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글을 보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에 같이 여행간 친구가 여행가서 사진 하나도 안 찍고 딩가 딩가 놀다가 돌아와선
니가 찍은 사진 다 나도 공유해주면 안돼?
라고 말을 하면 어떨 것 같나?
(참고로 그 친구는 카메라를 한시도 손에서 안놓고 거의 모든 곳의 모든 사진을 다 찍었다.)

내 주변 몇명한테 물어봤더니 다들 아무 상관 없댄다. 나라면?? 흠... 친구랑 여행가본 적이 이번이 처음인데 난 아무 상관 없을 것 같은데. (진심임)
 
휴가 때 큐슈를 잘 다녀오긴 했는데 저번 오사카 여행 때 처럼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 뒤로 매는 가방을 매서 손은 편했지만, 카메라를 넣고 빼기가 너무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사카 갔을 땐 동생이 짐꾼역할 해서 좋았는데. 이번엔 그것도 안되었으니.
또 내 사진기가 너무 후진대다가 밧데리까지 살짝 맛이 간 것을 모르고 그냥 가져가서 오전에 사진 찍음 이미 밧데리가 다 닳고 없었다.
물론 물론 다 핑계거리 맞다.

진짜 이유는 그냥 사진 찍기가 귀찮았다.

저번 오사카 여행가서 사진 찍느라고 정작 봐야할 것도 별로 못보고 즐길 것도 별로 못 즐긴 감이 없지않아 있어서 이번에는 사진 찍을 시간에 그냥 한 걸음이라도 더 걷고 보자는 생각으로 안 찍어봤는데.. 집에 와서 보니 이거 이제와서 후회가 되는거다. 물론 편하긴 했다. 뒤로 매는 배낭에 그냥 씩씩하게 팔 휘두르면서 걸을 수 있었으니까.

흠.. 새로 산 내 친구 디카 속에는 내 인물사진도 꽤 있었는데 친구가 사진 보냈다고 해서 메일함을 열어보니 진짜로 딱 내 인물사진 밖에 안 들어 있었다.
이럴 경우 친구가 얘는 인물 사진 이외에는 필요로 하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이걸 다 편집해서 보낸 것인가?
아니 근데 1기가 정도 되는 메모리를 풀로 다 채운 친구인데 그 사진을 하나하나 골라냈다는 게 더 놀랍잖아. 난 그 수고도 수고라 생각하기도 했고 공짜로 배경 사진도 좀 얻을 요량으로 그냥 메모리 전체 다 보내달라고 말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내 인물사진만 보내줬단 말이다.

우와... 이거 내 일기 블로그이긴 하지만 이런 고민까지 쓰게 되다니.

여하튼 나의 소심한 고민거리는 과연 내가 동행한 친구한테 니 사진 다 보내달라고 말하면 얘는 싫어할까? 하는 이것이다. 크크크. 아 진짜 캐소심.
근데 이런 고민을 하면서 한가지 깨달은 바는 이번에 같이 동행한 내 친구는 나랑 진짜로 친한 친구가 아니구나 하는 거. 진짜로 친한 친구 (지금 머리속에 떠오르는 두세명) 같았으면 이런 고민 할 게 뭐있나. 하긴 진짜 친한 친구 같았음 아마 내가 말하기도 전에 그냥 사진 다 보내줬을거야. 아. 근데 진짜 친한 친구들은 다 나랑 성격이 비슷해서 사진도 안 찍었겠구나. 왜 나랑 진짜로 친한 친구들은 다 돈을 안벌고 있지. 흑. 같이 여행가고 싶은데.-잠깐 골룸처럼 혼잣말과 정신병자 모드.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난 아마 안면불수하고 친구한테 사진 다 보내달라고 말할 거다.;;

이번 여행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저번에 미즈키님 블로그에서도 말했지만, 여행가서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는 개념이 전혀 없는 나와 여행가면 맛집을 꼭 찾아가야 한다는 내친구와의 가치관 충돌이었다. 나는 배가 고프면 그곳이 설령 전세계가 표준화된 맛을 자랑하는 맥도널드라 하더라도 들어가서 음식물을 섭취해줘야 하는데 친구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책에 나와있는 맛집을 찾아서 1시간 이고 2시간 이고 찾아야하니. 추후에는 혼자 오는 것도 괜찮단 생각도 들었다.
오사카 여행 때는 5박 6일 내내 쓰미마셍, 아리가또 를 각각 2번씩 일본어를 딱 4번 밖에 안했고, 의사소통이 안되면 그러면 그런가보다. 이러면 이런가보다 하고 지냈는데 친구가 일어를 잘하니 이것저것 새로 알게 되는 것도 있고 길 찾기도 쉽고 그거 하나는 좋았다.

내 디카에 있는 사진은 고작해야 몇십장 정도인데 그마저도 정리를 못했다. 아아악.
그래도 다 잊기 전에 여행기는 조금씩 남기겠다. 벌써 여행이 아주 머나먼 예전 일 같다. 8월 20일 조금만 있으면 나의 여름도 끝이나고...

P.S 일본 여행가서 2번씩이나 회사관련 꿈을 꿨다. 첫번째 꿈은 너무 생생해서 꿈이야 생시야 했는데 내용도 최악이어서 회사에 일 터졌으니까 당장 회사로 복귀하란 내용이었다. 으악. 진짜.

Off day.

