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역 냄새

일상 2016. 3. 27. 21:33

1. 레일 토스트
성수역 개찰구 옆에는 레일 토스트라는 토스트 테이크 아웃 가게가 있다. 성수역 안에 있는 가게는 하나같이 다 망해가는데, 그 토스트 가게만 사람이 항상 많다. 먹어보진 못했지만 맛있는 모양이다.
아침에 전철에서 내려와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 대번에 토스트 냄새가 난다.
마가린을 바른 식빵을 굽는 냄새가 솔솔 나면 아침밥을 먹고 왔는데도 군침이 고인다.
어떤 기억이 청각이나 후각과 결합되면 훨씬 더 강렬한 법인데, 언젠가 이 회사를 그만 둔 후 토스트 굽는 냄새를 맡는다면 성수역 출근길이 자동으로 떠오르겠지.

2. 부정 교합
난 앞니가 부정 교합이라 토스트, 샌드위치, 햄버거 안에 든 햄이나 양배추를 한번에 자르질 못한다. 그런 음식을 먹고 싶으면 앉아서 칼로 잘라야만 하기 때문에 테이크 아웃으로는 샌드위치를 먹을 수가 없다.
내가 양배추를 물면 그 샌드위치 안에 있는 양배추 전체가 다 딸려 나오고 그걸 손으로 자를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한번에 급히 먹다보면 배탈이 난다.
또 양배추나 야채를 처음 몇 번만에 다 먹어치우고 나면 느끼한 재료만이 남은 맛없는 샌드위치를 먹어야 한다.
치과에서 외관상 문제는 없더라도 너무 불편하니 교정을 하라고 했지만, 난 그냥 살고 있다.

내가 갑자기 부정 교합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 부정교합 때문에 성수역 레일 토스트를 아직도 못 먹어봤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 였는데, 일생동안 부정 교합으로 살아온 것에 대한 불만 성토가 되어버렸네.


3. 공무원 시험
대학 졸업 직전과 첫직장 다니며 힘들어 하던 시절 끊임없이 주변에서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권유했다. 특히 공무원 내외이신 셋째 큰아빠 댁에서 제일 심하게 공무원이 최고다 라고 주장하셨다. 난 내 직업이 최고 인 거 같지 않은데, 유독 공무원들만이 내 직업이 세상 최고의 직업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어찌보면 참 행복한 사람들 인 듯 하다. 군무원으로 국군 수도 병원에 근무하는 친구도 남편의 첫째 조건은 공무원이라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전 직장에서 공무원들이랑 같이 일하면서 그들의 나태함과 갑질에 지쳐 난 남자가 공무원이라면 (선입견이지만) 싫어진다. 공무원들이 자기 직업 최고라고 생각하는 게 본인들이 생각해도 너무 편해서 일까?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자부심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 때 부터 생기는 걸까? 성실하게 일하는 공무원도 분명 있겠지만, 난 별로 못봤다.
난 공부하는 양에 비해서는 객관식 문제는 잘 맞는 편이라 아마 주변에서 그렇게 끊임없이 (심지어 남동생은 아직도 시험 준비하라고 함) 권유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체력과 집중력 부족으로 한 시간 공부하면 거의 무조건 누워 쉬거나 먹거나 하는 식으로 30분 정도 쉬어야 한다. 또 결정적으로 외롭게 공부만 하다보면 심하게 우울해진다.
내가 어른들 꼬임에 안넘어가고 시험 준비 안한 건 아직까지도 내 인생동안 최고 잘한 일로 남아있다.


4. 분노 조절 장애

"평소 분노 조절 장애인 사람들 = 자기보다 센 사람 앞에서는 기가 막히게 분노 조절 잘한다. " 라는 글을 봤다. 나이가 들수록 개인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크게 화내거나 실망하는 일이 적은 반면, 회사에서는 자꾸 쉽게 화를 내게 된다. 직원한테나, 거래처나 기타 등등 사람들에게. 특히 전화를 하면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화를 내고 나면 언제나 후회스럽고,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게 무의식 중에 상대방을 나보다 약자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내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목요일에는 거래하는 회계 법인 직원과 언성이 높아질 뻔 하다가, 메일로 실수하고 법인카드 때문에 전화한 콜센터 직원이 자꾸 대답을 못해서 짜증나는 마음에 또 화를 내고 말았다. 아마 그 콜센터 직원이 일을 한지 얼마 안되서 버벅댄 것일텐데, 왜 난 별 것도 아닌 걸로 그렇게 열을 낸건지... 아직까지도 마음이 좋지 않다.

