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공감대

일상 2011. 1. 11. 10:21
저번 주 목요일에는 퇴근하고 주안에서 용산까지 갔다. 전 회사에서 친했던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회사에서 친해진 친구니만큼 회사를 떠난 이 시점에도 서로 할 말이 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할말은 또 있더라. 그 얘기 대부분이 회사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였지만.
내가 회사를 관둔 건 작년 4월. 회사 친구를 만나니 내일부터 다시 충무로로 출근해야할 것 같고 그랬다. 요즘에는 8시 20분에 집에서 나와서 9시면 회사 도착하는데 그때는 6시 50분에 나와서 8시 25분쯤 회사 도착하는 생활을 했으니... 어떻게 했나 싶고. 근데 또 흔히들 말하는 이름난 회사들은 다 8시까지 출근이긴 하더라만.
내방이 너무 춥다보니 요즘같이 추운 날씨에는 새벽에 종종 깨는데 오늘 일어나 핸드폰 시계를 보니 5시 55분이었다. 예전 같으면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었다. 근데 5시 55분이어도 난 한시간이나 더 잘 수 있다니! 하면서 행복하려다가 다시 우울해졌다. 나는 왜 노동에 적응하지 못하는가. 어디가 좀 모자란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침 뉴스에 교통상황 알려주는 경찰 아저씨가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난 그게 안된다. 난 그냥 일어나서 아무 걱정 안하고 놀고 먹고 싶다. 그런 사람들 보면 부러워 죽을 지경.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회사에서 친해진 친구는 더 넓은세계(?)에서 만난 친구 답게 이제까지 내가 알던 친구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걔랑 나랑 어떻게 친해질 수 있었나 싶은데, 나는 충무로로 회사 다닐 때는 정말 남부끄러울 정도로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는 여자였다. 의욕도 안생기고, 내가 정말 꽃다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라는 걸 알면서도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엄두가 안났다. 내가 그런데 집착하는 성격이었다면 5시에 일어나서라도 꾸미고 다녔겠지만 그런 성격도 아니고 필요성도 못 느꼈고.
회사에서 만난 그 친구는 잘 꾸미고 다니고 주변에 남자친구들도 많고 예쁘고 키도 크다. 친해지면서 이런 류의 아이들에게서 느꼈던 약간의 거부감이 많이 완화되었다. 그리고 되려 저런 애들이 나랑 친하게 지내려고 할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친하게 지냈고.
내가 회사를 떠날 때 눈물까지 흘려줬으니 고마운 마음도 있고.

전 회사 팀에는 83년생이 나 포함 3명 있었는데, 들어온 순서가 나 1등 그다음 목요일에 만난 친구, 그 다음이 H 였다. 그 H도 아마 학교나 다른데서 만나면 어머 뭐 저런애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막가파 성격이었는데, 알고보니 리얼 재벌집 딸이었다. 정말 TV 에서 말로만 듣던 명품 구경도 많이 했고. H는 그래도 뒤에서 까고 앞뒤 다른 면은 없고 그래서 처음에는 뭐 저런 미친년이 다 있나 싶었다가 약간의 호감이 생겼는데 목요일에 만난 친구와 그 친구가 어느 새 절친이 되어 있었다. 여고생도 아닌데 내 친구가 다른 친구랑 더 친해졌다니 하면서 까닭모를 허전함이 느껴졌다. 목요일에도 만나고 있는데 그 H한테서 전화가 왔다.
생각해보면 회사 다닐 때도 그 친구가 전화를 하면 난 참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던 거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대화 내용의 대부분이 남자와의 연애와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듣는 것도 한계가 있지 나중에는 약간 짜증이 난 적도 있었다. 나와 친한 애들하고 전화할 때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고 그런 상황에서 난 뭐라고 얘기해야 하는지도 전혀 모르니까.
목요일에 다시 들어보니 그 둘을 엮어준 건 역시나 "남자" 였다. 내가 "남자" 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는 경험담 제로인 그냥 이랬음 저랬음 좋겠다는 내용이 전부인데, 아마 그 둘은 더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하는 걸 수도 있고. H가 나랑 친구랑 친한거 보면서 많이 부러워 했는데 결국 친구되고싶어하는 목표도 달성했네 싶었다.

친구들 중에서도 정말 만나면 너무 맘이 편해서 안경끼고 다 늘어난 츄리닝 입어도 편한 친구가 있고, 얘가 날 쪽팔려 할까봐 치마에 화장 좀 해줘야 할 것 같은 친구가 있고 그렇다. 나이대에 따라서 친구의 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저번 목요일에 난 너무 추워서 남색 오리털 잠바를 입고 나갔는데 또 마음속으로 내심 이 겉모습으로 만나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친구긴 친구인데 역시 난 걔랑은 완전 친한 친구는 아닌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하니 좀 씁쓸했다. 재미있게 놀았는데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알고 지내는 친구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지만, 새로 알고 지낸 사람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도 자주 한다. 나이 29살 되서 애인 만날 생각은 않고.

아 근데 나랑 친한 친구들하고도 연애 공감대가 있긴 있구나. 연애경험이 거의 없다는 공감대.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