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봄이 왔으면..

일상 2016. 2. 21. 21:35

1. 연휴 후

연휴가 끝나고 목금만 일하고 또 주말에 쉬고 저번 주에도 병원 때문에 목요일에 휴가를 내서 4일만 일했다. 연휴 후 일주일을 풀로 일하는게 다음주가 최초인데 벌써 몸이 배배 꼬이고 우울하다.

노동은 인간으로 태어난 형벌 같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다음 주에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외근가고 아마 저녁도 먹고 들어와야 할 것 같다. 외근이 싫다기 보단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게 싫다.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하는 게 생각보다 많이 고되다. 날이 갈수록 더 힘들어 진다. 3월에 할부금 갚으면 인삼이라도 사먹을 작정이다.

 

2. 떠나는 자와 오는 자

회사에 정말 대책없는 또라이가 한 명 있다. 정말 그런 인간은 처음 봤다. 결국 그 사람으로 인해 한 사람이 사표를 냈다. 나도 참 이기적 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사표를 쓴 사람이 그 또라이로 인해 받은 상처보다 그 사람이 그만 둘 경우 나에게 올 피해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더라. 나도 대책없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사표를 쓴 사람이 맡고 있던 업무 중 가장 큰 업무 하나가 나한테 올 것 같다. 다음주 두번의 외근도 새로 맡게 될 업무 때문에 가는거다. 떠나야할 사람은 그 또라이 인데... 그 사람 때문에 관둔 사람이 벌써 이번이 세번째라고 하던데, 이럴 때마다 정말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어떻게 된 게 어느 직장에 가도 쓰레기 같은 사람이 한명씩 있고 그 쓰레기들은 잘만 사는지..

그나저나 나는 쥐꼬리만한 월급에 너무 다양하고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월급을 안 올려주면 정말 우울할 것 같아서, 종종 구직 사이트를 구경하는데, 볼 때마다 다시 정신이 번쩍 든다. 나같은 사람을 받아줄 회사가 거의 없다.

인턴 한명이 새로 들어왔다. 동생과 동갑인데, 저번 금요일에는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워크샵에 휴가 등등으로 자리를 비워 걔와 나 둘이 덩그라니 둘이서 사무실을 지켰다. 성격이 꽤 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위에 말한 또라이한테 호락호락 당할 성격은 아니라 다행이다.

걔와 2호선 전철까지 같이 나란히 앉아서 오는데, 어색해 죽는 줄 알았다. 걔가 여자였다면 좋았을텐데.. 또래 여자는 뽑을 생각이 전혀 없어보인다.  

 

3. 회피

문제를 회피하면 그 보다 더 큰 문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진리인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항상 그랬다.

 

4. 친구네 집

용인 친구네 집에 갔다. 오랜만에 운전을 오래 했고, 이번에도 역시 용인 시내 들어와서 이상한 길로 잘못 들어 고생했다. 친구와 치킨을 먹고 낮잠을 한 숨 잤더니 밤 7시가 넘었다. 친구가 피곤했는지 치킨을 다 먹고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새해 되서 처음 봤고, 언제나 하는 이야기는 비슷한데 언제나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 친구가 없으면 대체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까 싶다.

 

5. 자유공원

2016년 들어 처음으로 자유공원에 갔다. 사람이 별로 없었고, 아픈 뒤 처음이라 그런지 올라가는 데 예전보다 훨씬 힘이 들었다. 미세먼지 없는 파란하늘을 바라보며, 내일 회의와 업무에 대해 좋게 생각해보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오늘 근 한달만에 교회에 갔는데, 담임 목사님께서 은퇴를 하신다고 한다.

성당과 달리 교회는 목사님 따라 교인들이 많이 관두고 옮기고 하는 편인데, 이 교회는 어떨지. 우리집은 항상 제일 가까운 교회 다니고, 현재 이 교회가 제일 가까우니 아마 계속 다닐 것 같다.

기도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하고 다짐했다.



2주동안 4명을 만남

일상 2015. 10. 26. 19:22

2주동안 정말 오랜만에 약속있는 금요일 밤과 약속있는 주말을 보냈다.

1. 첫회사 후배
이 블로그에 자주썼지만, 정규직으로 처음으로 일한 직장의 직속후배가 나에겐 유난히 애틋하게 느껴진다. 워낙 훌륭한 사람이고, 후배지만 항상 존경한다. 후배와 결혼을 하는 남자는 정말 운좋은 남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서울로 회사를 옮겼다 소식을 전하니 금요일에 한번 보자고 하여 오랜만에 후배를 봤다. 난 힘들다고 도망친 그 회사를 그 아이는 아직도 다니고 있다. 그것도 엄청 고생하면서.
그 회사는 내가 다닐 때 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지진 않은 것 같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하루하루 실망하는 중이었는데, 후배를 보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 불평 불만 하면 안되겠구나. 하고 잠깐 생각했다.
후배가 견디고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가늠조차 되지 않아. 어마어마한 존경심이 다시금 솟아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착한 후배를 이제 좀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회사가 가까워 졌으니까.

2. 투병 중인 친구
토요일에 회사에서 윈도우 깔며 개고생했던 날을 보상받기 위해 10월 21일 휴가를 냈다. 휴가 전날 투병 중인 친구를 찾았다. 저번에 만났을 때는 주사 치료를 1번만 받은 뒤라 원래 내가 알던 친구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모습이었다. 가발을 쓴 모습이었지만, 전과 다름없이 나와 대화를 하는 친구를 보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병원 치료 이야기를 나처럼 관심있게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고, 그 말에 이렇게 힘든 시기에 내가 이 친구에게 아주 쓸모 없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철을 타고 오면서 이 세상이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슬픔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울 뻔 했다. 내가 종교를 갖게 된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이고. 친구에게 꽃기린 화분을 사줬는데, 기대치 않게 격하게 좋아하여 보람찼다.

