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나들이

일상 2016. 6. 26. 23:46



하남으로 이사간 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YR를 만났다. 어디서 볼까. 뭘할까 고민하다가, 충무아트센터에서 하는 뮤지컬을 보기로 했다. 원래 뮤지컬을 보려던 건 아니었는데, 여름이라 시원하게 할 수 있는게 뭐있을까 하다가 마침 뮤지컬 티켓이 싸게 나온 게 있어서 급 뮤지컬을 봤다.



내가 먼저 충무아트센터에 도착했는데 먼길 오느라 힘들었는지 당이 떨어진 기분이 들고 어지러웠다. 그래서 급히 쿠키와 쥬스를 사서 먹으려는데, 쿠키 비닐이 너무 안뜯기는거다. 카운터 가서 가위로 잘라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강제로 뜯었는데, 그러다 모든 쿠키를 허공에 흩날리며 바닥으로 흘리는 참사가 벌어졌다. 쿠키가 허공으로 날아가는데 흡사 그 장면이 슬로우모션 같았다. 너무 당황스러웠고, 혼자 앉아 있는데 창피해서 혼났다. 결국 3천원이나 주고 산 쿠키는 테이블에 떨어진 거 하나밖에 못먹었다.


사실 뮤지컬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뮤지컬은 좋아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이 갑자기 노래하며 대화하는 걸 보면 뭔가 어색하고 부끄러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뉴시스 라는 뮤지컬이었는데, 몸좋고 잘생긴 남자들이 대거 출동해서 춤추고 노래하는 걸 보니 눈호강 하고 좋았지만, 나에게 3시간은 너무나 길었다. 영화도 2시간 30분 넘어가면 안보기 때문에.. 중간에 정말 몸이 배배 꼬이고 졸리고 힘들었다.

내가 왜 뮤지컬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가 또 한번 깨달은 게, 뮤지컬 영화에서는 모든 갈등이 노래 한번 부르면 너무나도 쉽게 풀리는 게 맘에 안든다. 애니메이션에서는 그게 용납이 되지만, 영화와 실제 극에서 그렇게 쉽게 갈등이 풀리면 깊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충무아트홀에서 동대문이 가까워서 슬슬 걸어갔다왔는데, DDP 건물이 생각보다 너무 멋졌다.

YR는 건축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라, 걔와 신기한 건물을 보면 전문가적 견해(?)를 들을 수 있어 재밌다. 이번에도 난 전혀 모르는 공조 얘기를 해서 'YR야 너는 정말 전문 건축인이구나.' 라고 말하며 감탄했다.

친구가 DDP 산책로의 철난간을 한번씩 만져보고 흔들어보며 돌아다니길래 왜그러냐고 물어보니, 전에 건물 지을 때 제일 어려웠던 게 철난간이었다고 한다. 정말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굵기를 뭘로 해야지 안 흔들릴까 튼튼할까를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서 힘들었다고. 의외였다. 건물 지을 때 그렇게 작고 별 거 아닌게 오히려 어렵구나... 싶어서. 

친구와 집이 워낙 멀어서 앞으로 어디서 만나야 하나 서로 고민했는데 동대문이 서로 딱 중간인 것 같아 다음에도 동대문에서 보기로 했다.

밤공기가 좋아 친구와 DDP 건물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정말 미래에 온 기분이었다.

대학생 때 동대문 한번 가보고 너무 멀어서 다신 못오겠다. 생각했는데, 이젠 2시간 이내 거리는 별로 멀다는 생각도 안든다. 매일 왕복 4시간씩 하고 있으니 그도 그럴만 하다.

친구에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친구한테가 처음으로 나에게 가족 이야기를 해서 나도  처음으로 우리 가족 얘기를 했다.
친구가 빨리 건강해지고, 머리카락도 길어서 가발도 필요 없어졌으면 좋겠다.



친척 동생의 결혼식

일상 2016. 6. 19. 23:04

6월에만 결혼식 두 개를 가야했다. 휴. 이제 그 미션을 완료했다.