일상 2008. 4. 2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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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너무 떨려서 잠도 제대로 못잤던 휴가. 민양과 내가 한일은 결국 서울시청에서 만나서 밥 먹고 청계천 좀 구경하다가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기. 난 스타벅스가 좋다거나 거기 커피 아니면 안마신다거나 하는 건 아닌데 어찌된 일인지 서울에서 놀기만 하면 스타벅스 혹은 커피빈에 가게 된다. 그냥 뭐 마시면서 수다 떨고 싶은데 일반 카페는 담배피는 사람이 너무 많고, 원래 가던 습관도 있고 해서 결국에는 그런 다국적인 별다방 콩다방에 가게 되는 것. 회사 다니면서 뭘 제일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다면 세계 일주, 애인만들기(애인 만드는 게 언제부터 거창한 게 되버렸다냐) 같은 거창한 건 말 안할거다. 그냥 하고 싶은 건 쉬기, 사람없는 평일 낮에 친구랑 만나서 얘기하기 정도다. 이렇게 소박한 소원인데 그게 참 힘들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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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민양이 핸드폰이 없다보니 민양한테 가끔 집에 전화를 하면 이상하게 그럴때마다 민양이 집에 없다. 그래서 맨날 민양 어머님하고 전화를 하는데 우리가 하도 자주 만나니까 민양 어머님이 우리보고 사귀냐고까지 물어보셨다. 그래도 시간 날 때 자주 그리고 오래 만나주는 친구가 있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친구가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애인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 친구랑 아무리 친해도 애인이 있어야 한다지만 난 아직 그 단계까진 당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친구 만나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스트레스가 풀린다. 아 저기 사진에 있던 스탬프 세트는 결국 나도 따라 구입했다. 이제까지 이쁜 스탬프 봐도 꾹꾹 참고 있었던 이유는 한번 사기 시작하면 계속 살까봐 였는데 이건 꽤 여러개 들어있어서 추가로 안사도 될 것 같다. 4월 들어서 다이어리에 스탬프 엄청 찍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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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하도 무료해서 친구한테 뭐하냐 물어봤더니 지금 일어났다고 해서 우리 백화점이라도 갈까. 하고 만나서 진짜 백화점에 갔다. 4월 12일에는 원래 아는 언니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는데 몸살기가 있어서 미안하다고하고 약속을 취소했다. 어찌나 미안했든지. 토요일 하루 푹 쉬었더니 몸이 원상복귀가 되고, 엄마 아빠는 큰아빠 농장에 가셨고 집에 혼자 TV만 보고 있자니 무료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같이 만난 친구랑 같이 산 옷은 이제까지 거의 성공을 해서 이번에도 같이 가서 이거 저거 구경을 하면서 여성스러운 옷을 살 것인가 그냥 맨날 입는 청바지를 살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청바지를 샀다. 취직하고 얼마간은 이제 나도 직장인~ 이러면서 꽤 여성스러운 블라우스나 치마 같은 거 샀는데 결국 한달에 한번 입을까 말까 한 옷이 되어버리더라. 그리고 우리 회사 그냥 청바지 입고 다녀도 되니까. (심지어 난 구두도 안 신음)
세일이라고 해서 백화점 가서는 세일 안하는 바지를 샀는데, 그 바지 입고 나왔을 때 '야 난 민망해서 이거 도저히 못 입을 것 같다. 어떻게 입어~' 이랬는데 친구 말로는 그보다 더 심한것도 잘만 입고 다닌다고 강권 하는거다. 결국 귀 얇은 나는 10만원이 훌쩍넘는 돈을 주고 그 바지를 사버렸다. 대학 다닐 때는 돈이 없어서 그냥 1~2만원짜리 청바지 입었다. 근데 입는 바지마다 다 허벅지하고 엉덩이는 맞는데 허리는 남아도는 난감한 모습이 되는거다. 내 체형이 이상한 줄 알고 그냥 그렇게 살았는데, 이제서야 내 체형에 딱 맞는 바지 브랜드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런가 계속 사입게 되네. (이번이 3번째)
다른 얘기로, 난 이번 봄에도 결국 벚꽃놀이를 못갔다. 예전 대학 다닐 때는 학교 안에 벚꽃이 많아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벚꽃을 실컷 볼 수 있었다. 특히 벚꽃이 만개하는 때는 항상 시험기간이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밤에 혼자 집에 들어가면서 밤, 4월, 가로등, 벚꽃 등이 만들어내는 쓸쓸한 분위기 때문에 감상적이 되선 '아 오늘밤도 새야 하나' 라고 한숨 쉬곤 했는데. 난 왜 매해 4월은 이렇게 혼자인 것 같은지. 예전 남자친구도 벚꽃피기 전에 입대했고, 걔랑 사귀는 동안에도 벚꽃핀 길을 걸을 땐 항상 혼자였던 것 같다. 유난히 외로운 4월 같으니라고.
대전에서 살던 저층 아파트 화단에는 목련이 엄청 많았다. 사람들은 목련 떨어지면 지저분해서 싫대지만, 벚꽃을 생각하면 맨날 밤에 혼자 터덜터덜 걸어왔던 게 생각나고 목련을 생각하면 중학생이었던 나와 그때 친구들이 생각나서 난 목련이 더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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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 팔자 좋게 휴가를 냈다고 할 지 모르지만 저번주는 너무 지치고 지쳤던 한 주였다. 결국 눈치 엄청 보면서 저 금요일에 쉬겠다고 하고 쉬었다. 몸이 안좋아서 쉬기로한 것이니만큼 별다른 약속은 잡지 않았다. 단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그건 CGV 포인트 쓰기.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CGV 모두 이번 4월 30일 날짜로 포인트가 다 소멸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난 만육백점이나 되는데 영화를 보려고 봤더니 보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다. 저번 포인트 쓸 때는 보고 싶은 게 없었음에도 포인트 쓰는 마지막날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메종 드 히미코' 를 봤는데 재미 없었다. 이 영화 좋았던 사람들 도대체 어느 점이 좋았는지요? 난 진짜 재미없어 죽는 줄 알았다.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될 것 같아 직원한테 이 포인트로 그냥 영화관람권이나 상품으로 주시면 안되냐고 물어봤더니 작년 12월을 끝으로 그런건 없어지고 포인트는 현장 발권만 된다는거다. 결국 목적 달성 못하고 오후 5시경에 친구랑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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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45번 버스를 탄 나는 갑자기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그래서 그냥 종점인 월미도까지 가기로 했다. 그날에서야 안 건데 인천역을 지나서 월미도 가는 길 주변에 피어 있는 나무가 알고보니 다 벚나무였다. 월미도 가는 길에는 남항 입구가 있어서 컨테이너 박스도 산처럼 쌓여있고, 대한제분, 무지개 사료, 대한제당 등 무지막지하게 크고 삭막한 공장들이 즐비하고 바퀴 10개이상 달린 트럭들도 쌩쌩 달리는데 그런 길에 피어 있는 벚꽃이라. 이색적이고 멋질 것 같은데 이미 다 지고 바닥에 그나마 남은 벚꽃잎들만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놓쳐버린 것이 원통하기까지 했다.
난 원래 부터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혼자 다니다 보니 이젠 혼자가 편해진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내년에 제분공장 옆 벚꽃을 또 혼자와서 구경하더라도 별 상관없을 것 같다.

