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Pharrell Williams 1집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은 최초의 힙합 앨범이다. 그 앨범의 타이틀 곡이었던 That girl 과 똑같은 곡제목의 Stevie Wonder 곡. 나는 Stevie Wonder 앨범 솔직히 Songs in the Key of the life 앨범 딱 하나 제대로 들었는데, 스티비원더 곡은 내가 모르는 어떤 곡이라도 다 좋더라. 대체로 신나는 리듬이지만, As 같은 곡은 가끔 들으면 가사 때문에 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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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리짓 존스의 일기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브리짓이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다. 나이가 들고 다시 보니, 이제 마크 다아시 마저 나랑 몇 살 차이 안난다. 어렸을때는 이 영화 즐겁게 시청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 정말 별로다. (올레티비에서 공짜라서 봄)
아무리 웃고 즐기자는 영화라고 해도 예의상 스토리에 최소한의 인과관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개봉했던 영화인데다가, 유명배우도 많이 나오는데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스토리가 엉망이었다.
마크 다아시가 진심을 다해 브리짓에게 사랑한다 고백 할 때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너무나도 느닷없지 않은가? 뭘 했다고 갑자기 사랑한대? 푸하하하.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 만 봐도 '유진' 과 '라푼젤'은 둘이 죽을 고비도 넘기고, 모닥불 앞에서 진솔한 대화도 하고, 서로 처지가 좀 불쌍하기도 하고 기타 등등 사랑에 빠지기 위한 최소한의 상황이 주어지는데, 이 영화에서 마크 다아시의 고백은 믿기 힘들 정도로 뜬금없다.
콜린퍼스 젊은 모습 보는 것 외 아무런 성과가 없는 영화였다. 다시 말하지만 영국 '워킹타이틀' 社 에서 만든 영화들 정말 나랑 안맞는다. 다음부터는 워킹타이틀에서 만든 영화라고 하면 안볼테다.
2. 프리즈너스
(스포일러 없음)
어렸을 때 부터, 꽤 많은 영화를 봤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처럼 좋은 감독은 처음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만든 '블레이드 러너' 올해 10월에 개봉하는데, 내 일생 이렇게 기대되는 영화 처음이고, 드니 감독이라면 원작에 버금가는 명작이 나올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 드니님이시여~
프리즈너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인 스릴러 영화인데,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면서 역시 엄청나게 재밌다. 시카리오 랑 이 영화랑 뭐가 더 좋은 지 뽑기 어려울 정도로 최고였다.
스토리가 스토리이니만큼 보면서 기분이 좋지는 않으나, 역시 일류 감독 답게 영화에 필요하지 않은 잔인한 장면은 나오지 않아서 보기 불편하지는 않다.
기독교인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고 느낀 바는, 하나님이 나에게 '기쁨' 만을 주실 것이라, 굳게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언제든지 악마의 편에 설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또 내가 믿는 것이 무조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크나큰 죄악 이라는 것. 그 자체가 죄악은 아닐지라도, 그로 인해 사람은 감당치 못할 큰 죄를 범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언제든지 나는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살아야 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이게 된다면, 성인이겠지)
그저 미끈한 미남 배우라고 생각했던 '제이크 질렌할' 이 영화에서 가장 선에 가까운 로키 형사를 연기하는데, 연기를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 적당히 나온 뱃살 (이 영화를 위해 살을 좀 찌운 것 같다) 이 살짝 접힌 채, 차에서 쾡하고 지친 눈을 꿈벅 꿈벅 하는 장면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
미스리틀선샤인에서 올리브 오빠로 나왔던 배우는 '데어윌비블러드' 에서도 범상치 않은 사이비 목사 역 맡더니, 이 영화에서도 만만찮은 역할을 맡았다. 이 배우가 맡은 역할 중 올리브 오빠가 가장 정상적인 역할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영화가 나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준 영화였다. 드니 빌뇌브 감독 만세~ 만세~
드니 감독님 영화 '컨택트' 보러 극장에 가야 하는데 이번 주에도 못갔다. 이러다 영영 극장에서 못볼까봐 초조하다.
3.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 은 좋게 봤다. 하지만 '초속 5cm' 를 볼 때는, 이쯤되면 남자 주인공 '병' 아니야? 란 생각이 들었다. 30살 가깝도록 첫사랑 떠올리며 누구와도 제대로 된 인간관계 맺지 못하는 남자가 내 눈에는 전혀 로맨틱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역시 썩 좋진 않았다.
이 영화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다음으로 일본에서 관객이 많이 들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두 영화의 급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 (물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하늘임.)
