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복숭아 뼈

일상 2015. 2. 15. 23:51

 1.  발의 붓기가 안 빠지고 있다. 저번 주말도 이번 주말도 거의 아무 것도 쉬고 있는데도 나아지질 않는다. 내 왼쪽 발을 잘 보면 발가락 사이 사이에도 멍이 들어 있다. 발의 멍과 붓기를 볼 때마다 넘어졌을 때 고통이 생각난다. 정말 아팠다.  복숭아뼈가 붓기 때문에 사라져서 아직도 안 보이는 상태다. 반깁스를 한 이후로는 입을 수 있는 옷이 한정되어 매일 매일 고무줄 바지만 입고 있다. 그 바지만이 무릎까지 접어서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바지는 전부 스키니라 올라가지 않고.. 스타킹은 한 쪽을 무릎 까지 자르지 않는 이상은 못신을 거다. 

 

2.  폴 토마스 앤더슨의 새 영화가 나왔다. 이번 영화 포스터도 역시 멋지다. 아마 영화도 멋질 것이다. 난 아직 There wil be blood 도 안보고, Master 도 못봤지만, 그 이외 다른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는 무지 좋아하니까. 언젠가는 다 보리라 생각하고 있다. 사실 There will be blood 는 어린 애가 귀 머는 장면부터 불쌍해서 보기를 멈춘 뒤로 못보고 있다. 새 영화가 나왔다길래 할일도 없고 심심해서 구글에서 Paul Thomas Anderson 을 쳐봤다.


 


  만 27세에 부기나이트 같이 대단한 영화를 만드신 분이 얼굴도 이렇게 잘 생기셨다니. 오늘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를 모조리 찾아서 봐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어떻게 생긴지 모를 때도 그의 영화를 좋아했지만, 얼굴을 보니 더 좋아지는 이 마음은 어쩔 수가 없군.

 

3.  친구와 4월 말에 대만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일기에 종종 등장하는 친구와. 가장 친한 친구인데 친구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함께 1박 2일 여행도 한번 못가봤다. 올해 정말 큰 맘 먹고 시간 내서 가는 거라 기대가 된다. 서로 게으른 편이라 맘이 편하다. 오늘 여행상품을 검색해서 싼 걸 찾긴 찾았는데 비행기가 불안하다. 오늘 내가 찾아서 예약 걸어놓은 대로 확정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4.  작년에 본 영화가 대부분 다 좋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을러서 여기 다 감상평을 쓰진 못했지만, 정말 전부다 괜찮았다.

 

원데이, 이터널 선샤인, 킬러들의 도시 (한국 영화 제목 왜 이러는지... 원제: In Brugge) , 어바웃 타임, 남자사용설명서, 싱글맨, 노트북, 부기나이트, 겨울왕국, 주먹왕 랄프, 언어의 정원, 인 디 에어, 공주와 개구리,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저, 그랜토리노, 아이 엠 러브, 좋은 친구들 (마틴스콜세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늑대아이, 아르고, 그녀, 로마 위드 러브, 초속 5cm, 엣지 오브 투마로우, 컨저링, 풀 메탈 자켓,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드래곤 길들이기2, 블루 재스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바스터즈: 거친녀석들, 보이후드, 제인에어, 나를 찾아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시리어스 맨

 

이 중에서 어바웃 타임, 로마 위드 러브,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엣지 오브 투마로우, 초속 5cm, 드래곤 길들이기 2 빼고 다 좋았다. 진짜로.

 

어바웃 타임은 너무 교훈을 주려고 해서 싫었고,

로마 위드 러브는 아무리 이게 영화 컨셉이라지만 너무 성의 없이 만들었고,

혹성탈출2 는 인간 쪽 이야기가 너무 약해서 지루했고,

엣지 오브 투마로우 는 로봇 수트 입은 전투신이 너무 투박하고 약했고,

초속 5cm 는 나쁘진 않았지만 일본 애들의 첫사랑에 대한 집착은 그만 보고 싶다는 생각을 좀 했고,

드래곤 길들이기2 는 안 만드는게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기억나는 장면이 없다.  

 

최고를 뽑기 어려울 정도로 다 좋았지만, 역시 최고 재밌었던 건 샤이닝이고, 보면서 깔깔 웃었던 건 좋은 친구들 이다. 특히 가발 선전 하던 아저씨가 로버트 드니로한테 맞는 장면이 최고 웃겼다. 다시 본 영화였는데 역시 명작.

 

5.  집에서 가만 있다보니 핸드폰에 있는 음악 랜덤 플레이 하기도 지쳐서 가지고 있는 CD 좀 찾아서 들으려고 오랜만에 CD 장을 봤다. 그런데 내가 Pat Metheny Group 의 Letter from Home 앨범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난 내가 이 앨범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는데, 아마 사놓고 한번이나 듣고 안들었나보다. 지금도 그 앨범을 들으며 일기를 적고 있다. 이 좋은 앨범을 내가 왜 사놓고 열심히 안들었는지 모르겠다. Simon and Garfunkel 앨범도 있는지 몰랐는데 CD 장에 고이 꽂혀 있었다. 그나저나 사이먼 앤 가펑클 아저씨들 CD 표지에 있는 사진 진짜 촌스럽다.

 

6.  아빠가 인터넷 쇼핑을 못하셔서 내가 가끔 CD를 사서 드린다. 그런데 아빠에게 사줬던 CD 를 또 사드리는 실수를 범하였다. 내가 전에 브람스,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이미 사드렸댄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또 브람스,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샀다.. 아빠는 그래도 다른 연주 버전이니 비교하며 듣는다고 받으시긴 했는데 다른 때처럼 기뻐하지 않으셨다. 왠지 죄송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매년 똑같은 제도 선물세트 받는 에단 호크 보면서 어떻게 자기가 준 선물도 기억을 못하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똑같은 짓을 했다.

 

7.  오늘 배철수의 음악캠프 아티스트 스페셜은 스매싱 펌킨스 였다. 난 스매싱 펌킨스가 해체 했을 때 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그들의 전성기 시절을 모른다. 당연히 공연 같은 것도 볼 수 없었다. 배철수 아저씨가 스매싱 펌킨스의 한국 공연 대단했다고 말하는데 부러워 죽을 뻔 했다. 난 Nirvana 보다 Smshing Pumpkins 가 더 좋다. 물론 둘다 좋고 둘다 대단한 매력이 있고, 너바나도 좋아하지만, 굳이 꼭 하나를 꼽으라면 스매싱 펌킨스 음악이 더 세련되고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바나는 뭐... 음악적 완성도 이런게 필요 없을 정도로 멋지고 상징적인, 락스타라는 말이 그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밴드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바나 에 비해 저평가 된 스매싱 펌킨스에 좀 딱한 마음이 든다.

