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혼란

일상 2012. 12. 24. 22:10

새로운 회사로 옮긴 뒤로 다이어리도 안 쓰고 블로그도 버려두고 있다. 나는 스무살 때 부터 개인 홈페이지에 일기도 쓰고 다이어리도 정리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모든 게 너무 시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서 남이 시킨 일, 그리고 내가 매일 매일 해야하는 들어온 물건 체크 그리고 공지 또 일일업무보고, 이 모든 걸 마치면 이미 오후 5시거나 그 이상. 그때부터 내가 진득하게 할 일을 할 수 있다. 또 시간이 되어야 전화에서도 해방될 수 있고.

항상 밤 10시나 그보다 더 늦게 집에 들어오다보니 허겁지겁 씻고 누우면 이미 12시반 1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진득하고 고상하게 다이어리 펼쳐놓고 뭘 쓰거나, 노트북 앞에 앉아서 끄적대고 있을 시간이 없다. 더불어 책도 거의 읽지 않고 있다. 주말에는 평일동안 못만난 친구도 만나고 해야할 일 하다보면 또 하루가 다 가고.

요즘 들어 난 예전 회사에서 참 뺀질거리는 직원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좀 한가한 업무 시간에는 어김없이 내 개인적으로 할 일을 하고 친한 친구와 떠들었으니 말이다.

회사에서 친한 친구가 없는 생활에도 어느 정도는 적응을 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까지 선임운은 없었지만 그래도 동료운은 좋은 편이었는데. 지금 회사에서는 그냥 내 할 일만 하기도 벅차서 그런건지 여하튼 개인적 대화없이 할일만 하고 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회사에서 눈치주지 않고 쉴 사람은 쉬라고 해서 쉬었다. 이게 얼마만에 평일의 휴식인지, 밀린 은행 업무를 보러 부평에 갔었다. 산업은행 통장 거래 비밀번호를 5번 틀려서 산업은행 지점이 있는 우리집 앞 동인천역이 아닌 부평까지 갔는데, 산업은행은 사람이 너무 없고 파리가 날려서 빨리 업무를 봤는데, 농협은 내 앞에 대기인원이 26명, 국민은행은 대기인원이 36명.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 상대하고 있는 텔러를 보니 대학교에서 근무할 때 제일 친했던 동생이 시중 은행 텔러로 취직한 게 생각났다. 걔도 이렇게 일하고 있겠구나 싶어서. 국민은행 창구에 있던 어려보이는 텔러에게  직장인 우대 통장으로 교체 신청하는데 그 텔러 아이(?)가 오늘 쉬시는 거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렇다 대답했더니 엄청 부러워 하면서 '오늘 정말 미친듯이 바쁘네요.' 라고 살짝 말을 하는데 그 마음이 짐작이가고도 남았다 나도 대학 졸업하던 해 에는 텔러로 면접을 두번이나 봤는데 (두번 다 떨어졌다) 두번째 봤던 텔러 면접에서는 떨어지고 나서 낙담이 심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정말 은행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예전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가끔 나보고 꼼꼼하다고 해서 난 내가 꼼꼼한 줄 알았는데 새 직장에서 잔실수가 엄청나다. 이게 원래 내 모습인건지, 혼란스러울 만큼. 무식해서 팔다리가 고생하고 있는 형국. 이런 내가 텔러를 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래도 내가 지금 이렇게 잔실수 작렬하고 있는 게 어쩌면 내가 아직 일을 잘 모르니까 그런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위안 삼는다.

이런 추운 날씨에 부지런히 은행을 간 덕분에 이제 농협과 산업은행의 고이율 예금도 가입도 가능해졌고, 월급통장인 국민은행의 이체수수료도 안내게 되었으니 참 보람차다.

 

어제는 친구 만날 겸 마사지도 받을 겸 해서 부평을 또 갔었다. 원래 잘 갔던 명동 마사지샵은 내 활동 반경과 너무 먼 관계로 이제 좀 멀리 해야 할 것 같아서 새로운 마사지샵을 물어물어 갔는데 젠장 26일까지 24시간 예약이 꽉 차있다고 했다. 그래서 또 좀 후졌지만 싸다는 중국 마사지샵을 갔다. 시설이 너무 지저분하고 침대 위에 깔려 있는 수건 색도 불결한 기분이 들어서 반팔에 반바지 입고 마사지사가 들어오길 침대에 누워서 기다리는데 기분이 참 심란했다. 또 날도 추운데 실내가 너무 춥기도 추웠고.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얼굴 예쁜 중국 여자애가 들어왔는데 처음 내 기대치보다 안마가 시원해서 나올 때는 만족스러웠다. 정말 후미진 곳에 있는데도 사람이 끊임없이 오는 걸 보니 신기하기도 했고. 내 주변에는 내가 스포츠 마사지 받았다고 하면 신기해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마사지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다음에는 안 갈 것 같긴 하다. 아무리 마사지가 시원했어도, 너무 지저분했어. 어흑.


