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석회화건염
토요일에 직전회사에서 친했던 대리님이랑 송도에서 맛있는 걸 먹기로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침에 왼쪽 손목이 참을 수 없이 아픈거다. 너무 아파서 전혀 움직일 수 없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눈물이 핑 돌았다. 약속을 취소하고 급히 송도의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으니 의사가 심드렁하게 석회화건염이라고 했다. (정말 별 이상한 병도 다 있지. 왜 관절에 석회가 생기는 건지.)
이틀동안 극심한 통증때문에 지옥을 경험하고, 월요일 아침에 정식 진찰시간보다 빨리 대학병원에가서 진료를 기다렸지만, 손목전문의가 없다고 1년차 어린 의사는 나에게 그 어떤 처치도 해주지 않았다. 뭔 놈의 병원이 의사 출근날을 가려 환자를 받나 싶었다. 결국 화요일에 다시 가서 특진으로 5만원 넘게 돈을 지불한 뒤 진료를 받았고 왼팔에 반깁스를 했다.
사실 토요일에 비하면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깁스 안해도 될 것 같은데 엄마는 이틀이나 휴가 냈으니 아픈 척 해야한다면서 그냥 깁스를 하고 출근하라고 하셨다. 올해 두번째 깁스다.
하는 수 없이 깁스를 하고 오늘 하루종일 독수리타법으로 키보드를 치며 일했다.

2. 왼손과 오른손
4일간 왼손을 못쓰면서 느낀 건 오른손잡이인 나의 오른손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왼손 못써도 밥도 먹고 샤워도 할 수 있고 글씨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왼손을 못쓰니 내 머리카락을 내 손으로 묶을 수가 없고, 화장실에서 한 손으로 바지를 올리고 내려야 했다.
저번에 어깨뼈가 세조각나서 재활하던 언니가 아직도 머리 혼자 못 묶는다며 한탄했는데, 그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머리를 묶는게 보통 복잡한 행위가 아니다. 한손으로 절대 못 묶는다.

3. 전쟁드라마
휴가기간동안 손목이 아파서 신경질적이 되고, 바깥에 나갈 수 없으니 집에서 티비보다 책보다만 했다. 그러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Band of brothers 를 봤다. (거금 9천원을 결제했다)
철저하게 승자 관점에서 서술된 드라마였다. 드라마 내내 독일군의 입장은 거의 나오지 않고, 미군들은 그 치열한 전투를 겪었음에도 정신적으로 거의 아무 이상도 없다. 대부분 화에 전투신이 나오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끝이 없겠지만, 엄청 재밌긴 하다. 또 보고 싶을 정도. 올레티비의 시리즈는 부상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해줘서 좋았다.

나는 생긴 것과 전혀 어울리지않게 전쟁 영화를 좋아했는데 한동안 시들하다가 워호스 본 뒤로 전쟁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에 다시 불이 붙었다.
요즘 읽는 책도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이다. 화기와 비행기, 전차의 나라별 모델에 대한 설명이 너무 많아서 막 재밌진 않지만 꽤 읽을만 하다.
The pacific 이 Band of brothers 의 후속이라는데 선뜻 볼 용기가 안난다.
Thin red line 이라는 태평양전쟁을 다룬 영화를 어렸을 때 봤는데, 정말 충격이 컸다.
한국인과 생김새가 비슷한 일본군이 나오니 유럽전선을 다룬 여타 영화에 비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잘은 몰라도 홀로코스트를 제외하면 전투 중 잔인하고 끔찍했던 건 태평양전선이 유럽전선보다 더했음 더했지 덜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전쟁이 악마적인 건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의 모든 걸 혐오하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걔네들한텐 정이 안간다. 오키나와와 우리나라에서 그들이 저지른 악행을 보고 들을 때 마다 치가 떨린다.

