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부터 거의 매주 다이어리 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가 다이어리를 몇 번이나 변경하고 그랬더랬다. 원래 저번에 사려고 했던 낢 다이어리를 사려고 했으나, 가볍고 심플한 구성에 끌려서 결국 다른 다이어리를 구입했다.
프랑스어는 하나도 모르는 주제에 프랑스어로 된 다이어리를 구입하다니. 근데 이름이 너무 맘에 든다. april 히히. 4월은 황사가 밀려오지만, 그냥 괜히 설레고 좋다. 난 요즘 빨리 봄 왔으면. 이란 말을 자주하는데. 아직 1월 8일.. 그래도 아마 빨리 올 것이다. 매년 세월이 점점 빨라지니까.
아 그리고 이제금방 티스토리 접속이 안되서 진짜 깜짝놀랐다. 회사에서 막은 줄 알고; - 블로그 안되면 나 진짜 일하는 낙이 없음.
어찌되었든, 결정을 하고나니 저 다이어리에 무한 애정이 샘솟고 있어서 다행이다. (벌써 비닐로 싸기까지 했다. 이쯤되면 애정이 아니라 집착에 가까운데)
그놈의 타이밍. 진짜 연애에 있어서 타이밍이 그렇게 중요한건가? 타이밍이 즉 인연인건가? 타이밍은 제대로 안된 연애에 대한 안타까움을 무마하기 위한 단어인가? 아니면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둘러대는 변명인가?
어찌되었든. 나에게 있어 타이밍이 안좋았다는 말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내가 누굴 좋아하는 것에 무슨 타이밍이야. 내 감정이 왜 타이밍에 따라 좌지우지 되어야 하는거지.
난 내가 어떤 상태이든 어떤 시간에 있든, 타이밍 때문에 이러고 저러했다는 핑계는 대지 않아.
그리고 설령, 그 때는 타이밍이 안 좋았다고. 지금이면 딱 좋았을거라고 한들. 그걸 어떻게 알아.
타이밍 운운하는 인간들은 또 언제든지 타이밍 운운하면서 떠날 사람들일걸. 난 죽을 때 까지 좋아하는 게 먼저고 타이밍은 그 다음이야. 지금 내가 누군가를 죽도록 필요로 할 때 그 누군가가 나타난다고 해도 마음에 없었던 그 사람이 절대 좋아지진 않아.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내가 눈코뜰새 없이 바쁜 순간에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누군가가 나타난다고 해도 난 그 사람을 귀찮아하지 않을거야.
그렇게 타이밍이 중요한 거면.나같이 매번 타이밍 못 맞추는 인간은 어떡하라고.
난 그래. 니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니가 언제 어떤 순간이라도 필요한 사람이어야돼. 기쁘든 슬프든 세상 만사 다 꼴보기 싫은 그 순간에도 말이야. 타이밍 때문에 잘되고 못된다고 결론지어버리는 가벼운 인연은, 이제부턴 나도 싫어.
소득공제 때문에 부랴부랴 모르는 거 알면서 하느라고 정신없는데 전직장 소득자별 근로소득 원천 징수부 라는 것이 없으면 오히려 세금을 더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부러 멀리하고 연락을 피하고 있던 전 직장에 어떻게든 전화를 피해보려고 했으나, 자기 업무 임에도 전혀 신경을 안쓰고 전화연락을 안주는 전 직장의 업무지원부 때문에 결국 일했던 팀 과장님과 전화를 했다.
그 과장님은 결혼하셔서 아들을 하나 두고 있는데, 일하는 6개월동안 과장님과 결혼한 그 분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 중 하나.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유부남과 바람나는 젊은 여자, 사랑과 전쟁스러운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한 건 절대 아니고. (그런 저질스러운 상상을 할만큼 만만한 분도 아니거니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저정도가 내 이상형이다!!! 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골백번씩 했단 말이다. 이런걸 두고 '사모'한다고 말하는건가. 단순히 좋아한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어찌되었든 전화를 하는데 어쩜 그리 목소리까지 좋아주시는지. 솔직히 외모적으로 보면 오히려 잘난 쪽에 들지 않는 외모지만 그 모든 외모적 결함을 커버할 정도의 인격과 기품을 갖추고 계신 분이라. 나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거렸다. 2번의 짧은 통화 끝에 결국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옆에 선배가 얼굴 진짜 빨개졌다고 놀리기까지하고...