Girl from Abu Dhabi.

일상 2012. 11. 21. 00:04

 

 

회사 돈으로 항공 마일리지를 착실하게 쌓아가고 있는 그녀. 내 친구 중 최고의 능력자인 대학 친구 Y를 만났다. 나의 좁디 좁은 인간관계 에서 친밀도 최상위에 위치한 그녀. 출근해서 퇴근까지 나의 메신저 대화 80% 이상을 차지하는 그녀이다.

대학 때 친구의 집은 학교 앞 원룸, 취직 후에는 강남의 한 원룸과 사당의 거실이 있는 원룸 이었고, 작년 부터 올해 여름까지 꼬박 1년 해외 파견 근무를 마치고 온 친구의 집은 이제 방 3칸 짜리 아파트. 친한 친구가 건축가로서 경력을 쌓고 또 그에 맞춰 점점 집이 좋아지는 걸 보니 내 집도 아닌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정말 최고의 능력자 아닌가. 아무리 전세라지만, 부모님 도움 안받고 방3칸 아파트로 가다니!!!

출장에서 입국하는 날 집에 방문하여 친구에게 쪼끔 민폐 끼친 것 같기도 했지만, 교촌치킨 시켜먹고 전기장판 틀고 누워서 TV 만 보는데도 즐거웠다. 친구랑 같이 보니 TV 도 엄청 재밌었어. 평소 안보던 무한도전까지 보고.  

친구가 있었던 아랍에밀레이트는 영화 Sex and the city, Mission Impossible4 에서 나오는 곳이지만, 여행으로 올만한 곳은 아니라고 한다. 화면으로 보기엔 멋있어 보였는데.

P.S 사진은 친구가 준 두바이 자석.


어릴 적 동무

일상 2012. 1. 27. 00:34
대전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 부터 중학교 2학년 까지 정말로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바로 우리 옆집에 살던 sh 였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5층짜리 오래된 저층 아파트의 맨 꼭대기층. 처음에는 서로를 몰랐지만, 옆집 애도 나와 동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sh의 부모님도 장사 때문에 하루종일 집에 안계시고, 우리 엄마 아빠도 각자 직장에서 일하시고 학교에서 돌아와도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시간은 나와 친구의 것이었다. 거기에 바로 옆집에 살았기 때문에 어쩔 때는 학교에서 집에 도착해도 우리집 문을 먼저 두드리기 보다는 친구네 집 문을 먼저 두드려보고 친구가 있나 없나 확인을 할 정도였다. 그건 걔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집에서 우리를 맞아주는 부모님이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에게는 오빠가 있었는데 오빠는 고등학생이라 야자를 해서 나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고, 내 남동생은 나보다 더 시간이 남아도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결국 우리 셋은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남동생 데리고 나오는 것을 꺼려했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sh 는 동생과도 잘 놀아줬다. 아마 바로 옆집에서 내 상황을 다 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차하면 둘이 잠도 같이 자고 특히 방학 때는 눈을 떠서부터 밤에 잠들 때 까지 늦게 일어나서 같이 점심먹고 엄마 아빠 늦으시면 같이 저녁먹고 그 집 부모님이 오실 때 까지 집에서 TV 보고 만화책 보고, 겨울에는 연도 날리고 눈이 오면 눈사람도 만들고 여름에는 자전거도 타고.
우리 둘 사이에는 정말 비밀이라곤 없었는데,  비밀이 없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서로 전혀 다른 학군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전혀 다른 중학교에 다닌다는 것 이었다. 서로에게 학교에서의 얘기를 엄청나게 풀어놔도 소문이 날 염려도 없었고, 우리 둘은 항상 서로의 편을 들어줬으니까 말이다.  
하릴없이 남아도는 시간을 함께 보내준 친구였는데 내가 대전에서 그 아파트를 떠나면서부터, 그리고 그 아파트를 떠나서 아예 다른 지역인 인천으로 오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져버렸다. 내가 쓴 전학간다는 내용의 편지를 읽고는 전화해서 콧물 들이키면서 울어준 친구. 
인천에 와서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학교에 있을 땐 울지 않다가도 집에와서는 잠들기까지 울다가 잠들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학교가서 수업 듣고 또 집에와선 현관문을 열자마자부터 울기 시작하고 그랬다. 그런 우울증세에 시달리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아마 그 친구의 부재였을 것이다. 
예전에는 인터넷도 크게 발달하지 못했고, 고등학생이 아예 다른 지역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여의치 않아 결국은 지금은 모르는 사이처럼 지내고 있는데 페이스북에 알수도 있는 친구에 그 친구 이름이 떠 있다. 그 친구 이름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고 가슴이 먹먹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고 그래서 노트북 앞에서 이러고 있다.
나의 가장 여렸던 사춘기의 정중앙을 관통하면서 함께 보내준 친구를 이렇게 처음 만나는 사람보다도 못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는 것이 서글프다. 만약 내가 계속 대전에 살았다면 아마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냥 페이스북에 "알수도 있는 사람" 이 되어버리다니.
걔는 내가 알 수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이제까지의 인생 전체 시간을 원형 그래프로 만든다면 아마 1위 아니면 2위 정도의 지분을 차지하는 친구인데.
아 이건 예전에 정말 좋아했던 남자가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보다도 더 우울하고 슬픈 일이다.  