   첫 곡으로 Today 의 기타 간주가 나오는데,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다. 난 여전히 이 노래의 가사를 다 외우고 있고, I'll burn my eyes out 이라는 가사가 이렇게 좋은데, 나이만 33살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Smashing pumpkins 의 Siva 라는 곡을 참 좋아한다. 이 노래 뮤직비디오를 보니 빌리코건 너무 젊어서 적응이 안된다. 이 곡은 Sprinkle all my kisses on your head 라는 가사가 좋다.

 

 

 

7.   다음 주는 이틀만 일하면 된다. 설 연휴 끝난 후에는 구두 신을 수 있을 정도로 내 발이 나아 있었으면 좋겠다. 쓸 데 없이 일기가 참 길었는데, 알다시피 할 일이 참 없어서 그렇다.

 


1. 주먹왕 랄프

  이 영화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지만, 나한테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순위 다섯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좋았던 애니메이션이었다. 정말 기발한 이야기이고, 주인공 2명 이외에 다른 주변 캐릭터들까지 모두 사랑스럽다. 깜찍하기 이를 데 없는 바넬로피와 정이 가는 랄프의 우정에 끝에서는 코끝이 찡해지기까지 하는 수작. (난 진짜 울었다.) 8비트 게임 화면으로 만든 오프닝과 엔딩이 인상적이고, 스토리도 탄탄하다. 정말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여러분 주먹왕 랄프 꼭 보세요!

 

 

 

 

 

2. 오블리비언

  난 아직도 이 영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어떤 뉴스에서 요즘 SF 트랜드가 밤이 배경이 아니라 낮이 배경인 거라는데, 그 트랜드에는 충실하다. 그런데 진짜 무슨 이야기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고, 재미 없었다. 아, 근데 여자 주인공 올가 쿠릴렌코라는 여자 무지 예쁘다. 요즘 본 배우 중 최고 예쁜 거 같다.

 

3. 언어의 정원

  전형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의 허세형 대사가 난무하지만, 마지막에 유키노가 뛰쳐나가 자기네 학교 제자인 타카오에게 진심을 고백하며 울며 안기는 장면에서는 나도 따라 울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서로 마음을 나눈 후 헤어지고, 연락을 하진 않지만 서로 그리워하며 간간히 궁금해하고 진심으로 행복하게 살길  서로 기원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솔직히 난 유키노가 울며 안기는 장면보다, 유키노와 타카오가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을 것 같다." 생각하는 장면부터 좀 울컥했다. 오로지 타인 때문에 행복한 기분을 느껴본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한심한 내 인생. 

 

 

 

 

4. 마법에 걸린 사랑

  사랑스러운 영화. 디즈니가 본인들이 수년에 걸쳐 만든 여러가지 전형적인 공식을 스스로 조롱하고 비웃으며 여러 재밌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그게 그렇게 사랑스럽고 재밌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대부분을 작업한 Alen Menken 이 만든 귀여운 노래를 듣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 난 이 영화에서 에드워드 왕자가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뉴욕 도시 한복판에 나타나서 칼싸움 하고, 세레나데 부르는 장면에서 최고 많이 웃었다. 에이미 아담스도 적역. 노래도 무지 잘하는 에이미 아담스. 헐리우드 배우 아무나 하는 아닌가 보다. 근데 아래 장면에서 나오는 쥐랑 바퀴벌레, 비둘기 다 혐오스러워서 혼났다. 너무 징그러워... 꺅~

 

 

 

 

5. 인 디 에어

  원제는 Up in the Air. 왜 뜬금없이 인 디 에어로 바꾼건지 알 수 없지만, 멋진 조지클루니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결혼에 전혀 흥미가 없고, 영원한 사랑은 허상이라 생각하는 극중 라이언의 말 대로 영화가 끝나는데도, 시청자로 하여금, 그 반대의 의미 즉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분명 존재하고 이 세상에 그 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끔 만드는 이상한 영화. 아래 노래가 나오면서 시작하는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미국을 쭉 비춰주는 오프닝 시퀀스가 굉장히 인상적인데, 멋진 오프닝 중 손에 꼽는다고 한다. 노래도 무지 좋고.

 

 

 


저번에 간단히 쓴다고 해놓고 구구절절 너무 길게 썼다.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은 지금 내가 쓰는 글도 읽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참고하셨으면.

1. 싱글맨

구찌 디자이너였던 톰포드가 감독한 영화. 잘생기고 멋진 남자들의 향연.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나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런닝타임 내내 눈호강 제대로 할 수 있다. 한동안 핸드폰에 넣고, 좋아하는 장면을 몇 번씩 리플레이했다.

가끔 보면 영국인을 동경하는 미국인들이 많은 것 같은데 톰포드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톰포드가 영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미국사람이었다. 이 영화 주인공이 영국에서 온 미국대학 교수인데, 뭔가... 영국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워낙 많이 나와서 톰포드가 영국 사람인 것으로 착각할만도 하다.

영화 내용은 간단하다. 죽고 싶었던 남자가 간신히 삶의 희망을 찾았는데 죽어버린다는 이야기다. 다른 건 다 재쳐두고 멋을 잔뜩 부린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 꽤 뜻 깊었던 영화다.

2. 센스 앤 센서빌리티.

한 10년 전부터 이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드디어 봤다. 페라스 역할에 맹한 젊은 시절 휴그랜트가 그렇게 적역일 수 없었다. 제인 오스틴은 여자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남자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어리숙하지만, 다정하고, 나만 바라봐주고, 능력도 있고, 속깊고, 진중하고, 가볍게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진심이 느껴지는. 등등 더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제인 오스틴 시대나 지금이나 그런 남자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인 오스틴이 괜히 평생 혼자 산 게 아니다.

지금은 거물이 된 이안 감독의 헐리우드 진출작인데, 영화만 봐서는 동양 사람이 감독인 거 전혀 느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안감독이 아시안으로서 자존심을 버렸다고 (특히 브로크백 마운틴 감독한 뒤로) 싫어하지만, 이 정도로 국제적 감각을 가진 동양 감독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미국 배경이든 유럽 배경이든 중국 배경이든 자유자재.

그나저나 브로크백 마운틴은 보고 싶긴 한데 언제나 집에 엄마아빠가 계시니 볼 수가 없다. 휴. 나이 32살인데 아직도 이런 거에 엄마 아빠 눈치를 보다니...

3. 노트북

이 영화 매니아층이 꽤 있는 거 같던데. 난 정말 재미 없었다. 여자주인공이 진짜 나쁜년이다. 남자 주인공도 좀 싸이코 같다. 나 버리고 떠난 여자 그리워 하면서 왜 전쟁 미망인은 매일 밤 불러내서 같이 자는 것이며, 여자 주인공도 진심으로 자기 좋다는 백만장자에게 사랑한다고 해놓고 종종 첫사랑 남자 만나서 바람이나 피고. 대체 사람들은 이 영화가 왜 좋아하는거야? 이해불가.