어제 결혼한 사촌 남동생은 나와 가장 친한 친척 중 하나로, 28살 밖에 안됐는데 결혼했다. 일한지 1년 조금 넘었는데 결혼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외삼촌께서 서울에 살 아파트를 마련해 주셨기 때문이겠지.. 

이번 결혼식은 양쪽 다 기독교라 예배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억지 웃음을 유도하는 사회자가 없어서 좋았다.

부모님 모시고 공덕까지 전철로 왕복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친척들이랑 얘기 하느라 아침 10시 반쯤 나가서 5시쯤 집에 도착했는데 날씨도 뜨겁고, 구두를 신어 발도 아프고, 여러가지로 너무 너무 피곤했다. 집에 오자마자 씻고 밤 7시쯤 누워 자다 밤 11시쯤 잠깐 눈떴다가 오늘 아침까지 잤다.

엄마가 몸이 안좋아서 부쩍 우울해하셨는데 이모들 보고 조금 기분이 나아지셨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나저나 부부가 되어도 남이라는 걸 나는 친가나 외가 갈 때 느낀다. 부모-자식은 몰라도 역시 부부는 남이다.

너는 왜 시집 안가냐는 말을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이젠 그냥 그런가보다... 하게 된다.


회사에서 연봉협상을 하는 중이다.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며칠전 임금동결되는 꿈까지 꿨다. 우리집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엄마가 무리하게 일을 늘려서 하고 계신다. 그런 의미에서 내 월급이 꼭 올라야 하는 상황인데 안 올려줄까봐 걱정도 되고.

회사 이전이 확정 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좌절했는지 모른다. 뭐 이사가면 지금보다 집에서 가까워지긴 하겠지만, 일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한달은 나 죽었다... 하고 일해야 할 것 같다.


영어 작문을 일주일에 두개씩 하고 있는데, 점점 틀리는 게 줄어들어서 보람있다. 그런데, 아마 내 영어 작문 수준은 1학년 애들이 그림일기 쓰는 수준의 문장이겠지 싶다.


날이 점점 더워진다. 기분이 좋아진다. 난 역시 더운 게 좋다.



학동기

일상 2016. 6. 14. 13:32

초등학교 2학년 때 시골에서 인천으로 갔을 때 애들한테 시골에서 왔다고 놀림을 많이 당했다. 촌스럽다, 쟤랑 놀기 싫다 는 말을 다른 사람 다 듣는대서 큰 소리로 말해 모욕감을 주는 애들도 많았다. 나름대로 친하다 생각했던 아파트 옆통로 사는 애는 어떤 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끈질기게도 날 괴롭혔다.
내 유일한 소원은 그 학교를 벗어나는 것이었는데 소원대로 대전으로 다시 전학을 왔다. 하지만 대전에서 조차 같은 아파트에 살던 (소위 잘나가는 애였던) 여자애는 하교길에 같은 방향인 나를 꼭 쫓아와선 내 뺨을 때리거나 발로 날 걷어차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행한 가정에 자란 그 애가 나와 친해지기 위해 저지른 행동인 것 같다.
걔가 스무세살 쯤 뜬금없이 연락해선 나보고 니가 제일 친한 친구였다고 말하는 걸 듣고 정말 놀라웠는데.. 내가 걔와 함께 있었던 시간 중 상당 시간은 괴롭기만 했는데 걔는 나를 자기와 가장 친했던 친구로 기억하다니. 다시 또 날 괴롭히고 싶어서 그런 가당치 않는 말로 나에게 다시 접근했을지도 모르지만.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억은 이렇게 판이하게 다르다.
하나님이 도와주신 건지, 나를 괴롭히던 애는 서울로 전학을 갔고, 평온하게 대전에서 중학교를 입학했지만 중3때 다시 인천으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다행히도 난 인천으로 와서 공부도 예전보다 잘하게 되고 따돌림이나 폭행을 당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친구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인천으로 전학간 후 처음으로 친구 둘을 집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 엄마가 간식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내 눈치를 보고 친구 눈치를 보시든지. 아직까지도 가끔 화가 나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저자세로 잘보이려고 노력하실 필요 없었는데. 엄마가 그런다고 내 교우관계가 갑자기 좋아질 리가 없는데 말이다.
어린 아이들이 순수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어린아이들이라고 해도 무조건 순수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어린 애들도 어른과 똑같이 사람에게 잔인해질 수 있고, 어린 아이들도 어른 이상으로 인간 관계 때문에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다.
누구나 어두운 기억은 있는 거고, 나 정도면 잘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우리들' 시놉시스를 보니 내 어린 시절이 떠올라 글을 쓴다.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이젠 완전히 극복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으니.
가끔 학교폭력이나 군폭력을 못견뎌 자살하는 사람을 보며 왜 부모님한테 말도 못하고 그리 죽느냐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난 그 심정 이해한다. 내가 남에게 당하고 있다는 말은 여간해서는 털어놓기 어렵다. 나 역시 아직까지도 초등학교 때 내 학교 생활에 대해 부모님께 한번도 말씀드린 적 없다.
시련을 피해갈 순 없고, 죽음을 택하지만 않는다면 끝내 극복을 못한다 해도 적응해서 살게된다. 다들 말을 안하고 내색을 안할 뿐.
아주 가끔 왕따 당하는 애들은 이유가 있어 당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무섭고 놀랍다. 내가 당하지 않았으면 좋을 일이지만, 당해봤기 때문에 최소한 나는 저딴 개소리 늘어놓는 인간은 안되었으니 헛된 건 아니었다.
어쨌든 지금은 난 현재 사회인으로 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


