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Brooklyn 을 보고

위로 2016. 6. 26. 23:58


(스포일러 있음)

토요일에 개봉 때부터 보고 싶었던 브루클린을 드디어 봤다. 극장에서 못본 것이 너무나도 후회될 뿐이다.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다.

고향이 생각나서 에일리스가 혼자 방에서 우는 장면이나, 토니와의 데이트 장면 을 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찡해서 눈물을 꽤 흘렸다. 시카리오와 함께 올해의 영화 중 한편이 될 것 같다.


영화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이후로 이렇게 남자주인공이 멋지다 생각한 것도 오랜만이다.

주인공 에일리스의 남자친구 토니는 인생의 빛이 되는 좋은 남자의 교본 같은 남자다. 변함없는 사랑과 순정, 착한 마음씨, 다정함, 성실함, 화목한 가정, 귀여운 외모까지. 정말 사랑스러운 남자 주인공이었다.

이 영화의 원작과 감독이 모두 남자라는 것을 알고 놀라웠다. 어쩜 이렇게 여자가 원하는 완벽한 남자와 사랑을 섬세하게 잘 표현하였는지.

영화 캐롤과 같은 시대인 1950년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저번부터 느낀건데 1950년대의 뉴욕 패션 너무 고상하고 멋지다. 이 영화에서도 분명 1950년대 패션을 그대로 재현했는데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색감과 디자인, 헤어스타일 등등 모두 세련미가 넘친다. 영화 다 보고 나서 에일리스가 입었던 가디건, 블라우스 같은 게 눈에 어른 거릴 정도. (캐롤 때도 그랬다)


저번 주에 본 이민자 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미국으로 이민와서 불한당 같은 놈을 만나서 죽도록 고생하고 상처받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인 에일리스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남자를 만나서 뉴욕을 두번째 고향으로 삼고 행복한 삶을 살 것을 암시하며 끝난다. 두 영화를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언니인 로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일랜드로 다시 되돌아가서 만난 아일랜드 신사 짐 패럴에 흔들리는 에일리스를 보며 토니를 배신할까봐 마음을 졸였다. 토니 편지를 읽지도 않고, 서랍에 넣을 때는 토니에 빙의하여 내 맘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 영화의 유일한 흠이라면, 에일리스가 고향 아일랜드에서 다시 토니가 있는 미국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는 계기이다. 식료품 가게의 악독한 켈리 여사가 에일리스가 토니와 뉴욕에서 혼인신고를 한 것을 몰랐다면, 에일리스는 끝내 토니를 배신하고 고향 아일랜드에서 부잣집 도련님인 짐과 결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에일리스가 어려운 시간을 같이 보내준 토니를 외면하지 않고 다시 돌아와서 너무 다행이었다.


토니 역할을 한 배우 에모리 코헨은 처음 보는 배우인데, 나이도 어린데 연기를 어찌나 잘하는지 모르겠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에일리스가 야간 대학 수업이 끝난 뒤 토니에게 할말 있다면서 심각하게 분위기를 잡으니, 에일리스가 헤어지자는 말을 할까봐 노심초사 눈치를 보며 에일리스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눈빛이 흔들리며 조마조마 하는 연기를 어쩜 그렇게 잘하는지.

이 영화에서 에일리스와 토니의 모든 데이트 장면이 사랑스러워서, 아까도 한번 더 봤다. 그래도 제일 좋은 장면은 토니가 에일리스의 야간 대학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 마중 나와선 같이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장면이다. 혼자 외롭게 귀가하던 에일리스는 토니가 마중을 나와줘서 너무 기뿐데, 그런 에일리스를 보며 토니는 오늘 기분이 아주 좋아보인다고 말한다. 기분이 아주 좋은 건 바로 토니 때문인데 말이다.