두 남녀가 너무 민폐다. 아무리 어린시절 풋사랑으로 어쩔 수 없이 헤이져 서로 그리워 했대지만.

4. 부기나이트

이 영화에 대해서는 꽤 긴 포스팅을 남기고 싶었지만, 결국 이렇게 짧게쓰게 되어 안타깝다. 이 영화는 내가 중학생 때 개봉했다. 그 때 당시 영화 잡지고, 신문이고 난리가 났었다. 천재 감독이 나타났다고.

이 영화를 만들 당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29살.

난 만으로 쳐도 벌써 30살 인데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29살밖에 안된 영화 감독이 이정도 작품을 내놓았으니 당시 세계가 난리가 날만하다.

영화를 보다보면 1970년 대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듬뿍 느껴지고, 포르노 업계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미국 사회를 정말 생생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 제일 놀랐던 장면은 등장 인물 이름이 빨간색 네온 사인 느낌의 자막으로 나오며 영화 속 포르노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영화 안에 그대로 사용한 장면인데, 그 장면은 지금 봐도 정말 혁신적인 연출 방법이다.

또 돈 치들 (극에서 포르노 업계에서 번 돈으로 오디오 가게를 열고 싶어하는 "벅" 역할) 이 임신한 부인을 위해 빵을 고르는 장면인데, 그 때 돈 치들을 진열된 빵 시점에서 얼굴을 카메라로 잡는데 그것만으로도 그 가게에서 심상치 않은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을 관객은 느낄 수 있다. 이런게 영화적인 기술인가 싶었다.

덕 디글러가 신예 포르노 배우에게 밀려나며 오랜 기간 함께 했던 잭을 떠나 거리에서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거나 몸을 팔며 갖은 고생을 하다가 다시 잭을 찾아갔을 때 잭이 덕을 용서하고 받아줘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참고로 난 그냥 모자이크 버전으로 마지막 장면을 봤는데 (모자이크 없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음) 그 장면이 선정적이다는 소문으로 유명해졌지만, 어떻게든 그 시대를 다시 살기로한 한물 간 포르노 배우 덕 디글러의 결의와 희망이 느껴지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파격적이긴 하지만, 그의 거대한 성기 덕분에 포르노계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으니, 그런 방법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알맞는 연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이래서 좋다.

어쨌든 끝에 가서는 인간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고, 힘들고 한 때는 누구나 나를 혐오하고 나조차도 나를 혐오했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넌지시 희망을 던져주니 말이다.

진짜 잭이 덕을 다시 받아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5. 겨울왕국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라푼젤 보다 겨울왕국이 더 좋은 것인가 진지하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라푼젤을 한번 더 봤다. 그리고 역시 디즈니 영화 중 최고는 라푼젤이구나 하고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엘사라는 이제껏 디즈니에서 볼 수 없었던 걸출한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좋게 볼 수 있겠지만, 이야기의 연관성이 라푼젤 보다는 좀 떨어지는 느낌이다.

라푼젤에서는 라푼젤과 유진이 서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다. 그런데 안나랑 크리스토프는 갑자기 왜 뜬금없이 좋아하는 것인지 좀 의아했다.

하지만 못말리는 라푼젤빠인 나도 한동안은 겨울왕국이 너무 좋아서 사운드트랙을 하루에 2번 이상씩 듣고, let it go 동영상을 하루에 적어도 5번 이상 씩은 돌려보고, 극장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2번이나 시청했을 정도로 좋아했다.

엘사가 방에 갇혀 있을 때, 엘사가 자기 정체가 밝혀져서 도망갈 때, 울라프가 친구를 위해서는 녹아도 괜찮다고 했을 때도 눈물이 났다.

이정도면 라푼젤 만큼은 아니지만, 겨울왕국도 아마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10위 안에는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겨울왕국에 라푼젤 제작진도 참여했다는데, 대체 왜 남자 주인공들의 얼굴이 그렇게 현저히 못생겨 질 수 있지 궁금하다. 왕자님도 크리스토프도 너무 못생겨서 디즈니에 항의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유진은 진짜 완전 최고 멋있는데.... (심지어 성격도 남자답고) 근데 크리스토프는 아니야. 안 멋있어. 진심 슬펐다. 이 점이. 그리고 이 점이 라푼젤이 최고라는 내 결심을 더 굳히게 만들기도 했지....


IPTV 서비스를 신청하면서부터 영화를 보기 손쉬워 졌다. 리모콘으로 검색하고 비밀번호 누르면 끝.

누군가 나에게 제일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 물어본다면, 샤워 다하고 맥주 하나 놓고 보고 싶었던 영화 시작하기 직전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한 때 꿈이 평론가였지만, 영화나 책 봤을때 감상문을 못써서 그동안 정리를 못썼다. 그래도 한번은 남겨놓아야 될 것 같아서 짧게라도 남겨놓기로 한다. 

 

1. 원데이

: 이 영화는 따로 포스팅을 한 내용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더 덧붙이자면, 상호작용없이 상대방을 혼자서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얼마동안 가능할까? 나의 경우는 딱 2년이었다. 다신 못할 짓이고 안할 짓이지만, 누군가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아무런 연애적 상호작용없이) 딱 한번은 해볼만한 경험이다. 난 솔직히 그때는 대신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지독한 자기 혐오에 시달렸고, 아직까지도 종종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고, 한 때는 증오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땐 이런 경험 한번 없는 사람이 딱해보일 때도 있다. 영화 속 엠마에 심하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봤다. 물론 엠마는 젊었을 적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한 여성이지만.  

 

2. 이터널 선샤인

: 이 영화도 따로 포스팅을 했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다.

 

3. 킬러들의 도시

: 이 얼토당토 않은 한글 제목의 원제는 In Brugge 다. Brugge 는 벨기에에 있는 도시 이름인데, 이 영화의 주배경이다. 실수로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던 어린 소년을 죽이게 된 킬러 레이는 보스에게 Brugge라는 도시에 근신하고 있을 것을 명받고, 그의 사수라 할 수 있는 같은 킬러 동료 켄과 함께 동화같은 도시 Brugge 에서 지루한 날을 보내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내용이다.

내가 좋아하는 콜린 파렐이 이 영화로 남우주연상도 받았다고 하던데, 남자다운 척 하지만 실제로는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잘 표현했다. 크리스마스 쯤 을 시간 배경으로 삼은 것도 마음에 든다. 영화보고 Brugge 정말 가고 싶어졌는데, 이번 여름에 가는 베를린이랑은 너무 멀어서 포기했다. 언젠가는 꼭 가보려고 한다.