직장생활 오래하면 원래 성격에서 좋았던 건 점점 사라지고 나빴던 것만 남게 되는 것 같기도. 워낙에 훌륭한 사람들은 고귀한 인격 유지하면서 일도 잘하겠지만, 난 수양이 부족한건지 그게 참 쉽지 않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전화기에 흥분하지 말자고 써 붙여놨는데, 항상 명심하면서 살아야 나도 지키고 상대방도 지키고 하는 거겠지.


5. 회계법인 담당자

회사 특성상 회계 법인 담당자랑 전화할 일이 많은데, 정말 나랑 너무 성격 안 맞는다. 그 회계법인 담당자도 아마 자기가 맡고 있는 회사 담당자 중 나를 최고 싫어할 듯 하다. 저번에 연말 정산 때문에 최초로 언성을 높였는데 그를 통해 걔가 (나보다 나이 어림) 나에 대해 갖는 불만이 뭔지 알게 되었다. 걔가 나한테 말하길 나는 기본적인 사항을 안 알아보고 다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그 담당자는 나에게 대리님은 너무 몰라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드려야 하고, 다른 회사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거 같은데 맞나요 라고 질문한다면 나 같은 경우는 뭐예요 라고 묻는다고 했다.

그런데 나도 억울한 게, 나는 기본적으로 회계 업무는 처음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기 때문에 걔한테 다 물어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회사는 너무 작아서 아주 간단한 질문도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

내 무지에 나도 화가 나고, 하나도 모르는 업무를 지금 이 정도면 어찌어찌 유지는 잘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걔한테 너 너무 일 못한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듣고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럴 때 마다 전 회사의 L 부장 생각하면서 참는다. 그래 그래도 이 회계법인 애랑 전화하면서 열 받는 건 일주일에 한 두번 뿐이지만, L 부장이랑 일할 땐 하루에도 몇번씩 이런 시궁창 기분 맛봤으니 참자.. 하면서.


6. 전 회사 동료

나와 함께 잘린 제일 친했던 대리님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그 대리님도 남편 따라 부산에 내려가서 재취업을 하셨는데, 다른 회사 다녀보니 L 부장이 얼마나 재수없는 상사였는지 알겠다고 했다. 나도 이 회사 와서 정말 L 부장 같은 인간이랑 내가 참 오래 버텼구나... 싶었으니까. 다 지난일 이니 잊자 하다가도 아직도 앙금이 남았는지, 가끔 울화가 치민다. 이것도 역시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 



