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집들이

일상 2015. 4. 13. 01:12

  나와 제일 친한 친구가 용인으로 이사를 갔다. 부천에 살던 친구가 이사가고 나서 좀 허전했다. 1시간 이내로 볼 수 있는 친구가 아니라는 생각에. 친한 친구의 첫 독립 생활이니만큼 가서 응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원이 끝나고 집들이 꽃을 사서 용인으로 가기로 했다.

 

 

  꽃을 샀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학원 건물 밑에 있는 꽃집 볼때마다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사장님께 알아서 예쁘게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정말 마음에 쏙 들게 예쁘게 만들어주셨다.

  용인에서 대중교통으로 다시 인천으로 올 일이 심란해서 차를 끌고 광화문 학원에 갔다가, 친구네 집인 용인으로 가기로 했다. 내 운전 역사 상, 이번 주 토요일 처럼 고생한 적은 없었다.

  광화문에서 핸드폰 네비게이션 버튼이 잘못눌려서 화면이 거꾸로 나오는데, 어떻게 조작하는 지도 모르겠고 거꾸로 나오는 화면 때문에 두번 길을 들어선 대가가 너무 컸다. 보신각을 지나, 시위 때문에 일부 도로가 폐쇄된 도로를 간신히 빠져나와서 명동과 충무로를 지나면서 정말 식은 땀을 비오듯 흘렸다. 엄청난 오토바이들과 도저히 차선 변경이 불가능해 보이는 꽉찬 도로...서울 도심 운전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고, 간신히 간신히 경부고속도로를 탔지만, 너무 밀렸다. 버스전용차로 있는 고속도로는 처음 이었는데, 버스전용차로는 정말 하나도 안 밀려서 신기했다. 버스전용차로는 누가 만들었는지 참 생각 잘했다.  

  용인에 들어와서도 친구네 가게 찾기가 어려워 한 30분을 용인 아파트 구석구석을 헤맸고, 거의 울면서 친구에게 전화했다. 결국 친구가 내 차가 있는 곳까지 와서 간신히 가게를 찾았다. 네비게이션에서는 자꾸 경로를 벗어났다고 하고 4시 방향 우회전 이라는데 아무리 봐도 4시 방향 우회전은 없고, 헤메며 너무 당황을 하니 차선도 막 바꾸고 신호위반도 몇 번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이번 토요일 경험으로 확실히 깨달았다. 토요일에는 차를 가지고 서울에 가면 안된다는 것을. 친구네 집이 있는 용인도 운전을 하니 인천까지 50분 밖에 안걸려서, 차라리 일요일에 인천에서 바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서울에서 용인 가는 건 이제 다신 안하고 싶다. 

  친구는 나와 다르게 돈을 지독하게 아껴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집에 살림이 너무 없었다. 너무 없어서 불편할 정도였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친구가 돈 많이 벌어서 변변한 살림도 사서 놓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친구는 냉장고는 각종 반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 혼자 살때는 냉장고에 물한병 우유 맥주 식스팩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는데.

  친구와 맥주 마시면서 새벽 4시까지 이야기를 했다. 맥주를 너무 조금 사서 아쉬웠다. 술이 정말 술술 들어갔는데.. 친구가 만들어준 소세지에 당근, 양파 넣고 볶아 준 요리도 맛있었다. 20대 때 거의 같은 시기에 똑같은 일을 당했으면서 서로 속내를 털어놓지 않아 각자 힘들어 했던 걸 생각하며 안타까웠다.

  걔와 나의 20대의 큰 어려움은 단순히 더럽게 운이 없었던 게 아니라, 알고보면 확실한 원인이 있었다는 것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어떤 문제에 있어서 남들보다 늦게 극복한다고 해서 못났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그 사건을 극복하는데 한 10년 걸린 것 같고, 30살 쯤 되서야 드디어 그 일에서 완전히 초월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가 되었으니, 온전히 건강한 정신으로 산지는 3년도 안됐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어쨌든 극복을 했고,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말이다.

  친구가 오빠랑 함께 하는 카페에서 조각케익도 많이 먹고 맛있는 음료수도 엄청 많이 마시고 왔다. 다 친구가 만든 케익이고 쿠키에 커피였는데 내가 모르던 친구의 진면모를 봤다. 그냥 커피 체인에서 먹던 케익과 차원이 다르게 맛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살아야 하니 살고 있지만, 친구가 많이 우울한 것 같다. 나와 친구를 이렇게 우울하게 만드는 건 미래에 대한 막연함인 것 같다. 20대에는 설마 설마 하며 막연해도 아직 젊으니 뭐라도 있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초조하면서 막연하기만 하니까 말이다.

  대만에 둘이 여행가서 얼마나 즐거울 지 모르겠지만, 즐거웠으면 좋겠다. 나도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항상 무지 노력하고 있는데, 친구는 노력할 시간 조차 없는 것 같다. 자영업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걱정도 좀 되긴 하지만, 정말 친한 친구와 하루밤 보낸 것 자체로 기분이 참 좋아졌다. 친구도 나도 잘 극복해서 즐거워졌을면 좋겠다. 가끔 이렇게 서로 위로도 해주면서.



1. 남자의 연봉

30살 넘어 만난 남자들은 심심치 않게 자기 연봉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 본인 연봉 얘기를 하는 것이 과연 나에 대한 관심의 표현인건지, 아닌지 혼란스럽다. 나는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들 말하니 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참 난감하다. 우와. 능력 있으시네요? 이래야 하는건지... 보통은 아~~ 하고 마는데.

묻지도 않는 연봉을 첫 만남에 말한 어떤 남자와 2번 함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지금 내 처지에 그 정도 남자가 연락하고 시간 같이 보내주면, 적극적으로 해도 될까 말까 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참 심드렁하다. 3월의 비극적 사건 이전의 평온한 마음으로 되돌아 간 것 같다. 남자에게 집착도 노력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그런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2. 학원까지 차 끌고 가기

평생 발이 완쾌되지 않을까봐 두렵다. 엄마 말로는 내가 걸을 때 아직도 약간의 절뚝거림이 느껴진다고 한다. 나는 나름대로 정상적으로 걸으려고 무지 노력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평생 약간 절뚝거리면서 걷게 되는건 아닐까 싶어서.. 너무 우울해지고 불안하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겠지 싶다.

