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순간

일상 2008. 3. 13. 15:51
1.
전철을 타고 가는데 창문으로 흐릿하게 내 모습이 보였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앞머리 몇가닥은 묶이질 않아서 이마 옆에 지저분하게 내려와 있고, 중학교 때 샀는데 아직까지도 입는 짙은 회색 코트가 그 날 따라 더욱 우중충해 보였다. 난 이제 다 풀어져 가는 파마때문에 머리는 질끈 묶었고 유행에 뒤떨어진 안경을 끼고 다닌다. 축 쳐진 모습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나를 보니 갑자기 처량했다. 그 상태로 내가 아는 누군가를 만났다면 아마 난 모른 척 하고 도망갔을 거다.

2.
어제는 회사에 일이 있어서 9시쯤에야 퇴근을 했다.
우리회사 건물은 무지하게 낡아서 어쩔 땐 비까지 새는 데 옛날 건물 답게 반투명유리로 작은 창을 열고 닫을 수 있다. 샷시도 옛날 거라 엄청 뻑뻑하지만, 창문이 있는 건 좋다. 예전에 통유리로 된 건물에서 일할 때는 뭐 아무리 천장에 있는 환풍구로 공기 순환을 한다고 해도 공기가 매우 나빠서 머리가 지끈 거렸다. 하지만 지금 건물은 낡긴 했지만 머리 아플 때 창문을 열 수 있어서 좋다.
어제 저녁 8시가 넘어서 무심코 그 작은 창문 밖의 풍경을 봤다. 은행도 있고 사람도 지나다니고 차도 지나다녔다. 멍하니 창밖을 보는데 한순간 바람이 훅 하고 불어들어왔다.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찡해지면서 외로웠다.

아.. 온 몸의 세포들이 느끼고 있다. 분명 봄이 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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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 저번주에는 날 살려두지 않을 작정인양 일이 차고 넘치더니 이번 주는 왜 이리 한가한지 모르겠다. 3일 연속으로 너무 한가하다 보니깐 이젠 점점 불안하다. 꼭 이러다 한순간 확 일이 밀리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