난 중3 3월 말에 대전에서 인천으로 전학왔다. 전학 수속 때문에 교육청에 갔던 때가 생각난다. 아빠가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나오시더니 남녀공학으로 갈래 여중으로 갈래? 이러시길래 그냥 여중 갈래요. 이래서 나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아주 가까운 여중에 다니게 되었다.
대전과 인천은 정말 딴판인 도시다. 난 중3때 전학와서 고1 여름에 다시 전학을 갈 때까지 내내 인천에 전혀 적응을 못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낯선 시절이다. 앞으로는 그런 낯선 내 모습은 절대 만들지 않을 거다. 일부러 우울해지려고 노력했던 시기라고 하면 웃기지만 실상이 그랬다. 난 신체발달도 다른 애들이 비해 엄청 느렸고, 그 덕에 사춘기도 늦었는데 중3때가 되어서야 사춘기가 와버린거다.
그 시기에 전학은 날 정말 힘들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었던 것 같은데, 학교에서는 멀쩡히 있다가 집에만 오면 자기 직전까지 울다 잠들었다. 눈이 퉁퉁 부어서 다시 학교가선 잠 많이 자서 부었나보다고 말하고 그냥 또 수업 잘듣고, 또 집에와선 울고. 동복입을 때 전학을 와선 하복 입을 때까지 나는 하루에 한번이상 안 울었던 날이 없다. 내 기분과는 반대로 성적은 수직 상승을 거듭했고, 대전에서는 오늘이 시험인지 아닌지도 모른채로 학교와선 다 찍고 그냥 엎드려 자고 100점 만점에 32점을 맞고 평균 60점 맞고 담배피고 술마시며 남자들과 어울려 다니는 애들과 놀던 불량 청소년 생활을 인천에 와서는 완전히 청산했다. 32점 맞던 과목을 중3 땐 심심치 않게 100점도 맞았으니 성적면에 있어서는 인천으로의 전학이 꽤나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난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는 인간인 줄 알았고 공부 잘하는 게 굉장히 힘든 건 줄 알았는데 진득하게 자리 잡고 앉아서 하면 누구나 다 되는 게 공부구나. 혹은 아.. 뭐 내가 머리가 완전 꼴통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공부에 있어선 자신감도 얻었다. 하지만 난 친구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 전학을 가서도 난 친구가 없었다. 그냥 친구들은 있었지만 단짝이 없었다. 중고등학교때 단짝이 얼마나 절실한지는 없어본 자 만이 알 수 있다.
대학교에 와서 힘든 일도 많았고, 지금 직장 생활도 많이 힘들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로 우울했던 시기를 꼽아보라면 아직까지도 당연히 중3부터 고1까지 이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고, 전혀 치유받지 못한 채로 남아 있는 과거라 생각만 해도 진저리 칠 정도로 싫다. (이래서 발달 장애라는 것이 무서운 거다)
예전 홈페이지나 블로그에는 내 16살에서 17살 까지의 기억에 대해서 많이 썼는데, 예전에는 시간이 많아서 그랬나보다. 그 시기에 대해 쓰려면 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글을 쓰고 난 후에는 또 그 때의 잔상에 시달려야만 한다.
복잡한 사정에 의해 나는 엄마와 헤어져 이모댁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미 난 다시 전학을 간다는 사실을 알고 인천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고등학교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었다. 이 고등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공부를 잘하는 것도 선생님한테 잘보이는 것도 전혀 의미가 없었다. 내 성적은 다시 급하강을 거듭하여 전교등수는 약 300등 넘게 떨어졌다. 반등수로 30등이 떨어졌으니 말 다한거다. 이때문에 내 고등학교 1학년 1학기에 평어는 거의 다 양 과 가 를 기록하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나 고등학교 때 양하고 가 하도 많아서 양갓집 규수였다고 농담 하지만, 그 때는 거의 인생 포기한 채로 살았다. 이모네 집에서 그냥 택시 타고 늦게만큼 학교오고 시험을 보든 말든 상관도 안했다. 우리 엄마아빠가 학교 선생한테 얘는 전학갈 애라고 말해놓은 터라 선생들도 내가 뭘하든 전혀 상관을 안했다.
중3때는 인천에서 계속 사는 줄 알고 그래도 친구들하고 잘 지내보려고 노력하고 공부도 하고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활달하려고 노력했던 애가 고등학교 오자마자 딴사람처럼 구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도 계속 친구 해주는 애는 없었다. 애초에 중3때 전학와서 알고 지낸지 1년 밖에 안된 애한테 뭐하러 그렇게 해주겠나.

