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7/08/13 (일) 산본



  결혼한 친구네 동네 놀러갔다 왔다. 한동안 운전을 제대로 안해서, 운전연습 좀 할 겸 차를 가져갔는데, 주차하는데 너무 오래걸렸다. 군포에 새로 연  반디앤루니스 구경하면서 친구 기다렸는데 서가가 예뻐서 좋았다. 진열도 예쁘고.



  친구가 주머니에 그림 그려줬다. 옷에 그릴 수 있는 크레파스 같은 게 있다는데, 친구 솜씨가 좋다. 친구는 아기 옷에도 저런 식으로 직접 그림 그려서 입히곤 한단다. 참 귀여운 취미다. 전에 내가 좋아하는 완두콩인형이라고 사진 보냈더니 주머니에 그려줬다. 정신승리라고 해도 하는 수 없지만, 진짜 내 마음 이해해주는 건 이 친구 뿐이다. 오랜만에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운전은 웬만해선 까먹지 않을 것 같다. 연습을 해야 한다는 압박은 이제 안 갖기로 했다. 운전 한 번하면 대중교통 불편하다든데 난 전혀 안 그렇다. 이 날 주차장 자리 한 20분 기다리는데 차 안에서 혼자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


2. 2017/08/19 (토) 예술의 전당-모리스 드 블라맹크 展



  내가 좋아하는 블로그 주인이 이 전시회 좋다고 해서 좀 가고 싶었는데 마침 누가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 아... 하지만 정말 예술의 전당 우리집에서 너무나 멀었다. 예전에는 어떻게 그렇게 자주 예술의 전당에 간 건지, 과거의 나 정말 대단했다.  난 솔직히 모리스 드 블라맹크 누군지도 몰랐다.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그림들 좋았다. 여름에 겨울 풍경 보니 영화 렛미인 봤을 때처럼 청량한 기분이 들었다. 그림마다 화가가 직접 쓴 글이 있어서 따로 오디오 가이드 없이 봤다. 전시회 다보고 마지막에 빔프로젝터로 그림 체험하는 곳 있는데, 오. 엄청 신기하고 재밌었다. 나 막 대형붓으로 칠하는 것도 다 하나하나 해봤다. 도록이 생각보다 싸서 2만원 주고 사왔는데, 집에와서 설명은 하나도 안 읽고 그림만 한번 쭉 다시 보고 책꽂이에 고이 꽂아놓았다. 아마 영원히 안 읽을 듯.


3. 2017/08/20 (일) 카페



  자유공원에서 내려오는 길에 많은 카페가 있는데, 그중 식민지 시절 일본 가옥을 개조해서 만든 좀 유명한 카페가 있다. 겨울에 실컷 걷다가 집에 오는 길에 혼자 이 카페에서 뜨거운 차 한잔 마시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지곤 했는데... 이날은 배가 고파서 카페에 갔고, 혼자 앉아서 체호프의 '지루한 이야기'를 읽었다. 옆에 백합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다신 6월과 같은 상태가 되지 않으려고 죽도록 노력 중이고 꽤 효과가 있다. 내가 하는 노력이라고 해봤자 독서, 음악듣기, 산책이지만, 이 세 가지만 충실히 해도 그 지경까지는 안 가는 것 같다.


4. 2017/08/25 (금) 세종문화회관



  친구 아는 사람이 연주회를 하는데 자리 좀 채워달라고 부탁했다고 해서 나도 따라갔다. 친구랑 종로에 어떤 건물 들어가서 저녁 먹는데, 그 건물의 세련됨에 너무나 놀라버렸다. 나랑 친구는 시골쥐가 되어 도시 체험하는 느낌이었다. 아... 종로 사람들은 퇴근하고 이런 데서 저녁먹고 데이트하고 그러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부러웠다. 내가 있는 가산디지털단지는 삭막 그 자체에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고, 친구 회사 있는 상일동은 여기 서울 맞나? 싶을 정도로 시골인데. (상일동 친구네 회사 갔을 때 친구랑 설렁탕 먹으러 갔는데 식당이 비닐하우스였다. 맛은 있었지만... )

  세종문화회관 지나만 다니고, 처음 들어갔다. 그런데 나 광화문 광장 지나갈 때마다 느끼는건데, 아무리 세종대왕이 대단한 사람이긴 하지만, 세종대왕 동상 인간적으로 너무 경관 해치고 있다는 생각 들지 않나? 뒤에 있는 궁전이랑 능선 너무 예술인데, 중간에 세종대왕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볼 때마다 짜증 난다. 그냥 아무것도 없고 궁만 보이면 훨씬 예쁠 텐데.

  연주회는 플루트 연주회였는데, 내가 아는 곡이 단 한 곡도 없었다. 연주회장에 한 15명 밖에 없어서 나까지 좀 당황스러웠고 발시려워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아무리 연주회 횟수 채우느라 하는 연주회지만, 너무 성의가 없었다. 나 그렇게 주름 자글자글한 드레스 입고 집에서 대충 묶은 머리로 연주하는 연주자 처음 봤다. 큰 감동은 없었지만 졸리진 않았다. 곡이 좋아서 졸리지 않았던 건 아니고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5. 2017/08/26 (토) 당산-종로3가




  결혼식 때문에 당산에 갔다가 벼르고 벼르던 엄마 시계 수리를 맡겼다. 오*가 시계 치곤 싼 모델일 것 같지만, 엄마가 결혼할 때 산 시계라 안 고치고 있긴 너무 아까웠다.  책에서 본 시계명장이 운영하는 시계방을 찾아갔는데, 그 시계방이 위치한 상가와 이름이 같은 빌딩이 있어서 엄청 헤맸다. (난 당연히 그 빌딩일 줄 알고 거기로 찾아감) 인사동에서부터 종로성당까지 정말 어찌나 열심히 걸었는지. 거기까지 갔는데 시계방 문 닫아서 못 고칠까봐 너무 초조했다. 사장님이 시계상태 보더니 너무 심각하다고 꼭 고쳐야겠냐고 하셨지만, 그냥 고쳐달라고 했다. 무사히 시계 맡기고 다시 지하철 역으로 가는데 멀리 보이는 종묘에 마음이 끌려, 샌들 신어 발이 어마어마하게 아픈데도 들어갔다.