가장 피곤한 일

일상 2016. 6. 13. 17:13

트위터를 가입한 계기는 좋아하는 야구구단 뉴스와 사진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이젠 웃긴 사진 보는 용도로 주로 사용하는데,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일은 통하는 것도 없는데 잘 통하는 척 해야 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일.' 이라는 글을 보고 많은 공감을 했다.

그렇다. 그 느낌이 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거짓 맞장구도 쳐줘야 하고 거짓 추임세도 넣어줘야 하고 거짓으로 다음에 또 보자고 인사해야 하는 그런 관계 말이다. 정말 그보다 피곤한 게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조직과 모임에 어떻게든 섞이고자 노력하고 교류를 맺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사회생활 하려면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노력을 하는 사람이 유리하겠지..

하지만 난 거짓행세하며 슬픈 느낌드는 모임이라면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편이다.

서른살이 되면서 너무 우울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 내 나름대로는 엄청난 시도 (하지만 남이 보기엔 정말 소심한 시도) 를 해본 적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깨달은 바는 역시 사람은 안하던 짓을 하면 안된다는 거다.

잔소리꾼 동생한테 주말에 내 문제에 대해 열심히 또 야단을 맞았는데, 어쩔 수 없다. 난 그냥 나 나름대로 잘 살아보는 수 밖에 없다.


맥없이 이번 목요일에 휴가를 냈다. 할 일도 딱히 없는데, 휴가가 너무 남아돌고 또 이 회사는 연차수당 같은 것도 없으니 그냥 휴가를 낸 것이다. 뭘 할지는 차차 정하겠지만, 회사 나와서 일하는 것보단 뭘하든 재밌을 것이다.


연휴동안

일상 2016. 6. 8. 17:26

연휴동안 대학 때 같이 수업듣던 언니의 결혼식에 갔다.

언니가 나한테 소개시켜줬던 언니네 회사 사람도 오겠지? 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재수없게 너무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되서 짜증났다. 그냥 보이는 자리 앉은건데 하필 왜 그 쪽에 앉아 있었던 건지.

내가 먼저 아는 체 하기도 웃겨서 그 남자가 날 보는 시선이 느껴지는데도 계속 안보이는 척 했다. 그 남자 정말 이상하고 황당한 남자였는데, 이제 다신 안보길 바랄 뿐이다.

