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과 푸념 가득

일상 2016. 4. 25. 18:24

1. 바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유방암으로 수술을 하고 복직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수술한 가슴에 다시 뭔가 만져져서 병원에 가는 중이라는 메세지를 보고, 내 가슴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유방암이 재발하면 (내 입에 이 단어를 올리기 싫지만) 사망 위험이 크다는 말을 어디 선가 봤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내 곁을 먼저 떠날 것이란 상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가 검사결과 말해주기까지 몇 분 동안 만약에 만약에 결과가 최악이라면, 친구는 어떻게 해야하고, 난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의사에게 암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눈물이 또 핑 돈다.

2. 요즘 다시 읽고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을 보면 (정확친 않지만) 주인공 소피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자신의 인생에 대단한 일이 벌어질 확률이 매우 낮음을 너무 빨리 알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책은 이래서 좋다. 내가 느꼈던 걸 정확히 표현해주니까.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 보다는 내가 더 경제적으로 발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한 때는 동화 작가 같은 꿈을 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난 언제나 사회진출에 유리한 쪽으로만 행동하고 그 방면에서 뛰어나길 원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다 부질없었단 생각이 든다. 점점 더 내 인생이 내 기준에서는 실패한 인생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 내 자신이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다. 내가 더 강하게 버텼다면, 지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 때문에 점점 더 제 정신으로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

3. 이 말을 글로 쓰는 순간 더 사무칠 것을 알기 때문에 웬만해선 일기에도 안쓰던 말이지만, 요즘 들어 정말 외롭다. 내 짝을 찾은 사람들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이 짝을 만난 게 하나같이 다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알고 그들은 행복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4. 주말에 영어학원에 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인터넷으로 영작한 후, 첨삭 받는 걸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두번 써서 내는 게 그렇게 힘들다. 호기롭게 써서 내면 온통 빨간색으로 틀린 부분이 표시되서 되돌아온다. 벌써 6번 정도 썼는데 자꾸 틀린 걸 또 틀린다.

5. 고용노동부에서 보낸 대표이사 출석요구서 사유를 보고, 이 회사 역시 오래 있을 회사는 아니라는 생각에 또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이 되서 이력서 쓰는 게 너무 힘들고, 그거 때문에 올 봄은 꽃 한번 제대로 못봤다. 그렇게 4월이 끝나간다.

6. 어떤 남자의 메세지 혹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엄마는 또 일단 사귀라고 성화다. 이제 내 의견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남자가 좋다고 하면 무조건 만나야 되는 나이인가 보다. 동생 부모님 다 협공 중이다. 너 그럴 나이 아니니까 정신 차리라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어쨌든 여러가지로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성수역 냄새

일상 2016. 3. 27. 21:33

1. 레일 토스트
성수역 개찰구 옆에는 레일 토스트라는 토스트 테이크 아웃 가게가 있다. 성수역 안에 있는 가게는 하나같이 다 망해가는데, 그 토스트 가게만 사람이 항상 많다. 먹어보진 못했지만 맛있는 모양이다.
아침에 전철에서 내려와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 대번에 토스트 냄새가 난다.
마가린을 바른 식빵을 굽는 냄새가 솔솔 나면 아침밥을 먹고 왔는데도 군침이 고인다.
어떤 기억이 청각이나 후각과 결합되면 훨씬 더 강렬한 법인데, 언젠가 이 회사를 그만 둔 후 토스트 굽는 냄새를 맡는다면 성수역 출근길이 자동으로 떠오르겠지.

2. 부정 교합
난 앞니가 부정 교합이라 토스트, 샌드위치, 햄버거 안에 든 햄이나 양배추를 한번에 자르질 못한다. 그런 음식을 먹고 싶으면 앉아서 칼로 잘라야만 하기 때문에 테이크 아웃으로는 샌드위치를 먹을 수가 없다.
내가 양배추를 물면 그 샌드위치 안에 있는 양배추 전체가 다 딸려 나오고 그걸 손으로 자를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한번에 급히 먹다보면 배탈이 난다.
또 양배추나 야채를 처음 몇 번만에 다 먹어치우고 나면 느끼한 재료만이 남은 맛없는 샌드위치를 먹어야 한다.
치과에서 외관상 문제는 없더라도 너무 불편하니 교정을 하라고 했지만, 난 그냥 살고 있다.

내가 갑자기 부정 교합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 부정교합 때문에 성수역 레일 토스트를 아직도 못 먹어봤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 였는데, 일생동안 부정 교합으로 살아온 것에 대한 불만 성토가 되어버렸네.


