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금 배정

일상 2016. 9. 29. 13:53

 대학 시절 전문적이지 않은, 한마디로 별볼일 없는 학문을 배운 나는 어쩔 수 없이 이제까지 행정 업무를 해왔다. 첫 직장에서 맡은 일은 행정이 아니었지만, 성격에 안맞았고, 이후 직장은 모두 "행정" 이라고 칭할 수 있는 업무를 했다. 행정이 내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 다행히 못하는 일은 아니라.. 그럭저럭 밥 벌어먹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행정업무를 한 건 모교였다.

 첫직장을 때려치고 모교에서 학사행정 업무를 하니, 너무 수월했다. 안그런 교수도 있었지만, 교수들은 아무래도 공부만 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보다 좀 순수한 면이 있었고, 학생 애들은 말할 것도 없이 직장인들보다 순진했다. 학생들보다 나이가 더 먹고 나서 보니 어찌나 귀엽든지. 또 한가지 스트레스를 덜 받았던 이유는 마감기한이 없다는 점 이었다. 학교 업무는 교수가 요청하거나, 애들이 찾아와서 읍소하면 마감기한은 무조건 무한 연장 되니까, 사실 명시된 마감기한은 실제 마감일과는 언제나 달랐다.

 내가 학사행정 업무를 했던 시절, 제일 신경써서 했던 업무는 '장학금 배정' 업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학기 300 넘는 돈이 왔다갔다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관련하여 안타까웠던 일이 몇 번 있는데, 학년 전체에서 2등 학점을 받아놓고 장학금 신청도 안하고 서류도 전혀 제출하지 않은 채 군대에 가버린 남자애 때문에, 그 집 엄마와 누나까지 동원해서 어떻게든 장학금을 지급하려고 했으나 끝내 실패해서 장학금 한푼 못받았던 일이 있었다. (훈련병 기간이라, 전화통화도 불가능했다. 안타까웠던 아이..) 또 장학금 받을 수 있으니 서류 제출하라고 어떤 여자애한테 전화를 하니 지금 지방 집에 있어서 서류 제출 못하겠다고 한 황당한 일도 있었다. 

 여하튼, 난 장학금 받을 수 있는 애가 제출한 서류가 미비하거나 행여 연락이 두절이어도, 어떻게든 걔의 부모님 혹은 형제자매한테라도 전화해서 끝까지 장학금을 줬다. 어쩌면 그게 학사 행정 업무의 유일한 보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모교에서 일하던 중, 신기한 장학금을 하나 생겼는데, 이름하여 '성적향상' 장학금 이었다. 학점 1점대~2점 초반인 애들 중에 선별해서 (특히 공부 못하는 애로 선별) 다음 학기 목표학점을 설정하고 실제 오른 점수 폭만큼 %로 환산해서 그만큼 장학금을 주는 아주 좋은 취지의 장학금이었다. 그 때 애들 리스트를 쫙 뽑아서 제일 학점 낮은 애한테 목표 점수 제출하라고 했더니만, 4.0 이상을 적어내서 속으로 좀 웃었다. 알고보니 걔가 군 전역한지 한 달도 안된 애라 과하게 열의가 넘치는 상태. 결국 내가 4.0 말고 3.8 정도로 써서 내라고 했고 다행히 걔는 학기 끝나고 장학금 받아갔다.

 여러가지 장학금에 얽힌 얘기가 있지만, 그래도 제일 기억에 남는 애는 계약기간 마지막 학기에 장학금을 준 남자 애다. 어떤 재단에서 기초학문 하는 학생들 중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비 전액을 매년 지원해 주고 있었다. 특정과 학생들에게만 혜택을 줄 수 없어서 매년 과 별로 돌아가면서 한명씩 추천 했는데, 그 학기는 우리 과 차례였다.

 당시 전공주임 (학과 행정 업무 총괄 하는) 교수님이 워낙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수님이셔서, 특히 이 장학금에 신경을 많이 쓰셨고, 나는 전학년 학생들에게 문자 보내고 홍보도 엄청 열심히 했는데 신청서는 딱 한명 제출했다.

 장학금 신청서를 자필로 써서 내야만 했는데, 걔는 글씨도 썩 잘썼고, 군대 가기 전에 학점도 좋은 애였다. (다음 학기에 복학 예정인 학생이었음) 그런데 그 신청서가 난 아직도 참 기억에 남는다. A4 절반 정도를 썼는데, 자기 집안 형편이 왜 어려운지, 그리고 이 장학금을 받으면 장래에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 쓴 글이었는데 쉬운 단어와 짧은 문장으로 어찌나 글을 잘 썼는지 난 그 신청서를 여러번 읽었다. 그 신청서가 더 좋았던 건, 걔가 지금 집안 사정이 많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과하게 자기 자신을 동정해달라는 식으로 쓰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장학금을 꼭 받아야 한다고 애원하지도 않았다. 뭔가.. 끝까지 자기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글 이었다.