결혼식장에 혼자 간 게 이번이 네 번째인데, 네 번 다 혼자 밥 잘 먹었다. 이번에는 갈비탕이었는데, 살짝 아쉬웠지만 무난한 맛이었다.

결혼식이니 예의를 차려야지 싶어 원피스에 저번달 백화점에서 산 9cm 굽의 오픈토를 신고 갔는데, 오는 길에 발이 너무 아파서 전철에서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나중에는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한테 '저 발이 너무 아파서 그런데, 자리 좀 비켜주시면 안될까요?' 라고 말할까 말까 심각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담이지만.. 진짜 그러고 싶은 맘이었다.) 그래도 꾹 참고 서 있다, 시간이 갈수록 너무 아파서 살긴 살아야하니 그냥 맨발로 서 있어야하나.. 하고 큰 맘 먹을 쯤 자리가 나서 얼른 앉았다.

그 신발은 굽도 굽이지만, 더 큰 문제는 볼이 좁은 것인듯 하다. 하늘색이라 예뻐서 샀는데, 너무 아파서 다음에 신을 용기가 날지.

결혼하는 언니에게는 부럽다 를 남발했지만 또 식장에 들어가는 언니를 보니 꼭 결혼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그랬다. 어쨌든 결혼이란 책임은 커지고 자유는 줄어드는 것이니까. 물론 언니는 행복해 보였다.

결혼식에서 사회자가 신랑에세 저질스러운 짓을 시켜서 지켜보다 기분이 상했다. 남편보고 신부 치마 안으로 들어가 '이곳이 천국이다.' 라고 외치라고 시켰는데, 만약 내 결혼식에서 사회자가 그딴 짓을 시키면 그 자리에서 죽빵을 날려버렸을 것이다.

일요일에는 엄마 생신이 6월10일이라 가족들이 모여서 생신 축하한다고 말씀드리고 외식도 했다.

우리집의 가족사를 돌이켜보면, 단 한시기도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때가 없었는데, 매년 부모님 생신 때마다 그 사실이 참 실감이 나서 슬퍼진다. 내 월급도 지금은 엄청 적고...돈을 못벌면 평범하게라도 살아야 하는데 이 나이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낳아 걱정만 끼치고. 항상 가난하게 살며 지금까지도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아프고 나의 보잘것 없는 능력에 죄책감이 든다.

요즘 꼭 가야하는 약속인 결혼식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주말이 계속되고 있다. 뭐 이런 시간도 필요한 거니까, 의미없는 시간이라는 생각은 안하기로 했다.





5월 마지막 2주간

일상 2016. 5. 30. 01:11

저저번주 금요일에는 인턴, 사원, 나 셋이 사무실을 지켰다. 어찌나 쾌적하든지. 셋다 이어폰 끼고 일했다.

그 날 이어폰으로 뭔 노래를 들을까 고민하다, 페퍼톤스의 2집 3집을 들었다. 페퍼톤스의 1집은 대학시절 남자 때문에 상심하여 핸드폰도 정지하고 휴학까지 해서 히키코모리마냥 집에만 붙어 있으며 밤만 되면 울었던 시절에 많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제일 우울했던 시절인데, 착하고 희망차고 밝은 노래로만 가득한 그 앨범을 배경음악으로 들었다는 게 아이러니다. 그런 이유로 페퍼톤스에게 고마운 마음은 있지만 괴로웠던 시절을 상기하는 것이 싫어 잘 듣진 않았다. 그런데 이제 뭐 그 시절과도 화해한 지 오래고, 남자 하나 때문에 그렇게 크게 슬퍼했던 어린 시절 나도 좀 귀엽고.. 그래서 훗 하고 웃었다.

