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번주 토요일에 남편과 '기생충'을 보러가서 생리가 터졌다. 이미 수요일 쯤 임신테스터기로 한줄임을 확인해서 큰 기대는 안했지만, 허탈했다. 2017년도만 해도 생리주기가 33일 이상이었다. 시험관 때문에 올해 초부터 몸에 호르몬을 막 때려넣다 보니 생리 주기가 매달 제각각이다. 배아 이식을 하고 일주일만에 생리가 터진 걸 봐선 이식 날짜가 잘못된 것 같기도 하다. 뭐 가장 큰 문제는 내 몸상태가 불량하고 나이가 많다는 것이겠지만... 아직 더 시험관시술을 해야하는데 벌써 몸에서 티가 나서 걱정이다. 우리 부부의 난임은 작은 병원에서는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아 이번 주 토요일에 큰 병원으로 옮겨서 다시 진행해보기로 했다.

2. 영화 '기생충'은 기대했던대로 정말 재밌었다. 난 대학 시절 하루종일 햇빛 한점 안 드는데, 배관까지 잘못되서 베란다에서 하수구 냄새가 역류하는 어느 북향 원룸에 살았다. 어느 날 전주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셨는데 내가 차 뒷자리에 타자마자 아빠가 하수구 냄새가 난다고 하시더라. 그 뒤로 아빠가 사고를 쳐서 그 원룸에서 아빠와 단둘이 살게 되었을 때도 아빠가 시도때도없이 하수구 냄새 난다고 불평하셔서 말그대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엄마는 하수구 냄새 풍기고 다니는 딸을 안타까워 하는데 아빠는 불평만 하셨다. 나중에는 아빠 혼자 하수구 냄새나는 집에 사시라고 하고 뛰쳐나가고 싶었고, 돈이 없어서 하수구 냄새 나는 방 외 다른 대안이 없는데 대체 어떡하라구요? 라고 되물으며 울부짖고 싶었다.

대학시절 당시 아마도 내가 강의실에 들어가면 하수구 냄새 풀풀 풍겼으리라. 이런 경험이 있는 나는 영화 '기생충' 보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고, 뒷맛이 씁쓸했다. 하나같이 연기를 다 잘하는데 이선균이 제일 아쉽고 조여정이 의외였다. 연기 너무 잘하시더라. 남들이 날 무시하는 것 같으면 뚜껑이 열려 결국 모든 걸 그르치는 우리 아빠가 생각났다. 결국 그게 한국 대부분 중년 남성들의 모습이고, 그 중년 남성들의 가장 큰 피해자는 그 집 딸이다. 나도 그렇게 살았고 '기생충'의 똘똘한 기정이도 결국 최고 피해자가 된다.

3. 그닥 즐겁지 못한 20대를 보낸 나는 대학 축제 철에 TV에서 공연보면서 방방 뛰는 모습 보여주며 젊음을 예찬하는 멘트를 들을 때마다 삐딱해진다.

4. 시어머니와 우리 엄마 두분 모두 우리 부부가 언젠가 자연임신이 될거라고 믿고 계신다. 시어머니는 첫애를 22살에 낳으셨고 우리 엄마는 26살에 낳으셨다. 난 현재 37살이다. 당신들이 애를 임신했던 때와 지금 내가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걸 전혀 고려치 않는 생각이다. 자연임신하라는 말을 2월 3월에만 해도 그냥 웃어 넘기며 들었는데 앞으론 화가 날 것 같다. 병원에서 거의 가망 없다고 했는데 왜 자꾸 그러시는걸까.

5. 남편이 시험관 실패해서 의기소침한 내 기분을 풀어주겠다고 토요일 내내 애를 많이 썼다. 하하호호 웃으며 오랜만에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하고 맛있는 음식에 시술 때문에 못마시던 맥주까지 시원하게 마시고 누웠는데 2월에 처음 병원에 갔을 때부터 남편이 배에 주사 놓아주고 난자 채취하고 배아 이식하고 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다 쓸데 없는 짓이었단 생각에 눈물이 났다. 결국 혼자 거실나와서 펑펑 울다 잠들었다.

6. 제일 친한 친구가 임신했는데 극초기인데도 양수가 세서 한달동안 입원했다. 걔 입원한동안 심심할까봐 매일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퇴원 후 난 임신했는데 넌 '그러고' 있어서 내가 뭔 말을 못하겠단 식으로 말하고 그 뒤로 연락이 없다. 그냥 평소대로 대해주면 되지 꼭 그렇게 난 임신, 넌 비임신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콕 꼬집어 말했어야 했을까. 빈정상해서 나도 연락 안하고 있다. 

7. 회사일이 한가해졌다. 새로 들어온 직원이 생각보단 괜찮아서 내 일이 많이 줄어 들었다.


지옥같은 겨울 근황

일상 2018. 2. 13. 17:39

1. 엄마 

  동생 결혼준비를 하면서, 엄마를 지켜보는 것이 괴롭다. 가끔 우리 엄마가 암에 걸린 원인 1위는 아빠, 2위는 성격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 엄마는 걱정이 너무 많다. 또 걱정이 있으면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한숨 주무시질 못한다. 소심하긴 얼마나 소심한지... 아들이 싫어할까봐 마음에 있는 말은 하나도 못하고, 또 그걸 말할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나한테 속마음을 털어놓는데, 그걸 듣고 있다보면 나도 답답하고, 저러다 또 엄마가 크게 탈이 나면 어쩌나 싶고.. 그렇다.

  고부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내 아들을 객관화 하여 바라보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보는데, 보통의 중년 여자들은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남자 즉, 남편을 대한민국 평균 남성의 모습으로 생각한다. 대부분 남편보다는 아들들이 시대적 요인에 의해 더 진보적인 사고를 갖게 되니, 엄마들 눈에는 자기 아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편감 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 아들은 외모도 그만하면 미남이라고 생각들을 하니.... 거 참.

  동생이 선울 본 것도 아니고, 강제로 결혼시키는 것도 아니니, 당연히 둘이 좋아해서 만나고 결혼도 하는 거고, 그 얘기는 둘 다 결국 똑같다는 거라고, 제발 동생 아까워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소용 없다. 요즘 우리 엄마는 너무 너무 사소한 것에도 백년의 실망을 하고, 마음 다스리느라 한시간씩 식탁에 앉아 기도하고 그러신다. 또 우리집 특유의 종교 문제까지 얽혀서 요즘 너무 괴롭다. 이 모든 걸 아들 앞에서는 전혀 티를 안내려고 하니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하고...