3. 학원에서 알게 된 아이
저번에 썼던 보험회사에 취업했다는 학원에서 알게 된 남자아이를 만났다. 오랜만에 용산역에 갔는데, 새삼 용산역이 거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미로 같이 그지같은 건물 구조도 여전하고.
걔는 고생을 많이 한 건지 나이가 저번보다 한 10살은 더 들어 보였다. 양복을 입은 것도 한몫 했겠지만. 기본급도 없는데, 매일 8시 10분까지 출근해야 한다니 정말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많다고 생각했다. 비싼 저녁을 사줬고, 다행스럽게 나에게는 상품가입 권유를 하지 않았다. 자기가 보험회사에서 일한다고 하니 연락 그냥 뚝 끊어버린 사람들도 많다면서 서운하다고 했다. 하긴 나도 정말 엄청나게 망설이다가 만난 거니까.
그런데 그 만남 뒤로 카톡을 너무 너무 심하게 자주 보내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일단 어제 카톡부터 답을 안하고 있다. 요즘 애들은 1년에 몇 번 안보는 사이여도 이렇게 의미없는 메세지를 주고 받는건지, 얘가 유난한건지.
만나서 얘기 잘하고 잘 먹고 잘 마시고 왔지만, 여전히 불편한 아이다.

4. 용인의 친한 친구
운전을 너무 안해서 가끔 이러다 완전히 까먹는 거 아닌가 걱정될 때마다 용인 친구네 카페에 놀러간다. 매일같이 카톡으로 안부를 전하지만 역시 직접 만나 얘기하는 것이 진짜 대화다. 둘다 즐거운 일이 생기지않아 우울했는데 서로 기분전환 확실히 했다.
친구가 오징어 국을 20분만에 뚝딱 만들고 밥을 차려줘서 밥까지 얻어먹었다. 걔네 카페의 당근케익도 먹어치우고 쿠키도 먹고 내가 너무 많이 먹어 좀 미안할 정도였다. 친구가 만든 당근케익이 너무 맛있어서 다시 놀랐다.
돌아오는 길에 영동고속도로가 밀리는지 티맵이 의왕 안양 시내길로 안내하는 바람에 운전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밤에 모르는 길 운전을 해보니 아직 운전을 까먹진 않은 것 같다. 성공적으로 석수IC로 고속도로를 타니 마음이 놓였다. 난 좀 밀려도 고속도로가 좋은데 아직도 친구네 집에서 우리집 오는 길을 못 외웠다.

이제 회사에 좀 적응을 하여 주말에 뭐 좀 하고 싶단 생각이 든다. 그동안 주말에는 잠만 잤다.
새벽 알람 소리에 잠을 깨며 주여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이까! 긍휼히 여기소서! 라고 마음 속으로 절규 중 이다. 점점 깜깜해지고 추워지고 있다.

P.S
지금 퇴근 지하철 안, 콧물이 나는데 휴지가 없다. 이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산 휴지가 집에 거의 한박스 있는데 왜 항상 있던 휴지가 이럴 땐 없는걸까. 파우치의 면봉으로 콧물을 닦으면 웃기겠지.


1. Santana 의 Supernatural 앨범 

  저번 주에 용인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서 오랜만에 산타나의 슈퍼내추럴 앨범을 들었다. 내가 한창 음악을 듣기 시작할 때 초히트를 쳤던 앨범으로 나 역시 열심히 들었다. 산타나 아저씨 다른 옛날 곡도 종종 듣지만, 젊은 시절 함께 했던 앨범이라 그런지 슈퍼내추럴 만큼 자주 듣게 되진 않는다.

  실제 히트한 노래들은 다 영어 가사로 된 곡들이지만, 난 Corazon Espinado 나 Migra, Primavera 같은 곡이 훨씬 좋다. 이 앨범을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스패니쉬 전혀 모르는 나도 Migra 는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부를 수 있다.

  슈퍼내추럴은 표지가 참 좋다. 맨 위에 날개달린 개성 뚜렷한 산타나 아저씨 얼굴도 좋고 가운데 있는 왕관쓴 남미풍 인어공주도 좋고, 산타나라고 써진 폰트도 표지와 꼭 어울린다. 

  왜 산타나곡은 다 스패니쉬로 부른 곡이 훨씬 좋은지 생각을 해보니, 언어라는 게 한 나라의 문화의 정수기 때문에 한 나라에서 태어나 그 언어를 평생 쓰며 그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다보면 자연히 연주도 곡도 그 언어에 맞춰지기 때문인 것 같다.

  신중현의 미인을 영어로 부른다면 엄청 이상할 것이다.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의 노래도 영어로 바뀐 건 포루투갈어로 부른 버전보단 영 느낌이 별로다. 대학 때 보아의 Valenti 라는 곡을 꽤 좋아했는데, 일어로 듣다가 한국어로 된 Valenti 를 듣고 이건 뭔가 싶을 정도로 이상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살고 있는 동북아는 각 나라마다 다 그들의 언어가 있고 그래서 더 재밌다. 가깝지만 그만큼 서로 엄청나게 다르니까. 영어와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들을 보며 쟤들은 외국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도 가끔 했지만, 내 나라에 딱 맞는 언어를 갖고 있다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뭐 한글도 대부분은 한문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 없지만 말이다. 