 교수님도 그 신청서를 읽으신 후, 개인적으로 걔를 불러서 면담을 했다. 아마 그 교수님은 걔가 졸업할 때까지 잘 챙겨주셨으리라.

 결국 걔는 교수님의 정성어린 추천서와 본인이 쓴 (엄청 잘 쓴) 신청서 덕분에 졸업 때까지 학비 지원을 받게 됐다. 가끔 좀 궁금하다 걔도 졸업하고 이제 일한지 꽤 됐을텐데, 그 신청서에  쓴 대로 살고 있을지. 자기 앞 길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개척하려고 한 아이니까 당연히 잘 살고 있겠지만.


대학교 근무 시절

단문 2015. 2. 5. 16:20

  대학교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모아놓은 돈이 전혀 없다. 그도 그럴것이 원래 벌던 돈에 비해 월급이 너무 짰기 때문이다. 웬만해선 정시퇴근을 하니 시간은 남아도는데 돈이 없으니 뭘 배우지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 대학교 근무할 때는 프로야구를 그렇게 열심히 봤다. 일한 년수에 비해서 모아놓은 돈이 너무 적어서 가끔 내 통장을 보면서 민망하다. 


  앞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때 대학에서 근무하면서 봤던 교수들만큼 사회적으로 잘난 사람들과 함께할 일은 없을 것이다. TV에서만 보던 학벌과 연봉이었으니까. (연말정산 서류를 내가 걷다 보니 본의 아니게 연봉까지 알아버림) 내가 대학에서 일하면서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 교수님은 딱 2명이었는데 그 2명 빼고는 교수들 특유의 세상물정 모름과 자기잘난 맛을 감당하느라 힘들었다. 

  계약직이라 2년 지나면 짤리는 자리인만큼 그 자리는 정말 2년이 딱 적당한 자리였다. 교수들 성격 받아주는 것도 2년 지나니 너무 지치더라. 

  

  우리 과에는 단과대학에서 유명한 연락 두절 교수가 있어 일하는 내내 행정실과 대학 본부의 재촉 전화 로 너무 시달렸고 아직도 그 교수는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과 보다 일하기 편했던 건 내가 속한 과 교수들이 전원 다 청결에 무던한 남자 교수들이었다는 것. 

  가끔 회의실이 내가 봐도 너무 더럽다 생각이 들 때조차도 교수들 중 어느 누구도 치우라고 말 한마디 한 적이 없다. 단과대학 내 다른 학과는 어떤 교수 한명이 너무 깔끔하여  그 직원은 매일 매일 청소만 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과 교수들은 쓰레기통이 차고 넘쳐도 쓰레기통 한번 비우라고 얘기 안했으니 그 점만은 참 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오랜만에 청소나 해볼까 하고 회의실 들어갔는데 바닥에 커피믹스가 막 흘려져 있고 심지어는 막 검정 원두가 녹아서 바닥에 말라 붙어 있는 것 아닌가. 분명히 바로 직전 시간에도 학과 교수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는데..

  어찌나들 무던한지 바닥에 그렇게 믹스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데도 치우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그냥 회의를 하신 것이었다. 그때 좀 교수들한테 미안했다.


  보고싶지 않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교수들이 좀 생각났다. 다른 교수는 안보고 싶지만, 멋지고 똑똑똑해서 동경해 마지 않았던 두 분의 교수님은 좀 보고 싶다. 이 회사에는 그런 멋진 분이 단 한명도 없는데 그래도 대학에서 일할 땐 두명이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 다시 그 일을 하고 싶진 않지만. 



