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남색 완전 기본 트랜치코트가 있다. 너무 길고 불편해서 잘 안입는데,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그 옷.

그 코트를 저번달에 오랜만에 입는데 주머니에서 영수증이 나왔다. 내가 일하고 있는 학교 앞의 싸구려 밥집 영수증이었다. 그날 일이 아련히 떠올랐다. 작년 4월 초였는데, 대학 선배가 학교로 찾아왔었다.

그 선배가 왜 날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제대복학 하자마자 본 여자가 나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여하튼, 거의 7년 만에 학교에 와서 나한테 밥 얻어먹고 던킨도너츠가서 내가 차도 마시고, 늦은 금요일 밤 사람 없는 학교를 걷다가, 선배가 갑자기 손을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 이게 내 대학 때 꿈이었는데. 너랑 손잡고 학교 걷는 거."

미안함이 밀려왔지만, 다 지난 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쳇. 


재앙수준의 비

단문 2011. 7. 27. 23:38
근무하고 있는 곳의 아이들이 10명이나 죽었다. 오전 에는 사고 알아보느라 정신없고 오후에는 저번학기 때 했던 실수를 또 해서 그거 수습하느라 정신없고. 그래도 하루 마무리는 듣고 있는 사이버대 계절학기 두 과목의 기말고사로 산뜻하게 마쳤다.
아까는 예전 회사 후배가 생각나서 이런 날씨에도 외근중이냐고 카카오톡을 보냈더니 선배 어떻게 알았어요? 이렇게 카카오톡이 왔다. 전 직장업무가 엄청 고되긴했지만 같이 일했던 후배나 동료들 생각하면 좀 그립다.
오늘 전철 멈춘 걸 보니 언제나 전철 연착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예전 생각도 나고..눈때문에 1호선 전체가 멈춰서 영하 13도 날씨에 30분 넘게 공항리무진이라도 타려고 바깥에서 기다렸던 기억도 나고, 갑자기 구일역에서 전철 멈췄으니까 내리라고 하는 바람에 인천까지 택시타고 퇴근했던 기억도 나고. 
천재지변 중에도 무조건 출근해야만 했던 이유는 후배였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우리 둘의 피를 빨아먹는 것 같이 악독한 선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명이서 상대하기도 버거운 선배였다. 그 선배는 나보다 일찍 회사를 관뒀지만, 그 뒤로도 이직 2번이나 하면서 돈 잘 벌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배가 아팠다. 난 요즘도 가끔 그 선배가 꿈에 나오면 식겁하면서 새벽에 깨는데 말이다. (남자들 군대 다시 가는 꿈 꾸는 기분을 알 것 같음)
역시 날 괴롭게 했던 바로 위 과장이 날 그리워(?)한다는 얘기를 후배에게서 들으니 왠지 모르게 고소하기도 했고. (별 거 아닌데 오늘 하루의 위안거리)
지금까지 살아왔던 내 인생을 살펴보면 몇번 반등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나란 인간은 다시 되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똑같이 선택하고 똑같이 살아왔을 것이다. 어떤 힘이 날 지금의 인생으로 이끌었는지 그리고 지금 이끌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오늘 20살 19살 꽃다운 애들의 죽음을 보며 그래도 산 사람은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안타까운 죽음...난 꼭 부모님보다 오래 살겠다.

훔쳐보기

일상 2011. 6. 10. 11:03

  나 일하는 학교 사무실에서 가까운 화장실은 창문이 내 키보다 높은 곳에 붙어 있는데 그 창문 바로 앞이 사람이 뜸한 길이다. 나무도 있고 여름에 가면 모기와 온갖 날파리들이 날릴 것 같이 으슥한 곳.
  어제 화장실에 들어가다가 그 창문 밖에 어떤 젊은 남녀 둘이 손잡고 가는 걸 봤다. 그냥 보이니까 우연히 보게 됐는데, 둘이 갑자기 눈이 마주치더니 키스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냥 뽀뽀가 아니라 조금 길게 하는 딥키스였다. 난 그냥 가던 화장실에 계속 가면 되는데 얼마나 길게 하나 보자는 심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애 고개가 내가 있는 화장실 쪽으로 돌아가는 순간 허겁지겁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아니 보여서 본 건데 내가 죄지은 것도 없는데 왠지 그 남자애한테 송구했다.
  저번에는 어쩔 수 없이 간 회식자리에서 중간에 운좋게 빠져나오다 술집 계단에서 키스하는 커플을 본 적이 있다. 둘다 술이 좀 취했는지 조명이 꽤 밝은데도 이게 드라마야 현실이야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격정적인 몸짓(?)으로 키스 중 이어서 참 수고하는고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뛰는 가슴을 안고 사무실에 앉아선 괜히 쳐다보다가 걔네들한테 죄진 기분 든다고 친한 친구한테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자기는 대학 때 남자화장실 지나가다가 볼일보고 있는 남자 동기와 눈 마주친 적도 있으니, 그 정도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라고 답문이 왔다. (남자 화장실 변기 위에 거울이 붙어 있었는데 그 남자애가 거울을 쳐다보는 순간 내 친구가 화장실 앞을 지나갔고, 그러다 거울에 있는 남자애의 눈과 내 친구의 눈이 딱 마주친 것이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가끔 남자화장실 변기 위치를 문 열면 다 보이게 해놓는 화장실들이 있는데 괜히 기분이 나쁘다. 별로 보고 싶지 않다고. 그 뒷모습은; 남자들이 신경써서 문을 좀 닫든가. 지금 학교 화장실도 보면 여자 화장실은 항상 잘 닫혀 있는데 남자화장실문은 꼭 훤히 열려있다.