난 열심히 살았다.

일상 2012. 1. 25. 21:31
여러가지로 조바심이 나는 요즘이다. 서른이 된지 얼마 안되서 그런건지 꽁무니에 불붙은 거 마냥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안되어 있는 내 모습에 짜증이 나서 혼자 낙담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만 사실 속이 말이 아닌 요즘 친구 문자를 받고 갑자기 울컥했다.


난 게으르고 잘난 것도 없지만, 친구 말대로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하루하루를  채우면서 지내다보면 언젠가는 뭔가가 되어 있을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마음이 뻥 뚫린 것 처럼 공허하고 슬프고 내일이 없었으면 좋겠는 이 기분. 나보다 더 심한 사람들을 보면서 위안을 삼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못할 짓인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어서 못하겠다.
지금 내가 말하는 분들을 비하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몇년 뒤 대학교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우리 엄마에게 문자 보내는 화장품 방문판매원 아줌마처럼 되거나, 식당에서 소일거리를 하거나, 백화점 매대에서 온갖 옷먼지를 다 뒤집어 쓰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게 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상태 아닌가.
더 억울한 건 내가 20대에 방탕하게 산 것도 아니고, 폐인생활을 한 것도 아니라는거다.
아... 이 세상에서 단 한명만이 인정해주는 나름 열심히 산 내 20대도 그냥 훅 지나가버리고, 서른 살이 된 지금 아무런 위안도 성과도 없단 게 억울하고 내 머리를 땅에 묻고 싶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한명이라도 이렇게 말해주니 고마울 뿐이다. 가족들에게 괜찮은 회사 때려친 철없는 딸, 의지할 남자 한명 없어서 깝깝한 느낌이 드는 딸 대접을 받고 있지만, 난 엄마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날 무시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열심히 살았다.
그 점은 좀 알아줬으면 좋겠지만, 아마 그냥 계속 이렇게 살다가 늙기밖에 더하겠나.

