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블로거들처럼 여행 사진 별로 시간 별로 여행기를 적을 엄두도 안나고 그정도로 부지런하지도 않아서 결국 이런 식으로 여행기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원래 여기 블로그에 쓰던 사진 별로 없는 여행기 시리즈는 때려치고  작년 여행부터 다시 간단명료한 여행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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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애 첫 유럽의 도시를 런던으로 정한 건 순전히 어렸을 적 좋아했던 락밴드들 때문이었다. 특히 Blur  의 London Loves 라는 곡이 아니었다면 난 아마 평생 런던을 안갔을지도 모를 일었다. 

  런던 사람들은 무표정하고, 친절하지 않지만, 우산도 없이 비를 그대로 맞으며 인상쓴 체 걸어다니는 런던 사람들이 딱 내가 그리던 모습이라 한편으론 흡족했다.  

  런던에 도착한 첫날 밤 낯선 호텔에서의 밤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말 내가 멀리 왔구나 하는 생각과 우리집에서는 안들리던 이상한 전기 발전기 소리와 높았던 호텔의 천장. 생각보다 기대되지 않는 여행 첫날밤 기분에 적잖게 당황하면서 깊게 잤다. 

  런던에서 좀 힘들다 싶은 일 그러니까 서비스 직이나, 공항 세관, 음식점 같은 덴 어김없이 이주민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 왜이렇게 친절하지? 하고 보면 영어 발음이 약간 정통 영어 발음이 아닌 이주민들...)  런던 사람 5명 중 1명은 영어 아닌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 이라더니 진짜 그렇구나 싶었다. 타국에 와서 자국민들은 힘들어서 안하는 일 하는 이주민들을 보니 좀 딱했다. 

  나보고 런던 같이 날씨는 수시로 우중충하고 음식은 더럽게 맛 없는 곳에서 평생 살라고 하면 정말 크게 절망할 것 같다. 특히 런던 식당에서 먹었던 수많은 맛없는 음식들을 생각하면, 런던 사람들도 참 불쌍하구나 싶다. 

  작년 런던 여행에서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가는 박물관을 한군데도 안갔다. 그 이유 중 첫째는 해외까지 가서 실내에  갇혀 있는 게 싫어서였고, 두번째 이유는 잉글랜드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 약탈해 온 진열품들을 보기 싫어서였다. 이게 약탈당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복수라 생각했다. 묵었던 호텔에서 대영박물관까지 걸어서 3분이었는데도 여행 끝날때까지 결국 끝끝내 안들어갔다.  이런거 보면 나도 참 별 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데, 별로 후회는 없다. 대영박물관 말고도 런던에 볼 건 차고 넘쳤다. 

  런던 다녀온 지 얼마 안되서 드라마 셜록을 보는데 내가 걸었던 곳, 갔던 장소가 나오니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았지만, 아마 앞으로 다시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런던 갈 돈이 있으면 다른 나라 가겠지. 물가도 너무 비싸니까.


  가이드 따라 다녔던 건 작년 런던 여행이 처음이었다. 가이드 투어 하면 재미 없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도 않았다. 비용만 별로 비싸지 않다면, 난 다음에도 가이드 투어 하고 싶을 정도다. 처음에는 트레팔가 스퀘어랑 버킹검 궁전 그리고 옆에 있는 그린파크 갔었는데 사진이 쓸만한 게 없어서 그 다음으로 왔던 피카딜리 서커스 부터 시작. 

 

   나는 여행 프로그램 같은 거 볼 때도 풍광 이런 거 보다 그 나라 사람들이랑 이야기 하고 대화하고 이런 거 보는 걸 더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 여행을 더 선호하는 지도 모르고. 영어도 안되고 또 원래 낯선 사람한테 말 같은거 잘 못붙이는 성격이라, 런던 가서도 뭐 말한마디 안하고 오긴 했지만, 피카딜리 서커스에 놀러 나온 런던 시민들 구경이 재밌었다. 저 에로스 동상 밑이 런던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날 때 애용하는 장소라고 한다. 