줄 곳 없는 마음.

일상 2010. 10. 7. 17:55
나는 과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덩그라니 혼자.
혼자 일하니까 어차피 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업무 가지고 서로 얼굴 붉힐 일 없고 조용하고 어떻게 보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난 교수 9명의 모든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비서와 다름없고, 까다롭기 그지없는 대학원 행정 업무도 매일 대학원 행정실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사회성이 부족한 성격 탓에 교수님이랑 몇마디 할라 치면 혀가 굳어 제대로 말도 못하고 그런다.
생각해보니 난 지금 여기 교수들 만큼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업무적으로 일해본 경험이 없다. 예전 회사도 내가 나이 많은 편에 속했으니까. 대리 과장도 거의 30대였고 심부장도 40살 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 학교는 나이든 분들이 너무나 많아서 어색하고 도대체 그 나이대 아저씨 들과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학교 하면 뭔가 한가한 이미지가 생각나지만, 난 정말 과사무실에서 쉴 새 없이 일하고 있다. 각 부서에서 뭐해라 뭐해라 계속 공문이 온다. 공문 보면 기한이 항상 있는데 난 그 기한내에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지금 내 업무 능력 안에서는 모든 기한이 다 촉박하기만 하다. 거기서 하라는 내용을 아무리 쳐다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잡힌다.
또 여기는 엄청 외롭다. 전화가 많이 오니까 음악을 틀어놓기도 뭐하고 교수님을 맞상대해서 일하고 있는 동료가 한명도 없으니 답답한 마음이나 억울한 마음을 함께 토로하고 공감해줄 친구가 없다.
회사에서 사귀는 친구의 부질없음을 깨달아서 좀 씁쓸했지만, 친구사이인 척 하는 한시적인 관계라 하더라도 마음을 트고 지낼 딱 한 사람은 필요한 거 같다.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 라디오 같은 게 만들어진 거 같기도 하고.
원래 혼자서도 잘 지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난 어디에 있든 진짜 친한 한명은 있었다. 그 한 사람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외로움도 안느끼고 잘 지냈던 거 같은데 여기는 그 한사람이 없네.
아. 청승맞게 갑자기 눈물이 핑돈다.
사실 오늘 너무 힘들었다. 아... 힘들다. 역시 사람은 간사해. 예전 회사에서는 거기만 벗어나면 장밋빛 행복한 미래일 줄 알았는데.

충격과 공포

일상 2010. 9. 24. 19:08
내가 지금 쓰려는 내용에 비하여 저 제목은 엄청 과장된 감이 있지만 난 이제금방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오늘 퇴근을 하는데 문득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일하기 때문에 부여되는 권한을 새롭게 깨달았다. (그래서 옷도 안벗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러고 있다)
그 권한이란 바로 학생검색인데, 뭐 싸이월드 같은 데서도 사람검색을 할 수 있고 미투데이 같은데서도 가능하고 하다지만, 난 정보공개에 상관없이 지금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석사, 박사 뿐 아니라 졸업한 사람까지 다 검색이 가능하다.
그래서 난 학생검색 란에 일단 내 이름을 검색하여 보고 다른 궁금한 사람들 이름을 검색하다가 완전 당혹스러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꿈에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고, 같은 인천에 살고 있다는 거 자체가 나에게 큰 불안감을 주는 존재인, 예전 어린시절에 사귀었던 (그리고 끝나면서 서로 엄청 안좋았던) 그 남자애가 이번학기에 내가 출근하고 있는 이 학교에 석사로 진학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이번학기에 입학한 거라 내가 여기를 관두게 되는 2년내내 고스란히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이 같은 캠퍼스 안에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한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차라리 몰랐으면 맘편히 다닐텐데 이미 이 사실을 알아버린 이상 난 웬만하면 학생회관 식당에 안가고, 걔가 다니는 대학원 건물은 근처에 얼씬도 안하고, 도서관에는 더더욱 가지 않도록 해야겠다.
아. 그리고 밥 먹을 때도 웬만하면 사람들 많이 가는 골목으로 안가야겠다. 아 싫어.
그런데 이 와중에 천만 다행인건, 내가 걔가 속해 있는 과로 안가게 되었다는 거. 그걸로 위안을 삼자. 그리고 걔네 건물과 내가 있는 건물은 그래도 꽤 먼 편에 속하니까.

