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곳 없는 마음.

일상 2010. 10. 7. 17:55
나는 과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덩그라니 혼자.
혼자 일하니까 어차피 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업무 가지고 서로 얼굴 붉힐 일 없고 조용하고 어떻게 보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난 교수 9명의 모든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비서와 다름없고, 까다롭기 그지없는 대학원 행정 업무도 매일 대학원 행정실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사회성이 부족한 성격 탓에 교수님이랑 몇마디 할라 치면 혀가 굳어 제대로 말도 못하고 그런다.
생각해보니 난 지금 여기 교수들 만큼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업무적으로 일해본 경험이 없다. 예전 회사도 내가 나이 많은 편에 속했으니까. 대리 과장도 거의 30대였고 심부장도 40살 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 학교는 나이든 분들이 너무나 많아서 어색하고 도대체 그 나이대 아저씨 들과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학교 하면 뭔가 한가한 이미지가 생각나지만, 난 정말 과사무실에서 쉴 새 없이 일하고 있다. 각 부서에서 뭐해라 뭐해라 계속 공문이 온다. 공문 보면 기한이 항상 있는데 난 그 기한내에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지금 내 업무 능력 안에서는 모든 기한이 다 촉박하기만 하다. 거기서 하라는 내용을 아무리 쳐다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잡힌다.
또 여기는 엄청 외롭다. 전화가 많이 오니까 음악을 틀어놓기도 뭐하고 교수님을 맞상대해서 일하고 있는 동료가 한명도 없으니 답답한 마음이나 억울한 마음을 함께 토로하고 공감해줄 친구가 없다.
회사에서 사귀는 친구의 부질없음을 깨달아서 좀 씁쓸했지만, 친구사이인 척 하는 한시적인 관계라 하더라도 마음을 트고 지낼 딱 한 사람은 필요한 거 같다.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 라디오 같은 게 만들어진 거 같기도 하고.
원래 혼자서도 잘 지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난 어디에 있든 진짜 친한 한명은 있었다. 그 한 사람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외로움도 안느끼고 잘 지냈던 거 같은데 여기는 그 한사람이 없네.
아. 청승맞게 갑자기 눈물이 핑돈다.
사실 오늘 너무 힘들었다. 아... 힘들다. 역시 사람은 간사해. 예전 회사에서는 거기만 벗어나면 장밋빛 행복한 미래일 줄 알았는데.

8월 정읍휴가 사진을 이제서 올린다. 2008년 큐슈 사진도 아직 안 올린 마당에..
난 한달이 안되서 오늘도 일하고 금요일에도 일한다. 그래도 어차피 계획도 없고 일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고맙게도 휴가가 끼어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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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휴가의 목적은 휴가의 목적 보다도 친구를 보러 가는 의미가 컸다. 실제로 2박3일동안 2일은 친구랑만 놀았다. 정읍에서 동생도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와서 그때 친구들 만나고 엄마 아빠는 엄마 아빠대로 쉬시고.
첫날 나는 완전 포식했는데 처음에 친구 만나서는 와플이랑 커피를 마시고 그 다음에는 정읍에 내려오기 전 부터 먹여야지 먹고말리라 하고 벼르고 있었던 냉면과 시장에서 사온 순대까지 하루종일 먹었다. 냉면은 4천원 가격에 최고의 맛이었다. 으흑. 또 먹고 싶다. 인천에는 그만큼 맛있는 집이 없다. 난 맛있는 집 찾아다니면서 먹는 사람은 절대 아니고 밥은 한 끼 때우면 된다는 주의지만 진짜 인천으로 와서 맛있는 냉면을 먹어본 기억이 없는 건 유감이다.

아까 11시까지 이거 쓰다가 누웠는데 잠이 도저히 안와서 다시 2시에 일어났다. 연휴를 앞두고 설레여서 그런가? 아니면 낮에 편의점에서 사먹은 스타벅스 더블샷의 효과인가. 노래를 5곡 넘게 듣도록 잠이 안와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왕 쓰던 거 마저 써야겠다.