  이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우리나라 서울은 얼마나 사람이 많은 곳인지... 런던 사람들이 약속장소로 제일 많이 애용하는 장소라는데도 저렇게 한가하고 계단에 앉을 자리가 넘쳐난다. 서울도 아닌 인천에서 사람들 많이 만나는 부평역 지하상가 분수대만 해도 저 사진에 있는 거 보다 사람이 약 20배는 많은 거 같다. 서울은 뭐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코엑스 중앙 광장을 생각해보더라도. (그곳은 지옥) 

  아침에 좋았던 날씨가 피카딜리 서커스 갔을 쯤에는 급격히 흐려져서,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저런 날씨로 변해있었다. 

  일요일 낮시간이 사람이 많을 시간은 아니지만, 서울에 비한다면 정말 한가롭다. 난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한가지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것은 바로 런던 남자들이 무지무지 멋있다는 거다. 크크크크. 맘 같아선  그냥 저 에로스 동상 밑에 앉아서 잘생기고 옷 잘입은 남자들 구경이나 하루종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영국 남자들 멋있다는 건 여행 갔다와서 보는 사람마다 아는 사람에게 한 백만번씩은 한거 같아서 그만 말해야 하지만, 오 그것은 진리! 내가 만약에 다시 영국에 간다면 그것은 아마도 영국 남자 때문일지도.

 

  가끔 뉴스에서 우리나라 시내 간판이 너무 천박하다 어지럽다면서 유럽 사례를 보여주는데, 보다시피 런던의 시내에는 건물에 간판도 별로 눈에 안 띄고 예전 건물 그대로 쓰고 있어서 그런지 엄청 고상하다. 근데, 난 우리나라가 유럽 시내처럼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휘황찬란하고 도무지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는 무자비하게 큰 간판이 오히려 유럽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국적일 수 있는 거니까. 얘네들은 매번 이런 건조하고 고상한 건물만 보고 살았으니 오히려 그런 거에 매혹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난 어렸을 때 왕가위 영화 속 홍콩 시내 한자로 된 형형색의 네온사인이 엄청 멋있어 보이고 그랬으니까.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웨스터민스터 사원. 원래는 천주교 성당으로 쓰이다가, 영국이 국교를 성공회를 바꾸면서 부터는 성공회 예배 보는 사원으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아름답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다. 미학적으로 막 뛰어난 건물은 아닌 거 같다. 문에 새겨진 조각은 정말 예뻤지만, 건물 자체로만 보면 균형이 안 맞는 느낌이었다. 

 

  이번에 영국 여행 갔다온 이후로는 유럽에 있는 나라 검색할 때 반드시 종교도 함께 검색해서 보곤 한다. 천주교가 몇% 인지, 프로테스탄트는 몇% 인지 이런 거 말이다. 워낙 유럽의 건축이나 문화 자체가 종교랑 밀접하다보니 그런 거 같다. 


  영국에서도 종교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수많은 사람이 순교했다. 그 때 수많은 사람이 죽은건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는 교리가 지배층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지만, 어차피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데 천주교와 개신교는 왜 그렇게도 죽도록 싸운걸까? 

  나야 개신교도라 그런지, 천주교가 당시 워낙 부패했었기 때문에 개신교가 탄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개신교가 천주교 보다 도덕적이라는 건 아니다. 미국가서 걔네들이 학살한 인디언들만 봐도... 난 전생에 인디언이었는지 그 생각만 하면 머리에 피가 막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든다.) 종교 간의 갈등이 한창 심했을 때는 개종하면 살려주겠다고 해도 절대 개종 안하고 갓난아이를 안고 스스로 화형을 청하는 여자들도 많았다고 하니, 사람들이 신념을 한번 품으면 정말 무섭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빅벤을 보러 왔을 때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도시를 상징하는 무언가가 있는 건 행운인 거 같다.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물은 뭘까? 숭례문? 남산? 

  이것도 그냥 잡지에서 읽은 건데, 사실 영국애들이 만든 저 시계는 워낙 오차가 많아서 몇 년에 한번씩 시간을 수정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세종대왕 때 천문학 연구를 바탕으로 만든 칠정산이라는 달력은 그런 오차가 전혀 없다고 한다. 세종대왕 당시 그정도로 오차 없이 달력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을 비롯하여 세계에서도 5개국 미만이었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우리나라가 전세계에서 top of top 이었던 건 세종대왕 때고 그 이후로는 그냥 계속 후퇴하는 과정인 거 같다. 과학 면에서 보자면.