그런데 그 시기에 유일하게 내 곁에 있었던 친구가 있다. 그 당시에 나는 걔한테 단짝이 되지 못했다. 이미 그 친구도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 때 부터 친했던 단짝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중학교 때도, 같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못나게 구는 때에도 그나마 내 곁에 있으면서 편지 써주고 내 얘기 들어주는 사람은 선생도 이모도 이종사촌언니도 아닌 내친구 민양이었다. (이런 걸 보면 학창시절에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 알수 있다)
아직까지도 내 인생 최대의 컴플렉스로 남아있는 학창시절에 유일한 친구는 민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다시 전학을 가서는 헤어져 있었지만 우리 둘은 싸우기도 하고 다시 화해하기도 하면서 대학교 때문에 내가 다시 올라오면서 만났다. 대학교 때 부터는 우리 둘은 단짝이 되었다. 집도 가까웠고, 20살이 넘은 우리는 의외로 서로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전에는 민양이 길가다가 다리가 꼬여서 넘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머릿속에서 상상하니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내 친구는 분명히 내 머릿속에서 상상한 그대로 넘어졌을 거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둘은 서로의 행동에 대해 빤하니까.
오늘도 그 친구와 하루종일 같이 놀았다. 난 스탬프를 모으는 취미가 있는 친구에게 새로운 스탬프 세트를 선물했다. 연인도 아니고 부부도 아닌데 이런 걸 챙기는 게 참 우습지만, 오늘 이렇게 나름대로 선물도 주고 받고 사진도 찍고 고등학교때 자주 가던 부평역까지 가서 웃고 떠든 이유는 우리가 알게 된 지 10년이 되었다!!! 라면서 자축을 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사람이든 낯설어 지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보통 그 낯선 시기는 힘든 시기일 때랑 겹치는 것 같다. 최고의 활달함을 자랑하던 내친구 민양도 가장 친한친구인 나에게 조차 낯설어지는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다행히 걔도 나도 그 낯선 시기는 다 넘겼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둘다 그 낯선 시기에도 곁에 있었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내친구 민양에게 너무 감사하다. 16살 이후의 내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민양! 36살되어서도 같이 친구했으면 좋겠다.


2주 연속.

일상 2008. 3. 16. 16:10
주5일을 하는 직장이라면 금요일이 제일 즐거워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엊그제 3월 14일 금요일은 날씨가 그야말로 환타스틱 했다. 목요일 밤에 비가 와서인지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금요일이었다.
3일연속 일이 별로 없어서 불안했던 내 예감은 완벽히 적중을 해서 내가 불안했던 것 이상으로 목요일부터 이상할 정도로 일이 몰렸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언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뭣 모르는 중 고등학교 시절 언론사에 종사하길 원했던 내 자신이 치욕적일 정도다. 언론 너무 믿지 말자.
저번주 금요일에도 기분이 뭣 같았는데 그냥 집으로 들어갔다. 딱히 만날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와서 혼자 비비큐 치킨이나 시켜먹었는데 이번주 금요일도 마찬가지로 퇴근 후 바로 집으로 왔다. 하지만 누구 만날 사람이 있었다고 한들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일이 많아서 어차피 늦게 끝났으니까.
참담한 기분으로 집에와서 친구랑 전화하면서 그나마 기분이 좀 풀렸는데 누워서 잘 때가 되니까 다시 기분이 다시 안좋아졌다. 서러움이 점점 커지면서 결국 엉엉 울었다. 그냥 가슴이 찡하고 갑자기 눈물이 한두방울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이불 뒤집어 쓰고 엉엉 울어버린거다. 저번주부터 사무실에서 울랑말랑 하다가 괜찮아졌다 가 계속 반복되는 상태였다. 그러다 뭐 터져버린 것.
내가 이런 내 상태를 얘기하면 다들 똑같이 이야기 한다. 아니.. 완전히 100% 솔직하게 말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 내 맘을 말해도 될까? 하고 조금이라도 내 맘을 내비치면 어김없이 똑같은 말이 나온단 말이다.

금요일 밤에도 어김없이 똑같은 말을 들었다.

"다들 그렇게 얘기하더라. 내가 필요하고 절실한 말은 그게 아닌데."
"그럼?"
"그냥.. 난 예전에 어떤 사람이 지금 내가 한 말이랑 비슷한 말 했을 땐 그렇게 얘기 안했어."

그랬다. 난 요즘 사람들이 나한테 얘기하는 그런 말은 안했다. 뭐 그 사람이 자기를 이해해 주는 게 나 밖에 없다고 한 말이 어쩌면 진짜였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풋. 뭐 세상에 자길 이해해주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는 건 그냥 그것 뿐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상태로 다 끝이나버렸다해도, 그 당시에 나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주변에 아마 단 한명도 없었던 모양이다.
막상 거의 동일한 상황이 나에게 당도해보니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평소에 날 좋아하고 위해준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결국은 똑같은 말만 하는거다.
난 예전에 그 사람만도 못하다. 예전 나처럼 말해주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으니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그때부턴 다시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랑 결국은 그렇게 재수없이 끝나버렸던 그 당시가 생각나서 또 가슴이 아팠다.  