토니와 에일리스의 사랑 이외에도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여성들간의 우정 묘사도 좋았다. 미국행 배에서 도움을 주는 여자와 얄밉지만 결국 에일리스에게 관심을 쏟는 하숙집 친구들, 차가워보이지만 에일리스의 기분을 때때로 살피며 나중에는 에일리스를 위해 수영복을 골라주는 매력 넘치는 직장인 백화점의 상사까지.(그런데 이 역할한 배우 누군진 몰라도 정말 예쁘심)  모두 에일리스가 새로운 세계인 뉴욕에서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도 봤던 시얼샤 로넌이 흰 피부와 파랗고 몽롱한 눈을 가진 에일리스 역할로 매력을 발산한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주연 제로의 젊은 시절 사랑으로 등장할 때도 이 배우를 눈여겨 봤는데, 앞으로 좋은 배우가 될 것 같다.


딴말이지만, 며칠전 잠들기 전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주인공 제로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사랑스러운 아가사..라는 말과 함께 아가사가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던 장면이 생각나 눈물을 쏟았다. 그 영화에서는 아가사가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자세히 나오지 않는데도 아가사는 전쟁 중 죽었다. 라는 사실을 앞 뒤 정황과 제로의 독백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참 신기했다. 서사를 완벽히 하지 않아도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의 운명을 짐작케 하는 것도 감독의 역량이라면 역량이겠지.


이렇게 좋은 영화를 봐서 보람찬 주말이었다.  이 영화 속의 예쁜 장면들이 두고두고 생각날 것 이다.


저번 주에는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이 영화는 제목이 너무 어려워서 흥행이 안된듯) 을 봤고, 이번주에는 이민자를 봤다. 둘다 여자가 주인공이다.

대책 없는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거듭난다는 이야기는 보는 내내 여자가 너무 불쌍해서 짜증이 나면서도 매혹적이다. 인정이란 없는, 개망나니 같은 남자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사랑'이 유일한 해답이긴 할 거다. 하지만 현실에서 '내가 널 구원해주리라.' 라는 마음으로 모든 걸 인내하며 위험한 남자 옆에 있기엔 위험부담이 무척 크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와 비슷한 영화와 소설이 재생산 되는 거겠지.

실버라이닝 플레이 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제니퍼 로렌스의 몸매였지만, 문제 있는 두 남녀가 서로 사랑하기까지 과정이 인상 깊었다.

이민자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 역시 우아하고 슬픈 마리옹 꼬띠아르의 얼굴이었다. 이민자의 교훈은 여자가 너무 아름다워도 인생이 참으로 고달퍼 진다는 것.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좋아할 법한 스토리였고, 호아퀸 피닉스도 연기를 아주 잘했다. 분명 브루노는 사랑한다는 핑계로 에바의 인생을 시궁창으로 만든 개자식 중에 최고 개자식인데도 불구하고 끝내 좀 불쌍했던 건 다 그의 연기 내공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1. 캐롤
이 영화에서 테레즈가 캐롤을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지는 마법같은 순간은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것 이다.
운명 처럼 사랑에 빠지고, 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택한 해피엔딩이라 좋았다.
영화 톤이 예쁘고, 캐롤의 패션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이 영화를 보니, 난 이성애자이지만, 케이트 블란쳇 정도면 나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그 정도로 매력 폭발)
베드신도 아름다웠고, 사랑에 빠져 들뜨고 설렌 테레즈를 보며 진심으로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2. 주토피아
알다시피 애니메이션의 왕팬인 내가 안볼 수 없는 영화였다. 사회가 규정한 한계에 굴복하지 않고 도전하는 주디와 편견의 희생양 이었던 닉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감동적 이야기인데, 거기에 서스펜스 스릴러 까지 가미되어 보는 내내 재밌었다.
여우 닉의 성우가 누군지 몰라도 목소리가 어찌나 좋은지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여우한테 반해보긴 또 처음이었다. 다들 나무늘보가 웃겼다 하지만 나에게 제일 웃겼던 장면은 쥐가 대부의 말론 브란도 흉내내는 장면이었다.