  난 아들도 있고 딸도 있는 게 좋지 않나? 란 생각 자주 했는데 요즘 보면 아들은 정말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엄마가 여기 생활 다 접고 시골 내려가고 싶다고 하실 때마다 병원도 먼데 어딜 가시냐고 말렸는데, 요즘 보면 아들 딸과 소식 끊고 그냥 1년에 몇 번 애틋하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 소녀

  남자친구에 대해 딱히 표현할 말을 못찾다가 어제 별명을 지어줬다. 소녀라고...내가 지었지만 참 잘 지었다. 난 은근히 남자같은 면이 많은데, 특히 연애에 있어선 더더욱 그런 편이다. 뭐 내 성향을 남자같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난 애교가 없고, 질투도 별로 안하고 연락도 잘 안하고, 은근히 남자한테 고백도 잘한다. 

  사귀자는 말은 남자친구가 먼저 했지만, 내가 어마어마하게 티를 냈기 때문에, 남자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어서 사귀자는 말을 한 경향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엊그제 내가 너무 잘 대해줘서(?) 사귀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 말에 좀 속상했다. 나는 남자친구도 날 어느 정도는 좋아했기 때문에 사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엄청 자주 했는데, 남자친구는 내 맘도 모르고 자꾸 그런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내가 너무 슬프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나중에 이 분이 살아온 세월을 헤아려보니 그런 생각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미스테리다. 남자친구의 인생... 어떻게 그 나이에 그렇게 순진할 수 있는지, 볼 때마다 신기하다. 나도 순진함으로 말하면 어디가서 빠지지 않는 사람인데... 끙. 하여튼 아직까진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너무 순수해서 상처주지말고 앞으로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 자주 한다.


 3. 겨울

  정말 이번 겨울 너무 악랄하지 않나. 너무 춥다... 이렇게 추운데 남자친구가 차도 없어서 외출도 엄청 많이 하고 있다. 정말 나이들어 추운 겨울에 연애하기 힘들구나.


4. 설

  설연휴 때 아마 며느리될 분이 올 예정인데, 휴... 벌써부터 피곤하다. 엄마 아프신 뒤로 기도할 때, 맨 첫번째 기도는 항상 엄마 안아프게 해주세요. 였는데 요즘에는 제발 엄마가 며느리 때문에 속상하지 않게 해주세요. 가 되었다. 제발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근황

일상 2017. 12. 12. 17:27

1. 바쁜 회사

  원래 11월에 로마에 놀러가려던 계획을 취소한 건 신의 한 수 였다. 11월 중순부터 저번주 까지 정말 미친 듯 바빴다. 물론 다른 회사 사람들처럼 절대적으로 바쁜 건 아니었다. 전 회사에서는 매일  저녁 안먹고 밤 10시까지 몇개월 내내 야근해도 도저히 해야할 일을 다 끝마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 회사에서 지금 내가 받는 월급과 이제까지의 업무량을 따져보면 분명 바빴다. 지금 회사로 이직한 지 이제 2년 3개월 됐는데 처음으로 6시 넘어까지 일했다. 그렇다보니, 야심차게 시작했던 독후감 쓰기도 전혀 안쓰고 있고, 일기도 못쓰고 그랬다. 오늘은 조금 짬이 나서 근황을 전한다. 


2. 친구의 연애

  친구가 연애를 시작하고, 행복에 들떠 있을 때, 내 우울의 모든 원인은 '남자'라고 단정지어서 당시 엄청 열받고 분했다. 실제 내가 연애를 하고보니, 역시나 난 친구가 말한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다. 분명 지옥같았던 그 시기만큼 우울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워 지고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약간 친구와 나는 어쩌다보니 약간 상황이 역전됐다. 친구는 여전히 그 남자를 만나지만, 그 남자 때문에 종종 우울한 모양이다. 글쎄.... 난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애정 문제에 있어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라, 걔에게 별다른 말은 안했지만, 내가 들은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친구의 애인은 그다지 좋은 남자는 아닌 것 같다. 아니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고, 그저 둘은 원하는 바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 같으면 못참고 벌써 도망가고 말았을 것 같다.


3. 해프닝

  11월에 쓴 일기에 적었던 무단결근하고 회사를 관두겠다고 난리를 피웠던 직원은 어쩌다보니 다시 주저앉았다. 지금 내 대각선 맞은 편에 앉아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 또 그럴지 알 수 없어서, 도저히 믿음이 안간다.


4. 도스토예프스키

  내 곁에 아무도 없었고,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손을 뻗었지만 무참히 무시당하고 말았던 지난 여름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쓰리다. 아마도 20살 이후 인생 최고의 위기가 아니었을까. 그 때 내 우울에 전염될 것 같아서 나를 보지 않겠다고 말했던 사람과는 마음 속으로 영원히 절교했다. 우울의 절정에 있을 때 그나마 날 살려준 건 기도와 Bach 와 E.M 포스터의 책들이었고, 역시 사람은 나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우울의 진창에서 빠져나와 어느 정도 뇌가 정상 궤도에 도달했을 때 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읽었는데, 그때부터 난 진심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존경하게 되었다. 아직 그의 작품을 다 읽진 못했지만, 요즘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이 너무 재밌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며칠 전 읽은 이반 부닌이나, 나쓰메 소세키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난 언제나 고독하고 괴팍하고, 다혈질에 결국에는 약간 미쳐버린 도스토예프스키 세계의 인물들이 너무 좋다. 그들은 분명 사랑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난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등장 인물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때마다 매번 감탄하고 놀란다. 지금은 '죄와 벌'을 읽는 중이다.


5. 나의 연애

  남자친구 집과 우리집이 꽤 멀고, 그에게 차가 없어 결국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보고 있다. 거깃다 남자친구는 주말에 하루는 꼭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라.. 더더욱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와 만난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따져보니 사귄 지 아직 한 달 밖에 안됐다.

  저번주에 만났을 때 오빠에게 정말 내 남자친구가 맞는 거냐고 물었다. 그만큼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 첫눈에 반한 이 귀여운 남자가 날 좋아한다니... 이거 정말 꿈 아니야? 행복할 겨를도 없이 끝없이 의아할 뿐이다.

  주책 바가지 같이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서 민망할 때도 많지만, 모르겠다.. 난 좋아하는 남자에게 잘해줄 수 있는 한 최대한 잘해주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 기회에 소원 성취 하는 셈 치고 계속 잘해주려고 매일같이 다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들뜨지 않으려고 무지 애쓸 때도 있다. 조금 두려운 기분이 든다. 언제까지 이 감정이 지속될 지 알 수 없기도 하고, 나보다 남자친구가 먼저 변할 수도 있는 거니까 말이다. 나는 어쩔 수 없나보다. 행복할 때도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는 버릇은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다.