난 지독한 이상주의자다. 어떻게든 숨기려고 하고 냉소적으로 보이려 하고 가끔씩 그래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난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하기 좀 부끄러울 정도로 이상주의자 인 거다. 하지만 난 30살 쯤이 되어서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요즘 사람들이 나한테 하는 판에 박힌, 어떻게든 불확실한 미래에서 벗어나도록, 그리고 가장 위험부담 없고 안전한 말로 위로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책임한 말이었지만 난 작년 이맘때쯤에도 지금도 내년에도 작년에 그 사람한테 했듯, 말할 자신이 있다.

내가 많이 힘들어하면 그냥 앞뒤 생각하지말고 거기서 니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주는 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 쳇. 그래. 그러니까 너랑 나랑은 안된다. 이거다. 그 2키로 더 빼라고 한 사건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결국엔 즐거워야할 금요일 밤에 엉엉 울다가 베게나 실컷 적시고 코나 풀고 눈물 때문에 땡기는 눈가에 다시 로숀을 바르고 누워선 음악을 들었다. 최근 3년간 가장 불행했을 때 들었던 음악을 찾았다. incubus, weezer .. 등등.
예전에는 내가 괴로웠을 때 들은 음악을 다시 찾아 듣기가 무서웠다. 힘들 때 배경음악이 되었던 음악을 다시 들으면 약 80% 정도는 그때 그 기분으로 다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정말 힘들 때 오히려 그런 음악을 찾아듣는다. 들으면서 그래 솔직히 예전보다 지금이 10배는 낫지. 안그래? 이러면서 혼자 위로하는거다.

내 곁에 정말 나한테 진정 위로가 되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걸까? 내가 남탓만 하고 그냥 내 덕이 부족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참으로 비겁한 행위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한테는 완전히 내 뜻을 내 비친적이 한번도 없다. 아마 걔네들은 나한테 똑같은 말로 위로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안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한켠이 이렇게 쓰린 이유는 날 진정 위해주는 '남자'가 한명도 없기 때문인걸까? 하핫. 인정하긴 싫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한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별 수 없단 말이다.


일본 여행에 다녀와서부터 몸이 여기저기 아프더니만 결국 담에 또 걸렸다. 내 친구는 담에 걸렸다 표현 안하고 담 들었다고 말하던데. 그렇게 말하는건가?
시름시름 앓기를 며칠, 장염 증세가 며칠 지속, 귀에 염증, 결막염을 거쳐 '담'에 코감기까지 단단히 들어버렸는데 거기에 목소리까지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에헤라.

저번주는 정말 악목같은 일주일 이었다. 내 생애 그렇게 일주일이 길어보긴 처음이었다.
내 생애 가장 길었던 일주일이여. 으흑.
화요일에 회사에 대형사건 하나가 뻥~! 하고 터져서 그 이후로는 수습하느라 반 죽을 뻔 했다. 다시한번 내가 일하는 부서에 회의감이 들었달까. 내 성미에 전혀 맞지 않는 일 하는 거 정말 괴롭다. 직장인들 대부분이 회사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직장 사람들한테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뭐냐는 질문 1위에 인간관계가 나왔다고 하니까. 나도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친해지지 못할 사람.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 친해지면 안되는 사람. 등등 여러 인간들이 회사에 많고 그것 때문에 관두고 싶다고 골백번 생각을 했지만, 내가 관두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이 일이 너무 싫기 때문이다. 솔직히 학교 다니면서도 죽어도 안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일 중 하나가 지금 하는 일이다. 졸업 후 제대로 돈도 못벌고 계약직으로 일할 땐 정규직이면 옳타쿠나 감사합니다. 하고 가려고 맘을 먹었고 여기 회사에 붙었을 최초에는 기쁜 마음이 컸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회의감이 들고 이 직무로 경력 쌓고 또 너 이 경력으로 회사 옮길래? 라로 자문해보면 오오 Never! 다. 내가 하고 있는 직무가 싫을 뿐 아니라 몸 담고 있는 직종도 싫다. 아. 싫은 것 투성이~~ 그래도 1년도 못 버티고 나오면 어디가서 버틸만큼 버텼다 말하기 쪽팔릴 뿐 아니라, 1년도 못하고 관둔 날 용서할 수 없을 듯 하여 1년은 버텨야 하지 않겠니? 라면서 버티고는 있지만..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뭔가를 계속 고대하고 있는 상태지만 저번 루쉰 책에 대해서 쓸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포기로 기울고 있다. (안돼!!! 루쉰 선생님의 말을 생각해! 희망은 미래에 속하는 것이잖아!! 라고 맘을 다잡아도 소용없다. 흑)
그렇다고 해결책이 있느냐? 관두고 나오면 니가 뭐 할 것이 있느냐? 없단 말이다. 아아아아악. 그래 일단은 1년이 되기까지의 유예기간이 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 그때가 되면 또 불현듯 어떤 결심을 하게 되리라 믿는다. 그렇다. 뭐 고민한다고 되는 일이더냐. 하루 하루 살아가고 주말 제대로 돌아와주면 되는 거 아니냐.
크크 이제까지 쓴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이거 뭐 무슨 정신병자가 쓴 것 같네.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이 혼잣말 하는 거 같잖아. 이거원. 혼자 고민하고 혼자 해결책 수습하고.