동일본대지진 으로 인해 상처받은 일본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포부에 비하면 영화가 너무 가벼웠다. 그리고 난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같이 지극히 일본 아니메 스러운 대사에 더이상 가슴이 뛰지도 않고.
예전에 요즘 젊은 사람들이 과거 시대에 비해 '엄마'와 사이가 특별해진 것이, 가족 외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는데 너무 서툴기 때문이라고 한 글을 보고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딱 그런 경우라. 그런데, 엄연한 성인 임에도 교복입은 남녀의 첫사랑 얘기만 확대 재생산 하는 요즘의 일본 사람들도 약간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80년대를 정점으로 점점 일본 문화가 하락세 인것도 이 이유가 크다고 생각한다. 더이상 교복입은 남녀가 나오는 일본 문화를 접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며 거의 십년만에 일본어를 들어서 반가웠고, 그 자체로 작품인 풍경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오랜만에 일본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는데, 내 통장잔고 보고 다시 마음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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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 꽤 됐지만, 게을러서 이제서야 기록한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후로 양질의 글을 읽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었다. 책 읽는 시간이 엄청 줄어서 요즘 나는 책 한권 읽으려면 엄청 긴 시간이 필요한데, 이 책은 너무 재밌어서 금방 읽었다. 다 읽고 나서 더 읽을 수 없음에 아쉬웠다.
한 때 사람들은 왜 글에 매료되는가...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예술이 태초에 어떤 이유로 생겨났을까 생각해보면 다른 건 몰라도 글은 아마도, 인간이 가장 괴로울 때, 사람이 가장 고독할 때 생겨났을 것이다. 음악은 여러 명이 함께 할 수 있고, 춤은 기쁠 때 덩실덩실 추면서 생겨났을 것 같다. 그림이나 조각도 글처럼 혼자하는 예술이지만, 재능이 전혀 없는 사람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분야다. 하지만 글은 누구나 펜만 가지면 좋은 글이든 부끄러운 글이든 어쨌든 쓸 수는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몇 년 전 의미도 모르고 읽었던 나츠메 소세키의 '풀베게' 서문이 떠올랐다.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知)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단지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나라로 갈 수밖에 없다. 사람답지 못한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p.7
이 책의 마지막에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전원경 선생님의 글이 나온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이익은 바로 '치유와 자유'에 있을 것이다. 삶에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슬품과 고통이 분명히 있다. 우리의 생명은 유한하고 그 유한한 삶에서 우리는 소중한 이를 잃거나 타인에 의해 고통을 받으며, 때로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벗이 주는 배신감으로 번민한다. 뛰어난 예술 작품은 바로 그러한 우리의 마음을 고요히 안아 주며 감동을 통해 슬픔에서 벗어나 삶의 기쁨으로 접근하도록 도와준다.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듯이, 만약 우리의 삶이 늘 평온하고 만족스럽기만 하다면 우리는 예술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고통스럽고 슬픈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세계를 접하게 되며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고뇌와 슬픔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예술은 우리가 우리의 제한된 현실 속에서나마 자유와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것이 우리가 예술을 늘 바라보며 더 많은 예술 작품을 향유하려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은 각 시대별 주요 미술 걸작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한다. 덤으로 각 장마다 클래식 음악 추천까지 실려있어 찾아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나같이 배경지식이 전무한 사람도 쉽게 이해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포함하여 이제까지 나온 전원경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마네' 와 '카유보트' 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마네 그림은 영국 갔을 때 꽤 봤는데, 카유보트 그림은 한 번도 못봤다. 언젠가 볼 기회가 오리라... 믿어야지.
이 책에 나온 클래식 추천음악을 잠들기 전에 가끔 틀어놓곤 하는데, 왜 클래식 음악을 사람들이 그토록 사랑하는지 좀 알 것 같다.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를 반추하고, 눕기만 하면 찾아오는 우울한 생각에 몸부림 칠 때, 배경음악으로 클래식 처럼 좋은 음악이 없다. 어두운 가운데 음악을 들으면 틀림없이 눈물을 흘리곤 하지만, 내 눈물과 음악이 함께 흐르며 슬픔이 날아가는 느낌 같은 게 있다.
예술은 의식주 처럼 사는데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예술이 없었다면 모든 인간은 숲속의 동물처럼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예술을 보고 읽고 느끼며, 과거 놓쳐버린 기회에 대한 아쉬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현실의 무료함을 겨우 견뎌내는 것 같다.
이 책 3부작이라고 들었는데 왜 두번째 책이 안나오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전원경 선생님들 책 처럼 역시 좋았다. 두번째 책을 기다릴 뿐.