학원에 너무 많이 빠져서 이제 더이상 빠질 수 없고, 전철은 계단 때문에 발에 무리가 가서, 저번 주에는 차를 끌고 학원이 있는 광화문까지 갔다. 내가 생각한 인천에서 광화문까지의 드라이빙은 한강 다리를 쌩쌩 달리고 창 밖으로는 여의도의 마천루가 보이는 그런 드라이빙이었는데, 상상과 실제는 달랐다.

토요일 아침인데도 차는 더럽게 밀렸고, 전철타면 1시간30분 걸리는데 운전을 해서 갔더니 1시간 10분 걸렸다. 올때는 차가 더 밀려서 1시간 24분이나 걸렸다.

거기에 주차료가 3만4천원이 나왔다. 미친 주차료... 결국 이번주에는 그냥 전철타고 학원에 갔다.

 

3. 피아니스트 언니

학원에서 친해지고 싶은 피아니스트 언니가 생겨서 언니 친해지고 싶어요. 라고 말했더니 친하게 지내자고 해서 이번 주말에 언니의 연습실로 놀러 갔다. 언니가 독일에서 유학하다가 한국 온지 얼마 안되서 친구가 별로 없고, 친하게 지내면 자기는 좋다고 해서 나도 좋았다.

언니는 잘난 체도 안하고, 고집이 좀 있긴 하지만, 특유의 순수함 같은 게 느껴져서 좋았다. 나이에 비해 순진한 게 더 이상 자랑이 아닌데 아직도 순진한 나는 내 또래 다른 직장인들과 이야기 할 때마다 그들과 심한 괴리감을 느끼고 거북해진다. 그들의 세상물정 밝음과 모든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과 조언을 들을 때마다 얘네는 뭐 이렇게 만사에 자신만만할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언니와 한 3시간 대화 하는 데 그런 느낌이 없었다. 종종 놀러가려고 한다.

나는 클래식은 안 듣지만, 책에서 클래식 작곡가들의 삶 같은 건 좀 읽었고, 유명한 작곡가들 중에 슈베르트가 유독 너무 불쌍했다. 볼품없는 외모, 살아 생전에 명성도 못 얻었고, 평생 단 한 명의 여자도 사귀지 못하였고, 짝사랑만 하다 창녀에게 옮은 매독으로 혼자 죽어간 슈베르트.

그래서 언니에게 슈베르트 너무 불쌍하다고 말했더니, 뭐가 불쌍하냐는 답이 돌아왔다. 몇 백년 지난 지금도 우리가 슈베르트 얘기 하는데 전혀 불쌍하지 않다는 거다. 나는 여전히 너무 불쌍한데 말이다. 난 후대에 내 이름 석자 아무도 몰라도 상관 없으니까 현생에서 행복하게 살다 죽고 싶다.

 

4. 한단계 위 수업

영어 학원에서 레벨 업을 해줬다. 어제가 그 수업 첫번째 수업이었다. 그런데 내 앞에 앉은 의사 언니가 자기는 외국인 선생님 아니면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맘을 먹은건지, 노골적으로 날 무시하고 얘기를 안하려고 해서 기분 나빴다. 그 언니 매주 오는 것 같든데 다음부터 절대 같이 안앉기로 했다. 영어 그렇게 잘하는 거 같지도 않든데 흥.

한단계 위 수업이 별로 재미가 없다. 선생님도 한단계 아래반 선생님보다 재미 없고. 이 수업이 대체 언제 끝나나 싶어서 시계를 몇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5. 미용실 언니

날이 갈수록 내 성격이 유해지는 걸 느낀다. 예전에는 택시 기사 아저씨나 미용실 언니들이 말거는 게 너무 싫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들은 아직도 좀 싫은데, 미용실 언니들하고는 이제 한 15분이면 친구가 될 수 있다. 어제 광화문 뒷골목에 있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는데 미용사 언니와 즐거운 대화를 했다. 내가 머리 감고 대충 드라이로 말리기만 하는 걸 알아 챈 언니가 드라이하여 헤어스타일 예쁘게 하는 열심히 방법을 설명해주셨다. 유익해서 열심히 듣고 계산을 하고 나서는데, 언니가 나에게 "즐거웠어요." 라고 인사를 했다.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오늘 아침에 언니가 말한대로 드라이 해봤는데 확실히 그냥 마구잡이로 드라이 한 것보다 예쁘게 되서 앞으로도 계속 언니 말대로 하려고 한다.

 

6. 잘못된 결혼

대학 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남자는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했다. 나는 아직 혼자인데 그 남자는 결혼해서 이번 달에 애도 낳는다고 하니, 난 실패자인 것이다. 하지만, 가끔 문자로 안부만 묻는 그 남자는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미혼 여자이기 때문에 일부러 불행한 체를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에게 아직 맺힌 감정이 있는지, 가끔 악담을 하며 내 속을 뒤짚어 놓곤 한다.

며칠 전에는 그 남자가 나에게 미친 제안을 했다.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하면 안된다는 걸 그 남자가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나를 인생의 패배자 취급을 하니, 좀 딱하다. 나도 딱하지만 그 남자도. 하지만, 뭐 내가 남 걱정할 때 아니니, 신경 끄기로 했다.  

 

7. 목련

나는 만개 했을 때 목련이 벚꽃보다 더 좋다. 목련은 나중에 질 때가 별로라고들 하지만, 그 나중을 다 고려해도 목련이 더 좋다. 흰 목련.

우리 아파트 앞 다른 아파트에 목련이 피는데, 10년 째 그 목련을 봄마다 보고 있다. 아직 피진 않았는데, 목련이 필 날만 기다리고 있다. 목련은 꽃이 내 주먹만 하고 색도 순결하고, 고귀한 느낌이 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아무래도 목련인 것 같다.