2. 인사이드아웃

  (본 지 오래됐지만) 인사이드아웃을 봤다. 난 종종 극장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라푼젤이나 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 어서 보고 싶다.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인사이드아웃이 개봉했고 난 당연히 보러 갔다.

  보면서 울기도 했고, 이 애니메이션이 주는 심오한 메세지와 주인공이 여자애 인데다가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간 모습이 내 어린 시절이랑 비슷해서 좋았다. 

  하지만 이런 극장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 토이스토리3이 얼마나 대단한 애니메이션인가.. 하는 것이다. 

  라푼젤은 주인공 남녀가 너무 내 맘에 쏙 들어서, 둘이 손잡고 I see the light 부르는 데이트 하는 장면만 50번 이상 봤다. 본 횟수로 따지면 토이스토리3보다 라푼젤이 훨씬 많지만, 솔직히 토이스토리3만큼 위대한 애니메이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 헤어지는 장난감과 주인을 보며 내가 극장에서 어찌나 울었는지.

  인사이드아웃은 기억을 시각화 한 게 정말 기발했고, 슬픔이 캐릭터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 슬픔이스러워서 마음에 들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건 기쁨보다도 슬픔인 것 같다. 항상 즐거운 사람보단 공감능력 있고, 남의 슬픔에 진심으로 가슴아파 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인간미 있고 정이 가니까..


3. 친구의 병

  제일 친한 친구 중 한명이 암 확진을 받았다. 사실 그래서 광복절에 아산병원에 간 것이었다. 그 친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알기 때문에 나까지 한동안 슬펐다. 하지만 제일 힘든 건 그 친구일 것이고, 사람이 곤경에 빠지면 옆에서 호들갑 떠는 사람보다는 평소랑 똑같이 대해주는 사람이 더 편하고 고맙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난 평소대로 대하고 있다. 

  친구네 집에 가서 금요일에 같이 밥을 먹었다. 친구가 완쾌 됐으면 좋겠다. 남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정말 당연하게 그 친구도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게 사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다. 예를 들면 결혼한지 5년 됐다고 말하면 당연하게 사람들은 애는 몇살이냐고 묻는 식이다. 친구가 많이 아픈 걸 옆에서 보면서 난 절대 어떤 질문이든 함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난 솔직히 아직도 내 친구의 병이 실감이 안난다. 아마 내 친구는 더 하겠지...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친구는 대학 졸업해서 정말 착실하게 일만 했다. 그런데 왜 그런 큰 병에 걸린걸까.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날 것 같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기도해주고 기원해주면서 옆에 있는 수 밖에는 없는 거 겠지.


4. 몇년 째 마이너스의 직장생활

  첫 회사부터 지금까지 쭉 다니는 회사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규모가 작은 게 문제라기 보단, 체계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회사가 겉 보기엔 멀쩡한데 일하면 할 수록 이를 어째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서 일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다. 다 바꾸려고 하면 힘드니 하나하나 차근차근 하자 마음은 먹었지만, 가끔 한숨이 푹푹 나온다. 


5. 프리랜서들의 삶.

  지금 다니는 회사는 프리랜서들이랑 일하는 게 거의 80% 이상이다. 처음 보는 삶이다 보니 프리랜서들의 삶이 좀 흥미롭다. 프리랜서도 결국 사교성 좋고 영업력 있는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긴 하지만, 돈을 버는 방법에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내일 월요일이다. 

엄마랑 한 겨울에는 우리 둘다 밤 10시에는 침대에 눕는 것을 목표로 부지런히 잘 준비를 하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런데 벌써 12시네. 빨리 자야겠다.

휴. 시간이 참 빠르다. 


아까 공원가서 눈썹 위에 산모기에 물리는 바람에 눈썹 위의 이마가 엄청 크게 부풀어 올랐고 그것 때문에 얼굴 꼴이 지금 참 웃긴데 내일 아침에는 좀 가라앉겠지 설마.

 

아 그런데 새벽 전철안에서는 메이크업 하는 여자들 흔히 보는데, 요즘에는 메이크업 뿐 아니라 앞머리에 구르프 까지 말고 있는 여자들을 종종 보고 있다. 나도 메이크업은 남들 시선 의식 안하고 뚝딱 뚝딱 잘 하는데 구르프는 자신이 없다. 난 하수였다. 


일사천리

일상 2015. 8. 16. 18:55

내일부터 성수역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대학교에 근무하기 시작한게 7월 21일인데 정확히 4주만에 그만두고 다시 취업을 하게 되었다.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놓고 잊고 있었는데, 어떤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직접 가서 보니 괜찮은 회사인 것 같고, 또 정규직이고 다만 우리집에서 너무 멀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회사이니... 결국 가기로 했다.

하고 있었던 학교 일은 무조건 계약직이고, 입사를 제의한 회사는 무조건 정규직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로서 한동안 내 길이라 생각했던 대학원 입학도 없던 일이 되었다. 대학원에 붙긴 붙었지만 등록하지 않았다.

교수님께 그만둔다고 말하기가 죄송해서 잠을 한 이틀 설치고 살도 빠졌다. 하지만, 교수님들도 날 잡을 순 없었다. 학교는 2년 뒤에 무조건 짤리니 말이다.

나와 같이 면접을 봤었던 사람 한명을 다시 불러서 앉혀놨고, 난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인수인계 해줬다. 교수님이 다시 모집공고내서 사람 모집한다고 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보통 다른 과 교수님들은 내가 맘에 드는 애 뽑는다고 시간 끌어서 전임자가 속타고 힘들고 그런다고 하든데... 난 하루만에 그만둔다고 말하고 사람 뽑고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다. 나와 같이 일하던 교수님 별명이 "엔젤" 인데 왜 별명이 엔젤 인지 알 수 있었다. 공부도 최고로 잘하시고, 직업도 교수고, 인간성도 최고 좋고 대체 그 교수님께 부족한 게 뭘까.  