2016년 말 부터 어제까지 본 영화의 단평
1. 화양연화
내 학창시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왕가위' 감독이다. 다 커서 '중경삼림' 이나 '타락천사' 를 봤다면, 별 것도 아닌 이야기로 폼 잡는다고 비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 본 두 영화는 '도시' 와 외로운 어른들의 사랑에 무한한 동경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영화에서 본 홍콩이 너무 좋은 나머지, 내 책상 밑에는 홍콩 전경을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아직 한 번도 못가봤네. 올해는 혼자라도 꼭 가볼 작정이다.
위의 두 영화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나는 의외로 왕가위 감독의 모든 영화를 보진 않았고, 심지어 이제서야 왕가위 감독 영화 중 에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화양연화' 를 보았다. 워낙 전설처럼 떠받들어지는 영화기 때문에 걱정도 많았다. 내 경우, 사람들이 대단한 작품이다 하면 기대에 비해 별로 였던 적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또 난 더이상 예민하고 작은 것에도 큰 감동을 받을 준비가 된 어린 애가 아니니까.
영화를 보니, 내가 늙은만큼 왕가위 감독도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젊은 왕가위가 만들었던 영화에서의 상큼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감각적이고 무심한 듯 절절했다.
난 솔직히 장만옥이 미녀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이 영화에서 장만옥은 치빠오가 정말 잘 어울리고 아름답다. 영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화면의 구도, 색감, 조명 등이 정말 멋져서 미술에 크게 감탄하며 보았다. 키스신 한번 안나오지만, 초모완(양조위)이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수리첸(장만옥)의 팔을 잡는 장면이나, 택시 안에서 둘이 손을 잡는 장면에서는 혼자 가슴이 쿵쿵뛰고 설레었다.
듣던대로 좋아서 다행이었다.
2. 비포선라이즈
이 영화도 이제서야 봤다. 이 영화 역시 전설같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까지 이상하게 전혀 보고 싶은 맘이 안들었다. 올레티비에서 서비스 하고 있는 VOD 의 화질이 너무 구려서 (심지어 비율도 4:3 에 맞춰진) 보는 내내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재밌게 시청했다.
예쁘고 잘생긴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는 마흔이 되고 쉰이 되도 즐겁게 시청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난 남자와 있을 때 아무런 대화가 없으면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불편하고 도망가고 싶어지고 그런다. 그래서 조용한 상태에 둘만 있어도 평안함과 안정을 나에게 주는 남자가 있다면 영원히 사랑할 수 있으리라.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남자는 비포선라이즈에서 나오는 제시(에단호크)처럼 하루종일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도 즐겁고 지루하지 않고 통하는 사람이겠지..하고 생각했다.
지금은 중년을 훌쩍 넘긴 에단호크와 줄리델피가 정말 귀엽다. 특히 음악감상실에서 서로 키스하고 싶어서 눈치보는 장면이 맘에 들었다.
보이후드를 봤을때도 느꼈지만,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실제로도 정말 좋은 사람일 것 같다. 여자를 위할 줄 아는 사람임은 확실하다. 내가 본 그 의 모든 영화가 따뜻하고 밝은 느낌인데, 그 따뜻함이 억지로 보여주기 식으로 만든 따뜻함이 아니다.
3. 마스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내 인생 영화 중 '매그놀리아' 는 무조건 한자리 낄 것이고, '부기나이트', '펀치드렁크러브' 두 개다 여운이 길었고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하지만, 정말 '마스터' 이 영화는 아니었다.
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걸까. 보는 내내 불쾌했고, 끝까지 보느라 힘들었다. 영화를 학문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영화가 엄청 훌륭할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요 근래 본 영화 중 최악 세 손가락 안에 든다. 관객이 이런 더러운 기분을 느끼길 원해서 폴 토마스 앤더슨이 '마스터' 를 만든 것이라면, 완전히 성공한 영화. 당분간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영화는 안보기로 했다. 또 이런 영화라면 실망이 너무 클 것 같아서 두렵기 때문에..
4. 라라랜드
드디어 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람들이 열광하는만큼 좋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세바스찬'이 피아노를 치며, 진심으로 사랑했던 '미아'와의 '만약' 을 상상하는 장면에서는 찡했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결국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고 믿는다. 다만 얼굴을 볼 수 없을 뿐. 그러니, 사랑에 빠지는 건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결국 나는 평생 그 사람을 사랑하게될테니. 하지만, 알다시피 그게 뭐 뜻대로 되진 않는다.