이젠 정상궤도.

일상 2015. 3. 27. 23:26

사람은 예상치 못한 작은 사건에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어제는 초등학교 시절 바로 옆집에 살며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행신역에서 만났다. 대전에 살던 시절 친구를 고양에서 보게 되다니 신기했다. 나도 걔도 고양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영영 가까워질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걔를 만나, 밀린 근황과 고민 얘기를 했더니 거짓말같이 괴로운 감정도 미련도 사라졌다. 친구는 행복하고 편안해 보였다. 부러웠지만 내 유년을 함께 보낸 친구라 진심으로 기뻤다.
내 블로그의 고정독자가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요며칠 일련의 미친 감정기복의 글을 참고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사과도 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글쓰기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정서 회복에 엄청난 도움이 되기때문에, 안쓸 순 없었다.
어렸을 때 부터 난 뭐하나 특출난 게 없었다. 하지만 남들보다 덜 떨어진 적도 없었다. 가출도 말썽도 없이 학교 다녔고,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크게 나쁘지도 않은 무난한 대학들어가서, 제때 취업해서 부모님이 크게 걱정하지 않는 그런 딸이었다.​ 가만 놔둬도 알아서 남들만큼은 하는.
우리 엄마는 요즘 내가 남들보다 크게 못난 분야가 있다는 것에 적응을 아직도 못하고 계신 것 같다. 나보다 더 심하게…빨리 받아들이셨으면 나도 엄마도 편할텐데.
일주일만에 몸무게가 2.5kg 이 빠졌다. 예전 다이어트할 때는 죽어라 노력해도 1kg도 안빠지더니 참 쉽게도 빠졌다.
이번달 월급의 거의 4분의 1을 투자하여 봄옷을 샀다. 내 몸에 잘맞는 새옷을 입고 전신거울에 서니 기분이 좋았다. 상쾌하게 시작하진 못했지만, 드디어 봄이다! 완전한 봄.


보고 싶은 복숭아 뼈

일상 2015. 2. 15. 23:51

 1.  발의 붓기가 안 빠지고 있다. 저번 주말도 이번 주말도 거의 아무 것도 쉬고 있는데도 나아지질 않는다. 내 왼쪽 발을 잘 보면 발가락 사이 사이에도 멍이 들어 있다. 발의 멍과 붓기를 볼 때마다 넘어졌을 때 고통이 생각난다. 정말 아팠다.  복숭아뼈가 붓기 때문에 사라져서 아직도 안 보이는 상태다. 반깁스를 한 이후로는 입을 수 있는 옷이 한정되어 매일 매일 고무줄 바지만 입고 있다. 그 바지만이 무릎까지 접어서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바지는 전부 스키니라 올라가지 않고.. 스타킹은 한 쪽을 무릎 까지 자르지 않는 이상은 못신을 거다. 

 

2.  폴 토마스 앤더슨의 새 영화가 나왔다. 이번 영화 포스터도 역시 멋지다. 아마 영화도 멋질 것이다. 난 아직 There wil be blood 도 안보고, Master 도 못봤지만, 그 이외 다른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는 무지 좋아하니까. 언젠가는 다 보리라 생각하고 있다. 사실 There will be blood 는 어린 애가 귀 머는 장면부터 불쌍해서 보기를 멈춘 뒤로 못보고 있다. 새 영화가 나왔다길래 할일도 없고 심심해서 구글에서 Paul Thomas Anderson 을 쳐봤다.


 


  만 27세에 부기나이트 같이 대단한 영화를 만드신 분이 얼굴도 이렇게 잘 생기셨다니. 오늘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를 모조리 찾아서 봐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어떻게 생긴지 모를 때도 그의 영화를 좋아했지만, 얼굴을 보니 더 좋아지는 이 마음은 어쩔 수가 없군.

 

3.  친구와 4월 말에 대만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일기에 종종 등장하는 친구와. 가장 친한 친구인데 친구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함께 1박 2일 여행도 한번 못가봤다. 올해 정말 큰 맘 먹고 시간 내서 가는 거라 기대가 된다. 서로 게으른 편이라 맘이 편하다. 오늘 여행상품을 검색해서 싼 걸 찾긴 찾았는데 비행기가 불안하다. 오늘 내가 찾아서 예약 걸어놓은 대로 확정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4.  작년에 본 영화가 대부분 다 좋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을러서 여기 다 감상평을 쓰진 못했지만, 정말 전부다 괜찮았다.

 

원데이, 이터널 선샤인, 킬러들의 도시 (한국 영화 제목 왜 이러는지... 원제: In Brugge) , 어바웃 타임, 남자사용설명서, 싱글맨, 노트북, 부기나이트, 겨울왕국, 주먹왕 랄프, 언어의 정원, 인 디 에어, 공주와 개구리,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저, 그랜토리노, 아이 엠 러브, 좋은 친구들 (마틴스콜세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늑대아이, 아르고, 그녀, 로마 위드 러브, 초속 5cm, 엣지 오브 투마로우, 컨저링, 풀 메탈 자켓,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드래곤 길들이기2, 블루 재스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바스터즈: 거친녀석들, 보이후드, 제인에어, 나를 찾아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시리어스 맨

 

이 중에서 어바웃 타임, 로마 위드 러브,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엣지 오브 투마로우, 초속 5cm, 드래곤 길들이기 2 빼고 다 좋았다. 진짜로.

 

어바웃 타임은 너무 교훈을 주려고 해서 싫었고,

로마 위드 러브는 아무리 이게 영화 컨셉이라지만 너무 성의 없이 만들었고,

혹성탈출2 는 인간 쪽 이야기가 너무 약해서 지루했고,

엣지 오브 투마로우 는 로봇 수트 입은 전투신이 너무 투박하고 약했고,

초속 5cm 는 나쁘진 않았지만 일본 애들의 첫사랑에 대한 집착은 그만 보고 싶다는 생각을 좀 했고,

드래곤 길들이기2 는 안 만드는게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기억나는 장면이 없다.  