새로 오는 아이는 오자마자 시간표도 바꿔야 하고 수강신청도 해야되서 힘들것 같지만 의욕있고 똘똘해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걔도 일자리가 급했는데 일자리를 갖게 되서 잘됐고 나는 인수인계 제대로 시켜서 사람을 앉혀놓고 가니 마음이 편하고 누이좋고 매부좋았다.

7월 21일부터 8월 13일까지 제일 더웠던 시기에 모교 사무실에서 혼자 시원히 잘 보냈다. 집에 있었다면 그렇게 시원히 있을 수 없었을 거다. 낮에는 혼자 라디오 듣고 음악도 들었으니 피서를 갔어도 그보다 좋을 순 없었을 거다.

정확한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아직 알 수 없어서 독립을 하기도 뭐하고, 처음부터 지각하면 안되니 일단은 전철을 타야 하는데 7시에 집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잘 할 수 있겠지?

 

어제는 수술한 친구 병문안 때문에 아산병원에 갔는데, 정말 크긴 무지하게 컸다. 환자가 엄청나게 많고 친구도 힘들어보였다. 하지만,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나같으면 내 친구처럼 온화하게 친구 맞아주지 못했을 것 같은데 친구는 참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존경스러웠다.

 

나는 아마도 내일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면서 전철에 탈 것이다. 몇 년전에 충무로로 회사 다니면서 신도림에서 내리는 사람들 보면서 정말 딱하다 생각했는데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역시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나보다.  


용인 집들이

일상 2015. 4. 13. 01:12

  나와 제일 친한 친구가 용인으로 이사를 갔다. 부천에 살던 친구가 이사가고 나서 좀 허전했다. 1시간 이내로 볼 수 있는 친구가 아니라는 생각에. 친한 친구의 첫 독립 생활이니만큼 가서 응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원이 끝나고 집들이 꽃을 사서 용인으로 가기로 했다.

 

 

  꽃을 샀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학원 건물 밑에 있는 꽃집 볼때마다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사장님께 알아서 예쁘게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정말 마음에 쏙 들게 예쁘게 만들어주셨다.

  용인에서 대중교통으로 다시 인천으로 올 일이 심란해서 차를 끌고 광화문 학원에 갔다가, 친구네 집인 용인으로 가기로 했다. 내 운전 역사 상, 이번 주 토요일 처럼 고생한 적은 없었다.

  광화문에서 핸드폰 네비게이션 버튼이 잘못눌려서 화면이 거꾸로 나오는데, 어떻게 조작하는 지도 모르겠고 거꾸로 나오는 화면 때문에 두번 길을 들어선 대가가 너무 컸다. 보신각을 지나, 시위 때문에 일부 도로가 폐쇄된 도로를 간신히 빠져나와서 명동과 충무로를 지나면서 정말 식은 땀을 비오듯 흘렸다. 엄청난 오토바이들과 도저히 차선 변경이 불가능해 보이는 꽉찬 도로...서울 도심 운전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고, 간신히 간신히 경부고속도로를 탔지만, 너무 밀렸다. 버스전용차로 있는 고속도로는 처음 이었는데, 버스전용차로는 정말 하나도 안 밀려서 신기했다. 버스전용차로는 누가 만들었는지 참 생각 잘했다.  

  용인에 들어와서도 친구네 가게 찾기가 어려워 한 30분을 용인 아파트 구석구석을 헤맸고, 거의 울면서 친구에게 전화했다. 결국 친구가 내 차가 있는 곳까지 와서 간신히 가게를 찾았다. 네비게이션에서는 자꾸 경로를 벗어났다고 하고 4시 방향 우회전 이라는데 아무리 봐도 4시 방향 우회전은 없고, 헤메며 너무 당황을 하니 차선도 막 바꾸고 신호위반도 몇 번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이번 토요일 경험으로 확실히 깨달았다. 토요일에는 차를 가지고 서울에 가면 안된다는 것을. 친구네 집이 있는 용인도 운전을 하니 인천까지 50분 밖에 안걸려서, 차라리 일요일에 인천에서 바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서울에서 용인 가는 건 이제 다신 안하고 싶다. 

  친구는 나와 다르게 돈을 지독하게 아껴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집에 살림이 너무 없었다. 너무 없어서 불편할 정도였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친구가 돈 많이 벌어서 변변한 살림도 사서 놓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친구는 냉장고는 각종 반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 혼자 살때는 냉장고에 물한병 우유 맥주 식스팩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는데.

  친구와 맥주 마시면서 새벽 4시까지 이야기를 했다. 맥주를 너무 조금 사서 아쉬웠다. 술이 정말 술술 들어갔는데.. 친구가 만들어준 소세지에 당근, 양파 넣고 볶아 준 요리도 맛있었다. 20대 때 거의 같은 시기에 똑같은 일을 당했으면서 서로 속내를 털어놓지 않아 각자 힘들어 했던 걸 생각하며 안타까웠다.

  걔와 나의 20대의 큰 어려움은 단순히 더럽게 운이 없었던 게 아니라, 알고보면 확실한 원인이 있었다는 것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어떤 문제에 있어서 남들보다 늦게 극복한다고 해서 못났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그 사건을 극복하는데 한 10년 걸린 것 같고, 30살 쯤 되서야 드디어 그 일에서 완전히 초월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가 되었으니, 온전히 건강한 정신으로 산지는 3년도 안됐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어쨌든 극복을 했고,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말이다.