페퍼톤스를 처음 들은 건 10년도 더 전인데 이장원과 신재평의 얼굴을 정확히 안 게 작년이다.
이장원씨는 전체적 얼굴형과 두상 (특히 턱) 그리고 부티나는 인상이 내 이상형에 가깝다. 실물보면 어떨지 궁금하지만 뭐 실제 볼 확률은 제로에 수렴하겠지. 팬으로 그냥 계속 좋아만 해야겠다.

심리상담소에 내 발로 찾아갔다. 구체적으로 자살을 생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삶에 의욕이 떨어지는 주기가 잦아지면서, 가면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 싶어 간 것이다. 상담 후 느낀 점은 결국 모든 해결의 열쇠는 내가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두번 갔는데 너무 너무 비싸다는 것만 빼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한달 정도는 꾸준히 가볼 생각이다. 그 이상은 돈이 없어 못갈 것이다.

사람의 성격은 반 이상은 타고 나는 것 같다. 나를 주로 양육한 사람은 우리 엄만데, 난 엄마 성격을 전혀 닮지 않았다. 엄마의 사교적인 면을 많이 닮았다면, 내가 상담실 가서 우울증 척도 문항에 체크하는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 이다.

그리고 내가 주말마다 혼자 행하고 있는 것들, 산책, 영화보기, 서점가기, 음악듣기 이런 건 정확히 아빠가 결혼 전 하셨던 행동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게 신기하다. 아빠가 나보고 이렇게 해라 가르쳐 주시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니 결론은 성격도 유전이고 타고 난다는 것이다. 엄마의 사교적인 성격은 불행히도 동생에게만 유전되었다.

내 아이폰5가 저번 겨울 영하 18도 야외에 약 20분 간 노출된 이후 배터리가 완전 맛이갔다. 갑자기 꺼지기도 하고 100%였다 순식간에 5% 가 되기도 하고. 그 때부터 맨날 보조배터리 끼고 사용 중인데 너무 불편하여 바꿀까 했지만. 또 바꾸자니 너무 새 거 같은 폰이 아까웠다. 리퍼는 20만원 넘고. 그래서 내일 강변역 테크노마트 가서 야매로 배터리 교체를 해보기로 했다.

회사에 엄청 심란한 일이 있어 출근하기 더 싫다. 잠들고 일어나면 월요일이라는 게 너무 우울하여 항상 일요일 밤에 일기를 쓰면 글이 길어진다.



이번 주말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주말일 수도 있는데, 나에게는 꽤 특별한 주말이었다. 회사 사람 외 사람들과 술집에 간 게 언젠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서, 친구를 만나서 술을 마시기로 하고 죽전에 갔다.

죽전역에는 처음 가봤는데, 술집으로 가는 길이 꼭 여행 가는 기분이었다. 워낙 낯설기도 했고, 인천이나 서울보다 좀 한가한 느낌이 좋았다.

내가 남들보다 술에 안취하는 이유는 내가 술이 쎄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이번 금요일에 보니 나는 술을 남들보다 엄청나게 느리게 마시는 편이고, 포만감을 쉽게 느끼는 편이다. 또 일단 배가 부르면 아무리 술이라고 해도 못 마시겠다. 그러니 남들보다 잘 마시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뭐 그렇다고 약한 편은 아닌 것 같지만.. 여하튼 그렇다.

죽전역에서 술을 마시고 나서, 이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용인 친구네 집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이 친구네 카페가 있는 동네를 몰라서 어떤 초등학교 앞에 내렸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친구네 집으로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서 혼자 밤길을 꽤나 헤맸다. 차라리 친구네 집 주소를 찍고 가달라고 할 걸 그랬다.

예전에는 택시 기사들이 말거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직접 운전을 한 뒤로는 혼자 운전을 하다보면 얼마나 외롭고 무료할까 싶어서 요즘에는 대꾸 잘해준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나보다. 기사님이 본인은 미인을 택시에 태우면 원래 길을 헤매신다고 말했는데, 예전 같으면 좀 징그럽단 생각에 무반응이었겠지만 이번에는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마감한 친구네 카페 테이블에서 또 술을 마셨다. 내 친구도 진짜 친한 친구랑 밤에 술 마신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났는데 내가 와줘서 기분 좋다고 했다.