아침 간식

일상 2016. 3. 22. 19:27


아침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옷도 안 벗고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유난스러워 보이겠지만 나는 매일 아침 드리퍼로 혼자 원두커피를 내려 먹는다.
이렇게 내려서 마시는 커피가 내 직장 생활의 유일한 낙이라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한국야쿠르트에서 나온 콜드브루 라는 제품을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어서 앞으로 내려 먹지 말고 이거 매일 시켜 먹을까 고민하다가 가격 때문에 포기했다.
이미 난 매일 흰우유 하나에 요일마다 하루야채, 윌, 바나나우유를 돌려가며 시켜 먹고 있기 때문에 커피까지 시키면 한달 음료 값으로만 거의 7만원 이상이 나올 것이다.
아침에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라 꼭 과자도 같이 먹는다. 편의점에서 2+1 하는 과자를 쟁여놓고 먹는데 오늘은 큰 맘먹고 초코하임을 사놓았다. 비싸고 양은 적은 초코하임은 먹을 때마다 감탄한다. 우리나라 과자 중 최고 맛있는 것 같다. 오늘 초코하임 계산할 때 카운터에 있던 킨더가든의 달걀모양 초코렛도 샀다. 패키지 디자인이 귀엽고 안에 작은 장난감이 들어있고 초코렛이 엄청 고급이었지만 너무 비쌌다. 내가 어린이라면 볼 때마다 사고 싶을 것 같긴하지만, 난 어른이니까..
보통 오레오나. 사브레, 과일샌드 많이 사놓고 너무 우울할 땐 편의점에서 절대 세일 안하는 빈츠도 사먹는다.
역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이 더 크지만 회사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편의점을 선호하는 이유는 사장님이 무척 친절하기 때문이다. 저녁에 퇴근 시간에 일하는 알바 총각은 엄청 미남이라 한번 이상 쳐다보리라 하고 결심했다. 근데 오늘은 깜박했네.
오늘 출근길에는 대학 4학년 때 대기업 면접 봤던 거랑 크리스 마틴을 생각했다.
웬만해선 안 떨어진다는 경쟁률 1.2 대 1 이었던 3차 최종 면접에서 난 떨어졌다. 그 회사에 붙었다면 난 지금 월급보다 훨씬 받으면서 자부심 갖고 일했을까? 우리 부모님은 친구 친척들한테 내 자랑 많이 했을까. 낯선 이를 만날 때 좀 자신감이 있었을까.. 붙었어도 단체 생활 못하는 종특 때문에 그만 뒀을 수도 있지만, 괜히 슬퍼졌다.
콜드플레이는 어느 순간부터 찾아 듣진 않고 있지만, 20대 초반을 함께 보낸 밴드라 애착이 간다. 수능 끝나고 집에 있으면서 콜드플레이의 1집을 참 많이도 들었다. 크리스 마틴은 내가 좋아하는 남자 체형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 아닐까. 최근 나온 앨범을 들으며 이게 밴드 음악이 맞는거야? 라는 생각을 좀 했지만, 비욘세랑 부른 노래는 좋더라. 크리스 마틴의 상쾌한 느낌의 목소리는 1집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내가 싫어하는 기네스 펠트로랑 결혼한단 소식 듣고 참 슬펐는데....
이런 생각 하다보니 벌써 성수역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핸드폰으로 퇴근길에 일기를 쓴다. 일기 쓰다보니 벌써 제물포역이다. 2월부터 급행이 제물포, 개봉 두개 역에 추가로 정차한다. 안그래도 오래 걸리고 사람 많은데... 더 느려지고 사람은 더 많아졌다.
이제 다음 정류장이 동인천이다. 휴. 오늘도 무사히 퇴근해서 다행이다.



​1. 수인선



집 앞에 전철역이 생겼다. 우리집 역사상 전철과 이렇게 가깝게 살아본 적은 없었다. 아직 역주변 정리가 끝나진 않았지만, 사진에서 보다시피 내부는 깨끗하다.

안산, 시흥 가기 좋아진거라 나와 큰 관계가 없다는 게 좀 슬프다.

일요일에 AS 맡긴 부츠 찾으러 갈 때 수인선 체험도 할 겸 한번 타고 가봤는데, 버스 타면 넉넉잡아 30분 잡아야 하는 인하대가 한 정거장 밖에 안되고, 시내버스로 가려면 배차간격이 너무나도 긴 버스를 타야했던 송도도 정말 가까워졌다. 

우리집에서 원인재역까지 가며 창 밖을 보았는데, 도저히 2016년의 풍경이라 볼 수 없는 후진 풍경이 내내 나왔다. 다시한번, 그래 인천이 이런 곳이었지 하는 생각을 했다. 뭐 그런 동네까지 전철이 다니게 된 거니 좋다면 좋은거다.

아, 그런데 원인재역은 인천같지 않았다. 인천같지 않다는 건 후지지 않고 좋다는 뜻이다.


2. 승리

호들갑 떠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돌과 알파고의 경기는 관심이 갔다. 일요일에 이세돌이 승리했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 솔직히 세번 다 졌을 때 다섯번 다 질 줄 알았는데, 그런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다니..
쉽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는 걸 직접 보여준 이세돌 구단, 정말 멋졌다.

괜히 세계 최강 자리를 오래 지킨 게 아닌 것 같다.

한가지 안타까웠던 점은 이세돌 구단의 몸매와 비율이 옷발 참 잘 받을 것 같은데 너무나도 펄럭거리는 양복을 입은 모습이 전세계로 생중계되었다는 점.


3. 마른 손

제일 친한 친구와 나는 정말 상극의 남자 이상형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번에 이세돌 구단 보면서 다시한번 깨달은 건, 난 흔히 어른들이 듬직하다고 표현하는 몸매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친구는 약간 나온 뱃살에 평균 몸무게보다 살짝 더 나가면서 키가 큰, 전형적으로 듬직한 남자를 좋아하고, 나는 그와 정반대 스타일을 좋아한다.