감독이 나보다 더 어린데, 위플래쉬와 라라랜드 두 영화 모두,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 감독 각본도 직접 쓴다고 들었는데, 헐리우드에서 난 놈들 중에서도 정말 최고로 난 놈 중 하나 아닐까.
라라랜드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고로 꼽는 세바스찬과 미아가 우주에서 춤추는 장면에서는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아마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을 것이다. 영화관에서 훌쩍 훌쩍 하는 소리가 꽤 들렸던 걸로 봐선 그 장면이 나한테만 감동적이었던 건 아니었나보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거하게 취해서 과거 혹은 현재의 연인을 더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마법같은 영화지만, 역시나 나는 뮤지컬 취향이 아님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나저나 다미안 차젤레 감독, 어지간히도 재즈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위플래쉬에서도 이 영화에서도 시종일관 좋은 재즈 음악은 원없이 들을 수 있다. 이쯤되면 거의 재즈 전도사 수준.
5. 추신- 영화 '만추' 이야기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영화 두편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만추) 이 모두 김태용 감독 작품 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즘 본 영화 가 '마스터' 를 제외하곤 다 멜로 영화인데, 내가 보고 싶은 멜로 영화는 '만추' 같은 여운을 줄 영화였다. 그런데, '화양연화', '비포선라이즈', '라라랜드' 세 개 다 '만추' 만큼 좋진 않았다. 영화 '만추' 는 내가 멜로영화에서 보고 싶은 모든 것을 가진 영화였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도 볼 때마다 훌륭해서 감탄해 마지않는 영화인데... 김태용 감독은 과연 탕웨이 언니가 선택할 만한 남자다. 조만간 한번 더 볼 작정이다. (이미 두 번 봄)
1. 칠드런 오브 맨
이 영화, 라디오에서 2006년 영화 임에도 불구하고 재개봉 한다고 들었는데, 웬일인지 올레 티비에서 공짜로 볼 수 있었다. 보통 재개봉 하면 신규작으로 분류되서 처음 몇 주간은 만원 내고 봐야 하는데, 운좋게 공짜로 봤다.
어렸을 때 내가 제일 좋아하던 동화책 세트 (전래동화, 창작동화 등을 묶어놓은 책) 에 유럽 쪽 전래동화로 '거인과 어린이' 라는 동화가 있었다. 정확한 동화 제목은 기억 안나지만, 그 동화의 삽화와 내용은 뚜렷히 기억 난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거인이 혼자 사는 집의 정원에 동네 어린이들이 매일같이 몰려와서 시끄럽게 놀았는데 어느 날 거인이 어린이들을 다 쫓아내고 다시는 정원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거인의 정원에 어린이들이 사라진 후로, 정원에는 더이상 꽃도 피지 않고 나무들도 하나둘씩 죽어간다. 심지어 바깥 세상은 다 봄인데, 거인의 정원만 눈보라가 몰아친다. 그제서야 거인은 다시 어린이들을 정원에 초대하고, 아이들과 신나게 논다. 어린이들이 다시 정원에서 놀기 시작하니 드디어 거인의 정원에도 따뜻한 봄이 찾아온다.
이 영화를 보니 자연스럽게 그 동화가 떠올랐다. 어린이가 없는 세상이란 얼마나 끔찍할까.
블레이드러너 못지않게 거대하고 어두침침하고 우울한 미래 세계를 완벽에 가깝게 스크린에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주는 메시지도 진지하고 철학적이었다. 특히 이 영화에 나오는 난민 문제는 현재 상황에도 너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특수효과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2006년 영화임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유명한 후반 롱테이크 신은 과연 일품이었고, 여러가지 설정을 성경에서 따온 것도 흥미로운 점 중 하나였다.
씬시티에서 매우 학구적인 얼굴로 드와이트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하여 인상깊었던 배우 클라이브 오웬이 인류의 구세주 이면서도 구세주 답지 않은 모습으로 호연을 했다.
2. 셔터 아일랜드 (스포일러 없음)
케이블 TV에서 해주는 영화 잘 안보는 편인데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시청하게 되었다. 원래는 안보려고 했는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길래 시청 했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중 비교적 범작으로 분류되는 '뉴욕, 뉴욕' 조차 꽤 재밌게 시청했던 나였기에, 셔터 아일랜드도 나름 재밌었다. 역시 영화 감독이 나이와 연륜이 쌓이면 보통 이상은 하는 것 같다.
평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대해 잘생기고 연기도 곧잘 배우라는 것 외에 다른 감정이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그의 연기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퇴역군인이면서 현재는 능력있는 보안관으로 살고 있는 주인공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는 다카우 수용소에서 목격한 처참한 광경과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간혹 환상을 보고 악몽에 시달린다.