친구와 사온 술을 다 마시고 새벽 3시쯤 집으로 올라가서 너 먼저 씻으라고 난 스타킹와 원피스를 벗고 누웠는데, 렌즈도 안 빼고 화장한 그 상태 그대로 잠들었다. 친구 말로는 내가 그냥 베게에 눕자마자 잠들었는데, 너무 곤히 자서 못 깨웠다고 한다.  

새벽 5시 쯤 목이 말라 일어났다가 안 씻고 잤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 부랴부랴 미친듯 세수를 하고 샤워를 했다. 친구는 나같으면 그냥 잤겠다고 했지만, 난 살면서 안 씻고 잔 게 평생 10번 이내 (어쩌면 5번 이내일지도) 라, 내가 안 씻고 잤다는 사실에 얼마나 놀랐는지... 피곤하긴 했나보다.

토요일 12시쯤 일어나서 친구 카페로 내려갔는데, 저번에 왔던 친구 친척동생인 현역 군인을 또 만났다. 나와 띠동갑인 이 95년생 손병장은 어떻게 된게 내가 친구네 카페 갈 때마다 맞춰서 외박을 나오는지. 집은 전라도인데 군대가 서울이라 외박나와도 갈 데가 없어서 친구네 카페로 온다고 한다. 5월 말에 전역이라는데, 어린 놈(?)이 너무 능글맞아서, 이야기 좀 많이 했다. 내가 걔한테 머리카락이 어쩜 그렇게 곱슬이냐고 했더니, 자기 머리가 얼마나 심한 곱슬인지 머리 안에 담배를 넣어도 그대로 고정되서 안빠진댄다. (이렇게 쓸모 없는 이야기를 했다) 

순대국 먹으러 나가려는 찰나 바로 옆 삼겹살집 가게 사장님을 만나서 하는 수 없이 삼겹살에 냉면을 먹고, 커피를 두잔이나 마신 나는 약한 복통에 시달리며 2시간 10분만에 용인에서 집에 도착해서 또 푹 잤다.

용인에서 인천으로 오는 날도 날씨 좋아서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재밌었다. 죽전에서도, 친구네 집에서도.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취하고 싶다.

일상 2016. 5. 11. 22:12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지만, 난 술을 잘 마시는 편이다. 취하지 않겠다 마음 먹고 취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알코올 분해를 잘해서 술을 잘 마시는 게 아니라, 그냥 정신을 놓지 않는 걸 잘한다고 해야하나. 취하려고 맘 먹으면 작은 맥주 캔 하나에도 취하는데..
대학 시절 혼자 살 때 비틀거리면서 술취해서 들어와선 많이 울었다.
비틀거리긴 해도 정신은 온전해서 언제나 목욕재계하고 개운한 상태로 누웠다.
아무리 즐겁게 술을 마시고 들어와도 하수구 냄새가 나던 그 방에 가면 어김없이 눈물을 쏟았다.
방에 혼자라 아무도 듣는 사람 없는데 나는 굳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나중에는 이어폰 사이에 눈물이 자꾸 들어가서 이어폰을 뺄 수 밖에 없었지만.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들 찾아다니면서 나 몰래 상담 받고 다닐 정도로 한동안 못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어서, 우리 부모님은 내가 울거나 조금만 취해 집에 들어가도 심하게 눈치를 보고, 걱정을 하신다. 그럴 때마다 중학생 때 내 얼굴을 쳐다도 못보시던 게 생각나서 너무 슬퍼진다. 그냥 그런 일 없었던 것 처럼 날 대해주시는 건 불가능한거겠지.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산 뒤로는 술마시고 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취한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안들지만, 다음날 일어나면 변한 건 하나도 없고 기분이 나아지기는 커녕 항상 더 우울해진다. 하지만 요즘 같아선 재능 발휘해서 진탕 마시고 펑펑 울고 싶다.
어제는 대학시절 이틀이 멀다하고 봤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긴 수진이한테 메일을 썼다. 아마 그 메일주소를 사용도 안하고 그 편지도 영영 안 읽을 것 같다.
걔가 나와 연락을 끊은 이유가 뭘까.
걔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지만, 걔가 없었으면 온전히 대학시절을 보내지 못했을텐데, 고마운 마음을 보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갑자기 사라진 친구가 밉다.
오늘 아침에도 자느라 정거장을 지나쳐서 지각했다. 회사에서는 되는 일 하나 없고, 엉망진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청첩장 준다고 만난 언니 앞에서는 즐겁게 사는 척했다.