3. 공무원 시험
대학 졸업 직전과 첫직장 다니며 힘들어 하던 시절 끊임없이 주변에서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권유했다. 특히 공무원 내외이신 셋째 큰아빠 댁에서 제일 심하게 공무원이 최고다 라고 주장하셨다. 난 내 직업이 최고 인 거 같지 않은데, 유독 공무원들만이 내 직업이 세상 최고의 직업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어찌보면 참 행복한 사람들 인 듯 하다. 군무원으로 국군 수도 병원에 근무하는 친구도 남편의 첫째 조건은 공무원이라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전 직장에서 공무원들이랑 같이 일하면서 그들의 나태함과 갑질에 지쳐 난 남자가 공무원이라면 (선입견이지만) 싫어진다. 공무원들이 자기 직업 최고라고 생각하는 게 본인들이 생각해도 너무 편해서 일까?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자부심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 때 부터 생기는 걸까? 성실하게 일하는 공무원도 분명 있겠지만, 난 별로 못봤다.
난 공부하는 양에 비해서는 객관식 문제는 잘 맞는 편이라 아마 주변에서 그렇게 끊임없이 (심지어 남동생은 아직도 시험 준비하라고 함) 권유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체력과 집중력 부족으로 한 시간 공부하면 거의 무조건 누워 쉬거나 먹거나 하는 식으로 30분 정도 쉬어야 한다. 또 결정적으로 외롭게 공부만 하다보면 심하게 우울해진다.
내가 어른들 꼬임에 안넘어가고 시험 준비 안한 건 아직까지도 내 인생동안 최고 잘한 일로 남아있다.


4. 분노 조절 장애

"평소 분노 조절 장애인 사람들 = 자기보다 센 사람 앞에서는 기가 막히게 분노 조절 잘한다. " 라는 글을 봤다. 나이가 들수록 개인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크게 화내거나 실망하는 일이 적은 반면, 회사에서는 자꾸 쉽게 화를 내게 된다. 직원한테나, 거래처나 기타 등등 사람들에게. 특히 전화를 하면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화를 내고 나면 언제나 후회스럽고,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게 무의식 중에 상대방을 나보다 약자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내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목요일에는 거래하는 회계 법인 직원과 언성이 높아질 뻔 하다가, 메일로 실수하고 법인카드 때문에 전화한 콜센터 직원이 자꾸 대답을 못해서 짜증나는 마음에 또 화를 내고 말았다. 아마 그 콜센터 직원이 일을 한지 얼마 안되서 버벅댄 것일텐데, 왜 난 별 것도 아닌 걸로 그렇게 열을 낸건지... 아직까지도 마음이 좋지 않다.

직장생활 오래하면 원래 성격에서 좋았던 건 점점 사라지고 나빴던 것만 남게 되는 것 같기도. 워낙에 훌륭한 사람들은 고귀한 인격 유지하면서 일도 잘하겠지만, 난 수양이 부족한건지 그게 참 쉽지 않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전화기에 흥분하지 말자고 써 붙여놨는데, 항상 명심하면서 살아야 나도 지키고 상대방도 지키고 하는 거겠지.


5. 회계법인 담당자

회사 특성상 회계 법인 담당자랑 전화할 일이 많은데, 정말 나랑 너무 성격 안 맞는다. 그 회계법인 담당자도 아마 자기가 맡고 있는 회사 담당자 중 나를 최고 싫어할 듯 하다. 저번에 연말 정산 때문에 최초로 언성을 높였는데 그를 통해 걔가 (나보다 나이 어림) 나에 대해 갖는 불만이 뭔지 알게 되었다. 걔가 나한테 말하길 나는 기본적인 사항을 안 알아보고 다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그 담당자는 나에게 대리님은 너무 몰라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드려야 하고, 다른 회사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거 같은데 맞나요 라고 질문한다면 나 같은 경우는 뭐예요 라고 묻는다고 했다.

그런데 나도 억울한 게, 나는 기본적으로 회계 업무는 처음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기 때문에 걔한테 다 물어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회사는 너무 작아서 아주 간단한 질문도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

내 무지에 나도 화가 나고, 하나도 모르는 업무를 지금 이 정도면 어찌어찌 유지는 잘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걔한테 너 너무 일 못한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듣고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럴 때 마다 전 회사의 L 부장 생각하면서 참는다. 그래 그래도 이 회계법인 애랑 전화하면서 열 받는 건 일주일에 한 두번 뿐이지만, L 부장이랑 일할 땐 하루에도 몇번씩 이런 시궁창 기분 맛봤으니 참자.. 하면서.


6. 전 회사 동료

나와 함께 잘린 제일 친했던 대리님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그 대리님도 남편 따라 부산에 내려가서 재취업을 하셨는데, 다른 회사 다녀보니 L 부장이 얼마나 재수없는 상사였는지 알겠다고 했다. 나도 이 회사 와서 정말 L 부장 같은 인간이랑 내가 참 오래 버텼구나... 싶었으니까. 다 지난일 이니 잊자 하다가도 아직도 앙금이 남았는지, 가끔 울화가 치민다. 이것도 역시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 



약골

일상 2016. 1. 31. 23:03

난 언제나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12시 이전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11시 이전에는 집에 귀가한다. 술을 심하게 마신적도 없고, 무리하여 밤을 새거나 평소 안하던 짓을 한 적도 없다. 어떤 사람이 보면 난 아마 엄청나게 지루하게 사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살게된 건 조금이라도 내가 살던 법칙을 벗어나면 어김없이 병에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내 체력은 새롭고 힘든 일에 쉽게 적응하고 원래 상태대로 단시간내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