  영국 여행기 쓰면서 또 뻘소리로 중국 애기가 나와서 말인데, 옛날 중국 사람들은 다 천재 였던 거 같다. 사람들은 중국은 안된다고 무시하지만, 난 솔직히 중국 사람들이 맘만 먹으면 화성에다가 만리장성 자금성 같은 것도 뚝딱 지어놓을 거 같고 그렇다. 무시할 수 없는 나라야. 정말.

  일단 인구가 14억.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이번 영국 여행가서도 중국 사람들의 인구에 다시 놀랐는데, 내가 갔던 모든 관광지의 외국인 중 중국 사람이 50% 고 나머지 나라가 50% 정도 되는 거 같았다. 정말 전세계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중국 사람들. 난 중국을 경외하는 쪽이지만 그래도 중국 사람들은 싫다.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러우니까.

 

  독감으로 집에 갇혀 있는데 여행기를 쓰니 괜한 말이 너무 길었다. 빅벤 이후 본 국회의사당이랑 세인트폴 대성당은 다음 포스팅으로 미뤄야겠다.


  내가 가본 해외는 일본이 유일했다. 일본이야 멀어봤자 2시간. 10시간이 넘는 비행은 처음이었다. 나는 가운데 3명 앉는 자리의 복도 쪽 자리였는데 맙소사 나는 그 긴 시간동안 한잠도 못잤다. 우선 비행기에서 나는 소음이 너무 너무 컸고, 혼자 먼 곳을 가는 거라 긴장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거깃다 우리 비행경로에 문제 생겼다고 비행기 안에서 한 40분 멀뚱멀뚱 기다렸다. 총 비행기만 13시간 탄 건데 나중에는 무릎 어깨 등 안아픈 데가 없었다.

  그렇게 최악의 신체 상태로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히드로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실내임에도 한국과는 다른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고, 바로 엄마와 통화를 했다. 우리 엄마는 내 전화 기다리느라 잠도 못 주무셨다고 했다.

  영국 입국 심사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난 전혀 그런 거 없이 어디 호텔? 여기 처음? 이 두가지 질문만 하고 쿨하게 도장을 찍어줬다.

  전철을 타기 위해 지하로 내려왔고, 티켓을 사려고 러셀 스퀘어 라고 말했는데 표파는 여자는 스퀘어 라는 말을 못 알아들었다. 영국 사람들 스퀘어 발음 참 특이하게 하던데 난 따라도 못하겠다. (약간 스쿠에어? 라고 하는 느낌)

  내가 런던에 도착한 시간이 토요일 밤이었기 때문에 피카디리라인 전철 안에는 놀러 나가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정말 철저히 이방인 이었다. 갑자기 위축이 되서 캐리어만 쳐다보고 사람들 얼굴을 쳐다도 못보고 약 50분 가량을 갔다. 러셀 스퀘어 역에 내렸는데 바람이 쌩쌩불고 너무 너무 추웠다. 

 

 

  내가 묵었던 호텔은 호텔 러셀이라는 호텔인데, 별 4개짜리 꽤 큰 호텔이었다. 러셀 스퀘어 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호텔. 나는 밤에 호텔 제대로 못 찾으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체크인할때 호텔 프론트에서 나한테 무슨 무슨 질문을 한 것 같았는데, 기억은 안나고, 그냥 말이 전혀 안 통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저녁도 못먹어서 배고팠는데 뭘 사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비도 약간 흩날리고 있기도 했고.

  조속히 샤워를 하고 난 후에도 배가 고파서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룸서비스를 시키기로 했다. 수프와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큰 실수였다. 수프가 우리나라 냉면 그릇만한 그릇에 담겨 왔고, 샌드위치는 내 팔뚝길이만 했다. 비싸기도 비쌌고.

  룸서비스를 온 인도 아저씨께서 체크아웃할 때 계산하면 된다고 말하는 거 같아서, 오케이라고 대답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그 아저씨가 다시 와선 너 지금 당장 계산해야 한다고 하는거다. (이유는 못 알아들음) 그래서 프론트로 가서 되도 않는 영어로 이러저러 설명하면서 계산을 하긴 했는데, 하... 프론트 있던 남자애의 도저히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다고 황당해하는 무표정은 나를 더욱더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외국 호텔에서는 룸서비스 시켜 먹으려면 Pre-Authorization 이라고 해서 카드를 등록해야 하는데 내가 그 카드 등록이 안되어 있어서 당장 계산을 했어야 하는 거였다. (스코틀랜드 호텔에서 카드 등록하면서 알게 됨)

  호텔은 정말 좋았다. 화장실도 넓고, 욕조도 있고, 이번 여행 중 묵은 4개의 호텔 중 유일하게 난방을 해준 호텔이기도 하고. 비행 때문에 엉망이 된 피부를 보며 속상했고, 짐을 대충 풀어놓으며 난 벽돌같이 딱딱한 샌드위치와 냉면 그릇만한 볼안의 노란 수프를 종종 떠 먹었다.

