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에 가기

일상 2019. 3. 30. 17:00

  가끔 내 나이가 몇인지 잊고 있다가 문득문득 놀란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마흔이라는 사실에 나또한 조바심이 나서 2월에 산부인과에 갔다. 
 작년 인천의 여성병원에서 수십만원짜리 건강검진을 하면서 임신관련 검사를 이미 몇개는 해서 많은 검사를 생략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산부인과 검사를 했다.
 그 중 최고 괴로웠던 검사는 역시 나팔관 조영술. 난임관련해서 무조건 하는 검사 중 하나인데, 질안으로 무자비하게 기구와 약을 밀어 넣는데 정말 불쾌하게 아팠다. 내 생전에 다시는 안받으리라 결심했다.
 의사가 나팔관 한 쪽이 염증으로 완전 막힌 걸로 보인다며 자연임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니 막힌 한쪽 나팔관을 절제하고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자고 했다. 나팔관 수술을 하면서 자궁 경부와 내부에 있던 근종도 제거하기로 하고 2월 28일에 수술을 했다.
 막상 2월 28일에 복강경으로 나팔관 기능을 다 시험해보니 절제할 수준은 아니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근종만 2개 제거하고 1박2일만에 퇴원했다. 별 거아닌 수술이라곤 하지만 마취에서 깰 때 많이 아팠고 실밥빼기 전까지는 엉거주춤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수술 후 첫 생리가 끝나고 시험관 시술 때문에 2주 동안 과배란주사를 맞았고 어제 난자 30개를 채취했다. 
 여자가 산부인과가는 걸 피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맨 정신에 팬티까지 다 벗고 수술하는 의자에 스스로 올라가 수술 자세를 한 번이라도 취해본 사람이라면 산부인과가는 걸 좋아할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수술 의자에 눕기 전에 마취를 해주면 좋으련만 꼭 그 의자에서 자세를 취해야만 마취를 시켜준다.
 내 몸에서 무려 난자 30개가 생성하고 또 그게 한꺼번에 배란된다 생각하니 좀 징그러웠고 아팠다. 난자가 많을수록 아프다는데, 생리통과는 또 다르게 어찌나 배가 뻐근하고 아프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몸으로 회사에서 법인세 결산도 다 잘 끝냈다.
 의사가 내 난소가 너무 무리해서 난자를 많이 만드는 바람에 지금은 바로 배아를 착상시킬 수 없다고 하여 또 한달이 미뤄졌고, 5월에도 100프로 시술을 할 수있다고 장담은 못한다고 했다.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애없이 살아도 상관이 없다는데 오히려 내가 더 애 낳는 것에 더 집착하고 있다. 
 난 이상한 확신같은 게 있었다. 우리 엄마가 임신 잘되고 출산도 다 잘했으니 나도 그럴거야! 라는 확신. 그런데 막상 난임이라 판정받고 말로만 듣던 시험관 시술을 받고보니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고 의기소침해진다. 나이 먹는 거에 큰 미련이 없는 편이었는데 이젠 30대 후반에 첫애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가 처량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어떻게 생겼을지 모를 귀여운 미래의 아기 생각을 하며 하나님께 기도한다.
 임신을 하면 파마를 못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서 1년만에 파마하러 와서 별로 즐겁지 못한 근황을 전한다. 제발 올 봄안에 새생명을 품고 지금보다는 밝은 일기를 쓸 수있길 바랄 뿐이다.
  


외면하고 싶은 모습

일상 2019. 2. 20. 13:54

  요즘들어 내가 싫어하는 어떤 사람의 성격은 어쩌면 가장 외면하고 싶은 나의 일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상대방의 별나거나 특이한 점을 인식하고 호불호를 분별하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이다. 이를 순식간에 알아채고 상대방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상대방의 단점이 나에게 익숙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몇 개월전에 마흔이 넘은 여자 과장님이 입사했다. 여러 회사 짧게 짧게 다닌 경력과 목소리가 가끔 격앙되는 점, 별것도 아닌 일에 고집 부리는 점,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결혼 전 내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싫어해서 인간들과 가까이 지내는 걸 대체로 피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남들 기분을 기가 막히게 맞춰줄 때가 있는데, 이 분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처음부터 그런건 아니다. 성질머리에도 맞지 않는 직장생활을 십수년 하다보니 그럭저럭 분란 일으키지 않고 회사 사람들과 지내는 법을 익혔을 뿐이다. (회사생활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


  하여튼 위에 새로 들어온 과장님에 대해 더 말하자면, 과장님이 입사한 후 나는 나름대로는 노하우랍시고 이것저것을 알려드렸다. 그런데 내가 뭘 알려드릴때마다 그 분이 말씀하시는 수많은 반론에 지쳐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하는 게 좋다." 고 항상 단서를 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다다다다 쏴대는 말을 듣고 있자니 기가 빨리는 것 같고 머리가 어질어질하여 이후 부터는 그 분이 다다다다 말하면 항상 '죄송합니다.' 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랬더니 어느 날, 왜 맨날 죄송하다고 하냐고 비아냥 대는 거냐고 하시더라. 나는 하는 수 없이 또 오해를 하게 만들어 죄송하다고 했다.