근데 이 영화 내용부터 분위기 모든 것이 진짜 특이한 영화다. 끝까지 정말 일관되게 특이했어. (긍정적 의미로)

 

4. 어바웃 타임

: 난 러브 액츄얼리라는 영화 안좋아한다. 내가 일부러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안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건 아니다. 난 어벤져스도 무지 좋아했다. 그런데 러브 액츄얼리는 당최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다. 너무 샤방샤방하고 이 세상에 사랑이 가득해요!! 라고 말하는데 나는 영화를 보며 냉소를 날렸었다.

어바웃 타임도 약간 그런 종류의 영화다. 뭐 감독이 같으니 당연한건가.

영화에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팀은 여자 하나 꼬시기 위해서 초인적 능력을 활용하지 않아도 될만큼 훌륭한 배경에 훌륭한 인격, 훌륭한 부모님을 가졌다. 그런데 왜 시간을 여행하면서 까지 여자를 꼬시는가? 이해할 수가 없다. (본인은 변호사, 자기 아빠는 교수, 거깃다 부모님 사이는 또 왜그렇게 좋으며, 집도 바다 앞에 엄청 좋은집) 그리고, 막말로 지금 지혜와 경험으로 과거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누구나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마지막에 '인생은 우리 모두 함께 하는 여행이다. 우리모두 이 여행을 만끽하자.' 이런 비슷한 대사도 나오는데 어휴. 정말 내 취향 아냐.

 

5. 남자사용설명서

: 꽤 창의적인 한국 영화였다. 그런데 대체 왜 포스터는 왜 그렇게 밖에 못 만들었는지 알 수 없고, 왜 한류스타 역할에 오정세를 캐스팅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시종일관 즐겁게 볼 수 있다.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리 생각해도 오정세, 이시영의 네임 밸류 때문에 흥행까지는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둘다 연기는 신이 들린듯 잘했는데.. 오정세가 알몸으로 운전하다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는 장면은 한국 코메디 영화 역사에서도 손꼽힐 명장면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극중 최보나 (이시영) 이 아무리 인기 없는 여자에 남자같은 여자처럼 행동을 해도 얼굴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뻐서... 아마 그게 이 영화의 최대 단점이고,(이 영화보고 이시영의 팬이 되었을 정도) 두번째 단점은 잘 나가던 영화가 종반에 여자로서 직장에서 받는 차별대우, 그로 인한 비애까지 담아내려고 욕심을 부린 거 아닌가 싶다.

이 영화도 시종일관 계속 재밌게 밀고 나갔어야 했을 것 같은데. 갑자기 뜬금없는 내용 때문에 오히려 몰입에 방해가 됐다.  

극 중 최보나의 집 자유공원 올라갈 때 있는 카페던데, 예전에 정확히 그 위치에서 촬영하길래 딴 길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그 때 촬영하던게 아마 이 영화였나보다.

 

아직 본 영화가 많은데... 졸려서 더 못쓰겠다.

영국 여행기 못쓰고 있는 것 처럼 영화 간단 평도 영원히 못쓸 가능성이 높을 것 같군.

내가 올해 본 영화를 나열해보자면

 

싱글맨, 노트북, 부기나이트, 겨울왕국, 주먹왕 랄프, 오블리비언, 언어의 정원, 초속5cm, 마법에 걸린 사랑, 인디에어, 캡틴아메리카:윈터솔져, 그랜 토리노, 아이엠러브, 좋은 친구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늑대아이, 아르고, 그녀, 로마위드러브

 

인데... 아무래도 간단하게 평쓰는 것도 당분간은 못쓰겠군... 내일 출근이니 어서 자야지.


Eternal Sunshine 을 보고

위로 2014. 1. 12. 23:29

 

 

  어제 친구랑 맥주를 마시면서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 야 넌 만약에 지금 사귀는 남자가 있는데, 갑자기 옛날 첫사랑이 연락해서 보자고 하면 나갈거야?"

  친구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응." 이라고 대답했다. 나의 경우는... 나 역시도 대답은 "응" 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아니"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겠지?

  나는 일단 왜 연락했는지 너무 궁금해서라도 나가볼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니 뭐 둘다 상상만으로 끝내는 거지 뭐. 둘다 남자친구가 없으니 하는 상상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우리 둘은

  "야 남자들이 첫사랑 못 잊는다고 하잖아. 우리 둘은 그래도 공평하다. 남자도 첫사랑 못잊고 있을거고, 우리도 어차피 못 있으니까." 라고 말하며 둘이 크크크크크 하면서 웃었다.

 

  그리고 난 또 두번째 질문을 했다.

  " 너 아직도 첫사랑 핸드폰 번호 기억해?" 그 질문 후에 우리 둘은 문득 깨달았다. 드디어 그 전화번호를 까먹었다는 사실을. 서로 "야야야 드디어 까먹었네. 우리가 인지도 못하는 사이에 까먹었네~~" 이러면서 서로 놀라워했다.

 

  부평에 새로 생긴, 8천원에 맥주 두잔을 먹을 수 있는 어제 우리가 갔던 그 가게는 문 밖으로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 때문에 사장으로부터 우리를 내쫓으라는 특명을 받은 것이 틀림없는 아르바이트 직원이 어찌나 당장 나가라고 무언의 압박을 해대는지 우리 둘은 결국 거기까지만 대화하고 서로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친구는 전철을 타러가고 나는 버스를 타러 갔고, 운좋게 나는 바로 온 버스에 앉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머릿속에 그 남자의 번호가 띠리롱 하고 떠오르는거다. 잊은 줄 알았던 그 번호가. 그래서 친구에게 카톡으로 그 번호를 찍어 보냈다. 그랬더니 내 친구도 그 남자 번호를 띡 직어서 보내는 게 아닌가. 그리고 우리 둘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를 보냈다.

 

  이렇듯, 거의 십년이 다 되어가는 이 지겨운 감정에서 참으로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렇다보니 모든 예술이 사랑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 아무리 남녀간의 사랑 역시 화학작용의 일부라고 해도 말이다.

 

  "그대 나의 슬픔이 되어 주오." 라는 가사도 있듯,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 까지 포함하는 것 같다. 그 사람을 때문에 슬퍼했던 것 까지 모두 다. 웃기는 말이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항상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또 어쩌면 사랑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고. 기쁘고 즐거운 사랑이 끝나고 권태기가 오고 이별이 와도 그 사랑으로 인한 감정은 죽을 때까지 아마 없어지지 않을테니 말이다. 그 사람이 밉든 싫든 미련이 없든 있든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도 Eternal 이라는 단어가 붙은 거 아닐까.

 

  이터널 선샤인은 앞서 영화 원데이 감상평에서 말했던 그 누군가를 혼자 좋아하던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인데 개봉당시 보고 싶었지만, 영화를 보면 더더 우울해질 것 같아서 보류해뒀던 영화였다. 그러다 용기를 내서 봤는데, 일단 시나리오가 독특했다. 이 시나리오라면 미셸 공드리 감독이 아니어도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 같다. 또 Beck 이 만든 영화 음악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s 가 영화 분위기와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 또 짐캐리가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 다시 한번 알게되는 영화다. 도저히 에이스 벤츄라 마스크를 찍었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진지한 연기에 깜짝 놀랐다.