  혼자 침대에 누워서 내가 정말로 런던에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 다음으로는 이것이 과연 꿈인가 생시인가 확인도 할 겸, 잠을 청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침대에 누웠고 창문 밖의 전기 돌아가는 나지막한 소음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고요해보이는 내 일상의 작은 사건들과 시시껄렁한 사진들


1. 런던여행 계획



대학교 때 유럽 여행 다녀온 같은 과 친하지 않은 애를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돈 500만원을 그냥 써도 되는 걔 집안의 여유로움이 한없이 부러웠다. 그때부터 나도 유럽을 가야지 가야지 했다. 진짜 가고 싶은 곳은 사실 이탈리아 였다. 

그런데 영국으로 정한 이유는 나 혼자 가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물론 진짜 가고 싶었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이탈리아에 갔겠지만. 이어폰으로 Blur 의 London Love 를 듣는데 정말 런던 가고 싶다. 런던 걷고 싶다. 런던런던런던... 이런 마음이 솓구쳤다.

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영국과 관계 된 것들이 더 많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내가 팝송을 듣게된 계기는 Madonna의 Frozen 뮤직비디오(끝내주는 뮤직비디오였다) 그리고 편집 앨범 Now 3집이었다. (거기서 No Doubt 의 Don't Speak 를 좋아했다) 또 Rock에 눈을 뜬 곡은 부평 미군부대 옆에 살 때 미국 라디오에서 들은 The verve 의 Bitter Sweet Symphony 였다. 당시 나는 미국 팝과 락음악을 너무 듣고싶어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미국 라디오를 하루 종일 틀어 놨는데 농담이 아니라 이 곡이 5번 이상 거의 매일 나왔다. (미국에서도 꽤 인기가 많았나봐 The verve 는 영국 밴드지만...) 

또 제일 좋아하는 앨범도 Radiohead 의 OK Computer 고.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도 Billy Elliott 고. 

그래서 영국으로 결정. 

막상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니 오히려 무덤덤해졌다. 티켓은 정말 비싼 대한항공 직항으로. 

대학교 때 부터 가고 싶었는데 못가고 있다가 큰 맘 먹은 거니까 난 그냥 아낌 없이 돈을 쓸 작정이다.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은 더 아껴서 다른 나라를 더 갈 것이라고들 말할 수도 있지만, 저 티켓값도 의외로 별로 아깝단 생각이 안들었다. 



2. Van Gogh in Paris



몇 년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반고흐 전시회에 갔을 때는 정말 인산인해였다. 난 키도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꽤나 감명을 받았었다. 나 같은 경우는 그 전시회에서 반고흐가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림들이 제일 좋았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에 이은 반고흐 전시회 2탄 이고, 몇 년 후가 될지는 모르지만, 고흐에 대한 전시회 하나가 더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예술의 전당 안내 책자에서 봤음) 이번 전시회 역시 좋았다. 반고흐 초기 작품부터 젊은 시절 파리에서 그린 그림이 준비되어 있는데 저번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봤던 그림들 보다 이번 전시회의 그림은 훨씬 밝고 슬퍼보이지 않았다. 음... 반고흐가 가난하지 않아서 캔버스를 마음껏 살 수 있었다면 더욱 많은 그림을 볼 수 있었겠지. 이번 전시회에서 상당 수의 그림이 썼던 캔버스 위에 또 덧칠해서 그린 그림들 이었는데 안타까웠다.

그런데 반고흐는 캔버스를 재활용하기 전 어떤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를 재활용 할 지 심사숙고 했을까? 아니면 잡히는 대로? 아무리 그래도 심사숙고했겠지?