  요즘 지켜본 그 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거다.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자기의 잘못으로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자기가 잘못 혹은 실수를 일으킨 모든 이유는 부장님의 지시가 잘못되서 혹은 내가 제대로 안 알려줘서 라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도 엄연히 위계서열이 있는 조직인데, 상사가 지시한 업무에 대해 '못하는 일이다. 필요가 없는 일이다. 지시하신 이유를 모르겠다.' 등등 자기가 그 일을 하기 싫은 이유 혹은 불평불만을 마구 쏟아낸다. 그러다가 엊그제부터 무언시위 중이다. 바로 옆에 계신 분이라 분위기가 너무 숨막힌다. 


  결혼 전에 사람들이 나에 대해 저래서 결혼을 못했겠지 쯧쯧쯧 같은 말을 은연 중에 많이들 하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었다. 나는 애써 누구도 나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외면했지만, 요즘들어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옆에 과장님 같은 모습이어서 사람들이 혀를 찼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어제부터 좀 우울하다. 결혼한 사람이 더 인간성이 좋고 성숙한 건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혼자가 되고보니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다니. 결혼이 뭐길래.

  어쩌면 옆에 과장님을 타산지석 삼아 내가 인간으로서 한단계 더 성숙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


  한편으론 집도 가난한데 고집부려 사립대학 나와 고작 한다는 일이 이딴 일에 이딴 월급이라니 나도 참 한심하단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이 회사를 때려치면 대안이 있냐? 문제는 그것도 없다는 것이다.  대단한 능력자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열패감 같은 건 모르겠지.


  결론은 처음에는 과장님과 닮은 면이 있다고 느꼈지만, 내가 옆에 과장님보다는 조금 더 나은 인간이었으면 좋겠고 만약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난 적어도 대화 중 상대방이 지쳐 나가 떨어지는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근무시간에 이거저거 주절거려봤다.  


 


새해 2019년

일상 2019. 1. 17. 14:30

1. 남편

  결혼하고 처음 맞는 새해다. 나와 남편은 남들과 좀 다른 신혼생활을 하고 있다. 편하기도 하고 우리가 좀 이상한건가 싶기도 하다. 나랑 남편이 10살 어린 나이에 만났으면 지금처럼 무덤덤하지 않았을까? 란 생각이 들다가도 30대 후반에 결혼한 부부라면 다 우리같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한다. 몇십년 후를 예측할 순 없지만, 우리 부부는 그냥 지금 상태로 쭉 가지 않을까. 그러니까 남들이 생각하는 신혼부부마냥 엄청 뜨겁게 살고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2. 자식

  이번 주 화요일부터 생리를 시작했는데, 난 내가 임신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리할 줄 알았다. 이번 생리가 결혼하고 3번째 생리니까 내가 3번이나 임신을 못하고 넘겼다는건데, 이거 때문에 너무 힘들다. 임신을 못해서 힘든 게 아니고 우리 엄마 때문에 힘이 든다. 우리 엄마는 나를 허니문 베이비로 낳고 내동생도 임신 계획을 세운 직후 가임기에 바로 맘먹은대로 임신을 했기 때문에 임신이 엄청 쉬운 줄 안다. 그래서 전화할 때마다 임신일 수도 있으니깐 약먹는거 조심하라고 하며 임신을 너무 기대하고 계신다. 그래서 내가 어제 지금 생리 중인데 무슨 임신이냐고 했더니 너 지금 나이에 임신 안되서 고생하는 사람 얼마나 많은 줄 아냐며 왜 노력을 안하냐고 늙어서 임신 못한 거 하나로 또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3. 나이

  위에 이어서 하는 말이지만, 35살 넘었을 때 마음 속으로 결혼안하고 사는게 내 운명이라면 하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35살 넘어부터는 엄마아빠가 단지 결혼 못한 거 하나로 사회의 낙오자 취급을 하며 시시때때로 늙어서 애도 못낳고 시간은 가고 어떡하냐고 해서 정말 문자 그대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한편으론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하지 말란 거 안하고 말썽한번 안 일으키고 살았는데 고작 결혼 못한 거 하나로 죽일년 취급을 받는 게 억울했다. 난 가족이라면 결혼을 안해도 애를 안낳아도 나름 세상 잘살 수 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우리 부모님은 가만 있다가도 결혼 못한 거 하나로 날 얼마나 구박했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엄마아빠의 잔소리가 잔소리를 넘어 저주로 들릴 정도였다. (혼자 늙어서 보호자도 없을거라는 둥, 외로울 거라는 둥 기타 등등의 저주) 

  작년에 드디어 엄마아빠가 그렇게 바라는 결혼을 하고나니 이제는 나이 많은데 왜 애를 안 갖느냐고 성화다. 나도 내 나이 많은 거 알고 나이 많으면 애 낳기도 키우기도 힘든 거 안다. 그런데 만약 애를 낳고 싶은데도 나이가 많아 임신이 안된다면 제일 슬프고 속상한 건 나 아닌가. 그런 나한테 왜 자꾸 그러시는걸까. 아직 아픈 엄마한테 화를 낼 수도 없고 엄마가 임신 얘기 꺼낼 때마다 너무 힘들다.  


4. 치매 

  원래 일기를 쓴 목적은 매주 가는 교회에 치매 노인에 대해 쓰기 위해서였다. 우리집에서 제일 가까운 교회에 매주 가고 있는데 그 교회에 항상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오신다. 시도때도 없이 큰소리로 떠들고 저번 주 예배시간에는 엄청난 난동을 부리며 막 욕까지 하셨다. 그런데 젊은 담임 목사님께서 치매 노인이 큰 소리를 내든 말든 개의치 않고 설교를 열심히 하는 걸 보고 감동을 받았다. 