 

  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우리나라 홍보 문구가 딱 맞는 영화다. 사랑할 사람은 결국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사랑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자기 과거 사랑의 비극적 결말을 알고 다시 과거로 다시 돌아가도 결국은 또 다시 그 사랑에 빠져들게 될 것이 틀림이 없다.

 

http://youtu.be/WIVh8Mu1a4Q

 


 

   한동안 나에게 슬픈 연애 영화는 금지 영화였다. 어떤 사건이 있은 후로는 여기 일기장에서도 그 사건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기 싫었고, 그 사건이 조금이라도 떠오를만한 행동은 아무것도 안하려고 노력했다. 무지하게. 죽을 힘을 다해. 그 사건으로부터 도망쳐 다녔다.

  나에게 있었던 사건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연애도 뭣도 아닌, "그냥 나 혼자 어떤 남자를 좋아하다가 쪽팔려서 죽고 싶을 정도로 찌질하게 끝이 났다." 정도 되겠다. 사건 얼마나 찌질했냐면, 최소한의 자기 변호를 위해 약간의 거짓말을 조금 섞지 않고서는 그 사건에 대해 도저히 한마디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난 내 인생에서 엄청 큰 전환점이 된 이 슬픈 사건에 대해 완벽하게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가까운 친구에게는 2년동안 있었던 그 일에 대해 한 50% 정도는 말했지만, 죽기로 맘먹지 않고서는 이 사건에 대해서 아마도, 영원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뭐 사실 그럴 필요도 없긴하지만.

  내가 이렇게 주구장창 설명하는 이유는  그만큼 그 때 내가 받은 상처가 컸고, 아직까지도 내 가치관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비통한 기분이 드는 건 마찬가지인데, 역시 세월에는 장사가 없듯 28살 쯤이 되서는 그 사건에 대해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게 됐다. 이건 장족의 발전이다. 한동안 나는 맨날 눈이 퉁퉁 붓도록 울다 잠들었는데 말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경험은 실패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했지만, (200% 맞는 말이라 뭐라 반박도 못하겠다. 나쁜 오스카 와일드. 꼭 그렇게 진실을 가슴아프게 콕 집어 말해야했나!!!) 그 실패로 인해 깨달은 바가 많다. 내 인생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미친 것 같긴 하지만, 아마 그 때 사건이 없었다면 난 엄청 재수없는 속물이 되었을 것 같다. 지금도 재수 없는 속물이지만, 그 사건이 없었다면 아마 난 정말 대책없는 여자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얻은게 전혀 없는 실패는 아니었다.

  덕분에 원데이 같은 영화 보면서도 울 수도 있으니까.

  영화는 20년동안 엇갈리기만 하는 두 남녀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 시절부터 인기 많았던 덱스터를 짝사랑하는 엠마. 하지만 덱스터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엠마를 몰라보고 철부지 행동만 하다가 뒤늦게 그녀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슬픈 영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엠마는 행복한 여자다. 죽기 전까지는 덱스터한테 사랑 받았으니까 말이다. 세상에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도 사랑받지 못하고 그냥 끝나는 짝사랑이 훨씬 많을거다. 아마도. 그 중 나도 포함이고. 

  이 사람이 내 평생의 소울메이트다 이런 생각은 서로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런 감정을 한쪽만 느낄 수도 있는거다. 이 영화에서는 서로가 딱 맞는 소울메이트였던 것으로 나오지만, 내가 좋아하는 또다른 영화 '500일의 써머'는 그 반대에 있다. 남자 혼자 이 사람이 내 소울메이트다 라고 착각하다가 끝나니까. 어쩌면 소울메이트라는 말 자체가 그냥 서로가 주체 못할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고.  

  모든 슬픈 연애 영화의 귀결은 "있을 때 잘하자" 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영화도 다르지 않다. 

  둘의 고향이 에딘버러라, 여행 가서 봤던 거리를 다시 볼 수 있어 반가웠고 작년 가을 혼자 했던 여행이 떠오르면서 기분이 아련해졌다.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이 나는 장면은 각자 다르겠지만, 마지막에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대학 졸업식 다음날 장면이 다시 나올 때 눈물이 흘렀다. 그랬어야 했는데. 하는 안타까움 때문에. 

 

  다 쓰고보니 내가 짝사랑 했던 그 남자를 엄청 미워하는 것처럼 썼지만, 사실 나와 그 사람 사이에도 즐거웠던 일이 꽤 있었다. 옛날엔 죽도록 미웠던 적도 있긴 하지만, 지금은 하나도 안 밉다. 심지어 어릴 때 경험해봄직한 사건을 만들어 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어쩌면 이건 내 인생 전체로 볼 때 엄청 건전한 경험이었으니까.

 

  당시 꽤 친했던 우리 둘이 했던 별거 아닌 귀여웠던 행동들이 조금씩 기억났다. 이 영화 덕분에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 어린 시절을 다시 추억할 수 있었다. (세상에!! 내가 이 사건에 대해 추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날이 올 줄이야!!!)

 

  하지만 못내 또  그냥 친구 사이로만 알도록 내가 처신을 잘 했다면 덜 비극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또 했다. 수백 수천번 했던 그 후회를.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보면 만약 친한 친구사이로만 남았다면 나는 아마 이 영화속 엠마처럼 10년 20년이 지나도록 짝사랑만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2014년을 기점으로 그런 후회 조차도 안하기로 다짐했다. 아주 아주 오래전 일 일 뿐이다. 벌써 내 나이가 32살이니까.

 

 

P.S 두 남녀 주인공 비주얼이 요 근래 본 영화 중 최고라서, 인물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앤 헤서웨이야 워낙 유명하니 말 안해도 될 거 같고, 짐 스터지스라는 남자 배우 역시 깍아놓은 것 같은 진짜 진짜 미남이다.  만약에 배두나랑 사귀는 게 진짜라면 나는 그 둘이 헤어지기 전까지는 배두나를 저주할 거 같다. 제발 거짓이길!!!!!!


 

 

  목요일에 인하대병원에서 성인여드름 진단을 받고 생애 처음 피부과 시술을 받았다. 세수하고 침대 누워서 여드름을 짜고 있자니, 어찌나 우울하든지... 그 치료로 얼굴에 흉터가 많이 생겨서 난 주말에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었다. 이거 3주 쯤 지나면 원상복귀 된댔는데 안되면 난 정말 우울해서 아무도 안 만나고 집에만 있을거야. 힝..