부산 고모댁

일상 2012. 1. 17. 23:12
저번주 금요일 밤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워낙 먼 곳이다 보니 갈 기회가 없었는데 정말 큰 맘먹고왕복 KTX 타고 다녀왔다.  화요일 수요일 친구와 파주로 휴가를 다녀왔는데 오히려 몸이 안좋져서 가기 전에는 약간 미열도 나고 목은 말도 못하게 아팠다. 정말 무거운 몸이었는데 다녀오니까 그래도 할도리를 했다는 생각에 홀가분하다. 
밤 12시에 부산역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부산 고모댁으로 가는데 골목에 골목을 지나고, 오르막에 오르막을 올라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서 작고 추운 집으로 들어섰다.
어렸을 때 내동생이 태어나기 전 하나뿐인 귀한 외동딸이었을 때 아가씨였던 고모는 강원도 홍천까지 놀러와서 내 방에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그림도 크게 그려서 붙여주시고, 빨대와 리본을 이용하여 내 미닫이방에 커튼 까지 만들어서 붙여주셨었다. 그림도 잘그리고, 손재주도 좋아서 내가 디게 좋아했는데.. 오실때마다 풍선그림도 그려주고 꽃도 그려주고 하셔서 내 방 벽은 항상 알록달록 예뻤다. 대학 들어갈 때는 목걸이도 사주시고 가족들 만나는 자리에서도 날 그렇게 반가워하고 이뻐해주셨는데 그런 춥고 좁은 곳에서 살고 계신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평소 내가 너무 이모들만 좋아하고 너무 고모에게 신경을 못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도 들었고, 나름 나에게 딸 때문에 느끼는 고민을 털어놓으실 때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기도 해서 앞으로 교회 가면 고모 기도도 하기로 했다. 
재작년 친구네 집 다녀와서 친구의 어머니와 친구의 우울한 얼굴이 생각나서 자려다 말고 일어나서 혼자 엉엉 울었는데, 이번에 고모댁 다녀온 뒤로도 계속 마음이 좋지 않다. 친하고 나에게 맘써 준 사람이 행복해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는 게 생각보다 잔잔하게 계속 괴롭다. 문득문득 그 슬픈 눈동자랑 추운 집이 생각이 나서 말이다. 
친구가 혹은 친척이 넉넉하게 못살고 있는 모습을 봐도 이런 마음인데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마음은 어떨까 싶었다. 아. 나는 정말 어떻게든 잘살고 싶다.  

거절당하는 기분

단문 2011. 8. 22. 10:02

친해지고 싶었는데 상대방이 나를 슬슬 피하는 것 만큼 서러운 일도 없는 것 같다.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거절당하는 기분은 애인되고 싶어서 접근하여 거절당하는 일보다 백만배는 슬프다.아무래도 애인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거절당하는 경우는 흔한 편이니까. (음? 나한테만 흔한가?) 
나이 들수록 거절의 쓴 맛을 알아가고, 거절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까지 친구를 만들고 싶지 않고 그래서 점점 더 주변에는 떠나는 사람만 많아지고 친해지는 사람은 없나보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 말고 정말 친한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나른해지면서 끝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결국 내가 매일 보는 사람도 친한 척 하는 사람일 뿐 진짜 친한 사람은 아니라는 뜻.  
그래서 서른 쯤 되면 애인이 필요한 것일까? 
엊그제 꿈에는 대학교 때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보고, 하루에 3번이상 문자를 주고받던 친구가 나왔다. 어느 순간 부터인가 그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걔가 나를 안보는 여러가지 이유 중 예상되는 합당한 이유가 하나 있긴 있었지만, 나도 더이상 연락하기를 관둬버렸고, 안본지 이제 몇년되었는지 알 수 없는 친구. 
회사 다닐 때도 A4 로 치면 3장이상의 긴 메일을 보내서 위로받언 친구였다. 
꿈속에서 걔와 춘천 남이섬에 가기로 했는데 눈이 엄청왔고, 난 어그부츠를 신고라도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남이섬에 가기로 한 요일이 난 토요일인줄 알았는데 친구는 일요일이라고 말했고, 난 문자로 일요일은 곤란하다고 약속을 취소했다. 왜 이런 꿈을 꾸는 걸까?
이번 휴가를 함께 보낸 친구가 아부다비로 일하러 떠났다. 1년 이상 체류할 것 같다. 아... 그래서 그런지 난 이번 주말 약속 하나 없이 집에서 책상정리랑 가방 정리를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시간이 남아서 풀타임으로 야구를 보고, 영화까지 다운받아서 봤다.