  날씨가 아름다웠고, 조선의 왕과 왕비가 죽어 누워있는 곳을 혼자 걷다보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는 분리된 곳인 거 같다. 그날 종묘 바깥에서는 시위 때문에 엄청 시끄러웠는데, 종묘 안으로 딱 들어가니 어찌나 고요하든지. 도저히 같은 서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6.2017/09/02 다시 종묘



  시계 찾으러 일주일 후 다시 종묘에 갔다. 시계 수리비는 15만원 나왔다. 예전 배터리 교체한 곳에서 부품 하나 잃어버린 것 같다고, 스위스에도 없는 부품이라 수리비가 많이 나왔다고 하셨다. 사장님이 이거  비싼 시계도 아닌데 괜히 돈 쓴단 식으로 자꾸 말씀하셔서 좀 민망했다. 뭐.. 그 사장님이 보는 시계는 다 몇백몇천만 원짜리 시계일 테니.. 내가 가진 시계가 엄청 우스웠겠지.

  일주일 지나 또 종묘를 찾았는데, 9월이라고 확실히 햇빛이 한풀 꺽였더라. 좀 슬펐다. 그렇게 덥더니 물러갈 때가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그냥 더위가 갔다. 올 여름은 참 신사적이었다. 더울 때 확 덥다, 미련없이 가버렸다.

  혼자 종묘 걸으며, 작년 여름을 떠올렸다. 엄마가 수술실에서 나왔던 직후, 수술 후 항암 때문에 입원하셨던 모습, 퇴근하고 병원으로 가던 밤과 그 길, 차가웠던 공기,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바닥에 수북했던 엄마의 머리카락... 인과관계도 없이 시간 순서도 없이 마구잡이로 끼워진 사진첩을 보듯 장면 하나 하나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그래, 6월에 힘들었지만, 올 여름은 작년보다는 살만한 여름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여행 때문에 영어 공부를 좀 해야할 것 같아서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학원비가 어마어마했지만, 억지로라도 외출할 이유 만들기 위해선 학원만한 데도 없겠지 싶어서 그냥 등록했다. 내가 다닐 때 계셨던 선생님은 당연히 안계셨다. 루크 선생님 진짜 좋아했는데... 어디로 가셨을까. 3개월 할부로 12개월을 등록했다. 그래서 앞으로 3개월 동안 거지같이 돈 아끼며 살아야만 한다. 돈 아깝지 않게 다시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지. 레벨테스트했는데 꼴찌 등급 나왔다. 문법도 겨우 50점 맞았다.


1. 크리스마스 

  요 근래 매년 크리스마스 쯤 만나던 (남자인) 친구가 있었다. 올해는 그 친구한테도 메리크리스마스라는 형식적 메시지 조차 없는 정말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틀 뒤면 내 생일. 매년 별 거 없었다. 아마 난 죽을 때까지 이럴 것 같다. 나는 누군가와 이 정도면 많이 친해졌고, 상대방도 나를 진짜 친구로 받아들여주겠지? 라고 착각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이런 애정결핍적 행동과 태도가 스스로 짜증이 나서 날이 갈수록 사람을 멀리 하게 된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 없는 곳에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길 바랄 뿐이다. 27일 내 생일에는 가족 제외한 누구한테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단 한번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내 생일은 언제나 회사에서 제일 바쁜 시즌이라 생일답게 보낸 적 거의 없기 때문에 크게 의미부여 안하지만, 2016년은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해 라, 혼자서라도 의미깊게 보내고 싶다.

2.  사무실 이전

  사무실 이전이 드디어 끝났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난 사무실 이사도 가정집 포장 이사처럼 그날 아침에 다 싸고 옮겨주고 정리까지 해주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랑 막내만 죽어라 짐싸고, 죽어라 전화하고 일했다. 걔랑 전우애 같은 감정을 느꼈다. 어쨌든 끝났고, 나는 가산디지털단지 내 수많은 아파트형공장 중 한 건물 안의 한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다. 인천에서 비정상적으로 멀었던 성수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사무실이 이전한 덕분에 출퇴근시간이 약 90분 줄었다.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나마 보람 있다. 만약에 2년 뒤 여기 계약 연장 안하고 또 이사간다고 하면 정말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할 것 같다. 사무실 이사는 일반 가정집 이사와는 차원이 다르더라. 우리집은 이사만 한 15번 정도 했는데, 15번 이사하는 동안 이번 사무실 이사 처럼 힘든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사를 토요일에 해서 어쩔 수 없이 토요일에도 출근했는데, 휴일 근로 수당 같은 것도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심하게 몸살이 나서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화요일에는 도저히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라 결근했다. 할머니 체력인 나는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힘든 노동을 하면 무조건 탈이 난다. 나같은 체력의 소유자는 규칙적으로 살 수 밖에 없다.

 

3. 내 자리

  나는 언제나 딸린 짐이 많은 편에 속한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내 짐만 세 박스가 나왔다. (다른 직원들은 보통 한박스) 짐을 줄이려고 회사에서 쓰던 컵과 커피 드리퍼, 원두, 우롱차잎, 커피 필터, 잎차용 필터를 집으로 가져왔다. 아침에 커피를 내려 먹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라고 할만큼 2008년 부터 쭉 아침에 원두커피를 마셨지만, 요즘 나오는 아메리카노 믹스가 워낙 훌륭해서 이제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직접 내려 마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컵은 회사 싱크대를 열어보니 아무도 안 쓴 것으로 보이는 컵이 있어서 그냥 그 컵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짐을 줄여도 내 왼쪽에 있는 서류 들은 정리할 수 없었다. 안쓰는 파일이 하나도 없이 다 수시로 꺼내보는 것들이라.. 어쩔 수 없다.