 

  토요일 낮에 혼자 누워서 다운 받아놓은 프로그램을 보다가 왁싱 한 뒤로 지저분하게 자란 눈썹을 모양에 맞게 다 뽑고 혼자 흡족해 하다가 엄마한테 같이 자유공원이라도 가자고 카톡을 보냈는데, 못간다고 해서 혼자 쫌 삐져있었다. 결국 한 5시 경 도저히 답답해서 안되겠다 싶어서 모자에 목도리까지 하고 극장으로 향했다.

 

  라스폰트리에 감독의 멜랑꼴리아를 본 뒤로 평론가들 말은 다 개소리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멜랑꼴리아 영화 속 지구 멸망 장면은 내가 극장가서 본 장면 중 아라비아의 로렌스 전투 신 이후로 최고의 장면이었다. 맨 앞의 지구 멸망 장면만으로도 눈물이 찔끔 흐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평론가들이 별 다섯개를 날릴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스토리가 없다고!!) 거깃다, 라스폰트리에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어도 평론가들은 무조건 별 5개 날리고 찬미하는데 여념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난 평론가들 평점을 보고 영화를 찾아보고는 하는데, 그래비티도 하도 평이 좋아서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차였다. 마침 인천 CGV 에 3D IMAX 개봉을 해서 예매를 했다. (무려 만6천원!) 난 혼자가서 중간 좋은 자리 중 딱 한자리 남은거 예매 했는데, 연석으로 앉는 좌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 스포일러 있음. (하지만, 내용 다 알고 봐도 재밌는 영화임)

 

  줄거리는 간단하다. 라이언 스톤 (산드라 블럭) 박사가 우주에서 혼자 미아가 되서 지구까지 살아오는 이야기. 등장인물도 맷 코왈스키 (조지 클루니) 와 라이언 스톤 딱 두 명이고, 그나마 맷도 중간에 죽는다. 영화의 절반이 라이언 스톤 박사 혼자 사투하는 이야기다.

  소설이든, 영화 스토리든 오히려 사건 사고가 많으면 쓰기 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 되니까. 하지만, 등장인물도 몇 명 없이 큰 사건 하나 없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쓰려면 얼마나 깊은 내공이 필요할 것인가. 이 영화를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라이언 스톤 박사 혼자 우주에서 사투 벌이는 이야기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난 영화보면서 혼자 잘 우는 편인데, 이번 그래비티를 보면서도 찔끔 울었다. 내 옆옆에 있는 어떤 사람은 아예 코까지 풀어가면서 영화 내내 울던데.. 그도 그럴만 한 것이 라이언 스톤 박사가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고요하고 광활한 우주에 혼자 표류하는 그 공포가 스크린 가득 펼쳐진다. 나는 근데 고립되는 장면 말고 오히려 다른 장면에서 좀 울었다. 라이언 스톤 박사가 지구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장면에서 아기 목소리가 들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는거다. (다른 사람도 그랬을까.. 참 이상해 왜 그 장면이 그렇게 벅찼는지 원)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요즘의 나를 좀 되돌아보게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라이언 스톤 박사는 삶에 의욕이 별로 없이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구구절절하게 그 캐릭터에 대해 설명하지 않지만, 영화 앞 장면에서 맷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화법도 대단하다고 생각함. 단 몇마디 대화로 그 캐릭터의 지구에서의 삶을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 라이언 스톤 박사는 왜 살아야 하는지 정확한 이유도 없이, 그냥 하루에 자신에게 닥친 하루를 살고 있었던 나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 바로 앞에 당도하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며 마침내 지구에 도달한다. 화면은 더할 수 없이 완전 무결하기 때문에, 3D IMAX 로 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천 CGV 사운드도 엄청 좋은 거 같은데, 3D IMAX 는 녹음도 다르게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간단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의 메시지는 결국  '아... 살아야 하는구나!' 라는 거.

 

P.S 조지 클루니 진짜 잘생겼다. 그 아저씨는 진심 전세계에서 제일 멋있는 거 같다. 그리고 내가 물을 무서워한다고 느낀 게, 난 우주에 고립된 장면보다 마지막에 막 우주선에 물 들이닥치는 장면이 훨씬 더 무서웠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서 죽는 줄 알았다.




듣고 싶은 음악을 계속 찾다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이 영화의 OST 가 좋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저번 주 혼자 점심을 먹다가 찾아 들었다. 멜론에는 딱 5곡만 공개되어 있는데 5곡 모두가 좋았고, 요사이 확 끌리는 음악이 없었던 터였는데 이 음악을 찾은 뒤로는 퇴근할 때도, 집에서도 야근하면서도 주구장창 이 사운드트랙을 듣고 있다. 

그리고 결국 오늘 CD 도 주문했다. CD 에는 12곡인가 들어 있는데 Youtube 로 찾아 들으니 역시 다 좋다. 빨리 도착해서 듣고 싶다. 원작 소설책도 샀다. 이미 내용을 다 알아서 그렇게 재미는 없겠지만, 팬심에 그냥 구입. 


500일의 써머에서 조셉고든레빗이 출근하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The Smiths 음악을 듣는데 주이 다샤넬 그러니까 극 중 써머가 "Smiths" 라고 한 마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말 영화같은 장면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내가 꿈속에 그리는 운명적인 만남도 그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했다. 뭐 써머한테는 그게 별로 운명도 아니었지만... 

그 The smiths 의 음악은 이 영화에서도 꽤 중요한 음악으로 나온다. 샘 (엠마왓슨) 이 찰리 (로건 레먼) 에게 관심을 보이게 된 계기도 찰리의 좋은 음악 취향때문이기도 하고. 


가끔 차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 밴드의 음악에 대해 누구와도 얘기해본 적이 없구나. 만약 이 사람들 음악을 아는 사람이면 바로 호감을 갖을 수 있을거야. 라고 생각하거나, Nirvana 음악을 들으면서 정말 멋진 사람이라 한눈에 반했더라도, 커트 코베인이 누군지도 모른다면 절대 좋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생각 등을 한다. 

결국에는 나와 취향이 완전히 같은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와 어느정도는 말이 통해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다.


저번 주에 본 아이언맨은 재미는 있었지만, 이번에 본 월플라워 처럼 잔상이 길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영화는 아니었다. 아직 2013년이 많이 남아 있지만, 아마 이 영화는 나의 2013년 최고의 영화가 될 것 같다. 

세명의 주인공이 정말 연기를 잘해주었고, 저마다 큰 상처를 가진 3명의 10대 성장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로건 레먼은 주인공 찰리에 그보다 더 잘어울릴 수는 없고, 매력 넘치는 샘 역할의 엠마 왓슨도 정말 정말 예쁘고 (이 영화를 계기로 팬이 되기로 했다. 우아하고 또 우아한 엠마왓슨), 무엇보다 패트릭 역을 맡은 이즈라 밀러가 나오는 영화는 앞으로는 눈여겨 볼 것 같다. (무려 나보다 10살이나 어려!!!) 