이중인격자

일상 2010. 5. 10. 00:33
중학교 3학년 때 아직 순진하고 성장도 느려서 사춘기도 제대로 지나지 않았던 시절 나는 내가 이중인격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 원래 이렇고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비겁한 것 아닌가? 하는 아주 중학생스러운 고민을 자주했다.
중학교 3학년 3월달에 인천으로 전학을 갔을 때 난 모든 게 다 어색하지만, 학교에 적응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인천과 대전은 정말 다른 도시 였기 때문에 다 어색했지만 대전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면 불량학생이 될랑 말랑 했던 외줄타기도 완전히 관두고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고, 친한 애들도 다 반에서 5등 안에 드는 모범생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가 일을 관두고 집에 가면 엄마가 문을 열어주시고 저녁밥도 차려주신게 마음을 잡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난 가끔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으면 집에서 애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난 내가 문 열고 들어가서 동생 병원 데리고 가고 학원 가고 관리비 내고 밥도 차려주고 했으니까. 난 언제나 키도 작고 언제나 촌스럽고 인기 없는 애였지만, 혼자서 많은 걸 알아서 잘해왔다.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난 교복입고 교실에 앉아 있을 때는 전학생이기 때문에 아주 오래된 정말 친한 친구는 한명도 없는 애였지만, 그럭저럭 점심 밥 같이 먹을 친구, 체육시간에 운동장에 앉아서 같이 말할 수 있는 친구, 숙제 배낄 친구 정도는 있는 그런 애였다.
하지만 한동안은 교복을 입고 현관으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눈물을 뚝뚝 흘렸고 문을 따고 들어가서부터는 내방으로 바로 직행하여 침대에서 엉엉 소리내서 많이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우울증 초기 같은 증세가 아니었을까 싶다. 근데 신기한 것은 학교가선 안그런척 잘 지내고, 또 집에와선 잘 울고.난 이중인격자인가? 난 왜그런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난 사실 집에가서 울어. 이런 이야기 할 주변 사람이 한명도 없었기 때문에 저런 생각을 했던 것일 수도 있다. 위 사건의 결말은 엄마가 담임선생님한테 미영이가 집에와서 너무 운다고 말하는 바람에 난 교무실에가서 ㅎ 담임 선생님한테 왜 바보같이 울어요? 이런 이야기로 핀잔이나 듣고, 속으로 아... 난 집에서도 이제 맘편히 못 울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와선 그날부터 엄마가 없는 날에만 울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던 것 같다.
며칠전에는 집에 놀러온 친구랑 친구가 갑자기 "나 원래 이렇잖아." 라는 멘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난 정말 싫다고 대답했다. 원래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말을 하는 건 난 원래 이러니까 니가 다 이해하라는 뜻인데 말이되냐고 나도 모르게 흥분을 했다. 어떻게 보면 원래 내 속마음과 겉으로 보여지는 행동이 완전히 다른 게 최소한의 상대방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으니까 겉과 속이 다르다고 무조건 넌 위선자 난 솔직해 하고 말할 것도 아닌 것 같다. 실제로 난 솔직하고 뒤끝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 제대로 된 사람 못봤고, 그리고 난 뒤끝 쩔고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런거 전혀 이해 못하겠다.
해야할일은 많은데 새벽 1시를 앞두고 무슨 뻘글인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의  엄청난 악플을 보면서 이런 사람이 평소 때는 멀쩡하고 근엄하고 쿨한 척 쩌는 인간이겠지 라는 생각에서 생각이 이렇게 발전을 했네.  

내 고향은 인천.