바보같은 안도

일상 2011. 3. 15. 10:10

난 친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쓸쓸함을 느낀다. 난 얘네들과 그렇게 많이 친하지 않은데 간담상조 하는 양 앉아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는게 불편하다. 그렇다고 아예 말을 안하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르는 사람과도 참 말을 잘 하는 편이다. 친해지기도 잘 한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명 정도 이다. 그 이외에는 불편하다.
머리가 큰 다음부터는 정말 친해지는 게 어려운 것일까? 하지만 난 알고 지낸 세월이 친밀도를 결정하는 기준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만나는 사람의 수가 적다는게 문제겠지. 
저번 주에는 회사 때 친했던 동료(?) 들이 놀러왔다. 어찌되었든 서울에서부터 인천까지 와 준건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생각보다 엄청 먼 길이임을 나도 아니까. 동료들은 내가 싫다고 때려친 곳에서 아직도 무사히 일하고 아직도 무사히 돈을 벌고 그리고 또 무사히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반가워서 우렁쌈밥도 먹고 차도 마셨다.
난 견디지 못했는데 걔네들은 잘 견디고 있었다. 알지못할 열등감 같은 게 느껴졌다. 내 처지가 지금 이래서 그런 것 보다도 난 사회 부적응자 인데 얘네들은 이런 사회에서 꿋꿋이 살고 있는 걸 보면서 난 왜 이리 못난나. 하는 생각 때문에.
한때는 내가 좀 특이해서 내가 좀 예민해서 내가 좀 정직해서 내가 좀 유별나서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라 그냥 내가 좀 못난 것 뿐이었다.
그 친구들이 인천까지 온 이유는 날 보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용하다는 사주카페에 가기 위해서 온 것도 있었는데, 뭐 그런데에서 말하는 건 믿을게 못되지만, 어느 정도의 고민 해소 역할은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역술인 말을 다 믿으란 뜻은 아니고, 어쨌든 그 역술인들은 상담 받고 있는 사람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 그렇기 때문에 상황 고려치 않고 단언 하기 쉽지 않은가. 사업을 할까요. 말까요. 해. 하지마. 둘 중 하나로 말해도 그건 그 역술인 탓이 아니니까.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대부분의 고민은 쉽게 맘을 못 정해서인데 자신의 발언에 대하여 전혀 책임질 필요 없는 역술인들은 인생이 걸린 문제에 대해서도 쉽게 결정을 내려줄 수 있다.
블로그를 하면서는 이렇게 합리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사실 난 참 귀가 얇아서 그런데 쫓아가면 나도 안보고는 못 배긴다. (이러면서 엊그제 교회는 또 다녀옴) 나보고는 재수를 왜 안했느냐 부터 시작해서 33살 때 까지는 아무것도 안되는 인생이라는 답이 또 되돌아왔다. 그때는 좀 심각했다가 이틀 밤 자고 일어나니 풋 하고 웃음이 난다. 내가 뭘 얻자고 또 그따위 짓에 돈을 들였나 싶고. 차라리 거기에 만 오천원 내느니 손톱 관리 한번 받는게 오히려 돈이 덜 아까울 뻔 했다.
돈이 조금 아깝긴 하지만 그 역술인 아줌마 때문에 하나 시작한 게 있긴 하다. 어제 태어나서 처음으로 헬쓰를 끊었으니까 말이다. 그 아줌마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겟지만! 나보고 게으르고 집중력 부족에 체력이 부족해서 아무것도 못한댄다. 참내! 100% 그 아줌마 때문에 헬쓰를 하기로 맘 먹은 건 아니고, 정말 요즘 되도 않는 체력으로 여러가지 하려고 하다보니 힘에 부쳐서 좀 건강해지려고 운동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다고 타고난 내 체질이 개선이 될 지는 의문이다. 여하튼 오늘은 가서 런닝 좀 해봐야지.
 (근데 내가 끊은 헬쓰 시립 체육관인데 너무 후져서 사물함도 없다.; 맨날 운동화 츄리닝 들고 다녀야돼. 으흑)

요즘 인터넷으로 수업 들으면서 교과서에서 본 말 중에 과거 때문에 현재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현재가 불행하기 때문에 과거도 불행한 거라는 말이 자꾸 기억에 남는다. 요즘 나를 보면 딱 그렇다. 과거가 날 결정한 게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불행하게 계속 강요하는 느낌이다. 너무 비관적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겠지.


잊은 사람도 많겠지만 1월 29일 30일은 2011년 들어 최저 온도였다. 영하 18도였나? 친구와 이미 호텔 예약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날 남이섬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다녀와서 저번 주말에 남이섬 다녀왔다고 하니 모든 사람이 놀랐다. 그 추울 때 다녀왔냐면서.
나름 핫팩도 붙이고, 오리털로 무장했지만 추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추워서 더 기억에 남는다. 그 친구와 난 큐슈 갔을 땐 정말 너무 더워서 문제였고 이번에는 너무 추워서 문제고.