이제까지 좋아했던 남자들을 돌이켜봐도 대부분 마른 편이었고, 손과 손목이 가늘고 긴 편이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바둑을 하나도 볼 줄 모르는데도 이세돌 구단의 손과 얇은 손목을 몇 시간 내내 감상할 수 있어 즐거웠다는 것이다. 이세돌 부인 부럽다.


4. 티어가르텐

독일을 다녀와서 의외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베를린에 있던 티어가르텐 이라는 공원이다. 런던에서 갔던 유명한 공원들보다 백배는 좋았다. 나무가 엄청나게 크고, 조용하고, 가로등 모양이 고전적이어서 예쁘다.

만약 베를린에 다시 한번 갈 수 있다면 티어가르텐에 하루종일 있으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도 보며 음악을 듣고 싶다.

그런데 티어가르텐 안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난 험한 일을 겪었다.

시내로 가는 길에 장이 요동쳐서 하는 수 없이 그 화장실에 뛰어 들어갔는데 쥐가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너무나도 긴박하고 진땀나는 상황이라 난 죽은 쥐가 있던 그 칸에서 일을 볼 수 밖에 없었다. 흑흑.

어딘가에 깨끗한 유료 화장실이 있었겠지만 찾을 시간이 없었다. (사실 그 때는 죽은 쥐 따위 아무 문제도 아니긴 했지....)

내가 이런 일을 겪고도 티어가르텐이 그리운 걸 보면 베를린의 티어가르텐이 얼마나 좋은 공원인지 알 수 있다.


5. 결산

생전 처음해보는 년 회계 결산이 끝났다. 뭐, 회계사사무실에서 거의 알아서 한다지만 좀 힘들었다. 어쨌든 하나만 끝나면 재무제표도 끝날 것이다. 큰 일 하나 끝낸 것 같아서 후련하다.


6. 문제적 남자

일요일 밤마다 문제적 남자를 보며 월요일이 다가와서 우울한 마음을 위로한다. 내가 문제적 남자를 보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하석진. 이장원도 매력있지만, 하석진 외모 너무 훌륭하시다. 못푸는 문제만 주구장창 나오는데도 오로지 하석진 하나로 기분 좋게 잠드는 일요일 밤.


봄은 왔지만.

일상 2016. 3. 6. 23:24

볼을 스치는 바람이 날카롭지 않고, 장갑을 끼지 않고도 걸을만 하다. 내가 집을 나서는 7시 10분에 이미 해도 떠 있다. 겨울이 되자마자부터 계속 봄을 기다리는 나는 이제 좀 살만한 날씨구나.. 생각한다.

삼일절에는 오랜만에 친가 식구들을 만났다. 할아버지의 기일이었기 때문에 갔는데, 아주 애 같기만 했던 사촌오빠의 자식들이 벌써 고3이고 중학생이고 참 쑥쑥도 컸더라.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식구들은 내 나이를 듣고 다들 깜짝 놀란다. 하긴 나도 내 나이에 가끔 놀라니까.

어린 시절 30살이 넘으면 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고 상상할 때는 분명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앞으로 더 멋지고 좋은 날이 펼쳐질거란 기대를 품고 사는 것이 참 힘이 든다.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언제나 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이제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이 거창하고 큰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을텐데.. 왜 나에게는 일생에 걸쳐 이렇게 어렵기만 한건지.



평소 라이브 앨범은 웬만해선 사지 않고, 듣지도 않는 편이다. 라이브 공연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잡음 없이 깨끗하고 좋은 음질로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곡을 좋아하는데, Ryuichi Sakamoto 의 Media Bahn Live 앨범은 작년에 구입한 후 지금까지도 이틀에 한번 이상 이 앨범의 곡을 한곡 이상은 무조건 듣는다.

유튜브 찾아보니 이 공연이 86년 공연이라는데, 다시한번 80년대의 일본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였는지 실감하는 중이다. 86년에 녹음된 라이브 앨범의 음질 상태가 이렇게 좋을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86년도에 연주된 곡이 이렇게 (체제 전복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만큼) 혁신적일 수 있는 건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80년대의 일본인으로 살아보고 싶을 정도다.


어서 봄이 왔으면..

일상 2016. 2. 21. 21:35

1. 연휴 후

연휴가 끝나고 목금만 일하고 또 주말에 쉬고 저번 주에도 병원 때문에 목요일에 휴가를 내서 4일만 일했다. 연휴 후 일주일을 풀로 일하는게 다음주가 최초인데 벌써 몸이 배배 꼬이고 우울하다.