저번 주에 힘든 일이 많았다. 전 회사에서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을 해야 했고, 회사가 작아 어디에 물어볼 데도 없는 나는 회계법인과 세무서 등에 문의하며 생전 처음보는 일을 이게 맞는건가.. 하는 의구심에 해야만 했고, 결국 회계법인 담당자랑은 (내 기준에서는) 꽤 고성이 오갔다. 올해 이 업무를 잘 해서 넘기면 전보다는 능력있어지는거다.. 하고 좋게 생각하려고 하는데, 다시 한번 전 회사에서 난 허송세월 보낸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뭘 배운건지.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한 2주 무리해서 일하고 목요일에 힘든 게 절정이었는데 결국 금요일에 탈이 났다. 몸이 너무 좋지 않은데 생리통까지 겹쳐서 어떻게든 일찍 조퇴하려고 했는데 결국 풀로 근무하고 간신히 퇴근했다.

그리고 결국 토요일에는 열이 났다가 내렸다를 반복하며 열이 식을 땐 옷이 젖도록 땀을 흘려 옷을 몇 번이나 갈아 입었다.

이번에도 역시 평소 하던 일보다 조금 많이 했다고 결국 또 병이 난 것이다.

젊어서 제대로 못 놀아본 게 가끔 한이 될 때도 있는데, 노는 것도 다 체력이 되야 하는 것이다. 나같은 약골은 놀라고 멍석을 깔아줘도 못할 것이다. 무리해서 놀았다간 또 앓아 누울 것이 뻔하니 아마 시도도 안하겠지.

난  어렸을 때 부터 하도 많이 아파서 그런지 내 몸이 어딘가 잘못되려는 징후를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런 징후가 나타나면 부리나케 집에 와서 씻고 누워서 쉰다. 건강 염려증 환자처럼 너무 몸사리는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평생 강골로 산 사람들은 병에 걸려 누워 있는 게 얼마 우울하고 힘든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아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으면 몸이 땅으로 꺼지는 기분이 들고 이 세상 우울함은 다 내 것인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다행히 주말내내 푹 쉬어서 정신과 기력을 차렸다. 내일 출근하여 회의할 생각을 하니 또 열이 나고 아픈 기분이 들지만 어쩌랴.

수요일에는 병원에 가야해서 휴가를 냈다. 그리고 그 다음주는 벌써 설연휴다. 힘을 내려고 노력해보는 수 밖에 없다. 결국 가래면 가고 오래면 와야하는 직장인 이니까. 


업무관련 대화와 글

일상 2015. 12. 15. 09:37

전 회사에서 내가 싫어하던 모 부장은 업무 관련해서 이상한 말 쓰는 걸 정말 좋아했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말은 "돈 풀어드릴께요." 이 말이었다. 이 말은 업체에 돈을 송금하겠다는 뜻이었는데, 유난히도 그 말을 자주 썼다.

또 자주 쓰던 말은 "자금 내려주셨니?" 이 말이었는데, 이 말은 사장님께서 우리가 사용하는 통장에 돈을 송금했는지 묻는 말이었다. 그 회사는 사장이 제일 큰 돈이 들어있는 통장을 갖고 있고, 가용하는 통장에 돈이 떨어지면 돈을 송금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 요청은 내 몫이 아니었지만, 사장님한테 돈 좀 보내달라고 할 때마다 그 부장은 항상 사장에게 엄청 비굴하게 굴고, 돈을 보내줬는지 안보내줬는지 부하직원들에게 체크할 때 항상 "내려주셨니?" 라고 묻곤 했다.

내려주셨다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마치, 조선시대 왕 앞에서 엎드려서 돈을 받는 모습이 연상되서 웃겼는데, 아직도 내려주셨니? 라고 하고 있겠지. 흐흐.

몇 번 블로그에도 썼지만, 사용하는 어휘의 양도 일반 사람 대비 반도 안되는 것 같고, 기본적인 문장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 타 회사에 보낸 메일을 보면 나까지 낯이 뜨거워지곤 했다.

그 사람은 다르다 를 틀리다고 말하는 건 아마 죽을 때까지 못고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청 꼼꼼한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이 쓴 문장과 공지글을 보면 꼼꼼함이고 뭐고 다 필요없이 사람이 참 없어보였다.

이런 걸 보면 어렸을 때 부터 책을 읽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사람의 말투와 글을 보면 1년 동안 책을 한권도 안 읽을 것이고, 하다못해 제대로 된 신문의 문장 한 줄도 안 읽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지곤 했다. 

어쩌다보니 지금 회사에서 재무 일도 겸하고 있다보니 생각이 났다. 돈을 풀어 드린다니. 푸하하하.