4. 송년회식 장소
회사에서 송년회 때문에 죽을 맛이다. 내가 예약을 맡았는데 어딜 정해도 100% 만족은 없을테니 제발 그냥 내가 정하는대로 따라와줬으면 좋겠다. 장소 때문에 거의 3주째 갈팡질팡 중 이다.

5. 볼 영화들
007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새 영화 두개다 보고싶다. 마션은 결국 티비로 보게 될 것 같다. 여담이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돌아가시면 슬퍼서 울 것 같다. 그의 모든 영화를 본 건 아니지만, 내가 본 모든 그의 영화는 모두 지극히도 영화적 이었다. 존경한다. 또 워호스 얘기를 하게 되지만 그 누가 말의 시각으로 유치하지 않게 전쟁 영화를 그렇게 감동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싶다.


고모의 답장

단문 2015. 10. 30. 19:13

고모는 불행한 가정에서 자라셨다. 공부를 잘했지만 학교를 보내주지 않았고, 전국을 돌며 밤무대에서 피아노를 치다 돈 한푼없이 독일에 가셨다고 한다. 평일에는 학교를 다니고, 주말에는 독일 부자집 청소를 해주며 돈을 벌었고, 마침내 늦긴 했지만 결혼을 하여 베를린에 정착하셨다.

고모가 내 인생을 얕잡아 보지 말라고 답장을 주셨다.
바보같이 메일을 보다 울었다. 그렇다. 특별할 거 없고 재미도 없는 내 인생을 이제까지 나는 계속 얕잡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지 말아야겠다. 내가 날 얕잡아보는 데 누가 날 인정해주겠으며 어떤 좋은 일이 나에게 찾아오겠는가.


2주동안 4명을 만남

일상 2015. 10. 26. 19:22

2주동안 정말 오랜만에 약속있는 금요일 밤과 약속있는 주말을 보냈다.

1. 첫회사 후배
이 블로그에 자주썼지만, 정규직으로 처음으로 일한 직장의 직속후배가 나에겐 유난히 애틋하게 느껴진다. 워낙 훌륭한 사람이고, 후배지만 항상 존경한다. 후배와 결혼을 하는 남자는 정말 운좋은 남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서울로 회사를 옮겼다 소식을 전하니 금요일에 한번 보자고 하여 오랜만에 후배를 봤다. 난 힘들다고 도망친 그 회사를 그 아이는 아직도 다니고 있다. 그것도 엄청 고생하면서.
그 회사는 내가 다닐 때 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지진 않은 것 같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하루하루 실망하는 중이었는데, 후배를 보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 불평 불만 하면 안되겠구나. 하고 잠깐 생각했다.
후배가 견디고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가늠조차 되지 않아. 어마어마한 존경심이 다시금 솟아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착한 후배를 이제 좀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회사가 가까워 졌으니까.

2. 투병 중인 친구
토요일에 회사에서 윈도우 깔며 개고생했던 날을 보상받기 위해 10월 21일 휴가를 냈다. 휴가 전날 투병 중인 친구를 찾았다. 저번에 만났을 때는 주사 치료를 1번만 받은 뒤라 원래 내가 알던 친구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모습이었다. 가발을 쓴 모습이었지만, 전과 다름없이 나와 대화를 하는 친구를 보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병원 치료 이야기를 나처럼 관심있게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고, 그 말에 이렇게 힘든 시기에 내가 이 친구에게 아주 쓸모 없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철을 타고 오면서 이 세상이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슬픔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울 뻔 했다. 내가 종교를 갖게 된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이고. 친구에게 꽃기린 화분을 사줬는데, 기대치 않게 격하게 좋아하여 보람찼다.

