애 시켜서 지 한몸 편하고 싶었으면 한 겨울에 그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화장실 세면대에서 찬 물로 겁내 무거운 유리컵 13개 정도 들고 가서 닦고 그 여자한테 야단까지 맞았던 일을 생각하면 30살이 된 지금도 울컥한다. 교권추락위기라고 선생들은 볼맨 개소리들을 지껄이지만, 솔직히 우리나라 학교에는 선생 자격 없는 병신들이 너무 많다는 내 의견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초중고 통틀어서 진짜 선생님 같다 존경한다 생각했던 여자는 고등학교 때 물리, 국어 선생 이 두명이 유일하다. 다른 선생이란인간들은 사회에 나와서 만났던 사람들 보다도 도덕 수준이 더 개판이고 그런 주제에 자기가 선생이라는 자부심만 가득한 역겨운 인간들 뿐이었다.  
중학교때는 선생한테 개맞든 맞은 적도 있지만, 한 겨울에 설거지 했던 어린시절 이 기억은 아직도 쓰린 기억으로 남아있다. 썩을. 지금 교권이 추락한 건 어렸을 때 부터 그렇게 많은 어린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앞선 선생들을 향한 형벌이나 아이들의 저주 쯤 이라고 생각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