  결혼 주례 때문에 시부모님이 다니시는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게 큰 교회에 한번 참석한 적이 있었다. 시부모님이 목사님을 어찌나 어려워하든지, 남편이 비유하길 대학교로 치면 총장님 1:1로 만나는 거랑 마찬가지라고 했으니 많이 어려운 자리인 거 같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다 싶었다. 

  그런데 난 그냥 그 대형교회가 싫었다. 원래도 싫었지만 직접 가보고는 더 싫어졌다. 큰 교회에 몸담고 있는 게 대단한 줄 아는 대형교회 교인들과 예수님이 증오해 마지 않던 성경 속 바리새인들과 다른 게 뭔가 싶었다. 중간 기도도 교회 부흥을 위해 하는 거 정말 내 기독교 상식으로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내 태도 때문에 그날 남편이랑 결국 싸웠다) 

  저번에도 썼지만, 난 장담한다. 예수님이 만약 다시 세상에 오시면 우리나라 대형 교회 목사들이 앞다투어 예수님을 못에 박아버릴 것임을.  

  권위적이지 않고, 치매 노인을 별나게 대하지 않는 우리동네 목사님 존경한다. 계속 다녀볼 생각이다.  


5. 회사

  난 생긴 것과 달리 의외로 회사 사람들한테 짜증 잘 부린다. 오늘 아침에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다 내가 부족해서 이런 회사 있는거라 부끄러워 큰 불만 안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다른 회사 사원 월급에 인사재무총무 하여튼 온갖 잡일 다 하고 있는데 은근슬쩍 또 관둔 직원이 하던 일을 나한테 시키는 행태를 보고 화가 안날 수 없었다. 

  이 회사도 너무 오래 다녔나보다. 

  너무 짜증이 나서 이직할 자리를 알아보는데 결혼을 하고보니 이직에도 소극적이 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자신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건 이직이 아니고 그냥 온전히 때려치고 노는 건데, 이제 가정까지 생겨 더더욱 회사 사람들 짜증나서 못다니겠단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관둘 수 없게 되었다. 


6. 외모

  남편 얼굴이 잘생겨서 같이 외출을 하면 기분이 좋다. 남편 만나고 나서 깨달은 게 있는데, 내가 이제껏 결혼 안한건 내 맘에 드는 외모를 가진 남자가 없어서 였다는 거. 솔직히 조건 좋은 남자도 많았다. 그런데 하나같이 외모가 별로라 마음이 안갔다.

  못생긴 건 유전되고 조건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외모가 남자가 가진 조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일수도 있는 것이다. 하여튼 난 내 선택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남편 외모 내 맘에 드는 거 어찌나 흐믓한지 모른다. 


적막

일상 2018. 9. 4. 15:39

1. 적막

  어느날 엄마가 입원하셨을 때, 혼자 TV도 오디오도 안켜고 빨래를 갰다. 초여름이었던 것 같다. 빨래를 개며 내가 만약 앞으로 영영 혼자 산다면 매일 매일 이런 밤이겠지. 매일밤이 이렇게 조용하고 적막하고 내가 뭘 하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안들리겠지 싶었다. 순간 이런 삶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때 교생 실습 나온 선생님들이 다들 엄청 늙어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습 나온 선생님들은 다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고등학생 때 36살인 사람들을 보면 엄청난 중년에 아무것도 다시 시작할 수 없는 나이처럼 보였다. 그런데 내가 막상 36살이 되고보니 고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내 본질은 그닥 다를 게 없다. 산술적 나이는 만만찮지만 의외로 내가 엄청나게 늙었단 생각이 안든다. 

  난 혼자살다가 엄마 돌아가시고 쉰살 쯤 되고 직업도 잃고 경제력도 없어서 남루해지면 차에다 번개탄 피워놓고 혼자 죽으려고 했다. (사람 죽은 차는 폐차시킬 수 있지만 집에서 죽으면 그럴 수 없으니 폐끼치는 것 같아서) 그런데 이 '쉰' 이라는 나이가 지금 내 생각처럼 어마어마하게 늙은 나이가 아닐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쉰이되어도 난 학생때나 지금이나 별 다를게 없고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같다. 참 무섭고 슬픈 일이다.


2. 신경

  남동생과 전화하고 며느리 눈치를 보는 엄마를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우리 엄마와 며느리는 얼굴 안보고 전화 통화 안한지 거의 3개월 이상 됐다. 며느리가 우리 부모님에게 신경 안쓰는 건 그렇다 치자. 예상했던 바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 엄마가 그걸 너무 가슴 아파하신다는 것이다. 아들 장가보내면 그냥 자기들 살림 차리고 살겠지... 하고 엄마 나름의 삶을 살면 좋으련만 우리 엄마는 그게 안되나보다. 엄마가 속상해할 때마다 난 열심히 연준이 처의 좋은 점을 나열해서 엄마를 위로한다. 그런데 아마 내 위로는 하나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우리 엄마아빠는 동생이 결혼할 때 돈 한푼 못보태줬다는 것 때문에 은연 중에 당신들이 동생 부부에게 죄를 진 것마냥 행동한다. 그래서 동생한테 이랬음 좋겠다 저랬음 좋겠다 말한마디 못하고 그냥 속만 썩는다. 엄마 보면 결혼도 하기 싫고 자식은 더더욱 낳기 싫고 그런다.


