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읽기

일상 2007. 11. 9. 16:21
핸드폰에 45개 전화번호만이 저장되어 있는 나는 솔직히 말해서 너의 진짜 친구가 몇명이냐 묻는다면?
흠.. 하나,둘,셋,넷. 손가락 4개 펴고 4명~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다. 하하핫.
그 네명도 중학교 친구,고등학교 친구, 대학 1학년때 단 몇개월 활동했던 동아리에서 알게 된 친구 하나, 다른 과 수업 듣다 알게 된 친구 하나 란 말이다.
따라서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1:1 로 만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거다.
원래 한 테이블에 4명이상 있으면 정신을 못차리는 나로서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어제는 몸이 좀 아팠는데 그 때문인지 매사에 짜증이 났다.
그나마 일찍 끝났으니까 망정이지 거기에 야근까지 했으면 진짜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거깃다 나 내일도 일하잖아? 아아아아아악.
어제 퇴근길에는 뭔가 위로할만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만나기에는 피곤했고, 결국 마을버스 앞에 있는 파리바게뜨에 들어가 맛있어 보이는 빵을 구입 했다.
그리고선 집에 가서 먹어도 될 빵을 굳이 마을버스에서 손잡이 잡고 서서 먹었다. 그만큼 긴급했달까.
꽤나 큰 베이비슈를 (생크림이 밖으로 빠져나올까봐) 억지로 한 입에 넣고 씹다보니 행복감이 밀려왔다.
이거야 말로 원초적 행복 아니던가.

집에 도착해서는 우울한 나를 위해 또 한가지 행동을 했다.
일요일에 만났던 친구의 편지 읽기.
저번에도 말했지만 친구의 편지는 언제나 나에게 큰 위로를 주기 때문에 받은 즉시 읽기 보다는 힘들때 읽곤 한다.
어제야말로 '잇츠 레터 타임!' 이었단 말이다.

다른 내용들이야 다 개인적 내용들이니 생략하기로 하고, 내 친구가 한 두가지 질문에 답하고 싶다. 나중에 답장으로 쓰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쓰냐면. 생각보다 질문에 답 생각하기가 재밌어서.

첫째 질문은.
너는 니 맘이 제일 약해있던 때를 생각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올라? 아쉬움일까. 어쩜 시간이 더 지나면 쪽팔림 보다 다른 감정이 더 지배적일지도 몰라. 그땐 어떤 생각을 할까.
- 짧게 말하자면 난 아직도 쪽팔림 인 것 같다. 쪽팔림 이전에는 '난 불쌍하고 힘들었어.' 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 이후에는 그 따위 것 가지고 그렇게 내 자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쪽팔려 지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맘을 그렇게 약하고 힘들게 만든 그 사건이 시간 지나고 보니 전혀 힘들지 않았고 별 거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 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이 당당해지려면 힘든 사건에 대하여 자존심에 상처를 전혀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마음속으로부터 떳떳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거 아닐까.
그런데, 더 중요한 건 .. 난 절대 그런 사람이 못된다는 거고, 그런 사람 보면 인간미 없다고 느낀다는 거지. 흐흐흐

둘째 질문은.
15년 후 바라는 모습은 어떤 그림이야?
- 내 친구는 혼자 가고 싶은데로 드라이브 가서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서 트렁크에 책 가득 싣고 오는 것 이란다. 꽤나 멋진 모습이다. 근데 난 또 한 가지 깨달았다. 내가 이제까지 내 나이 마흔을 생각하면 정말 언제나 꼭 옆에는 남편님이 계셨던 거다. 내 자식에 대해서는 생각 안해봤지만, 어찌되었든 불과 5년 후를 생각해도 꼭 내 곁에 남자 한명이 있다는건데. 갑자기 기분 나빠졌다. 왠지 내가 의존적이 된 것 같잖아!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신랑곁에서 어떻게 하면 이쁜짓을 많이 할까 궁리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안하는 건 아니었다.
훗. 이제 연애고 뭐고 아무 생각 없어진 이 마당에 비참하게시리 왠 남자 생각;
15년 후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멋진 것으로 생각하고 싶은데..  원하는 것을 억지로 생각해 낼 순 없는거고.

그런데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생각하고 또 그 모습을 그려보는 것 자체가 나에게 아직 나와 앞으로를 함께할 정해진 남자가 없기 때문 아닐까.
그러니까 내 구미에 맞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지.
뭐.. 솔로의 특권이라면 특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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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호텔 : 여름夏
아사다 지로
문학동네


아사다 지로가 4년간에 걸쳐 발표한 소설.
야쿠자들이 세운 오쿠유모토수국호텔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유티크한 표지 덕분에 지하철에서 저 책을 빼서 읽고 있으면 다들 한번씩은 책 표지를 쳐다봤다.
한때 평론가를 꿈꾸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뭔가에 대한 감상을 전달하는데 서툰 내가 또 어땠다 저쨌다 하는 것 보다는 괜찮았던 구절을 적어 놓는 것이 내 품위를 유지하는 방법일 터.