군복무시절 테디는 다카우 수용소에서 아무렇게나 길가에 쌓여서 얼어붙은 시체더미 위에 엄마 품에 안겨 죽은 어린 여자아이를 본다. 테디는 너무 끔찍하여 보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여자애의 시체를 곁눈질로 보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려버리고 만다. 여기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끔찍함에 진저리 치는 연기가 너무 예술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린 후 다시 총을 어깨에 매고 걸어가는데, 눈을 감는 것부터, 걸음걸이, 뒷모습, 그리고 자세까지 이 모든 상황을 진심으로 경멸스러워 하는 것이 순간적으로 느껴진다. 이 장면을 보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먼 훗날 로버트 드니로나 잭니콜슨 같은 무조건 믿고 보는 배우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셔터 아일랜드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중 뛰어난 편이라 볼 수 없고, 모든 갈등과 의문이 한순간에 너무 쉽게 풀려 맥이 빠지는 감도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꽤 가치있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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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었다고 표현해도 될까. 아무래도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감상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현존하는 카라바조의 모든 그림을 볼 수 있는 점이 좋았고, 책 구성이 읽기 편리했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신용카드 항공 마일리지가 7만 마일이 되면 (아마도 내년쯤 가능할듯) 로마에 가기로 했다. 맘이 변할지도 모르지만, 카라바조의 그림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로마 보르게제 미술관에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특히 과일바구니를 든 소년 을 꼭 실물로 보고 싶다. 이 책에서는 그 그림을 두고, 그림 밖으로 걸어나와서 바구니를 내밀 것 처럼 생생하다고 표현했는데, 비록 프린트한 그림으로 봤지만 저자의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
'카라바조,이중성의 살인미학' 은 카라바조의 그림을 시기별로 나열하고 간단한 설명을 하며, 남아있는 자료를 근거로 카라바조의 삶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개신교 신자인 나는 이 책에 수록된 카라바조의 종교화를 보며, 내가 성경을 알아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안도했다. 아마 성경 내용을 몰랐다면, 카라바조의 그림이 조금 덜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책의 마지막 쯤에 카라바조가 어처구니 없이 죽는 장면에서는 헉 하면서 찔끔 울었다. 그만큼 가슴이 아팠다.
비록 성격이 괴팍하고 난폭하여 평생 고생스럽게 살았지만, 카라바조는 최고의 화가였다. 하지만 정말 허무하게 로마로 돌아가는 길에 죽고 만다.
중학생 때 음악 선생님께서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장면 중 모차르트가 죽은 뒤 제대로 된 관도 없이 땅에 묻히는 장면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하셨다. 나에게 신과 같이 대단한 모차르트가 그렇게 비참히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울 수 밖에 없었다고 하셨는데, 카라바조가 죽는 구절을 보며 내가 딱 그 심정이었다. 살아 있었으면 아마 멋진 그림을 더 많이 남겼을텐데 안타깝고 슬펐다.
한편으로는,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의 안목이 대단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당시 이탈리아 귀족들은 카라바조가 살인자 임에도 불구하고 극진한 대접을 하며, 어떻게든 카라바조의 그림 한장 얻으려고 그렇게 용을 썼다고 한다.
저번 오르세 미술관전에서 본 살롱전 입상 그림들은 대부분 색감이 촌스럽고 나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 그림이 그려진 당시에는 최고의 그림이라고 칭송받던 그림들 아닌가.
하지만 카라바조의 그림은 16세기에도 최고였고, 지금도 당연히 최고다.
책 속의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면 그저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정말 재밌는 책.
P.S 나는 이 책을 e-book 으로도 사고, 실물 책도 구입하여 아직까지도 시도때도 없이 심심하면 그림을 보고 설명을 읽고 있다.
배철수 음악캠프에서 김세윤 평론가가 추천해서 보고 싶었던 네이든을 봤다.
주인공인 네이든이 어린시절 자폐 진단을 받으며, 의사가 이 아이는 빛과 패턴에 민감하다고 부모님께 설명하는 장면이 나와서 그런지, 영화 중 네온사인이 필요이상으로 많이 등장한다. 그거 빼고는 만족스럽게 보았다.
마틴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휴고에서 저 아이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CG 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아름다운 어린이였던 아사 버터필드가 다 큰 청년이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휴고 얼마 안된 영화 같은데... 아직 완성된 외모는 아니지만, 충분히 멋지게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폐 혹은 정신적 장애가 있지만, 특출난 능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는 외국이나 우리나라에서나 영화의 단골소재다. 젊은 톰 크루즈 오빠를 볼 수 있는 레인맨, 뷰티풀 마인드도 있었고 우리나라 영화 중에는 말아톤 이 대표적이고.