  친구가 오빠랑 함께 하는 카페에서 조각케익도 많이 먹고 맛있는 음료수도 엄청 많이 마시고 왔다. 다 친구가 만든 케익이고 쿠키에 커피였는데 내가 모르던 친구의 진면모를 봤다. 그냥 커피 체인에서 먹던 케익과 차원이 다르게 맛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살아야 하니 살고 있지만, 친구가 많이 우울한 것 같다. 나와 친구를 이렇게 우울하게 만드는 건 미래에 대한 막연함인 것 같다. 20대에는 설마 설마 하며 막연해도 아직 젊으니 뭐라도 있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초조하면서 막연하기만 하니까 말이다.

  대만에 둘이 여행가서 얼마나 즐거울 지 모르겠지만, 즐거웠으면 좋겠다. 나도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항상 무지 노력하고 있는데, 친구는 노력할 시간 조차 없는 것 같다. 자영업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걱정도 좀 되긴 하지만, 정말 친한 친구와 하루밤 보낸 것 자체로 기분이 참 좋아졌다. 친구도 나도 잘 극복해서 즐거워졌을면 좋겠다. 가끔 이렇게 서로 위로도 해주면서.



이젠 정상궤도.

일상 2015. 3. 27. 23:26

사람은 예상치 못한 작은 사건에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어제는 초등학교 시절 바로 옆집에 살며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행신역에서 만났다. 대전에 살던 시절 친구를 고양에서 보게 되다니 신기했다. 나도 걔도 고양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영영 가까워질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걔를 만나, 밀린 근황과 고민 얘기를 했더니 거짓말같이 괴로운 감정도 미련도 사라졌다. 친구는 행복하고 편안해 보였다. 부러웠지만 내 유년을 함께 보낸 친구라 진심으로 기뻤다.
내 블로그의 고정독자가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요며칠 일련의 미친 감정기복의 글을 참고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사과도 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글쓰기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정서 회복에 엄청난 도움이 되기때문에, 안쓸 순 없었다.
어렸을 때 부터 난 뭐하나 특출난 게 없었다. 하지만 남들보다 덜 떨어진 적도 없었다. 가출도 말썽도 없이 학교 다녔고,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크게 나쁘지도 않은 무난한 대학들어가서, 제때 취업해서 부모님이 크게 걱정하지 않는 그런 딸이었다.​ 가만 놔둬도 알아서 남들만큼은 하는.
우리 엄마는 요즘 내가 남들보다 크게 못난 분야가 있다는 것에 적응을 아직도 못하고 계신 것 같다. 나보다 더 심하게…빨리 받아들이셨으면 나도 엄마도 편할텐데.
일주일만에 몸무게가 2.5kg 이 빠졌다. 예전 다이어트할 때는 죽어라 노력해도 1kg도 안빠지더니 참 쉽게도 빠졌다.
이번달 월급의 거의 4분의 1을 투자하여 봄옷을 샀다. 내 몸에 잘맞는 새옷을 입고 전신거울에 서니 기분이 좋았다. 상쾌하게 시작하진 못했지만, 드디어 봄이다! 완전한 봄.


과격한 욕

일상 2014. 11. 24. 23:23

  토요일에 오랜만에 제일 친한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오빠랑 성남에서 카페를 하면서 부터 친구를 만나기 무척 힘들다. 광화문에서 학원 끝나고 친구가 있는 코엑스까지 갔다. 친구가 코엑스에서 하는 카페쇼를 해서 거기 가서 찻잎들도 구경하고 친구네 가게 커피도 맛보고 그랬다. 버스타고 강북에서 강남까지 가다가 촌스럽게 심하게 멀미했다. 중간에 내리고 싶었는데 꽉 막혀서 내릴 수도 없었다.

  걔랑 서울에 있으면 뭔가 못올 곳 온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스무살 때부터 우리의 아지트인 부천역으로 옮겼고, 하루 종일 대충 밥을 떼워 쌀이 그리웠던 우리는 샤브샤브를 동물같이 먹어치웠다.

  내친구 앞에만 있으면 마음이 편해 그런지 식욕이 막 용솟음 친다. 그런데 신기하게 회사 회식 자리가서는 거의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다. 그냥 입맛이 없고 조금만 먹으면 더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친구한테 이 얘기를 하니 웃겨 죽으려고 한다. 저번에 나랑 치킨 먹는데 내가 너무 빨리 많이 먹어서 자기 가 삐질 뻔 했는데 무슨 니가 양이 적단 소리를 듣냐고 말도 안된댄다. 하지만, 진짜다. 회사 사람들은 다 나보고 양이 적다고 한다.

  친구랑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는데, 일주일동안 회사에서 들들들들 볶인 이야기를 했다.

  걔가 없으면 난 어떻게 살았을까 싶었다. 남자친구가 생겨도 아마 이정도로 의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울했던 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통째로 한순간에 구원해준 친구가 얘인데, 정말 평생의 구원자라고 해도 모자르다. 현재까진.

  그 친구가 나한테 내가 이렇게 과격하고 심한 욕 하는 건 처음 봤댄다. 그렇다. 난 첫 직장 악마같았던 여자 선배에게도 이 정도의 쌍욕과 저주를 퍼붓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회사에서 날 괴롭히는 사람은 요즘 같아선 내 입에 올리기도 싫다.