어그부츠 안에 발에다 붙이는 용 핫팩을 붙이고 등에도 붙이고 했지만, 추위를 막는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친구와 나는 근성으로 남이섬을 구경했다. 나중에 봄에 바깥에 나와앉아도 안 추울때 오면 더 좋을 것 같다.
춘천가는 기차는 결국 못타보고 나와 친구는 춘천가는 전철을 탔는데 엄청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 처럼 춘천으로 놀러가는 것으로 보이는 젊은 무리들이 많았다. 친구가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맡아 준 덕분에 편히 앉아서 갔다.
어렸을 때 원주에 살 때 엄마아빠가 바람 좀 쐬려고 맘 먹으면 종종 춘천으로 갔었다는데, 난 전혀 기억이 없다. 우리 부모님 말로는 우리집은 강원도를 벗어나면서 부터 고난의 시작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강원도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는데도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정관루" 라는 호텔인데 하룻밤에 9만9천원으로 둘이 나눠 낸다면 별 부담 없는 가격이다. 처음에 방 안에 TV 인터넷이 전혀 안된다는 말을 듣고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친구와 나는 과자먹고 라디오 들으면서 자기 직전까지 열심히 떠들었다. 혹시나 하여 핸드폰에 영화도 넣어갔는데 전혀 못보고 왔다. (밤에 먹으려고 컵라면 까지 사갔지만, 과자 때문에 먹지도 못함)
다음날 아침에 배를 타고 나오기까지 못본 곳을 더 둘러보고, 차도 마시고 했는데 그때 들어간 찻집이 정말로 불친절했다. 흐흐흐
기념품 사는 걸 좋아하는 나는 남이섬 가서도 또 하나를 샀다.


 연꽃잎 받침이 맘에 들어서 구입한 잔인데 꽤 비쌌다. (2만원 넘었나 만원 넘었나 기억이 안나네) 저기 있는 수저는 강원도에서부터 썼던 거로 아마 한 27년 정도 됐을 걸로 예상된다.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저 수저로 밥을 먹고 포스트를 우유에 말아 먹고 지금은 유자차를 타 먹는다. 막상 보면 머그컵을 훨씬 많이 사용하고, 저런 컵은 사용할 일도 별로 없다. 저 기념품 잔도 사와서 한 2주 동안은 맨날 쓰다가 이제는 또 별로 사용안한다.



연애 공감대

일상 2011. 1. 11. 10:21
저번 주 목요일에는 퇴근하고 주안에서 용산까지 갔다. 전 회사에서 친했던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회사에서 친해진 친구니만큼 회사를 떠난 이 시점에도 서로 할 말이 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할말은 또 있더라. 그 얘기 대부분이 회사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였지만.
내가 회사를 관둔 건 작년 4월. 회사 친구를 만나니 내일부터 다시 충무로로 출근해야할 것 같고 그랬다. 요즘에는 8시 20분에 집에서 나와서 9시면 회사 도착하는데 그때는 6시 50분에 나와서 8시 25분쯤 회사 도착하는 생활을 했으니... 어떻게 했나 싶고. 근데 또 흔히들 말하는 이름난 회사들은 다 8시까지 출근이긴 하더라만.
내방이 너무 춥다보니 요즘같이 추운 날씨에는 새벽에 종종 깨는데 오늘 일어나 핸드폰 시계를 보니 5시 55분이었다. 예전 같으면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었다. 근데 5시 55분이어도 난 한시간이나 더 잘 수 있다니! 하면서 행복하려다가 다시 우울해졌다. 나는 왜 노동에 적응하지 못하는가. 어디가 좀 모자란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침 뉴스에 교통상황 알려주는 경찰 아저씨가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난 그게 안된다. 난 그냥 일어나서 아무 걱정 안하고 놀고 먹고 싶다. 그런 사람들 보면 부러워 죽을 지경.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회사에서 친해진 친구는 더 넓은세계(?)에서 만난 친구 답게 이제까지 내가 알던 친구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걔랑 나랑 어떻게 친해질 수 있었나 싶은데, 나는 충무로로 회사 다닐 때는 정말 남부끄러울 정도로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는 여자였다. 의욕도 안생기고, 내가 정말 꽃다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라는 걸 알면서도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엄두가 안났다. 내가 그런데 집착하는 성격이었다면 5시에 일어나서라도 꾸미고 다녔겠지만 그런 성격도 아니고 필요성도 못 느꼈고.
회사에서 만난 그 친구는 잘 꾸미고 다니고 주변에 남자친구들도 많고 예쁘고 키도 크다. 친해지면서 이런 류의 아이들에게서 느꼈던 약간의 거부감이 많이 완화되었다. 그리고 되려 저런 애들이 나랑 친하게 지내려고 할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친하게 지냈고.
내가 회사를 떠날 때 눈물까지 흘려줬으니 고마운 마음도 있고.