친구와 맛있는 냉면을 먹고, 시장에서 순대를 사서 내장산 밑에 있는 공원에 가서 물쇼(?)를 보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생각보다 모기도 별로 없고, 발시려워서 구비해온 양말을 신었을 정도로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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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날은 정읍살 때 부모님께서 잘 가셨다는 담양의 카페를 가기로 하고 달렸다. 담양에서 정읍으로 오는 길은 영화 촬영도 많이 하는 메타스콰이어 가로수 길이 있는데 움직이는 차 안이고 하여 제대로 찍지 못하였다. 부모님께서 잘 가셨다는 카페는 문을 닫아 폐허가 되어 있었고 물이 넘실 넘실 댔다는 담양호는 물이 바짝 말라 있었다. 쓸쓸함을 뒤로하고 다시 차를 타고 전라북도로 넘어왔다. 동생이 운전을 해본다고 졸라서 동생이 운전을 했다. 난 2006년에 면허 딴 뒤로 운전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필요함이 느껴지면 자연히 될거라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전혀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차를 모는 편리함을 아직 누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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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읍으로 돌아와서 쉬었다가 친구 회사 끝나는 시간에 맞추려고 시내로 나왔다. 나 고등학교 때 보다 시내가 더 커져 있었는데 아무리 일요일이라지만, 문을 하나도 안 열었고 사람도 뜸했다. 고등학교 땐 도시가 그렇게 그리웠는데 이제 커서 정읍 시내를 가보니 그냥 여기서 조용히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도 내가 다른 곳으로 돌아갈 사람이니까 하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친구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남아서 아이스크림을 시켜놓고 카페 안에 있는 초등학생용 안철수에 대한 책을 읽었다. (진심 재밌었음. 끝까지 못 읽은게 아직도 한 ;)
친구가 먼 곳에서 왔다고 장어를 먹으러 가자고 해서 차를 타고 고창까지 또 갔다. (약 한시간 10분) 가는 길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왔는데 친구는  씩씩하게 운전을 잘만 했다.
한마리에 만팔천원 짜리를 친구가 사줘서 황송히 먹는데 도저히 한마리는 다 못먹겠어서 남은 건 포장을 해왔다. 그리고 모텔 (우리 가족은 내장산 안에 있는 모텔에 묵었음) 에 돌아와서 케이블 영화를 한편 보고 죽은 듯 자고, 집으로 돌아와선 돈벌러 과외하러 갔다. 짧은 여름 휴가 사진 정리 끝!


많은 일.

일상 2010. 8. 9. 21:56
1. 3일 동안의 해프닝
회사를 다닐 때도, 지금도 난 후회 중이다. 이제와서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대해서 후회 해봤자 나만 괴롭지만, 이대로 그냥 인생이 잘못되어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두렵기도 하다. 난 아무래도 대학 때부터 길을 잘못든 거 같다. 내가 원하는 전공은 죄다 대학 졸업해서 손가락 빨고 있어야 되는 전공들이라 지금 전공을 고수했지만 그 때부터 모든 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전공도 회사에서 했던 일도 모조리 괴롭기만 해서 그래서 관뒀다. 가려고 마음 먹었던 직장은 찝찝함이 있었지만 안정성과 업무가 내 마음에 들어서 간 거였다. 어디가서 대졸 연봉이라고 말하기도 쪽팔린 월급이었지만.
그러나 큰 문제가 생겼고, 지금은 다행히 해결이 되었다. 업무가 내가 생각한 업무가 아니었다. 나중에 거기에서 일하고 있는 같은 또래 사람들한테 들어보니 날 뽑은 사람이 자기 후임에게 너무 관심이 없어서 무슨 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댄다. 하루 갔다와서 어떤 업무인지 확인 하고 경악을 하고,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평소 내가 다른 사람보다 긍정적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고민으로 잠을 못잔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 이전까지는 아무리 심한 고민이 있어도 눈을 감으면 잠을 자고 눈을 뜨면 아침이었다. 중간에 깨도 다시 잠을 잘만 잘 잤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 인생이 걸린 문제였다.
결국 난 하루 일하고 그 다음날 가서 관둔다고 이야기 하고 그 다음날 오전까지 일하고 그냥 집으로 와버렸다.

2. 무서운 교수
회사를 관두고 나오면서 난 전직장 첫 월급으로 산 시계를 잃어버렸다. 날씨도 엄청 더웠다. 고민이던 일이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지금 형편으로는 절대 못살 시계라고 생각하니 두고 두고 아깝다. 더운데 중앙선 전철을 15분 넘게 기다리고 있다보니 정신이 혼미했다. 날 추천한 교수는 엄청 다혈질 교수였다. 자기가 추천한 학생이 이렇게 황당하게 관두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히 전화해서 욕을 퍼 부을 것이다. 하고 각오를 했다. 일단 메일을 남겨놓긴 했지만 난 사형선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전화를 기다렸다. 그런데 의외로 괜찮다고 메일 답장이 와 있었다. 난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 메일을 보고 소리를 꽥꽥 질렀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다닌 학교 때문에 덕 본적은 단 한번도 없고, 그 교수도 업무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거고 난 이미 졸업자니까 그렇게 쫄고 죄송해할 필요 없는 거였는데.

