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투병 2020. 10. 16. 11:29

  추석 연휴 전날 응급실에 간 우리 엄마는 그 다음날 부터 걷지 못하셨다. 소변이 안나와 응급실에 간 우리 엄마는 소변줄을 달고, 기저귀를 차고 그 이후 쭉 입원 중이다. 추석 연휴 동안 의료진이 없어 방치되어 며칠을 보낸 엄마는 VLP 치료를 72시간동안 하고 그 이후로도 호전이 전혀 없어, 그냥 모든 항암을 종료했다.

  이번주 수요일에 호스피스 상담을 했는데, 엄마가 다른 병원은 가고 싶지 않다고 하여 몇개월이 될지 모를 대기를 해야만 한다. 처음에 뇌척수 주치의가 엄마보고 mtx 가 잘 듣는 편이라면서 100명중 한명 한번 되보자고 격려해주셨다는데 우리 엄마도 결국 100명중 99명이 되어버렸다.

  엊그제 퇴근 후 병원에 갔을 때 아빠가 엄마 기저귀를 갈아주는데 팬티도 입지 않고 악취를 풍기며 축 쳐져 있는 엄마를 보니 눈물도 안나왔다. 엄마는 스마트폰도 사용방법도 조금만 가르쳐주면 응용해서 다른 작업도 곧잘하고 기억력도 좋았다. 그러던 우리 엄마가 하루 아침에 화장실도 혼자 못가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이젠 발음도 제대로 안되서 정말 주의를 기울여야만 엄마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그나마도 대화할 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우리 엄마는 나보고 이제 날씨가 추우니 단단히 입으랜다. 정신은 아직 온전한 우리 엄마. 이대로 쭉 나빠진다면 아마 가족도 못알아보시겠지.

  가끔 집에서 멍하니... 만약 엄마가 안아프고 나이들면 얼마나 재밌고 사랑 넘치는 할머니가 됐을까. 생각하며 빙그레 웃는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컸던 우리 엄마. 내 소원은 이제 엄마가 오래 사시는 게 아니라, 돌아가시기 전까지 안아프고 그냥 주무시듯 천국 가시는 것이다. 우리 이모도 니 명이 그렇게 짧을 줄 몰랐다고 하면서 우셨다는데, 나 역시... 우리 엄만 오래 사실 줄 알았다. 65살도 되기 전에 떠나시다니. 앞으로 첫인상, 내 예감, 느낌 같은 거 하나도 안 믿고 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