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끝1

투병 2021. 2. 5. 14:46

1. 주치의 전화

  6월 중순 피검사로 임신 수치를 확인한 다음날 우리 엄마 주치의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의 뇌척수에서 암세포가 검출되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뇌척수에서 암세포 검출 확인한 그 순간 엄마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었는데, 엄마의 주치의가 40대로 비교적 젊어서 그런지... 차마 우리 가족에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을 못 했던 것 같다. 보통은 뇌척수에서 암세포 검출되면 모든 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로 보내진다. 왜냐면 그 어떤 치료도 뇌척수 전이에는 무효하기 때문에.

  뇌척수는 우리 몸에서 혈액이 흐르지 않는 곳으로 그만큼 특별하고 청정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곳이다. 혈액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혈관으로 주입하는 항암제의 영향이 미치지 않으며 암세포도 보통은 감히 척수까지는 침범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엄마의 암세포는 지독했고, 그 암세포들을 죽이느라 4년동안 쉼 없이 혈액으로 항암제를 때려 넣었더니 암세포들이 항암제 영향을 받지 않는 뇌척수까지 침범했다.

  현재 나온 항암제 중, 뇌척수 전이에 효과있는 항암제는 폐암 항암제인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라는 약이 거의 유일한데, 난소암은 비급여로도 처방이 안된다. 만약 타그리소를 비급여로 처방받을 수 있다고 한들 한 달 약값이 1200만 원 정도니. 우리 집 사정으로는 몇 개월 못 드셨을 것이다.

  근데 그 대단한 타그리소 조차도 언젠간 내성이 생기고 대부분은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치료제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니까, 뇌척수 전이 판정을 받으면 암과의 싸움에서 최종 패배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주치의 변경

  4년간 엄마를 치료한 주치의는 다정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착한 의사였다. 엄마가 실비보험 갖고 있는 것도 알고 있어서, 통원으로 치료해도 될 치료도 우리가 요청하면 입원으로 치료해 줬다. 보통 의사들은 체면 때문인지 노골적으로 실비 있냐고 묻지도 않을뿐더러, 환자가 사정해도 입원 안 시켜준다. 유명 병원의 입원 병상은 항상 부족하므로. (보통 실비 보험의 경우, 통원 보장한도는 약 25만원, 입원 보장한도는 5천만 원이다. 환자가 만약 5백짜리 약 처방이나 치료가 필요할 경우, 통원으로 치료받을 경우, 환자는 나중에 보험사에서 최대 25만 원을 돌려받는다. 하지만 입원할 경우 치료비의 90%인 450만 원을 보험사에서 돌려받을 수 있다. 때문에 비싼 치료를 받는 환자일수록 입원으로 치료받는 게 훨씬 유리하다.)

  주치의는 뇌척수 확진 후 우리 엄마를 포기했지만 예의상인지 아니면 죄책감 때문인지 호스피스 가라는 말 대신 다른 의사에게 엄마를 인계했다. 계속 [연명치료거부동의서] 쓰라고 하시긴 했지만.. 이제와서는 이해 한다. 암만 치료하는 병원인데 엄마 같은 환자를 얼마나 많이 봤을까. 희망이 없단 거 다 아셨겠지.

  그 사이 엄마의 뇌척수에 퍼진 암은 점점 커져서 뇌압은 점점 상승했고, 엄마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쉼없이 이어지는 구토와 시신경 세포가 눌리면서 나타나는 복시 현상 그리고 최악의 두통으로 엄마는 제대로 눈도 뜨지 못했다. 고통이 극심하여 뇌의 신경을 차단하는 시술도 해봤지만 딱 하루 효과가 있었다. 

  그 딱 하루 효과 있던 날, 엄마는 "우리 딸 예쁘네..." 라고 말하며 오랫동안 조용히 날 응시했다.

  나중에 그 모습이 계속 생각나서 화장터에서 엄마의 몸이 불타는 동안 미친 듯 울었다.

  내가 뭐라고 엄마는 그렇게 날 좋아했을까. 참 지나치게 나를 좋아했다. 부족하고 잘난 것도 없는 나에게 엄마는 언제나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난 엄마처럼 애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