 


  회사를 워낙 많이 옮겨 다녀서, 내 자리 사진을 웬만하면 남겨 놓는 편이다. 위 사진은 성수동 사무실에 있을 때 내 자리다. 지금 가산동에도 거의 똑같이 정리해놓았다. 우리 사무실에서 내 컴퓨터가 제일 후지고, 모니터도 나만 유일하게  4:3 비율 모니터를 쓴다. 근데 뭐 상관 없다. 일하는 데 아무 문제 없다. 난 어차피 오피스 패키지 외 다른 프로그램은 하나도 안쓰니.

 

4. 고독한 삶

  12월 10일에 너무 우울하여, 혼자 산책을 나섰다. 하루종일 늘어져서 TV 보다, 책보다, 음악듣다, 석양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삶도 그리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생일인데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요즘 필요한 게 없다. 아니, 내가 갖고 싶은 것 중에서 남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건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너무 슬프고, 자주 좌절한다. 교회에서 기도할 때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내 맘을 알고 들어주리라 확신하지만, 요즘들어 부쩍 마음이 약해진다. 의심하면 될 것도 안되는 건데.

 

 

 

 

  이 동네 살면서 셀 수 없이 자유공원에 자주 갔지만, 비가 억수로 오던 어느 여름날 이후 이렇게 사람이 없는 자유공원은 처음 봤다. 찬 겨울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추운 바다 속으로 야속하게 사라져가는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순간 인천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느낌이었다.

 

5. 건강

  아직 감기 몸살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화요일에 받아놓은 약이 떨어져 어제 병원에 가서 2시간을 대기했다. 정말 지루해 죽을 뻔 했다. 너무 심심해서 신문도 봤다가, 핸드폰도 보다가, 너무 심심해서 혈압도 쟀다. 혈압이 최고 87 에 최저 54 가 나왔길래, 네이버에서 저혈압에 대해 찾아봤다. 몇 년 전 신문에서 의사가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위험하다는 건 완전히 잘못된 의학상식이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난 저혈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안쓰고 산다. 네이버에서 보니 저혈압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증세는 만성피로 라는데, 정상 혈압인 사람들의 일상은 나보단 훨씬 덜 피곤하고 활력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평생 저혈압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현재 내 상태가 피곤한지 어쩐지도 모른다. 다만, 남들보다 쉽게 피로하고 지치는 게 운동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체질적인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뭐 이런 취약점이 있는데도 운동 안하고 체력 키울 생각 안한 건 100% 내 잘못이다.

 

6. 엄마의 치료

  내가 엄마에게 감기몸살을 옮긴 것 같다. 암환자는 다른 병에 걸리지 않게 엄청 조심해야 하는데, 오늘 우리 엄마는 내가 사무실 이사 후 앓은 증세와 완전히 동일한 증상의 감기에 걸려서 앓아 누우셨다. 죄책감이 든다. 다행히 내일 원래 병원 가는 날이라, 의사 선생님께 관련해서 상담을 받을 예정이다. 문제는 요즘 병원마다 내과에 감기 때문에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엄마도 2시간 이상 대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15분 이상 앉아 있지도 못하는 상태인데, 나도 힘들어 죽을 뻔 했던 장시간 대기를 하실 수 있을지..

  엄마께 항암용으로 투약하는 약이 3개에서 한 개로 줄었다. 하지만 6차 항암 후 C.T 사진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나쁜 소식이 내 감기 몸살의 결정타가 됐다.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있는데 그렇게 힘들게 6번이나 항암을 받았는데, 복수가 다시 찼다는 소식을 사무실에서 전해 듣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물을 마시는데 손이 덜덜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결근했다.

 

7. 그리운 친구

  자유공원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동인천 파스쿠치에 갔다. 그 카페는 지금은 시집간 친구와 같이 가던 곳이었다. 대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친구는 엄청난 독서가였다. 어느 날은 자기가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로 유명한 주요섭 소설가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면서, 그 책 이야기를 신나게 해줬다. 그런데 주요섭 소설 이야기를 한 다음부터 친구는 자꾸 주요섭 소설 속의 말을 따라했다. "처녀티 좀 나면 나아디갔디."  같은 말로 대화를 할 때마다 난 배꼽을 잡고 웃었다. 혼자 파스쿠치에 앉아서 듣고있기 힘든 멜론 최신가요 100 곡 중 하나로 추정되는 구린 가요를 들으며 (예전에는 선곡이 좋았는데..) 주요섭 소설체 생각이 나서 혼자 베시시 웃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헤어진 옛 애인을 그리워 하는 것 만큼이나 절절할 수 있음을 그 때 느꼈다. 그 친구에게 이런 저런 고민을 이야기 하고 푸념을 하면 항상 최상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근데 그게 거짓말로 나 위로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친구는 정말로 내가 언젠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 질 것이라 믿고 있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친구의 말이 정말 이뤄지기 힘든 일 임을 알면서도 너무 힘들때는 이상하게 듣고 싶다. 다 잘될거라는 진심어린 친구의 말이.