3. 시부모님

  내가 우리 엄마를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건 우리 엄마와 시어머님이랑 너무 크게 대조가 되기 때문이다. 약 한달쯤 전에 심각하게 결혼을 하지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그 분들을 대해야 할지 자신이 없고 앞날이 깜깜하다.


4. 인내

  요즘 내 심란함에 대해 정말 친한 사람들한테 구체적 상황을 말하고 의견을 구했는데

  (1) 초반부터 진지하게 시부모님께 의견을 말씀드리고 싸가지 없는 며느리로 찍히고 난 편히 산다.

  (2) 시부모님들이 그냥 회사의 진상 부장님이다 생각하고 네네 하고 대충 얼굴볼 때만 기분 맞춰 드린다.

  (3) 남자친구를 정말 사랑한다면 내 남자친구 낳아준 부모님이다 생각하고 참을 수 있다. 

  위와 같이 총 3가지 의견이 있었다. 나름대로 다 도움이 되는 의견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빠진 기분은 다시 좋아지질 않는다.


5. 결혼 후

  빨리 모든 상황 종료되고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새로운 집에서 회사 왕복하면서 일이나 하고 싶다. 진급하면서 새로 맡은 일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차라리 잘된 거 같다.


6. 미래 남편

  가까운 미래에 내 남편이 될 사람은 이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해맑기만 한다. 결혼해서도 아마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내 결혼식에 건강하게 참석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항암도 견디시는데, 내가 유부녀가 되면 정말 더 행복할까? 요즘 집관련해서 여러가지 문제와 시부모님의 통제욕구를 참아내고 Bach 음악 들으면서 어떻게든 평정심을 찾으려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만약 지금 남자친구와 평생 안헤어지고 연애만 할 수 있다면... 결혼을 할 필요도 없을텐데. 난 결혼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평생 안 헤어지고 싶었나보다.


이글이글

일상 2018. 8. 1. 17:02

1. 건강검진 

  결혼을 앞두고 산부인과에서 70만원이 넘는 종합 건강검진을 했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했는데 앞에 일기에도 썼다시피 갑상선에 모양이 애매한 결절이 있다고 해서 한 이주일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받은 검사 프로그램은 대장내시경도 포함된 프로그램이었는데, 의사가 대장내시경은 한 45살때 해도 될 거라고 했다. 너무 다행이다. 비위 상하는 관장약 마시기를 10년 뒤로 미룰 수 있어서. 

  의외로 신체나이가 어리게 나왔고 (절대적인 건 아니었지만) 자궁에 작은 혹과 자궁경부의 염증도 치료를 요하는 단계는 아니라고 했다. 

  

2. 산부인과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30대 중반이면서 산부인과에 갈 일이 없어도 가야하는 걸 알면서도 안갔다. 20대 후반에 자궁경부암 주사 맞으러 가보고 산부인과는 처음이었다. 아... 그런데 초음파 검사는 정말 할때마다 욕나온다. 산부인과에서 나보고 앞으론 6개월마다 오라는데 아니 진짜 다른 여자들은 6개월마다 한번씩 산부인과에 가고 있는건가? 쉣더퍽 


3. 암유전자 

  몇년전 안젤리나 졸리가 암 예방차원에서 유방을 절제했다고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암센터에서 우리 엄마도 혹시 안젤리나 졸리가 갖고 있는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검사해보자고 했다. 일단 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면 딸한테는 거의 99% 유전이 되는 거라고 해서 내심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음성이 나왔다. 암환자 중 대부분이 유전자와는 관계 없이 암에 걸린다고 하니 별 거 아니긴 했지만, 이게 나의 일이 되고보니 걱정이 되더라. 엄마 주치의 선생님이 난소암 관련해서 예방 수칙 같은 거 종합 면담을 해주신다고 해서 내일 암센터 면담 가는데, 초음파 또 하자고 하면 어떡하지. 아아... 제발 주여.


4. 삶

  이번에 결과 기다리면서 내가 생각보다 엄청 살고 싶어해서 좀 웃겼다. 바로 1년전만해도 죽고 싶어했으면서 말이다. 좀 멋쩍다. 


5. 집

  요즘 같이 태양이 이글이글한 날씨에 집을 구하느라 좀 돌아다녔다. 약골인 남자친구는 앓아 누웠다. 집 구하면서 남자친구의 이기적인 면을 발견하고 서운했다. 타인이 내 맘과 같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오빠는 내가 먼저일줄 알았는데 오빠의 우선순위 1위가 전혀 내가 아니라는 걸 발견하고 좀 많이 슬펐고, 결혼해서도 실망의 연속이면 어쩌나 싶어서 걱정도 됐다. 아.. 근데 아직도 못구했다. 슬슬 걱정이 된다. 


6. 엄마

  엄마가 항암 치료를 받고 집에 오시면 전혀 웃지 않으신다. 하루종일 아무 말씀도 없고 내가 재밌는 얘기를 해도 반응도 없다. 그럴 땐 병마가 엄마의 유쾌하고 명랑한 모습을 앗아간 게 아닐까 하고 걱정스럽다. 하지만 한 3주 지나면 다시 예전 내가 알던 엄마가 된다. 감사하게도. 요즘 우리 엄마가 아프기 전 엄마랑 똑같은 엄만데, 내일 다시 입원하셔야 한다. 기도가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엄마가 15년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드리고 있다. 


