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처녀 시절 회사 생활할 때 엄마처럼 밥도 챙겨 먹이고, 돌봐줬던 큰 이모는 정읍 신태인에 사셔서 통상 신태인 이모라고 한다.
엄마가 도저히 전화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전화기까지 고장나서 답답한 마음에 신태인 이모께서 어젯밤에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이번에는 엄마가 다시 못 일어나실 것 같다고 하니 죽으려나 보다고 하면서 우리 엄마가 시집가기 직전까지 얼굴은 아주 순진하게 생겨가지고 애기 같았는데 시집가선 내내 가난하게 살면서 정신적으로도 고생했다고 말하며 우셨다. 그러면서 복 없이 생기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렇게 불쌍하고 복이 없냐고 하시더라.
엄마는 아빠의 불같은 성격때문에 항상 노심초사하고 아빠의 그 문제적 성격 때문에 아빠가 직장 생활이 불가능해지면서부터는 거의 엄마가 돈을 버셨다. 아빠를 직장에 내보냈다가 또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고, 나도 엄마도 차라리 아빠가 집에 혼자 계시는 게 속이 편했기 때문에 돈 안 버는 아빠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우리 모녀에겐 사고를 안치는 아빠가 돈버는 아빠보다 더 중했으니까.
남동생이 몇년전 엄마한테 전화해서 결혼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엄마 가슴을 찢어놓았는데, 그때부터 우리 엄마는 요양보호사 일을 미친 듯 하셨다. 한 여름에 그 땡볕을 돌아다니면서 노인 집에 가서 똥오줌 치우는 일만 하루 10시간씩. 거기에 막말까지 들어가면서 말이다.
내가 제발 일 그만하라고 해도 엄마는 말을 듣지 않으셨다. 그러다 난소암 진단을 받고 그제서야 엄마는 일을 관뒀다. 나중에 물어보니 남동생 장가갈 때 단돈 천만 원이라도 주고 싶어서 그러셨단다. 하루 10시간씩 죽어라 해도 당시 세후 100만 원 겨우 넘는 돈을 겨우 받았을 뿐이었고 그래서 더더욱 그렇게 애쓰셨던 거다. 몸도 약하면서.
나중에 병에 걸린 뒤론 엄만 하나님께서 일그만하고 쉬라고 병걸리게 한 것 같다고 했는데, 요즘 들어선 평생 우리 엄마 고생시킨 아빠를 벌주기 위해서 엄마를 아프게 한 것 같다. 만약 아빠가 아팠으면 온갖 짜증과 화 다 우리 가족한테 풀었을 거고 그럼 또 나도 엄마도 맘고생을 많이 했겠지.
아빠 친구분중 부인이 교통사고로 즉사하여 몇 년 전부터 혼자 살고 계신 분이 있다. 그분은 부자고 자식들도 다 돈 잘 벌어서 혼자 사는데도 큰 어려움이 없고 오히려 이젠 누군가와 같이 살 자신이 없다고 그러셨단다.
근데 우리 아빠는 모아놓은 재산도 없고 자식이라고는 나랑 남동생인데 둘다 벌이도 시원찮고... 엄마가 아픈 뒤로도 내가 그렇게 제발 고치라고 애걸복걸해도 전혀 못 고친 아빠의 성격, 엄마가 돌아가신다고 고쳐지진 않겠지.
다시 한번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남편이 없었음 엄마가 다 받아주던 아빠 성격 내 차지였으리라.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아빠 때문에 함께 고통받았던 나의 엄마. 나이 들어 아빠 병수발들고 고생하느니 아빠보다 빨리 가시는 게 차라리 나은 걸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이젠 갈 때 가시더라도 제발 고통없이 가게 해달라고 기도해보려고 한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나랑 재밌게 얘기하고 주무시듯 돌아가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