3. 곡성
(스포없음)
백만년만에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봤다. 여기 저기서 곡성 관련 평론가 평이 쏟아지는데, 스포일러 포함이라 적혀 있어 읽지 못하는 게 짜증나서 결국 혼자 보고 왔다.
촬영이 헐리우드 초일류들이 만든 시카리오 못지 않게 훌륭하다. 스토리에 약간의 헛점이 있지만, 정말 독창적이고, 사운드도 잘 쓰였다.
개인적으로 곽도원씨 연기는 살짝 아쉬웠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다. 기독교를 믿는다면 훨씬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는 성경 중 예수님이 부활하여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나를 만져보라 하는 부분이 나오지만 나는 주인공이 고약한 시험에 들었다는 점에서 예수님이 광야에서 기도할 때 사탄이 나타나서 니가 예수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고 시험하는 장면도 떠올랐다.
어렸을 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외할머니께 들은 무서운 얘기 중 기도원에서 기도하다 예수님이 나타났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썩 물러가라 했더니 귀신이 "안속네." 하면서 낄낄 거리며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 영화와도 통하는 게 있는 이야기라 오랜만에 그 이야기도 생각났다.
누가 진짜 인지 영화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2시간 넘는 런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감독이 어렸을 때 곡성에서 자랐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시골 특유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잘 살렸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인천에서 전라도로 전학가서 도서관 갔다 오는 길에 도시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고요함과 칠흑같은 어둠이 너무 무서워서 벌벌 떨었던 경험이 있어서 그 느낌을 잘 안다. 영화 제목 곡성이 지명을 뜻하는 곡성은 아니라 하지만, 그 공간이 주는 공포, 초자연적 힘이 집결할만한 흉악한 산등성이와 범접하지 못할 대자연이 주는 공포를 훌륭한 촬영과 연출로 잘 살렸다.
막판에 무명역의 천우희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앞으로 팬이 될 듯 하다.
덧. 이게 어떻게 15세 관람가를 받은거지? 적절치 못한 등급이라 생각한다. 이건 청불이어야 한다.



1. 빅쇼트

교육적으로 유익한 영화였다.

스티브 카렐 아저씨는 어엿한 대배우가 되신 것 같다. 신경질적이고, 양심있는 월스트리트의 금융종사자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셨다. 스티브 카렐 아저씨가 유명해진 영화가 브루스 올마이티긴 하지만, 웃음기 전혀 없이 진지하게 연기하신 리틀 미스 선샤인에서 게이 삼촌 역할이 정말 잘 어울렸다. 그 영화에서 조카에게 프루스트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면을 본 후 쭉 아저씨의 팬이다. 스티브 카렐은 웃긴 역할을 할 때 조차 이상하게 약간 처연한 느낌이 나고 가만히 계실 때에는 엄청나게 내성적인 얼굴이라 마음이 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얻는 자가 있으면 잃는 자가 반드시 존재한다.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밑바닥에 있다고 해도 내가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영화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돈 많은 사람들이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도 좀 말이 안된단 생각도 자주한다. 극진한 대접은 훌륭한 사람이 받아야지, 돈 많은 사람이 받아야 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영화 보기 전에는 서브프라임모기지론이 뭔지도 몰랐는데, 이 영화를 보고 완전히 이해했다. 모 평론가 말대로 우리나라에서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영화였다. 우리나라 IMF 를 다룬 영화들과 이 영화를 비교해보면 답은 명확해진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개인 vs 개인 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좀 더 크게, 사회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끔 만드는 훌륭한 영화였다.


2. 스파이 브릿지

스티븐 스필버그 팬을 자처하면서도 극장에서 못봤던 영화를 IPTV로 봤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제 무적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후로 만든 거의 모든 영화가 훌륭하다. 정말 흠잡을 데 없이 미끈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자칫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감동적으로 만드시는 능력은 정말 최강이시다.