부상 소식

일상 2017. 8. 3. 17:27

  7월초 부터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가 많이 아팠는데, 워낙 관절이 안 좋은 편이라 손을 아껴쓰면 낫겠지 하고 계속 두고 봤다. 그런데도 영 낫지 않아 저번주 토요일에 병원에 갔더니 인대가 찢어졌다고 한다.

  몇 년 전 인대 3개 파열되는 부상을 당한 뒤로, 물리적 고통에 좀 둔해진 느낌이다. 인대 파열 사건 뒤론 여간해선 아프단 생각 잘 안한다. 인대가 찢어졌는데 한의원 가서 침맞고 혼자 찜질만 했으니 나을 턱이 없었겠지. 좀 신기한 것이 내가 왼손으로 크게 무리되는 활동을 한 게 없는데, 단지 왼손으로 마우스질 많이 한 걸로 인대가 늘어난건지.. 아니면 자면서 인대가 늘어날만한 동작을 한건지. 거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대체 왜 어째서 인대가 찢어진걸까.

  손가락이다 보니 키보드 치는데도 영향이 많이 간다. 이 부상 때문에 써야지 하고 결심한 독후감도 하나도 못쓰고 업무 시간에 할 일 없을 때는 멀뚱거리고 있다. 보통은 그럴 때 블로그 글 업데이트 하곤 했는데... 요즘에는 네이버 캐스트만 열심히 읽는다.

  내 업무 특성상 7~8월이 제일 한가한 때인데, 원래 광복절에 여행을 가려다가 11월 티켓이 엄청나게 저렴한 걸 보고 계획을 수정했다. 11월이면 꽤 춥겠지만, 내가 지금 가진 돈은 해외 여행 가기엔 부족하고, 근데 또 해외를 가고는 싶고 해서 그냥 옷 많이 껴입고 다니기로 했다. 비수기라 그런가 요즘 티켓보다 약 30만원 정도 저렴하다. 30만원이면 숙박비 하고도 남는 돈이니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오늘 티켓 발권까지 완료했는데, 아직 갈 날이 멀어서 그런지 실감은 안나네.

  8월이 되자마자 우리집 TV 를 사고, 타이어도 4개 다 바꿔서 벌써 70만원 넘게 돈을 썼다. 8월 된 지 3일 밖에 안됐는데... 아빠한테 우리집 타이어 4개 다 바꿔야 할 거라고 계속 말했는데도 절대 인정을 안하셨다. 4개 다 바꿔야 한다고 말했던 카센터 이제까지 한번도 없다, 만약 4개 다 바꿔야 한다고 말하면 그거 다 돈벌려고 수작 부리는 거라고 하도 우기셔서, 내 카드 주면서 그럼 아빠가 직접 가서 물어보라고 했더니 역시나 내 말이 맞았다. 심지어 아빠가 교체할 필요 절대 없다고 주장한 뒤 쪽 타이어는 2005년 이후로 한 번도 안 갈았다는 충격적 소식까지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집이 맨 처음 차 살 때 껴준 타이어를 아직도 끼고 다닌 것이었다. 볼 때마다 내가 이 타이어 때문에 언젠가는 사고를 당하겠지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바꿨다.

  가끔 카센터에서 여자라고 사기치는 사장들도 여자로서 견디기 힘들지만, 남자 가족 구성원이 여자가 차수리 맡기면 무조건 사기 당할거라고 의심하는 것도 만만치않게 힘들다. 여자도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고, 설명듣고 결정할 수 있는데, 무조건 니가 몰라서 속은거다. 라고 우기면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한 4년 전에 회사 가까운 카센터에 앞 유리 교체하러 갔더니 다른 것도 손 볼게 많다면서 150 만원 정도 들 거라고 견적서를 뽑아서 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러워서 우리 동네 가서 그 견적서 들고가서 물어보니 안 바꿔도 될 거 잔뜩 적어놨다면서 약 36만원 정도에 꼭 필요한 것만 고쳐 주셨고 그 뒤로 아무 문제 없이 잘만 타고 다녔다. 나도 나름대로 잘 판단하고 잘 고친다고 생각하는데.. 36만원에 저렴하게 수리해준 카센터 사장님은 건강이 안 좋아졌다며 약 2년 전에 카센터 사업 정리하셨다. 내가 그 카센터 문 닫을 때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내일은 인대 병원 때문에, 연차를 냈다. 오전에 가야하는데, 이 날씨에 병원 들렀다 다시 출근할 자신이 없었다. 우리집은 엄마가 하루종일 에어컨 못 켜게 하시니, 어딘가 또 피신을 가야 하는데, 어딜 가야 하나 고민 중이다. 또 알라딘 중고서점이나 극장 중 한 군데가서 하루종일 시간 보내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내일 회사 안온다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좋다.


숨은 의도

일상 2017. 6. 13. 17:20

1. 어제는 뜬금없이 예전에 학원에서 알았던 남자한테 메시지가 왔다. 나랑 동갑이고, 당시 아마 내가 블로그에도 썼는데 어느날 점심 같이 먹다가 갑자기 자기 연봉을 말해서, 난감했던. (당시 연봉 높으시네요. 라고 말하며 박수를 쳐야하는 건가. 아니면 나도 내 연봉을 말해야 하는건가 고민했다.) 

  그 남자가 어제 나한테 자기 내년 9월에 텍사스에 있는 대학에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가게 됐다고 하는거다. 아니 1년 만에 연락해서 왜 본인 진로를 말하지? 의아했지만 모르는 사람이 아니니, 부럽다고 했다. 유학가서 공부하는 것보다 회사 때려치고 간다는 게 진심 부러웠다.  그런데  유학가기 전에 결혼을 하고 싶다는거다. 푸하하하. 아니 이건 뭐임? 1년 만에 연락해서 유학 전에 결혼하고 싶다니. 

  이번에도 역시 예전 '연봉' 때 처럼 대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나 어리둥절 하고 있다 할 말이 딱히 없어서, 뭐... 유학 가기 전에 가정 이루시면 안정감도 들고 더 좋겠죠. 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렇게 대충 답을 해주고, 화장실에서 곰곰히 이 사람의 의도를 생각해보니, 답이 나왔다. 이 남자는 소개팅을 원했던 것. 해답을 알고나니, 예전에 나한테 연봉/출신학교/직장 다 털어놓은 것도 이제서야 다 이해가 됐다.

  차라리, 대놓고 여자 좀 소개시켜주세요. 라고 말했으면 찾아본다고 했을텐데, 뭘 또 이렇게 힘들게 돌려 말하나 싶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당시 같이 학원 다녔던 피아니스트 언니에게 물어보니, 그 언니한테도 저번달에 걔가 뜬금없이 자기 유학간다고 메시지를 보냈다는거다. 그 언니는 걔 너무 영업하는 사람처럼 군다고 싫다고 했던터라, 네 잘됐네요. 잘가세요. 라고 단답식으로 메시지를 보내셨다고 한다.