봉투에 풀 붙이기

일상 2011. 1. 4. 10:14
어렸을 때 는 편지봉투를 붙일 일이 참 많았다. 난 나름 펜팔도 했었고, 친구들이랑도 보통 여자애들 처럼 편지 주고 받는 걸 무척 좋아했다. 방학 때 친구들한테 종종 편지도 보냈고 말이다. 전학을 많이 다녀서 다른 지역에 있는 친구들이랑도 주고 받고. 우표가 붙여진 편지를 받는 건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기쁨이 더 컸던 거 같다. 요즘 처럼 뭐 택배 조회를 해서 언제쯤 도착하겠다 하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난 편지 봉투에 풀을 아주 듬뿍 바르는 걸 좋아했다. 아주 틈이 안보일 정도로. 그리고 편지지를 봉투에 넣을 때도 봉투에 딱 맞게 종이를 접는 걸 좋아했다. 그렇다보니 어떤 친구가 니 편지 열기 너무 힘들다고 불평을 듣기도 했다.
지금은 3M에서 나온 양면 테이프를 이용해서 봉투 붙이는 걸 좋아한다. 적당히 붙고, 떼기도 쉽고. 3M이 없었으면 내 일상생활이 얼마나 황폐했을 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미즈키님 블로그에서 회사를 다녀서 좋은 이유 적어놓을 걸 보니까 난 딱 떠오르는 게 포스트 잇 이었다. 회사에서는 포스트잇 맘껀 쓸 수 있는게 좋다. 그거 딱 하나. 생각해보면 사실 집에서는 포스트잇 쓸 일이 없기도 하네.
어제는 평점표 라는 걸 시간강사 두 분한테 받았다. 과사무실에서 일하다보니까 여러가지를 느끼게 되는데 시간강사들은 참 말 잘듣는다. 착하다. 이번 학기에 오는 시간강사 두명 다 이번학기에 처음 강의해보는 분들이라 뭘 잘 몰라서 그러신지 몰라도, 서류 작성해주세요. 하면 그날로 바로 즉각 작성해서 나한테 메일로 보내주고, 뭐 부탁할 때도 어쩜 그렇게들 공손한지 모르겠다. 다들 완전 잘나신 분들인데 말이다.
두 분 다 약간 풍기는 이미지가 비슷한데, 한 분은 평점표가 들어있는 A4 봉투를 스카치테이프를 붙여서 봉하셨는데 한치의 오차도, 한치의 공기방울도 용납치 않고, 완전 무결하게 봉해서 보냈다. 그걸 보고 평소 말투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이런것에서도 참 사람 성격이 티나는구나 싶어서.
그리고 다른 한 분은 어렸을 때 나처럼 풀을 엄청 발라서 뜯기 힘들게 해서 보내셨다. 그 분은 사실 몇 번 본 적 없긴 한데 그 분도 참 착하다.

저번에는 어떤 미친 학부생이 나한테 전화해서 쌍욕을 한 적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학부생들은 언제까지 뭐 하세요. 하면 그때까지 안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전화해서 물어본다. 12/30까지 안내면 졸업안돼요? 1/9까지 장학금 신청 안하면 못받아요? 등등.
하지만 하릴없이 대학원에서 시간보내고 있는 대학원생들 대부분은 이미 학교의 섭리를 너무 잘 아는 나머지 언제까지 뭐해라 말하면 절대 그 날짜까지 안한다. 그리고 내가 백번 설명해줘도 백번 물어본다. 퇴근했는데 전화해서 과사무실 팩스번호 뭐예요? 이런 질문 하는 것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나도 없는데 문 열고 들어와서 봉투 가져가는 놈들도 있다. 아니 봉투 그거 하나 좀 사서 쓰던가 아니면 한 열댓장 가져가서 오지 말든가. 별로 얼굴 보고 싶지 않은데 와선 그런다.

대학교 라는 곳이 대학 본부에서 명령(?)을 교수들한테 내리는 구조다 보니 무슨일이든지 제 시간에 되는 일이 없다. 대학본부 사람들이 교수보다 지위가 낮고, 대학교 안에서는 교수말이면 무조건 오케이 되는데, 뭘 하나 하려고 해도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그러다보니 마감일이 적혀져 있어도, 그 마감일보다 기본 3일은 늦춰지고, 한 일주일 늦춰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전 회사에는 그 날짜까지 못하면 그냥 되는데까지 해서 내거나 중간절차를 다 생략하고 그 기한 내 내는게 중요한데, 학교에서는 그런 거 절대 없다. 교수가 내일 모레 온다고 하면 마감일은 내일 모레고, 교수 서명 말고 도장으로 대체하면 마감일 내 처리가 가능해도 절대 교수님 서명까지 받아오라고 시킨다. 뭐 나중에 교수가 또 뭐라 할 수 있으니까 그런거겠지.
과사무실에서 일하다보니, 내 등록금이 이렇게 쓰여졌군 싶어서 씁쓸하다. 뭐 나도 애들이 낸 등록금으로 월급받아먹고 사니 할말 없긴 하지만 말이다.