 

최고를 뽑기 어려울 정도로 다 좋았지만, 역시 최고 재밌었던 건 샤이닝이고, 보면서 깔깔 웃었던 건 좋은 친구들 이다. 특히 가발 선전 하던 아저씨가 로버트 드니로한테 맞는 장면이 최고 웃겼다. 다시 본 영화였는데 역시 명작.

 

5.  집에서 가만 있다보니 핸드폰에 있는 음악 랜덤 플레이 하기도 지쳐서 가지고 있는 CD 좀 찾아서 들으려고 오랜만에 CD 장을 봤다. 그런데 내가 Pat Metheny Group 의 Letter from Home 앨범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난 내가 이 앨범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는데, 아마 사놓고 한번이나 듣고 안들었나보다. 지금도 그 앨범을 들으며 일기를 적고 있다. 이 좋은 앨범을 내가 왜 사놓고 열심히 안들었는지 모르겠다. Simon and Garfunkel 앨범도 있는지 몰랐는데 CD 장에 고이 꽂혀 있었다. 그나저나 사이먼 앤 가펑클 아저씨들 CD 표지에 있는 사진 진짜 촌스럽다.

 

6.  아빠가 인터넷 쇼핑을 못하셔서 내가 가끔 CD를 사서 드린다. 그런데 아빠에게 사줬던 CD 를 또 사드리는 실수를 범하였다. 내가 전에 브람스,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이미 사드렸댄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또 브람스,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샀다.. 아빠는 그래도 다른 연주 버전이니 비교하며 듣는다고 받으시긴 했는데 다른 때처럼 기뻐하지 않으셨다. 왠지 죄송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매년 똑같은 제도 선물세트 받는 에단 호크 보면서 어떻게 자기가 준 선물도 기억을 못하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똑같은 짓을 했다.

 

7.  오늘 배철수의 음악캠프 아티스트 스페셜은 스매싱 펌킨스 였다. 난 스매싱 펌킨스가 해체 했을 때 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그들의 전성기 시절을 모른다. 당연히 공연 같은 것도 볼 수 없었다. 배철수 아저씨가 스매싱 펌킨스의 한국 공연 대단했다고 말하는데 부러워 죽을 뻔 했다. 난 Nirvana 보다 Smshing Pumpkins 가 더 좋다. 물론 둘다 좋고 둘다 대단한 매력이 있고, 너바나도 좋아하지만, 굳이 꼭 하나를 꼽으라면 스매싱 펌킨스 음악이 더 세련되고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바나는 뭐... 음악적 완성도 이런게 필요 없을 정도로 멋지고 상징적인, 락스타라는 말이 그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밴드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바나 에 비해 저평가 된 스매싱 펌킨스에 좀 딱한 마음이 든다.

   첫 곡으로 Today 의 기타 간주가 나오는데,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다. 난 여전히 이 노래의 가사를 다 외우고 있고, I'll burn my eyes out 이라는 가사가 이렇게 좋은데, 나이만 33살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Smashing pumpkins 의 Siva 라는 곡을 참 좋아한다. 이 노래 뮤직비디오를 보니 빌리코건 너무 젊어서 적응이 안된다. 이 곡은 Sprinkle all my kisses on your head 라는 가사가 좋다.

 

 

 

7.   다음 주는 이틀만 일하면 된다. 설 연휴 끝난 후에는 구두 신을 수 있을 정도로 내 발이 나아 있었으면 좋겠다. 쓸 데 없이 일기가 참 길었는데, 알다시피 할 일이 참 없어서 그렇다.

 


  아버지 제사인데도 일 때문에 못내려간다는 친구 메세지를 보고 친구 아버지 돌아가셨던 그 겨울이 생각나서 이내 우울해졌는데 체호프 책을 읽고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이번 주는 쉽게 가는 한 주였다. 그런데 지독히 길었다. 월화수목금 5일 일한게 아니라 월화수목목금 이렇게 6일 일한 기분. 오늘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나섰다.

  운전을 시작한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처음 운전했을 때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살이 빠질 지경이었다. 야근이라도 하는 날에는 미친듯이 질주하는 고속도로의 차들 가운데 나혼자 벌벌 떨었다.

  하지만, 이제 나도 무자비한 야간질주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래봤자 140 정도지만..) 내가 속도내는 구간은 정해져있다. 김포 톨게이트 지나서 서운JC 까지 구간과 경인고속도로 도화 IC 지나 종점까지. 요즘에는 퇴근 길에 운전하면서 음악듣는 이 시간 없이 세상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발가락에 힘이 바짝 들어갈 정도로 세게 엑셀을 밟으면서도 Just the two of us 나 Bitter Sweet Symphony 같이 아주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곡이 나오면 적당히 울적해지고, Climbing up the wall 같은 곡이 나오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 되기도 한다.

  야간 운전을 하면 시야가 좁아진다고 한다. 가끔 그런 걸 느낀다. 가로등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빠르게 달리다 보면 도로 끝 작은 구멍으로 빨려들어 가는 기분이다. 이대로 그냥 내 인생이 끝나버려도 전혀 아쉬움 없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확실히 매력이 있다. 야간 운전 말이다. 11년에 접어든 우리집 차는 아빠가 워낙 속도를 안내고 운전하여 처음에는 아무리 밟아도 120 이상이 안나오다, 부품을 하나둘 갈아 끼우고, 내가 야근할 때마다 속도를 내서 운전한 덕분에 이제 145 까지는 속도가 무난히 나오고 있다. 난 앞으로도 차 살 생각 전혀 없는데, (정확히 말하면 못사는거다. 돈이 없으니) 가끔 아우디, 제규어 타면서 고속도로에서 110 키로 정도로 달리는 운전자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한편으론 저런 잘나가는 차 타고 이 도로를 달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래서 사람들이 차에 목숨거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나는 차를 안사야 145 이상 속도를 안내게 될테니 돈 없어 다행이다. 이렇게 속도내다 잘못하면 지옥으로 직행할 수 있으니, 조심은 하겠지만, 정말 좋다. 음악들으면서 운전하는 거.