그러나 이 영화는 여타 다른 자폐를 다루는 영화들과 다르게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좋았다.
자폐를 가진 사람들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울 때, 일반인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로만 그리는 것도 어쩌면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끔 했으니까.
네이든은 자폐를 가졌지만, 수학에 특별한 능력을 보이며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 영국 대표 후보 16명 중 한명으로 선출된다. 영국 대표 후보들은 최종 참가자 6명을 가리기 위해 14일간 대만으로 합숙 훈련을 가게 된다.
네이든은 중국팀과 함께 합숙훈련을 하는 중에 장메이 라는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제서야 눈 앞에서 아빠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며 사랑의 아픔 또한 알게 된다.
이 영화는 네이든에 대한 성장스토리이기도 하지만, 네이든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는 근육경화증에 걸린 선생님에 대한 성장스토리이기도 하다. 촉망받는 수학 영재였지만, 근육경화증에 걸린 후 크게 상심하여 결국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험프리스는 네이든을 제자로 가르치며 과부인 네이든의 엄마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면서 먹지 않던 약도 먹고, 다시 제대로 된 삶을 살기로 한다.
사람은 절대 안변한다는 말을 믿는다. 하지만, 만약 사람이 변할 수 있다면, 그 계기는 아마도 '사랑' 뿐일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상대방이 변하지 않을 경우, 변하지 않는 상대방이 밉기도 하지만, 내 사랑이 그 사람을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 그 사랑이 끝나버리면 '역시 사람은 안 변한다.' 고 믿는다. 어쩌면 '절대 안변한다.'고 말하는 건 누구나 쉽게 납득시킬 수 있는 편한 변명이니까, 습관처럼 그리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로 인해 이 사람이 변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 사람의 단점까지 사랑하는 건 엄청 힘든 일이다. 또 내가 누굴 변화시킬 수 있을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내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앞설 때도 많다.
하지만 영화 속 장메이는 세상을 향해 닫힌 마음을 가진 네이든을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해준다. 장메이의 용기있는 사랑이 멋졌다.
하이틴로맨스지만, 다른 하이틴로맨스들처럼 선남선녀들의 쿨내나는 사랑 놀음이 아니라 좋았다.
남자주인공이 지나치게 샤방샤방 하게 멋지지 않아 좋았고, 장메이로 나온 중국 여자 배우는 어찌나 깜찍한지, 요근래 본 소녀 중 (우리나라 걸그룹 멤버, 영화배우 통틀어) 제일 예쁜 것 같다.
서양에서 만든 영화에 등장하는 아시아 여자들은 진짜 아시아 인들은 전혀 선호하지 않는 외모일 때가 많아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이 영화에 나오는 장메이는 한중일 사람 누가 봐도 귀엽고 깜찍하고 예쁜 외모의 소유자다. 난 특히 장메이의 적당히 근육 있고 탄탄하고 날씬한 종아리와 매고 다니는 책가방의 너구리 인형이 참 맘에 들었다.
영국과 대만 두군데 모두 가본 나라라서 배경을 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영화 속에서 다시 보니 영국보다 대만이 더 그리웠다. 신기한 일이다.
P.S1.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고등학생 시절의 튜링을 연기했던 배우가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영국 대표 중 한명으로 또 등장한다. (수학영재 전문 배우인건지?) 얘도 많이 컸지만, 동그란 이마는 아직도 귀엽다.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제일 슬픈 장면이 어린 튜링이 짝사랑하는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선생님께 듣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 어린 튜링역 맡은 배우가 연기 엄청 잘해서 기억에 남았는데 또봐서 반가웠다.
P.S2. 네이든의 모델인 실제 주인공은 중국인 여자친구(장메이 역)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P.S3. 국제수학올림피아드의 최강국이 중국인 걸 이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다. 거참. 중국놈들..
(스포일러 있음)
토요일에 개봉 때부터 보고 싶었던 브루클린을 드디어 봤다. 극장에서 못본 것이 너무나도 후회될 뿐이다.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다.
고향이 생각나서 에일리스가 혼자 방에서 우는 장면이나, 토니와의 데이트 장면 을 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찡해서 눈물을 꽤 흘렸다. 시카리오와 함께 올해의 영화 중 한편이 될 것 같다.
영화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이후로 이렇게 남자주인공이 멋지다 생각한 것도 오랜만이다.