 

 

 

메리크리스마스


나의 주말

일상 2015. 8. 2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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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운동할 시간이 없어 이제부터는 주말에라도 운동을 하기로 했다.
자유공원에 가서 꽃구경을 하다가 어떤 아저씨가 데려온 엄청나게 큰 사냥개가 싫어서 바로 밑 초등학교 운동장을 4바퀴 뛰었다.
아직도 엄청나게 덥다. 낮에는 낮잠자다 더워서 깼다.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가을 느낌이 난다.
추워지는 계절은 아침 저녁부터 오고 더워지는 계절은 낮부터 온다.
출퇴근 시간이 길어져서 독서량이 부쩍 늘었다. 알라딘 e book을 요긴하게 이용 중 이다. 앉으면 자고 서면 책을 읽는다.
회사 자리는 아직도 내 책상 같지 않고 어색하다. 마음에 안들어서 언제 날 잡아서 싹 청소하고 바꾸고 싶다.
전임자가 2주씩이나 인수인계를 해주는데 사실 인수인계 해주는 게 아니라 일을 시키고 있다. 차라리 빨리 나 혼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옆에 있으니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할 수가 없어서 힘들다.
회사가 건물은 삐까뻔쩍하고 책상 의자는 좋은데 그 외 것들은 너무 열악하다. 뭐 이러면 이런대로 적응해서 어떻게든 살아지리라 믿는다.
이번 회사에서 딱 만3년 채우는 게 목표다.
요즘 난 교회 잘가고, 기도도 열심히 한다. 종교의 존재 이유를 알 것 같다. 실낱같은 희망에 대해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싶을 때 기도와 종교가 도움이 된다.
푹 쉬고 다시 출근준비하러 잠자리로.


 

 

  YMO의 베스트 앨범에 들어있는 곡인데, youtube 에도 yellow magic orchetra 의 원곡은 없다. (위 저 짝퉁 YMO 가 거의 똑같이 커버해서 저걸 골랐다) 이 곡이 70년대 말 80년 초에 나왔다는 것이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문화의 발전과 수준은 정말 그 시대의 경제력에 비례하는 것일까. 이 곡 말고 아래 Mass 라는 곡도 너무 좋아서 어제 밤에도 침대 누워서 두 곡을 번갈아 가면서 들었다.

 

 

  이 두 곡은 지금 당장 전위적인 SF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깔아도 위화감이 전혀 없을 정도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텐데. 뭐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인건가.

 

  저번주에는 오랜만에 키아누 리브스 사진을 잔뜩 봤다. 정말 엄청나게. 심지어 핸드폰 잠금화면도 키아누 리브스로 해놨다. 키아누 리브스는 영화 고르는 안목도 없고, 자기 관리 잘하는 스타일도 아니라 영화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정말 이 분 젊었을 때 처럼 눈매가 예쁜 배우는 앞으로 나오기 힘들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 얼굴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얇고 새까만 눈썹인데, 그 예쁜 눈썹 밑에 있는 갈색 눈의 아름다움 또한 어마어마 한다. (내가 어마어마라는 표현까지 쓰다니..)  다른 백인 배우들과 다르게 얇고 까만 눈썹과 크지 않은 눈이 이국적이고 어떤 사진에서는 전혀 백인 같지 않아 보일 때도 있다. 거기에 창백한 피부와 동양인보다 더 새까만 머리까지. 휴. 외모 전성기 키아누 리브스 님을 보고 자란 건 행운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 분 외모는 하와이안 중국 아일랜드 영국까지 섞인 최상 조합이었는데, 그 유전자를 썩히고 계시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내가 미국가서 아들 낳아드릴 수도 없고. 모쪼록 올해는 결혼해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최소 3명이상 낳으셨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늦은 거 같기도 하지만. 조금만 관리하면 30대 여성과도 충분히 결혼할 수 있으니 화이팅(?) 하셨으면 좋겠다.

 

  키아누 리브스를 영접하는 의미에서 저번 주말에는 영화 콘스탄틴 을 봤다. 영화 내내 존 콘스탄틴이라는 주인공이 순 똥폼만 잡고 스토리 또한 만화스러운 영화였지만 뭐 그럭저럭 봤다. 재밌게. 콘스탄틴이 여자에게 옷을 벗으라고 할까 말까 망설이는 장면이 제일 재밌었다.  

 

  어제는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워호스를 봤다. 영화를 꽤 봤음에도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냐 물어보면 대답하기 힘들었다. 사실 어떤 감독이든 어떤 작품은 정말 구리고 어떤 작품은 최고고 그러니깐. 전에 말한 왕가위 영화도 사실 타락천사, 중경삼림,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이외 영화는 안 봤고, 한 때 마틴 스콜세지를 좋아했지만, 디파티드도 울프오브월스트리트도 에비에이터도 모조리 안봤다.

  하지만 앞으로 누가 좋아하는 감독 누구냐 물어보면 스티븐 스필버그 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도 다 본 건 아니지만, 그 사람처럼 언제나 기본 이상을 하는 건 정말로 힘든거다.

  워호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 만들던 시대에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법한 고전적인 색감과 고전적 스토리의 영화였는데, 그게 또 너무 제대로 잘 만드시다 보니, 전혀 촌스럽지 않았고 심지어 감동적이었다. 이 정도면 정말 인정해드려야 한다.

  흔치 않게 2차 세계 대전이 아니라 1차 세계 대전이 배경인 영화고, 영국 기병대가 독일군 처소를 덮치는 장면이 최고의 압권이다. 전쟁영화이긴 하지만 잔인한 장면은 단 한번도 안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영화 때문에 관심이 생겨서 1차 세계 대전에 대한 기록을 찾아봤는데, 오히려 2차 세계 대전보다 사망자는 더 많았다고 한다. 흠.. 언제 책을 찾아서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어제 오랜만에 학원 갔는데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나를 얼마나 반가워 해주시든지, 연말 휴가기간 동안에 웨일즈 (선생님 고향) 스완지 갔는데 날씨가 정말 축축하고 최악이었다고 서울은 날씨 너무 좋다고 신나서 말하는데 정말 귀여웠다. 말이 선생님이지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꼭 고등학교 학생 같아서 정수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제 오랜만에 추운데 광화문까지 행차를 해서 피곤했는지 오늘은 하루종일 힘이 없었다. 남은 힘을 쥐어짜내 교회에 가서 저번과 또 똑같은 기도를 하고 집에 와서 축 눌어져 있다가, 5시 30분 쯤 길을 나섰다. 유일하게 내가 운동을 하는 시간이니깐 힘을 내자 하는 마음으로. 나왔다가 눈이 좀 와서 다시 집에와서 3단 우산을 들고 나섰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점점 눈도 많이 오고 바람은 또 어찌나 불든지, 우산이 계속 뒤짚히려고 해서 나중에는 그냥 눈을 다 맞으면서 걸었다. 그냥 장우산이었다면 튼튼하게 잘 쓰고 걸을 수 있었을텐데. 