7. 동정심

  내가 싫어하는 인간유형에 동정심없는 사람도 추가하기로 했다. 불행한 사람을 보며 안타까워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새삼 놀란다. 


8. 진급

  이번달 14일이면 내가 이 회사에 온지 딱 만3년이 된다. 처음 일하면서 뭐 이딴 회사가 있을까 하면서도 밥벌이는 해야지 라는 심정으로 다녔는데 어느덧 3년. 놀랍게도 내가 3년이상 다닌 회사는 여기가 처음이다. 급여가 10% 올랐고 과장으로 진급했다. 내가 아기를 낳아도 여기를 계속 다닐수 있을까? 두고볼 일이지만, 어쨌든 급여는 올라서 좋다. 솔직히 내가 그동안 너무 싸게 일했다. 너무 싸게.


덧없는 관계

일상 2018. 5. 30. 16:04

1. 친한 사람의 기준

  나에게 친한 사람이란 상대방을 만날 수 밖에 없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시간을 내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학창시절에 학교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친구들과 학생이 아닌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하고 얼굴을 보니 그들과 나는 아직까지도 정말 친한 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 지금까지도 얼굴 보고 연락하는 사람은 오로지 단 한명이다. 이제까지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직장에서 같이 일할 땐 분명 친했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하지만 더이상 그 사람들을 볼 기회 혹은 의무가 사라지고 나니 전혀 연락을 할 생각도 들지 않고, 볼 마음은 더더욱 안든다.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들과 직장에서 보낸 그 시간과 관계는 대체 뭐였을까? 동료애? 이렇게나 거창한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글쎄.. 모르겠다. 가끔 그들과 나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퇴직은 고사하고 업무시간이 종료됨과 동시에 서로 메시지 하나 주고 받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아쉬울 것 전혀 없는 관계. 이걸 어느 정도 인정하고 거리를 두는 게 내 직장생활에 이롭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좀 슬프지만 어쩌겠나...


2. 병원 사람들

 우리 엄마 때문에 병원을 자주 왔다갔다하면서 그곳의 의료인들에게 경외감을 느낄 때가 많다. 나는 고등학생 때 '교련' 과목을 마지막으로 배운 세대인데, 교련 수업시간에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을 구하는 순서 같은 걸 배웠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나에게 수업 내용 중 가장 충격이었던 건, 가망이 없어보이는 사람은 포기하고 살 가능성 있는 사람부터 구하라는 내용이었다. 간신히 숨이 붙어 있으면 그냥 죽으라고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라니.. 이게 아무리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방법이라고 해도 나는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그 사람들 유언이라도 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가 입원하신 병원은 전국에서 더이상 가망없다고 포기한 사람들이 많이 오는 병원인데, 원래 가던 병원에서 아무 것도 안해주겠다는 우리 엄마 상태를  담당 선생님께서 보자마자, 수술 날짜 잡고, 우리 엄마보다 심했던 사람들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시는데 난 정말 그 자체로 너무 고마워서 의사선생님께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수많은 죽음을 목격할텐데, 수없이 많은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더라도 죽음에 초연해지지 않는 의료인이 정말 좋은 의료인이 아닐까. 정말 존경스럽다.



1. 동생

  우여곡절이 좀 있긴 했지만, 3월 둘째 토요일에 동생의 결혼식을 잘 마쳤다. 구두에 불편한 옷 입고 정말 엄청나게 뛰어다녔다. 이제는 동서가 된 신부네 집이 남양주라서 천호동에서 식을 올렸는데, 오전 9시반까지 가서 아침 먹고, 머리하고 화장하는 것만으로 난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런데 그 날 인천-천호동 왕복 운전까지 내가 다 해서, 결혼식 끝나고 완전히 뻗었다.

  중간에 동생에게 들어온 축의금을 입금하라는 특명을 안고 남자친구랑 은행가서 어마어마한 거액을 입금했다. 축의금 받아주는 두 친척오빠가 너무 빨리 데스크를 정리해버리는 바람에, 늦게 온 몇몇 하객들은 식권을 못받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내 남자친구를 처음으로 가족과 친척들에게 공개했는데, 양복입은 남자친구 모습이 너무 멋져서 가슴이 뛰어 한동안 정신이 아득했다. 그런데 너무 바빠서 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다. 제일 친한 이종사촌 언니들이 남자친구 잘 생겼다고 칭찬해서 기분 좋았다.

 

2. 엄마

  내일 모레 PET 검사 결과가 나온다. 아주 드물게 PET 에서는 암이 발견 안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암이 아니리라 하고 기대하면 처음 암판정 받을 때처럼 너무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결과가 너무 참담하다면 도저히 감당이 안될 것 같다.


3. 회사

  회사에서 자꾸 일을 너무 많이 시키려고 한다. 난 이미 두 사람 만큼의 일을 하고 있다. 누가봐도 두 사람의 일을 하지만, 내 월급은 정말 한숨나는 수준이다. 바로 전 직장을 쫓겨나다시피 그만둬야 했고, 대학 졸업하고 첫발을 들였을 때 부터 이미 망한 경력이지만, 가끔 정말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내 연봉가지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다. 요즘 수십번 씩 때려치겠다고 말하는 상상을 한다.