주인공 에일리스의 남자친구 토니는 인생의 빛이 되는 좋은 남자의 교본 같은 남자다. 변함없는 사랑과 순정, 착한 마음씨, 다정함, 성실함, 화목한 가정, 귀여운 외모까지. 정말 사랑스러운 남자 주인공이었다.
이 영화의 원작과 감독이 모두 남자라는 것을 알고 놀라웠다. 어쩜 이렇게 여자가 원하는 완벽한 남자와 사랑을 섬세하게 잘 표현하였는지.
영화 캐롤과 같은 시대인 1950년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저번부터 느낀건데 1950년대의 뉴욕 패션 너무 고상하고 멋지다. 이 영화에서도 분명 1950년대 패션을 그대로 재현했는데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색감과 디자인, 헤어스타일 등등 모두 세련미가 넘친다. 영화 다 보고 나서 에일리스가 입었던 가디건, 블라우스 같은 게 눈에 어른 거릴 정도. (캐롤 때도 그랬다)
저번 주에 본 이민자 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미국으로 이민와서 불한당 같은 놈을 만나서 죽도록 고생하고 상처받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인 에일리스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남자를 만나서 뉴욕을 두번째 고향으로 삼고 행복한 삶을 살 것을 암시하며 끝난다. 두 영화를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언니인 로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일랜드로 다시 되돌아가서 만난 아일랜드 신사 짐 패럴에 흔들리는 에일리스를 보며 토니를 배신할까봐 마음을 졸였다. 토니 편지를 읽지도 않고, 서랍에 넣을 때는 토니에 빙의하여 내 맘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 영화의 유일한 흠이라면, 에일리스가 고향 아일랜드에서 다시 토니가 있는 미국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는 계기이다. 식료품 가게의 악독한 켈리 여사가 에일리스가 토니와 뉴욕에서 혼인신고를 한 것을 몰랐다면, 에일리스는 끝내 토니를 배신하고 고향 아일랜드에서 부잣집 도련님인 짐과 결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에일리스가 어려운 시간을 같이 보내준 토니를 외면하지 않고 다시 돌아와서 너무 다행이었다.
토니 역할을 한 배우 에모리 코헨은 처음 보는 배우인데, 나이도 어린데 연기를 어찌나 잘하는지 모르겠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에일리스가 야간 대학 수업이 끝난 뒤 토니에게 할말 있다면서 심각하게 분위기를 잡으니, 에일리스가 헤어지자는 말을 할까봐 노심초사 눈치를 보며 에일리스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눈빛이 흔들리며 조마조마 하는 연기를 어쩜 그렇게 잘하는지.
이 영화에서 에일리스와 토니의 모든 데이트 장면이 사랑스러워서, 아까도 한번 더 봤다. 그래도 제일 좋은 장면은 토니가 에일리스의 야간 대학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 마중 나와선 같이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장면이다. 혼자 외롭게 귀가하던 에일리스는 토니가 마중을 나와줘서 너무 기뿐데, 그런 에일리스를 보며 토니는 오늘 기분이 아주 좋아보인다고 말한다. 기분이 아주 좋은 건 바로 토니 때문인데 말이다.
토니와 에일리스의 사랑 이외에도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여성들간의 우정 묘사도 좋았다. 미국행 배에서 도움을 주는 여자와 얄밉지만 결국 에일리스에게 관심을 쏟는 하숙집 친구들, 차가워보이지만 에일리스의 기분을 때때로 살피며 나중에는 에일리스를 위해 수영복을 골라주는 매력 넘치는 직장인 백화점의 상사까지.(그런데 이 역할한 배우 누군진 몰라도 정말 예쁘심) 모두 에일리스가 새로운 세계인 뉴욕에서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도 봤던 시얼샤 로넌이 흰 피부와 파랗고 몽롱한 눈을 가진 에일리스 역할로 매력을 발산한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주연 제로의 젊은 시절 사랑으로 등장할 때도 이 배우를 눈여겨 봤는데, 앞으로 좋은 배우가 될 것 같다.
딴말이지만, 며칠전 잠들기 전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주인공 제로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사랑스러운 아가사..라는 말과 함께 아가사가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던 장면이 생각나 눈물을 쏟았다. 그 영화에서는 아가사가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자세히 나오지 않는데도 아가사는 전쟁 중 죽었다. 라는 사실을 앞 뒤 정황과 제로의 독백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참 신기했다. 서사를 완벽히 하지 않아도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의 운명을 짐작케 하는 것도 감독의 역량이라면 역량이겠지.
이렇게 좋은 영화를 봐서 보람찬 주말이었다. 이 영화 속의 예쁜 장면들이 두고두고 생각날 것 이다.