3. 야구장
일을 시작하면 야구장에 가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이 더운 날씨에 야구장에 다녀왔다. 2000년 이후 야구장 가서 단 한번도 이기는 경기를 못 본 우리 아빠와의 야구 관람은 앞으로 피해야겠다. 뭐 아버지 때문에 기아가 지는 건 아니겠지만, 아빠랑 가면 다 진다. 7월 31일에는 동생이랑 갔기 때문에 기아가 이겼다. sk 랑 붙는거라 당연히 진다는 생각으로 갔는데도 이겼다. 2008년에 기아가 시즌 내내 sk 한테 딱 3승 했을 때 첫 승 하는 경기는 내가 혼자 야구장에 갔었던 서재응 선발 경기였다. 이 정도면 괜찮은 확률로 이기는 경기를 관람하는 편이다.

4. 부모님과의 휴가
백수가 된 뒤로 매일 놀고 있기 때문에 휴가가 필요없지만, 처음으로 부모님과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회사를 다닐 때는 맨날 비행기 타고 떠나서 부모님과 휴가를 보낼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차를 타고 전북 정읍을 다녀왔다. 4명이서 한 방에서 자고 차타고 산 속 돌아다니는게 한 일의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부모님께 서운했던 마음이 많이 가시는 느낌이다. 부모님께서 원하는 내 모습이 최종적으로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부모님도 만족하고 나도 나름 만족하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5. 고등학교 친구
인천에서 정읍으로 처음 전학을 갔을 때 이런 곳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28살이 되어 보니 이제와서는 그런 산골에서 조용히 사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인천에 있다고 해서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물가도 더 싸고 어차피 친구는 한달에 한번 정도 만나면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또 그게 아닌 모양이다. 시골에서 젊은 시절 낭비하면서 시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친구는 많이 힘든 모양이다. 친구 차로 고창 가서 장어도 먹고 내장산 안에서 분수도 보고 했는데 걔나 나나 많이 답답한 미래인 것 같아서 마음이 별로 좋지 않다.

피곤해서 빨리 자야겠다. 위 일련의 일들에 대해서는 차차 포스팅할 날이 오겠지.

백화점은 고행길.

일상 2010. 7. 11. 23:36
친구가 여름휴가를 처음으로 해외로 간다고 하여 백화점에 같이 쇼핑을 갔다.
난 물건을 살 때 가는 매장이 한 5개로 압축되는데, 물건을 사는데 정말 한시간도 안걸린다.
물건을 산답시고 여러 매장 돌아다녀봤자 결국에는 처음에 이뻤던 거 다시 가서 사게 되서 그냥 처음 봐서 이거다 싶으면 산다. 그래서 엄마와 난 백화점을 정말 오래 돌아다녀도 2시간 이내다.
오늘 친구가 살 물건이 워낙 많기도 했지만 난 오늘 롯데백화점 3층,4층,5층,6층을 다섯번 이상 왔다갔다 하고 친구는 옷을 6벌 이상 입었다 벗었다 했다.
백화점에서 그나마 편한 매장은 남성복 매장이라고 한다. 특히 나이 좀 드신 남자분들은 들어와서 옷 입어보면 거의 다 바로 구매로 이어진다고. 난 탈의실에서 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는 걸 엄청 귀찮아 해서, 웬만하면 안 입어본다. 저번 겨울에 원피스 하나 사겠다고 원피스를 2번 입어봤는데 옷 입고 벗고 하다가 죽는 줄 알았다. (한겨울인데도 땀이 뻘뻘나)
아 갑자기 원피스 하니까 갑자기 생각나는데 저번에 백화점 행사장에서 옷을 보고 있는데 어떤 남자와 여자가 옷을 사러 왔다. 여자는 가슴이 무지하게 컸다. 원래 가슴이 큰 것보다 살 + 가슴 이 함께이기 때문에 가슴이 큰 케이스였다.
원피스를 입어본다고 하고 나왔는데 원피스 옆에 지퍼가 가슴까지 안 올라가서 그 여자는 그냥 속옷이 훤히 보이는 체로 나왔다. 지퍼가 안 올라가면 그냥 다시 원래 옷 입고 나와서 다른 사이즈를 입어볼 것이지 그렇게 속옷 훤히 보이는 체로 도대체 왜 탈의실 바깥으로 나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남자 표정이 더 웃겼다. 내 여자친구 가슴 크지? 하는 완전 자랑스러운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워 죽으려 하는 표정. 엄마와 난 열라 비웃었다.
친구 덕분에 요즘 백화점 매장에 파는 옷을 엄청 많이 구경했는데 생각보다 사고 싶지 않아서 놀랬다. 회사 다녔음 오늘 옷 한두개는 사왔을지도 모르는데. 친구와 백화점을 엄청나게 돌아다니면서 남자들이 쇼핑 정말 싫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나마 친구가 롯데백화점 안에서 다 끝내준 게 고마웠다. 신세계도 가볼까? 하는데 거기는 사람 더 많아서 여기보다 옷 별로 없다고 거의 애원을 했다. 신세계까지 안가서 정말 다행이었다. 신세계까지 갔으면 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버스에 내려서 횡단보도를 걸어오는데 머리가 핑~ 하고 돌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 너 혼자 골라라 나 쉼터에 앉아있을께 할 수도 없었다. 아이고 다리야.
앞으로도 난 그냥 사야할 아이템을 확실히 정하고 내가 즐겨입는 브랜드 매장가서 그냥 거기서 다 사기로 했다. 쇼핑은 못할 짓이다. 너무 힘들다. 오늘은 빨리 자야겠다.