어디선가 들었는데 뭔가 새로 시작한다고 해서 그 이전의 것을 깡그리 다 잊고 다시 시작하겠다. 맘 먹는 것은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합니다.
원래 하고 있었던 것을 제대로 하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힘든 일이거든요.
저는 오늘 아침에 2008년의 목표를 하나 정했습니다. 그리 큰 것은 아닙니다.
그냥 저의 목표는 퇴근 후 집에 가서 꾸물대지 말고 바로 씻고, 머리를 감고, 책보고 스트레칭 30분 이상 하자. 입니다.
2007년 입사 이후 저의 모든 피로는 5시 반에 기상하여 1시간 반동안 전철 타고 한강 횡단하며 출퇴근 하는 것 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제 퇴근을 하든 집에 가서 피곤하다고 앉아서 뭐 좀 먹다가 TV 보다가 결국에는 자기 직전에 씻기 귀찮아 하지 말고, 가자마자 씻고 TV 그만 보면서 되도록이면 수면시간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운동하기도 아니고 고작 목표가 잠 늘리기 라니)
그리고 아침에 머리를 안 감으니 약 40분 가량이 절약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머리를 심혈을 기울여 감는 저로서는 약 30분정도는 머리를 감거든요. 거기에 드라이어로 말리는 시간 10분 추가요. 비록 두피의 기름은 자는동안 나와서 아침에 머리 감는 게 좋다고는 하지만, 저는 그냥 전날 밤에 감고 40분 정도 더 자야겠습니다.
아. 저는 왜이리 한심한 목표를 쓰고 있는 것일까요. 크큭.
참. 이번 연휴기간동안 저는 한가지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제가 남들과는 다른 늑골(일명 갈비뼈)를 가지고 있단 사실을요. 평소 제 마지막 갈비뼈가 이상하게 툭 튀어나와있다고 생각했는데 뭐 다른 사람보다 좀 살이 없어서 그런거겠지 했습니다. 근데 솔직히 제가 그렇게 살이 없는 편도 아니거든요. 어느날 엄마가 제 갈비뼈를 만져보시더니 깜짝 놀라면서 이거 큰 문제 있는 거 아니냐며 정형외과에 가보라는 겁니다. 가서 이러저러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허리는 S자형으로 휘었으나 5도 미만이라 치료는 안해도 되고 (그렇다고 이게 고쳐지는 건 아니랩니다. 이미 굳어져버려서) 갈비뼈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위의 갈비뼈와 아래의 갈비뼈의 크기가 다르다면서 선천적으로 이렇게 생겼댑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저는 몸의 왼쪽과 오른쪽의 균형이 맞질 않는데, 돈 들이고 시간 들이면서 요가학원을 다니자니 너무 피곤할 것 같고해서 (또 우리집 주변에 요가학원이 없기도 해요)그냥 집에서라도 운동하자는 생각에 심사숙고하여 운동하는 책도 샀습니다. ;;
며칠 못할거라는 주변의 예상과 달리 평일에는 자기전에 30분 이상 열심히 하고 있어요.
퇴근 후 시간에 공부를 한다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거창하게 알찬 목표를 세우진 못하지만, 그냥 저는 퇴근 후 꾸물대지 말고 속히 자자. 이걸 가장 큰 목표로 잡기로 했습니다.
어제는 서초동으로 이사간 친구네 집에서 1박을 했다. 집들이 선물로 '유기농'잡곡하고 현미, 크림치즈, '유기농'유자차를 줬다. 난 집들이 선물로 잡곡 주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거야. 라고 말했고, 친구는 이제까지 받은 집들이 선물 중 최고야 최고! 라며 기뻐해줬다. 그덕에 괜히 난 우쭐해졌다. 친구네집은 베란다가 없어서 외풍이 너무 심했다. 커튼이 시급해 보였다. 커튼이 안되면 문풍지라도. 난 자취할때도 가스비는 절대 아끼지 않았다. (자랑이냐) 다른 애들 방보다 좁은 원룸이었음에도 가스비가 4만원이 넘게 나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단열이 잘 안되서 내 맘에 흡족할 정도로 따뜻하진 않았다. 혼자 자취하면서 매일 아침 밥을 해 먹는다는 친구의 열성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다고 내가 밥을 안 먹느냐. 그건 아니다. 언제부턴가 아침을 안먹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겠다. 우리 엄마는 내가 늦게 일어나서 밥을 못 먹고 드라이로 머리 말리고 있으면 국에 밥 말아서 가져온다. 그러면 나는 머리 말리고 화장하면서 밥 한수저씩 떠먹고. (나도 엄마도 좀 유난떨긴 한다) 내친구도 내가 사준 잡곡 가지고 계속 아침밥 잘 챙겨먹었음 좋겠다. 싱글침대에서 둘이 자는 건 아무리 여자 둘이라고 해도 좀 좁았다. 흠.. 예전에 내동생은 어떻게 키183에 80키로 거구랑 싱글에서 같이 잤다는거지. 징그러운 녀석들.