  인격적으로 전혀 존경할만한 구석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 기분 맞춰서 옆에 있는 사람이 알아서 기고, 알아서 아양 떨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오늘 짜증의 방패막이를 해야만 했는데, 진짜 꼴도 보기 싫고 하루 종일 화가 나서 혼났다. 이제까지 난 그 사람이 원하는대로 해주는 편이었다. 죽도록 가기 싫은 회식에 가서도 아양 열심히 떨고 웃긴 이야기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해주고, 그 사람이 기분 나빠 보일 땐 그냥 조용히 입닫고 알아서 기었다.

  그런데, 저번주 오늘 계속 고민하다 이 인간을 상대하는 방법은 그냥 쭉 일관성 있게 대하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는 정을 붙여보려고 했던 상사지만, 이제 그럴 필요성도 없고, 난 나 대로 내 할일 하고, 그렇게 원하는 상사 대접 깍듯하게 해주고 그 인간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난 언제나 똑같이 대하면 되는 것이다.

  마음을 다 잡고 있다. 내가 왜 그딴 사람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복통에 시달려야 하는가? (저번 주 내내 너무 괴롭힘을 당해서 신경성으로 배가 아파 고생했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아직 갈 길이 먼 거 같다. 내 몸을 상하게 하면서 까지 영향을 받을 필요 없는데, 난 왜 영향을 받는가.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사람보다는 내가 고결하고 착한 사람이다. 자부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점점 나한테까지 화가 나면서 내 자존심은 요즘 바닥을 치고 있다. 이러면 안될 거 같다. 이러면 나만 손해다.


평화로운 날들

일상 2014. 10. 6. 00:18

  이렇게 마음 편히 지낸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날을 보내고 있다. 회사에서도 일주일 동안은 잘 풀려갔고, 아픈 데도 없고 날씨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다.

  역시 날씨가 좋으면 사람이 너그러워 진다.

 

  연휴 역시 평화롭게 보냈다. 토요일에는 여름 내내 못만나던 친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떠들었다. 부평에 오랜만에 갔는데, 지하상가에 예쁜 옷이 많았고, 내 친구는 원피스와 내가 추천한 가디건을 구입했다.

  친구와 함께 첫 직장 후배가 하는 카페에 갔는데 오래전 사귀던 애가 걸어 들어와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어떻게든 옛 남자친구가 날 못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선글라스를 끼고 미친듯이 뛰는 것 처럼 걸어 카페를 빠져나왔다. (걔 집은 부평이랑 아주 가까웠다) 그런데 사장 후배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니 내가 옛날 남자친구라고 확신 했던 애는 후배 남동생의 친구랜다. 난 너무 신기해서 다시 되돌아가서 내가 착각한 애를 관찰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후배 남동생 친구라는 이름 모를 애는 내 예전 남자친구와 너무나도 닮았던 것이다. 내가 착각한 게 무리도 아니었을 정도로.

  그런데 내가 걔랑 헤어질 때 당시 모습은 아주 어렸을 적 모습이니 지금도 20대 초반의 어린 그 모습은 아닐텐데 그 점을 간과했다. 휴. 얼마나 다행인지. 걔가 아니라.

  친구와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날이 갈수록 회사에서 알게 된 사람들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어지고, 나도 진실되게 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슬픈 일이다. 이런 게 삶의 지혜 라면 지혜일 수도 있는 건데... 이건 확실하다. 회사 사람들한테 진심을 말하면 안된다는 거 말이다.

 

  언제나 여기에 말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혈연 빼고 가장 고차원의 관계는 우정이 아닐까. 친구만큼 전 일생에 걸쳐 필요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중고등학교 때는 절대적으로, 20대에도 30대에도 아마 늙어서도 친구는 계속 필요하겠지. 솔직히 애인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늙어서까지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드는데 친구는 아니다. 이번 주말에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나서 다시 느꼈다. 친구는 진짜 필요하다는 걸.

 

  친구를 만나기 전날인 개천절에는 미용실에 가서 앞머리를 자르고 앞머리 파마를 했다. 난 미용실 갈 때 원래 하던 사람한테 하는 유형의 손님은 아닌데, 내가 가는 미용실은 꼭 어떤 선생님한테 받았냐고 물어본다. 마침 지갑에 예전에 받은 명함이 있어서 보여줬더니 낯익은 어린 여자 미용사가 왔다. 난 그 어린 여자 미용사가 좋아졌다. 조용해서 다른 미용사들 처럼 나한테 말도 안걸고,  얼굴도 웃는 상이고, 미용실 보조 애들한테도 친절하게 대한다. 저번 그 어린 여자 미용사가 알아서 해준 파마도 친구들 회사 사람들한테 잘 됐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다. 이번 앞머리도 우리 엄마 말로는 딱 좋댄다. 약간 길다 싶게 잘린 것만 빼면 마음에 들긴 드는데 없다 갑자기 생긴 앞머리가 아직까진 무지 귀찮다.

 

  오늘은 교회 안가고 메이저리그 포스트 시즌을 봤다. 난 메이저리그 시즌은 안 챙겨 보는데 포스트 시즌은 2009년인가 부터 엄청 열심히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재밌다. 우리나라는 류현진 때문에 LA 다저스 위주로 중계를 해줘서 어쩔 수 없이 다저스 경기를 제일 많이 보게 된다. 오늘 경기에서는 잭 그레인키가 엄청 멋있었다. 잭 그레인키는 나랑 똑같은 83년생인 우완 투수로, CSI 같은데서 싸이코 패스 냉혈한 연쇄살인마 역할하면 딱이게 생겼고, 던지는 거 뿐 아니라 잘 치기도 하고 뛰기도 엄청 잘 뛴다. 야구보면서 내년에 야구보러 미국 갈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주말동안 Mamas Gun 이라는 밴드를 알게 되고 그 밴드가 저번달 낸 Cheap Hotel 이라는 앨범의 Burn and fade 라는 무척 좋은 곡을 발견했다. 여기에 링크 걸고 싶었는데 방대한 Youtube 에도 동영상이 전혀 없다.