냉전 시대 미국과 독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특히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기 위해 베를린 장벽을 오르다 총에 맞아 죽는 사람과 뉴욕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벽에 오르는 장면을 비교하여 찍은 장면이 인상깊었다. 이 영화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왜 사람의 생명이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지 쉽고 재밌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를 통해 일깨워 준다.

러시아 스파이 역할을 한 배우가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순 없었고, 자기의 신념을 지키며 주변의 냉대에도 굴하지 않는 강직한 제임스 도노반 역할에 톰 행크스도 적역이었다.

스파이 브릿지를 보면서 또 느낀 게 역시 영화는 영화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 음악, 카메라, 배우들의 연기 등등 모든 것이 좋았다.

아 그리고,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코엔형제가 썼다는 사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는 중간 중간 웃긴 장면도 꽤 된다. 난 공무원이 전화 잘못 받는 장면이 너무 웃겨서 깔깔깔 웃었다. 정말 별 거 아닌데 엄청 웃겨서 경외감 까지 들었다.

며칠 전 읽은 책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터뷰를 봤는데 기자가 스티븐에게 쉬는 날 뭐하냐고 물어보니 극장가서 영화 본다고 답했다고 한다. 보통 영화계 종사자면 쉬는 날에는 영화 안보고 쉴 법도 한데 말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 자신이 영화의 엄청난 팬이면서 동시에 세계에서 제일 훌륭한 감독 중 한 명이 된 거다. 정말 멋진 분이다. 오래 오래 사셨으면..


Incendies 를 보고

위로 2016. 1. 31. 22:47

시카리오를 본 후, 단번에 드니 발뇌브 감독의 팬이 되기로 결심하여 지난 주말 그을린 사랑을 봤다.
한국 제목을 참으로 잘 지었다. 시적이고, 영화의 배경인 중동과도 딱 맞는다. 원제보다 더 좋은 것 같다.
엄마의 유언을 위하여 이란성 남녀쌍둥이인 잔느와 시몬이 과거 지독한 내전을 겪었던 중동국가 다래쉬를 방문하여 알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진실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다래쉬는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국가지만, 영화 속 상황을 비추어 볼 때 레바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이 영화를 본격 정신 학대 영화라고 표현해 놓은 걸 봤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나 역시도 정말 괴로웠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레바논 내전의 모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몇 년 전 보았던, 허트 로커, 이번의 그을린 사랑 그리고 매일같이 접하는 시리아 뉴스를 보며 대체 중동은 답이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예수님이 태어난 땅이고, 구약과 신약 성경의 주무대이고, 전세계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또 난 개인적으로 전세계에서 제일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중동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중동은 왜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 것일까.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전쟁이 나면 아직 예비군인 남자들은 전쟁에 나가 싸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현대 전쟁 중 전체 사상자 중 군인의 비율은 7% 정도라고 한다. 가장 큰 피해자는 힘없는 여자와 아이들을 비롯한 민간인들인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종교와 진실, 용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종교인으로서 가끔 종교가 인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나에게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 좋다. 아마 죽을 때 까지 종교인으로서 살 것이다. 하지만 종교가 인류에 미치는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 을 따져보면 나쁜 영향이 더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종교적 신념은 일반적인 신념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 신념 앞에서 사람들은 죽음도 불사하게 되고, 그 어떤 짓도 신의 이름을 앞세워 행할 수 있다.
종교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라, 어쩌면 싸우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닐까. 더 잔혹하게 더 잔인하게 싸우기 위하여 사람들은 신을 앞세워 보복하고 끝도 없는 불행의 구렁텅이로 인류를 몰아넣고 있다. 어떤 종교든 악을 설파하지 않을텐데, 어쩌다 이 세상이 이 지경이 된 것인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인류의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롯하여) 종교를 갖고 있으니... 정말 아이러니할 뿐이다.
가끔 블로그에도 썼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은 그냥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의 나왈 마르완은 자기의 자식들이 기가 막히도록 더럽고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길 원했다. 그 진실을 마주해야만 용서도 가능하니까 아마 그런 선택을 했으리라.
악의 고리를 끊는 것은 결국 용서다. 보복은 더 큰 보복과 더 큰 불행을 가져올 뿐이다. 어떤 용기 있고 대단한 사람의 용서만이, 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가 아니라.
가련한 나왈 마르완의 인생을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것도 결국 서로 용서하고 함께 잘 살아보자. 그리고 제발 싸우지 말자. 일 것이다.
시카리오도 그렇고 이번 그을린 사랑도 그렇고, 드니 발뇌브 감독은 복잡하고 민감한 세계적 핫이슈인 주제를 정말 잘 다루고, 실제 일어난 참혹한 사건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하다. 주제의식, 스토리, 배우의 연기 뿐 아니라 화면의 구도나 톤, 사운드 등에도 엄청나게 세심하게 공들인 티가 난다.
영화 때문에 오랜만에 Radiohead 의 You and Whose army? 라는 곡을 들었다. 난 이 곡 들어 있는 Amnesiac 앨범 정말 싫어하는데, 시대를 앞서간 음반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첫 장면에서 폭격을 받은 소년 고아원의 아이들이 이슬람 민병대에 끌려가 강제로 머리를 미는 장면과 이 음악이 정말 잘 어울리고 강렬했다. 노래의 "너는 너무 쉽게 잊는다." 는 가사가 영화를 보면 정말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영화 중반쯤 이 영화의 반전을 눈치챘다. 하지만 설사 반전을 다 듣고 봤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나에게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반전보다 더 충격적인 건, 레바논에서 그런 참혹한 전쟁이 일어났었다는 것, 그리고 현재 시리아에서도 똑같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P.S 그을린 사랑으로 검색하여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제목을 바꿨다.;