친구와 나는 공통적인 신체적 컴플렉스가 있는데, 바로 볼륨이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슴이) 없다는거다. 민망한 주제긴 하지만 사실 난 정말로 한국 속옷 사이즈 중에 내 가슴둘레에 맞는 속옷이 없다. 고2때는 몸무게는 우리반에서 가장 적게 안나가면서 가슴둘레는 최하를 기록했다. 씁. 모 브랜드에서 75보다 작은 가슴둘레 사이즈의 속옷이 나와서 디자인 그리고 값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쪽 속옷만 사입고 있다. 울분을 토하다보니 우리는 몇십분간 그 얘기만 하고 있었다. ;
그 후에는 싸이월드 염탐을 통해 요즘 얘기 하면서 말했던 남자들의 사진을 봤다. 그 남자들은 두여자가 자기 사진 보면서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 거 알면 기분 나쁘겠지만. 내친구가 2년 넘게 사우디로 해외파견 나가는 남자도 괜찮다면 소개팅을 시켜준댄다. 그냥 난 그런 남자가 내 애인이라면 나랑 결혼해서 나도 데려가줬음 좋겠어 라고 말했는데, 진심이다. ; (소개팅도 안해놓고 벌써 이런 생각까지, 이러니 애인이 없지) 아.. 요즘 같아선 진심으로 결혼해서 집에서 놀고 먹고싶다. 결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일하기가 싫어서. 에휴. 하지만 결혼은 혼자서 하나.
염탐을 끝마치고 침대에서 도전슈퍼모델9를 보다가 결국 우리 둘은 너무 졸려서 불끄고 잤다. 좁아서 중간중간 깨긴 했지만, 내 친구의 잠버릇은 정말 best 였다. 숨소리도 없고 뒤척거리지도 않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친구가 부천에 있는 결혼식 간다고 해서 같이 전철타고 난 집에 도착해서 2차로 낮잠을 잤다.
크리스마스가 내일 모레인데 난 계획이 없다. 회사에서 가까운 시청앞 광장도 한번 안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틀 뒤인 내 생일에도 계획이 없다.
난 몸을 엄청나게 사리는 사람이라 어제 밤에 11시에 누웠는데 2시간 넘게 잠을 못 이루며 아.씨. 이러면 내일 진짜 피곤한데!!!! 라면서 끝끝내 누워서 뒤척였다. 누워서 피로라도 풀자 싶어서. 어제는 아빠 생신이었다. 주말에 이미 선물을 드렸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원주에서 보셨다던 '왕이 되려고 했던 사나이' DVD를 추가 선물로 드렸다. 엄마가 맘먹고 갈비를 하셔서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케익까지 아구아구 집어 먹었더니 배가 살살 아팠다. TV에는 온통 대선특집방송만 하는 중 이었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이명박을 지지하지 않아서 여론조사는 다 조작한거라고 라고 믿고 있었다. 난 정동영이 흔히 말하는 사표를 찍었다. 그렇다고 이회창을 찍은 건 아니었다. 난 이명박이 싫다. 어디서 봤듯 경제회생이 대통령의 최대 공약이 되는 것 자체가 비극 아닌가.
어제 누워서는 또 우울한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겐 나 좀 불쌍하지 않어? 라고 말을 했지만, 어제 느꼈던 감정은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찌질한 나 자신에 대한 동정심은 아니었다. 그냥 기분이 계속 좀 나쁘네. 이것도 거짓말이다. 기분 나쁜 것과는 다른 감정이다. 이 생각 자체를 우울한 생각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좀 웃기다.