  그런데 바로 전 직장에서 정말 최악의 상사 밑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그때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진 않다. 난 아무리 연봉 올려주신다고 해도 회사에서 제시하는 업무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고 말해놨는데, 그 말 한 지 벌써 3주가 지났는데 아무 말이 없다. 이것도 솔직히 말하면 자기들끼리 이미 다 결정해놓고 나한테 통보만 할 작정인 것 같다. 이기적인 인간들. 자기들은 놀고 먹으면서.


4. 급체

  저저번주에 남자친구의 친남동생과 재수씨 그리고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났다. 평소 남자친구가 집이나 부모님 얘기를 전혀 안해서 내심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건가 했는데, 막상 집에 가서 어머님께 인사를 하니 왜 이제야 나타났냐며 안아주고 어화둥둥 좋아해 주셔서 한시름 놓았다. 재수씨가 결혼하고 처음 맞는 생일이라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데 나를 초대한 자리였다. 그런데 그 분이 보령 굴단지 가서 굴먹자고 하셔서 하는 수 없이 보령까지 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굴을 전혀 좋아하지 않고,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가서 평소 내가 먹는 양의 2배를 먹었다. 결국 급체해서 차안에서 토했다. 1차로 던킨도너츠 먼치킨 담는 종이 컵에 토하고, 토하는 와중에 오빠가 겨우 찾은 허술해보이는 비닐봉지에 2차로 토하고, 나때문에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3차로 모든 음식을 다 토해버렸다.

  남자친구 부모님께 너무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지만, 차안에 토하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5. 사랑

  주말에 오빠가 결혼하자고 했다. 정식으로 청혼을 안해서 서운하냐고 말했지만, 내가 서운할 리가 있을까. 좋아서 울 뻔했다. 결혼 얘기를 꺼낼 때 너무 좋아하는 티를 안내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는 표정을 지어 자기가 무슨 한류 아이돌이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결혼하자고 말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니깐, 홧김에 말하고 후회 중은 아닌 것 같다.

  한 때는 결혼 같은 거 안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애인 없어도 외롭다는 느낌 전혀 없었는데.... 사람 일이란 정말 알 수 없나보다. 남자친구를 만날 때 마다, 매 순간 반하고 가슴이 뛴다. 어떻게 나같은 인간이 누군가를 이토록 좋아하고 원할 수 있는건지 신기할 뿐이다. 난 진정한 사랑 이런 거 불가능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평생 안들 줄 알았는데...

  지금 내 소원은 오직 하나, 매일 매일 오빠를 보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이뤄질 소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지옥같은 겨울 근황

일상 2018. 2. 13. 17:39

1. 엄마 

  동생 결혼준비를 하면서, 엄마를 지켜보는 것이 괴롭다. 가끔 우리 엄마가 암에 걸린 원인 1위는 아빠, 2위는 성격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 엄마는 걱정이 너무 많다. 또 걱정이 있으면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한숨 주무시질 못한다. 소심하긴 얼마나 소심한지... 아들이 싫어할까봐 마음에 있는 말은 하나도 못하고, 또 그걸 말할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나한테 속마음을 털어놓는데, 그걸 듣고 있다보면 나도 답답하고, 저러다 또 엄마가 크게 탈이 나면 어쩌나 싶고.. 그렇다.

  고부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내 아들을 객관화 하여 바라보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보는데, 보통의 중년 여자들은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남자 즉, 남편을 대한민국 평균 남성의 모습으로 생각한다. 대부분 남편보다는 아들들이 시대적 요인에 의해 더 진보적인 사고를 갖게 되니, 엄마들 눈에는 자기 아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편감 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 아들은 외모도 그만하면 미남이라고 생각들을 하니.... 거 참.

  동생이 선울 본 것도 아니고, 강제로 결혼시키는 것도 아니니, 당연히 둘이 좋아해서 만나고 결혼도 하는 거고, 그 얘기는 둘 다 결국 똑같다는 거라고, 제발 동생 아까워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소용 없다. 요즘 우리 엄마는 너무 너무 사소한 것에도 백년의 실망을 하고, 마음 다스리느라 한시간씩 식탁에 앉아 기도하고 그러신다. 또 우리집 특유의 종교 문제까지 얽혀서 요즘 너무 괴롭다. 이 모든 걸 아들 앞에서는 전혀 티를 안내려고 하니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하고...

  난 아들도 있고 딸도 있는 게 좋지 않나? 란 생각 자주 했는데 요즘 보면 아들은 정말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엄마가 여기 생활 다 접고 시골 내려가고 싶다고 하실 때마다 병원도 먼데 어딜 가시냐고 말렸는데, 요즘 보면 아들 딸과 소식 끊고 그냥 1년에 몇 번 애틋하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 소녀

  남자친구에 대해 딱히 표현할 말을 못찾다가 어제 별명을 지어줬다. 소녀라고...내가 지었지만 참 잘 지었다. 난 은근히 남자같은 면이 많은데, 특히 연애에 있어선 더더욱 그런 편이다. 뭐 내 성향을 남자같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난 애교가 없고, 질투도 별로 안하고 연락도 잘 안하고, 은근히 남자한테 고백도 잘한다. 