4월 17일 북서울숲

위로 2010. 5. 17. 23:06
지금은 이탈리아에 가 있는 친구랑 4월 17일에 봄나들이를 다녀왔었다. 난 동대문을 지난 서울을 한번도 간적이 없었는데 그 기회로 한번 가봤는데 정말 미지의 세계였다. 엄청 멀었다.
봄나들이 치고는 그닥 날씨가 안 좋았지만, 그래도 회사를 관두고 딱 일주일 되고 간 나들이라 기분이 새롭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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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지 얼마 안된 공원이라 그런지 뭐든지 깨끗하고 좋았다. 방문자센터에서 나눠주는 guide map 도 엄청 좋다. 예전 일본 여행가서도 관광지 팜플렛 같은거 가지고 와도 다시 쳐다도 안보면서 열심히 챙겼다. 친구와 나는 guide map 을 참고하여 북서울숲의 모든 곳을 다 돌았다!! (생각보다 별로 힘들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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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울숲 안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하나 있는데 왠지 엄청 비싸보였다. 친구와 나는 전철역 앞 김밥천국에서 간식을 먹고 (라볶이와 김밥) 가서 저 레스토랑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레스토랑 이름은 라 포레스타 인데, 그 레스토랑 앞에 핀 꽃들이 너무 이뻤다. 같은 꽃 종류로 되어 있지 않고, 여러가지 종류 꽃이 불규칙적인 듯 하면서 통일성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래서 사진도 제일 많이 찍었고. 특히 양귀비 꽃을 처음 봤는데 도라지꽃만큼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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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울 숲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우리 둘은 저 전망대만 가자는 생각에 이상한 등산로도 아닌 길로 계속 올라가다가 고생 좀 했다. 나랑 친구가 고생하는 건 괜찮은데 우리 뒤에 청치마에 부츠까지 신은 여자와 남자가 우리를 쫓아 오셔서 심적으로 부담스러웠다. 결국 그 커플 중 남자분이 "저기... 여기 길 맞아요? " 라고 물어보셨는데, 그러니까 왜 우리를 쫓아오셔선 사서 고생을 하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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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울숲에서 친구와 사진을 찍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청계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북서울숲에서 고등학교 여자애들이 사진을 찍길래 내가 뛰어서 자리를 비켜주니까, 그 여자애들이 "엇 존나 빨리가네?" 이러는 것이 아닌가. 친구와 나는 순간 울컥 했지만, 그냥 조용히 내려왔다. 이것들이 10살이나 더 먹은 언니한테.
저녁을 먹으러 우리는 시청 쪽으로 갔다. 둘다 배가 고팠던 때라 부대찌개 집을 들어가서, 짐승처럼 밥을 먹었다. 크크크. 둘이 정말 빨리 밥을 먹고 이제 차를 마시자 하고 청계천 주변을 보니 한국에 있는 모든 커피 전문점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예전에 친한 남자 친구 (여기서 가끔 나오는 유일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대학친구) 랑 함께 갔던 카야토스트를 갔는데 밥을 먹었는데도 허전하여 토스트를 두개 시켜 먹었는데 그 맛이 천상의 맛 이었다. 난 카야토스트가 싱가폴 체인 인 줄 몰랐는데 친구가 싱가폴에서 온 거라고 말해줬다. 강추합니다. 카야토스트. 원래는 로티보이를 갈까 했는데 카야토스트를 간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예전에 TV 에서 시청 주변의 높은 건물들을 보면서 나도 저 건물 중 하나에 들어가서 멋지게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크크크. 도대체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뭐가 얼마나 잘난 것일까. 아 또 열폭.
요즘 들어서는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가끔 드는데, 내가 세계에서 가본 나라가 딱 일본 하나 뿐이라고 해도 난 별로 안 서운하다. 내가 여행의 참맛을 몰라서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난 나름대로 전철타고 한시간 가야 하는 곳이라도 대충 저렇게 하루 보내면 만족하고 그런다. 너무 수수한가.