부작용

일상 2010. 10. 22. 10:04
오랜기간 여자가 매우 초과한 환경에서 애인도 살다보니 약간의 부작용이 있는데 첫째는 남자랑 얘기할 때 시선처리를 제대로 못하겠는 것과, 둘째는 남자가 조금만 나한테 잘해줘도 엇 나한테 관심있나? 하고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표정관리가 안되는 거?
회사 다닐 때는 전혀 구경도 못해보던 23~30 살 사이 직장인 아닌 학생 남자애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색하기도 하고.. 학교 다닐 때도 우리과에는 죄다 여자라 그닥 남자랑 말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대학원생들한테는 보통 氏 를 붙여서 이야기 하고, 학부생들한테도 웬만하면 다 氏 붙여서 존칭을 쓰고 있는데, 붙임성 좋은 남자애들은 "네 누나" "누나 고마워요." 이런식으로 이야기 하는데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나보고 누나라니!!! 으아. (친동생 말고는 누나라는 호칭을 같은 또래 남자한테서 들어본 기억이 없음)  보통 그런 붙임성 좋은 애들은 학부생이니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하는데 오히려 난 존댓말이 편하다. 예전에는 말도 잘 놓고 그런 성격이었는데 회사다니면서 변했다. 친하게 되면 오히려 더 불편해질 수도 있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때문인 거 같기도 하고. 지금은 완전 친하게 지내는 회사 후배한테도 말을 놓는 데에는 6개월 이상이 걸렸다.
이러한 내 성격과 남자와의 상호작용을 많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작용 때문에 조금 곤란한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한가지 예를 들면 대학원생 중에 예전에 처음 봤을 때 부터 잘생겼다고 생각한 사람이 한명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자기네 연구실 서류나 뭐 물어볼 거 있으면 여기로 올 때마다 표정관리가 안되는 거다. 얼굴 달아오르는 것도 내가 느낄 정도고, 그거 때문에 부담이 되서 그런지 그 사람 있는 연구실 서류 막 엉뚱한데다 놓고, 다른 연구실 서류 거기에 껴놓고, 실수가 과도하여 맨날 미안하다고 사과만 하고 있다.
저번에는 그 사람이 내 앞에서서 한 십오분 정도 이야기를 하는데 어서 저 분이 자기 연구실로 돌아가셨음 좋겠단 생각을 하면서 난 무슨 얘기를 더 해야하나 하고 고민하다가 멀뚱 멀뚱 딴 이야기만 계속 했다. (정적이 두려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전에 썼다시피 워낙 회사에 낙이 없다보니, 잘생긴 남자 보는 낙이라도 있어야제 하는 생각에 오늘은 핸섬보이님 안오나? 하고 기다릴 때도 있다. 노크소리가 들리면 혹시?? 하는 기대까지 하게되니, 참 잘생기고 이쁜 사람은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뼈져리게 하게 되는 요즘이다.

중학교 3학년 부터 다이어리를 줄곧 써왔다. 처음에는 스케줄만 썼지만 요즘같이 별 스케줄이 없는 때에는 일기도 많이 쓴다. (작년 재작년에는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못썼지만)
대학 때에는 돈이 없어서 그냥 문구점에서 파는 천오백원 이천원짜리 다이어리 사서 1년내내 쓰고 그랬는데, 예전에 짝사랑하던 분이 내 다이어리를 보고 한번만 보여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안된다고 말하다가 그럼 3페이지만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학교 벤치에서 3페이지 정도만 보여줬다.
이 모든 일이 나 대학 때 일어났던 일이고,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이다 보니, 생각이 더 많이 나는 모양이다.
어쨌든 내가 그때 다이어리를 시원하게 공개하지 못한 건 워낙 그 안에 찌질한 내 속마음이 많았고, (원래 일기라는게 시간 지나서 읽어보면 그저 쪽팔린 법이니까) 다이어리의 거의 모든 페이지에 그 좋아했던 남자에 대한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도대체 뭐하고 있는걸까? 왠지 나보다 엄청 행복하게 잘만 살고 있을 것 같아서 분하다.

이 주제로만 쓰기에는 너무 단촐하여 요즘 내 소식을 하나 덧붙이자면, 2년 넘게 써오던 멀쩡한 핸드폰을 다른 핸드폰으로 바꿨다. 원래는 별로 바꿀 생각이 없었는데, 친구의 아이폰2를 보니까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결국 나도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애플 신봉자들이 워낙 많아서 이상하게 애플을 별로 안 좋아하던 나는 갤럭시S 로 바꿨는데, (그렇다고 삼성을 좋아하는 것도 아님) 내가 갤럭시S로 바꾼 이유는 내가 행복기변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보조금이 쪼금 더 많이 나오고, 야구 때문에 DMB를 꼭 시청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다. 뜬금없지만 애플 신봉자들을 보면 어떻게 기업에 저렇게 충성도가 높을 수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한데, 뭐 난 비판할 자격이 없다. 한번도 애플 제품을 사용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용해보면 나도 오 스티븐잡스 시여~! 하게 되려나. 으흐흐.
원래 내가 갤럭시S 와 함께 고민하던 핸드폰은 엑스페리아 였는데, 내가 간 매장에 엑스페리아가 없었다. 저번에 지나가는 사람이 사용하는 거 보니까, 갤럭시s보다 크고 좋긴 좋드만. 하지만 난 약간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그런가 그런 외국 제품은 나중에 as 걱정도 되고 하더라. 결론은 지금 갤럭시S에 만족한다는 이야기.
처음에는 이게 당최 어떻게 사용하는 제품이다냐. 했는데, 금요일에 구입하여 주말동안 열심히 독파하여 지금은 벌써 스마트폰 별거 아니구만 흥~ 하는 상황까지 왔다. 주말동안 다운받은 어플리케이션만 해도 20개 였으니까. 으흐흐. 그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어플리케이션은 spotv 라는 어플리케이션 (spotv 는 그날 하는 야구 경기 실시간으로 틀어주는 어플리케이션이고, 위성DMB 만큼의 화질은 아니지만 충분히 사랑스러운 어플리케이션이다) 인데, 위성 DMB 만 보던 나에게 구리게만 느껴졌던 지상파 DMB 를 필요없게 만든 어플리케이션 이다. (사실상 내가 DMB 를 시청하는 유일한 이유는 야구였으니까) t store 랑 마켓에는 없는 거라,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핸드폰으로 옮겼고, 친절한 네이버 블로그들을 보며 일련의 과정을 해보니 이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까지 생겼다. 크크크.