외근 나갈게요를 움직여 볼게요. 라고 말하던 것도 있었는데, 그 사람이 쓰던 이상한 말들을 이젠 거의 다 까먹었고 앞으로도 다 까먹고 살고 싶다.

이런걸 보면 나이 들어 사람의 품격을 결정하는 게 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바른말만 써도 사람의 품격이 확 올라가니까. 그런 의미에서도 나도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지만.


지난 화요일에는 회사에서 아주 중대한 나쁜 사건이 있었다. 그 일을 해결하려고 사장님과 면담하고 부장님과도 고민을 했지만, 아무래도 달라질 건 없는 것 같다.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 마다 왜 난 왜이렇게 운이 더럽게 없는가. 하는 생각과 아무래도 이 팔자가 내 인생의 전부인가 보다하는 생각, 이직하면 장 땡이다 라는 생각 등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을 압도할만큼 큰 감정은 바로 수치심이다. 남들은 다들 잘 이겨내는 일에 왜 난 이렇게 괴로워하는가. 난 왜이렇게 약해 빠졌나. 난 왜 충분히 좋은 직장에 가지 못했나.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수치심에 목요일에는 버스정류장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 수치심을 없앨 수만 있다면 뭐라도하고 싶었다.

다행히 이제까지 직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상기하며 이보다 더 심한 일들도 견뎌내고 지나갔다고 억지로라도 이 아픔을 이겨낼 수 있다고 세뇌하며 정신 차렸다. 하지만 여전히 속상하다.

힘든 마음에 좋아하는 소설인 로알드 달의 카티나 를 다시 읽었다. 카티나가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그렇다. 카티나를 읽고 울지 않을 도리는 없다.

금요일에는 투병 중 인 친구에게 선물을 주고 저녁을 같이 먹었다. 친구도 나에게 아이섀도를 줬는데 색이 마음에 쏙 든다. 내가 선물 받을 입장이 아닌데, 너무 속없이 넙죽 받았나 싶다.

토요일에는 전 직장에서 제일 친했던 대리님의 결혼식에 갔다. 신랑신부 모두 행복해 보여서 흐믓하고 부러웠다. 싱글벙글한 신랑신부와 곱게 차려 입은 친척들까지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가끔 어떤 결혼식은 엄청 우울한 분위기 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결혼식 때문에 전 회사 사람들을 사장님 포함하여 잔뜩 만났다. 다들 나보고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그런가… 실상은 그렇지도 않은데. 뭐 그래도 다행이다. 날 욕보인 그 회사에 약한 모습 보인 건 아니니까.

오늘은 회사에서 실수 연발 이었고 말도 막 헛나왔다. 난 평소 실수 많이 안하는데 한번 하면 큰 실수인 경향이 있다. 다음부터 검토를 잘하는 것 밖에 별다른 수가 없지만, 오늘 또 나에게 실망했다. 역시 사람은 교만하면 망한다.


쌀쌀

일상 2015. 10. 11. 22:11

우선 저번 주말에 찍은 사진.


창문이 아이비를 토하는 것 같아서 찍은 사진


​저번 주만 해도 아이비가 저렇게 무성했다. 자유공원 가는 길에 있는 집의 창문을 찍은 건데.. 멋진 창문이었다. 자유공원 가는 길에 있는 집의 창문이나 벽에 유난히 아이비가 많다. 마루 밑 아리에티 라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아이비 잎이 환상적으로 나오는데.. 무성한 아이비를 보니 그 애니메이션이 생각났다. (작화에 비해 스토리는 영 별로 였지만..)

  

러시아판 눈의 여왕

대학 시절 전주에 내려갔을 때였나... 여름 방학 특집으로 대낮에 이 애니메이션을 방영해줬었다. 잊지 않고 있다가 다시 찾아봤다. 이 애니메이션은 1957년에 소련시절 러시아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 전체적 그림의 톤이나 분위기가 환상적이고, 작화가 정말 아름답다. 특히 겔다가 카이를 찾으러 잠깐 들르는 꽃밭 그림이 정말 예쁘다. 눈의 여왕의 저 모습은 이 애니메이션이 나온 뒤의 거의 모든 눈의 여왕이 저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애니메이션에서 눈의 여왕이 처음 등장하여 눈을 부라리면서 눈을 내리깔며 말하는 표정이 예술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영향을 많이 받은 애니메이션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안톤 체호프나 톨스토이 때문인지 유난히 러시아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다. 유럽 사람들이 러시아를 싫어하는 것도, 러시아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뭐든 잘해서 인 것 같다. 디즈니의 클래식 애니메이션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 있었던 애니메이션. 

