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줄

일상 2020. 6. 25. 16:30

  양가 부모님 계신 비교적 화목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17살쯤 되면서부터 어렴풋이 내 인생 뭘하든 남들보단 좀 어렵구나.. 란 생각을 했다. 남들은 큰 어려움없이 해내는 것이 나한테만 너무 어려워서 혹시 나 발달장애 아닌가 의심한 적도 있었다.

  이런 나의 운명이 보통은 피곤했고 불만족스러웠지만, 딱 한가지 좋은 점은 있다. 바로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 나에게 갑자기 어떤 행운이 딱! 하고 일어나서 뭔가가 된다? 이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언제나 최악을 가정하고 준비했고 남들보다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 뭐가 됐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결과는 그닥 좋지 않았던 적이 대부분이지만.

  남편은 언제나 걱정투성이에 최악만 생각하는 나때문에 잘 될것도 안된다고 말하곤 하지만, 글쎄 어떤 일이 잘된 건 내가 최악이 발생한다는 가정하에 준비를 했기 때문에 잘된 것이지 원래 잘될 일은 아니었을거다. 원래 내 운명대로라면 아마 망해도 몇 번은 망했을 일들도 많다.  그래서 별 노력없이 다 잘되는 사람을 보면 샘이나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이 되기도 한다.

  결혼도 남들보다 어렵게 느즈막히 했으니 임신은 좀 쉽게 되지 않을까. 했지만 웬걸. 역시나 난 그럴리 없었다.

  2018년 2월부터 병원에 다니기 시작해서 중간에 복강경 수술 두번에 유산 한번을 겪으며 인공수정 1회, 시험관을 6회나 했다. 너무 실패를 하다보니 6월 중순 6번째 시술이 끝난 뒤에도 이번에도 또 실패겠지. 실패해도 저번처럼 울고불고 난리치지 말자 다짐에 다짐을 또 했는데 이번 이식 후에는 다른 때와 느낌이 좀 달랐다.

  간혹 너무 임신을 하고 싶은 마음에 허구로 증상을 느끼기도 한다길래 기대를 안하려고 무지하게 노력했는데, 결국 못참고 임신반응 피검사를 가기 전에 임신 테스트기를 해봤다. 그런데 두 줄이 나오는거다. 그렇게도 바라던 두 줄. 

  임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에서 시행한 피검사를 했고, 그 결과 수치 300 이상으로 임신 안정권이었다. 막상 1차 피검사가 안정적으로 나오니 2차 피검사 수치가 비정상으로 나오면 자궁외임신일 수 있으니까 흥분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지만, 어제는 너무 기뻐서 남편이랑 끌어안고 맘껏 좋아했다. 요즘 정말로 나쁜 소식만 듣던 나보고 힘내라고 아기가 찾아온 것같다. 아마도 임신 이후도 쉽지 않겠지만, 일단 며칠간은 기쁜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

  부디 다음주 2차 피검사도 잘 나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