뜬금없지만 사람들은 보통 어플리케이션을 어플이라고 말하던데, 저게 훨씬 짧고 간결하지만 난 어플이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 난 말 줄여 말하는 것에 약간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일상적인 언어가 되어버린 남친, 여친 이라는 말도 나는 싫다! 예전에 소개팅 했던 남자가 베스트 프렌드를 베푸 라고 말하는 걸 보고 홀랑 깬 적이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난 베스트 프렌드 라는 말 자체도 싫어하는 거 같다. 그냥 친한 친구라고 하면 되지 무슨 베푸는 베푸여. (으으 키보드로 쳐 놓고도 싫은 느낌이 들 정도!)
한가지 스마트폰 쓰면서 아쉬운 점은 씨티카드놈들이 제공하는 안드로이드용 어플리케이션이 무지하게 구려서 내가 사용한 금액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거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건 씨티카드인데, 무슨 승인내역 조회도 안되는지.
예전에 내 홈페이지 대화명은 radiohead 의 paranoid android 라는 노래에서 따온 android 였는데, 이제 일상적으로 다들 android 라고 말을 하니 기분이 묘하다. (이 대화명은 너무 길어서 때려쳤음)


줄 곳 없는 마음.

일상 2010. 10. 7. 17:55
나는 과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덩그라니 혼자.
혼자 일하니까 어차피 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업무 가지고 서로 얼굴 붉힐 일 없고 조용하고 어떻게 보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난 교수 9명의 모든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비서와 다름없고, 까다롭기 그지없는 대학원 행정 업무도 매일 대학원 행정실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사회성이 부족한 성격 탓에 교수님이랑 몇마디 할라 치면 혀가 굳어 제대로 말도 못하고 그런다.
생각해보니 난 지금 여기 교수들 만큼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업무적으로 일해본 경험이 없다. 예전 회사도 내가 나이 많은 편에 속했으니까. 대리 과장도 거의 30대였고 심부장도 40살 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 학교는 나이든 분들이 너무나 많아서 어색하고 도대체 그 나이대 아저씨 들과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학교 하면 뭔가 한가한 이미지가 생각나지만, 난 정말 과사무실에서 쉴 새 없이 일하고 있다. 각 부서에서 뭐해라 뭐해라 계속 공문이 온다. 공문 보면 기한이 항상 있는데 난 그 기한내에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지금 내 업무 능력 안에서는 모든 기한이 다 촉박하기만 하다. 거기서 하라는 내용을 아무리 쳐다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잡힌다.
또 여기는 엄청 외롭다. 전화가 많이 오니까 음악을 틀어놓기도 뭐하고 교수님을 맞상대해서 일하고 있는 동료가 한명도 없으니 답답한 마음이나 억울한 마음을 함께 토로하고 공감해줄 친구가 없다.
회사에서 사귀는 친구의 부질없음을 깨달아서 좀 씁쓸했지만, 친구사이인 척 하는 한시적인 관계라 하더라도 마음을 트고 지낼 딱 한 사람은 필요한 거 같다.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 라디오 같은 게 만들어진 거 같기도 하고.
원래 혼자서도 잘 지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난 어디에 있든 진짜 친한 한명은 있었다. 그 한 사람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외로움도 안느끼고 잘 지냈던 거 같은데 여기는 그 한사람이 없네.
아. 청승맞게 갑자기 눈물이 핑돈다.
사실 오늘 너무 힘들었다. 아... 힘들다. 역시 사람은 간사해. 예전 회사에서는 거기만 벗어나면 장밋빛 행복한 미래일 줄 알았는데.