  이렇게 눈보라가 몰아쳐도 자유공원 에어로빅 아저씨가 나오실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웬걸. 오늘도 나와서 에어로빅 하고 계셨다. 정말 하이옌급 태풍이 인천에 상륙해도 나오실 분이다. 에어로빅 배경음악이 너무 경박해서 생각하는데 방해가 되서 아저씨에게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가로등 아래로 흩날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아름다웠다. 날씨가 너무 험상궂어 아무도 산책을 나오지 않아 산책로에는 나 혼자만 있었다. 내 앞으로도 뒤로도 아무도 없었다. 랜덤으로 틀어놓은 MP3 Player 에서 No surprise 가 나오는데 잠깐 눈물이 날 뻔했다.

 

  이렇게 우울하고 찌질하고 어쩌면 누군가에겐 악몽같은 존재인 나를 더욱 혐오스럽게 만들어주는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혼자 음악들으면서 잡다한 생각하며 걷는 시간 말이다. 언제나 틀림없이 지하 천미터까지 파묻히는 것 같은 우울함을 느끼면서도 홀린듯 또 그짓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난 우울하다고 말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모든게 역부족인 것 같다. 남탓도 하고 어쩔 땐 하나님 탓도 하고 그러고 살고 있지만, 어쩌면 가장 수준 이하인 건 나 자신일 수도 있는데..


조용한 성탄절

일상 2014. 12. 25. 23:06

  컴퓨터로 좀 할일이 있어서 하루종일 느려터진 내 노트북을 만졌다. 엄마는 모친상 당한 친구한테 가셨다. 우리 엄마가 집을 비운 건 잘 된 일이겠지. 작년과 똑같이 집에서만 죽치는 내 모습보면서 또 얼마나 답답해 하셨을지 안봐도 비디오다.

  엄마가 잠깐이나마 고등학교 동창들 만나서 얘기하고 올 수 있어서 잘됐단 생각을 했다. 아까 저녁때 집에 오셨는데 기분이 아주 룰루랄라 시다.

 

  덕분에 하루종일 아빠와 함께 둘이 집을 지켰는데, 너무 심심해 하셔서 모시고 영화라도 볼까 싶어 현재 상영 중인 영화를 아무리 검색해도 보고 싶은 영화가 없었다. 숲속으로는 아빠가 너무 돈 아까워하실거 같고, 엑소더스는 러닝타임이 너무 길고. 그래도 아빠 혼자라도 엑소더스 보고 오시라고 했어야 했나? 아빠 그런 구약성경 스토리 영화 좋아하시긴 하는데.  

 

  오후 늦게 요즘 최고로 더러워진 차를 세차했고, 세차하러 나온김에 운동이나 하자 하고 공원으로 갔다. 그런데 성탄절날에도 뽕짝 틀어놓고 여러명이 에어로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 기억으론 설날 연휴 중에도 하루도 안 빼놓고 나와서 에어로빅 했던 거 같은데, 거기 단상에서 에어로빅 지휘하는 엄청 마른 아저씨는 365일 내내 6시만 되면 자유공원으로 와서 춤을 추시는 것인가.. 싶어 경외감이 들었다.

  원래 사람이 단 10분이라도 꾸준히 하는게 참 힘든건데, 10분도 아니고 거의 30분을 매일같이 눈이오나 비가오나 나와서 춤을 추시다니. 대단한 분이다. 이정도면 TV 에 나오셔도 될 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빠 혼자 심심하게 집에 놓고 온게 미안해져서 오는 길에 칭따오를 4병이나 사와서 아빠 한캔드리고 4500원짜리 영화를 함께 봐드렸다. 모스트 원티드 맨 이라는 영화인데, 워낙 평이 좋아 선택했는데, 너무 현실적인 현대 첩보를 다뤄서 재미는 별로 없었다. 총싸움도 없고 추격신도 전혀 없는 현실적이어도 너무 현실적인 첩보물.. 흥미롭긴 했다. 실제 저렇겠지 싶어서.

 

 요근래 엄청 춥고 아침에 눈 내렸던 한 3일동안 아빠는 내가 차 타기 전에 차에 눈을 다 치워놓고, 심지어 차안에 히터까지 틀고 날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차탈 때 너무 추울까봐서.

  난 중학생 이후로 아빠에게 실망한 적도 많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적이 많아서 무뚝뚝해도 그렇게 무뚝뚝할 수 없고 아빠께 하루에 한마디도 겨우하는 딸인데, 하지 말라고 해도 기어코 시동 켜놓고 기다리는 아빠를 보면 가끔 눈물이 핑 돈다.  

 

  모친상 당한 분의 어머니는 올해 97살로 100살을 3살 남겨놓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정도면 호상이겠지. 97살이라니.

  사람이 기력이 쇠해지는 것이 45살 부터라고 치고 100살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이제까지 살아온 기간보다 더 긴 기간 동안 몸이 약해지고 보기 흉한 몰골로 변해가는 걸 매일 매일 봐야한다는 말이 된다. 정말 끔찍한 일 아닌가. 주어진 인생이니 끝까지 살아내야겠지만, 사는 게 참 재미가 없는 것 같다. 100년동안 기력 팔팔하고 생기로운 기간은 끽해야 15살때부터 30살까지 15년 남짓이다.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오늘 꼭 일요일 같다. 그런데 내일은 금요일.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다.  

 

 


추워질 일만.