  초등학교 때 부터 이사만 10번 넘게 다니고, 등본 발급할 때 전입신고 기록 포함하면 내가 이사다닌 집의 주소만 3장이 넘게 발급되는 등본을 가진 나는 오래된 동네 친구를 가져본 적이 없다. 부끄러운 내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 단 한명 없다는 사실에 학창시절 내내 외로웠다. 그렇게 내내 외롭다 보니 이젠 혼자인 게 훨씬 편하고 둘이거나 셋이면 슬쩍 내 행동 마음 모든 것이 나답지 않게 부자연 스러워 지는 것이다.

  내가 그 남자분에게 흥미를 보인 이유는 지금은 사랑하는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과 3년 내내 짝사랑 했던 첫사랑과 똑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것 이었다. 여름에 혼자 운동할 때 전화하면 5분 내로 나올 수 있는 거리에 사는 걸 보면 친해지면 재밌을 것 같아서였는데... 

  만나자는 말 한번 못하고 계속 이리저리 빙빙 돌리는 남자에게 그냥 내가 먼저 보자고 말을 했는데, 내일 느닷없이 고백을 할까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근데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 어쩌면 그 분도 나랑 똑같은 마음일 수도 있는 거잖아? 동네 친구인데 여자면 재밌겠다 하는 생각에 저러는 걸 수도 있는 거니까. 제발 그런 마음이길 바라며 책 더 읽다가 그냥 자야겠다. 이거 누가 보면 정말 웃기겠지. 혼자 김칫국 한사발 시원하게 들이키고 있는 내 모습이.


생일

일상 2014. 12. 29. 00:22

 

​  원래 내 생일날은 매년 지독하게 추웠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춥지 않았다. 동생한테 선물 받고, 엄마는 맛있는 반찬을 많이 해주셨다. 미역국도 물론 끓여주셨고.

  결국 또 한살 먹었고, 이제 2014년도 끝난다.

  난 가끔 다른 사람들한테 딱한 취급 당하기 싫어서 가끔 여러사람을 기만할 때가 있다. 그거 때문에 요즘 조금 우울하다. 이게 내 자존감을 유지시키는데 도움이 되는지 어쩌는지 잘 모르겠지만, 생긴대로 내 감정 다 표출하고 살면 모르긴 몰라도 친구들은 모두 내 곁을 떠나고 회사에서는 짤리겠지.

  우울할 땐 음악 들으면서 산책을 가는데, 산책 가는길에 개항로 라고 불리는 자유공원 가는 길 장식이 날 기분 좋게 했다. 특히 저 눈 결정 모양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될 때도 있지만, 사람이 생각없이 사는 것 보단 쓸데 없는 생각이라도 좀 하면서 사는게 나은 것 같다.


조용한 성탄절

일상 2014. 12. 25. 23:06

  컴퓨터로 좀 할일이 있어서 하루종일 느려터진 내 노트북을 만졌다. 엄마는 모친상 당한 친구한테 가셨다. 우리 엄마가 집을 비운 건 잘 된 일이겠지. 작년과 똑같이 집에서만 죽치는 내 모습보면서 또 얼마나 답답해 하셨을지 안봐도 비디오다.

  엄마가 잠깐이나마 고등학교 동창들 만나서 얘기하고 올 수 있어서 잘됐단 생각을 했다. 아까 저녁때 집에 오셨는데 기분이 아주 룰루랄라 시다.

 

  덕분에 하루종일 아빠와 함께 둘이 집을 지켰는데, 너무 심심해 하셔서 모시고 영화라도 볼까 싶어 현재 상영 중인 영화를 아무리 검색해도 보고 싶은 영화가 없었다. 숲속으로는 아빠가 너무 돈 아까워하실거 같고, 엑소더스는 러닝타임이 너무 길고. 그래도 아빠 혼자라도 엑소더스 보고 오시라고 했어야 했나? 아빠 그런 구약성경 스토리 영화 좋아하시긴 하는데.  

 

  오후 늦게 요즘 최고로 더러워진 차를 세차했고, 세차하러 나온김에 운동이나 하자 하고 공원으로 갔다. 그런데 성탄절날에도 뽕짝 틀어놓고 여러명이 에어로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 기억으론 설날 연휴 중에도 하루도 안 빼놓고 나와서 에어로빅 했던 거 같은데, 거기 단상에서 에어로빅 지휘하는 엄청 마른 아저씨는 365일 내내 6시만 되면 자유공원으로 와서 춤을 추시는 것인가.. 싶어 경외감이 들었다.

  원래 사람이 단 10분이라도 꾸준히 하는게 참 힘든건데, 10분도 아니고 거의 30분을 매일같이 눈이오나 비가오나 나와서 춤을 추시다니. 대단한 분이다. 이정도면 TV 에 나오셔도 될 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빠 혼자 심심하게 집에 놓고 온게 미안해져서 오는 길에 칭따오를 4병이나 사와서 아빠 한캔드리고 4500원짜리 영화를 함께 봐드렸다. 모스트 원티드 맨 이라는 영화인데, 워낙 평이 좋아 선택했는데, 너무 현실적인 현대 첩보를 다뤄서 재미는 별로 없었다. 총싸움도 없고 추격신도 전혀 없는 현실적이어도 너무 현실적인 첩보물.. 흥미롭긴 했다. 실제 저렇겠지 싶어서.

 

 요근래 엄청 춥고 아침에 눈 내렸던 한 3일동안 아빠는 내가 차 타기 전에 차에 눈을 다 치워놓고, 심지어 차안에 히터까지 틀고 날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차탈 때 너무 추울까봐서.

