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동안 4명을 만남

일상 2015. 10. 26. 19:22

2주동안 정말 오랜만에 약속있는 금요일 밤과 약속있는 주말을 보냈다.

1. 첫회사 후배
이 블로그에 자주썼지만, 정규직으로 처음으로 일한 직장의 직속후배가 나에겐 유난히 애틋하게 느껴진다. 워낙 훌륭한 사람이고, 후배지만 항상 존경한다. 후배와 결혼을 하는 남자는 정말 운좋은 남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서울로 회사를 옮겼다 소식을 전하니 금요일에 한번 보자고 하여 오랜만에 후배를 봤다. 난 힘들다고 도망친 그 회사를 그 아이는 아직도 다니고 있다. 그것도 엄청 고생하면서.
그 회사는 내가 다닐 때 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지진 않은 것 같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하루하루 실망하는 중이었는데, 후배를 보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 불평 불만 하면 안되겠구나. 하고 잠깐 생각했다.
후배가 견디고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가늠조차 되지 않아. 어마어마한 존경심이 다시금 솟아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착한 후배를 이제 좀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회사가 가까워 졌으니까.

2. 투병 중인 친구
토요일에 회사에서 윈도우 깔며 개고생했던 날을 보상받기 위해 10월 21일 휴가를 냈다. 휴가 전날 투병 중인 친구를 찾았다. 저번에 만났을 때는 주사 치료를 1번만 받은 뒤라 원래 내가 알던 친구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모습이었다. 가발을 쓴 모습이었지만, 전과 다름없이 나와 대화를 하는 친구를 보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병원 치료 이야기를 나처럼 관심있게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고, 그 말에 이렇게 힘든 시기에 내가 이 친구에게 아주 쓸모 없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철을 타고 오면서 이 세상이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슬픔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울 뻔 했다. 내가 종교를 갖게 된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이고. 친구에게 꽃기린 화분을 사줬는데, 기대치 않게 격하게 좋아하여 보람찼다.

3. 학원에서 알게 된 아이
저번에 썼던 보험회사에 취업했다는 학원에서 알게 된 남자아이를 만났다. 오랜만에 용산역에 갔는데, 새삼 용산역이 거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미로 같이 그지같은 건물 구조도 여전하고.
걔는 고생을 많이 한 건지 나이가 저번보다 한 10살은 더 들어 보였다. 양복을 입은 것도 한몫 했겠지만. 기본급도 없는데, 매일 8시 10분까지 출근해야 한다니 정말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많다고 생각했다. 비싼 저녁을 사줬고, 다행스럽게 나에게는 상품가입 권유를 하지 않았다. 자기가 보험회사에서 일한다고 하니 연락 그냥 뚝 끊어버린 사람들도 많다면서 서운하다고 했다. 하긴 나도 정말 엄청나게 망설이다가 만난 거니까.
그런데 그 만남 뒤로 카톡을 너무 너무 심하게 자주 보내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일단 어제 카톡부터 답을 안하고 있다. 요즘 애들은 1년에 몇 번 안보는 사이여도 이렇게 의미없는 메세지를 주고 받는건지, 얘가 유난한건지.
만나서 얘기 잘하고 잘 먹고 잘 마시고 왔지만, 여전히 불편한 아이다.

4. 용인의 친한 친구
운전을 너무 안해서 가끔 이러다 완전히 까먹는 거 아닌가 걱정될 때마다 용인 친구네 카페에 놀러간다. 매일같이 카톡으로 안부를 전하지만 역시 직접 만나 얘기하는 것이 진짜 대화다. 둘다 즐거운 일이 생기지않아 우울했는데 서로 기분전환 확실히 했다.
친구가 오징어 국을 20분만에 뚝딱 만들고 밥을 차려줘서 밥까지 얻어먹었다. 걔네 카페의 당근케익도 먹어치우고 쿠키도 먹고 내가 너무 많이 먹어 좀 미안할 정도였다. 친구가 만든 당근케익이 너무 맛있어서 다시 놀랐다.
돌아오는 길에 영동고속도로가 밀리는지 티맵이 의왕 안양 시내길로 안내하는 바람에 운전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밤에 모르는 길 운전을 해보니 아직 운전을 까먹진 않은 것 같다. 성공적으로 석수IC로 고속도로를 타니 마음이 놓였다. 난 좀 밀려도 고속도로가 좋은데 아직도 친구네 집에서 우리집 오는 길을 못 외웠다.

이제 회사에 좀 적응을 하여 주말에 뭐 좀 하고 싶단 생각이 든다. 그동안 주말에는 잠만 잤다.
새벽 알람 소리에 잠을 깨며 주여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이까! 긍휼히 여기소서! 라고 마음 속으로 절규 중 이다. 점점 깜깜해지고 추워지고 있다.

P.S
지금 퇴근 지하철 안, 콧물이 나는데 휴지가 없다. 이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산 휴지가 집에 거의 한박스 있는데 왜 항상 있던 휴지가 이럴 땐 없는걸까. 파우치의 면봉으로 콧물을 닦으면 웃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