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칠드런 오브 맨

  이 영화, 라디오에서 2006년 영화 임에도 불구하고 재개봉 한다고 들었는데, 웬일인지 올레 티비에서 공짜로 볼 수 있었다. 보통 재개봉 하면 신규작으로 분류되서 처음 몇 주간은 만원 내고 봐야 하는데, 운좋게 공짜로 봤다.

  어렸을 때 내가 제일 좋아하던 동화책 세트 (전래동화, 창작동화 등을 묶어놓은 책) 에 유럽 쪽 전래동화로 '거인과 어린이' 라는 동화가 있었다. 정확한 동화 제목은 기억 안나지만, 그 동화의 삽화와 내용은 뚜렷히 기억 난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거인이 혼자 사는 집의 정원에 동네 어린이들이 매일같이 몰려와서 시끄럽게 놀았는데 어느 날 거인이 어린이들을 다 쫓아내고 다시는 정원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거인의 정원에 어린이들이 사라진 후로, 정원에는 더이상 꽃도 피지 않고 나무들도 하나둘씩 죽어간다. 심지어 바깥 세상은 다 봄인데, 거인의 정원만 눈보라가 몰아친다. 그제서야 거인은 다시 어린이들을 정원에 초대하고, 아이들과 신나게 논다. 어린이들이 다시 정원에서 놀기 시작하니 드디어 거인의 정원에도 따뜻한 봄이 찾아온다.

  이 영화를 보니 자연스럽게 그 동화가 떠올랐다. 어린이가 없는 세상이란 얼마나 끔찍할까.

  블레이드러너 못지않게 거대하고 어두침침하고 우울한 미래 세계를 완벽에 가깝게 스크린에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주는 메시지도 진지하고 철학적이었다. 특히 이 영화에 나오는 난민 문제는 현재 상황에도 너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특수효과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2006년 영화임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유명한 후반 롱테이크 신은 과연 일품이었고, 여러가지 설정을 성경에서 따온 것도 흥미로운 점 중 하나였다.

  씬시티에서 매우 학구적인 얼굴로 드와이트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하여 인상깊었던 배우 클라이브 오웬이 인류의 구세주 이면서도 구세주 답지 않은 모습으로 호연을 했다.


2. 셔터 아일랜드 (스포일러 없음)

  케이블 TV에서 해주는 영화 잘 안보는 편인데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시청하게 되었다. 원래는 안보려고 했는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길래 시청 했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중 비교적 범작으로 분류되는 '뉴욕, 뉴욕' 조차 꽤 재밌게 시청했던 나였기에, 셔터 아일랜드도 나름 재밌었다. 역시 영화 감독이 나이와 연륜이 쌓이면 보통 이상은 하는 것 같다.

  평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대해 잘생기고 연기도 곧잘 배우라는 것 외에 다른 감정이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그의 연기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퇴역군인이면서 현재는 능력있는 보안관으로 살고 있는 주인공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는 다카우 수용소에서 목격한 처참한 광경과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간혹 환상을 보고 악몽에 시달린다.

  군복무시절 테디는 다카우 수용소에서 아무렇게나 길가에 쌓여서 얼어붙은 시체더미 위에 엄마 품에 안겨 죽은 어린 여자아이를 본다. 테디는 너무 끔찍하여 보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여자애의 시체를 곁눈질로 보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려버리고 만다. 여기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끔찍함에 진저리 치는 연기가 너무 예술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린 후 다시 총을 어깨에 매고 걸어가는데, 눈을 감는 것부터, 걸음걸이, 뒷모습, 그리고 자세까지 이 모든 상황을 진심으로 경멸스러워 하는 것이 순간적으로 느껴진다. 이 장면을 보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먼 훗날 로버트 드니로나 잭니콜슨 같은 무조건 믿고 보는 배우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셔터 아일랜드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중 뛰어난 편이라 볼 수 없고, 모든 갈등과 의문이 한순간에 너무 쉽게 풀려 맥이 빠지는 감도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꽤 가치있었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