일상 2014. 11. 3. 00:41

 

 

  저번 주 블로그에 쓴 것 처럼 더이상, 옷 정리를 미룰 수 없었다. 엄마랑 땀 흘리면서 옷정리를 다 끝냈다. 아주 후련하다.

  어제는 따뜻했는데 오늘은 갑자기 바람이 스산하게 불었고, 추위가 막 몰려 오는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1년 중 내가 춥다는 말을 하는 월은 10월말, 11월, 12월, 1월, 2월, 3월, 4월초 이정도다. 겨울이 길어도 너무 너무 길다. 거의 반년동안 난 춥고, 손 발이 시렵고, 옷을 껴 입고, 날씨 예보를 주의 깊게 살피며 내일은 어떻게 입어야 따뜻할 것인가를 궁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4계절이 뚜렷하다지만, 4계절이 있긴 있어도 겨울의 비율이 지나치게 무지하게 무자비하며 압도적으로 높다. 무려 반년이 춥다니. 비극이다.

  

  옷정리를 다하고 오늘 한번도 바깥에 안나갔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서 나갈 채비를 하고 공원까지 걸어갔다왔다. 남방에 니트만 걸쳤다가 추위에 덜덜 떨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걸어갔다 왔다. 여름에는 6시쯤 가면 밝았는데, 이제는 완전히 깜깜한 밤이었다. 일요일 밤의 공원은 참 쓸쓸하고, 사람을 처량하게 만든다. 걷다보면 또 지금 이시각 이 세상에서 제일 우울한 사람은 내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져든다.  

  오늘 밤 자유공원의 나뭇잎들은 위태롭게 나뭇가지에 매달려 강한 바람에 흩날리며 외로운 소리를 냈다.

 

  공원에는 촬영차가 2대 정도 와 있었고, 엄청 많은 스텝들이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번에는 홍예문에서 촬영하는 거 봤는데... 이 동네가 좀 다른데랑 다른 기운과 분위기를 갖고 있긴 한 거 같다. 나만 해도 이상하게 자유공원만 가면 고독해진다. 참 이것도 이 동네가 갖고 있는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망나니처럼 깔깔 웃고, 나이에 안 맞게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고 집을 나섰어도, 공원 올라가서 바다만 바라보면 마법처럼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지니 말이다. 항상 혼자와서 내 마음을 여기 저기 묻어두었던... 예전의 추억이 겹겹 쌓여서 그런걸까? 휴 모르겠다. 오늘도 역시 똑같은 기분으로 공원을 내려왔다. 

 

  어제 친구가 이 블로그만 보면 내가 엄청나게 우울해 보인다는 말을 했다. 중학교 3학년때부터 일기쓰기를 시작한 이유 자체가 내 우울함을 타파하기 위해서였으니까. 그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친구 얘기를 들으니 이 블로그만 보는 사람은 내가 사회 부적응자에 맨날 우울한 것만 찾아내려고 애쓰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난 웃긴 얘기도 많이 하고, 어쩔 땐 나와 마주보고 있는 사람이 재밌었음 하는 생각에 재밌는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며 재밌게 해주려고 무지 노력도 하는데 말이다. 기본적으로 비관주의자에 가깝지만, 내 마음 속 부정적 정서를 어떻게든 타파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난 완전히 마음이 병든 사람은 아니다.

 

  음... 예전에 난 이정도면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에 내 예전 사건들에 대해 어떤 남자에게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나를 떠나면서 니가 우울하다고 하는 것들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며 그동안 너의 별 거 아닌 얘기 들어주느라 힘들었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그렇다. 난 부모님은 건강하게 살아계시고 내 친한 사람이 죽은 적도 없다. 그런데도 별 것도 아닌 어렸을 적 사건의 그늘에서 아직까지도 완전히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서른 두살씩이나 먹어선 아직도 말이다. 꽤 노력하고 있다. 내 우울함을 주변 사람에게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시작한게 일기쓰기니까. 이걸 보는 사람들은 조금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다.

  혹시... 그 때 날 떠난 남자처럼 이 블로그에 있는 내 일기를 보며 얘는 뭐 이렇게 심각하냐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오해를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난 웃기단 얘기도 꽤 듣는 사람이다.


원래의 나

일상 2014. 5. 18. 23:45

정상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객관적 증거와 이제까지의 경험 등에 의지하여 자신에게 당면한 문제를 돌파해보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문제는 아무 것도 필요 없이 그냥 직감에만 의지해야 한다. 특히 인간관계라면 더욱 그렇겠지. 사람이 100명이면 100가지의 성격과 사연이 있는 법이니...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때는 어쩌면 그렇게 쉽게 모든 걸 결정내렸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 가벼웠던 결단의 대가는 아주 컸고 아직까지도 종종 그 때문에 고통 받긴 하지만, 앞 뒤 생각 안하고 난 아직 젊으니까 그렇게 하지 뭐. 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그 때가 참 그립다. 지금의 나는 일단 모든 걸 회피하고 보는 쪽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 확실하지 않지만 26살 쯤 직장일 하고 1년 쯤 뒤 였던 것 같다. 발단이 된 사건이 있었고, 난 아직도 그 사건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이쯤되면 인생의 사건인데... 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모든 걸 다 극복할 수 있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전혀.

32살 밖에 안된 주제에 인생의 비극 어쩌고 말하긴 우습지만,

인생의 비극은 악의적 의도도 선의적 의도도 없이 그냥 단순히 행했을 뿐인 어떤 행동이 갑자기 거대한 운명이 되어 일생을 괴롭히는 데 있는 것 같다.

난 그냥 멍청하고 애송이고 순진했을 뿐인데 말이다.

