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싫다. 1.

단문 2020. 6. 24. 09:14

'선한 영향력' 이라는 말이 죽도록 싫다.

사람한테 '단단한' 형용사를 붙이는 것이 죽도록 싫다.

'힘내'라는 말이 죽도록 싫다.

자동차 뒤에 붙은 스티커가 죽도록 싫다.

시어머니를 '엄마'로 부르는 사람들이 죽도록 싫다. 

'ㅇㅇ' 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죽도록 싫다.

'번식탈락' 이라고 비아냥 거리는 여자들이 죽도록 싫다.

'무플절망' 이라고 써 있는 글이 죽도록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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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 2020. 2. 12. 17:16

종료

단문 2019. 11. 13. 14:35

  내 생애 첫 임신이 실패로 종료되었다.

  수술 말고 약물 배출해주는 곳으로 가느라 강남의 큰 병원에서 1박 2일 입원했고 극심한 생리통의 두배쯤 되는 통증을 몇시간 견디니 문제의 물질이 내 몸에서 나왔다.

  어제 밤에 누워서 생각해보니, 20대 때는 내가 남보다 뛰어난 점이 더 많다고 생각을 했고 어느 정도는 타인을 무시한 적도 많았다.

  반성하며 겸손하게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나대지말고 조용히 살기로 했다.


주님

단문 2019. 11. 5. 16:51

  주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주님은 나와 엄마한테 큰 애정과 관심이 없을 뿐.

  애타게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하지만, 정말 모두의 주님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나에 대해 모든 걸 다 아는 분이라면, 내가 요즘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불쌍하니까 설령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해도 소원 하나쯤 들어주셔야 하는 거 아닐까. 

  의심해본 적 없고, 언제나 믿고 있다. 하지만 주님은 아무 응답이 없다.

  내가 바보 천치라서 못 알아듣고 있으면, 내 수준에 맞게 답을 주시면 될 텐데.


포기해야 하는 날

단문 2019. 10. 30. 15:59

  엄마가 9월 30일에 입원 후 10월 2일에 수술하고 22일에 퇴원하셨다. 저번 수술 입원 기간보다는 짧게 입원하셨지만, 후유증은 비교가 안된다.

  저번 주말에 2주만에 엄마를 보러 갔다왔는데, 이제까지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니었다. 간신히 걷고 웃지 않고 10kg 넘게 빠지고 얼굴에는 주름이 늘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엄마 모습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엄마한테 기쁜 소식 전해주면 항암 하면서 더 힘이 나지 않을까 싶어 엄마에게 비밀로 하고 시험관 시술을 했다. 공교롭게도 엄마 수술하는 날 이식을 해야 한다고 해서 엄마 수술하는데 손한번 못잡아 주고 혼자 난임병원에 누워서 이식을 했다. 벌써 네번째 이식.

  남들은 짧은 시간 내 끝나서 조금 불편하고 괜찮았다고 하지만, 나는 질경을 넣고 깊숙이 관을 넣어서 배아를 이식하는 그 과정에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더라. 눈을 감고 누워서 하나님께 기도 했다. 이겨내게 해주세요. 이번이 끝이길 해주세요.

  이식이 끝나고 회복실에 누워 있는데 처음으로 시험관 시술하면서 울었다. 주님 우리 엄마도 살려주고, 제 배아도 살려주세요. 라고 기도했다. 엄마 수술날 이식날이 잡힌 것도 이상하게 운명 같았다.

  처음으로 1차 피검사 때 남들보다 낮긴 했지만 임신 수치를 듣고, 2차 피검사도 통과하고 이제 정말 임신해서 엄마가 조금이라도 기운날 소식을 전할 수 있나 싶었는데, 저번 토요일 확인해보니 의사가 정상임신이 아니라고 한다. 다행히 자궁외임신은 아니지만 일주일만 더 지켜보고 아마도 소파 수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비정상 임신된 배아가 알아서 혼자 죽길 바라면서 며칠째 밥도 잘 안먹고 영양제도 일체 먹지 않고 있다.