일상 2010. 4. 16. 18:22
내 동생은 나와는 달리 전라북도에서 초중고를 다 졸업했다. 그래도 지 고향으로 삼고 있는 건 정읍인데, 오랜만에 정읍에 갔더니, 아... 왔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다고 한다.
고향의 느낌이 그런 것일까? 난 초중고를 다른 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런 건 없는데 그래도 가장 오래 산 인천을 그냥 고향 삼기로 했다.
백수가 되서 친구 만나러 졸업했던 학교에 갔는데, 오랜만에 가는 버스타고 가는 길을 보니 아... 인천 참 후졌다. 하는 생각을 했다. 인천은 산도 없고, 봄이 되었는데도 꽃이 피는지 지는지도 모르겠고, 불량한 애들도 많고, 시내버스 운전기사는 다들 사이버 포뮬라 저리가라의 난폭운전이지만, 그냥 오래 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을 붙이려고 하니까 정이 붙었다.
우리 엄마는 인천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싫다고 틈만나면 떠날 준비하지만, 우리집이 나 초등학교 4학년때 인천을 떠났다가, 다시 중3때 인천으로 오고 고1때 인천 떠났다가 다시 인천으로 오고 서울 잠깐 살았다가 인천으로 오고 벌써 인천으로 이사들어온 적만 3번째 인거 보면 아무래도 인천을 떠나면 안되지 싶다.
백수된 첫날 월요일에 졸업했던 학교에 갔었다.
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내가 다니던 대학교가 진짜로 남자가 많은 학교였다는 것과 그 남자 많은 와중에서도 남자 없이 그냥 졸업한 나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젊고 이쁘고 잘생긴 애들 보니까 뭔가 눈이 호강스러웠다.
또 한가지, 내가 생각보다 예전 좋아했던 분을 못 잊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제길 학교 가는 곳마다 다 이거저거 다 생각이 나서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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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언니 만나기

일상 2008. 1. 14. 19:00
일요일에는 학교다니면서 친했던 언니를 만났다. 얼마만인지 모를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언니를 2006년 여름 이후로 처음 만난 거였다. 1년 반 만에 만난 언니였다.
만나려고 맘만 먹으면 이렇게 쉬운 걸. 그동안 이상하게 시간도 안맞고 여러가지가 안 맞아서 못 만났다.

그 언니는 일본에서 약 1년정도 살다 온 언니라, 일본 여행에 대하여 물어보려 했으나, 애초에 머릿속이 백지장 상태라 물어볼 것 도 없었다. 일본 여행 갔다온 다른 오빠는 계획 세워서 제대로 갔다와야 한다고 하고, 이 언니는 그냥 책 한권만 가져가서 그날 그날 일정 잡아도 된다고 하니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둘다 일본어 능통자라 결국 나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지만.

토요일에 아주 쪼금 맛보기로 여행 첫날 일정을 잡았는데, 이렇게 책으로 보아한들 뭐가 도움이 되랴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떤 전철 타고 가는지는 알아야지.

홍대에서 오랜만에 만난 언니와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밀도 높은 수다를 떨 수 있을까. 감탄할 만큼 수많은 주제에 대해서 말을 했는데. 일단 내가 요즘 회사에서 겪고 있는 고민에 대하여 언니한테 상담한 결과.

결론은 이렇고 저렇고 피곤하고 힘들지만 '일단 버텨' 이거였다.

그 언니는 이번 여름에 2년차가 된다. 나는 이번 여름에 1년차가 된다. 부러웠다. 그런데 나의 문제는 일단은 이 경력이 쌓여도 이 경력으로 똑같은 일로 이직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언니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어찌되었든 1년 더 직장생활을 했다는 것은 진짜 대단한거다. 그리고 내가 이직 어쩌고 말하고 있을 군번이 아니다. 겨우 6개월 정도 해놓고. ㅠ

아. 참. 어제 언니 만나러 가면서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다.
핸드폰이 없으면 얼마나 무기력해지는지 깨달은 순간이랄까. 평소에 친한 사람들 번호는 거의 다 외우고 다니는 편인데, 괜히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도 핸드폰을 잘 놓고 다니니 이렇게 된거다. 또 검색하는게 너무 귀찮아서 일부러 외워버린 것도 있고.
일요일에 홍대가는길에 신도림역에서 갈아타면서 깨달았다. 집에 핸드폰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총 3명한테 "저기요. 죄송한데요. 핸드폰 한번만 써도 돼요?" 라고 말하며 최대한 불쌍한 태도로 핸드폰 동냥을 해서, 집에서 놀고 있던 동생한테 전화해서, 언니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고, 홍대 공중전화에서 언니한테 전화하고 해서 다행스럽게 언니를 만났다. 공중전화가 그렇게 소중해질 줄이야. 홍대에서 전화하자고 약속을 정해놓은 터라 하마터면 못 볼 뻔 했다.;
학교 다닐 땐 이 언니 번호도 당연히 외우고 있었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까먹었다. 다시한번 리마인드 하여 외워버려야겠다. 그 이전에 핸드폰을 잘 챙겨야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