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연속.

일상 2008. 3. 16. 16:10
주5일을 하는 직장이라면 금요일이 제일 즐거워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엊그제 3월 14일 금요일은 날씨가 그야말로 환타스틱 했다. 목요일 밤에 비가 와서인지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금요일이었다.
3일연속 일이 별로 없어서 불안했던 내 예감은 완벽히 적중을 해서 내가 불안했던 것 이상으로 목요일부터 이상할 정도로 일이 몰렸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언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뭣 모르는 중 고등학교 시절 언론사에 종사하길 원했던 내 자신이 치욕적일 정도다. 언론 너무 믿지 말자.
저번주 금요일에도 기분이 뭣 같았는데 그냥 집으로 들어갔다. 딱히 만날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와서 혼자 비비큐 치킨이나 시켜먹었는데 이번주 금요일도 마찬가지로 퇴근 후 바로 집으로 왔다. 하지만 누구 만날 사람이 있었다고 한들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일이 많아서 어차피 늦게 끝났으니까.
참담한 기분으로 집에와서 친구랑 전화하면서 그나마 기분이 좀 풀렸는데 누워서 잘 때가 되니까 다시 기분이 다시 안좋아졌다. 서러움이 점점 커지면서 결국 엉엉 울었다. 그냥 가슴이 찡하고 갑자기 눈물이 한두방울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이불 뒤집어 쓰고 엉엉 울어버린거다. 저번주부터 사무실에서 울랑말랑 하다가 괜찮아졌다 가 계속 반복되는 상태였다. 그러다 뭐 터져버린 것.
내가 이런 내 상태를 얘기하면 다들 똑같이 이야기 한다. 아니.. 완전히 100% 솔직하게 말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 내 맘을 말해도 될까? 하고 조금이라도 내 맘을 내비치면 어김없이 똑같은 말이 나온단 말이다.

금요일 밤에도 어김없이 똑같은 말을 들었다.

"다들 그렇게 얘기하더라. 내가 필요하고 절실한 말은 그게 아닌데."
"그럼?"
"그냥.. 난 예전에 어떤 사람이 지금 내가 한 말이랑 비슷한 말 했을 땐 그렇게 얘기 안했어."

그랬다. 난 요즘 사람들이 나한테 얘기하는 그런 말은 안했다. 뭐 그 사람이 자기를 이해해 주는 게 나 밖에 없다고 한 말이 어쩌면 진짜였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풋. 뭐 세상에 자길 이해해주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는 건 그냥 그것 뿐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상태로 다 끝이나버렸다해도, 그 당시에 나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주변에 아마 단 한명도 없었던 모양이다.
막상 거의 동일한 상황이 나에게 당도해보니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평소에 날 좋아하고 위해준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결국은 똑같은 말만 하는거다.
난 예전에 그 사람만도 못하다. 예전 나처럼 말해주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으니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그때부턴 다시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랑 결국은 그렇게 재수없이 끝나버렸던 그 당시가 생각나서 또 가슴이 아팠다.  

난 지독한 이상주의자다. 어떻게든 숨기려고 하고 냉소적으로 보이려 하고 가끔씩 그래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난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하기 좀 부끄러울 정도로 이상주의자 인 거다. 하지만 난 30살 쯤이 되어서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요즘 사람들이 나한테 하는 판에 박힌, 어떻게든 불확실한 미래에서 벗어나도록, 그리고 가장 위험부담 없고 안전한 말로 위로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책임한 말이었지만 난 작년 이맘때쯤에도 지금도 내년에도 작년에 그 사람한테 했듯, 말할 자신이 있다.