노동은 인간으로 태어난 형벌 같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다음 주에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외근가고 아마 저녁도 먹고 들어와야 할 것 같다. 외근이 싫다기 보단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게 싫다.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하는 게 생각보다 많이 고되다. 날이 갈수록 더 힘들어 진다. 3월에 할부금 갚으면 인삼이라도 사먹을 작정이다.

 

2. 떠나는 자와 오는 자

회사에 정말 대책없는 또라이가 한 명 있다. 정말 그런 인간은 처음 봤다. 결국 그 사람으로 인해 한 사람이 사표를 냈다. 나도 참 이기적 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사표를 쓴 사람이 그 또라이로 인해 받은 상처보다 그 사람이 그만 둘 경우 나에게 올 피해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더라. 나도 대책없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사표를 쓴 사람이 맡고 있던 업무 중 가장 큰 업무 하나가 나한테 올 것 같다. 다음주 두번의 외근도 새로 맡게 될 업무 때문에 가는거다. 떠나야할 사람은 그 또라이 인데... 그 사람 때문에 관둔 사람이 벌써 이번이 세번째라고 하던데, 이럴 때마다 정말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어떻게 된 게 어느 직장에 가도 쓰레기 같은 사람이 한명씩 있고 그 쓰레기들은 잘만 사는지..

그나저나 나는 쥐꼬리만한 월급에 너무 다양하고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월급을 안 올려주면 정말 우울할 것 같아서, 종종 구직 사이트를 구경하는데, 볼 때마다 다시 정신이 번쩍 든다. 나같은 사람을 받아줄 회사가 거의 없다.

인턴 한명이 새로 들어왔다. 동생과 동갑인데, 저번 금요일에는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워크샵에 휴가 등등으로 자리를 비워 걔와 나 둘이 덩그라니 둘이서 사무실을 지켰다. 성격이 꽤 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위에 말한 또라이한테 호락호락 당할 성격은 아니라 다행이다.

걔와 2호선 전철까지 같이 나란히 앉아서 오는데, 어색해 죽는 줄 알았다. 걔가 여자였다면 좋았을텐데.. 또래 여자는 뽑을 생각이 전혀 없어보인다.  

 

3. 회피

문제를 회피하면 그 보다 더 큰 문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진리인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항상 그랬다.

 

4. 친구네 집

용인 친구네 집에 갔다. 오랜만에 운전을 오래 했고, 이번에도 역시 용인 시내 들어와서 이상한 길로 잘못 들어 고생했다. 친구와 치킨을 먹고 낮잠을 한 숨 잤더니 밤 7시가 넘었다. 친구가 피곤했는지 치킨을 다 먹고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새해 되서 처음 봤고, 언제나 하는 이야기는 비슷한데 언제나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 친구가 없으면 대체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까 싶다.

 

5. 자유공원

2016년 들어 처음으로 자유공원에 갔다. 사람이 별로 없었고, 아픈 뒤 처음이라 그런지 올라가는 데 예전보다 훨씬 힘이 들었다. 미세먼지 없는 파란하늘을 바라보며, 내일 회의와 업무에 대해 좋게 생각해보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오늘 근 한달만에 교회에 갔는데, 담임 목사님께서 은퇴를 하신다고 한다.

성당과 달리 교회는 목사님 따라 교인들이 많이 관두고 옮기고 하는 편인데, 이 교회는 어떨지. 우리집은 항상 제일 가까운 교회 다니고, 현재 이 교회가 제일 가까우니 아마 계속 다닐 것 같다.

기도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하고 다짐했다.