  내가 아닌 언니한테 먼저 메시지를 보낸 것도, 속이 뻔히 보였다. 언니가 레슨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엄청 부자집 자녀들이고, 우리에게 언니가 보여준 언니의 지인들이 다 워낙 예쁜 사람이 많기도 했다. (이 언니도 예쁘심) 이런 생각 전혀 못하고 걔 왜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묻는 언니에게 '언니 제가 잘 생각해봤는데요. 아무래도 언니한테 여자 좀 소개시켜달라는 의도였던 거 같은데, 안되니 저한테도 연락한 거 같아요.' 라고 말해줬다.

  뭐 내가 넘겨짚은 것일 수도 있지만, 99% 맞을 거라 생각한다. 

  이 남자 애 때문에 오랜만에 언니랑 전화하게 되었고, 덕분에 언니랑 목요일에 같이 저녁 먹기로 했다. 언니가 맛있는거 사줄 것 같다.


 2. 엄마는 나보고 너는 어렸을 때,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런가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근래 엄마 주변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의 전망을 내 나름대로 분석해서 이렇게 될 것이다 예상해서 엄마에게 말씀드렸는데, 대부분이 다 현실이 되었다. 심지어 'OO가 이렇게 말하며 싫다고 할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번 더 물어봐봐.' 라고 엄마한테 말했는데, 엄마가 그 사람이 너가 말한 고대로 말하면서 싫다고 했다는 거다. 엄마가 넌 다 아니 좋겠다고 하셨지만, 사실 이건 별로 좋지 않다. 

  뭐든지 예상대로 되는 건 정말 재미없다. 내가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 거라기 보단, 워낙 사람 관찰하는 걸 좋아하고, 내 주변에 예측불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뭐든 확신하면 큰 코 다칠 수 있으니, 건방지게 너무 내 예상만 100% 믿으면 안되겠지만.


3. 어제 카페하는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해서 하는 수 없이 전화 통화를 좀 오래했는데, 스트레스 받았다. 나중에는 그냥 지금 얘한테 말해 뭐하겠나 싶어서 더 말 안했다. 걔는 현재 모든 게 즐거운 상태고, 나는 거의 정반대라 뭔가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4. 앞으로 또 나쁜 생각이 들면, 그냥 내 핸드폰 메모장에 쓰고, 회복되면 바로 바로 지워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시각적으로 삭제되는 게 눈에 보여서 그런지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조금 도움이 되는 느낌이다.


5. 엄마가 아프신 뒤로, 일요일에 친척이 너무 자주 오신다. 처음에야 고마운 마음에 인사도 드리고 얘기도 나누고 했지만, 너무 자주 오시니 더 할말도 없고 하여, 전화로 친척이 지금 우리집으로 출발한다고 하면 나는 부랴 부랴 옷 갈아입고 화장하고 차타고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향한다. 인천에 중고서점 생겨서 너무 좋다. 저번 일요일에도 큰엄마 오신다고 해서 중고서점으로 피신했다. 거기서 책 2권 이나 샀는데 8000 원 밖에 안들었다. 


6. 넌 이민가면 훨씬 행복하게 살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 한 명 있는데, 이민은 무슨 이민? 이민은 아무나가나. 갈 수만 있다면 벌써 갔겠지. 사람들이 정말 말을 쉽게 한다.


7. 중고등학교때는 일기를 손으로 쓰다가 블로그로 넘어오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친구의 영향도 있지만, 내가 글씨를 쓸 때 지나치게 손에 힘을 주고 쓴다는 이유도 컸다. 저번에 회사에서 쓰는 3색 제스트스림 고무랑 볼펜 연결 부위가 부러졌는데 (제일 약한 부분) 이번에도 똑같은 부위가 부러졌다. 연필이 부러진 것도 아니고 볼펜을 부러뜨리다니. 난 이 닦을때도 힘을 너무 세게 줘서 칫솔이 부러진 적도 있다. 차인표가 드라마에서 하던 분노의 칫솔질을 나는 매일같이 하고 있나보다.


8. 내가 돈을 빌려드렸던 친한 고모는 인테리어 관련 사업을 하신다. 어제 그 고모께서 미수금 때문에 사업을 그만 두시려고 고민 중이란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미수금이 얼마인지 물어봤더니 7천만원 이란다. 자그마치 7천만원. 그 얘기 듣고 너무 슬펐다. 고모랑 고모부 둘이서 하는 아주 작은 사업인데, 그런 사업장에서 7천만원이면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다. 어제 그 얘기 듣고 흥분하여 다 고소하면 안되냐고 했는데, 이 말은 내가 들었던 너는 이민가서 살아야 한다는 말 만큼이나 부질없는 말이라는 걸 이내 깨달았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고모가 안됐다.


설연휴 후 근황

일상 2017. 2. 11. 16:50

1. 연휴동안
  동생과 나 둘 다 시집장가를 못가서 우리 집 명절은 언제나 단촐하다. 동생의 이번 여자친구는 진짜 결혼까지 갈 것 같기도 한 게, 명절 이나 부모님 생신 때마다 선물 보낸다. 이번 설에 그 아이가 보낸 떡을 맛있게 먹었다.
  아빠가 새해 세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원하는대로 하질 않아서 작년 설에는 집안이 시끄러웠다.
 
  작년 설 때만 해도 2016년 우리집에 그렇게 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는데... 올 설에는 아빠께서 원하시는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배하고 예배를 드렸다. 점심 때는 시흥에 사는 이모네 가서 또 예배를 드리고 기도했다.
  우리 엄마는 머리카락만 없다 뿐이지 편찮기 전과 똑같이 생활 하신다. 한창 아프셨던 작년 추석 때는 음식 거의 못하셨는데, 이번 설 때는 식혜 를 비롯하여 갈비, 동태전, 월남쌈 까지 만들어 주셨다. 내가 무리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지만, 할 수 있다고 자꾸 요리하고 싶어 하셔서 나도 음식장만을 도왔다.

2. 친척들 근황
  설에 이모네 가서 우리집이랑 친하게 지내는 사촌 남동생이 결혼을 하자마자, 회사를 그만두고 경찰 공무원 시험준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난 사표 쓴 건 너무 이해할 수 있지만, 공무원 하고 싶어하는 건 절대 이해를 못하겠다. 며칠전에도 관할 세무서에 전화하면서 화가 나 죽는 줄 알았는데. 정말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안일하고 게으르고 불친절 끝판왕의 표본인 공무원이 되고 싶을까? 심지어 뉴스에서 가끔 듣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갉아 먹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범죄 들과 밀접한 업무를 하는 경찰공무원이라니! 사명감이 있어서 도전하는 거면 존경스럽지만, 만약 그저 공무원이어서 하고 싶어서 공부하는 것 이라면... 나와 친한 지인이 그런 결심을 했다면 다시한번 생각해보라고 했을 것이다.