 

  내가 원래 배우던 영어 선생님이 휴가가서, 이번 주 토요일 다른 선생님 수업을 들었는데, 맙소사. 선생님이 너무 잘생겨서 수업 들을 맛이 났다. 금발에 파란눈인 키 엄청 크고 덩치도 큰 40대 남자 선생님이신데, 엄청 낡은 바지에 막 입은 셔츠, 스킨 한번 안 바른 것 같이 거칠한 피부에 전혀 다듬지 않은 금발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벅벅 긁는 모습이 아주 사나이 다운, 진짜 미남 선생님이었다. 역시 얼굴 잘생기면 옷이고 머리스타일이고 뭐고 다 필요 없나보다.

  수업 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낯이 익는다 낯이 익는다 생각했는데, 왜 낯이 익는지 생각해보니 그 남자 분 꼭 교회 전도사 처럼 생겨서 낯이 익는 거였다. 전도사 처럼 생긴 남자라니 짱웃기다 싶어서 혼자 쿡쿡 웃어서 속으로 쫌 찔렸다.

 

  2주 연속 중간의 휴일이 낀 행복한 주중을 맞게 되었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첫째는 날씨, 둘째는 휴일.


이태원에서 돌아오며

일상 2013. 10. 13. 21:46

  12일 토요일에는 친구와 이태원에 갔었다. 이번 영국 여행에 가서 선물을 사온 3명의 친구 중 한명이었고, 그 친구에게만 선물을 주면 이제 내 선물 전달식은 다 완료 되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매일 만나던 곳에서 벗어나보자는 의도로 친구와 이태원에에서 만났는데, 마침 지구촌 축제인가를 하고 있었다. 우린 전혀 모르고 갔는데 말이다. 전철에서 내려서 올라가보니 차량 통제하고 길에서 DJ 들이 마련된 무대에서 디제잉하며 클럽음악도 계속 틀어주고 더 걸어가보니 무대에서 밴드가 공연도 하고, 길에는 각 나라별 Booth 도 있고 그랬다. 사물놀이도 하면서 걸어가고 그런거 같은데 난 키가 작아서 볼 수가 없었다. 이거 때문에 박원순 시장까지 봤네.

 이태원은 이색적인 곳이긴 했다. 외국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도 한국사람이 절대 다수긴 했지만, 주말 명동만큼 사람이 많았고 나는 또 한번 한국 수도권의 폭발적 인구 동원력에 경탄했다.

  친구와 나는 밥 먹으면서 우리 미래에 대해 서로 우려하는 대화를 했고, 클럽 뮤직을 가까이 들으면서 고개도 까딱까딱 하다가 유명하다는 펍에 가서 맥주마시고 돌아다니다 또 맥주마시고 그랬다. 친구가 즐거워 하는 거 같아서 나도 즐거웠다. 날씨도 딱이었고. 외국 사람들도 많고 클럽에 갈 목적으로 온 사람들도 많아서 옷차림 구경하는 재미, 화장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 세상에는 참 예쁜 여자들이 많은 거 같다. 아 하긴 어제는 잘생긴 남자도 많이 봤군. 젊은 사람들은 다들 귀엽구나 라고 생각하며 10시쯤 전철을 탔는데 앉아서 음악을 듣는 순간, 갑자기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며 바로 직전까지 재밌었던 기분이 씻은듯이 사라지고 우울해졌다.

 

  요즘 자주 듣는 Shadowplay 를 듣는데, 가사를 듣다보니,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 그렇게 기다리던 사람은 끝끝내 오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절대로 안올 걸 알면서도 기다렸던 거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곡이 우울할 순 없다.

   

  술김이라서 더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까지 살면서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서, 실패를 많이 한 인생이라서,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가고 싶은 대학에 못가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해서, 짝사랑 하던 남자에게 차여서, 좋아하던 남자와 결혼을 못해서, 얼굴이 별로 예쁘지 않아서, 아는 것이 없어서, 모험을 못해봐서 등등 

  내가 만약 원하는 대로 이것 저것 다 이루고 살았다면, 덜 괴로웠을지도 모르지만 난 재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가끔 일부 잘나가는 사람들이 그러는 거 처럼 잘난 체 하고 은근히 남 무시하는 그런 거 말이다. 난 오히려 열라 못나서 어떤 면에서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고, 또 언제나 처럼 지독한 열등감과 함께 32살을 맞이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또 울컥했는데.

  불행히도 간신히 떠올린 그런 생각도 당시 나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3월 시작

일상 2013. 3. 3. 23:27

새해를 시작하는 기분은 1월보다는 3월에 더 강한 것 같다. 난 3월만 되면 맨처음 대학 왔을 때가 떠오른다. 인천의 겨울은 어찌나 추웠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전라도에서 와서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전라도에서 겨울을 보낼 땐 오리털을 입지 않았다. 지금은 오리털파카만 4개. 그 오리털 4개만 입으면서 겨울을 보내는 실정이다. 내 겨울 옷장을 보면서 내가 의외로 옷이 많단 걸 깨닫는다. 뭘 이렇게 사서 모았지. 오리털만 4개라니..  

근데도 딱 요즘 입는 얇은 모직코트 같은 걸 사고 싶어졌다. 