꿈과 주말

일상 2016. 2. 14. 17:19

이틀연속 심란한 꿈을 꾸었다.
토요일에는 스무살 때 사귀던 애와 도쿄도청 전망대를 갔다. 진짜 왜 얘가 나와서 하필 도쿄 도청에 가냐 싶어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헛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내 인생에 최고 쓰린 기억으로 남은 그 남자가 꿈에 등장했다. 꿈속에서 우리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농담과 안부를 주고 받다가 그 남자는 와이프와 산부인과에 가야한다면서 일어났다.
부인이 자궁이 안좋아 임신을 못한다면서 너는 건강해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잠에서 깨어나 외마디 욕을 내뱉었다.
꿈속에서 결혼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생각보다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진 않았다.
그런데 제발 꿈속이든 실제든 이름이고 얼굴이고 안듣고 안보고 싶다. 잘살고 있었으면 좋겠지만, 싫다. 그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이. 정확히는 그 사람과 얽힌 과거의 내가 싫은 것이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열열히 내 자신을 혐오했던 적이 없다. 떠올리고 싶지 않다. 될수만 있다면 영원히.
건강이 나빠져서 여기저기 면역력이 떨어져 나타나는 증세로 고생 중 이다. 주말에도 건강이 악화될까봐 멀리 나가지 못해 엄청 심심하다. 누워서 유튜브 영상을 한시간 넘게 멍하니 보면 그나마 있던 내 총명함 마저 허공에 흩뿌려지는 기분이다.
책도 영 눈에 안들어오고, 새로 알게된 좋은 노래도 없고, 식욕도 없다.
설연휴동안 영화도 두편이나 봤는데 리뷰도 못남기고 있다.
빨리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혼자 영화도 보고 싶고 드라이브도 좀 하고 싶다.
어제는 테만 있던 안경에 렌즈를 넣었다. 다음주부터 이틀에 한번 꼴로 안경을 끼려고 한다.
올해 계획한 일이 꽤 많은데 모든 일을 3월이후로 미뤘다. 단 하나라도 계획한대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개와 고양이

일상 2016. 2. 4. 18:32

1. 개
얼마전에 신도림역에서 맹인 안내견을 봤다. 큰 골든 리트리버 였다. 그 개는 굉장히 의젓했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행하는 모습에서 숭고함 까지 느껴져 울컥했다.
애완견 과는 다르게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눈에는 피곤함이 서려 슬퍼 보였다.
하루종일 그 슬픈 눈이 나를 쫒아다니는 느낌이었다.
맹인 안내견이나 수색견들은 개로서 본능을 억제하는 훈련을 받아서 다른 개들 보다 평균 수명도 짧다는 걸 어디서 봤다.
난 실내에서 개를 키우는 건 질색이고, 평소 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개는 때론 사람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하고 인류에 꼭 필요한 동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보고 하루종일 맹인 안내를 시키면 아마 반나절도 안돼 포기하고 말 것 이다.
한국에는 개와 관련된 욕이 많지만, 실제 개만도 못한 인간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2. 고양이
고양이 척추의 움직임은 언제나 유려하다.
고양이들은 움직일 때나 멈춰 있을 때나 그 몸이 만들어 내는 선이 참 아름답다. 고개를 갸우뚱 하는 것 조차 미적으로 가장 알맞은 각도 만큼 움직이는 느낌이다.
우리집 앞 곡물상가 제일 첫번째 집에 살던 고양이를 거의 5년 넘게 봤는데, 털 색이 은색이고 얼굴도 어찌나 예쁜지 운 좋게 그 고양이를 길에서 만나면 기분이 좋았다.
한 2년 전에는 자기를 꼭 닮은 새끼 몇마리를 낳았는데, 주인이 다른 집에 다 줘버린건지 한 2주 뒤엔 새끼 고양이가 한마리도 남지 않았고 나까지 슬펐다.
그런데 몇 달동안 그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살면서 본 고양이 중 제일 예쁜 고양이였던 그 은색 고양이가 아무래도 죽은 모양이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도 아니고 이름도 모르는데 서운하다. 이제 영원히 못보게 되는거니, 우연히 만나 기분 좋을 일도 없겠지.


약골

일상 2016. 1. 31. 23:03

난 언제나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12시 이전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11시 이전에는 집에 귀가한다. 술을 심하게 마신적도 없고, 무리하여 밤을 새거나 평소 안하던 짓을 한 적도 없다. 어떤 사람이 보면 난 아마 엄청나게 지루하게 사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살게된 건 조금이라도 내가 살던 법칙을 벗어나면 어김없이 병에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내 체력은 새롭고 힘든 일에 쉽게 적응하고 원래 상태대로 단시간내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

저번 주에 힘든 일이 많았다. 전 회사에서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을 해야 했고, 회사가 작아 어디에 물어볼 데도 없는 나는 회계법인과 세무서 등에 문의하며 생전 처음보는 일을 이게 맞는건가.. 하는 의구심에 해야만 했고, 결국 회계법인 담당자랑은 (내 기준에서는) 꽤 고성이 오갔다. 올해 이 업무를 잘 해서 넘기면 전보다는 능력있어지는거다.. 하고 좋게 생각하려고 하는데, 다시 한번 전 회사에서 난 허송세월 보낸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뭘 배운건지.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한 2주 무리해서 일하고 목요일에 힘든 게 절정이었는데 결국 금요일에 탈이 났다. 몸이 너무 좋지 않은데 생리통까지 겹쳐서 어떻게든 일찍 조퇴하려고 했는데 결국 풀로 근무하고 간신히 퇴근했다.