3. 동물적 감각
  매달 생리가 돌아오고, 또 배란 때가 되면 인간도 역시 동물이구나... 하고 느낀다. 초경을 시작한 이래 매달 느끼는 기분이지만 정말 좋지못한 기분이다. 평소 남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 전혀 안하는데 이럴 땐 남자들은 얼마나 편할까 싶다.

4. 재입사한 직원
  작년에 퇴사하는 날, 뜬금없이 수트를 입고와서 기억에 남았던 직원이 재입사했다. (우리 회사는 개발자들 대부분 청바지에 티 입고 다님)
  그 직원 캐주얼 입을 땐 몰랐는데, 차려입은 모습이 평소랑 다르게 멋져보여서 당시 좀 놀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 날 사표내고 다른 회사 면접 볼 작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인사업무를 하다보니, 서류로 파악되는 직원의 가족관계나 개인사정 같은 게 있는데, 그 직원은 계속 불행하게 살아온 것으로 추정이 되서 잘됐으면 했는데, 또 우리회사에 입사하다니..이 회사에 다시 돌아온 건 실패라는 뜻인데 좀 안타까웠다.
  그래도 퇴사 전 급여보다는 높게 계약한 거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수트 입었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서인지, 서류 안내 등을 하는데 그 직원의 눈을 제대로 못 쳐다봤다. 내 나이가 몇 인데 또래 남자한테 이렇게 내외를 심하게 하나 싶어서 스스로 웃겼다. 결혼해서 애 낳으면 젊은 남자 봐도 아무렇지도 않고 쳐다보거나 말하는 거 하나도 어렵지 않을까? 아마 그것도 사람 나름이겠지.

5. 점심시간 은행 가는 길 

 
  며칠 전 직장인들 중 '혼밥' 하는 직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학교에서 일할 때 여자들끼리 모여서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며 맞장구 쳐줘야 하는 것에 너무 큰 피로를 느꼈다. 밥먹으며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어쩔 수 없이 나도 말을 해야 하는 것이 너무 피곤해서, 혼자 밥 먹을 핑계를 찾다가 그 핑계도 마땅치 않아, 일부러 학교에서 하는 영어 수업을 점심시간에 듣는 걸로 신청해서 몇 달동안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적도 있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 중, 남들이랑 밥 먹는 것 조차 싫으면 회사생활 때려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댓글이 있었다. 나도 동감이다. 나 같은 인간은 인간관계를 최소한으로 하고 혼자 하는 일을 해야 여러 사람이 편한 인간이다. 그런데 먹고 살려면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난 내 맘대로 일할 만큼 큰 능력도 없다.

  친한 친구가 며칠 전에 자기랑 같이 맛있는 걸 꼭 같이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 아니냐고 자기는 그런 사람 너무 괴롭고 힘들다는 애기가 나왔다. 그 말을 듣고 역시 나랑 친한 친구구나 싶었다. 왜냐면 나도 줄곧 똑같은 생각 하고 있었으니까.

  이건 순전히 나 혼자만 믿고 있는 이론이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인생의 최고 기쁨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들과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면 남들도 좋아할 것이라 확신한다는 점에서. 나는 점심시간에 맛있는 거 먹고 싶다는 생각 별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식판 밥도 맛없다는 생각 별로 안 들고, 먹는 것이 내 일생의 가장 큰 기쁨은 더더욱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맛있는 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는데 그것도 전혀 나한테는 해당 사항 아니다. 그런데 먹을 걸 밝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같이 매 식사 맛있는걸 찾아 다니며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인 줄 안다. 마치 대부분의 애완견주들이 내 애완견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며 만지고 싶어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거랑 비슷하다. 

  결론은 나는 먹는 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과 함께하면 피곤하고 마음이 불편하고 하여튼 친하게 지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너의 편견이라고 욕해도 하는 수 없지만 난 그렇다. 대학생 때도 친구한테 난 먹기 싫은데 계속 먹으라고 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니, 예전부터 난 그랬던 것 같다.

  불행히도 우리 회사에 내가 밥을 꼭 같이 먹어줘야만 하는 여자 부장님이 딱 이런 과다. 먹는 걸 너무 좋아하셔서 매 점심시간마다 뭐 먹을지 고민하고 맛있는 걸 먹자고 하고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는 엄청 먼 곳까지 기꺼이 찾아가고 기다린다. 예전 성수동 있을 때는 점심시간에 그 부장님의 차 타고 건대 앞도 가고 롯데백화점도 가고 그랬다. 단지 점심 시간에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 더 환장하는 건, 난 전혀 가고 싶지도 않았던 비싼 음식점에 나를 끌고 가서는 죽어도 밥값은 더치페이를 한다는 것이다. 그 부장은 그러면서 내가 맛있는 걸 먹었으니 행복할 줄 안다. (내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본인이 먹고 싶은 걸 먹느라 날 끌고 다니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설마..) 올해 우리 엄마 보험료도 오르고, 내 통신요금도 늘어나고 해서 나는 요즘 만원 단위로 돈 아끼면서 꼭 필요한 것만 제일 싼 걸로 찾아 사는 등 간신히 생활하는데, 먹고 싶지도 않았던 비싼 음식을 먹고 만원 넘는 돈을 내고 나면 맛있는 걸 먹어서 좋기는 커녕 한없이 우울해진다. 이런 걸 보면 내가 먹는 데 큰 관여를 안하게 된 게, 일생 맛있는 걸 양껏 먹을 만큼 여유가 있어본 적이 없어서 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 많은 돈이 생긴다고 해도 난 그 돈으로 뭘 할까. 고민할 때 비싸고 맛있는 걸 먹는 것이 우선 순위에 들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이유로 나는 혼자 먹을 핑계가 생기면 어떻게든 혼자 먹으려고 한다. 며칠전에는 마침 OTP 갱신 시점이 되서 은행갈 일이 생겨 은행 때문에 혼자 좀 다녀오겠다고 하고, 가산디지털단지 내 산업은행을 찾아 나섰다. 사무실에서 신는 슬리퍼 신고 나왔는데 육교도 건너고 2km 넘게 걸었지만, 혼자 걷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위에 사진은 육교 건너는 중에 보이는 풍경을 찍은 건데, 막무가내로 지어 올린 아파트형 공장이 범람하는 가산디지털단지는 내가 보기엔 정말 정 없고 멋 없다. 비행기가 엄청 낮게 나는 구간이라 비행기가 지나가고 전철까지 지나가면 시끄럽기도 엄청 시끄럽고. 하지만 뭐 아무리 그래도 성수동 보단 백배 좋다.

