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2

일상 2019. 5. 7. 15:41

2. 최종 실패

  사무실에서 내 자리는 입구에서 잘 보이지도 않고, 구석진 자리다. 양 옆에 외근 나가고 아무도 없으면 음악 듣고 책 읽고 심지어 울어도 아무도 모르는 자리. 지금 라디오에서 브람스 교향곡 1번이 나와서 들으면서 일하다가 울고 말았다.

  어제 피검사로 임신 수치를 검사하는 날이었는데, 결국 실패 판정을 받았다.

  난 노력해서 잘하는 일도, 노력하지 않아도 잘되는 일도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막말로 남들은 아무 노력도 없이 원치 않는 임신도 잘들 하는데, 나는 그 마저도 이렇게 어렵다.

  동결해놓은 난자가 5개 남았고 그 중 몇 개나 제대로 배양이 될지 모르지만, 일단 다음번까진 과배란 주사 맞을 필요도 없고, 난자 채취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두 번째도 실패한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고 나는 또 지칠 것이다. 몇 개월간 주사로 약으로 호르몬을 마구 때려 넣어 그런지, 생리도 정상이었을 때 같지 않고 이상하다.

  남들은 조바심 갖지 말라는데 그게 쉽지 않다. 대체... 주님의 뜻이 뭘까. 너무 괴롭다.

 

3. 인생의 바닥

  힘들때마다 내 인생이 바닥이었던 때를 생각한다.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을 보면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동굴을 주인공 여자애가 막 헤매며 달리는 꿈이 나온다. 재작년 여름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해결책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고 그저 하루 살아내기 바쁘던 때였다. 그 시절을 생각하며 현재를 버티려고 하면 어느 정도는 버텨진다.

 

4. 인간의 존엄성

  국립암센터에서 엄마 병간호를 하며 인간의 존엄성에 큰 깨달음이 있었다. 인간 존엄성의 핵심은 내 대소변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손발을 쓰지 못하고 산소마스크가 있어야만 호흡이 가능하고,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했다고 해도 내 똥오줌을 나 혼자 처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죽기 전까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킬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다 필요 없다. 내 똥오줌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고 또 똥오줌을 화장실에 가서 처리하는 것조차 모르는 상태가 된 사람은 정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다. 환자의 정신 건강을 보살피려면 남의 도움 필요 없이 용변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최우선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한동안 우리 엄마 대소변을 내가 받으며 든 생각이다. 이 세상의 모든 대소변 수발을 들고 있을 간병인들이 오늘도 지치지 않길 오늘도 기도한다.

 

브람스 교향곡 한곡이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휘갈겨 쓴 요즘 근황 두번째는 이대로 끝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