그리고 결국 토요일에는 열이 났다가 내렸다를 반복하며 열이 식을 땐 옷이 젖도록 땀을 흘려 옷을 몇 번이나 갈아 입었다.

이번에도 역시 평소 하던 일보다 조금 많이 했다고 결국 또 병이 난 것이다.

젊어서 제대로 못 놀아본 게 가끔 한이 될 때도 있는데, 노는 것도 다 체력이 되야 하는 것이다. 나같은 약골은 놀라고 멍석을 깔아줘도 못할 것이다. 무리해서 놀았다간 또 앓아 누울 것이 뻔하니 아마 시도도 안하겠지.

난  어렸을 때 부터 하도 많이 아파서 그런지 내 몸이 어딘가 잘못되려는 징후를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런 징후가 나타나면 부리나케 집에 와서 씻고 누워서 쉰다. 건강 염려증 환자처럼 너무 몸사리는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평생 강골로 산 사람들은 병에 걸려 누워 있는 게 얼마 우울하고 힘든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아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으면 몸이 땅으로 꺼지는 기분이 들고 이 세상 우울함은 다 내 것인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다행히 주말내내 푹 쉬어서 정신과 기력을 차렸다. 내일 출근하여 회의할 생각을 하니 또 열이 나고 아픈 기분이 들지만 어쩌랴.

수요일에는 병원에 가야해서 휴가를 냈다. 그리고 그 다음주는 벌써 설연휴다. 힘을 내려고 노력해보는 수 밖에 없다. 결국 가래면 가고 오래면 와야하는 직장인 이니까. 


작년 크리스마스 당일에 뭘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난다. 아마 올해와 비슷했나보다.

24일에는 회사에서 좀 시달렸다. 쓸데없는데 삘 꽂힌 어떤 사람 때문에 계속 시달려서 평소보다 두 배는 피곤했다.

저번 회사에서도 그렇고, 이번 회사에서도 그렇고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어느 회사나 회사의 윗사람들은 본인들이 직원들에게 준 것이 엄청나게 큰 것이라 생각한다. 본인들이 준 것의 효용 가치가 직원에게 1 밖에 안 되는데 10을 준 것 마냥 행동하고, 직원들도 10만큼의 고마움을 표현해주길 원하는 것이다.

제발 그런 짓 좀 그만 했으면 하는 생각만 든 24일이었다.

일을 간신히 업무 시간 내 마치고,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친구와 수다를 떨고, 생일 선물을 받아왔다. 친구의 마지막 항암치료가 끝이 났다. 항암 끝에 오는 괴로운 몸의 변화를 한번 더 견뎌 내야겠지만, 이제 1월부터 친구는 머리카락도 나고, 항암도 안 받아도 된다.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마지막 항암치료를 끝내다니 정말 장하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푹 쉬었다. 24일에 생각보다 많이 시달렸는지 잇몸이 다 상했다. 집에 있으면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싶었는데 잇몸 때문에 그러질 못해 우울했다.

저녁쯤에는 엄마와 이마트에 갔다. 이마트에서 내 케익도 사고 오랜만에 마트 구경을 했다.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틀어주는 겨울왕국을 보며 이마트에서 사온 칭따오를 마셨고, 맥주에 먹으려고 산 수제 소시지를 먹다 잠이 들었다.

먹자마자 잤더니 속이 부대껴 다시 일어나서 밤 1시까지 쓸데없이 스마트폰 보다가 크리스마스가 끝이 났다.

26일에는 커피가 떨어져 용인 친구네 집으로 원두를 사러 갔다. 친구네 카페에서 1년만에 만난 다른 친구와 회사 얘기를 했고, 성남의 동생보고 카페로 오라고 하여 걔를 태워서 인천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는 부모님과 동생의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들으며 초를 껐다. 남동생과 떨어져 사니까 사이가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동생이 연봉 올랐다고, 선물을 비싼 거 사준다고 생각해 보라고 했는데 20만원 내외의 어떤 물건을 사야 제일 보람차고 즐거울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아직도 결정을 못했다. 남동생은 나보고 스마트 워치 사라는데, 그건 전혀 사고 싶지 않고.