  그런데 지금이 2017년인데, OTP 같은 실물 도구를 지참해야만 금융거래가 되고 갱신 시점이 되면 반드시 본인이 은행까지 찾아가야만 한다는 거 너무 미개하지 않나. OTP 가 없으면 금융거래 아무 것도 못한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은행 사이트가 보안이 엄청나게 잘되냐. 그것도 아니고.. 어쨌든 이번에 갱신 했으니 3년간은 OTP 갱신하러 은행 안가도 되지만 3년 뒤에도 똑같이 이 OTP 를 사용한다면 난 아직도 미개한 한국의 은행 시스템이라고 욕하면서 은행에 가겠지.


1. 요즘 나와 제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름도, 나이도, 소속도 모르는 타인들. 사람들로 뒤엉킨 신도림역 플랫폼이나, 기어코 전철에 탑승하는 출퇴근하는 직장인들과 매일같이 부대끼고 어쩔 수 없이 몸을 맞닿은 체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과 나는 눈 한번 마주치지 않는다. 키가 작은 나의 눈에 보이는 건 그 사람들의 스카프 색이나, 핸드폰 기종이나 양복 색깔 뿐.

2. 혼자 점심 먹는 게 좋다. 은행 간다는 핑계로 혼자 길을 나서 편의점에서 튀김우동과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2,030 원 주고 사먹었다. 오른쪽에는 겨울을 알리는 호빵이 왼쪽에는 전자레인지가 있어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에게 꽤 시달렸지만, 말 한마디 안해도 상관없어서 정말 평화로운 점심시간이었다.

3. 점심을 먹다가 회사 건물 1층 카페 쿠폰 12개를 다 채워서 공짜로 커피 한잔을 먹을 수 있다 생각하니 별안간 기분이 좋아졌다. 쿠폰으로 평소 잘 안먹던 카라멜 마끼아또를 공짜로 받아 마시는 중이다.

4. 어제 밤에는 평소 전혀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토니안이 내 애인으로 등장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5. 대학시절 갑자기 이사를 가야해서 복덕방 아주머니와 학교 주변 원룸을 보러 다녔다. 아주머니는 주인도 없는 원룸을 열쇠로 마구 열고 보여주셨는데,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등교 후 남자 대학생들이 살고있는 원룸의 실상을 목격했다. 벗어놓은 팬티를 대체 몇 개를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방바닦에 그대로 벗어져 있는 남자애들의 체크무뉘 사각팬티를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갑작스럽게 봐야만 했다.

6. 작년 같으면 미국야구 한국야구 가리지 않고, 야구를 엄청 열심히 시청했을 시즌이다. 그런데 요즘은 전혀 재미가 없다. 어제 기아 타이거즈가 이겼는데도 무감흥.

7. 하석진이 나오는 혼술남녀가 요즘 나의 유일한 낙이다. 어제는 하석진 님 분량이 너무 적어서 짜증났다.


근황과 푸념 가득

일상 2016. 4. 25. 18:24

1. 바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유방암으로 수술을 하고 복직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수술한 가슴에 다시 뭔가 만져져서 병원에 가는 중이라는 메세지를 보고, 내 가슴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유방암이 재발하면 (내 입에 이 단어를 올리기 싫지만) 사망 위험이 크다는 말을 어디 선가 봤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내 곁을 먼저 떠날 것이란 상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가 검사결과 말해주기까지 몇 분 동안 만약에 만약에 결과가 최악이라면, 친구는 어떻게 해야하고, 난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의사에게 암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눈물이 또 핑 돈다.

2. 요즘 다시 읽고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을 보면 (정확친 않지만) 주인공 소피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자신의 인생에 대단한 일이 벌어질 확률이 매우 낮음을 너무 빨리 알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책은 이래서 좋다. 내가 느꼈던 걸 정확히 표현해주니까.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 보다는 내가 더 경제적으로 발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한 때는 동화 작가 같은 꿈을 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난 언제나 사회진출에 유리한 쪽으로만 행동하고 그 방면에서 뛰어나길 원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다 부질없었단 생각이 든다. 점점 더 내 인생이 내 기준에서는 실패한 인생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 내 자신이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다. 내가 더 강하게 버텼다면, 지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 때문에 점점 더 제 정신으로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

3. 이 말을 글로 쓰는 순간 더 사무칠 것을 알기 때문에 웬만해선 일기에도 안쓰던 말이지만, 요즘 들어 정말 외롭다. 내 짝을 찾은 사람들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이 짝을 만난 게 하나같이 다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알고 그들은 행복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4. 주말에 영어학원에 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인터넷으로 영작한 후, 첨삭 받는 걸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두번 써서 내는 게 그렇게 힘들다. 호기롭게 써서 내면 온통 빨간색으로 틀린 부분이 표시되서 되돌아온다. 벌써 6번 정도 썼는데 자꾸 틀린 걸 또 틀린다.

5. 고용노동부에서 보낸 대표이사 출석요구서 사유를 보고, 이 회사 역시 오래 있을 회사는 아니라는 생각에 또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이 되서 이력서 쓰는 게 너무 힘들고, 그거 때문에 올 봄은 꽃 한번 제대로 못봤다. 그렇게 4월이 끝나간다.

6. 어떤 남자의 메세지 혹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엄마는 또 일단 사귀라고 성화다. 이제 내 의견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남자가 좋다고 하면 무조건 만나야 되는 나이인가 보다. 동생 부모님 다 협공 중이다. 너 그럴 나이 아니니까 정신 차리라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어쨌든 여러가지로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의미 없는 주말을 보내고 있다. 매주 똑같이. 보통은 여행을 위해 구입한 독일과 프라하에 대한 책을 읽고, IPTV로 역시 영화를 하나씩 보고, 가끔 극장도 혼자 가고.

  항상 같이 놀아주던 친구가 주말에 일을 해야 하면서 혼자 보내고 있는데, 우리 엄마는 답답하신 모양이다. 오히려 집에만 있다보니 일기도 쓰기 싫어지고, 그래서 한동안 뜸했다. 뭐 궁금한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1. 승진

  7월 마지막 주에 워크샵을 갔다. 이번년도에는 숙소 잡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1박 아닌 당일 행사로 진행됐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행사 끝나고 술마셨을 때 너무 헛소리를 많이 해서 나중에 정신 좀 차리고 나서는 찔렸다.  헛소리 대부분이 우리 팀장 욕이었다. 문제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그랬다는 거다. 여하튼 그 워크샵날 승진을 했다.