전 회사 팀에는 83년생이 나 포함 3명 있었는데, 들어온 순서가 나 1등 그다음 목요일에 만난 친구, 그 다음이 H 였다. 그 H도 아마 학교나 다른데서 만나면 어머 뭐 저런애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막가파 성격이었는데, 알고보니 리얼 재벌집 딸이었다. 정말 TV 에서 말로만 듣던 명품 구경도 많이 했고. H는 그래도 뒤에서 까고 앞뒤 다른 면은 없고 그래서 처음에는 뭐 저런 미친년이 다 있나 싶었다가 약간의 호감이 생겼는데 목요일에 만난 친구와 그 친구가 어느 새 절친이 되어 있었다. 여고생도 아닌데 내 친구가 다른 친구랑 더 친해졌다니 하면서 까닭모를 허전함이 느껴졌다. 목요일에도 만나고 있는데 그 H한테서 전화가 왔다.
생각해보면 회사 다닐 때도 그 친구가 전화를 하면 난 참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던 거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대화 내용의 대부분이 남자와의 연애와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듣는 것도 한계가 있지 나중에는 약간 짜증이 난 적도 있었다. 나와 친한 애들하고 전화할 때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고 그런 상황에서 난 뭐라고 얘기해야 하는지도 전혀 모르니까.
목요일에 다시 들어보니 그 둘을 엮어준 건 역시나 "남자" 였다. 내가 "남자" 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는 경험담 제로인 그냥 이랬음 저랬음 좋겠다는 내용이 전부인데, 아마 그 둘은 더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하는 걸 수도 있고. H가 나랑 친구랑 친한거 보면서 많이 부러워 했는데 결국 친구되고싶어하는 목표도 달성했네 싶었다.

친구들 중에서도 정말 만나면 너무 맘이 편해서 안경끼고 다 늘어난 츄리닝 입어도 편한 친구가 있고, 얘가 날 쪽팔려 할까봐 치마에 화장 좀 해줘야 할 것 같은 친구가 있고 그렇다. 나이대에 따라서 친구의 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저번 목요일에 난 너무 추워서 남색 오리털 잠바를 입고 나갔는데 또 마음속으로 내심 이 겉모습으로 만나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친구긴 친구인데 역시 난 걔랑은 완전 친한 친구는 아닌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하니 좀 씁쓸했다. 재미있게 놀았는데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알고 지내는 친구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지만, 새로 알고 지낸 사람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도 자주 한다. 나이 29살 되서 애인 만날 생각은 않고.

아 근데 나랑 친한 친구들하고도 연애 공감대가 있긴 있구나. 연애경험이 거의 없다는 공감대. 흐흐흐.

이틀 째 그지같은 꿈

일상 2010. 12. 8. 10:43
엊그제 꿈에는 아주 그냥 똥이 가득 나왔다. 꿈이 내내 똥이었다. 이런거 꾸면 복권 사야 하는건가? 저번에 로또 사서 5만원짜리 당첨됐는데 바꾸는 거 까먹어서 못 바꿨었는데. 보통 사람들이 로또를 하면 기계가 찍어주는 걸로 하는지 아니면 다 자기가 찍는지 궁금하다. 난 그냥 필 가는대로 찍는다. 작년 이맘 때쯤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회사 후배랑 열심히 로또 하러 다녔는데. 다시 해볼까?
오늘 꿈도 정말 황당했다. 오늘 꿈은 한 5층 짜리 건물 전체가 '남녀혼탕' 이고 내가 그 남녀혼탕을 이름도 가물가물한 대학교 1학년 때 알던 남자애랑 같이 가는 꿈이었다. 으아!!! 이건 도대체 무슨 꿈인걸까? 난 꿈속에서도 이게 꿈인걸 알고 흠... 옷을 다 벗는 꿈은 구설수에 시달리는 꿈이라는데. 라는 생각을 하다가 깼다.
일요일부터 밤에 머리를 감고 자는데 10분 정도 더 자는게 그렇게 꿀 맛일 수 없다. 그런데 워낙 지성 모발이라 도저히 이 넘쳐나는 기름을 주체가 불가능하여 다시 아침에 머리 감아야 할 것 같다. 아 머리 감는데도 30분이나 걸리는데 어쩔 수 없지. 