보람 있는 연휴

일상 2016. 5. 8. 23:06

1. 어린이날
  앞머리를 자를까 말까 엄청 고민하다 결국 그냥 자르기로 맘 먹고 오전에 미용실에 갔다.
  난 내 잘생긴 이마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만, 너무 넓고 오랜만에 다시 이마를 까자니 어색하고, 당분간은 이 헤어 스타일을 유지할 것 같다.
  그리고 백화점에 가서 눈썹 왁싱을 했다. 저번 왁싱 때 너무 아파서 다시 왁싱할 용기를 못내고 있다가 양쪽 눈썹 비대칭이 너무 심해서 결국 다시 찾아갔다. 역시 돈이 좋긴 좋다. 기가 막히게 예쁜 눈썹이 되었다.
  집에 와서는 미루고 미루던 겨울옷 정리를 했다. 창고에 있어 못입고 있던 봄옷을 이제야 제대로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세탁기만 세번을 돌렸다. 원래 드라이크리닝 하던 옷을 용감하게 그냥 다 세탁기에 돌렸는데 그 중 니트 두개는 드라이크리닝 세제를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 망했다. 니트가 어찌나 줄었는지, 머리 넣는 구멍에 내 머리는 커녕 내 발목 밖에 안 들어가게 생겼다. 니트가 그렇게 심하게 줄어들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겨울동안 잘 입던 니트였는데... 안타까울 뿐. 그 외 오리털 점퍼 등은 선방했다.


2. 5월6일 금요일

 여의도에 가서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다. 주토피아를 늦게 봤는데, 여우 캐릭터인 닉에게 반해버렸다. 여의도 공원을 좀 걷다가, 나중에 집에 가려고 대방역에서 급행을 기다리는데 어렸을 때 여의도에서 알바하던 시절이 생각나서 조금 울적해졌다. 그 때 25살 밖에 안됐는데,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건 거짓말이고 내가 왜 그랬는지 아주 잘 알고 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


3. 5월7일 토요일

  하남으로 이사간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 친구에게 일단 놀러 간다고 말했는데 편도 74km 나 되서 솔직히 가기 전까지 괜히 간다고 한건가. 하고 좀 후회했다. 하지만 막상 가서 멀끔해진 친구네 집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 친구에게 우리집에서 짐덩어리로 전락한 실내자전거를 팔았다. 다행히 우리집 차 트렁크에 들어가서 배달까지 직접 해줬다. 난 큰 짐덩어리 하나 정리하고 돈까지 벌어 좋고, 내 친구는 싸게 사서 좋고.

  혹시나 하여 기름을 가득 채워 가야겠다 다짐하고 원래 가던 동네 주유소를 가보니 셀프 주유소로 바뀌어 있었다.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서 차에서 내려서 셀프 주유 기계 앞에서 멀뚱멀뚱 서 있었더니, 결국 주인이 와서 다 해줬다. 이번에 잘 배웠으니, 다음에는 잘할 수 있겠지.

  올때 갈때 모두 밀렸고, 주기보다 하루 일찍 시작한 생리와 함께 온 예상치 못한 생리통 때문에 운전하면서 좀 힘들었다.