내가 많이 힘들어하면 그냥 앞뒤 생각하지말고 거기서 니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주는 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 쳇. 그래. 그러니까 너랑 나랑은 안된다. 이거다. 그 2키로 더 빼라고 한 사건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결국엔 즐거워야할 금요일 밤에 엉엉 울다가 베게나 실컷 적시고 코나 풀고 눈물 때문에 땡기는 눈가에 다시 로숀을 바르고 누워선 음악을 들었다. 최근 3년간 가장 불행했을 때 들었던 음악을 찾았다. incubus, weezer .. 등등.
예전에는 내가 괴로웠을 때 들은 음악을 다시 찾아 듣기가 무서웠다. 힘들 때 배경음악이 되었던 음악을 다시 들으면 약 80% 정도는 그때 그 기분으로 다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정말 힘들 때 오히려 그런 음악을 찾아듣는다. 들으면서 그래 솔직히 예전보다 지금이 10배는 낫지. 안그래? 이러면서 혼자 위로하는거다.

내 곁에 정말 나한테 진정 위로가 되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걸까? 내가 남탓만 하고 그냥 내 덕이 부족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참으로 비겁한 행위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한테는 완전히 내 뜻을 내 비친적이 한번도 없다. 아마 걔네들은 나한테 똑같은 말로 위로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안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한켠이 이렇게 쓰린 이유는 날 진정 위해주는 '남자'가 한명도 없기 때문인걸까? 하핫. 인정하긴 싫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한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별 수 없단 말이다.


일본 여행에 다녀와서부터 몸이 여기저기 아프더니만 결국 담에 또 걸렸다. 내 친구는 담에 걸렸다 표현 안하고 담 들었다고 말하던데. 그렇게 말하는건가?
시름시름 앓기를 며칠, 장염 증세가 며칠 지속, 귀에 염증, 결막염을 거쳐 '담'에 코감기까지 단단히 들어버렸는데 거기에 목소리까지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에헤라.

저번주는 정말 악목같은 일주일 이었다. 내 생애 그렇게 일주일이 길어보긴 처음이었다.
내 생애 가장 길었던 일주일이여. 으흑.
화요일에 회사에 대형사건 하나가 뻥~! 하고 터져서 그 이후로는 수습하느라 반 죽을 뻔 했다. 다시한번 내가 일하는 부서에 회의감이 들었달까. 내 성미에 전혀 맞지 않는 일 하는 거 정말 괴롭다. 직장인들 대부분이 회사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직장 사람들한테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뭐냐는 질문 1위에 인간관계가 나왔다고 하니까. 나도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친해지지 못할 사람.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 친해지면 안되는 사람. 등등 여러 인간들이 회사에 많고 그것 때문에 관두고 싶다고 골백번 생각을 했지만, 내가 관두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이 일이 너무 싫기 때문이다. 솔직히 학교 다니면서도 죽어도 안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일 중 하나가 지금 하는 일이다. 졸업 후 제대로 돈도 못벌고 계약직으로 일할 땐 정규직이면 옳타쿠나 감사합니다. 하고 가려고 맘을 먹었고 여기 회사에 붙었을 최초에는 기쁜 마음이 컸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회의감이 들고 이 직무로 경력 쌓고 또 너 이 경력으로 회사 옮길래? 라로 자문해보면 오오 Never! 다. 내가 하고 있는 직무가 싫을 뿐 아니라 몸 담고 있는 직종도 싫다. 아. 싫은 것 투성이~~ 그래도 1년도 못 버티고 나오면 어디가서 버틸만큼 버텼다 말하기 쪽팔릴 뿐 아니라, 1년도 못하고 관둔 날 용서할 수 없을 듯 하여 1년은 버텨야 하지 않겠니? 라면서 버티고는 있지만..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뭔가를 계속 고대하고 있는 상태지만 저번 루쉰 책에 대해서 쓸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포기로 기울고 있다. (안돼!!! 루쉰 선생님의 말을 생각해! 희망은 미래에 속하는 것이잖아!! 라고 맘을 다잡아도 소용없다. 흑)
그렇다고 해결책이 있느냐? 관두고 나오면 니가 뭐 할 것이 있느냐? 없단 말이다. 아아아아악. 그래 일단은 1년이 되기까지의 유예기간이 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 그때가 되면 또 불현듯 어떤 결심을 하게 되리라 믿는다. 그렇다. 뭐 고민한다고 되는 일이더냐. 하루 하루 살아가고 주말 제대로 돌아와주면 되는 거 아니냐.
크크 이제까지 쓴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이거 뭐 무슨 정신병자가 쓴 것 같네.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이 혼잣말 하는 거 같잖아. 이거원. 혼자 고민하고 혼자 해결책 수습하고.