  난 중학생 이후로 아빠에게 실망한 적도 많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적이 많아서 무뚝뚝해도 그렇게 무뚝뚝할 수 없고 아빠께 하루에 한마디도 겨우하는 딸인데, 하지 말라고 해도 기어코 시동 켜놓고 기다리는 아빠를 보면 가끔 눈물이 핑 돈다.  

 

  모친상 당한 분의 어머니는 올해 97살로 100살을 3살 남겨놓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정도면 호상이겠지. 97살이라니.

  사람이 기력이 쇠해지는 것이 45살 부터라고 치고 100살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이제까지 살아온 기간보다 더 긴 기간 동안 몸이 약해지고 보기 흉한 몰골로 변해가는 걸 매일 매일 봐야한다는 말이 된다. 정말 끔찍한 일 아닌가. 주어진 인생이니 끝까지 살아내야겠지만, 사는 게 참 재미가 없는 것 같다. 100년동안 기력 팔팔하고 생기로운 기간은 끽해야 15살때부터 30살까지 15년 남짓이다.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오늘 꼭 일요일 같다. 그런데 내일은 금요일.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다.  

 

 


드디어 동지

일상 2014. 12. 21. 23:17

 

  우리집에서는 매년 하는데 다른집에서는 안하는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여름에 봉선화물 들이는 거고, 두번째는 동지에 팥죽 끓여 먹는거다.

  내일이 동지라 엄마가 어김없이 팥죽을 끓이셨다.

 

  요즘 해가 4시 반이면 질 준비를 하고 5시부터 깜깜하다. 동지가 지나면 이제 조금씩 해가 길어질거고, 점점 길어지다가 봄도 오고 그러겠지.

 

  매년 가까운 회사 동료들한테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줬다. 지금 직장으로 오면서 부터는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오늘 카드를 일단 사긴 샀는데... 안그러던 애가 왜 이럴까? 싶으려나.

 

  진짜 일기에나 쓸 법한 애기를 좀 쓰자면, 올해는 엄마를 안심시켜 주는 의미에서 몇번 선을 보러 나갔다. 내가 결혼할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는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선자리가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처지인건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해야할 것 같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오늘도 진짜 나가기 싫은 걸 눈까지 휘날리는 날씨에 꾹 참고 갔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만 죽도록 하다 온 거 같다.

 

  대체 한국 사회에서 32살 노처녀 부모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길래 딸의 인생이 시궁창이 될 것임이 명약관화 한 상황에서도 막무가내이신 건지.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저러시는 걸 볼 때마다 정말 슬프고, 나같이 이런 방면으로 능력 없는 딸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내년 되면 더 심해지실텐데 정말 눈앞이 캄캄하다. 난 내가 결혼 못하고 있는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고, 솔직히 영원히 결혼 못하다고 해도 그냥 저냥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결혼을 못하는 딸을 둔 엄마로 사는 걸 못견뎌하는 엄마 때문에 요즘에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독립을 하고 싶어도, 마땅히 집얻을 돈도, 차 굴릴 돈도 없는 내 처지를 탓해야지 뭐 누굴 탓하겠냐만... 지금 내가 가진 돈을 올인해도 경기도 고양에 있는 반지하 이상의 수준을 벗어나진 못하니깐, 죽을 맛이어도 일단은 꾹 참아야 할 것 같다.

 

  사실 요즘 저 사람이 내 남자친구였으면 어떨까? 가끔 상상하곤 하는 사람이 생기긴 생겼다. 문제는 그 남자가 나한테 전혀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거다. 아마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조차 모르겠지. 크크크  

  어렸을 때라면 아마 못참고 그 남자한테 계속 계속 연락하고 어떻게든 만날 궁리를 했겠지만, 나이를 헛 먹은 건 아닌지, 뭐 나한테 관심이 없으면 어쩔 것이냐 싶고 괜히 그 남자 부담스럽게 괴롭히고 싶지 않고 그렇다. 이러다 말겠지. 뭐.

 

  아까 낮에 눈이 휘몰아쳤다. 너무 추워서 차를 끌고 나왔는데 백화점 지하에 주차를 하는 데에만 한 40분 걸린 것 같다. 다행히 그쳤지만 내일은 좀 일찍 일어나서 가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저번주에는 회사인 고양에서 수원까지 차를 끌고 외근을 갔는데, 수원 가면서 새삼 깨달았다. 내 운전 실력이 일취월장 했음을. 저저번주에는 인천에서 청담동까지 갔는데 청담동 건물 지하 주차장이 더럽게 좁아서 고생한 거 빼고는 무난했다. 운전을 즐기는 단계까지도 못가고, 요령있게 주차도 못하지만, 이 정도면 뭐 그럭저럭 세상 사는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외근 이외에는 공무원한테 한 2주 시달렸다. 아마 다음주 월요일에 출근하면 바로 전화해서 이거저거 하라고 시킬 것 같은데, 그 생각을 하니 또 우울해져서 칭따오 맥주를 마셨다.

  내가 마시려고 사온건데, 아빠가 반절이나 드셔서 절반 밖에 못마셨다. 맥주 좋아하면서도 칭따오 맥주는 오늘 처음 먹어봤는데, 앞으로는 칭따오만 마시기로 했다. 스텔라, 기네스, 하이네켄, 밀러, 기린, 아사히, 맥스, 코로나, 필스너, 다 마셔봤지만, 오늘 칭따오 맥주가 최고였다. 아무래도 이제까지 맥주 헛마신 거 같다. 

  다음 주에 이마트가서 식스팩을 여러 개 사오리라.

 

  오늘 엄마한테 시달린 것도 우울한데 지금 또 내일 공무원한테 시달리고 미안하다고 절절매야 할 걸 생각하니 더더 우울하다. 지각하면 눈치보이니 빨리 자야겠다.    



꺼내보곤 하는 기억

일상 2014. 12. 15. 00:44

  일요일 밤에는 술없이 잠들 수가 없다. 난 지금 술에 꽤 취한 상태인 거 같은데, 이 상태로 잠들면 내일 약간 숙취에 시달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헛소리 좀 늘어놓다 자려고 한다.