다시 내가 원래 말하고자 했던 내 몸의 증상에 대해 말해보자면.
저번 담의 증상은 '오른쪽으로 고개가 안돌아간다. 오른팔이 안 올라간다. 허리를 숙일 수 없다.' 이 정도였다. 아주 대형 담이었다고 할까. 이번 담의 증상은 딱 하나 왼쪽으로 고개가 안돌아간다. 이거 였다. 저번 담에 비한다면 아주 약한 증상이었는데 사람이 목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 거 단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생활이 불편해질 수 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오랜만에 우리동네 단골 한의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이렇게 날씨 좋은 주말에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보신다. "아.. 저기.. 목이 아파서."라고 말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단번에 "여기랑 여기 아니세요?" 라고 딱 집는데 이런 족집게 같으니라고. 정확하게 그 부분이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부항을 한 4개 뜨고, 침은 한 8방 맞고 찜질까지 마무리 짓는데.. 나이 26에 부항이나 뜨고 누워있고 내 신세가 좀 처량했다. 하지만 부항의 효과는 아주 탁월한 것이어서 한지 3일 밖에 안 지났는데 이젠 왼쪽으로 고개가 잘 돌아간다. 대신 부항 맞은 데 피멍이 크게 4개가 생겼지만.
난 침 맞는 건 하나도 안 두려운데 엎드린 자세로 꼼짝도 못하고 꽤 오랜 시간 있어야 하는 게 어찌나 좀이 쑤시던지.. 나중엔 머리가 지끈 거렸다. 3가지 코스 중 제일 맘에 들었던 건 역시 찜질... 잠이 솔솔 와서 결국 잠이 들었는데 깊게 잠드려는 찰나 끝났다고 일어나라고 해서 너무 아쉬웠다.
 
계산을 하기 전에 키랑 몸무게나 재볼까 하고 쟀는데 키는 그대로 몸무게는 2키로가 빠져있었다. 오.. 역시 최고의 다이어트 비법은 '일' 이로구나 하며 계산하고 나와선 잠깐 친구를 만났다.

여기서 한가지 사건.
집에와서 저번에도 등장하신 그 분과 전화를 하는데 일주일 동안에 살이 많이 빠져서 그런가 어지럽다고 말했더니 그 여세를 몰아서 2키로를 더 빼라는 거다.
그 순간 거짓말 처럼 이제까지의 감정이 싸그리 사라지면서 무서운 속도로 감정 정리가 착착 진행되며 역시 안된다.로 결론이 나버렸다.
하하하하. 역시 말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말 한마디에 당신 너무하는 거 아니야? 그것도 살 빼란 말에? 이렇게 되물어도 소용없다. 내가 기대한 말은 힘들겠다. 혹은 고생이 많았구나. 라는 말이었는데 그 여세를 몰아서 2키로를 더 빼라고? 어허허허. 어이가 없었다. 이런말은 안하려고 했지만, 2키로 더 빠진 내 몸무게는 누가 살빼라고 말할만한 절대 몸무게는 아니었단 말이다.! 그 체중계에서도 분명히 저체중이랬어!! 내가 물론 키가 다른 사람보다 작긴 하지만, 아무리 본인 기준에 내가 살이 좀 있다고 한들 아니 아파서 골골대는 사람한테 살을 빼라니! 이런 당치도 않은. 난 태어나서 누구한테 살 빼라는 말을 한번도 입에 담아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내 일생동안 충격적이었던 말 베스트 3 에 들만한 아주 엄청난 말이었다. 2키로 더 빼. 아아악.(오늘 이 아아악. 이 말 참 많이도 하네;) 다시 생각해도 충격적이다.

친한 친구랑 놀고 싶은 맘이 굴뚝같은 지 벌써 한달째. 친구는 시골에 내려갔다. 우울한 마음에 친구한테 이런 저런 넋두리를 늘어놓았더니 역시 내 친구 답게 이구 불쌍한 것. 이라고 해주는 거다. 아.. 눈물나게 고마운 친구. 요즘 날 불쌍히 여겨주는 건 너 밖에 없어. 엉엉. 친구 올라오면 맛있는 거 잔뜩 사주기로 결심했다.

친구오기 전에 이 만신창이 몸뚱아리가 조금의 차도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메모의 기술(?)

일상 2008. 2. 13. 16:36

1 26일에 오랜만에 신촌에서 친구를 만났다. 다른 선배도 동감하는 바 중 하나가 요즘에는 남자 만날 때보다 (근데 나 남자 만날일도 없지만) 여자 만날 때 겉모습에 더 신경이 쓰인다. 뭐 내가 쟤한테 기죽지 말아야지 이뻐보여야지 그런 수준을 다 떠나서 그냥 나랑 걸어다니는 거 자체가 꺼려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고, 솔직히 말해서 친구가 이뻐 보임 샘나기도 하고.;; 흐흐.


겨울이 시작되면서 거금 20만원을 주고 원피스를 구입하고 딱 한 번 입고 안 입었던 원피스까지 챙겨입고 나갔더랬다. 뭐 사실 입을 일이 없기도 했다. 외출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니다보니. 입고 나갔다가 낮 온도가 영상 8도 이상이 되기 전에는 다신 치마를 입지 않으리 결심했다. 그 다음 이튿날 까지 기침 나고 콧물 흘리고 고생했다. 아니 다른 여자들은 도대체 이런 날씨에 어... 치마를 입고 다니시는 건지!!! 난 온몸이 지방질인데도 이렇게 추운데.