맥주를 마시며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 서로 그닥 새로울 것 없는 사이라 얘기도 유치하게 드라마 보면서 연예인 얘기가 주였다. 맥주랑 포도 먹으면서 친구에게 오른쪽 눈썹 부분에 난 여드름이 너무 아프다고 엄살을 좀 부렸더니 친구가 피부과에서 처방 받아서 주는 연고라고 발라줬는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날 여드름이 완전 쏙 들어갔다. 이래서 피부에 돈을 들이는구나 싶었다.
기차를 장시간 타서 그런지 난 엄청 피곤했고, 친구네 집에서 손님왔다고 보일러를 아낌없이 가동시켜 주신 덕분에 등 따숩게 잘 잤다. 친구는 잘 못잤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같이 TV 좀 보다가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씻었다. 그릇도 이쁜 것만 꺼내주시고, 반찬도 엄청 신경 쓰신 것 같아서 송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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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어디갈까 궁리를 하다가 친구가 가기로 한 곳은 산림박물관. 가만히 보면 친구도 특이하다. 많은 장소 중 왜 산림 박물관이었을까. 정읍에는 벚나무가 많은데 저기 위에 보이는 길은 내가 고등학교 때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길로 버스타고 지나가다보면 별안간 외로워지고 내 신세가 처량해지고 그랬다. 내가 온 날 비바람이 많이 불어서 꽃이 많이 떨어졌지만, 사진으로 찍어놓으니 볼만한 걸.
순창에 있는 산림박물관으로 내장산을 삥삥 둘러 올라가는데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산림박물관에 도착했는데 무서울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도시에 있으면서 그 정도의 정적을 느낄 일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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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박물관을 좋아하는 것 같다. 박물관에 갈 때마다 아... 내가 참 아는 게 많았으면 이 박물관이 더 재밌었겠지 싶지만, 그때 뿐이다. 저 산림박물관도 우리나라에 있는 산과 산맥 그리고 식물 등에 대한 정보가 많아서 유익하고 재밌었다. 식물에 관한 내용을 보니까 중학교 때 배웠던 게 생각나면서 다시 중학교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아주 잠깐 했다. 기대 안하고 갔지만 산림 박물관에서 "한지" 제조 과정도 봤는데 오 완전 몰입해서 봤다. 백두대간과 다른 산맥을 표시한 대한민국 지도를 (엄청 크게 되어 있어서 알기 좋았음) 보면서 내가 참 무식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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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 오후 3시쯤 배고파서 간 중국집은 참 한가했다. 이런 시골에서 이렇게 큰 중국집 운영하면서 생계유지가 가능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급스러운 중국집이었다. 짜장이랑 짬뽕안에 들어간 재료들도 매우 충실했다. 그런데 난 짜장면을 급히 먹다가 폭풍설사를 작렬했다. (아 드러 -_-) 어쨌든 먹을 때는 맛있었으니까. 양이 너무 많아서 남기긴 했지만.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기차역에서 기차를 한시간 정도 기다리면서 아픈 속을 두유로 달랬다. 맞는 시간대에 무궁화가 없어서 올 때는 무리해서 KTX 를 탔다. KTX  안에는 무궁화 열차에서 내 앞에 앉아있던 무지하게 무식하고 목소리 커서 귀고막이 터질 것 같은 아저씨 같은 사람은 없어서 좋았다. 그리고 1시간 이상 빠르고. 친구가 좀 가져가라고 해서 가져온 맥스봉을 먹으며 난 용산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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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고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에와서 씻고 그날 밤에 난 많이 울었다. 아무리 내 친구의 어머니지만 그냥 내 친구 어머니가 너무 가여웠다. 자세히 말하면 친구네 집 상황을 너무 말하는 것 같아서 그렇지만, 집에 오니까 참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서 누워서 많이 울었다. 친구도 그렇고 친구 어머니도 그렇고 참 인생이 허망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었다. 그 때 다른 친구가 잘 지내는 문자를 절묘하게 보내서 답장 보내다가 간신히 울음을 멈추고 잠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부터는 몸살이 나서 조금 고생했다. 지금은 완쾌.