 

황량한 인천 아트 플랫폼


솔직히 말하자면 버스킹을 싫어한다. 난 내가 별로 선호하지 않는 음악을 억지로 들어야 되는 그 상황이 싫다. 길에서 하는 음악인만큼 대부분의 노래가 기타 하나에 서정적 가사 그리고 어떻게 들으면 좀 심심한 노래가 많은데 (데미안 라이스 풍의) 그런 스타일의 음악이 듣기 좋으려면 정말 엄청나게 곡이 아름다워야 한다. 비틀즈의 Junk 같은 곡이야 멜로디가 워낙 아름답기 때문에 기타에 가사만 있어도 듣기 좋고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길거리 버스킹 밴드 중에 나에게 감동을 준 적은 없었다. 비틀즈야 워낙 전설같은 존재니 너무 가혹한 비교라 쳐도 최소 Elliott Smith 정도는 되야 그런 심심한 음악을 좋아할 수 있다. 너무 냉정한 평가인건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저번주 길에서 들은 밴드 음악 때문이다.   

저번 주 산책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전자기타 소리가 나서 따라가보니, 위와 같은 곳이 나왔다. 인천시에서 예술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센터? 같은 곳인데, 보시다시피 황량하다. 인천시가 공무원들 월급을 걱정할 정도로 재정이 적자라고 하니까 잘 돌아갈 리가 없겠지만.

2층 야외 무대에서 어떤 락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앞에 10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앉아서 듣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좀 듣다가 갔는데, 꽤 괜찮았다.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곡이었지만. 


여기까지는 저번 주말이야기 이고, 지금부터는 이번 연휴동안 있었던 일.


한글날에는 평일에 울리는 알람을 안끄고 자서 늦잠이 허용되는 귀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5시 40분에 기상하였다. 


회사 컴퓨터의 상태가 너무 심각한데, 어느 누구 하나 신경을 써주지 않아서 나 혼자서라도 손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장님은 업무에 지장있다고 그냥 쓰라고 했지만 컴퓨터의 상태가 점점 너무 심각해지고 계속 신경이 쓰여서 부장님 몰래 포맷하고 다시 윈도우를 깔기로 맘을 먹은 것이다. 

포맷을 하려면 백업을 해야 하는데 전임자가 파일 관리를 너무 제멋대로 하여 (모든 업무 파일이 모두 같은 폴더에 있었다. ㅜㅜ) 파일 정리도 한번에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한글날 집에서 파일 정리를 하였다. 


그리고 어제는 회사에가서 포맷을 하고 운영체제를 까는데, 중간에 한번 백업한 데이터가 날아간 줄 알고 눈물 찔끔 흘리고 혼자 사무실에서 소리지르다가 정신을 차렸다. 천만다행으로 백업한 데이터가 날아가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날아간 줄 알았을 땐 정말 절망했다.


다시 정신 차리고 운영체제 DVD 를 넣었는데 컴퓨터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알고보니 내 컴퓨터는 DVD롬이 아니라 CD롬이 장착된 아주 아주 오래된 컴퓨터였다. USB 로 부팅해서 깔자.. 하고 DVD의 내용을 USB로 파일 옮기고 바이오스 설정에 들어가보니, 그 역시 내 컴퓨터는 지원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USB 메모리로 부팅하라고 선택해도 소용이 없었다.

부장님 몰래 포맷한거라 월요일 아침에 업무에 지장이 없으려면 어떻게든 깔아놓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혼자 어떻게 해야하나 발만 동동 구르며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가 결국 회사에서 꽤 먼 이마트까지 걸어가서 외장 ODD 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다시 운영체제를 깔고 필요한 프로그램을 깔고 대충 마무리 짓고 집으로 서둘러 왔다.   

한 3시간이면 끝날 줄 알고 오는 길에 보고 싶었던 영화 인턴이나 마션 둘 중 하나 골라서 보자 했는데 웬걸 중간 엄청난 삽질로 밤 9시 반에 간신히 끝났다. 

이마트에서 구입한 외장 ODD를 인터넷보다 2만원이나 비싸게 사서 속이 쓰리고, 회사에 청구했다 까일까봐 좀 걱정이다.


오늘은 갑자기 너무 쌀쌀해져서 깜짝 놀라 빨리 겨울 옷을 꺼내기로 결심하고 여름옷을 정리하였다. 한번도 안 입은 옷이 엄청 많았지만, 결국 또 안버리고 다시 다 장롱 안으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년에도 입지 않겠지 아마.


엄마, 아빠는 고모, 고모부와 함께 전라도여행을 다녀오셨다. 기분 전환 확실하게 하고 오신 것 같다. 엄마아빠 모두 뭔가 여유로워진 기분. 시골에 가니 가뭄이 심각한 걸 실감하셨다고 한다. 엄청 크고 물이 넘실댔던 저수지와 호수가 물한방울 없이 다 말라 버려서 가슴이 아프셨다고 한다. 


비가 주룩주룩 많이 왔으면 좋았겠지만, 이번 주말 비도 가뭄 해갈에는 전혀 도움이 안될 정도로 병아리 눈물만큼 왔다. 


다시 일주일 시작이다. 토요일에 한번 출근했으니 다음주 쯤에 휴가를 하루 쓰려고 한다. 그 날은 오랜만에 운전도 하고 어디 좀 가고 보람차게 보내봐야지.