저번 포스팅을 하고 나서 난 외출을 딱 두번했다.
(여기까지는 11/30에 쓴 내용)

첫번째는 친구랑 등축제에 다녀왔고, 두번째는 차 샀다는 대학 선배 오빠 보러 송도에 갔었다. 송도에 다시 또 가서 느낀 것이지만, 거기는 진짜 한 30년 지나면 본전 뽑으려나? 저번에 김연아가 투자했다가 완전 손해봤다고 나왔지만, 정말 유령도시다. 아무것도 없어.
아파트만 정말 많은데 그 많은 아파트 안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다.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난 친구가 딱 6명인데, 송도에서 만난 오빠도 그 6명 중 하나다. 23살 때는 날 좋다고 했던 분인데 지금은 다른 여자 잘 사귀고 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지금 좀 애매한 관계가 계속 되고 있다. 여자친구한테는 결혼식 간다고 거짓말 하고 날 만나러 왔다고 하니까 뭐 내가 좀 죄짓는 느낌이고 이상했다. 7년 동안 니곁을 맴돌았는데 왜 난 안되는거냐고 물어보질 않나... 그렇다고 이젠 완전 안녕 하자 하기에는 내가 친구가 너무 없기도 하고 아쉽고 그렇다.
양심이 좀 없는 거 같아서 (물론 그 상황이 내가 의도한 상황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만나볼까? 하는 생각을 해도 결론은 아니다.(그 오빠가 여자친구 없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음) 어떻게 보면 미래 보장인데 난 왜 이럴까? 나중에 피눈물 흘리려나.

그리고 오늘은 벌써 12월. 내년이면 29살이구나. 원래는 저기까지 백만년만에 포스팅 하려고 했는데 이번 주말에 한 소개팅 얘기도 간단히 써야겠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막 소개팅을 많이 한 건 아지만, 그래도 한 대여섯번 했는데 나중에 아 좀 아깝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착한 사람이었던 거 같아서 이번에는 정말 착한 사람 나오면 오픈마인드 하자 하고 나갔다. 워낙 갑작스럽게 잡힌 소개팅이었는데 인사동에서 만두전골 먹고, 오설록 들어갔는데 얘기하다보니 좀 선한 마음이 느껴지는 거 같아서 이번 주 토요일에도 보기로 했다.
처음 핸드폰 번호 말해주는데 우리집 전화 뒷자리번호랑 같아서 조금 신기했다. 오설록 들어갔을 때는 약간 에피스드가 있었다. 한참 얘기하고 있는데, 깊은 산속에서 살꺼 같은 초록색에 검정 점박이 벌레가 툭 하고 떨어진 것이다. 다 마신 찻잔에. 난 생각보다 벌레를 그렇게 안 싫어해서 무덤덤하니 있었는데, 이 벌레가 날개를 푸드덕 거리면서 나한테 다가오는 것 만은 꺼려져서 바닥에 떨어진 벌레를 휴지로 싸서 죽여버리거나, 발로 밟아야겠다 말하면서 행동을 취하려고 하는데, 그 소개팅 한 분이 저기 멀리 가니까 그냥 두자고 해서 안 죽였다. 별 거 아닌데 그 사건 때문에 묘하게 호감이 생겼다.
한번 봐서 모르겠지만 약간 쑥맥이신 거 같은데, 이번엔 정말 3번이상 만나봐야지.(이런 맘 먹은게 근 8년만에 처음이다)

저번 목요일에는 회식하다가 그 주변 사는 친구가 "고맙게도" 전화해서 불러내줘서 친구본다는 핑계로 중간에 빠졌는데 친구가 내 앞에서 우울하다고 조금 울었다. 어떻게 해소할 수 없는 종류의 우울함이었기 때문에 크게 도움은 안됐지만, 그때 얘기하다가 나 남자를 좋아하는 세포가 3년전에 그 쫓아다녔던 사람이랑 제대로 안되면서 펑 하고 다 사라졌거나, 아직도 그 남자를 좋아하는 거 같다고 고백(?) 했는데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부디 제발 내가 말한 것이 진짜가 아니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