퇴직이후로 자유인이 된 것을 만끽하며 살았다. 이제 겨우 2주일 되었을 뿐인데 예전부터 집에서 놀았던 사람처럼 살고 있다. 지금 뭐 하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말이 없는 소속없는 인생에 아직 마땅한 대책없이 지내고 있지만, 꽤 바쁘다.
4월 19일부터 20일까지는 정읍에 간 친구를 만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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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너무 늦장을 부리다가 원래 타려던 기차를 놓치고 다른 기차를 탔는데 거기서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난 영등포역에서 별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일부러 더 먼 용산으로 표 끊었는데, 영등포로 했으면 안 늦었는데.
용산에서 무궁화를 타고 자려고 하는데 앞에 앉은 무식하게 목소리만 큰 아저씨가 기차 타고 가는 내내 시끄럽게 해서 죽는 줄 알았다. 근데 워낙 질 나쁜 아저씨 같아서, 꾹 참고 자는 척 하고 신경도 안쓰이는 척 했다. 힘들었다. KTX 타면 2시간 10분인데 무궁화를 타니까 3시간 30분 이었다. 용산까지 가는데 우리집에서 1시간 걸리니까 총 4시간 30분이 걸렸다. 친구는 다음부터 기차말고 버스로 오라고 했지만, 버스는 더 피곤하고 기차타 버릇했더니 버스는 꼴도보 기싫어졌다. 평일에도 무궁화 열차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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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가 니가 엄마아빠보다 낫다고 말했던 게 내가 정읍에 가면 친구가 차를 끌고 마중을 나와준다. 정읍역에 5시쯤 도착하여 보니 비가 꽤 많이 오고 있었다. 뛰어가서 차를 타니 친구 어머니가 시장 가서 뻥튀기 튀긴다고 같이 타고 계셨다. 인사를 하고 시골 시장으로 가서 뻥튀기를 튀겼다. 어렸을 때 그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심장이 떨어질 것 같고 가슴이 터질 것 같더니, 커서 들으니 그렇게 무서운 소리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멀리서 뻥튀기 차 보이면 그 가까이로 지나가지도 못했는데... (난 큰 소리에 굉장히 취약해서 풍선 터지는 소리 운동회때 총소리를 엄청나게 무서워했다)
뻥튀기를 튀기고, 친구 어머니가 팥칼국수를 사 주셨다. 시장 안에 있는 식당이었는데, 역시 본토의 맛!! 고등학교 때 잠깐 전라도에 살면서 제일 좋았던 건 주말마다 먹던 팥칼국수. 서울에서 한다는 집에서 먹어봤지만, 본토의 맛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저 양 많은 게 단돈 3500원. 김치는 또 어찌나 맛있든지.
배터지게 팥칼국수를 먹고, 친구가 너 진짜 쌍화차가 뭔지 아냐고 물어봐서 모른다고 했더니 데려가 준 전통찻집. 드라마에서 나오는 진짜 맛없게 생긴데다가 계란 노른자 풀어먹는 차가 아니고, 진짜 한약재 많이 들어가고, 안에는 밤 알갱이, 대추 알갱이 등이 가득 들어간 맛있는 차 였다. 젊은 애들은 한약 같다고 못 먹는대지만 난 쌍화차 마시니까 소화가 쑥 되는 느낌나고 기분이 한 껏 좋아졌었다. 바깥에는 비바람 불고 따뜻한 찻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회포를 풀었더니 무궁화호 열차안에서 느꼈던 피곤이 다 가시고 즐거웠다.
롯데마트 들러서 친구랑 밤에 먹을 포도랑 맥스봉소세지(사랑합니다 맥스봉), 맥주 등을 사서 처음 친구네 집에 갔다. 손님 왔다고 보일러도 많이 틀어주시고, 자리까지 깔아놓아주셔서 진짜 감사했다.
친구가 밤에 생리통때문에 토하느라 왔다갔다하고.. 내가 날을 잘못잡은 것 같았다.
 
작년 1월 벌써 1년이 훨씬 넘은 일이지만, 내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친구가 어려운 결심을 해서 시골로 내려갔다. 난 가까이에서 살던 가장 친한 친구가 곁을 떠난거라 많이 심심하고 외로웠지만, 친구네 집에 가보니 거기에 내 친구가 없으면 정말로 친구 어머니가 너무 가여워서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내친구도 답답하겠지만 그래도 대단한 결심히고 친구의 상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난 솔직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꾹 참았다.


새벽 3시에 갑자기 예전에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 등이 생각나서, 책상서랍을 뒤졌는데 없었다. 예전 블로그 할 때 올리느라고 스캔해놓았던 거 같아서 사진을 보다가, 입사한 지 얼마 안됐을 때 찍어놓았던 사진들까지 나왔다.
그나저나 그 폴라로이드 사진 내 인생에서 찍은 사진 중 최고 잘나온 사진이었는데 완전히 없어져 버렸잖아. 아깝다.  스캔한 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첫월급을 타고 산 건 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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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비싼 시계는 아니지만.