새로운 직장에서

일상 2010. 9. 28. 09:23
회사에 출근해서 처음으로 딴 짓을 하고 있다. 내일부터 조금 바빠질 것 같은데 오늘은 조용할 거 같다. 좀 있다가 저쪽 다른 건물 한번 가야 하는데 벌써 군기가 빠진건지 다른 때 같으면 부지런하게 아침에 오자마자 본부건물에 가서 제출할 거 제출하고 했겠지만 있다가지 뭐 하고 있다.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약 한달간 여기에서 일한 느낌을 말하자면

1. 무서운 대학원생들
: 나와 가까운 사람 중에는 대학원에 들어간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다들 대학 졸업해서 돈 벌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대학원에 갈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다. 이런 이유들로 난 대학원생들의 세상을 전혀 몰랐고, 여기와서 일하면서 난생처음 대학원생들을 맞대하고 있다. 내가 있는 과가 우리학교에서 그닥 밀어주는 과도 아니고 워낙 소규모긴 하지만 생각보다 대학원생들이 엄청 많다. 소심한 나는 석사과정 말고 박사과정한테는 말도 제대로 못 붙이고 있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앞으로도 많이 안 부딪치려고 말을 많이 섞지 않을 예정이다. 특히 아저씨들 한테는 말이다. 난 누가 돈 주면서 공부하라고 해도 할까말까인데 여기 사람들은 몇백씩 줘가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 걸 보자니 참 이해 안간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 솔직히 난 사회나가서 일하면서 내가 대학에서 배운 건 진짜 단 한가지도 필요 없고 그냥 사회로 나오기까지의 유예기간만 늘려주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대학을 안나온 사람들에 대한 편견같은 것에는 자유로울 수 있다지만 일하다 보니 대학 나온 사람이나 고등학교 나온 사람이나 일하는 능력에서의 차이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전문대 나오거나 고등학교 나오서 바로 일한 사람들보다 내가 딸렸으면 딸렸지. (내가 일하는 회사만 그랬을 수도 있다) 대학원에 몸을 담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대학원에서 웅크리고 있어봤자 점점 겁쟁이만 될 거 같다. 또 한가지 신기한 점은 난 내가 나온 이 모교에 대해서 애정이 전혀 없는데 반해 여기 대학원생들은 나름 자부심 갖고 있고 다른 곳에서 대학 나온 사람들을 약간 무시하고 텃새 부리는 느낌인데, 내가 상관할바는 아니라고 해도 좀 같잖다. (역시 난 세상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인간인가!)

2. 출퇴근 시간과 새로운 세상
: 출퇴근 시간이 짧으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흐흐흐. 무슨 소리인고 하니 난 예전 회사를 다니면서 편도로만 1시간 반이 걸렸기 때문에 퇴근 후에 무언가를 한다는 건 내 기력상 상상할 수 없는 일 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집에 오고 가는데 40분이면 간다. 예전에 마을버스 - 전철 2번 갈아탈 필요도 없고 버스 한번이면 바로 직장으로 도착이다. 칼퇴를 해도 7시 이전에는 절대 집에 올 수 없는 회사를 다니다가 예전회사보다 30분 더 늦게 끝나는데도 집에 오면 7시가 안되는 이상한 느낌에 적응하느라 애를 좀 먹었다. 지금에서야 예전 회사 사람들은 이런 생활을 하니까 퇴근 후에 운동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술도 마시고 한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침에 눈뜨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예전 직장보다 직장 내 위치도 구리고 월급은 몇십만원이 깍였지만, 몸이 편하니까 전혀 슬프지 않다. 학교고 직장이고 뭐든 가까운 게 제일이야!

3. 윤택한 사무실 생활을 위한 물건들
: 예전에 내가 일하던 회사 사진을 올렸을 때 봤겠지만 난 사무실에 이상한 걸 많이 갖추고 사는 사람 중 하나였다. 큰 건 별로 없지만, 팔꿈치 보호대까지 갖추고 살았으니까. (근데 이 팔꿈치 보호대 사용해보면 다들 좋아할텐데. 정말 안아프다!) 첫 출근을 준비하면서 큰 가방에 짐을 엄청 싸놨는데 2주동안은 일하느라고 하나도 풀지 못했었다. 그게 마음의 짐으로 계속 남아있다가 추석 당일날 결심을 하고 회사에 와서 사무실도 쓸고 닦고 그 짐을 다 풀었다. 원래 사람이 관두기 직전이면 사무실에 애정도 안가고 별로 정리하고 싶지도 않고 그러니까 이해는 하지만 예전 사무실 모습은 너무 비효율적이고 불편하고 지저분했다. 다 정리하고 나니까 마음도 편안해지고 기분 좋고 일도 막 잘되는 거 같고 이제 손 닿는 곳에 비품이 있어서 편하다. 한동안은 커피도 못 내려마셨는데 혼자 커피도 내려마시고, 화분도 가져다 놓고 조금은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아직 모르는 게 엄청 많아서 긴장된 상태긴 하지만 조금씩 나아질 거라 위안하고 싶다.