3. 음반 3장


내 방 오디오는 한번에 3장이 들어간다. 그래서 음반을 살 때는 3장을 사게 된다. 이왕이면 오디오 CD 트레이가 나왔을 때 3장 모두 새로운 CD를 넣고 싶어서. 이 CD 를 살 때는 정말 기분이 우울했다. 너무 우울해서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영국가는 티켓을 예매했으니까.

저번에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들었는데 젊은 시절 Rock 을 듣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Jazz 를 듣는 경우가 많다는데 내가 지금 딱 그 모습이다. 나는 솔직히 정통재즈는 싫어한다. 내가 생각하는 정통재즈라고 함은... 악보 없이 연주되는 것 같은 곡들. 작곡을 하지 않은 곡들. 그런 곡들이다. 나는 딱 Fourplay 와 Pat Metheny Group 이 좋다. 멜로디가 있는 재즈. 그래서 요즘 나는 이 두 아저씨들 그룹 음반을 차곡차곡 모으는 중이다. 근데 이번에 구입한 Pat Metheny Offramp 앨범은 정말로 최고다. 밤에 혼자 들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알고보니 완전히 명반으로 꼽히는 앨범이었다. 저번에 산 Secret Story 앨범도 좋았지만 난 이번 앨범이 더 좋다. 

또 Pat Metheny 가 앨범 표지 디자인에 있어서도 큰 업적(?)이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항상 겉 표지가 참 예쁘고 세련미가 철철 넘친다.

이번 CD 구입의 메인 목표는 Pat Metheny 앨범이었고, 나머지는 곁가지로 산 앨범들은데 Incognito 는 대학시절 좋아했던 Morning Sun 을 다시 듣고 싶은데 멜론에서 들을 수가 없어서 샀고, Simon And Garfunkel 앨범은 9900원이길래...

Simon and Garfunkel 앨범 속지에 배순탁작가가 설명을 썼던데 거기 이메일 주소가 있어서 팬레터를 보내려다가 참았다. 크크크크. 배철수 음악캠프에 화요일마다 나오시는데 진짜 재밌어.



4. 24살의 나 



우리 회사는 회사에서 사용하는 메신저가 없기 때문에 네이트온을 쓴다. 그렇다보니 네이트온은 내가 근무를 하는 한은 계속 접속하고 있는 셈이다. 그 네이트온에서 나에게 쪽지를 보냈는데 그 쪽지는 싸이월드의 과거 사진을 보라는 내용이었다. 들어가서 봤더니 정말 쪽팔렸다. 내가 이렇게 유치했나 싶고 진짜 그 시절 나를 좋아하고 같이 놀아줬던 사람들에게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여 어찌저찌 하다가 저 사진을 발견했는데 24살이었던 2006년을 통틀어서 저 날은 유일하게 내가 즐거웠던 날의 사진이었다. (5월에 친구와 인사동 놀러간 날) 24살은 정말로 지옥같았다. 지금 31살과 저때와 똑같은 24살 중 택하라면 나는 주저없이 31살을 택할 것이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난 진짜 24살때 지독히 우울하고 재수없고 운도 없고 여하튼 내 인생의 최고의 암울한 시기였다. 제일 좋아야 할 시기에 난 왜 그렇게 회색빛의 24살을 보낼 수 밖에 없었을까. 

난 그때 실패한 것들 그러니까 연애, 엄마아빠와의 관계, 학교, 우정... 

줄줄이 다 실패한 것들에 대해서 지금까지도 가끔 곰곰히 생각을 해보는데 내가 얻은 해답이 맞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의 결론을 얻었다. 해답이 아닌 결론... 음 결론이 해답인가. 여하튼 작은 실수와 사건이 인생 전체에 얼마나 큰 타격을 주는지 몸소 뼈저리게 느꼈던 24살이었다. 

내가 마흔 살이 되어서 31살을 떠올리면 진짜 어렸다 혹은 바보 같았다고 회상할 수도 있지만, 저때와 지금의 날 비교해보면 난 훨씬 여유로워 졌고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 

늙어가는 마당에 조금이라도 현명해지 느낌이라도 들어서 다행이다.


그나저나 CSI 가 12시 시작이 아니라 1시 시작으로 늦췄다. 내 일요일을 마감하는 기쁨을 이렇게 빼았기다니... 1시부터 시작하는 드라마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거야. 썩을 MBC. 일요일은 포스팅 하나 하고 CSI 한편 보고 딱 자는게 최고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