어떤 평론가는 미국판 몽상가들 이라고 써 놓았던데, 보다가 토가 나올 것 같아서 보기를 멈췄던 몽상가들과 비교하다니.... 불쾌하고 무엄하도다. 

크나큰 상처의 극복과 (정말 진부한 말이지만) 진정한 사랑과 위로 그리고 10대를 지나 어떻게든 성장해야만 하는 청춘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린 정말 정말 좋은 영화. 

P.S 보다가 여러번 울었다.





XTC - Dear God

 

Dear God,  

Hope you got the letter,

And I pray you can make it better down here. 

I don't mean a big reduction in the price of beer,

But all the people that you made in your image,

See them starving on their feet,

'Cause they don't get enough to eat From God,

I can't believe in you.

Dear God,

sorry to disturb you,

but I feel that I should be heard loud and clear.

We all need a big reduction in amount of tears,

And all the people that you made in your image,

See them fighting in the street,

'Cause they can't make opinions meet About God,

I can't believe in you.

Did you make disease, and the diamond blue?

Did you make mankind after we made you?

And the devil too!

Dear God, 

Don't know if you noticed,

But your name is on a lot of quotes in this book.

Us crazy humans wrote it, you should take a look,

And all the people that you made in your image,

Still believing that junk is true.

Well I know it ain't and so do you,

Dear God,

I can't believe in,

I don't believe in,

I won't believe

in heaven and hell.

No saints, no sinners,

No Devil as well.

No pearly gates, no thorny crown.

You're always letting us humans down. 

The wars you bring, the babes you drown.

Those lost at sea and never found,

And it's the same the whole world 'round.

The hurt I see helps to compound,

that the Father, Son and Holy Ghost, 

Is just somebody's unholy hoax,

And if you're up there you'll perceive, That my heart's here upon my sleeve. 

If there's one thing I don't believe in... 

It's you,

Dear God.


꿀맛같았던 연휴가 끝이 났다. 어찌나 슬픈지 모르겠다. 금요일에 눈을 떴는데 영락없이 토요일 같았다. 그래서 TV 에서 왜 영화가 좋다 안하지? 이러면서 불만스러웠는데 맙소사 금요일이었다. 

금요일에는 친한 친구와 종로에 가서 아이언맨을 봤다. 작년에 회사에서 나오는 복리후생비가 많이 남아서 롯데시네마 관람권을 왕창 사놨었다. 한 8장 샀는데 이제 겨우 2장 썼네. 

나는 작년에서야 배트맨 시리즈를 봤는데 영웅물에 큰 관심이 없기도 했고, 배트맨 시리즈 좋아하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신봉도 맘에 안들어서 일부러 안본 것도 있다. 그러다 배트맨시리즈를 보고 나는 왜 이시리즈가 이렇게 인기가 있나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재밌는 걸 왜 이제서야 봤을까 하고 아쉬울 정도로.  그래도 난 아직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너무 심각한 척 하는게 맘에 안들기도 한다. 인셉션도 보긴 봐야 하는데 기회가 안되네.

작년 어벤져스도 생각보다 재밌었는데 어벤져스에 나오는 사람들 나온 영화를 단 하나도 안보고 봤는데도 재밌었다. 웃기기도 했고. 이런거 보면 난 의외로 영웅물 체질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언맨3 역시 앞 시리즈 하나도 안보고 봤는데, 재밌었다. 유머도 꽤 내 스타일이고, 중년 남성의 순정에 대리 만족도 가능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아저씨는 완전 멋지다. 귀여운 매력이 있다. 조지 클루니에 이어 멋진 아저씨 목록에 추가하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은 조지클루니 아저씨가 최고야. 왜냐면 아직 결혼을 안했으니까 크크크크크) 

아이언맨 시리즈도, 배트맨 시리즈도 다 재밌긴 했지만, 영화가 점점 2시간 짜리 미니시리즈가 되어 가는 건 좀 슬프다. 점점 원래 있던 스토리 가져다 쓰는 것도 좀 맘에 안들고 이러다가나는 마블 코믹스에서 나오는 모든 만화가 다 영화화 될지도 모르겠다. 예전부터 말하지만, 순전히 영화를 위해 쓰여진 시나리오에 딱 2시간이 안되는 시간 안에 나에게 말할 수 없는 감격을 안겨주는 영화가 좀 그립다. 빌리 엘리어트나 Ghost world, 500일의 써머 같이 말이다. 뜬금없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랑 Ghost world 인 것 같다. 요즘도 가끔 생각이 나니까. Ghost world 의 스티브 부세미 아저씨는 극 중 도라버치가 사랑할 수 밖에 없다. 허리 디스크 있어서 복대 차고 다니고 2:8 가르마에 배까지 촌스러운 면바지를 입고 다니는 앞니 툭 튀어나온 그 아저씨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너무 아름다운 남자와 여자가 한눈에 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사랑에 빠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귀한 러브스토리. 

요즘 본 영화 중에서 제일 내 이상형에 근접한 사람은 "들어는 봤니? 모건부부" 에서 휴그랜트의 캐릭터. 흐흐흐 그 영화 기대 없이 봤는데 정말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러브 액추얼리에서 휴그랜트 보다 훨씬 귀엽다. 


수요일에는 의정부에 외근을 다녀왔다. 회사 사람들은 내가 운전 이제 웬만큼 잘하는 줄 안다. 그런데 전혀. 나는 아직도 회사-집 왔다갔다 하는 코스 이외에는 다른 코스 운전은 하고 싶지도 않고, 약 34km 정도 되는 그 출퇴근 코스도 내가 원래 가는 코스 이외에는 단 한번도 다른 코스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 차장님께서 수요일에 의정부를 갔다오라는 거다. 우리 회사랑 관련있는 협회의 경기 북부 지사가 의정부에 있어서였다. 나는 가라니깐 못간다 말도 못하고 갔다오겠다고는 했지만, 불안해서 결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위성지도를 거의 외우다 시피 왕복코스를 1시간 동안 보고, 외근 전날 차 안에서 내비게이션으로 모의 주행까지 다 해본 다음에야 마음을 잡고 외근에 나설 수 있었다. 출근길에는 보통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달리다 자유로 IC 에서 빠지는데 그 날은 자유로 IC를 그냥 지나야만 했다. 그렇게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나도 꽤나 쌩쌩 (보통 125km/h 정도로 달리고 있음. 그 이상은 우리집 차가 잘 안나간다. ㅜㅜ) 달린다고 달리는데 차들이 북으로 가면 갈수록 엄청나게 빨리 달렸다. 아스팔트 고속도로가 아닌 콘크리트 고속도로가 나오고 2km 가 넘는 터널도 나왔다. 인터넷으로 지도를 본 것보다 차에서 내비게이션으로 모의 주행 해본 게 훨씬 운전에 도움이 많이 됐다. 

