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차리기 힘들다.

투병 2020. 6. 30. 15:40

  아무리 찾아봐도 척수전이에서 6개월 이상 사신 분은 안 계신 것같다. 만약 호스피스로 옮긴다면 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회사를 일주일에 한번씩만 나오는 걸로 조정해서라도 엄마 옆에 있는 것이 맞을까.

  내가 하루하루 죽어가는 엄마를 보고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회사일하면서 멍하니 엄마가 하루 빨리 천국가길 기다려야만 하는걸까.

  엊그제까지만 해도 근무하다가 혼자 훌쩍거리고 눈물도 짜고 그랬는데 이제 눈물도 안나오고 그저 기가 막힌다. 엄마의 인생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기가 막힐 따름이다. 뭔 놈의 인생이 저래. 뭐 이렇게 허무해.


척수 전이

투병 2020. 6. 29. 12:15

  저번 주 목요일에 퇴근하는데 국립암센터 주치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한 달 넘게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여 뇌 MRI를 찍어보니 척수 전이가 됐고, 이 상황이면 앞으로 급격히 안 좋아지실 것이라고.

  전화를 받은 뒤로 미친 듯이 검색을 해보았는데 대부분은 척수 전이 판정 후 3개월 이내 사망인데 뇌의 암세포 때문에 환자의 신체 기능이 하나씩 망가져가는 과정을 보호자가 옆에서 지켜보아야만 하는 게 정말 힘들다고 한다. 보호자 입장에서 제일 힘든 게 아마 척수 전이일 것이라고.

  우리 엄마는 며칠 전부터 사물이 두개로 보인다고 하셨는데, 아마도 이것도 암이 시신경을 눌러서 나타난 현상인 것 같다.

  같은 과정을 겪었던 사람들은 환자가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조차 너무 괴로워서인지 어떻게 환자가 기능을 하나씩 잃어갔는지 적어놓지는 않는 것 같다.

  시력으로 시작해서 청력, 편마비, 하반신마비 결국에는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손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로 돌아가시는 수순이리라.

  주말에 동서네 백일 잔치가서 용케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엄마에게 갔는데, 우리 엄마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전혀 모르시는 눈치다. 마지막 치료의 일환으로 전뇌 방사선을 10회 하기로 하였는데 전뇌 방사선 후 항암을 하시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전뇌 방사선을 하는 중에도 보통은 신체 마비가 오고 급히 호스피스로 옮겨지는 것 같은데, 우리 엄마는 그런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계신다.

  파주로 이사가셔서 동네가 너무 좋다면서 희망에 부풀어 오르셨었고,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면서 암도 고치겠다고 하셨는데. 내가 싱크대랑 붙박이장도 새로 해드렸는데 그 싱크대에서 요리 한번 못해보시고 돌아가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내 인생에 이보다 더한 슬픔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아직은 혼자 화장실도 가시고 나한테 싱크대 설치되면 냄비는 제일 오른쪽 밑에 밀폐용기는 왼쪽 위에 넣으라고 하나하나 다 지시해주시는데, 핸드폰으로 물건도 잘사고 한번 가르쳐드리면 용케도 다른 것까지 다 척척해내는 우리 엄마인데 초점 없이 말도 어눌하게 우리 엄마가 아닌 상태로 돌아가시는 그 상황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일요일에 담임 목사님과 면담을 하면서 울기도 참 많이 울고, 어제밤에는 하나님께 이제 먼 미래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딱 오늘 하룻밤만을 위해 기도드린다면서 제발 오늘 하룻밤 우리 엄마 안 아프게 해달라고 울면서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내 기도를 들어주신 걸까. 엄마는 어젯밤은 잠을 깊게 잘 주무셨다고 한다.

  토요일에 엄마한테 임신한 거 같다고 말씀드리니 울면서 좋아하셨는데, 우리 엄마 나 애낳는 거 보기 위해서라도 아마 죽을힘을 다해 암과 싸우시겠지.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보호자가 쓴 블로그 글을 보니 엄마가 암 걸린 뒤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도 뇌전이가 됐다면서 누군가 나한테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하면 멱살 잡고 죽도록 패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더라.

  나 역시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럽고 대체 우리 엄마의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뭘 주시려는지 도저히 알 수없고, 우리 엄마 딱 70살까지만 엄마 살게 해달라는 기도에 전혀 응답을 안 해주셨지만, 내가 하나님 밉다고 막 원망하면 나 대신 엄마를 벌하실까 봐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평이 좋은 호스피스에 전화해서 관련 서류를 다 알아보았다. 방사선 치료 후 엄마가 도저히 견딜 상황이 아니면 바로 옮겨서 고통이라도 덜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