3. 학원에서 알게 된 아이
저번에 썼던 보험회사에 취업했다는 학원에서 알게 된 남자아이를 만났다. 오랜만에 용산역에 갔는데, 새삼 용산역이 거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미로 같이 그지같은 건물 구조도 여전하고.
걔는 고생을 많이 한 건지 나이가 저번보다 한 10살은 더 들어 보였다. 양복을 입은 것도 한몫 했겠지만. 기본급도 없는데, 매일 8시 10분까지 출근해야 한다니 정말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많다고 생각했다. 비싼 저녁을 사줬고, 다행스럽게 나에게는 상품가입 권유를 하지 않았다. 자기가 보험회사에서 일한다고 하니 연락 그냥 뚝 끊어버린 사람들도 많다면서 서운하다고 했다. 하긴 나도 정말 엄청나게 망설이다가 만난 거니까.
그런데 그 만남 뒤로 카톡을 너무 너무 심하게 자주 보내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일단 어제 카톡부터 답을 안하고 있다. 요즘 애들은 1년에 몇 번 안보는 사이여도 이렇게 의미없는 메세지를 주고 받는건지, 얘가 유난한건지.
만나서 얘기 잘하고 잘 먹고 잘 마시고 왔지만, 여전히 불편한 아이다.

4. 용인의 친한 친구
운전을 너무 안해서 가끔 이러다 완전히 까먹는 거 아닌가 걱정될 때마다 용인 친구네 카페에 놀러간다. 매일같이 카톡으로 안부를 전하지만 역시 직접 만나 얘기하는 것이 진짜 대화다. 둘다 즐거운 일이 생기지않아 우울했는데 서로 기분전환 확실히 했다.
친구가 오징어 국을 20분만에 뚝딱 만들고 밥을 차려줘서 밥까지 얻어먹었다. 걔네 카페의 당근케익도 먹어치우고 쿠키도 먹고 내가 너무 많이 먹어 좀 미안할 정도였다. 친구가 만든 당근케익이 너무 맛있어서 다시 놀랐다.
돌아오는 길에 영동고속도로가 밀리는지 티맵이 의왕 안양 시내길로 안내하는 바람에 운전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밤에 모르는 길 운전을 해보니 아직 운전을 까먹진 않은 것 같다. 성공적으로 석수IC로 고속도로를 타니 마음이 놓였다. 난 좀 밀려도 고속도로가 좋은데 아직도 친구네 집에서 우리집 오는 길을 못 외웠다.

이제 회사에 좀 적응을 하여 주말에 뭐 좀 하고 싶단 생각이 든다. 그동안 주말에는 잠만 잤다.
새벽 알람 소리에 잠을 깨며 주여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이까! 긍휼히 여기소서! 라고 마음 속으로 절규 중 이다. 점점 깜깜해지고 추워지고 있다.

P.S
지금 퇴근 지하철 안, 콧물이 나는데 휴지가 없다. 이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산 휴지가 집에 거의 한박스 있는데 왜 항상 있던 휴지가 이럴 땐 없는걸까. 파우치의 면봉으로 콧물을 닦으면 웃기겠지.


학창시절, 집까지 스케치북을 가져가서 밤새 그림을 그려오는 여자애들과 달리 나는 항상 미술시간에 시간이 남았다. 언제나 남들보다 빨리 끝내고 혼자 밀린 눈높이 수학을 몰래 풀곤 했다. 겉 보기엔 바느질도 잘할 것 같고 엄청 여성스러워 보이지만 가정 시간에 바느질 실기평가는 언제나 C를 맡아놓고 받았고, 미술시간에 그림도 도저히 여자애가 그렸다고 볼 수 없을 흉하고 성의 없는 그림 일색이었다.
노트필기도 마찬가지. 노트 필기에 공을 들이는 여자애들과 달리 나는 글씨를 누구보다도 빨리 썼고, 무조건 검정색 한 색으로만 모든 필기를 마무리 짓곤 하였다.

그렇게 줄곧 미술 열등생이다가, 중3때 유일하게 미술 실기 만점을 받은 과제가 있었으니, 그건 지점토로 움직이는 사람 표현하기였다. 나는 줄넘기를 하고 있는 여자를 만들었는데, 그 주제에 잘 부합한다고 선생님께서 만점을 주셨다.