  내가 일 시작한게 2007년 2월 부터고 중간에 백수였던 기간이 5개월이니 이제 만 7년 일했다. 남들 같으면 벌써 달았을 대리를 이제서야 달았다. 난 그냥 아무 기분도 들지 않았는데 오히려 우리 엄마아빠가 더 기분 좋아하셨다. 특히 우리 엄마가 한동안 만사에 다 우울해 하시고 짜증이 부쩍 느셨다가 내 승진 소식 들으신 후 원래 유쾌한 모습을 되찾으셨다.


2. 컴퓨터 교체

  우리집 컴퓨터는 그냥 그대로인데, 회사 컴퓨터를 교체했다. 처음 셋팅이 너무 귀찮아서 웬만하면 안 바꾸려고 했는데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컴퓨터가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여 교체했다. 덕분에 에어컨도 안 켜주는 사무실에서 땀을 뻘뻘 흘렸다. 

 

3. 다이어트

  한참 살이 쪘을 때보다는 1키로가 빠졌다. 일주일에 2번 운동하는게 목표인데, 보통은 월요일 화요일 열심히 하고 수,목,금 요일에는 운동 안한다. 운동하고 들어오면 잠도 잘오고 좋다. 근데 몸무게는 어쩜 0.1 자리까지 똑같은지. 아무래도 지금 몸무게가 내 몸에 딱 맞는 몸무게인 모양이다. 유지한다는 생각으로 해야지 다이어트는 내 성격으로는 불가능이다.

 

4. 블루 재스민

  어제 블루 재스민을 봤다. 솔직히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떠드는 주인공들도 맘에 안들었고 우디 앨런식 코메디도 나와는 전혀 안 맞았으니까. 하지만, 블루 재스민은 명작이다. 우디 앨런 아저씨가 대단한 감독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과거와 현재를 무리 없이 오가는 이야기 방식도 훌륭하고, 심지어 런닝타임도 1시간 40분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딱 100분이다. 시나리오도 영화를 위해 우디 앨런이 직접 쓴 시나리오다. (요즘에는 워낙 원작 있는 영화만 만드니 영화를 위한 새 시나리오는 가치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듯)

  보고 나서 내내 기분이 좋지 않다. 나도 그 영화 속 혐오스러우면서 측은한 재스민과 다를 바 하나도 없는 여자아닌가 하는 생각이 어제부터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휴. 내가 속물이라서 이렇게 벌을 받으며 살고 있는걸까. 영화 한편에 정신이 황폐해졌다. 

 

5. 불행한 결혼

  예전에 누군가에게 청첩장을 받으면서 "축하해! 여자가 오빠 진짜 좋아하나봐." 라고 말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얘도 나 좋아해서 결혼하는 거 아니야. 나랑 결혼안하면 자기도 서른 넘고, 또 내가 사람들 앞에 내놓기에 크게 걸리는 거 없으니까 나랑 결혼 하는거지." 였다. 진짜 씁쓸했다. 나도 결국 이런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생각하는 남자랑 결혼하는 여자도 참 딱하다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결혼하는 여자도 똑같이 이런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참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결혼을 한 사람이 나보다 나은 것일까. 아니면 차라리 내가 나은걸까?

  청첩장 받고 들어오는 길에는 차라리 내가 낫다 싶었는데 요즘에는 잘 모르겠다.

 

6. 우리집 앞 이단교회

  나는 나일론 신자지만, 위험한 생각이 들만큼 우울할 때는 기도를 한다. 이런 걸 보면 나에게도 신앙이 있긴 한 거 같다. 또 막연하게 가끔 내가 원하는 삶을 공상하며 언젠간 진짜 이루어 지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도 어쩌면 신앙의 힘인 것 같고. 기도를 끝마치고 나서는 마음이 한결 가라앉고 우울한 마음도 가신다. 사람이 종교를 하나 갖는 건 인생 전체를 볼 때 절대 손해보는 건 아닌 거 같다.

  토요일에 학원갈 때 우리집 앞 엄청 큰 이단교회가 예배 드리는 시간이라 항상 그 교회로 향하는 신자들을 보게 되는데, 내가 생각했던 그런 모습이 아니라 신기했다. 다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대체 어떤 신념이 그 사람들을 그 말도 안되는 교리에 빠지게 만들었는지 좀 궁금한데.. 만약에 그 종교로 인하여 포기하려 했던 삶을 다시 살아갈 생각을 했다면 아무리 이단이라고 할지라도 종교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거 아닐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다니는 개신교회도 우리 집 앞에 있는 교회도 어쨌든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거니까. 물론 그 사람들이 사기치고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단이 완전히 박멸시켜야 할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7. 친해지고 싶은 선생님

  내가 듣는 학원 선생님이 착해보이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건지 궁금하고 한마디로 친해지고 싶다. 교실이 아닌 엘리베이터에서 한번 만났는데 너무 어색하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못했다. 그 선생님과 함께 산다는 여자친구도 무지 착해보이고, 다른 수업 선생님도 표정이 다양해서 재밌었는데.... 외국인이랑 이야기하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이번에 독일 가면 외국인이랑 말할 일이 있을까?

  여자들이 쓴 여행기 보면 뭐 여행지 가서 현지 사람들이랑 말하고 친해지고 그러든데. 난 진짜 영국가서 이야기 나눈 사람들이라곤 호텔 직원, 식당 직원 이 두가지 종류의 현지인들 뿐이었다.  


꿀맛같았던 연휴가 끝이 났다. 어찌나 슬픈지 모르겠다. 금요일에 눈을 떴는데 영락없이 토요일 같았다. 그래서 TV 에서 왜 영화가 좋다 안하지? 이러면서 불만스러웠는데 맙소사 금요일이었다. 

금요일에는 친한 친구와 종로에 가서 아이언맨을 봤다. 작년에 회사에서 나오는 복리후생비가 많이 남아서 롯데시네마 관람권을 왕창 사놨었다. 한 8장 샀는데 이제 겨우 2장 썼네. 

나는 작년에서야 배트맨 시리즈를 봤는데 영웅물에 큰 관심이 없기도 했고, 배트맨 시리즈 좋아하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신봉도 맘에 안들어서 일부러 안본 것도 있다. 그러다 배트맨시리즈를 보고 나는 왜 이시리즈가 이렇게 인기가 있나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재밌는 걸 왜 이제서야 봤을까 하고 아쉬울 정도로.  그래도 난 아직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너무 심각한 척 하는게 맘에 안들기도 한다. 인셉션도 보긴 봐야 하는데 기회가 안되네.