4. 오늘

  어버이날이라 동생이 와서 점심 외식을 했다. 인천에는 옛날 송도유원지가 있던 구송도가 있고, 신송도가 있는데 오늘은 구송도로 갔다. 경사가 너무 심해서 운전하며 올라가는데 거의 차가 직각으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왜 네비가 그따위 길을 인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난 그대로 우리집 차가 뒤짚히는 줄 알았다. 벌벌벌 떨면서 엑셀을 밟았다.

  동생이 한우를 사줘서 우리가족은 우리 아빠 환갑 이후 처음으로 외식하며 한우를 먹었다.

  그 동네에 있는 집들이 다 운치있고 좋았다.


5. 내 성격에 대해.

  일기를 쓸 때 나는 대체적으로 엄청 비관적으로 변한다. 중학교 때 부터 그랬다. 몇 명 없을 이 일기를 읽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찌질하고 부정적인 글만 보게 해서 좀 미안한 생각도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맨날 쓰는 이유는 이게 유일하게 내가 제 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 이기 때문이다.

  내 성격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난 열심히 살고 있지만, 점점 더 내 자신이 혐오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진심으로 사랑받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이 때문에 요즘 들어선 정말 죽지 못해 사는 기분이다.

   이런 기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서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다급하게 책을 찾아 읽는다. 그나마 책을 읽으면 이런 생각이 안드니까. 그런데 책을 못 읽을 때에는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만 같다. 


근황과 푸념 가득

일상 2016. 4. 25. 18:24

1. 바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유방암으로 수술을 하고 복직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수술한 가슴에 다시 뭔가 만져져서 병원에 가는 중이라는 메세지를 보고, 내 가슴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유방암이 재발하면 (내 입에 이 단어를 올리기 싫지만) 사망 위험이 크다는 말을 어디 선가 봤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내 곁을 먼저 떠날 것이란 상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가 검사결과 말해주기까지 몇 분 동안 만약에 만약에 결과가 최악이라면, 친구는 어떻게 해야하고, 난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의사에게 암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눈물이 또 핑 돈다.

2. 요즘 다시 읽고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을 보면 (정확친 않지만) 주인공 소피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자신의 인생에 대단한 일이 벌어질 확률이 매우 낮음을 너무 빨리 알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책은 이래서 좋다. 내가 느꼈던 걸 정확히 표현해주니까.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 보다는 내가 더 경제적으로 발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한 때는 동화 작가 같은 꿈을 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난 언제나 사회진출에 유리한 쪽으로만 행동하고 그 방면에서 뛰어나길 원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다 부질없었단 생각이 든다. 점점 더 내 인생이 내 기준에서는 실패한 인생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 내 자신이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다. 내가 더 강하게 버텼다면, 지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 때문에 점점 더 제 정신으로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

3. 이 말을 글로 쓰는 순간 더 사무칠 것을 알기 때문에 웬만해선 일기에도 안쓰던 말이지만, 요즘 들어 정말 외롭다. 내 짝을 찾은 사람들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이 짝을 만난 게 하나같이 다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알고 그들은 행복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4. 주말에 영어학원에 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인터넷으로 영작한 후, 첨삭 받는 걸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두번 써서 내는 게 그렇게 힘들다. 호기롭게 써서 내면 온통 빨간색으로 틀린 부분이 표시되서 되돌아온다. 벌써 6번 정도 썼는데 자꾸 틀린 걸 또 틀린다.

5. 고용노동부에서 보낸 대표이사 출석요구서 사유를 보고, 이 회사 역시 오래 있을 회사는 아니라는 생각에 또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이 되서 이력서 쓰는 게 너무 힘들고, 그거 때문에 올 봄은 꽃 한번 제대로 못봤다. 그렇게 4월이 끝나간다.

6. 어떤 남자의 메세지 혹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엄마는 또 일단 사귀라고 성화다. 이제 내 의견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남자가 좋다고 하면 무조건 만나야 되는 나이인가 보다. 동생 부모님 다 협공 중이다. 너 그럴 나이 아니니까 정신 차리라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어쨌든 여러가지로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