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꽃

일상 2019. 12. 6. 15:06

  작년 봄 우리 집 베란다에는 모란꽃이 곱게 피어 있었다. 꽃이 피기만 기대하며 모란 화분을 애지중지하던 우리 엄마는 꽃이 필 무렵 수술을 하게 되었고, 결국 모란꽃이 활짝 피고 질 때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들이 보면 대단하다고 할 만큼 난 많이 울지도 않았고, 쇠약해진 엄마를 매일 같이 마주해도, 씩씩하게 회사도 잘 다녔다. 내가 남들보다 강해서 해야 할 일을 다 해낸 건 아닌 거 같고, 이상하게 난 우리 엄마가 완치될 것만 같았다. 비록 두 번째 수술이지만, 첫 번째 수술에서 미처 못했던 치료를 하는 거라고, 다시 재발한 거 아니라고 나를 계속 다독였다. 그렇게 잘 버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거실에서 멍하니 흰 모란꽃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자기 좀 봐달라고 모란꽃이 드디어 피었는데, 우리 엄마는 저렇게 귀엽고 예쁜 모란꽃 한 번을 못 보고 병원에 내내 누워 계신단 생각에 어찌나 슬프고 원통하든지.

  올해 재발 소식을 들었을 땐 슬프기보단 너무 놀라웠다. 우리 엄마 작년에 항암 했는데? 며칠 전 추석 때만 해도 나랑 동인천까지 같이 걸어가서 휴지통도 사고, 카페도 다녀왔는데? ? 그렇게 건강하고 즐거워 보이던 엄마가 왜 또 수술을 해야 돼? 화도 안 나고 그냥 계속 어처구니없고 황당했다.

  왜? 왜 우리 엄마야? 란 생각만 며칠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마는 또 국립암센터 입원실에 누워 있고, 몸에는 흉수관을 포함하여 피주머니만 열댓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내일은 피주머니 하나라도 제거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게 바로 작년 봄 인데.

  병원에서 많은 환자를 보며 느끼는 세상사의 진리는 우리가 사는 인간 세계에선 상도 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결국 아플 사람은 아프고,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한 사람은 천년만년 건강하게 잘 산다. 착하게 살면 상 받고, 나쁘게 살면 벌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요즘 우리 가족은 마치 문밖에 누군가가 큰 기관총을 들고 문 열라고 문을 쾅쾅쾅쾅 두드리는데 허술한 문에 덜컹거리는 자물쇠 하나 걸어놓고 벌벌 떨고 있는 거 같다. 언제 어느 때라도 문밖의 사람이 총으로 문을 부수고 방으로 들어와 두두두두 미친 듯 총을 갈겨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하늘은 파랗고, 나는 출근을 했고, 병원의 사람들은 여전히 아프다. 너무 잔인하다.

 

P.S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3865

제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말로만 듣던 청와대 국민 청원을 올렸습니다.

글을 보시는 분들은 한번씩만 동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