작년 어벤져스도 생각보다 재밌었는데 어벤져스에 나오는 사람들 나온 영화를 단 하나도 안보고 봤는데도 재밌었다. 웃기기도 했고. 이런거 보면 난 의외로 영웅물 체질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언맨3 역시 앞 시리즈 하나도 안보고 봤는데, 재밌었다. 유머도 꽤 내 스타일이고, 중년 남성의 순정에 대리 만족도 가능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아저씨는 완전 멋지다. 귀여운 매력이 있다. 조지 클루니에 이어 멋진 아저씨 목록에 추가하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은 조지클루니 아저씨가 최고야. 왜냐면 아직 결혼을 안했으니까 크크크크크) 

아이언맨 시리즈도, 배트맨 시리즈도 다 재밌긴 했지만, 영화가 점점 2시간 짜리 미니시리즈가 되어 가는 건 좀 슬프다. 점점 원래 있던 스토리 가져다 쓰는 것도 좀 맘에 안들고 이러다가나는 마블 코믹스에서 나오는 모든 만화가 다 영화화 될지도 모르겠다. 예전부터 말하지만, 순전히 영화를 위해 쓰여진 시나리오에 딱 2시간이 안되는 시간 안에 나에게 말할 수 없는 감격을 안겨주는 영화가 좀 그립다. 빌리 엘리어트나 Ghost world, 500일의 써머 같이 말이다. 뜬금없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랑 Ghost world 인 것 같다. 요즘도 가끔 생각이 나니까. Ghost world 의 스티브 부세미 아저씨는 극 중 도라버치가 사랑할 수 밖에 없다. 허리 디스크 있어서 복대 차고 다니고 2:8 가르마에 배까지 촌스러운 면바지를 입고 다니는 앞니 툭 튀어나온 그 아저씨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너무 아름다운 남자와 여자가 한눈에 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사랑에 빠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귀한 러브스토리. 

요즘 본 영화 중에서 제일 내 이상형에 근접한 사람은 "들어는 봤니? 모건부부" 에서 휴그랜트의 캐릭터. 흐흐흐 그 영화 기대 없이 봤는데 정말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러브 액추얼리에서 휴그랜트 보다 훨씬 귀엽다. 


수요일에는 의정부에 외근을 다녀왔다. 회사 사람들은 내가 운전 이제 웬만큼 잘하는 줄 안다. 그런데 전혀. 나는 아직도 회사-집 왔다갔다 하는 코스 이외에는 다른 코스 운전은 하고 싶지도 않고, 약 34km 정도 되는 그 출퇴근 코스도 내가 원래 가는 코스 이외에는 단 한번도 다른 코스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 차장님께서 수요일에 의정부를 갔다오라는 거다. 우리 회사랑 관련있는 협회의 경기 북부 지사가 의정부에 있어서였다. 나는 가라니깐 못간다 말도 못하고 갔다오겠다고는 했지만, 불안해서 결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위성지도를 거의 외우다 시피 왕복코스를 1시간 동안 보고, 외근 전날 차 안에서 내비게이션으로 모의 주행까지 다 해본 다음에야 마음을 잡고 외근에 나설 수 있었다. 출근길에는 보통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달리다 자유로 IC 에서 빠지는데 그 날은 자유로 IC를 그냥 지나야만 했다. 그렇게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나도 꽤나 쌩쌩 (보통 125km/h 정도로 달리고 있음. 그 이상은 우리집 차가 잘 안나간다. ㅜㅜ) 달린다고 달리는데 차들이 북으로 가면 갈수록 엄청나게 빨리 달렸다. 아스팔트 고속도로가 아닌 콘크리트 고속도로가 나오고 2km 가 넘는 터널도 나왔다. 인터넷으로 지도를 본 것보다 차에서 내비게이션으로 모의 주행 해본 게 훨씬 운전에 도움이 많이 됐다. 

올때 갈때 양갈래 길이 있었는데, 의정부로 들어갈 때는 모의 주행에서 계속 우회전이고 갈래길이 나오면 무조건 우측으로 가야 하는 걸 알아서 무사히 갔다. 

의정부에서 서울로 갈 때는 올때랑은 반대로 계속 좌측으로만 가는 길이었다. 고속도로 진입하기 전에 의정부 시내에서 차선 잘못타서 고속도로 진입하는 송추 IC 빠지는 길로 못들어갈 뻔 했는데 맘씨 좋은 트럭 아저씨가 양보해줘서 무사히 진입하고 한바퀴 돌고 이러면서 고속도로 진입을 기다리고 있는데 또 X 자 교차로가 나오는 거다. 마찬가지로 왼쪽으로 빠져야 하는데 내가 바로 그 교차로 직전 바로 앞에 올때까지 차선을 못바꿨었다. 나는 속으로 "망했다. 고속도로 잘못 진입하면 다시 빠져나가서 또 다시 의정부 시내 들어가서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해야 하는 것인가. 내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꺼를 타면 의정부 돌아서 상일동가는 길이 나오는데 젠장..". 이러면서 그 짧은 순간에 별 잡스런 생각을 다했는데 왼쪽으로 진입하는 차선만 2차선이었다. 오 주님. 그 뒤로는 또 신나게 달리다가 자유로 IC 로 못 빠질 뻔 하고 급히 막 차선 바꾸려다 식겁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돌아왔다. 어찌나 긴장을 했든지 막 귀가 멍멍하고 내가 운전하는데도 멀미가 날 뻔했다. 

또 가라고 하면 가기 싫은데 이번에 다녀와서 왠지 이제 막 보낼 것 같다. 


협회에 가기 전에 전화로 엄청 불친절했던 여자가 제발 얼굴 엄청 못생기고 뚱뚱했으면 좋겠다고 빌었는데. 웬걸. 얼굴이 예뻤다. 게다가 닐씬하기까지. 외근 다녀온 뒤로도 차장님이 계속 뭐 물어보라고 시켜서 전화했는데 전화를 끊을때마다 그 여자에게 듣지도 못할 외마디 욕을 하고 있다. 별 것도 아닌데 꽤 스트레스다. 엄청 불친절한 사람한테 차장님이 물어보라는 거 1페이지 뽑아서 물어보는 거 말이다. 


아. 그러고보니 나 의정부는 머리털나고 처음 가봤다. 내가 갔던 의정부역 주변이 신세계 백화점도 있고 의정부 안에서는 꽤 번화가 인 것 같았는데 한적해 보였다. 도심과 엄청 가까운데 부대 입구가 떡하니 크게 있는게 인상적이었고, 신세계 백화점이 인심 후하게 백화점 물건 하나도 안샀는데도 주차료 한푼 안받아서 좋았다. 운전자들도 내가 길 몰라서 엄청 얼쩡대고 느리게 가는데도 친절했다. (역시 인천이 삭막한 거였어...) 내가 지하로 진입해야 하는데 차선 잘못타서귀찮게 했더니 뒤에서 엄청 빵빵 댔던 아저씨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조용한 도시의 느낌. 그리고 왠지 쇠락한 느낌. 인천 부평의 스몰버젼 같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