다시 내가 원래 말하고자 했던 내 몸의 증상에 대해 말해보자면.
저번 담의 증상은 '오른쪽으로 고개가 안돌아간다. 오른팔이 안 올라간다. 허리를 숙일 수 없다.' 이 정도였다. 아주 대형 담이었다고 할까. 이번 담의 증상은 딱 하나 왼쪽으로 고개가 안돌아간다. 이거 였다. 저번 담에 비한다면 아주 약한 증상이었는데 사람이 목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 거 단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생활이 불편해질 수 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오랜만에 우리동네 단골 한의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이렇게 날씨 좋은 주말에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보신다. "아.. 저기.. 목이 아파서."라고 말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단번에 "여기랑 여기 아니세요?" 라고 딱 집는데 이런 족집게 같으니라고. 정확하게 그 부분이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부항을 한 4개 뜨고, 침은 한 8방 맞고 찜질까지 마무리 짓는데.. 나이 26에 부항이나 뜨고 누워있고 내 신세가 좀 처량했다. 하지만 부항의 효과는 아주 탁월한 것이어서 한지 3일 밖에 안 지났는데 이젠 왼쪽으로 고개가 잘 돌아간다. 대신 부항 맞은 데 피멍이 크게 4개가 생겼지만.
난 침 맞는 건 하나도 안 두려운데 엎드린 자세로 꼼짝도 못하고 꽤 오랜 시간 있어야 하는 게 어찌나 좀이 쑤시던지.. 나중엔 머리가 지끈 거렸다. 3가지 코스 중 제일 맘에 들었던 건 역시 찜질... 잠이 솔솔 와서 결국 잠이 들었는데 깊게 잠드려는 찰나 끝났다고 일어나라고 해서 너무 아쉬웠다.
 
계산을 하기 전에 키랑 몸무게나 재볼까 하고 쟀는데 키는 그대로 몸무게는 2키로가 빠져있었다. 오.. 역시 최고의 다이어트 비법은 '일' 이로구나 하며 계산하고 나와선 잠깐 친구를 만났다.

여기서 한가지 사건.
집에와서 저번에도 등장하신 그 분과 전화를 하는데 일주일 동안에 살이 많이 빠져서 그런가 어지럽다고 말했더니 그 여세를 몰아서 2키로를 더 빼라는 거다.
그 순간 거짓말 처럼 이제까지의 감정이 싸그리 사라지면서 무서운 속도로 감정 정리가 착착 진행되며 역시 안된다.로 결론이 나버렸다.
하하하하. 역시 말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말 한마디에 당신 너무하는 거 아니야? 그것도 살 빼란 말에? 이렇게 되물어도 소용없다. 내가 기대한 말은 힘들겠다. 혹은 고생이 많았구나. 라는 말이었는데 그 여세를 몰아서 2키로를 더 빼라고? 어허허허. 어이가 없었다. 이런말은 안하려고 했지만, 2키로 더 빠진 내 몸무게는 누가 살빼라고 말할만한 절대 몸무게는 아니었단 말이다.! 그 체중계에서도 분명히 저체중이랬어!! 내가 물론 키가 다른 사람보다 작긴 하지만, 아무리 본인 기준에 내가 살이 좀 있다고 한들 아니 아파서 골골대는 사람한테 살을 빼라니! 이런 당치도 않은. 난 태어나서 누구한테 살 빼라는 말을 한번도 입에 담아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내 일생동안 충격적이었던 말 베스트 3 에 들만한 아주 엄청난 말이었다. 2키로 더 빼. 아아악.(오늘 이 아아악. 이 말 참 많이도 하네;) 다시 생각해도 충격적이다.