  사귀자는 말은 남자친구가 먼저 했지만, 내가 어마어마하게 티를 냈기 때문에, 남자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어서 사귀자는 말을 한 경향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엊그제 내가 너무 잘 대해줘서(?) 사귀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 말에 좀 속상했다. 나는 남자친구도 날 어느 정도는 좋아했기 때문에 사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엄청 자주 했는데, 남자친구는 내 맘도 모르고 자꾸 그런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내가 너무 슬프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나중에 이 분이 살아온 세월을 헤아려보니 그런 생각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미스테리다. 남자친구의 인생... 어떻게 그 나이에 그렇게 순진할 수 있는지, 볼 때마다 신기하다. 나도 순진함으로 말하면 어디가서 빠지지 않는 사람인데... 끙. 하여튼 아직까진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너무 순수해서 상처주지말고 앞으로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 자주 한다.


 3. 겨울

  정말 이번 겨울 너무 악랄하지 않나. 너무 춥다... 이렇게 추운데 남자친구가 차도 없어서 외출도 엄청 많이 하고 있다. 정말 나이들어 추운 겨울에 연애하기 힘들구나.


4. 설

  설연휴 때 아마 며느리될 분이 올 예정인데, 휴... 벌써부터 피곤하다. 엄마 아프신 뒤로 기도할 때, 맨 첫번째 기도는 항상 엄마 안아프게 해주세요. 였는데 요즘에는 제발 엄마가 며느리 때문에 속상하지 않게 해주세요. 가 되었다. 제발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근황

일상 2017. 12. 12. 17:27

1. 바쁜 회사

  원래 11월에 로마에 놀러가려던 계획을 취소한 건 신의 한 수 였다. 11월 중순부터 저번주 까지 정말 미친 듯 바빴다. 물론 다른 회사 사람들처럼 절대적으로 바쁜 건 아니었다. 전 회사에서는 매일  저녁 안먹고 밤 10시까지 몇개월 내내 야근해도 도저히 해야할 일을 다 끝마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 회사에서 지금 내가 받는 월급과 이제까지의 업무량을 따져보면 분명 바빴다. 지금 회사로 이직한 지 이제 2년 3개월 됐는데 처음으로 6시 넘어까지 일했다. 그렇다보니, 야심차게 시작했던 독후감 쓰기도 전혀 안쓰고 있고, 일기도 못쓰고 그랬다. 오늘은 조금 짬이 나서 근황을 전한다. 


2. 친구의 연애

  친구가 연애를 시작하고, 행복에 들떠 있을 때, 내 우울의 모든 원인은 '남자'라고 단정지어서 당시 엄청 열받고 분했다. 실제 내가 연애를 하고보니, 역시나 난 친구가 말한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다. 분명 지옥같았던 그 시기만큼 우울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워 지고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약간 친구와 나는 어쩌다보니 약간 상황이 역전됐다. 친구는 여전히 그 남자를 만나지만, 그 남자 때문에 종종 우울한 모양이다. 글쎄.... 난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애정 문제에 있어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라, 걔에게 별다른 말은 안했지만, 내가 들은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친구의 애인은 그다지 좋은 남자는 아닌 것 같다. 아니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고, 그저 둘은 원하는 바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 같으면 못참고 벌써 도망가고 말았을 것 같다.


3. 해프닝

  11월에 쓴 일기에 적었던 무단결근하고 회사를 관두겠다고 난리를 피웠던 직원은 어쩌다보니 다시 주저앉았다. 지금 내 대각선 맞은 편에 앉아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 또 그럴지 알 수 없어서, 도저히 믿음이 안간다.


4. 도스토예프스키

  내 곁에 아무도 없었고,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손을 뻗었지만 무참히 무시당하고 말았던 지난 여름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쓰리다. 아마도 20살 이후 인생 최고의 위기가 아니었을까. 그 때 내 우울에 전염될 것 같아서 나를 보지 않겠다고 말했던 사람과는 마음 속으로 영원히 절교했다. 우울의 절정에 있을 때 그나마 날 살려준 건 기도와 Bach 와 E.M 포스터의 책들이었고, 역시 사람은 나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우울의 진창에서 빠져나와 어느 정도 뇌가 정상 궤도에 도달했을 때 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읽었는데, 그때부터 난 진심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존경하게 되었다. 아직 그의 작품을 다 읽진 못했지만, 요즘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이 너무 재밌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며칠 전 읽은 이반 부닌이나, 나쓰메 소세키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난 언제나 고독하고 괴팍하고, 다혈질에 결국에는 약간 미쳐버린 도스토예프스키 세계의 인물들이 너무 좋다. 그들은 분명 사랑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난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등장 인물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때마다 매번 감탄하고 놀란다. 지금은 '죄와 벌'을 읽는 중이다.


5. 나의 연애

  남자친구 집과 우리집이 꽤 멀고, 그에게 차가 없어 결국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보고 있다. 거깃다 남자친구는 주말에 하루는 꼭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라.. 더더욱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와 만난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따져보니 사귄 지 아직 한 달 밖에 안됐다.

  저번주에 만났을 때 오빠에게 정말 내 남자친구가 맞는 거냐고 물었다. 그만큼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 첫눈에 반한 이 귀여운 남자가 날 좋아한다니... 이거 정말 꿈 아니야? 행복할 겨를도 없이 끝없이 의아할 뿐이다.