한가한 일요일이라 진지하게 2월 지출결산을 해 보았다. 엄청난 지출을 했다. 2월에는 아빠 잠바도 사드리고 엄마 코트도 사드렸다. 뿌듯했다. 부모님께 돈을 쓸 때 내가 이러려고 돈을 벌고 있구나 싶다. 딱히 크게 수입이 없는 우리 엄마 아빠. 내가 시집가면 누가 돈을 드리려나. 하는 생각에 걱정도 된다. 

내가 시집가서도 엄마아빠께 돈 드리고 그러려면 나도 당연히 계속 돈을 벌어야 할 것이고, 남편될 사람도 경제적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고. 크크크 (한명도 제대로 못만나고 있으면서 이딴소리 해서 뭐하나) 

매년 3월 1일은 친할아버지 기일이라 안산 큰아빠댁으로 간다. 우리 친가 쪽은 서로 소원해서 일년에 딱 두번 만난다. 할아버지 기일과 할머니 기일. 할아버지 기일은 안산에서 해서 매년 가는데, 할머니 기일은 대전이라 거의 안간다. 

내 나이가 서른 한살이라는 소식을 듣고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직장인 티가 난다고 했다. 좀 슬펐다. 어디 가면 아직 학생같다는 말 많이 들었는데. 그래도 난 내가 충분히 어려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살기로 했다.  

안산에서 바로 친구를 만나러 삼성역으로 갔다. 날이 갈수록 코엑스에 가도 재미가 없다. 맛있는 곳도 없고... 옷이나 신발 같은 거 구경해도 별로. 친구네 집이 워낙 우리집이랑 멀어서 중간을 정하느라고 삼성에서 만난건데 다음에는 삼성역 안가야겠다. 카페도 몇 개 없는데다가 자리도 부족하고 지저분하고.

난 강북 스타일인가. 그냥 서울서는 종로 쪽이 제일 좋더라. 물론 서울보다 인천이 더 좋고. 흐흐흐. 

친구의 직장생활에 가장 큰 위기가 찾아온 것 같았다. 많이 우울한 것 같았다. 난 첫직장 오래다니는 사람들 보면 신기하고 존경스럽고 그렇다. 난 첫직장은 그만둘 수 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난 애초에 별로 가고 싶었던 회사에 간 것도 아니었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런 상태로 2년 9개월을 다녔으니 오래 버텼다. 이름난 직장에서 많은 월급을 받는 친구도 직장생활은 힘들고 싫은 모양이다. 어딜 가나 다 그런 건가. 

지금 그룹연수 들어간 동생은 인생 최고 의기양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가고 싶은 회사에 가고 싶은 부서에 행복하고 자기 자신이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나야 큰 회사도 못다녀봤고, 원하는 직장에 다녀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직장은 항상 내 생각같지 않다는 거. 동생의 기대가 너무 큰 것 같아서 걱정될 지경이다. 

어제는 부모님이랑 동생이 성남 가서 원룸을 계약하고 오셨다. 목돈이 없기 때문에 옵션 없는 월세 싼 방으로 잘 계약 했다는데 다음주 다다음주 토요일에는 거기 가서 청소하고 필요한 거 사기로 했다. 내가 돈을 좀 빌려줘야 할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냉장고나 세탁기 둘 중 하나를 사줄까... 원룸이긴 하지만 그거 청소하고 옮길 생각하니까 끔찍하다. 그냥 청소 업체 쓰자고 했는데 엄마가 방 한칸인데 무슨 업체 쓰냐고 단칼에 거절했다.

우리 엄마는 동생이 이제 엄마 품을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안 좋은 모양이다. 첫 직장인데 혼자 원룸서 먹고 자고 할 동생 생각하니 불쌍하긴 한데, 남자일수록 혼자 살면서 집안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어제 파마를 했다. 아 머리도 단발로 잘랐다. 동네 미용실에 갔는데 그 미용실 위치도 안좋은데 사람이 끊임없이 왔다. 나도 한 30분 기다렸다. 거기서 한 파마 3번 했는데 일단 가격경쟁력이 최고다. 솔직히 이름난 미용실에서 15만원 주고 파마도 해봤지만 다른 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생각보다 가격이 너무 싸서 영양도 넣어달라고 했다. 

앞머리 없이 일년정도 산 것 같은데 어렵게 길렀던 앞머리를 그냥 다시 싹둑 잘랐다. 밤에 머리를 감기 때문에 앞머리가 있어도 제대로 간수를 못할 것 같은데 고민 중이다. 앞머리만 아침에 감아야 하나.

오늘은 어제 파마 해서 머리를 못 감았다. 안그래도 머리에 기름이 많이 끼는 편인데 감지도 못하니까 간지러워 죽을 것 같다. 항상 파마하고 나서 이 고비를 못 넘겨서 다음날 밤에 머리를 감아버렸는데 이번에는 오래 버텼다. 

이번 연휴가 끝나면 당분간 연휴가 없고 휴일도 없고. 

원래는 이번 연휴 때 올 추석 연휴 때 어디를 갈 것인지 결정하려고 했는데 결정 못했다. 그냥 어렴풋이 유럽가야지. 하고는 있는데 이러다가 티켓 못구하고 표 있는데 가게 될 것 같다. 

회사 사람들이 다들 예민한 것 같다. 회사에서 일하다보면 답답하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것인가 싶고... 

그런데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난 여기 아니었으면 분명 한달에 130만원 남짓한 돈 받으면서 죽도록 고생하고 있었을 것 같다. 또 돈 못벌었으면 저번 처럼 엄마아빠께 선물도 못 사드렸을 거다. 불평 그만하고 제발 다음 주에 별일이 없길 바라면서, 또 이렇게 일기에 우울한 맘을 토로하면서 이번 주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