친한 친구랑 놀고 싶은 맘이 굴뚝같은 지 벌써 한달째. 친구는 시골에 내려갔다. 우울한 마음에 친구한테 이런 저런 넋두리를 늘어놓았더니 역시 내 친구 답게 이구 불쌍한 것. 이라고 해주는 거다. 아.. 눈물나게 고마운 친구. 요즘 날 불쌍히 여겨주는 건 너 밖에 없어. 엉엉. 친구 올라오면 맛있는 거 잔뜩 사주기로 결심했다.

친구오기 전에 이 만신창이 몸뚱아리가 조금의 차도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쓰는 사무실 컵

일상 2008. 2. 21. 15:19
지다님께서 올리신 글 보고 갑자기 나도 내 컵을 소개하고 싶어서 이렇게 급 포스팅!

난 밥을 먹자마자, 컵을 쓰자마자 바로 설거지 하는 깔끔한 성격이 아니라 자취할 때도 자기전 딱 한번 설거지를 했는데 하루종일 집에 있다보면 가장 헤프게 쓰게 되는 것이 바로 컵 이었다. (여담이지만 저번에 친구가 새언니 성격 진짜 드럽다고 밥 먹고 설거지도 안해놓고 상도 안 닦아놓는다고 하는데 솔직히 좀 놀랬다. 원래 밥 먹자마자 설거지 하는건가..싶어서.. ; 친구네집 놀러갔을 때도 친구가 밥 먹자마자 설거지 바로해서 놀래고.)

그래서 난 혼자 살면서 컵을 진짜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손잡이 떨어지고 깨지기도 많이했다. 근데 손잡이 떨어진 컵은 그냥 뭐 쓰는데 문제 없어서 청승맞게 손잡이도 없는 컵 대충 쓰고.. 그랬다. 근데 난 손잡이 떨어진 컵은 그냥 써도 이빠진 그릇에 밥 먹기는 죽어도 싫다. 저번에 친척언니네집에서 한달정도 얹혀 살 때 그 언니네 집 밥 그릇 중 이 안 빠진 그릇이 하나도 없었다. 맘 같아선 그냥 사고 다 갖다 버리고 싶었는데 사주는 것도 건방지고 남 살림에 신경쓰는 것 같아서 참았다.

우리집에는 엄마가 시집올 때 사온 그릇이 아직도 많은데, 난 엄마한테 '엄마 안 쓰는 그릇 나 시집갈 때 그냥 가져간다. 모자르는 것만 살거야.' 라고 말했는데.. 거의 진심이다. 별로 그릇 욕심이 없다.
우리 엄마는 국그릇, 밥그릇, 접시 같은 것엔 나와 마찬가지로 관심이 전혀 없는데 유독 반찬그릇 욕심이 많다.
그릇은 아니지만 또 특이할만한 점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쓰던 수저 젓가락을 아직도 사용한다는 거. (어린이 용이라 젓가락도 짧고 수저도 작지만 그냥 쓴다) 이것 역시 엄마가 시집갈 때 가져가랜다. 흐흐.

서두가  길었지만 내가 사무실에서 쓰는 컵은 바로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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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옷차림에 전혀 매치되지 않는 모자를 쓴 것처럼 어색해보이는 저 뚜껑은 예상하셨다시피 지 짝이 아니다. 그냥 어찌어찌 하다보니 딱 맞길래 같이 사용하고 있다. 이 컵은 원래 2개가 한 세트인데 한 개는 자취하다가 깨졌다. 저기에 커피도 마시고 우유도 마시고 차도 마시고 그런다. 그리고 내가 퇴근하기 전 꼭 하는 일은 컵 설거지 해 놓기다. 근데 사무실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수세미가 너무 불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개인 수세미를 하나 사놓고 싶은데... 요즘에는 너무 더러운 생각이 들어서 그냥 손을 깨끗하게 씻은 후 손에 세제 묻혀서 컵을 닦는다.