올때 갈때 양갈래 길이 있었는데, 의정부로 들어갈 때는 모의 주행에서 계속 우회전이고 갈래길이 나오면 무조건 우측으로 가야 하는 걸 알아서 무사히 갔다. 

의정부에서 서울로 갈 때는 올때랑은 반대로 계속 좌측으로만 가는 길이었다. 고속도로 진입하기 전에 의정부 시내에서 차선 잘못타서 고속도로 진입하는 송추 IC 빠지는 길로 못들어갈 뻔 했는데 맘씨 좋은 트럭 아저씨가 양보해줘서 무사히 진입하고 한바퀴 돌고 이러면서 고속도로 진입을 기다리고 있는데 또 X 자 교차로가 나오는 거다. 마찬가지로 왼쪽으로 빠져야 하는데 내가 바로 그 교차로 직전 바로 앞에 올때까지 차선을 못바꿨었다. 나는 속으로 "망했다. 고속도로 잘못 진입하면 다시 빠져나가서 또 다시 의정부 시내 들어가서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해야 하는 것인가. 내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꺼를 타면 의정부 돌아서 상일동가는 길이 나오는데 젠장..". 이러면서 그 짧은 순간에 별 잡스런 생각을 다했는데 왼쪽으로 진입하는 차선만 2차선이었다. 오 주님. 그 뒤로는 또 신나게 달리다가 자유로 IC 로 못 빠질 뻔 하고 급히 막 차선 바꾸려다 식겁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돌아왔다. 어찌나 긴장을 했든지 막 귀가 멍멍하고 내가 운전하는데도 멀미가 날 뻔했다. 

또 가라고 하면 가기 싫은데 이번에 다녀와서 왠지 이제 막 보낼 것 같다. 


협회에 가기 전에 전화로 엄청 불친절했던 여자가 제발 얼굴 엄청 못생기고 뚱뚱했으면 좋겠다고 빌었는데. 웬걸. 얼굴이 예뻤다. 게다가 닐씬하기까지. 외근 다녀온 뒤로도 차장님이 계속 뭐 물어보라고 시켜서 전화했는데 전화를 끊을때마다 그 여자에게 듣지도 못할 외마디 욕을 하고 있다. 별 것도 아닌데 꽤 스트레스다. 엄청 불친절한 사람한테 차장님이 물어보라는 거 1페이지 뽑아서 물어보는 거 말이다. 


아. 그러고보니 나 의정부는 머리털나고 처음 가봤다. 내가 갔던 의정부역 주변이 신세계 백화점도 있고 의정부 안에서는 꽤 번화가 인 것 같았는데 한적해 보였다. 도심과 엄청 가까운데 부대 입구가 떡하니 크게 있는게 인상적이었고, 신세계 백화점이 인심 후하게 백화점 물건 하나도 안샀는데도 주차료 한푼 안받아서 좋았다. 운전자들도 내가 길 몰라서 엄청 얼쩡대고 느리게 가는데도 친절했다. (역시 인천이 삭막한 거였어...) 내가 지하로 진입해야 하는데 차선 잘못타서귀찮게 했더니 뒤에서 엄청 빵빵 댔던 아저씨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조용한 도시의 느낌. 그리고 왠지 쇠락한 느낌. 인천 부평의 스몰버젼 같은 곳이었다. 


Life of PI 를 보고.

위로 2013. 1. 13. 19:35

올해의 목표는 영화도 많이 보고, 보고 싶은 전시회가 있으면 귀찮아하지 말고 부지런히 가고, 책도 제발 좀 많이 읽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의무감에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들 이지만, 그래도 2012년은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문화생활에 무심했다. 



개인적으로 소설이나 만화가 원작인 영화를 싫어한다. 영화는 2시간 남짓의 그 시간을 위한 그만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음악도 마찬가지. 그래서 며칠전에 본 레미제라블이 나에게는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 원작소설은 빅토르 위고이고, 영화 음악조차 원래 있던 뮤지컬의 음악을 가져다 쓴거니까. 이 얼마나 성의가 없는 영화인가! (그래도 재밌긴 재밌었어.)예를 들면 등장인물부터 모든 스토리 그리고 음악까지 다 창조한 "인디아나존스" 같은 영화와 스토리와 영화음악까지 원래 있는 걸 가져다 쓴 "레미제라블"이 동일선상에서 평가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설은 소설만의 영역이 있고, 영화는 또 그만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한편으로 인해 주변의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최초의 영화는 의외로 "패왕별희"다. 그때부터 나는 중국에 대한 경외감 같은 걸 갖게 되었는데, 청일전쟁과 문화대혁명 시기를 아우르며 한 인간이 역사의 질곡에서 어떻게 철저히 짓밟히는지 보여주는 그 영화를 보고 나는 펑펑 울었다. 

작년에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Hugo 를 보는데 큰 스크린에 영화 교과서에만 나오는 버스터키튼의 모습과 영화 발동기 시대의 무성영화 필름을 보는데 마음이 벅차오르면서 눈물이 흘렀다. 영화 평론가 허지웅도 "당신은 틀림없이 울 게 될 것이다." 라고 써놨던데 정말로 그랬다. 영화 자체가 마틴스콜세지 감독이 "나는 영화를 정말로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영화 Hugo 는 2012년 내 최고의 영화였다. 


영화 한편이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얼마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 조금은 알고 있는 내가 오랜만에 그런 벅찬 감동을 느꼈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망망대해의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폭풍우와 마실 물 한방울이 귀한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소년 파이와 유일한 생사의 동지인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모습을 보며 삶의 숭고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태평양 한가운데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이 아슬아슬한 배 위에서 울부짖는 파이의 모습을 보며 인생에 대해 그리고 고난에 대해 엄숙하게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각자의 인생에는 남이 해주지 못할, 결국 혼자서 극복해야만 하는 고난이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외로운 것임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기에 태평양 한가운데의 두 생명체의 삶에 대한 끝없는 몸부림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영화를 관통하는 메세지는 "절대로 희망을 잃지 말 것." 

작별인사도 없이  갑작스럽게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별과 새로운 만남 그리고 예고없이 찾아오는 고난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희망을 잃지 말고, 포기하기 말고, 질기게 살아남아서 또 이렇게 좋은 영화 보고 벅찬 감동도 받고 짜증도 부리면서 살고 싶다. 

2013년을 시작과 함께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행운이다. 

인생에 대한 최고의 우화.

역시 이안 감독은 무슨 얘기를 만들어도 평균 이상이구나. 


P.S 지구상에서 제일 멋진 지상동물은 호랑이. 바다동물은 고래라고 오래전 부터 생각해왔는데 ... 위에 저 포스터에서 나온 장면은 정말로 환상적이다. 아이맥스 3D 로 보길 정말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