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리짓 존스의 일기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브리짓이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다. 나이가 들고 다시 보니, 이제 마크 다아시 마저 나랑 몇 살 차이 안난다. 어렸을때는 이 영화 즐겁게 시청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 정말 별로다. (올레티비에서 공짜라서 봄)

  아무리 웃고 즐기자는 영화라고 해도 예의상 스토리에 최소한의 인과관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개봉했던 영화인데다가, 유명배우도 많이 나오는데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스토리가 엉망이었다.

  마크 다아시가 진심을 다해 브리짓에게 사랑한다 고백 할 때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너무나도 느닷없지 않은가? 뭘 했다고 갑자기 사랑한대? 푸하하하.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 만 봐도 '유진' 과 '라푼젤'은 둘이 죽을 고비도 넘기고, 모닥불 앞에서 진솔한 대화도 하고, 서로 처지가 좀 불쌍하기도 하고 기타 등등 사랑에 빠지기 위한 최소한의 상황이 주어지는데, 이 영화에서 마크 다아시의 고백은 믿기 힘들 정도로 뜬금없다.

  콜린퍼스 젊은 모습 보는 것 외 아무런 성과가 없는 영화였다. 다시 말하지만 영국 '워킹타이틀' 社 에서 만든 영화들 정말 나랑 안맞는다. 다음부터는 워킹타이틀에서 만든 영화라고 하면 안볼테다.


2. 프리즈너스

(스포일러 없음)

  어렸을 때 부터, 꽤 많은 영화를 봤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처럼 좋은 감독은 처음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만든 '블레이드 러너' 올해 10월에 개봉하는데, 내 일생 이렇게 기대되는 영화 처음이고, 드니 감독이라면 원작에 버금가는 명작이 나올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 드니님이시여~

  프리즈너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인 스릴러 영화인데,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면서 역시 엄청나게 재밌다. 시카리오 랑 이 영화랑 뭐가 더 좋은 지 뽑기 어려울 정도로 최고였다.

  스토리가 스토리이니만큼 보면서 기분이 좋지는 않으나, 역시 일류 감독 답게 영화에 필요하지 않은 잔인한 장면은 나오지 않아서 보기 불편하지는 않다.

  기독교인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고 느낀 바는, 하나님이 나에게 '기쁨' 만을 주실 것이라, 굳게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언제든지 악마의 편에 설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또 내가 믿는 것이 무조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크나큰 죄악 이라는 것. 그 자체가 죄악은 아닐지라도, 그로 인해 사람은 감당치 못할 큰 죄를 범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언제든지 나는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살아야 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이게 된다면, 성인이겠지)

  그저 미끈한 미남 배우라고 생각했던 '제이크 질렌할' 이 영화에서 가장 선에 가까운 로키 형사를 연기하는데, 연기를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 적당히 나온 뱃살 (이 영화를 위해 살을 좀 찌운 것 같다) 이 살짝 접힌 채, 차에서 쾡하고 지친 눈을 꿈벅 꿈벅 하는 장면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

  미스리틀선샤인에서 올리브 오빠로 나왔던 배우는 '데어윌비블러드' 에서도 범상치 않은 사이비 목사 역 맡더니, 이 영화에서도 만만찮은 역할을 맡았다. 이 배우가 맡은 역할 중 올리브 오빠가 가장 정상적인 역할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영화가 나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준 영화였다. 드니 빌뇌브 감독 만세~ 만세~

  드니 감독님 영화 '컨택트' 보러 극장에 가야 하는데 이번 주에도 못갔다. 이러다 영영 극장에서 못볼까봐 초조하다.


3.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 은 좋게 봤다. 하지만 '초속 5cm' 를 볼 때는, 이쯤되면 남자 주인공 '병' 아니야? 란 생각이 들었다. 30살 가깝도록 첫사랑 떠올리며 누구와도 제대로 된 인간관계 맺지 못하는 남자가 내 눈에는 전혀 로맨틱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역시 썩 좋진 않았다.

  이 영화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다음으로 일본에서 관객이 많이 들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두 영화의 급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 (물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하늘임.)

  동일본대지진 으로 인해 상처받은 일본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포부에 비하면 영화가 너무 가벼웠다. 그리고 난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같이 지극히 일본 아니메 스러운 대사에 더이상 가슴이 뛰지도 않고.

  예전에 요즘 젊은 사람들이 과거 시대에 비해 '엄마'와 사이가 특별해진 것이, 가족 외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는데 너무 서툴기 때문이라고 한 글을 보고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딱 그런 경우라. 그런데, 엄연한 성인 임에도 교복입은 남녀의 첫사랑 얘기만 확대 재생산 하는 요즘의 일본 사람들도 약간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80년대를 정점으로 점점 일본 문화가 하락세 인것도 이 이유가 크다고 생각한다. 더이상 교복입은 남녀가 나오는 일본 문화를 접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며  거의 십년만에 일본어를 들어서 반가웠고, 그 자체로 작품인 풍경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오랜만에 일본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는데, 내 통장잔고 보고 다시 마음을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