 

신촌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현대백화점 가서 구경하다가 모자를 하나 샀는데 일명 탕웨이 모자다. 기회가 되면 사진 찍어 올리겠지만, , 계 마지막 장면에서 탕웨이가 썼던 모자랑 모양이 거의 비슷한데, 모자 안달린 코트 입을 때 하도 추워서 샀다. 살 때는 어후. 이거 쓸 수 있으려나? 했는데 어찌나 잘 쓰고 다니는지. 대만족 중이다. 새벽에 사람도 별로 없고 내가 추워서 쓴다는 데 뭔 상관.; 전철 탔을 때 다른 때와는 다른 시선이 느껴지긴 하지만. (대략 쟤 뭐야? 이정도?)

 

백화점을 구경하고 올리브영, 토다코사 같은 데서 향수도 뿌려보고 화장품도 구경했는데 거기서 우리 새해에는 좀 이뻐져야지! 하고 결심을 하면서 친구는 한번도 해본 적 없다는 ‘어두운 초록색아이섀도를, 나는 한번도 그려본적 없는 리퀴드 아이라이너를 샀다. 예뻐지기 위한 노력 치고는 너무 소극적이지만 말이다. 근데 결국 뭐 이럴 줄 알았지만 아이라이너 사놓고 한번도 안그렸다. 난 대학때 화장 기술이나 연마하지 당최 대학내내 뭐 했는지 모르겠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먹고 나가기 바빠서 색조화장은 꿈도 못꾸는데 아이섀도는 한 때 이상하게 여러 경로로 내 손안에 많이 들어왔다. 다들 싸구려고 얻은 것이지만, 심지어 금자씨에서 나왔던 빨간색도 있다. 근데 원체 내 눈 자체가 지방을 잔뜩 머금은 너무나도 몽골리안 스러운 모양을 타고 나서 아이섀도 해도 보이지도 않고 그런다. 아 다음 생에는 이목구비 뚜렷한 미인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하나님.

 

따뜻한 저녁을 먹고 차 마시고 친구가 나 서점 좀. 메모의 기술 좀 사려고.” 이러는 거다.

나는 막 과민반응을 보이면서 어머 어머!!! 그런 책이 다 있어? 왠일이야~~”

난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 얘가 왜 그런 책을 사지?” 이러면서 잠시 심각해 하면서 망설였다.

그 다음 친구가 회의하면 도저히 어떻게 적어야 할 지 모르겠어서~” 라고 말을 하기 전 까진 몰랐다. 그 책의 이름이 메모의 기술인 줄은.

부끄럽지만 난 그걸 애무의 기술로 알아들었다.

 

난 회의할 때 메모도 거의 안하고 대충 낙서나 하고 도대체 언제 끝나나만 생각하는데 메모의 기술까지 읽으면서 회의 내용을 메모한다니!

뭐뭐 하는 방법’ ‘뭐뭐 하는 기술’ ‘뭐뭐 해라이런 류의 책들 너무 싫은데. (괜한 심술은)

휴가 일기

일상 2007. 11. 17.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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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축할 일이면서도 슬퍼해야할 일이다. 도저히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눈치보면서 휴가를 냈고 받아들여졌다. 입사이후 처음 월차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을 연달아 쉴 수 있다. 현재 12시 58분이니 벌써 토요일이 되고도 한시간이 다 되가는구나.

  휴가 때 뭐할거예요? 물어봤을 때 늦잠이요. 라고 대답했다. 계획대로 오늘 12시에 일어났고 부랴부랴 챙겨서 오후 2시에 중학교 친구를 만났다. 휴학했을 때 이틀이 멀다하고 만났던 내친구. 농담삼아.. '사귀는 사이에도 이렇게 자주 만나기 힘들거야 그치?' 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는데 요즘에는 한 달에 한 번정도만 만나니.. 그때는 참 할 말이 많았는데.. 걔나 나나 오늘이 어제같고 오늘은 또 내일 같은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서 별 할 말은 없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할말이 참 많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상황=만나도 별 말 없이 앉아 있는 상황이 슬픈 건 아니다. 그만큼 편한 사이라는 증거일 수 있으니.

  백화점 앞에서 만나서 우리의 영원한 보금자리 구월동 던킨도너츠를 찾았다. 오 구월동 던킨도너츠!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 우리가 항상 앉는 자리가 비워져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난 친구에게 시계를 선물했다. 돈주고 산 건 아니고 디카를 샀더니 사은품으로 따라온건데 내 손목에는 너무 크고 놓아둬봤자 아무도 안 쓸 것 같아서. 선물을 주고 나니 왠지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또 하나 기분 좋았던 건 요즘 던킨도너츠에서 사은품 행사를 하는데 난 4등에 당첨되서 쿠숀을 받았다. 꽤 크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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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코엑스나 인사동 둘 중 한군데를 갈까 했는데, 친구가 항상 멀리 다니는데 쉬는 날도 멀리가면 피곤하지 않겠어? 하길래. 흠. 그것도 그렇군 해서 결국 구월동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으론 그러길 잘한 것 같다. 가끔.. 내가 주말에까지 서울에 가야하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주말에 혼자 용산 직통 지하철을 타면 출근하는 기분 나서 심히 기분이 묘하면서 나빠질 때도 있고.. 주말에는 아비규환 같은 구월동도 금요일 오후에는 한가했다.