시카리오를 보고

위로 2016. 1. 1. 15:08

아빠가 이 영화를 보고 오셔서 감상을 말씀하시면서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씀해주신 탓에 모든 내용을 다 알고 봤다.
하지만 그래도 최고였다.

씬시티 때부터 열라 멋진 얼굴의 소유자라 생각했던 베네치오 델 토로는 미천한 내 어휘력으론 표현 불가할 정도로 인상 깊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긴장되서 콜라도 삼킬 수 없었고 심장이 너무 빠르게 쿵쾅쿵쾅 뛰어서 입 밖으로 나오는 줄 알았다.
영화에 대해 전문 지식이 없는 내가 봐도 압도적으로 촬영이 훌륭하다. 또 잔혹한 묘사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메세지는 확실하다.
새해 첫날 이렇게 멋진 영화를 시청하다니 운이 좋은 걸.

난 극 중 케이트보다 알레한드로의 의견에 동의한다. 나도 이런 나에게 놀랐지만 알레한드로가 총을 쐈을 때 심지어 후련하기까지 했다.

아빠의 평 대로 이 세상엔 엄연히 생태계가 존재하고, 어쩔 수 없이 그 세계에선 그에 맞는 법대로 굴러간다.
어둠이 없다면 빛도 없고, 악이 없다면 선이 좋은지도 모를테니, 불완전한 인간이 사는 이 세상은 어쩔 수 없나보다.

이런 게 진짜 영화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영화였다.
아무 정보도 없이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최고 최고 최최고!