  주책 바가지 같이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서 민망할 때도 많지만, 모르겠다.. 난 좋아하는 남자에게 잘해줄 수 있는 한 최대한 잘해주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 기회에 소원 성취 하는 셈 치고 계속 잘해주려고 매일같이 다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들뜨지 않으려고 무지 애쓸 때도 있다. 조금 두려운 기분이 든다. 언제까지 이 감정이 지속될 지 알 수 없기도 하고, 나보다 남자친구가 먼저 변할 수도 있는 거니까 말이다. 나는 어쩔 수 없나보다. 행복할 때도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는 버릇은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다.


맨날 감상문만 쓰다가, 오랜만에 근황 전한다.


1. 나쁜 소식

  회사에 한명이 그만둔다. 가만보면 술을 마시면 안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술을 좋아한다. 이건 정말 진리에 가깝다. 그들은 술을 끊을 생각도 없다. 내가 못나서 이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거라 회사 탓하기도 뭐하지만, 정말 이번에 그만두는 애는 대책이 없는 것 같다. 얘는 올해 5월에 내가 블로그에도 쓴 잠실에서 결혼한 직원인데,술을 안마시고 회사 출근했을 때는 그렇게 착할 수가 없다. 일도 꽤 잘한다. 그런데 평일에 친구들이랑 술 마신날은 어김없이 무단결근을 한다. 무단결근까지는 그렇다 치자. 더 큰 문제는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도저히 회사 못나올 것 같으면 사전에 연락이라도 해야하는 거 아닐까? 이게 상식 아닌가? 근데 거짓말을 한다. 자기 외근 갔다고. 난 알면서도 몇 번 속아줬고, 결근보다 더 나쁜 게 거짓말이라고 말했는데 이번에 또 거짓말을 했다.

  솔직히 얘 없었으면 2016년말 2017년초 내가 엄청나게 고생을 했을거다. 그만큼 걔가 나를 많이 도와줬다. 그때 벌어진 회사 일들 다 나혼자 했다고 생각하면 어휴... 기분이 아찔할 정도니까. 그런데 술만 마시면 저러는 거다. 아마도 다음날 생각 안하고 그냥 미친듯 마시는 모양이다. 아니 나이 서른살 넘어 숙취로 출근 안하고, 거기에 외근간다고 거짓말까지 하다니... 하긴 이건 나이랑 상관 없겠지.

  이번에 그만두는 애 바로 윗사람도 근태가 엉망인데, 원래 자기 자신한테 한없이 관대한 사람들이 타인한테는 엄격한 법. 본인 근태가 그지 같아서 바로 밑에 직원이 그 모양인건 생각도 못하고, 대뜸 나한테 전화해선 당장 걔를 해고하라는거다. 푸하하하. 아니 이 회사에서 내가 4대보험이랑 인사 담당인건 맞는데, 갑자기 전화해서 해고하라니? 대체 뭘까 싶었다. 다혈질이라 그냥 나한테 화풀이 한 거겠지.

  그 둘은 결국 그렇게 서로 요단강 건너버렸고, 어린 애가 관두고 나가겠다고 한 모양이다. 한 두번 무단결근 한것도 아니고 그냥 쟤는 그만두는 게 맞는 것 같다. 사실 쟤가 자기 그만둔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때마다 회사에서 어르고 달래서 앉혀놨는데, 이제 나도 지쳤고... (나도 어르고 달랜 사람 중 하나) 그냥 관둘라면 관둬라.. 는 생각이다.

  쟤가 관두면 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위에 말한 근태 엉망인 사람이랑 일을 많이 해야하고, 지금보다 업무량이 적어도 2배는 늘어나겠지만 쟤의 술버릇은 고쳐질 기미 전혀 안보이고, 맨날 저렇게 관둔다 관둔다 하는데 언제가 되도 관두고 말 것같다. 차라리 그만둘라면 지금 관두고 빨리 근태 괜찮은 직원 하나 뽑아서 처음부터 가르치는 게 이득인 듯하다.

  난 정말 모르겠다. 지금 회사가 작고 자기가 하는 일이 잡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이해를 하지만, 입사한지 아직 2년도 안됐는데, 아주 기본적인 근태조차 제대로 안되는 본인이 어딜간들 버틸까? 듣자하니 부인 직장이 빵빵한 모양이든데, 그거 믿고 그러는건지. 한편으로는 좀 부러웠다. 나도 직장 빵빵한 부인 있어서 사표 척척 내보고 싶네.

  하여튼 난 2017년 회사생활에 있어선 망했다. 우리 회사 같은 덴 신입 뽑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 뽑힐 것 같지도 않고.... 내가 쟤 일까지 다 맡아서 한다고 한들 회사에서 나중에 급여를 올려줄 것 같지도 않고. 뭐 그렇다. 착잡하구나.



2. 좋은 소식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평소 누구를 좋아하거나 혹은 사랑하거나 차였거나 찼거나 이런 얘기 블로그에 안쓰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좀 낯간지럽지만 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일부터 이 사람이 내 남자친구면 얼마나 좋을까? 란 생각을 했는데, 한편으론 그에게 너무 빠지지 않으려고 계속 다짐에 다짐을 했다.  혼자 상상의 나래 펼치다 언제나 처럼 잘못되면 마음이 도저히 수습이 안될 것 같아서..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서로 두번 밖에 안봤는데, 어쩌다보니 이 남자랑 사귀게 됐다. 그분이 나에게 사귀자고 말했던 장면이 자꾸 머리속에서 무한반복 재생되서, 아직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된다.

 아침에 그가 보낸 메시지를 보니 꿈은 아닌 것 같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