회사 관두고 싶으면 첫 월급때 받은 시계를 보며, 전의를 다지자는 의도로 시계를 샀다. 지금도 저 시계를 맨날 차고 다니는데 유리에 기스가 장난이 아니다. 아무리 20만원 아래 시계라지만, 이렇게 기스가 나는 건 좀 심하지 싶다. CK 시계 다른 사람들은 안 샀으면 좋겠다. 저번에 유리랑 약이랑 교체했더니 교체비용만도 총 합쳐 5만원이었고.
저 시계 사진을 보니 생각 나는데, 내 신체 부위 중 가장 자신 있는 곳은 "손등" 이다. 손등과 더불어 뒷통수. 가끔 난 뒷통수 미녀라고 말하고 다닌다.  (두상이 이쁜 편임) 이 바로 전에 쓴 포스팅에 말한 남자친구랑 싸우면 전화하는 친구는 전체적으로 엄청 이쁜 스타일인데 손하고 발이 컴플렉스다. 난 전체적으로는 별론데 손하고 발만 보면 또 괜찮다. 내 외모 중 유일하게 괜찮은 데가 손등이다 보니 난 내 손등에 꽤 큰 자부심이 있다. 크크크크. (별게다)
회사 관두는 마당에 회사 처음 들어왔을 때 사진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저때로 돌아간다면 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사실 선택의 자유도 없기는 했지만... 저 때만 해도 내가 어렸는데 그때 난 내가 엄청나게 나이가 많은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용은 개인 공간에서 남 욕 하는 거 같아서 정말 하기 싫었지만.

나 아는 친구 한 명이 있는데 걔가 나에게 부여한 역할은 남자친구랑 싸우거나 헤어지면 하소연 들어주기 인 거 같아서 갑자기 울컥했다. 물론 친구사이에서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 이야기 하는 건 당연한 거지만, 나에게 전화하거나 찾아오는 이유의 99.9% 가 남자친구랑 싸운 이야기나 헤어진 것 같다고 이야기 하려고 하는 거면 조금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0.1%도 처음에는 남자친구 이야기는 안하지만 필경, 남자친구가 문자를 씹었거나, 남자친구가 전화를 안받거나, 남자친구가 약속을 취소했거나 했을 때 허한 느낌에 전화를 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생각해보니 걔랑 부쩍 친해진 때도 남자친구랑 헤어진 후 였다.
나에게 전화하여 나도 너처럼 독립적으로 혼자서 즐기며 살 거다. 매번 나한테 결심을 하더니 3달도 안되서 다른 분을 만났다. 뭐 이런 것에 대해서 비난을 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그 친구는 키크고 이쁘고 (항상 부럽다) 항상 남자친구가 있었던 사람이니까 그러는 것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왜 하필 내가 남자친구랑 싸우면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이 된 건지 모르겠다. 왜 하필 하고 많은 사람과 많은 역할 중 그게 나 냐고요.

저번 주말에 정말 오랜만에 전화가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완전 헤어졌다는 내용이었다. 뭐 내 예상대로 결국 하루도 안지나서 화해하고 다시 만나고 있지만 말이다. 다음에 전화가 또 온다고 해도 아마 남자친구랑 이번엔 진짜 헤어졌다는 내용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했다. 전화벨이 울려서 받은 직 후 "또 남자친구 문제구나?" 라고 말해볼까. 하는 이런 찌질한 생각. 크크크큭.
 
가끔 연애하는 여자애들을 보면 상대가 좋지 않아도, 일단은 사귀고 보는 애들을 보는데 진짜로 이해가 안된다. (남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런 여자는 남자 입장에선 참 고마운 여자랜다. 근데 대부분이 그렇다) 남자가 좋다고 하면 시간 지나면 절로 좋아진다는데 나한테는 그게 전혀 해당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어도 결국에는 지금 남자친구 맘에 안들어 안들어. 빨리 다른 남자 만나고 싶다 싶다 싶다 이런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하면서도, 결국에는 그 헤어져서 혼자 있는 시간을 못 견뎌서 혼자가 된 당시에 나를 좋다고 하는 남자랑 사귀는 경우가 다반사. 그런게 바로 외로움의 노예지 뭔가.
난 안그러겠다. 이야기를 했더니 니가 그래서 연애를 못하는 거라는 말이 되돌아 왔다. 사귀어보고 별로면 헤어지면 그만이라는데 진짜로 그런건가!!!
 
