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역사를 만들다
국내도서
저자 : 전원경
출판 : 시공사(시공아트) 201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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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은 지 꽤 됐지만, 게을러서 이제서야 기록한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후로 양질의 글을 읽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었다. 책 읽는 시간이 엄청 줄어서 요즘 나는 책 한권 읽으려면 엄청 긴 시간이 필요한데, 이 책은 너무 재밌어서 금방 읽었다. 다 읽고 나서 더 읽을 수 없음에 아쉬웠다.


  한 때 사람들은 왜 글에 매료되는가...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예술이 태초에 어떤 이유로 생겨났을까 생각해보면 다른 건 몰라도 글은 아마도, 인간이 가장 괴로울 때, 사람이 가장 고독할 때 생겨났을 것이다. 음악은 여러 명이 함께 할 수 있고, 춤은 기쁠 때 덩실덩실 추면서 생겨났을 것 같다. 그림이나 조각도 글처럼 혼자하는 예술이지만, 재능이 전혀 없는 사람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분야다. 하지만 글은 누구나 펜만 가지면 좋은 글이든 부끄러운 글이든 어쨌든 쓸 수는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몇 년 전 의미도 모르고 읽었던 나츠메 소세키의 '풀베게' 서문이 떠올랐다.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知)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단지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나라로 갈 수밖에 없다. 사람답지 못한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p.7


    이 책의 마지막에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전원경 선생님의 글이 나온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이익은 바로 '치유와 자유'에 있을 것이다. 삶에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슬품과 고통이 분명히 있다. 우리의 생명은 유한하고 그 유한한 삶에서 우리는 소중한 이를 잃거나 타인에 의해 고통을 받으며, 때로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벗이 주는 배신감으로 번민한다. 뛰어난 예술 작품은 바로 그러한 우리의 마음을 고요히 안아 주며 감동을 통해 슬픔에서 벗어나 삶의 기쁨으로 접근하도록 도와준다.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듯이, 만약 우리의 삶이 늘 평온하고 만족스럽기만 하다면 우리는 예술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고통스럽고 슬픈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세계를 접하게 되며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고뇌와 슬픔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예술은 우리가 우리의 제한된 현실 속에서나마 자유와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것이 우리가 예술을 늘 바라보며 더 많은 예술 작품을 향유하려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은 각 시대별 주요 미술 걸작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한다. 덤으로 각 장마다 클래식 음악 추천까지 실려있어 찾아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나같이 배경지식이 전무한 사람도 쉽게 이해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포함하여 이제까지 나온 전원경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마네' 와 '카유보트' 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마네 그림은 영국 갔을 때 꽤 봤는데, 카유보트 그림은 한 번도 못봤다. 언젠가 볼 기회가 오리라... 믿어야지.

 

  이 책에 나온 클래식 추천음악을 잠들기 전에 가끔 틀어놓곤 하는데, 왜 클래식 음악을 사람들이 그토록 사랑하는지 좀 알 것 같다.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를 반추하고, 눕기만 하면 찾아오는 우울한 생각에 몸부림 칠 때, 배경음악으로 클래식 처럼 좋은 음악이 없다. 어두운 가운데 음악을 들으면 틀림없이 눈물을 흘리곤 하지만, 내 눈물과 음악이 함께 흐르며 슬픔이 날아가는 느낌 같은 게 있다.

 

  예술은 의식주 처럼 사는데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예술이 없었다면 모든 인간은 숲속의 동물처럼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예술을 보고 읽고 느끼며, 과거 놓쳐버린 기회에 대한 아쉬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현실의 무료함을 겨우 견뎌내는 것 같다.


  이 책 3부작이라고 들었는데 왜 두번째 책이 안나오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전원경 선생님들 책 처럼 역시 좋았다. 두번째 책을 기다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