  오늘은 정말로 고마운 날씨였다. 친구 말로는 하루하루가 예술이라는데, 난 오늘에서야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어딜가든 기분이 좋아질만한 날씨였고, 우리는 예술회관에서 곧장 걸어가면 나오는 작은 공원에서 이제 일주일이면 낙엽도 다 떨어지겠지. 제길. 이라며 뜬금없이 인생무상을 논했다;

  왠지 이번 주말이 내가 즐거울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인 것만 같은데.. 괴로운 건 그때가서 생각하자 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두려운 게 사실이다.

  친구와는 4시반 쯤 헤어졌다. 사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친구가 색,계 를 봤다는데 나도 너무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나 오늘 문득 든 생각이 있는데 여동생이나 언니가 있는 친구와는 안그런 친구들보다 '얘는 나랑 제일 친한 친구야!' 라는 생각 들기가 힘든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친해봤자 여동생이나 언니만큼 친한 친구는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친한 친구 4명중 이 친구는 유일하게 여자형제가 있는 친구인데.. 그런 생각이 자주든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나면, 난 이 친구랑 색,계 보자고 하려고 했는데 이미 여동생이랑 봐버렸다고 말하니.. 서운해서 흑. (별 게 다 서운하다) 아무래도 또 혼자 봐야할 듯 싶다. 내일에나 볼까.

편지 읽기

일상 2007. 11. 9. 16:21
핸드폰에 45개 전화번호만이 저장되어 있는 나는 솔직히 말해서 너의 진짜 친구가 몇명이냐 묻는다면?
흠.. 하나,둘,셋,넷. 손가락 4개 펴고 4명~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다. 하하핫.
그 네명도 중학교 친구,고등학교 친구, 대학 1학년때 단 몇개월 활동했던 동아리에서 알게 된 친구 하나, 다른 과 수업 듣다 알게 된 친구 하나 란 말이다.
따라서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1:1 로 만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거다.
원래 한 테이블에 4명이상 있으면 정신을 못차리는 나로서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어제는 몸이 좀 아팠는데 그 때문인지 매사에 짜증이 났다.
그나마 일찍 끝났으니까 망정이지 거기에 야근까지 했으면 진짜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거깃다 나 내일도 일하잖아? 아아아아아악.
어제 퇴근길에는 뭔가 위로할만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만나기에는 피곤했고, 결국 마을버스 앞에 있는 파리바게뜨에 들어가 맛있어 보이는 빵을 구입 했다.
그리고선 집에 가서 먹어도 될 빵을 굳이 마을버스에서 손잡이 잡고 서서 먹었다. 그만큼 긴급했달까.
꽤나 큰 베이비슈를 (생크림이 밖으로 빠져나올까봐) 억지로 한 입에 넣고 씹다보니 행복감이 밀려왔다.
이거야 말로 원초적 행복 아니던가.

집에 도착해서는 우울한 나를 위해 또 한가지 행동을 했다.
일요일에 만났던 친구의 편지 읽기.
저번에도 말했지만 친구의 편지는 언제나 나에게 큰 위로를 주기 때문에 받은 즉시 읽기 보다는 힘들때 읽곤 한다.
어제야말로 '잇츠 레터 타임!' 이었단 말이다.

다른 내용들이야 다 개인적 내용들이니 생략하기로 하고, 내 친구가 한 두가지 질문에 답하고 싶다. 나중에 답장으로 쓰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쓰냐면. 생각보다 질문에 답 생각하기가 재밌어서.

첫째 질문은.
너는 니 맘이 제일 약해있던 때를 생각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올라? 아쉬움일까. 어쩜 시간이 더 지나면 쪽팔림 보다 다른 감정이 더 지배적일지도 몰라. 그땐 어떤 생각을 할까.
- 짧게 말하자면 난 아직도 쪽팔림 인 것 같다. 쪽팔림 이전에는 '난 불쌍하고 힘들었어.' 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 이후에는 그 따위 것 가지고 그렇게 내 자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쪽팔려 지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맘을 그렇게 약하고 힘들게 만든 그 사건이 시간 지나고 보니 전혀 힘들지 않았고 별 거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 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이 당당해지려면 힘든 사건에 대하여 자존심에 상처를 전혀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마음속으로부터 떳떳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거 아닐까.
그런데, 더 중요한 건 .. 난 절대 그런 사람이 못된다는 거고, 그런 사람 보면 인간미 없다고 느낀다는 거지. 흐흐흐

둘째 질문은.
15년 후 바라는 모습은 어떤 그림이야?
- 내 친구는 혼자 가고 싶은데로 드라이브 가서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서 트렁크에 책 가득 싣고 오는 것 이란다. 꽤나 멋진 모습이다. 근데 난 또 한 가지 깨달았다. 내가 이제까지 내 나이 마흔을 생각하면 정말 언제나 꼭 옆에는 남편님이 계셨던 거다. 내 자식에 대해서는 생각 안해봤지만, 어찌되었든 불과 5년 후를 생각해도 꼭 내 곁에 남자 한명이 있다는건데. 갑자기 기분 나빠졌다. 왠지 내가 의존적이 된 것 같잖아!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신랑곁에서 어떻게 하면 이쁜짓을 많이 할까 궁리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안하는 건 아니었다.
훗. 이제 연애고 뭐고 아무 생각 없어진 이 마당에 비참하게시리 왠 남자 생각;
15년 후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멋진 것으로 생각하고 싶은데..  원하는 것을 억지로 생각해 낼 순 없는거고.

그런데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생각하고 또 그 모습을 그려보는 것 자체가 나에게 아직 나와 앞으로를 함께할 정해진 남자가 없기 때문 아닐까.
그러니까 내 구미에 맞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지.
뭐.. 솔로의 특권이라면 특권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