1. Santana 의 Supernatural 앨범 

  저번 주에 용인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서 오랜만에 산타나의 슈퍼내추럴 앨범을 들었다. 내가 한창 음악을 듣기 시작할 때 초히트를 쳤던 앨범으로 나 역시 열심히 들었다. 산타나 아저씨 다른 옛날 곡도 종종 듣지만, 젊은 시절 함께 했던 앨범이라 그런지 슈퍼내추럴 만큼 자주 듣게 되진 않는다.

  실제 히트한 노래들은 다 영어 가사로 된 곡들이지만, 난 Corazon Espinado 나 Migra, Primavera 같은 곡이 훨씬 좋다. 이 앨범을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스패니쉬 전혀 모르는 나도 Migra 는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부를 수 있다.

  슈퍼내추럴은 표지가 참 좋다. 맨 위에 날개달린 개성 뚜렷한 산타나 아저씨 얼굴도 좋고 가운데 있는 왕관쓴 남미풍 인어공주도 좋고, 산타나라고 써진 폰트도 표지와 꼭 어울린다. 

  왜 산타나곡은 다 스패니쉬로 부른 곡이 훨씬 좋은지 생각을 해보니, 언어라는 게 한 나라의 문화의 정수기 때문에 한 나라에서 태어나 그 언어를 평생 쓰며 그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다보면 자연히 연주도 곡도 그 언어에 맞춰지기 때문인 것 같다.

  신중현의 미인을 영어로 부른다면 엄청 이상할 것이다.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의 노래도 영어로 바뀐 건 포루투갈어로 부른 버전보단 영 느낌이 별로다. 대학 때 보아의 Valenti 라는 곡을 꽤 좋아했는데, 일어로 듣다가 한국어로 된 Valenti 를 듣고 이건 뭔가 싶을 정도로 이상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살고 있는 동북아는 각 나라마다 다 그들의 언어가 있고 그래서 더 재밌다. 가깝지만 그만큼 서로 엄청나게 다르니까. 영어와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들을 보며 쟤들은 외국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도 가끔 했지만, 내 나라에 딱 맞는 언어를 갖고 있다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뭐 한글도 대부분은 한문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 없지만 말이다. 


2. 인사이드아웃

  (본 지 오래됐지만) 인사이드아웃을 봤다. 난 종종 극장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라푼젤이나 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 어서 보고 싶다.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인사이드아웃이 개봉했고 난 당연히 보러 갔다.

  보면서 울기도 했고, 이 애니메이션이 주는 심오한 메세지와 주인공이 여자애 인데다가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간 모습이 내 어린 시절이랑 비슷해서 좋았다. 

  하지만 이런 극장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 토이스토리3이 얼마나 대단한 애니메이션인가.. 하는 것이다. 

  라푼젤은 주인공 남녀가 너무 내 맘에 쏙 들어서, 둘이 손잡고 I see the light 부르는 데이트 하는 장면만 50번 이상 봤다. 본 횟수로 따지면 토이스토리3보다 라푼젤이 훨씬 많지만, 솔직히 토이스토리3만큼 위대한 애니메이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 헤어지는 장난감과 주인을 보며 내가 극장에서 어찌나 울었는지.

  인사이드아웃은 기억을 시각화 한 게 정말 기발했고, 슬픔이 캐릭터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 슬픔이스러워서 마음에 들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건 기쁨보다도 슬픔인 것 같다. 항상 즐거운 사람보단 공감능력 있고, 남의 슬픔에 진심으로 가슴아파 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인간미 있고 정이 가니까..


3. 친구의 병

  제일 친한 친구 중 한명이 암 확진을 받았다. 사실 그래서 광복절에 아산병원에 간 것이었다. 그 친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알기 때문에 나까지 한동안 슬펐다. 하지만 제일 힘든 건 그 친구일 것이고, 사람이 곤경에 빠지면 옆에서 호들갑 떠는 사람보다는 평소랑 똑같이 대해주는 사람이 더 편하고 고맙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난 평소대로 대하고 있다. 

  친구네 집에 가서 금요일에 같이 밥을 먹었다. 친구가 완쾌 됐으면 좋겠다. 남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정말 당연하게 그 친구도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게 사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다. 예를 들면 결혼한지 5년 됐다고 말하면 당연하게 사람들은 애는 몇살이냐고 묻는 식이다. 친구가 많이 아픈 걸 옆에서 보면서 난 절대 어떤 질문이든 함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난 솔직히 아직도 내 친구의 병이 실감이 안난다. 아마 내 친구는 더 하겠지...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친구는 대학 졸업해서 정말 착실하게 일만 했다. 그런데 왜 그런 큰 병에 걸린걸까.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날 것 같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기도해주고 기원해주면서 옆에 있는 수 밖에는 없는 거 겠지.


4. 몇년 째 마이너스의 직장생활

  첫 회사부터 지금까지 쭉 다니는 회사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규모가 작은 게 문제라기 보단, 체계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회사가 겉 보기엔 멀쩡한데 일하면 할 수록 이를 어째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서 일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다. 다 바꾸려고 하면 힘드니 하나하나 차근차근 하자 마음은 먹었지만, 가끔 한숨이 푹푹 나온다. 


