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폭발

일상 2015. 6. 16. 23:47

1. 며칠 전 용인 사는 친구에게 야 난 너 없이 못살 것 같다. 고 고백했다. 고등학교 때 전학가서 졸업할 때 까지 유일한 친구였던 걔가 만약 내 인생에 없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자기를 이렇게 사랑하는걸 알면 무서울 지도 모르겠지만, 사랑을 고백하니 별안간 기분이 좋아졌다.

2. 예전에는 알아서 괴로울 진실은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여장을 하는 평소에는 멀쩡한 남편이나 누가봐도 잘난 남자친구이지만 알고보니 과거에 심한 학교 폭력의 가해자 였거나, 나한테 엄청 잘해주는 상사인데 알고 보니 속으론 나를 완전 바보 취급하고 있거나… 뭐 이런, 진실이지만 잔인한 것들은 죽을 때 까지 모르는 게 행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진실이 아무리 잔인하다고 한들 그걸 전혀 모르는 것만큼 잔인하진 않은 것 같다.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고 그 아픔을 넘고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올 때 훨씬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그렇다.
진실이 무척 실망스럽지만 오늘 밤은 꿀잠을 잘 수 있겠지. 뭔지 왜그랬는지 이젠 아니까.

3. 희망하던대로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첫직장 다니면서 하던 실수를 거의 똑같이 하고 있는 사람을 보니 안타까워 미칠 것 같다. 그렇게 살면 전혀 남는 게 전혀 없다고 자꾸 충고를 하는 나를 보며, 그 때 어른들 말이 대부분은 맞는 말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중 이다. 엄청나게 늦었지만.

4. 내 정신건강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건 일기 쓰기다. 이렇게 나의 어두운 면을 말할 곳이 없었다면, 난 정상적인 대한민국 시민으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과 불만이 참 신기한게 이 곳에 쓰는 순간 내 마음과 뇌에서 빠져나간다. 덕분에 이 일기장에는 우울하고 슬프고 불만투성이의 나만 기록되고 있다.
학창시절에는 이 일기장에 있는 내가 진짜고 학교에서 웃고 떠드는 나는 가짜인걸까 고민했다. 일기장에서와 실제가 다르니 가증스러운 것일까 하는 그런 순수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어둡고 우울한 내 모습이 없다면 밝고 상냥한 나도 존재할 수 없는 거니까 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따지는 건 무의미한 것 같다.
일기에 재수없는 나를 기록하고 가둬 놓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5. 내가 운동을 너무 싫어해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발을 다치게 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발이 아파서 뛰지 못하니,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내 체력이 허락하는 데 까지 뛰고 손가락 발가락에도 심장이 달린듯 쿵쾅쿵쾅 온 몸에 열이 난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지금 내 발 상태를 봐서는 완쾌란 없을것 같지만…만약 다시 마음껏 뛰게 된다면 삼라만상이 소중할 것 같고, 누구에게든 관대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