자유공원 내려오는 길에 대낮에 벌거벗고 춤을 춰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을만큼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을 발견했다. 작고 낡은 벤치가 있는. 근 1년간 그 누구도 앉아본 적 없는 것이 틀림없는 그 벤치에 오늘 벌러덩 누워있었다. 남자들은 공원이나 벤치에 잘 눕지만, 난 아무래도 여자라 그런지 혼자 가면 그렇게 쉽게 누울 수가 없었다. 두다리 뻗고 누울 공간을 발견해서 기분이 좋았다. 아무래도 밤에는 위험해서 못가겠지만.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1년 내내 이런 날씨면 우울한 일은 하나도 생기지 않을 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주말동안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라는 책을 읽었다. 나에게는 조금 어려운 책이었다. 다시 읽어볼 작정이긴 하지만. (다시 읽는다고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진 않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서는 쪽지에 쓴 농담 때문에,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에서는 치기어린 마음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 때문에 남의 인생을 비극으로 몰고 가게 된다.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대로만 기억하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기 미화의 욕구가 강해져서 결국 자기가 원하는 내 모습만을 기억하게 되는데, 나역시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리라.

이번 주 내가 내린 결정이 또 한 5년 뒤에 다시 또 큰 운명이 되서 나를 괴롭히지 않기를 기도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어쩔 때 나는 내 결정이 틀림없다고 확신을 하기위해 나와 주변의 모든 것들을 크게 비관한다. 모든 걸 회피하면 좋은 일도 전혀 안생기겠지만, 반면에 나쁜 일도 생길 가능성이 희박하니 말이다. 100% 직감에 의한 결정이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 뜻밖의 행운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아마 이번 결정도 최고의 결정은 아니었어도, 중간은 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고 믿고 싶다. 어차피 존재하지 않을 행운 같은 데 내 남은 인생을 걸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점점 더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쩌면 이게 원래의 나였던 것 같기도 하고. 속으로는 정말 너 한심하다. 겁쟁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외치고 있지만, 또 아주 틀에 박힌 변명을 해야겠다.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청승떨며 일기쓰기

일상 2014. 4. 25. 00:29


 

  우울함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노력을 하고, 회사에서도 사람들이 말걸면 웃으면서 대답하고 농담도 한다. 문득문득 혼자 시무룩해 지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괜찮아졌다.

  생각해보면 난 항상 그랬다. 대학 때도 애들이랑 술마시고 웃고 떠들고 집에 들어와선 씻고 잠들기 전 누워서는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다음날 눈이 퉁퉁 부은 주제에 또 웃고 떠들다 그날밤 다시 울다 잠들고. 이런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가 되었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리라. 언제나 생각하고 기다렸지만, 끝끝내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아무한테도 얘기를 안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한 거지만)

  4월 지독한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행한 일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날 더 우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데. 오늘은 소주를 한 3병 정도 마시고 진탕 취해서 나답지 않은 더럽고 부끄러운 짓을 하면 좀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랑 술을 마셔줄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막 술마시러가자고 사람들에게 말 걸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해결책이 없는 이상 난 영원히 고통받을 수 밖에 없으니 불만조차 입에 올리면 안되겠지만. 오늘은 정말 많이 우울했다.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도착했지만, 도저히 안되겠어서 결국 다시 자유공원으로 향했다.

  자유공원 가는 길에는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와서 연등이 걸려 있었다. 어둠 속게 은은히 빛나는 연등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면서 이때가 1년 중 하루 하루 지나가는 것이 아쉬운, 제일 좋은 절기임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술을 어떻게든 조금은 마셔야겠다는 의지로 어두컴컴한 자유공원 벤치에서 혼자 맥주를 마셨다. 결국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지만 용케 울지 않고 천천히 공원을 내려와서 돌아오는 길에 있는 답동성당 벤치에 가서 간절한 기도를 했다. 

  난 청승 떠는 게 특기인 사람인데, 이렇게 청승을 떨면 사람이 더 우울해질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기분이 조금 괜찮아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오늘 실컷 청승 떨었으니, 오늘 일어났던 일은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야겠다. 내일 출근인데도 1시 30분 까지 일기 쓰면서 이렇게나 많이 내 감정을 소모했으니 괜찮아 질 거라 믿는다. 성당에서 기도도 진심을 다해 했으니까.  

 


Snow Patrol - Chasing Cars

음악 2014. 3. 23. 22:40

음악링크 : http://youtu.be/GemKqzILV4w 

 

  주말동안은 좀 속상한 일이 있었다. 나같이 소심하고 속좁은 인간은 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항상 충격을 받고 또 외면하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가 꽤 좋은 여자라고 믿기로 했다. (사실 그 수 밖에는 없다)

 

 

  오늘 부모님도 큰아빠 댁에 가시고, 나는 교회도 안가서 할 일이 없었다. 결국 책 하나를 들고 나의 영원한 안식처인 자유공원으로 향했는데 겨울이랑 비교도 안되게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도저히 걷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땅과 가까운 키의 작은 아이들도 자유공원 광장을 마구 뛰어 다녔다. 신나는 아이들을 보니 가라앉았던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의자에 앉아서 가져간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는데, 피츠제럴드는 미묘하게 내 취향이 아니다.  반절정도 남았던 그 소설을 오늘 끝까지 다 읽었는데. 역시나. 다만, 한 여자를 일생에 걸쳐 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이야기인만큼 분명 많은 사람이 좋아할 요소를 갖춘 건 부정 못하겠다. 하지만, 문장에 묘사와 은유들이 남발되는 게 나와는 맞지 않았다. 뭐 그래도 개츠비는 말할것도 없이 정말 멋진 남자 주인공이다. 데이지는 천하의 썅년이고.

 

  책을 다 읽고 배고파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먹고 좁은 골목길을 걸어오는데, 어렸을 때 봤던 고양이의 사체가 떠올랐다.