5. 프리랜서들의 삶.

  지금 다니는 회사는 프리랜서들이랑 일하는 게 거의 80% 이상이다. 처음 보는 삶이다 보니 프리랜서들의 삶이 좀 흥미롭다. 프리랜서도 결국 사교성 좋고 영업력 있는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긴 하지만, 돈을 버는 방법에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내일 월요일이다. 

엄마랑 한 겨울에는 우리 둘다 밤 10시에는 침대에 눕는 것을 목표로 부지런히 잘 준비를 하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런데 벌써 12시네. 빨리 자야겠다.

휴. 시간이 참 빠르다. 


아까 공원가서 눈썹 위에 산모기에 물리는 바람에 눈썹 위의 이마가 엄청 크게 부풀어 올랐고 그것 때문에 얼굴 꼴이 지금 참 웃긴데 내일 아침에는 좀 가라앉겠지 설마.

 

아 그런데 새벽 전철안에서는 메이크업 하는 여자들 흔히 보는데, 요즘에는 메이크업 뿐 아니라 앞머리에 구르프 까지 말고 있는 여자들을 종종 보고 있다. 나도 메이크업은 남들 시선 의식 안하고 뚝딱 뚝딱 잘 하는데 구르프는 자신이 없다. 난 하수였다. 


7월의 사건

일상 2015. 7. 27. 00:52

정규직으로 처음 일하게 된 날의 아침을 아직도 기억한다. 2007년 7월 23일. 첫날부터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저녁 7시쯤 서울역에서 전철을 기다릴 때 숨이 턱턱 막히던 습하고 더웠던 공기. 내가 선택한 이 길이 과연 제대로 된 길일까... 하는 생각에 두려웠고, 엄청나게 피곤했다.

 

2015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또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저번 포스팅에서 말한 2년치 메신저 대화기록을 통째로 넘긴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 여자는 같은 팀에서 이유도 없이 윗사람 유세를 하며 틈만나면 나를 가르치려 들던 대리였다.

팀원들의 대화기록을 보려고 한 부장도 미친 것 같고, 너한테는 피해 안가게 할테니까 기록 전체를 넘기라고 한 부장의 말에 신나서 2년치 대화기록을 그대로 USB 에 다 담아서 넘긴 대리도 제 정신은 아닌 것 같다. 나랑 다른 팀원 짤릴 생각에 룰루랄라 회사 다녔을 생각하니 헛웃음이 난다. 하하하.

당연하게도 USB 기록을 넘긴 대리도 권고사직 됐다. 부장의 말을 믿다니... 5년 넘게 부장을 봐놓고 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 있는지. 참 그 대리도 대책없다. 멍청한건지 순진한건지.

 

내 죄라고 한다면 그 기록을 넘긴 대리와 대화를 한 것인데, 같은 팀인데 대화를 안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 대화방에는 욕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한 그 정도 지적에 권고사직까지 주는 이런 회사를 어떻게 내가 더 다닐 수 있을 것이며, 막판에 회사가 나한테 대하는 꼬리지를 보니 내가 3년 동안 이 거지 같은 곳에서 쓸데없이 고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어차피 오만정 떨어진 상태라 애초에 관둔다고 했고 회사에서는 선심쓰듯 그럼 너는 권고사직 처리를 안해주겠다고 하며 위로금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줬다. 나랑 제일 친했던 대리님은 권고사직 상태로 사직처리 되고, 기록을 넘긴 대리는 본인이 순순히 기록을 다 넘긴 주제에 회사 상태로 고소장을 접수하겠다고 하고 있다.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같은 게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내 운명이라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한 상태로 떠도는 운명이겠지. 어렸을 때 부터 지금까지 쭉.

 

원래 3년 전에 아무데도 취업 안되면 하려고 했던 공부를 더 하기로 했다. 교수들 성격에 질려 다신 가기 싫었던 모교에서 다시 일하게 됐고, 내일은 대학원 면접을 보게 됐다. 앞으로 원래 벌던 돈보다 현저히 적은 돈으로 공부까지 해야 하는데, 절묘하게 회사를 관두는 시기에 딱 맞춰 대학교에서 혹시 다시 와서 일할 수 있냐고 연락이 왔고, 또 내가 관두는 시기에 맞춰서 대학원 추가 모집을 시작한 걸 보면 참 이렇게 딱딱 앞날이 정해지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난 이렇게 될 운명이었고, 힘들게 맞지도 않는 회사에서 발버둥치지 말고 그냥 이 거대한 운명의 흐름에 날 맡기기로 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이 내막을 이야기 했더니,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을 보고 배우는 법인데, 보고 배우기 전에 그 회사 탈출하길 잘한 것 같다고 했다. 이상하게 이 말이 참 위로가 됐다. 변할 수 없는 성격이라 결국 그 조직을 내가 버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 성격이 좋은 성격은 아니지만, 그 사람들에 맞춰 변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7월 20일부터 대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방학이라 사람도 없고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초침 가는 소리만 들리고, 우리 학교에서 제일 오래된 낡은 건물에서 박정희 시대때나 사용했을 법한 오래된 사무용 가구에 둘러 쌓여서 사람의 일은 쉽게 장담할 수 없다는 진리를 곱씹고 있다.