그들만의 기싸움

일상 2007. 11. 22. 11:41
회사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날 듯한 조짐이다.
사람들이 많이 관두고 교체되어 가는 분위기.
원래 있던 자와 새로온 자간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기싸움.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말들 때문에 괴로운 건 말단들 이지만
말단이기 때문에 이러나 저러나 힘든 건 마찬가지.

and the winner is

누가 될 것인가!!!! (사실 재밌음)


  내 첫 휴가였던 금요일에 친구와 4시반에 헤어진 게 그 하루의 끝은 아니었다. 평소에 '굳이 안해도 될 불쌍한 짓을 괜히 만들어서 하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나는 또 한 가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월미도에 가야겠다"    바로 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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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미도는 가면 정말 초라하고 볼품없는 곳이라 인천사람들도 굉장히 무시하는 곳이고 나역시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지만,

우리집 앞에 있는 표지판

월미도
月尾島
wolmido

↑ 3.2 km

이 표지판을 보고 나서 부터 태도를 180 도 바꿨다.


우선 이름의 뜻  - 월, 꼬리 미, 도. 너무 아름다운 이름아닌가.   특히 '꼬리 미' 자라니!!!!

  이름 때문에 좋아졌다면 사실 좀 거짓말이고 우리집에서는 저 멀리로 바다가 보이는데, 인천 앞바다의 석양이 꽤나 이색적이면서도 쓸만하다는 걸 몇개월간 살면서 알았기 때문에 좋아졌다는 게 더 큰 이유이다.

  다시 금요일의 내 소중한 첫 휴가 때로 되돌아 가자면, 4시반에 집에 들어와서 그럭저럭 TV나 인터넷을 하면서 내 소중한 첫 휴가를 보내기엔 뭔가 안타까웠다. 바닷바람이 꽤 차겠지 싶어서 난 두꺼운 옷과 목도리를 두르고 집을 나서선 45번 버스에 혼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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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의 목적은 해가 진 직후를 보는 것 이었는데, 생각보다 해가 너무 빨리 지는 바람에 해가 진 직후라기보단 깜깜해지기 직전 에 가까운 바다를 보게 되었다. 애초의 목적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썰물이라서 바닥에 바위만 보고 오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완벽한 밀물이라서 물은 충만했다!
  월미도에 가면 사람이 없는데 워낙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낭만과는 거리가 먼 공장 뿐이고 음식점들도 다들 촌스러움과 동시에 엄청 맛없어 보이는 외관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아주 오래전서부터 그렇게 천천히 빛바래오고 재미없는 장소가 되어버린 월미도의 처량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막상 가보면 아무것도 없는 월미도지만, 의외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 아니던가! 그것도 다 이런 처량하고 처연해 보이는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갔을 때도 거의 10명 남짓한 사람들만이 월미도 주변을 걷고 있었다. 나로선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라기보단 왠지 끝없이 조용하고 고요하게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아버리고 싶은 기분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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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몇 분 사이에도 바다는 빠르게 어두워졌다. 싸구려 카메라인데다 사진 찍는 기술이 없어서 첫번째 사진과 두번째 사진의 변화가 별로 안 느껴지지만 말이다. (하늘색만 비교하면 미세하게나마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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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온 아저씨 한명이 눈에 뛰었는데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다가 좀 웃겼다. 저렇게 바위위에 올라가셔서 폼 잡으실 것 까진 없으실텐데 싶었다. 푸흐흐. 포즈로 봐서는 소리라도 크게 지를 태세지만, 그냥 저러고 멍하니 계시다가 바위에서 내려와선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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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바다에 모래사장이 있는 건 아닌가보다. 월미도에는 모래사장 따위 없다. ;; 대신 바닷물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바로 바다까지 연결되어 있는 계단.

이거야 말로 Stairway to heaven  인가?