4. 점심메뉴 고민
: 사무실을 혼자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점심은 여기 같은 단과대학 소속 사람들이랑 먹어야만 한다. 그래서 11시 30분 정도가 되면 맨날 네이트온 창을 켜서 메뉴를 정하는데 난 그냥 제일 가까운 저쪽 사범대학 쪽 식당가서 밥 먹고 빨리와서 쉬고 싶은데 사람들은 그 메뉴를 골라서 맨날 멀리까지 간다. 또 그 단과대학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을 내가 별로 안 좋아해서 그냥 거짓말 하고 혼자 사범대학 식당가서 먹고 그럴 때도 꽤 있다. 가끔 도움 받을 일이 있어서 아예 모른 척은 못하고 있지만, 차라리 혼자 밥먹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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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취직한 곳은 내가 졸업한 학교이다. 뭐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내 직장을 알든 모르든 상관 없을테니 그냥 적는다. 대학원 교직원 정규직은 뭐 숨겨진 신의 직장이라고 하는만큼 엄청난 사람들이 가는 곳이고, 나는 전에도 썼지만 100% 리얼 계약직이다.
내 전에 있던 언니도 계약기간 만료되서 관두고 나간건데, 그 언니는 잘 풀려서 나갔다. 정규직으로 갔으니까. 난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계약직으로 인생이 다운 그레이드가 되었는데, 그렇다하더라도 출퇴근 도합 1시간 30분이 안된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다. 예전에는 가는데만 1시간 반이었으니 말이다. 갈 때 시간이 짧은게 더 좋은데 갈때는 50분 남짓, 올 때는 내가 타는 버스가 난폭운전을 해서 30분이면 집에 온다.
저녁을 안먹고 1시간 가량을 더 일해도 집에 올때까지 배고픈 걸 참을 만 하다.
대학교다보니까 개강 때 쯤이 가장 바쁠 때 인데 불행히도 난 가장 바쁠 때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가 졸업한 학교긴 하지만 내가 졸업한 과는 아니다. 그래서 교수도 낯설고 과목도 낯설고 애들도 한명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학교로 온거라 난 회사보다 좀 느슨하게 슬슬 일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퇴근하기 전에 해야할 일을 적어놓는데 항상 10가지가 넘고 야근을 한다고 한들 해결할 수가 없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과마다 적용되는 게 워낙 상이하다보니 가끔 대학본부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답이 안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전에 일했던 언니에게 물어보고 있다. 이런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 언니에게 인수인계 받는 일주일동안 엄청 언니한테 잘보이려고 노력하고, 말도 잘 들었는데 그 언니 반응이 영 시원찮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언니도 다른데 일하는 상황이다보니 내가 물어본 것에 대답하기가 힘들겠지.
그 언니와 내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내가 이미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관둔 직장에 새로 들어온 애가 뭔가 물어본다면 그냥 개무시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언니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정말 용기내서 물어본 건데 무시하면 내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잘난 척 같지만, 난 쓰잘데 없이 오지랖이 넓어서 전 직장도 내 다음 사람이 뽑힐 때까지 기다리고 그렇게 바보짓 하느라고 원래 받아야할 돈도 100만원 넘게 못 받았다. 근데 난 그게 오히려 편했다. 후배가 이를 갈며 날 원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입사초에 내가 똑같은 상황으로 인해 쌩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저번주도 이번주도 어쩔 수 없이 그 전임자 언니에게 물어볼 내용이 많은데, 가끔 네이트로 물어보면 " ^^;;;;;" 이런 표정만 찍어서 말을 할 때가 있다. 꼴에 자존심 때문에 내 딴에는 이 방법 저 방법 다 보고 전화해봐도 모르겠을 때 언니에게 말 거는데 저 "^^;;;;" 표정이 나오면 난 별안간 기분이 확 상한다. 거절하고 싶은데 거절하려고 하는 말은 못하는 그런 기분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말이다. 도대체 ^^;;;; 이 표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무슨 의도로 이 표정을 사용하는가? 난 ^^ 이 모양도 무지하게 사용 안하는 편인데 ^^ 도 모자라서 ;;;; 까지.
안그래도 화가나고 서러운데 며칠전에는 밤에 횡단보도에 서서 음악 듣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군대에서 2주 적응기간을 준다는데 이제 난 2주째 일 뿐인데 뭔 물어보는 건 그렇게 많고 해결해야 하는 건 또 이렇게 많은지.
문득 계약직이 서러운게 짤리는 것도 짤리는 것 때문에 서러운 것도 있지만  새로운 일에의 적응 때문에도 무지하게 서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직장에서도 느꼈지만 그 회사에서 뭔가 어떻게 해야겠다고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건 적어도 1년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는데 말이다.
아무리 전임자 언니가 원망스러워도 내 입장이 워낙 약자의 입장이다보니 그 언니가 대답해주면 고맙다는 인사를 절대 빼먹지 않고 진심으로 하고 있다.
아. 괴롭다.
참고로 과외에서는 짤렸다. 일주일동안 일이 많아서 제대로 못갔더니 아줌마가 날 짤랐다. 여차저차 힘들었는데 오히려 잘된 거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애랑 정이 많이 들었는데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내 고향은 인천.