지점토 공예 점수를 잘 받은 건, 내 초등학교 시절 취미와 관계가 있다. 내성적이고 친구가 별로 없었던 나는 시험이 끝나도 혼자 집으로 직행하여 엄마 퇴근하시기 전까지 책 한권을 뚝딱 읽거나 500원 짜리 지점토를 사서 병같은데 붙이고 색칠하고 니스칠까지 해서 엄마에게 선물하곤 하였다. 그때 그렇게 연마했던 실력이 발휘된 것 이었다.

그 뒤에 아크릴 판화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미술선생님께서는 대부분 만화캐릭터를 배낀 것과 달리 나 혼자 테트리스 게임기를 그려 판화로 찍어서 소재가 좋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칭찬을 두번이나 들은 나는 의욕적으로 여름 방학 미술 숙제에 임했다. 매년 대충 해가던 미술 숙제 였지만 그 해 만은 달랐다.

그때 난 모자이크를 하기로 맘먹고 사람 얼굴은 본드로 생쌀을 붙였는데 그게 문제였다. 쌀을 본드로 붙이고 말리기 위해 베란다에 내놓은 작품(?)을 개학날 전에야 꺼내보니 나방 유충들이 쌀 위를 꾸물꾸물 기어다니고 있었다.

​정말 징그러웠다.

​​​고등학생 시절 미술 시간에 고무판화로 만들었던 제임스딘 사진을 보다 문득 잊고 있던 그 유충들이 생각나서 사무실에서 웃었다. 크크​​​​​

제임스딘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개봉한다는데 데인 드한은 너무 유약한 이미지라 좀 매칭이 안된다.

뭣도 모르면서 영화잡지에서 준 제임스딘의 대형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여놓은 적이 있었다. 제임스딘이 지금까지도 청춘 아이콘인 이유는 그에게 느껴지는 이글거리는 에너지 때문인 것 같다.
내성적이고 과묵해보이지만 눈빛에서는 폭발직전의 감정 같은 게 있다.
그 점에선 데인드한이 적역인 것 같기도 하고.


긴 연휴 이후

일상 2015. 9. 30. 19:05

1. 내 우산
오늘 아침에 제일 좋아하는 우산을 잃어버렸다. 난 수동장우산이 좋다. 자동우산은 고장도 잘나고 우산이 접히는데까지 당기는 게 가끔 힘들게 느껴져서 싫다.
어렸을 때는 수동 우산의 얇은 철심같은 걸쇠를 여린 엄지로 누르는 게 두려워서 집까지 우산을 펼쳐들고 올 때도 있었는데…
오늘 잃어버린 우산은 우리집에 유일하게 남은 수동장우산이었고, (작년에 수동장우산 1개를 극장에서 잃어버렸기에) 키 작은 내가 손잡이를 잡아도 우산의 끝이 땅에 끌리지 않았다. 색도 회색빛도는 베이지색으로 무늬도 고급스러웠다.
지하철 유실물센터에 전화까지 했지만, 접수된 게 없다고 한다.
오늘 7:09 동인천발 용산급행 7-2번칸에서 잃어버린 내 우산이 다른 주인의 비를 충실히 막아주길.
이제 집에는 비가 쏟아져 급히 산 장우산과 보험사에서 준 못생긴 2단 우산만 남았다.

2. 연휴동안
동생이 추석때문에 거의 한분기만에 집에 왔다. 동생은 인천에 올때마다 투덜댄다. 미세먼지가 많아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난댄다. 부모님께서는 동생 직장도 내 직장도 가까운 성남으로 하루라도 빨리​옮겨 다시 4명이 모여 살았으면 하시지만, 우리동네 집값으론 성남으로 갈 수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인천에 사신다.
나역시 지금 월급으론 독립은 언감생심이고.
동생은 인천 싫다고 투덜댔지만 가까이 생긴 아울렛에서 엄청싸게 신발 옷 등을 잔뜩 사갔다. 미세먼지 흡입한 댓가치곤 꽤 많았으니까 위안이 됐겠지.

