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수준의 비

단문 2011. 7. 27. 23:38
근무하고 있는 곳의 아이들이 10명이나 죽었다. 오전 에는 사고 알아보느라 정신없고 오후에는 저번학기 때 했던 실수를 또 해서 그거 수습하느라 정신없고. 그래도 하루 마무리는 듣고 있는 사이버대 계절학기 두 과목의 기말고사로 산뜻하게 마쳤다.
아까는 예전 회사 후배가 생각나서 이런 날씨에도 외근중이냐고 카카오톡을 보냈더니 선배 어떻게 알았어요? 이렇게 카카오톡이 왔다. 전 직장업무가 엄청 고되긴했지만 같이 일했던 후배나 동료들 생각하면 좀 그립다.
오늘 전철 멈춘 걸 보니 언제나 전철 연착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예전 생각도 나고..눈때문에 1호선 전체가 멈춰서 영하 13도 날씨에 30분 넘게 공항리무진이라도 타려고 바깥에서 기다렸던 기억도 나고, 갑자기 구일역에서 전철 멈췄으니까 내리라고 하는 바람에 인천까지 택시타고 퇴근했던 기억도 나고. 
천재지변 중에도 무조건 출근해야만 했던 이유는 후배였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우리 둘의 피를 빨아먹는 것 같이 악독한 선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명이서 상대하기도 버거운 선배였다. 그 선배는 나보다 일찍 회사를 관뒀지만, 그 뒤로도 이직 2번이나 하면서 돈 잘 벌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배가 아팠다. 난 요즘도 가끔 그 선배가 꿈에 나오면 식겁하면서 새벽에 깨는데 말이다. (남자들 군대 다시 가는 꿈 꾸는 기분을 알 것 같음)
역시 날 괴롭게 했던 바로 위 과장이 날 그리워(?)한다는 얘기를 후배에게서 들으니 왠지 모르게 고소하기도 했고. (별 거 아닌데 오늘 하루의 위안거리)
지금까지 살아왔던 내 인생을 살펴보면 몇번 반등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나란 인간은 다시 되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똑같이 선택하고 똑같이 살아왔을 것이다. 어떤 힘이 날 지금의 인생으로 이끌었는지 그리고 지금 이끌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오늘 20살 19살 꽃다운 애들의 죽음을 보며 그래도 산 사람은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안타까운 죽음...난 꼭 부모님보다 오래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