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자의 연봉

30살 넘어 만난 남자들은 심심치 않게 자기 연봉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 본인 연봉 얘기를 하는 것이 과연 나에 대한 관심의 표현인건지, 아닌지 혼란스럽다. 나는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들 말하니 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참 난감하다. 우와. 능력 있으시네요? 이래야 하는건지... 보통은 아~~ 하고 마는데.

묻지도 않는 연봉을 첫 만남에 말한 어떤 남자와 2번 함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지금 내 처지에 그 정도 남자가 연락하고 시간 같이 보내주면, 적극적으로 해도 될까 말까 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참 심드렁하다. 3월의 비극적 사건 이전의 평온한 마음으로 되돌아 간 것 같다. 남자에게 집착도 노력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그런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2. 학원까지 차 끌고 가기

평생 발이 완쾌되지 않을까봐 두렵다. 엄마 말로는 내가 걸을 때 아직도 약간의 절뚝거림이 느껴진다고 한다. 나는 나름대로 정상적으로 걸으려고 무지 노력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평생 약간 절뚝거리면서 걷게 되는건 아닐까 싶어서.. 너무 우울해지고 불안하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겠지 싶다.

학원에 너무 많이 빠져서 이제 더이상 빠질 수 없고, 전철은 계단 때문에 발에 무리가 가서, 저번 주에는 차를 끌고 학원이 있는 광화문까지 갔다. 내가 생각한 인천에서 광화문까지의 드라이빙은 한강 다리를 쌩쌩 달리고 창 밖으로는 여의도의 마천루가 보이는 그런 드라이빙이었는데, 상상과 실제는 달랐다.

토요일 아침인데도 차는 더럽게 밀렸고, 전철타면 1시간30분 걸리는데 운전을 해서 갔더니 1시간 10분 걸렸다. 올때는 차가 더 밀려서 1시간 24분이나 걸렸다.

거기에 주차료가 3만4천원이 나왔다. 미친 주차료... 결국 이번주에는 그냥 전철타고 학원에 갔다.

 

3. 피아니스트 언니

학원에서 친해지고 싶은 피아니스트 언니가 생겨서 언니 친해지고 싶어요. 라고 말했더니 친하게 지내자고 해서 이번 주말에 언니의 연습실로 놀러 갔다. 언니가 독일에서 유학하다가 한국 온지 얼마 안되서 친구가 별로 없고, 친하게 지내면 자기는 좋다고 해서 나도 좋았다.

언니는 잘난 체도 안하고, 고집이 좀 있긴 하지만, 특유의 순수함 같은 게 느껴져서 좋았다. 나이에 비해 순진한 게 더 이상 자랑이 아닌데 아직도 순진한 나는 내 또래 다른 직장인들과 이야기 할 때마다 그들과 심한 괴리감을 느끼고 거북해진다. 그들의 세상물정 밝음과 모든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과 조언을 들을 때마다 얘네는 뭐 이렇게 만사에 자신만만할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언니와 한 3시간 대화 하는 데 그런 느낌이 없었다. 종종 놀러가려고 한다.

나는 클래식은 안 듣지만, 책에서 클래식 작곡가들의 삶 같은 건 좀 읽었고, 유명한 작곡가들 중에 슈베르트가 유독 너무 불쌍했다. 볼품없는 외모, 살아 생전에 명성도 못 얻었고, 평생 단 한 명의 여자도 사귀지 못하였고, 짝사랑만 하다 창녀에게 옮은 매독으로 혼자 죽어간 슈베르트.

그래서 언니에게 슈베르트 너무 불쌍하다고 말했더니, 뭐가 불쌍하냐는 답이 돌아왔다. 몇 백년 지난 지금도 우리가 슈베르트 얘기 하는데 전혀 불쌍하지 않다는 거다. 나는 여전히 너무 불쌍한데 말이다. 난 후대에 내 이름 석자 아무도 몰라도 상관 없으니까 현생에서 행복하게 살다 죽고 싶다.

 

4. 한단계 위 수업

영어 학원에서 레벨 업을 해줬다. 어제가 그 수업 첫번째 수업이었다. 그런데 내 앞에 앉은 의사 언니가 자기는 외국인 선생님 아니면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맘을 먹은건지, 노골적으로 날 무시하고 얘기를 안하려고 해서 기분 나빴다. 그 언니 매주 오는 것 같든데 다음부터 절대 같이 안앉기로 했다. 영어 그렇게 잘하는 거 같지도 않든데 흥.

한단계 위 수업이 별로 재미가 없다. 선생님도 한단계 아래반 선생님보다 재미 없고. 이 수업이 대체 언제 끝나나 싶어서 시계를 몇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5. 미용실 언니

날이 갈수록 내 성격이 유해지는 걸 느낀다. 예전에는 택시 기사 아저씨나 미용실 언니들이 말거는 게 너무 싫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들은 아직도 좀 싫은데, 미용실 언니들하고는 이제 한 15분이면 친구가 될 수 있다. 어제 광화문 뒷골목에 있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는데 미용사 언니와 즐거운 대화를 했다. 내가 머리 감고 대충 드라이로 말리기만 하는 걸 알아 챈 언니가 드라이하여 헤어스타일 예쁘게 하는 열심히 방법을 설명해주셨다. 유익해서 열심히 듣고 계산을 하고 나서는데, 언니가 나에게 "즐거웠어요." 라고 인사를 했다.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오늘 아침에 언니가 말한대로 드라이 해봤는데 확실히 그냥 마구잡이로 드라이 한 것보다 예쁘게 되서 앞으로도 계속 언니 말대로 하려고 한다.

 

6. 잘못된 결혼

대학 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남자는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했다. 나는 아직 혼자인데 그 남자는 결혼해서 이번 달에 애도 낳는다고 하니, 난 실패자인 것이다. 하지만, 가끔 문자로 안부만 묻는 그 남자는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미혼 여자이기 때문에 일부러 불행한 체를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에게 아직 맺힌 감정이 있는지, 가끔 악담을 하며 내 속을 뒤짚어 놓곤 한다.

며칠 전에는 그 남자가 나에게 미친 제안을 했다.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하면 안된다는 걸 그 남자가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나를 인생의 패배자 취급을 하니, 좀 딱하다. 나도 딱하지만 그 남자도. 하지만, 뭐 내가 남 걱정할 때 아니니, 신경 끄기로 했다.  

 

7. 목련

나는 만개 했을 때 목련이 벚꽃보다 더 좋다. 목련은 나중에 질 때가 별로라고들 하지만, 그 나중을 다 고려해도 목련이 더 좋다. 흰 목련.

우리 아파트 앞 다른 아파트에 목련이 피는데, 10년 째 그 목련을 봄마다 보고 있다. 아직 피진 않았는데, 목련이 필 날만 기다리고 있다. 목련은 꽃이 내 주먹만 하고 색도 순결하고, 고귀한 느낌이 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아무래도 목련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