 

  사람은 나쁜 기억에 더 쉽게 사로잡힌다. 나에게는 직장생활이 힘들 때마다 꺼내보는 엄청나게 불행했던 시절의 기억이 하나 있다. 때려치고 싶거나 혼자인 것 같은 때마다 꺼내보는 그런 기억 말이다.

  불행한 사건이나 시절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지만, 인생 전체로 볼 땐 불행했던 기억이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큰 역할을 할 때도 있다. 같은 논리로 행복했던 기억이 언제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사람이 큰 괴로움을 느낄 때는 불행했던 시절의 중심은 아닌 것 같다. 행복했다가 불행해질 때 그 순간이지.

 

  난 한국나이로 32살 평생 살면서 술에 크게 취해본 적이 없다. 술에 취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은 꽤 있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 맞은편에 앉아 있으면 틀림없이 경계를 하게되고 결국에는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이다. 어제는 친구랑 20대 초반에 이랬다 저랬다 얘기를 했다. 20대 초반 때는 나는 술을 무척 잘 마셨다. 소주 3병에도 끄떡없었고, 소주 3병을 마시고 바로 맥주마시러 가도 절대 취하지 않고 멀쩡한 상태로 샤워하고 이를 닦고 잘 수 있었다. 지금은 소주 한잔도 입에 대기 싫은데 말이다.

 

  술에 취하고 비틀거려도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고, 취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아마 그 다음날 일어나서는 변하지 않는 현실에 더 우울해질 것 같다.

 

  초심을 기대하는 사람들하고는 가깝게 지내기 싫다. 사람이 언제나 의욕에 가득차 있을 순 없는 거다. 실상을 알고나면 더 좋아지는 경우보단 더 싫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건 자연스러운 거다. 자연스러운 걸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생각만 하던 것을 실제 말로 꺼내면, 돌이킬 수 없는 진실이 되고, 그걸 글로 쓴다면 도저히 빼도 박도 못할 정도의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가장 큰 증거 하나를 남기는 셈이니 말이다. 그래서 편지는 항상 매력적이고, 가슴이 벅차고 그런 것이겠지. 나에게 그냥 말로 고백했던 남자는 이제 이름도 기억 안나고 그러는데, 편지를 줬던 남자는 지금도 순서대로 이름을 나열할 수 있다.

 

  난 아무래도 진로를 잘못 택한 것 같다. 더 우울한 건, 지금 이 진로가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한 재능도 없었다는 거다. 나는 아부도 못하고, 싫어하면 싫은 티가 그대로 다 나고, 경솔하기까지 한 것 같다. 지금 말한 게 내 단점들이라면, 대체 내 장점은 무엇인걸까? 누군가로부터 잘한다 잘한다 칭찬 들었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난다. 칭찬을 갈구하는 종류의 학생도 직장인도 아니었지만.

 

  내일 눈이 안왔으면 좋겠다. 지금 이 포스팅 내일 읽어보면 무지 쪽팔리겠지? 크크크크.

 


혹한

일상 2014. 12. 8. 00:07

  겨울이 참 싫다. 하지만, 4계절 중 가장 나를 들뜨게 하는 계절도 겨울이라는 것도 부정할 순 없겠다. 우선 내가 겨울에 태어났고, 겨울에는 눈도 내리고, 또 애인이 있는 것도 로맨스도 겨울이 더 어울리고, 책도 잘 읽히고 겨울에는 일기도 잘써진다. 난 내가 겨울에 태어난 게 좋다.

  우리집은 엄마와 동생은 초여름에 태어났고, 나랑 아빠는 12월 생인데, 신기하게 취미나 성격이 아빠랑 내가 비슷하고 엄마랑 동생이 비슷하다.

 

1. 뽁뽁이

 

 

  저번주에 엄마와 함께 열심히 창문에 뽁뽁이를 붙였다. 요즘에는 저렇게 눈꽃 모양 들어간 뽁뽁이도 나와서 저 모양이 그냥 뽁뽁이보다 비싼데도 저걸로 구입했다. 내방은 365일 햇빛 한번 안드는 방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춥고 서늘한지 모른다. 그런데 뽁뽁이와 문풍지가 큰 효과가 있는 거 같다. 작년에 안 붙인 게 억울할 정도다.

 

2. 후회

  내가 다니는 영어학원이 그냥 영어학원보다 비싼편인데 거기에 여러 소셜 활동 같은게 포함되서 그런 것도 있다. 금요일 밤에 무슨 캡션 없이 영화 상영회도 하고 평일에는 에프터눈 티 같은 것도 마신댄다. 그리고 Pub night 라고 학원생들 모여서 맥주마시러 가기도 한다는데, 9개월을 다니면서 그런 행사에 한번도 참석을 안했다. 부끄러워서... 그러다가 학원이 12/18 날짜로 끝나니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자는 심정으로 Pub night 를 갔다.

  그 행사 주관하는 영국인 영어 선생은 런던 출신이라는데, 별로였다. 좀 무시하는 기분 들고. 런던 출신은 다 그렇게 재수 없는건가? 싶었다. 나 런던 여행 갔을 때 느꼈던 사람들이랑 똑같았다. 영어 못한다고 무시하는 거 말이다. 자기네들이 모국어 잘하고 외국인이 영국 모국어 못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쳇. 

  난 그 술자리에서 영어로만 대화해야 하는 룰을 깨고 어떤 언니랑 신나게 한국말로 떠들었다. 그 언니가 독일에서 10년동안 살다가 한국와서 피아니스트 하는 언니라고 해서 너무 신기해서 그만 이성을 잃었던 것 이다.

  집에와서 누워서 이불을 뻥뻥 찼다. 맥주 두병 마시고 약간 취했던 거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너무 말을 안하고 앉아 있으니 혼자 민망해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왜 그렇게 혼자 떠들었을까 싶었다. 후회하며 잠들었다.