그리고 오늘 내 생일은 역시 엄청나게 추웠다. 12 27일 내 생일의 추위 신화는 오늘도 깨지지 않은 것이다. 안 춥다가도 내 생일만 되면 엄청나게 추워진다.

오늘 몇 명의 친구들에게서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래도 고마웠다. 요즘에는 소셜 미디어에서 남의 생일을 다 알려줘 기억할 필요 없지만, 그래도 축하 메시지를 보내준다는 거 자체가 고마운 일이다.

내일은 아침에 영하 9도라는데, 3일 쉬고 출근하려니 우울하다.

회사를 너무 많이 옮겨 다닌 탓일까? 이제 회사에 거는 기대 자체가 없다. 어딜 가도 괴로울 것이고 답답할 것 이다. 그러니 그냥 군말 말고 다녀야지 싶다.

어제 친구랑 얘기하다 알게 된 건데, 지금 회사에 온 지 아직 반년도 되지 않았다. 6개월도 안된 거 치고 잘 하고 있는데, 내가 너무 실수 하나에 절절 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스스로 칭찬해주고 너무 위축되지 않기로 했다.

아까 어떻게 입어야 내일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심사숙고하여 두꺼운 옷을 골라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다음주에는 2015년이 끝이 나고, 난 한 살 더 먹는다. 내년에 올해보다는 나아질 거라 믿는다. 그렇게 되도록 다른 해보다 조금 노력도 해볼 작정이다.


하이텔의 추억

일상 2015. 12. 22. 10:21

영어 학원을 다니면서 영국 현지에서 실시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대화 주제를 삼아 회화 연습을 많이 했다. 언젠가 주제는 영국 청춘 남녀가 연인을 만나는 경로에 대한 것이었는데,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은 연인을 만나게 된 계기 중 1위가 채팅 사이트였다. 우리나라는 아마도 지인의 소개 겠지?

수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채팅사이트가 압도적 1위라 우리나라와 문화가 많이 다르구나 하고 좀 놀랐다.

영어 선생님 께서는 영국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여자한테 말 거는데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고,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능숙하기 때문에 채팅 사이트와 메일로 여성과 충분히 친해진 후 만나는 것을 더 편하게 느낀다고 부연 설명을 해주셨다.

(다른 얘기지만 어디선가 영국 남자들은 어떤 여자에게 말을 걸어야겠다 마음을 먹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대한으로 멋있게 꾸미고 말을 건다는 걸 어디서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엠마왓슨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제일 놀랐던 게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너 나랑 데이트할래?" 라고 말하는 미국 남자들 이었다는 토크쇼 인터뷰도 봤고.)


지금 생각해보면, 예전에 PC 통신 시절에는 랜덤 채팅이 좀 흔했던 것 같다. 난 하이텔 회원이었는데 당시 대구에 사는 동갑인 남자애와 꽤 오랜 기간 채팅을 했다. 안타깝게도 걔의 아이디도 생각이 나지 않지만, 고1 때 전학을 간 이후 또래 남성과 단 한마디 대화도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에게 걔는 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 또래 남자애들도 글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면 이렇게 속 깊어 보일 수도 있구나... 하는? 걔가 실제 그랬는지 나에게 꾸며낸 모습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지금 그 채팅 내용을 보면 엄청 웃기겠지만,(걔나 나나 쓸데없이 진지했으니) 걔는 "어제 이러저러해서 울었다." 같은 일반 남자애들에게 들을 수 없는 얘기도 곧잘 했다. 걔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하이텔 때 채팅하던 사람들은 정중했고, 속내를 꽤 깊게 얘기했던 것 같다. "ㅋㅋㅋ" 라는 말도 없었고, 말 줄임말도 없었다.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에 언제 몇시에 접속하자. 전날 약속하고 접속해서 "오늘은 학교에서 어쩌고 저쩌고 했어.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졌어."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했는데 세월과 함께 PC 통신도 사라지고, 걔와는 작별인사도 없이 얼굴도 모른 채 그냥 멀어졌다.


전화모뎀의 접속음은 항상 나를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옛날 모뎀시절 얘기를 쓰고 있자니, 나이든 티가 폴폴 난다. 나도 결국에는 옛날을 그리워하는 늙은이에 불과한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