추석당일에는 이모댁에 갔다. 시흥 이모댁에 간 김에 가까운 생태공원에 갔는데 나중에 꼭 다시 와야겠다 생각했다. 넓고 황량한 공원에서 큰 한가위달을 보았다.

친척들이 날보면 할 말은 왜 결혼 못하냐는 거 밖에 없기 때문에 죄인마냥 만나서도 여기저기로 막 피해다녔다. 결혼 못한 게 죄는 아니건만…

3. 신도림발 2호선
연휴동안 만난 부천에서 강남으로 출근하는 사촌동생이 신도림에서 출발하여 대림방향으로 출발하는 열차를 타면 출근시간에 앉아갈 수 있다고 하여 오늘 그 열차를 타고 출근하였다.
보통 나는 문래방향으로 그냥 2호선을 타지만 앉아갈 수 있다하여 한강 이남 라인을 시도했건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출근시간 신도림역에서 거의 1분간격으로 오는 외선순환을 포기하고 10분간격으로 오는 신도림출발 열차를 택한 자들의 유일한 목표는 좌석이기 때문에 줄 서 있을 때 부터 좌석 경쟁이 치열하다. 자리에 앉고 말겠다는 기가 나한테까지 느껴져 열차가 들어올 땐 출발점의 육상선수 마냥 심장이 뛰었다.
다행히 앉았지만 옆의 여자 둘이 너무 떠들어서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앉아서 자면 덜 피곤할 것 같아서 선택했지만 남은 것은 피곤 뿐.
한강 이남 2호선 경로는 한강 이북 2호선 경로보다 3정거장이 긴데, 이 3정거장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길었다. 정거장 사이도 그렇고.
결국 난 오늘 평소 출근 소요시간인 1시간 45분 보다 훨씬 긴 2시간 만에 사무실에 왔는데 9월의 마지막 날이라 안그래도 바쁜데, 아침부터 피곤하기까지 하여 지금 서있기도 엄청 힘들다.

4. 피하고 싶은 아이
작년 학원에서 알게된 현재 대학생인 남자애가 자꾸 연락을 하고 보자고 하는데 정말 얘가 왜 이럴까 싶고 부담스러워 미칠 것 같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든 후에는 어린 애들만 만나면 뭔가 해줘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곤 한다.
처음 봤을 때 부터 듣기좋은 말만 좌르르 늘어놓았던 아이가 자꾸 자기네 집과 우리 회사가 가깝다고 하는데 고민 중 이다.
두달째 거의 매일 오는 카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한번 만나야할까 하다가도 계속 피하는 이유는 사실 최근 걔가 보험회사에 취업 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싶어서 날 보자고 하는걸까 싶다가도 영업이 목적이면 어쩌지 싶고.
휴. 얘야 너는 참 나에게 불편한 존재로구나. 미션을 해치우듯 한번 봐야하는 존재라니…


어느날 밤

단문 2015. 8. 27. 19:07

혼자 살던 시절 어느 날 밤이었다. 쿨쿨 자고 있는데 큰 옷더미가 나를 덮쳤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기둥으로 연결된 거대한 행거가 옷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었다.
내 4계절 옷이 모두 방바닥에 쏟아졌고 행거 부직포 덮개에 가려져 있던 벽면에는 회색 검정색 곰팡이가 가득 덮여 있었다.
별 거 아니었는데 순간 울컥하면서 애처럼 엉엉 울었다.
옷을 행거에 다시 걸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에 의자에 올라가서 울면서 행거를 설치하고 옷을 다 걸었다.
가끔 생각난다. 그 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