 

3. 선호

  내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게 더 많을까 싫어하는 게 더 많을까? 아마 좋아하는 게 더 많으니 자살하지 않고 살아 있는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난 아주 사소한 것에 있어서도 선호가 확실한가보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싫어하는 게 있어도 표현을 안하든가. 위에 말한 학원 행사에서 어떤 학원생이 나보고 싫어하는게 엄청 많다고 벌써 싫다는 말을 몇 번한거냐고 말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싫다고 말한 건 영화 About time, London (에딘버러보다다 싫었고, 영국 전체가 체코보다 비싸서 싫었다고 말했다), Radiohead 의 Kid A  앨범 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이렇게 싫은게 많냐는거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난 싫어하는게 나오면 바로 너무 싫어. 말하는 거 같기도 하다... 는 생각을 했다. 이 비슷한 얘기를 동생한테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선호를 갖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근데 상황에 따라서는 옆에 사람이 짜증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난 누군가가 1Q84 얘기를 하면,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 진짜 싫던데. 라고 바로 말해버리니 말이다. 재수 없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가도, 그럼 어떤 대상에 대해 좋다 싫다 조차도 모르는 멍청이가 되란 말이야? 라는 생각에 나에게 싫은게 왜 그렇게 많냐고 물은 그 남자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어떤 선호를 갖는 데에도 정말 엄청나게 긴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앞으로는 바로 싫다고 말하지 말고 이래서 싫다 저래서 싫다 이유 정도는 말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4. 러시아 해군들

 

 

 

  이 동네 살면서 별걸 다 본다 싶었다. 오늘 운동하러 자유공원 가는데 이마트 앞에서 해군 복장을 한 무리들이 줄담배를 피고 있는거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풍경인 것이야? 라는 생각에 난 일부러 그 무리 옆을 지나가며 옷을 살폈다. 팔 뚝에 러시아 국장과 러시아 글자가 찍혀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무서워서 그만 쳐다봐야겠다 결심하고 자유공원으로 항했다. 그런데 동인천 일대에 여기 저기 저런 해군 무리들이 여기 저기 보였다. 군인들이 입은 군복은 검정 모직코트에 금색 단추가 달려있었고, 바지까지 까매서 멋있어 보였다. 내가 오늘 본 군인 중 가장 계급 높아 보이는 아저씨가 최고 멋있었고 다른 애들은 백인 기준으로보자면 못났다고 볼 수 있는 얼굴들이었지만, 다들 기껏해야 한 23살 정도 밖에 안돼 보이고 하나같이 순진한 표정들이었다.

  오늘 이 러시아 해군들 때문에 귀여운 광경을 목격했다. 해군 무리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횡단보도 정지선에 정차되어 있는 차 안에서 5살쯤 된 남자애가 창문을 열고 "안녕하세요~~" 이러면서  열심히 손을 흔드는거다. 군인들 중 몇 명은 손을 흔들었고, 자기네들끼리 웃었다. 손을 열심히 흔들던 5살 남자애는 나중에는 "충성~!" 하며 경례까지 하는게 아닌가. 남자애가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정작 동네 어른들은 다 곁눈질만 하고 가까이도 못가는데 5살 짜리는 신나서 인사하고 경례까지 하다니.

  자유공원에 올라가서 보니 군함으로 보이는 배가 2척 정도 보였다. 기사를 찾아보니, 4척 정도 왔다고 하고, 우리나라 해군이랑 뭐 협정 같은 걸 맺는다고 한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러시아 군인 봤다고 말했더니, 처음봤냐고 요 며칠 신포시장에도 한 대여섯명씩 몰려 다니고, 이마트에서 와서 먹을거 사가고 그런댄다. 그리고 여름에도 종종 이동네에서 러시아 해군들 볼 수 있댄다. 우리 엄마가 본 바로는 걔네들 여름 군복은 위 아래 다 흰색이고 이마트오는 애들은 하나같이 다 어리다고 한다.

  저 군인들 디게 심심해 보이든데, 우리 동네같이 후진 동네서 자기네들끼리 돌아다니며 대체 뭘 하는걸까?? 그냥 무작정 배회하고 있는 것 같던데.

 

4. 비관

  저번 주 시리어스 맨의 여파가 아직 이어지고 있는 거 같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 거 같다. 그러니까 인생이 앞으로 더 좋아질 거 같지 않다. 나빠질 가능성이 훨씬 높은 거 같다. 다음 주에는 팀장이 면담을 한다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회사에서 나한테 시키는 일을 보면 한숨이 나고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편하게 잡일만 하면서 세월 보내면 속 편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난 이 회사에서 천년만년 있으려고 다니는 게 아닌데, 지금 하는 일을 봐서는 이직도 못할 거 같다. 이렇게 내가 쓸모없이 소모되고 있다는 게 한숨이 나서 우울한데, 팀장에게 말을 해봤자 좋은 소리도 못들을 것 같다. 답답하다.

 

5. 거짓말

  회사 사람 중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2년 넘게 나를 속여왔다는 사실에 이틀동안 좀 괴로웠다. 회사에 친한 친구 한명 없는게 날 너무 힘들게 하고 있다. 마음 터놓을 친구 말이다. 엊그제 학원 행사 때문에 광화문 갔을때 편의점에서 대충 저녁 먹는데 그 건물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 여자 2명이 웃고 떠드는걸 보며 부러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나도 예전 회사에선 저런 친구 있었는데 싶어서 말이다.

  너무 충격적이다.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사람을 속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난 왜 이렇게 전혀 눈치도 못채고 바보같이 속고만 있었단 말인가.

  나도 날 속인 그 직원처럼 지금 보이는 내 모습이 전부가 아니고 아무한테도 말안한 비밀 같은게 있으면 참 좋겠단 생각도 잠깐 했는데, 내 성격에 그건 불가능이다. 뭐가 더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철두철미할 수 있다는 게 부러운 한편으로는 소름끼치고 무서웠다.

 휴. 무서운 사람들이다. 애초에 나와 유전자 자체가 다른 것 같다. 이제 그 분을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우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제 지금 회사에는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