  돈 만원 쓰는데도 벌벌 거리는 우리 엄마가 너무 힘들다고 요양병원을 좀 알아보라고 해서 회사에서 요양병원을 검색하고 전화해서 상담을 받았다. 좋다고 하는 곳은 일주일에 100만원 정도. 우리 형편에 어림도 없다. 누군가의 죽을듯한 고통이 어떤 이에게는 손쉬운 돈벌이가 된다는 생각에 못내 씁쓸하다. 요양병원 사람들은 대한민국에 말기암환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점이나 미신을 맹신하는 친구가 있는데, 자기 같으면 벌써 점집가서 상담을 받았을 거랜다. 이런 얘기를 옆에 부장님과 하다가 곽과장도 언젠간 그만 해야겠단 생각 들 때가 있을텐데 그럴 때 점집 가면 결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하신다. 언젠가 그만둬야 한다니.. 끝내 실패하고 그만둘 때를 모색하게 될 거란 말 같아서 갑자기 우울해졌다.

  우리 엄마도 언젠간 의료진이 이제 그만 치료하자고 할 때가 올 것 같아서 두렵다. 두번째 수술 후에는 이번 항암만 끝나면 엄마가 다시 건강해져서 70 살 넘게 사실 수 있다는 확신 같은게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원이 아주 소박해졌다. 1년 내 재발하면 도저히 엄마 몸이 못 버틸 것 같으니 재발 하더라도 2년 후에 재발하셨으면 한다.

  2016.08 발병 - 2018.04 두번째 발병 - 2019.09 세번째 발병

  단 한번도 2년 넘게 유지된 적이 없다. 1년 9개월, 1년 6개월, 이 다음에는 얼마만에 암이 살아날까?

  엄마도 아이도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딱 그 반대가 될 것 같다. 동서는 내년 3월에 아기 낳는다는데, 남들은 친정 엄마도 건강하고 임신도 그냥 기다리다보면 알아서 잘되고 임신 후에 주수에 맞게 아기도 잘 자라든데 난 엄마도 아프고, 임신도 비정상이다.

  내가 이렇게 복없는 년일 줄 누가 알았겠나.  어쩜 이렇게 기쁜 일이 단 한가지도 생기지 않을까. 

  그나마 남편이 옆에 있어 제 정신 유지하고 산다.

 


Unlucky

2019. 9. 2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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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소원

단문 2019. 8. 29. 09:55

  결혼 후 첫 남편의 생일이었다. 생일이지만 야근을 하고 9시쯤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편의점에서 미역국을 사서 스팸과 함께 저녁을 차려줬다. 나처럼 요리를 못해도 그럭저럭 집밥을 먹고 산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둘다 케이크를 안 좋아해서 작은 미니 케이크를 사서, 숫자 초를 꽂고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초를 끄기 전에 소원을 빌라고 했더니 남편이 눈을 감고 진지하게 소원을 빌었다. 몇 초면 끝날 줄 알았는데, 꽤 오래 소원을 빈다. 눈감고 소원을 빌고 있는 남편을 보니 마음이 찡해졌다.

  아마도, 나와 똑같은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내일 드디어 수술을 한다. 아무리 별 거아니라고 해도 떨리고, 이틀이나 집을 비우며 머리도 못 감을 생각을 하니 싫다. 잘 끝나고 9월 4차 시험관 시술도 무사히 받을 수 있길.


세번째 이식

단문 2019. 7. 24. 15:25

  동결한 배아가 하나도 안남아 7월부터 다시 주사 맞고 난자 채취를 준비했다. 초음파로 난소를 봤을 땐 난자가 15개 정도 채취될 것 같다고 했는데 막상 채취날 채취해보니 38개가 나왔다.

  수술이든 난자채취든 시작 전에 소독을 하는데, 그게 그렇게 소름이 끼치고 기분 나쁘고 아프고 무섭다. 난 그냥 빨리 수면 마취를 해서 일련의 과정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꼭 소독까지 끝난 후 수면마취를 하더라. 힘을 주지 말라는데 어떻게 힘을 안주나. 이 사람들아!!

  옮긴 병원에서는 주사도 조금 다르게 쓰고 먹는 약도 있었고, 배양도 보통 3일 하는데 이번에는 5일 배양한 배아를 이식하기로 했다. 3일 배양보다 5일 배양이 훨씬 확률이 높다고 해서 기대를 안하려고 하는데도 자꾸 기대가 된다.

  내일 이식날인데 벌써 떨리고 이번에 피검사 결과까지 어찌 기다리나 싶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서 그런지, 회사에서도 자꾸 실수하고 자괴감에 시달린다.


