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근황1

일상 2019. 4. 29. 13:47

  결혼을 하고 결혼 전만큼 우울해지진 않지만, 가끔 회사에서 퇴근할 때 나도 모르게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침울해질 때가 있다. 몇 가지 이야기는 해야만 더 힘을 내서 살 수 있을 거 같아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1. Elsa의 T'en Vas pas

  일기를 쓰느라고 노래 스펠을 찾아봤다. 프랑스어는 전혀 몰라서 그냥 떵파바 라고만 알고 있던 곡을 저번 주 금요일 병원 침대에 누워 라디오로 들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의 대장정이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결과뿐이다. 2월 1일에 병원에 방문해서 나팔관 절제하자는 얘기 듣고 2월 28일에 근종 제거 수술하고 3월 중순부터 과배란 주사 맞고 시간마다 약 먹고 난자 채취도 하고 그다음 마지막인 배아 이식을 지난주 금요일에 했다.

  시험관 아기 하면 여자가 너무 힘들다고만 들었는데, 나는 나팔관 조영술이 불쾌하고 아프고 힘들었지 주사 맞는 거랑 약 먹는 건 힘들지 않았다. 난자 채취할 때 수면 마취하고 깨어났을 때 아랫배가 너무 아팠지만, 그래도 나팔관 조영술보단 안 아팠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쉴 새 없이 열심히 시험관 아이 시술이라는 목표 하나로 달려왔다. 끝나고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지금 막연히 한 번에 성공했으리라 하고 기대만 하는 중이다. 5월 6일이 결과 듣는 날인데, 암 조직 검사했을 때 결과 듣는 것만큼이나 떨리겠지. 설사 실패하더라도 아무렴 암이라는 결과 듣는 것보다 더 슬프진 않을 테니 너무 겁먹지 않으려고 하지만, 지금도 결과들을 생각만 하면 가슴이 쿵쾅거려 일을 못할 정도다.

  과배란 주사로 난자를 30개나 채취했는데 그중 20개 버리고 남은 10개 중 5개를 배양했는데 이식할만한 수준의 배아는 2개밖에 안돼서 2개를 이식했다. 둘 중 하나라도 살면 임신 성공, 둘 다 죽어버리면 임신 실패다. 

  배아 이식할 때는 마취는 안 하고 맨 정신에 수술대에 누웠는데, 아무래도 무자비한 기구가 몸속으로 들어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나중에는 눈감고 그냥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기다렸다. 수술실에 있던 나이 지긋하신 간호사분이 다정하게 대해줘서 감사했다. 아무래도 내가 좀 딱했나 보다.

  모든 시술을 끝내고 10시 반쯤부터 12시까지 텅 빈 병실 침대에 남편과 함께 누워 있는데, 남편은 쿨쿨 잠이 들었고 나는 눈만 깜박깜박하며 어두운 병실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 바로 옆에 누워있는 남편 얼굴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찡해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조용한 가운데 이번에 임신이 성공했을 경우, 실패했을 경우를 떠올리며 별안간 무서워졌다. 사람들은 너무 조바심 내지 말라고 하지만, 어디 그게 쉽나. 복잡한 심경에 잠든 남편을 보는데 라디오에서 학창 시절에 무척 좋아하던 엘자의 노래가 나왔다.

  영화를 보면 어떤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또 그럭저럭 인생을 살아갈 때 엄청나게 크고 충격적인 사건이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난 정반대로 생각한다. 그러니깐 사람의 성격이라고 불릴만한 것이 형성되는 데에는 매일 반복되고 조용한 가운데 남이 보기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지루한 시간이 필요한 거 아닐까. 전혀 특별하지 않은 그 길고 긴 시간이 반복되어야만 큰 슬픔과 충격이 있어도 견디고, 극복할 수 있는 고난의 수준을 한 단계 한 단계 높여가며 또 성숙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에 있어서 제일 필요한 건 기가막힌 사건, 신나는 여행, 대단한 행운 같은 게  아니라 결국 지루한 시간일 것이다.

  음악을 들으며 우리 엄마가 수술 후 지쳐 잠든 모습을 간이용 침대에서 누워서 멍하니 바라보던 재작년 언제처럼 좁은 침대에 남편이랑 같이 누워서 음악을 듣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미래의 나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 위로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다. 제발 이번 한 번에 성공하게 해 주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