 

  우리 아빠가 실직했을 무렵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당연하게도 우리집은 엄청 가난했고, 내가 살던 아파트는 그 동네에서 제일 후진 5층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 단지의 모든 집은 다 10평대였다. 우리집은 13평 아무리 넓어봤자 17평. 아저씨한테 맞는 아줌마부터, 방화 사건까지 온갖 불량한 사건들이 벌어졌고 내가 놀았던 놀이터 옆의 공터에서는 종종 중학생 남자애들이 피를 철철 흘리면서 패싸움을 하곤 했다. 꼬마들이 겁에 질려서 피흘리는 오빠들을 바라보고 있어도 어른 중 누구하나 말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생 때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별로 존재감 없고 인기 없는, 생일 파티에도 많이 초대받지 못하는 조용한 꼬마였는데, 그래서 하교길에도 혼자 집에 오는 일이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때도 넓은 길보단 좁은 골목으로 오는 걸 좋아했다. 어느날 항상 지나던 더럽고 좁은 골목을 지나고 있는데, 그 골목에 고양이 사체가 보였다. 그런데 그 고양이 사체의 배는 누군가가 일부러 갈라놓았고, 뱃속에 있어야할 내장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골목에는 배가 갈리면서 고통스럽게 죽었을, 눈 뜬 고양이 가죽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던 것이다.

  충격을 받은 나는 그 사체를 안보려고 노력하며, 뛰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소리한번 못지르고 빠르게 그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아마 그 고양이 사체를 본 뒤로 그 골목은 한번도 못 갔던 거 같다.

 

  이 고양이 사체를 본 사건은 내 입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 없었다. 오늘 내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난 그때  무서웠고, 정말 외롭고 하루종일 심심한 꼬마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니가 있기때문에 절대 그렇지 않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10살 때도 지금도 난 그냥 외로운 다 큰 32살 짜리 철부지 꼬마일 뿐이었다.  

 

  라디오에서는 Snow Patrol 의 곡이 흐르고 나는 슬슬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사람 한명 없는 국제여객터미널 문 앞을 걸으며 눈물이 울컥 나올 것 같았다.

  한낱 직장인 나부랭이로 살면서 TV도 보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면서 또 하지 않아도 될 쓸데 없는 생각들만 오지게 하는 나를 보며 이런 생각도 했다.

 

  사람들은 백번 보는 것 보다 한번 경험하는 것이 낫다고들 한다. 그런데 정말 죽어라 생각만 하는 게 한번 경험의 0.001%의 가치도 없는 하찮은 것일까. 나의 이런 망상과 기억과 쓰잘데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유가 다 나중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면 조금 슬플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난 할 줄 아는게 그것 밖에 없으니까.

 

 

 


  자유공원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마련되어 있는데, 365일 매일같이 6시만 되면 그 무대 장치에서 뽕짝음악이 흘러나온다. 트로트 음악을 8배 정도는 빨리 돌린 것 같은 그런 음악 말이다. 그 음악에 맞춰서 엄청 마른 아저씨 하나가 무대에 나오시고, 에어로빅 같은 체조동작을 약 30분간 한다. 그러면 그 앞에서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서 그 아저씨를 따라하며 운동을 하시는 거다.

  산책 때 들을 음악 선곡에 무척 신경쓰는 나로서는 그 뽕짝음악이 미치도록 싫었다. 그 뽕짝음악 때문에 내가 심사숙고해서 고른 음악들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고질병과도 같은 비관적 생각들을 조금 완화시키고 어쩌면 더 심화시킬 작정으로 간 자유공원에서 혼자 석양을 바라보는 중에 흘러나오는 그 뽕짝음악들은 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항상 압도했다.

  6시를 피해서 갈 수도 있지않느냐 하겠지만, 그 시간을 피하기는 힘들다. 보통 3시~4시쯤에 산책을 나서면 필수적으로 그 음악과 춤추는 무리들을 단 10분이라도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다 저번 주에는 심각하게 우울한 기분이 들어서 갑자기 나도 저 춤추는 무리 사이에서 무대의 아저씨를 따라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난 과감하게 이어폰을 빼고 무대의 아저씨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 어느 누구도 날 신경쓰지 않으시고 열정적으로 동작을 따라하셨다. 그 점이 날 편안하게 만들었다.  

  몸이 뻣뻣하고 춤이라곤 춰본 적 없는 내가 따라하기에는 동작들이 꽤 어려웠지만, 난 그 순간 뽕짝 음악에 맞춰서 방방 뛰고 있는 내가 너무 웃겨서 혼자 깔깔깔깔 웃었다. 음악이 워낙 컸기 때문에 누구도 들을 수 없었겠지만, 2014년 들어 그렇게 크게 웃어보긴 처음이었다.  

  저질 체력 때문에 15분 따라하고 이내 관뒀지만, 우울한 기분이 많이 나아져서 더이상 저 뽕짝 음악을 미워하지 말고 종종 따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체조 시간이 끝나고 일요일 밤의 자유공원에는 나 혼자만 남고 썰물처럼 모든 사람이 빠져 나갔고, 맥아더 동상 앞에서 동상 해설을 읽고 있던 나는 갑자기 무서운 기분이 들어서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계단을 마구 뛰어 내려갔다. 내가 크게 소리를 질러도 도와줄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맥아더 동상 앞에서 생각한건데, 나에게 누군가가 만약 맥아더 동생이 철거된다면 왜 철거됐을 거 같냐. 고 묻는다면 동상이 세워진 위치가 분수에 넘치게 좋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거다. 우리나라 위인 중 어느 누구의 동상도 그렇게 좋은 위치에 세워질 순 없을 것 같다. 뭐 내가 아는 동상이라곤 광화문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 밖에는 없지만, 맥아더 동상이 세워진 자유공원의 그 위치는 정말로 너무나 심각하게 좋은 위치다.

 

  이번주에는 아쉽게도 자유공원에 못갔다. 심지어 바깥에 한번도 못나갔다. 왼쪽 눈에 다래끼가 나서 계속 욱씬거리고 아파서 집에서 쉬기만 했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안보인다. 저번 독감때문에 3일 연속 쉰 뒤로는 또 쉰다고 말하기가 좀 눈치 보이는데 아무래도 병원에는 들렀다가 출근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