1. 석회화건염
토요일에 직전회사에서 친했던 대리님이랑 송도에서 맛있는 걸 먹기로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침에 왼쪽 손목이 참을 수 없이 아픈거다. 너무 아파서 전혀 움직일 수 없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눈물이 핑 돌았다. 약속을 취소하고 급히 송도의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으니 의사가 심드렁하게 석회화건염이라고 했다. (정말 별 이상한 병도 다 있지. 왜 관절에 석회가 생기는 건지.)
이틀동안 극심한 통증때문에 지옥을 경험하고, 월요일 아침에 정식 진찰시간보다 빨리 대학병원에가서 진료를 기다렸지만, 손목전문의가 없다고 1년차 어린 의사는 나에게 그 어떤 처치도 해주지 않았다. 뭔 놈의 병원이 의사 출근날을 가려 환자를 받나 싶었다. 결국 화요일에 다시 가서 특진으로 5만원 넘게 돈을 지불한 뒤 진료를 받았고 왼팔에 반깁스를 했다.
사실 토요일에 비하면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깁스 안해도 될 것 같은데 엄마는 이틀이나 휴가 냈으니 아픈 척 해야한다면서 그냥 깁스를 하고 출근하라고 하셨다. 올해 두번째 깁스다.
하는 수 없이 깁스를 하고 오늘 하루종일 독수리타법으로 키보드를 치며 일했다.

2. 왼손과 오른손
4일간 왼손을 못쓰면서 느낀 건 오른손잡이인 나의 오른손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왼손 못써도 밥도 먹고 샤워도 할 수 있고 글씨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왼손을 못쓰니 내 머리카락을 내 손으로 묶을 수가 없고, 화장실에서 한 손으로 바지를 올리고 내려야 했다.
저번에 어깨뼈가 세조각나서 재활하던 언니가 아직도 머리 혼자 못 묶는다며 한탄했는데, 그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머리를 묶는게 보통 복잡한 행위가 아니다. 한손으로 절대 못 묶는다.

3. 전쟁드라마
휴가기간동안 손목이 아파서 신경질적이 되고, 바깥에 나갈 수 없으니 집에서 티비보다 책보다만 했다. 그러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Band of brothers 를 봤다. (거금 9천원을 결제했다)
철저하게 승자 관점에서 서술된 드라마였다. 드라마 내내 독일군의 입장은 거의 나오지 않고, 미군들은 그 치열한 전투를 겪었음에도 정신적으로 거의 아무 이상도 없다. 대부분 화에 전투신이 나오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끝이 없겠지만, 엄청 재밌긴 하다. 또 보고 싶을 정도. 올레티비의 시리즈는 부상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해줘서 좋았다.

나는 생긴 것과 전혀 어울리지않게 전쟁 영화를 좋아했는데 한동안 시들하다가 워호스 본 뒤로 전쟁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에 다시 불이 붙었다.
요즘 읽는 책도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이다. 화기와 비행기, 전차의 나라별 모델에 대한 설명이 너무 많아서 막 재밌진 않지만 꽤 읽을만 하다.
The pacific 이 Band of brothers 의 후속이라는데 선뜻 볼 용기가 안난다.
Thin red line 이라는 태평양전쟁을 다룬 영화를 어렸을 때 봤는데, 정말 충격이 컸다.
한국인과 생김새가 비슷한 일본군이 나오니 유럽전선을 다룬 여타 영화에 비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잘은 몰라도 홀로코스트를 제외하면 전투 중 잔인하고 끔찍했던 건 태평양전선이 유럽전선보다 더했음 더했지 덜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전쟁이 악마적인 건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의 모든 걸 혐오하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걔네들한텐 정이 안간다. 오키나와와 우리나라에서 그들이 저지른 악행을 보고 들을 때 마다 치가 떨린다.

4. 송년회식 장소
회사에서 송년회 때문에 죽을 맛이다. 내가 예약을 맡았는데 어딜 정해도 100% 만족은 없을테니 제발 그냥 내가 정하는대로 따라와줬으면 좋겠다. 장소 때문에 거의 3주째 갈팡질팡 중 이다.

5. 볼 영화들
007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새 영화 두개다 보고싶다. 마션은 결국 티비로 보게 될 것 같다. 여담이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돌아가시면 슬퍼서 울 것 같다. 그의 모든 영화를 본 건 아니지만, 내가 본 모든 그의 영화는 모두 지극히도 영화적 이었다. 존경한다. 또 워호스 얘기를 하게 되지만 그 누가 말의 시각으로 유치하지 않게 전쟁 영화를 그렇게 감동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싶다.