일상 2010. 4. 16. 18:22
내 동생은 나와는 달리 전라북도에서 초중고를 다 졸업했다. 그래도 지 고향으로 삼고 있는 건 정읍인데, 오랜만에 정읍에 갔더니, 아... 왔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다고 한다.
고향의 느낌이 그런 것일까? 난 초중고를 다른 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런 건 없는데 그래도 가장 오래 산 인천을 그냥 고향 삼기로 했다.
백수가 되서 친구 만나러 졸업했던 학교에 갔는데, 오랜만에 가는 버스타고 가는 길을 보니 아... 인천 참 후졌다. 하는 생각을 했다. 인천은 산도 없고, 봄이 되었는데도 꽃이 피는지 지는지도 모르겠고, 불량한 애들도 많고, 시내버스 운전기사는 다들 사이버 포뮬라 저리가라의 난폭운전이지만, 그냥 오래 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을 붙이려고 하니까 정이 붙었다.
우리 엄마는 인천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싫다고 틈만나면 떠날 준비하지만, 우리집이 나 초등학교 4학년때 인천을 떠났다가, 다시 중3때 인천으로 오고 고1때 인천 떠났다가 다시 인천으로 오고 서울 잠깐 살았다가 인천으로 오고 벌써 인천으로 이사들어온 적만 3번째 인거 보면 아무래도 인천을 떠나면 안되지 싶다.
백수된 첫날 월요일에 졸업했던 학교에 갔었다.
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내가 다니던 대학교가 진짜로 남자가 많은 학교였다는 것과 그 남자 많은 와중에서도 남자 없이 그냥 졸업한 나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젊고 이쁘고 잘생긴 애들 보니까 뭔가 눈이 호강스러웠다.
또 한가지, 내가 생각보다 예전 좋아했던 분을 못 잊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제길 학교 가는 곳마다 다 이거저거 다 생각이 나서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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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mp3 를 들어도 매일 예전 노래만 듣는다. 라디오를 들을 시간이 없으니 새로운 곡이 뭐가 좋다 알 수도 없고.
대학교 때 짝사랑 하던 남자에게 고백 후, 나서 버스 정류장에서 두근 거리는 가슴으로 mp3 플레이어를 재생했을 때 나왔던 음악은 Beastie boys의 ch-check it out 이었다. 그 이후로는 이 음악을 들을 때 마다 그 상황이 떠올라서 기분이 심히 구리다. (오늘은 특히 그 날 입었던 자켓까지 입고 와서 더 생각이 난다 제길)
그 이후 내가 작렬히 차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그때 내 상황에 딱 어울리는 배경음악은 gorillaz 의 feel good inc.다. 이 음악을 선택한 이유는 그 때 당시 나를 마음껏 비웃어 주고 싶기 때문이다. 흐흐흐. 근데 gorillaz 이번 stylo 노래 굳.

[Flash]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NFPlayer.swf?vid=26D3ABDCA264F6532294A1F9C4B3F1CB3996&outKey=V1234500f3098566c7d65e8cf38b8aee769cd51f9860b4cb15da7e8cf38b8aee769cd

그리고 오늘 점심을 먹고 대학 때 얘기를 하다가 생각난건데, 내가 다니던 대학에 새로운 도서관이 생기기 전 까지는 집이랑 도서관이랑 연결되는 지름길을 애용했다. 전문대를 지나 고등학교를 지나 오는 길인데, 밤에 혼자 걸어오면 가로등에 벚꽃 나부끼는 거 보면서 감상에 젖고 그랬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인적이 너무 드문 길이었기 때문에 그 길로 안돌아다니는 게 나을 뻔 했지만, 뭐 별 일 안 당했으니까. (감사합니다 하나님!)
여하튼 어느 봄날이었는데, sk 텔레콤에서 새로운 요금제에 대해 무지하게 홍보할 때였다. 그 요금제는 현재로부터 가까운 과거 3개월 동안의 통화량을 3으로 나눠서 한달 평균 통화량을 산출한 뒤, 그 통화량 만큼만 기본료를 책정하고 그 이상 통화료에 대해서는 모두 공짜! 라는 게 컨셉이었다.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볼까 하고 114에 전화를 하면서 도서관을 나와 지름길로 이어지는 전문대 운동장을 지나고 있는데 상담원이 "네 고객님. 고객님의 최근 3개월간 월평균 통화량은 7분입니다. " 라고 나한테 이야기 하다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참 암울한 인간관계를 유지했던 거 같다. 한 달 내내 통화량이 단 7분이라니.
뭐 그덕에 나는 7분 요금만 내고 무제한 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대학 때 암울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현재에 만족하고 그랬다. 그때보단 내가 심적으로 덜 괴롭다는 생각에. 그런데 그때는 맨날 돈 없어서 5천원 짜리 티셔츠에 만원짜리 지하상가 바지 입고 다니고 남자한테 차였어도 그럭저럭 어리니까 봐줄만 했을 거 같다.
어차피 누구나 나이는 드는 거니까, 어린 애들을 안 부러워 하려고 했는데.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