 

어제는 마지막으로 회사에 가서 3년 간의 내 짐을 빼왔다. 비오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앞으로는 이 길도 이제 안녕이다. 생각하니 좀 슬펐다. 회사는 싫지만 그 고속도로는 좋아했다. 자유로에서 퇴근길에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도 이젠 안녕이다.

 

정말 이 길이 내 길이라면 아무 준비도 없이 임하는 내일 대학원 면접에서 말도 술술 나오고, 또 합격도 하겠지? 안되도 뭐 크게 낙담하지는 않겠지만.


징계위원회

일상 2015. 7. 20. 01:07

회사가 작다보니 지금 회사는 권력의 축 4명에 의해 모든 것이 좌지우지 된다. 사장님 빼고는 그 모두를 경멸한다.
그 4명 중 한 명이 내 바로 위에 있는 부장인데, 이 일기를 자주보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와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나는 그 여자에게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부장과 핵심권력인 다른 한 명은 언제나 나를 못마땅해 했다. 회사가 세워진 이후 사장 신임 하나로 자기하고 싶은대로만 일하다 가끔 태클거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지. 하지만 그들은 나를 짜를 구실이 없었다.
난 가끔 니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지 않다는 티를 심하게 내는 것 말고는 맡은 일은 잘했다. 트집잡을 구석이 없었다.
그러다 일이 생겼다.
아직도 어떻게 내 컴퓨터의 메신저 비밀번호를 푼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사람들은 내 컴퓨터의 메신저 기록을 입수했고 그 중 나한테 불리한 대화 내용을 프린트 했고, 부장은 신나게 그 프린트한 기록을 회사 팀장들에게 돌렸다.
그 메신저 대화 중 상당 부분은 같은 팀원들과 함께 회사와 위 권력 4명에 대한 불만과 욕이었다. 당연하게도 부장 욕이 제일 많았다.
부장은 나와 같이 대화한 다른 2명까지 당장 짜르겠다고 날뛰었다. 자기 밑의 팀원이 3명인데 그 3명을 다 내보내겠다고 사장에게 떼를 쓴 것이다.
회사에서 내세우는 구실은 업무시간 중 메신저 사용으로 인한 업무 태만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자기 욕을 한 우리 셋이 괘씸해서 짜르고 싶어한다는 것을. 본인이 평소 우리에게 한 상식이하의 언행과 남의 사생활을 비열하게 몰래 엿본 것에 대한 지들의 잘못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2주넘게 팀원 셋을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개무시하고 나에게 서류를 집어던지다시피 했고, 급기야는 우리 셋의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걸어놓고서는 일을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출근까지 하지 말라고 해서 저번주 내내 회사도 안갔다.
결국 이딴 문제로 난 징계위원회에 까지 불려갔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절대 그냥 물러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까지 그 여자에게 당한 일, 왜 팀원들이 음성적으로 밖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밖에 없었는지, 건조하게 진술했다.

이 회사에서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어디서 뭘하든 투지가 생길 것만 같다.
난 이 회사에 3년도 안다녀서 이미 때려칠 마음 먹고 있는데 다른 두명은 놀랍게도 어떻게든 끝까지 붙어 있을 작정인 것 같다.
난 그렇게는 못하겠다.
친구들은 다들 기가 막히다는 반응이고, 부모님은 안타깝지만 니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하신다.

안해도 될 더러운 경험이었지만 앞으로 내 인생에 도움은 될 것이다.
한국 회사에서는 할 일만 해서는 안되고 아부도 해야하고 싫어도 좋은 척 해야하고 인간 말종 같은 상사한테 인간 대접도 해줘야 한다.

내 성격으로 사회 생활이 불가능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내 성격이 드러운 건 둘째치고 이 회사가 졸라 말도 안되게 싸이코인 것도 사실이니까 주눅들지 않기로 했다.

징계위원회 결과는 화요일 이라고 한다.


7월 1일부터 회사에서 대형급 사건이 터졌다. 그것도 두개씩이나.
이대로 가다간 안되겠다 싶어 관두든지 다른 직장에 가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경솔했다.
회사원들끼리의 거짓 친목에 익숙해지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그 대가로 괴로운 날을 보내고 있다.
차라리 처음부터 내 갈길을 정하고 아예 멀고먼 사람으로 살았다면 행복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두사람 이상이 만나 없던 말도 만들어내면 사람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란 걸 뼈져리게 느낀다.

내가 또 졌고, 돌파구 마련을 해야만 한다.
난 바보가 되기 싫고, 될 수도 없으니까.
회사생활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고 꽤 많은 인간들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세상은 넓고 특이한 사람은 많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