-상대가 격렬한 하드보일드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알고 보면 그런 놈일수록 젓가락 같은 몸매에 심성도 유약하기 짝이 없는 법이다. 창조의 근원은 변신을 바라는 마음이다. 매사에 꼼꼼하기 짝이 없는 내가 거칠기 짝이 없는 조폭소설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만.

-"아니, 그렇지만, 그들의 논리라는 건 애당초 사회적인 더덕률이 통하지 않아."
  "통해요. 그들이 우리와 뭐 다른 생명체인가요? 당신의 사고방식은 늘 차별적이에요. 공포는 차별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게 아닐까요?"

-"꼭 일 년 동안 자세히 분석하고 정보를 모아서, 이 수국 호텔을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극락 리조트로 만들어줄 사나이를 찾았지. 아니나 다를까, 쓸 만한 인간은 하나도 없더군. 하나같이 그렇고 그런 호텔맨뿐이고, 사람의 정을 끌어모을 만한 사내는 없었던 거야. 그런데, 한 사람을 찾아냈지. 십 년 전에 아카사카 크라운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린 놈. 가는 곳 마다 지배인과 싸우고 한 곳에 일 년도 채 머물지 못하는 방랑 호텔맨. 그런 주제에 손님에게 감사장을 산처럼 받아챙기고, 택배로까지 선물을 받는, 그러나 그 선물이 도착할 즈음에는 그 호텔을 떠나고 없는, 너무나도 멋진 사나이. 어이 하나자와 선악과 힘의 크고 작음은 다른 거야. 늘 자네가 나빴던 건 아니야. 크라운 호텔이 나빴어. "


만약에 이 책을 다 읽는다면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이후로 4권 이상의 시리즈 책을 읽는 건데 지금으로 봐서는 다 읽을 듯 싶다. 결말이 벌써부터 궁금하니까.

혹시 수국이라는 꽃을 아는지 모르겠다. 강원도 산골에서 리얼 컨츄리스럽게 자란 나는 이 수국꽃을 본 기억이 난다. 커서도 종종 봤는데, 지금 서울과 인천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 소설의 배경인 호텔에 수국꽃이 피어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나도 오랜만에 수국을 보고 싶어졌다. 난 보라색 수국을 제일 좋아하는데.

어렸을 때 살던 동네 뒷편에는 메밀꽃 필 무렵에서 나오는 메밀꽃이 지천 이었다. 그 곳에서 찍은 사진도 있는데 메밀꽃 필 무렵을 읽으며 '맞아.. 메밀꽃이 꼭 이렇게 생겼지." 라고 공감할 수 있어서 기뻤다.
또.. 우리가 살던 빌라 화단에 제일 많은 꽃은 맨드라미 였다. 여름에 항상 피어 있는 맨드라미를 보면 이 꽃은 왜 이리 못생겼을까.. 싶다가도 그 꽃을 만져보면 담요같은 감촉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그 꽃을 쓰다듬고 있다가 놀이터로 놀러가곤 했다.
해바라기도 있었는데 해바라기는 우리 동네보단 엄마 아빠와 같이 다니던 교회에 더 많았다. 그 때 찍은 사진을 보면 해바라기보다 훨씬 키 작은 내가 어려야만 입을 수 있는 원피스를 입고 웃고 있다. 생각해보니 내동생 태어난지 한 2주 정도 되었을 때 갓난아기인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배경도 해바라기 였군. 가끔 해바라기 씨를 빼 먹곤 했는데 씨를 빼 먹으면 왠지 해바라기 꽃이 못생겨지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예전에 박완서가 쓴 '두부'라는 책을 읽다가 길을 가다가 옛날 채송화가 너무 이뻐서 캐와서 집 앞 마당에 옮겨 심었다는 내용을 봤다. 그것을 계기로 10년이 넘게 잊고 있었던 채송화 라는 꽃이 생각이 났다. 채송화!!!! 채송화 역시 반팔 입는 때 피는 꽃인데 민들레 처럼 땅에 딱 붙어서 자라기 때문에 소꼽놀이 할 때 많이 애용하던 꽃 이었다.

프리즌 호텔 얘기하다가 왜 꽃 얘기로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저번에 친구가 이번 년도에 책을 이만큼 읽었는데.. 근데 1권에서 4권까지 읽은 시리즈책은 한 권 읽었다고 치냐. 4권 읽었다고 치냐. 라는 말을 주고 받았다. 흠.. 내가 한 권 아냐? 했더니. 친구는 싫어 4권으로 칠래. 했다.
책 얼만큼 읽었다. 통계를 내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냐만.. 나도 친구 따라서 그냥 4권 으로 치기로 했다.

현재 읽는 책은 프리즌 호텔 : 가을秋
여름편보다 훨씬 두껍다.
현재 맘에 드는 캐릭터는 역시 나카조 삼촌. 하지만 더 매력적 캐릭터가 나왔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