  2차로 이식한 배아 3개도 내 자궁 안에서 다 죽어버리고, 다시 난자 채취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찌나 우울했는지 모른다. 난자 채취를 해야 하는 건 별로 우울하지 않았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2019년도 상반기가 끝났다는 생각을 하니 조바심이 났다. 회사 휴가를 계속 내는 것도 눈치보이고, 이러저러하다가 한 달을 푹 쉬고 새벽진료가 있는 난임을 전문으로 하는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 옮긴 뒤론 연차 한번도 안내고 6시에 일어나서 출근 전에 병원 진료 보고 출근하는데 약간 피곤해도 맘은 편하다.

  2월 수술 후 시험관 하는 동안 지금까지 살이 엄청나게 쪘다. 20대까지는 쭉 마른 편으로 살았고 30대 때도 남들은 마른 줄 아는 평균 몸무게로 살았는데, 지금은 50kg 를 훌쩍 넘어 55kg 를 향해 가고 있다. 난 임신을 안했는데 왜 몸무게만 임신 몸무게인지 아시는 분.

  살이 이렇게 급격하게 늘어난 건 매일 맞는 주사 때문은 아닌 거 같고, 결혼하기 전엔 영양제고 비타민이고 아무것도 안 챙겨먹다가 혹시라도 도움될까 싶어 몸에 좋단 온갖 영양제를 먹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결혼 전엔 저녁도 거의 먹는둥 마는둥 했는데 결혼 후에는 신랑 밥 챙겨주면서 나도 같이 앉아서 먹게 되는 것도 있고. 또 카페인이 착상에 방해한다는 걸 어디서 본 후로 커피 대신 우유가 들어간 음료를 마신 것도 한 몫한 것 같다. 그냥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먹고 어제부터 과자는 전혀 안 먹기로 했다.

  안그래도 우울한데 옷도 하나도 안맞고 통통해진 하체를 보자니 더 우울해져서 어제는 군포시청에서 해주는 공원 에어로빅 교실에 가서 1시간동안 열심히 흔들었다. 경박한 노래 때문에 그렇게도 혐오하던 에어로빅을 내가 그렇게 열심히 할 줄이야.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드니 그냥 아무말 안하고 걷는 것보다 훨씬 재밌고 시간도 잘 가서, 여름동안 열심히 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한다고 뭐 살은 안빠질 것 같지만.

  어제 병원가서 원래 맞던 주사에 과배란 하는 주사와 엄청 비싼데 구역질 나는 약을 더 받아왔다. 생리양도 시험관 전보다 훨씬 줄고 살도 찌고 내 몸도 폭삭 늙어버렸다. 이런 몸으로 임신하고 출산하고 애는 키울 수 있으려나.


동결배아 2차

단문 2019. 5. 27. 08:46
  얼려놓은 수정란이 있어 바로 2차 동결배아이식을 했다. 불쾌한 배아이식 과정을 견딘 후  회복실에 누워있다가 의사와 상담을 했다. 이식한 배아의 배양 상태가 그닥 좋지 않다는 말에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렇다고 아예 죽은 배아는 아니라 혹시 모르니 이식을 했다는데, 상태가 좋은 배아를 이식해도 성공하기 힘든데 불량인 배아를 이식했으니 아무래도 이번에도 틀려먹은 것 같다.
  지난 2월 자궁근종 수술을 하면서 염증이 있다는 난관을 절제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자궁이나 난관에 있는 염증이 착상을 방해하기도 한다니까 괜히 후회가 된다.
  토요일에 남편이 결혼식에 간 사이 엄마가 집에 와서 밥도 차려주고 과일도 깍아주셨다. 등산을 갔다가 저녁쯤 아빠가 엄마를 데리러 오셨는데 술마시고 오셔선 술주정을 했다. 아직 사위랑 친하지도 않아서 설마 취해오실까 했는데 취하셔선 똑같은 말만 큰소리로 계속 반복하셔서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
  술주정은 딱질색인 남편은 방에 들어가 안나오고 난 나중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이해해 달라고 했지만 좀 서운했다. 휴. 우리 아빤 왜 그 나이되셔도 뭐든 못 참을까.
  내가 자기들이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하는 말 중 최고 싫어했던 말 중 '번식탈락' 이라는 말이 있다. 못생기고 가부장적인 남자는 여자를 찾지 못해 후손을 못 만든단 말인데, 이제까진 여자를 번식의 도구로만 지칭하는 것 같아 들을때마다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 번식탈락자가 될 수도 있단 생각에 기분이 나쁘다.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