훗. 계속 걸어들어갔다간 동사하기 딱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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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히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난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걸었다. 그래봤자 얼마 안되니까. 바닷바람도 쐬고. 카메라로 마구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미처 장갑까지는 준비해오지 못한 것이었다. 손이 상상초월로 시려웠다. 결국 편의점에 들어가서 이사짐 나를 때 쓰는 흰색 장갑을 하나 사서 끼었다. 훨씬 손이 따뜻해졌다.
  음악이 딱 필요한 순간이었는데 한쪽 이어폰 고무가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너무 손시려워서 정신없는 동안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뭐 그렇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물결 소리라서 안들어도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내 이어폰이 고장 상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노래들을 들었을 것 같다.

   -제목과는 달리 노래 분위기는 자살 직전에 들음 딱일 것 같은 radiohead의 Optimistic
   -1집 2집과는 달리 정붙이기 힘들었던 coldplay 3집의 x and y
   -'나는 널 위해 여기 있어. 나의 꿈에 들어와.' 서울전자음악단 의 꿈에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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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과 상태는 정말 안좋았는데 뭐 좋다고 웃었나 모르겠다 흐흐. 이 사진을 찍고 새삼 나이들은 티 나는 내 모습에 놀랬다. 하긴 내년이면 이제 누구에게 말해도 20대 후반인 나이가 아니던가. 20대 중반이 더 가깝긴 하지만. 그리고 왠지 내 얼굴이 낯설어졌다. 내가 이렇게 생겼나? 싶기도 하고 아..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갑자기 말하고 싶어서 말하지만 난 다른 사람과는 달리 눈동자안에 점이 있다. 왠만한 관찰력이 아니고는 발견 못하는 건데, 왼쪽 동공 바로 밑에 약간 미세하게 동공 색과 비슷한 게 또 하나 있다. 아직까지는 내가 말하기 전에 알아보는 사람을 못봤다. 그냥 내 신체 특징 중 하나라면 하나인거 같아서 말하는 거다. 어렸을 때 잘못된 줄 알고 엄마가 안과에 데려갔는데 사는데 아무 지장없고 종종 이런 경우 있다고 말했댄다.
 
  완전히 어두워진 월미도에서 단 몇 분동안 아주 골똘히 했던 생각은.

"지금이 '그때'만큼 힘드냐?"
"지금 힘든 게 도저히 감정조절 하기 힘들 정도냐?'

하는 질문이다.

  두 질문 모두 대답은 '아니오.' 다. 그래. 아니니까, 버티자 이거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난 남자가 아니라 군대에 안가고 앞으로도 갈 일 없지만, 거기서 버티는 원동력이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거 아니겠나. 군대와 직장은 다른 거지만. 나도 그냥 끝을 기다리는 맘으로 살기로 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루하루 시간은 가는거니까.

  내가 지금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에 비하면 굉장히 괜찮은 상황이라는 것과 시간은 가는거니까 그리고 굉장히 고맙게도 그 시간이 다른 때보다 빨리 지나가는 것 처럼 느껴지니까 괜찮을거다. 라는 위안을 얻고 나니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배가 많이 고프기도했고, 더 있기에는 내 손이 완전히 얼어버릴 것 같았다. (나중에는 장갑도 소용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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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점포수 1위라는 GS25에 들어가서 내 손을 녹여줄 막강한 임무를 맡길만한 음료수를 찾다가 생전 처음 보는 '로얄 밀크티'라는 따뜻한 캔음료를 마셨다.

  종점이라 멈춰있는 버스를 잡아타고 동인천역을 지나서 집에 오면서 '이제 겨우 3일중 하루가 지난거잖아!' 라는 생각이 드니 기뻤다.

  그리고 이제 5분만 있으면 월요일이다. 월요일. 스크롤의 압박이 굉장할 이 포스트를 끝마치고 잠이 들어 눈을 뜨면 나는 또 하루하루를 죽이려 회사로 간다.

다음주부터는 회사에서 굉장한 일이 있을 예정인데, 월미도에서 느꼈던 그 자신감은 어디가고 벌써부터 무서워지고 있다.
 
   나 견딜 수 있을까?... 

P.S 마지막으로 내가 처음으로 찍은 월미도 동영상까지 올린다. (그냥 걸어가면서 찍은 아주 재미없는)
      훗. 이걸로써 휴가일기 진짜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