물론 결혼 전 여러 남자 만나서 괜찮은 배우자랑 가정을 이루는 것이 모든 인간의 미덕이라지만, 단순히 여러 남자를 만나는 것으로 성공적으로 괜찮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아무리 별로여도 남자를 일단은 만나야 한다는 주장은, 자기가 그 남자를 만나는 이유가 단지 외롭고 심심해서 라는 진짜 이유를 숨기기 위해서 만들어낸 비겁한 명분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든다. (그리고 그거 때문에 만나고 있는 남자도 불쌍하고)

계속 혼자다 보니 혼자에 익숙해 진건지 내가 혼자인 걸 원래 좋아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난 진짜 좀 이해가 안간다. 항상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보다 괜찮은 남자는 이 세상에 깔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단지 외로워서 원래 당연한건가. 아니면 내가 남자친구가 없으니까, 그냥 내 앞에서는 연애가 별 거 아니라는 걸로 위로를 하려고 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거라면 난 열라 불쌍)

나랑 진짜로 친한 고등학교 친구에게 위 내용에 대해 말했더니 원래 다 그런거랜다. 나도 그랬던가? 하도 오래되서 기억은 안나지만, 난 안그러겠다. 결국 이런 불만 내용을 쓸 때마다 나오는 "난 안그러겠다." 지만, 이제까지 내가 안그러겠다 결심한 걸 진짜로 안하고 살면 난 훌륭한 사람이 될 거 같다. 여하튼, 친구가 나에게 부여한 역할은 맘에 안든다고.

秋夜雨中 - 최치원

위로 2010. 1. 1. 00:25
秋夜雨中

秋風唯苦吟 하니
世路少知音 이라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이라


가을 바람에 괴롭게 읊조리니
세상에 알아 주는이 없네
창 밖에는 밤 깊도록 비만 내리는데
등불 앞에 마음은 만리 밖을 내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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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말한 한자공부를 아직도 하고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 대상으로 하는 교재 안에서 한시가 나오는데 위에 시를 보고 마음이 찡해졌다.
특히 등전만리심 이라는 부분이 최고다.
몇백년 전 최치원이 쓴 시로 인해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록은 정말 위대한 것 같다.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을 하고 싶은데 기억 안난다)
이 시를 읽다가 중3때 대머리 한자 선생님이 생각났다.
아직 결혼도 안한 젊은 나이의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아주 훤한 대머리셨다.
한자 책에 나와있는 한시를 어찌나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시는지 한시 해석해주시면서 정말 멋있지 않냐고 여러번 강조를 했으나 워낙 만만한 이미지 였기 때문에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고, 수업시간은 항상 정말 시끄러웠다.
중학교 1학년 2학년때까지 공부랑 담을 쌓은 나는 꼭 암기해야 백점을 맞을 수 있는 한자는 32점 맞은 적도 있을 만큼 취미가 없었지만, 그래도 중학교 3학년때는 나름 그 선생님이 멋있다고 한 한시들에 감동받은 바도 있고, 재미도 있고 해서 꽤 열심히 공부했다.
저 한시에 대한 해설을 읽으면서 갑자기 중3 한자 선생님이 생각나서, 중학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 중3때 대머리 한자 선생님 생각나냐고 했더니 생각난다며 이름은 기억 안난다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이름은 기억 안나는데 오늘도 그 중학교 친구를 만나서 이 한시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내친구 말로는 고등학교 언어영역 공부할 때 이 시가 무지하게 많이 나왔다고 했다. 근데 왜 나는 기억이 안나지.
오늘은 그 중학교 친구 만나기 전에 정읍에서 올라온 친구도 만났는데 나랑 만나는 시간 중 반이 넘는 3시간을 나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거 기다려줘서 진짜 미안해 죽을뻔 했는데 집에서 콜이 와서 그 보답도 하기 전에 집에 가버렸다. 내일 걔네 집이라도 놀러갈까 생각 중이다.
2010년 난 아무 생각 안드는데, 아마 주변에서 더 난리들 이겠지.
여러가지 상황 때문에 시도조차 못해보고 이렇게 시들어 가는 내가 조금이라도 용기를 낼 수 있게, 가족 중 한 명이 나한테 힘을 줬으면 좋겠다.
이건 정말 후레자식 같은 말이고 블로그에 써서 안될 말 같지만, 요즘에는 모르겠다. 난 솔직히 요즘 가족도 내 편이 전혀 안되주는 것 때문에 너무 힘들다. 나 하고 싶은 대로 단 한 달이라도 살고 싶은 생각 뿐이다.

모두들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