콘택트를 보고

위로 2015. 9. 20. 23:41

이 영화는 작년에 본 시리어스 맨과는 정반대의 메세지를 가진 영화이다.
신이 존재하는냐 존재하지 않느냐의 관점에서 본다면 말이다.
이 세상에 증명할 수 있는 것만 믿느냐 증명할 수 없는 것 까지 믿느냐. 하는 주제를 특이하게 sf 장르로 풀었다.
주인공인 앨리는 과학자로서 증거가 없는 것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나중에는 본인이 그렇게 믿어왔던 그 논리때문에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믿어주지 않는 그들에게 반박을 할 수도 없다.
런닝타임이 좀 긴게 아쉬웠지만, sf면서 이런 종교 철학적 메세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영화다.
또한 과학이 종교와 함께 공존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난 외계인도 믿고, 신도 믿고, 진화론도 믿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잠들기 전 기도도 할거고.


블루 재스민 단상

위로 2015. 4. 10. 00:04

*스포일러 있음

작년에 봤던 영화 중 제일 좋았던 영화 중 하나였던 블루 재스민이 종종 떠오른다.
혐오스러운 여주인공인 재스민의 어떤 부분은 나를 닮아 있기도 했다.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술술 하는 그녀를 보며, 누구든 저렇게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럴 수 있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이외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재스민 동생의 애인이었다. 재스민 말대로 부자 남자를 만나, 팔자를 고치기로 결심한 동생은 애인을 버리고 늙은 부자를 만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애인은 재스민 동생에게 사랑한다고 찾아와서 울고, 너없으면 못 산다고 매달린다.
하지만 다정한 늙은 부자는 알고보니 유부남이었고, 동생은 결국 다시 전애인에게 돌아간다. 언니때문에 불행해질 뻔 했다고 말하는 재스민의 동생과 여전히 동생을 사랑하는 애인. 그 애인은 재스민 말대로라면 삼류 인생에 양아치 3D 노동자였지만,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남자가 나에게 실망할까봐 전전긍긍하고, 거짓으로 만든 내 모습만을 사랑하는 남자와 우아한 척 하며 평생 살아야한다면 정말 괴롭겠지.
재스민 동생이 현명한 선택을 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남자친구도 참 대인배였고.


인터스텔라도 2014년에 본 영화인데 빼놓고 어제 일기에 안써서 짧게 쓴다.
이 영화는 2014년에 내가 본 영화 중 최악 3위 안에 든다.
로마 위드 러브 보다 더 싫었다. 로마 위드 러브는 아이 엠 러브 에 나왔던 잘생긴 이태리 남자배우라도 나오지. 심지어 이 영화는 그런 재미조차 없다!!
난 남들이 좋다고 하면 무조건 싫어하고 보는 사춘기 소녀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대체 왜 그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지 모르겠다. 도저히.
메멘토 때 부터 눈치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필요이상으로 영화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다.
메멘토 봤을 당시 LA 컨피덴셜을 본 직후였는데 두 영화를 비교했을 때 LA 컨피덴셜이 백배는 더 재밌었다. 영화는 LA 컨피덴셜 수준으로 복잡해도 충분히 설득력있고 철학도 나타낼 수 있다고 본다.
관객이 이해하는데 불편함이 있을 정도로 스토리가 복잡하면 안된다는 거다.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집에서 보려다 재미없어서 중간에 꺼버린 인셉션과 동급으로 재미없었고, 심지어 앞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라면 그냥 안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시각효과는 인정한다. 특히 물로 가득찼던 첫번째 행성 묘사가 좋았다.
다크나이트는 진짜 재밌었는데… 베트맨 시리즈가 유일하게 내가 좋아하는 놀란 감독의 영화가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