저번 주에는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이 영화는 제목이 너무 어려워서 흥행이 안된듯) 을 봤고, 이번주에는 이민자를 봤다. 둘다 여자가 주인공이다.
대책 없는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거듭난다는 이야기는 보는 내내 여자가 너무 불쌍해서 짜증이 나면서도 매혹적이다. 인정이란 없는, 개망나니 같은 남자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사랑'이 유일한 해답이긴 할 거다. 하지만 현실에서 '내가 널 구원해주리라.' 라는 마음으로 모든 걸 인내하며 위험한 남자 옆에 있기엔 위험부담이 무척 크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와 비슷한 영화와 소설이 재생산 되는 거겠지.
실버라이닝 플레이 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제니퍼 로렌스의 몸매였지만, 문제 있는 두 남녀가 서로 사랑하기까지 과정이 인상 깊었다.
이민자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
역시 우아하고 슬픈 마리옹 꼬띠아르의 얼굴이었다. 이민자의 교훈은 여자가 너무 아름다워도 인생이 참으로 고달퍼
진다는 것.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좋아할 법한 스토리였고, 호아퀸 피닉스도 연기를 아주 잘했다. 분명 브루노는 사랑한다는 핑계로 에바의 인생을 시궁창으로 만든 개자식 중에
최고 개자식인데도 불구하고 끝내 좀 불쌍했던 건 다 그의 연기 내공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1. 캐롤
이 영화에서 테레즈가 캐롤을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지는 마법같은 순간은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것 이다.
운명 처럼 사랑에 빠지고, 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택한 해피엔딩이라 좋았다.
영화 톤이 예쁘고, 캐롤의 패션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이 영화를 보니, 난 이성애자이지만, 케이트 블란쳇 정도면 나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그 정도로 매력 폭발)
베드신도 아름다웠고, 사랑에 빠져 들뜨고 설렌 테레즈를 보며 진심으로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2. 주토피아
알다시피 애니메이션의 왕팬인 내가 안볼 수 없는 영화였다. 사회가 규정한 한계에 굴복하지 않고 도전하는 주디와 편견의 희생양 이었던 닉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감동적 이야기인데, 거기에 서스펜스 스릴러 까지 가미되어 보는 내내 재밌었다.
여우 닉의 성우가 누군지 몰라도 목소리가 어찌나 좋은지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여우한테 반해보긴 또 처음이었다. 다들 나무늘보가 웃겼다 하지만 나에게 제일 웃겼던 장면은 쥐가 대부의 말론 브란도 흉내내는 장면이었다.
3. 곡성
(스포없음)
백만년만에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봤다. 여기 저기서 곡성 관련 평론가 평이 쏟아지는데, 스포일러 포함이라 적혀 있어 읽지 못하는 게 짜증나서 결국 혼자 보고 왔다.
촬영이 헐리우드 초일류들이 만든 시카리오 못지 않게 훌륭하다. 스토리에 약간의 헛점이 있지만, 정말 독창적이고, 사운드도 잘 쓰였다.
개인적으로 곽도원씨 연기는 살짝 아쉬웠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다. 기독교를 믿는다면 훨씬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는 성경 중 예수님이 부활하여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나를 만져보라 하는 부분이 나오지만 나는 주인공이 고약한 시험에 들었다는 점에서 예수님이 광야에서 기도할 때 사탄이 나타나서 니가 예수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고 시험하는 장면도 떠올랐다.
어렸을 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외할머니께 들은 무서운 얘기 중 기도원에서 기도하다 예수님이 나타났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썩 물러가라 했더니 귀신이 "안속네." 하면서 낄낄 거리며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 영화와도 통하는 게 있는 이야기라 오랜만에 그 이야기도 생각났다.
누가 진짜 인지 영화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2시간 넘는 런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감독이 어렸을 때 곡성에서 자랐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시골 특유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잘 살렸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인천에서 전라도로 전학가서 도서관 갔다 오는 길에 도시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고요함과 칠흑같은 어둠이 너무 무서워서 벌벌 떨었던 경험이 있어서 그 느낌을 잘 안다. 영화 제목 곡성이 지명을 뜻하는 곡성은 아니라 하지만, 그 공간이 주는 공포, 초자연적 힘이 집결할만한 흉악한 산등성이와 범접하지 못할 대자연이 주는 공포를 훌륭한 촬영과 연출로 잘 살렸다.
막판에 무명역의 천우희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앞으로 팬이 될 듯 하다.
덧. 이게 어떻게 15세 관람가를 받은거지? 적절치 못한 등급이라 생각한다. 이건 청불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