어제밤에 누워서 2007년에 나에게 어떤 일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나.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렇다. 난 사실 7월에 벌어졌던 사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난 비겁했다. 그렇다. 완전히 비겁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나는 훨씬 더 심하게 모욕하고 비방하고 경멸했을 거다. 그래 이전의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 이후의 그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생각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새삼 깨닫고 있다. 아직도 문득 문득 생각이 나서 괴롭다. 난 아직도 궁금한 것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할 당시 오랜시간 그 말을 기억하면서 괴로워하라는 의도로 그런걸까. 아니면 홧김에 그런 말을 한 걸까. 어떤 의도에서든 나는 당분간은 그 말때문에 괴로워할 수 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될 말을 하면서 이 사람이 내가 한 말 때문에 얼마나 긴 시간을 괴로워할지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었나. 그래.. 솔직히 말하면 한번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다. 내가 이렇게만 말하면 이 상황을 끝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쏟아낸 말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비겁하고 상대방에게 부담과 민폐만을 주는 인물이었다고 해도, 난 진심을 다해 많이 좋아했고.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든 사정이 있을 거라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이해하려고 애썼다. 아니 애쓰지 않아도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 전혀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그게 그냥 너무 슬픈거다. 난 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고 걱정도 많이 했는데 그 사람은 내 일기를 보면서 나에 대하여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살까 생각했다는 것이. 나는 그 사람에게 있어 끝끝내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고 말도 안되는 불만만을 쏟아내는 여자였다는 것이. 그런 중에도 그래도 내가 그 사람에게 아주 큰 의미까지는 아니어도 조금은 의미있는 사람이겠지. 내가 가끔은 위로가 되는 사람이겠지. 라는 어리석은 착각에 빠져서 전화 한통에 울고 웃었다는 것이..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많은 이유들 때문에 7월이후로 난 말로는 다 못할 만큼 가슴이 쓰리다는 거다. 흠. 그래. 뭐 이것조차도 그 사람의 의도와는 완전히 벗어난 말도 안되는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겠지만.
2007년이 끝나고 2008년이 쨍하고 밝으면 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순전히 감정적인 문제라 누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닌데. 난 상대방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여자라는 생각에서 언제쯤 자유로워 질 수 있을지. 극복하자. 제발.
새해가 시작되면 다들 2008년에 해야될 일을 적어보는 것 같다. 다이어리 앞 페이지에도 그런 거 적는 란이 많고. 흠.. 근데 난 그런거 적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사실 지금 당장 원하는 게 뭐냐. 라고 물어본다면 난 항상 구체적으로 말할 딱 한가지 정도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 이외에는 그냥 막연한 것들. 건강하기나 앞으로 별 탈 없기. 이렇게 막연한 것들이기 때문에 말해도 이건 소원이라 하기에는 좀 웃기다. 그건 소원이 아니라 언제나 원하는 것들이니까. 뭐 나의 최종적인 소원은 '마음의 평화' 인데. 이거는 평생이 가도 제대로 되지 않는 걸 아니까 이것 역시 소원이라 하기엔 뭐하다.
그리고 뭘 해야겠다는 결심을 적다보면 거의 적기 위한 결심을 적게 되지 진짜 결심을 적기는 힘든 것 같다. 결심은 그때그때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건가. 나라는 사람 자체가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살기 보다는 그냥 하루 하루 해야할 일이나 잘하고 그날 저녁에 오늘 하루도 잘 끝마쳤습니다. 아멘. 하는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다.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위하여 체계적으로 계획 세워서 실천하기. 정말로 못한다. 딱 한가지 이유를 대자면 '쉽게 지루해하고, 쉽게 지치고 쉽게 포기하기' 때문이겠지. 한마디로 게으르다 이거다.
왜 얘기가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당장의 2008년 소원이 하나 딱 생겼다. 시기부터 원하는 것 까지 아주 구체화 되어 있는 소원이다. 정말로 이것만 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매주 교회에 가서 찬송가도 열심히 부르고 주기도문도 열심히 외울 수 있다. 근데 하필 그 소원이 내 힘으로 어찌 되지 않는 거다. 그래서 내가 어제부터 이렇게 매 순간 기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소원은 바로 전 블로그의 중대결심과도 관계가 있는 것인데 아직 50% 정도 밖에 확신을 못하는 상태다. 나머지 50%의 가망성을 위해서 저는 언제나 입을 함구하고 반항할지도 말지어며 화내지도 말지어다. 주여! (뭐야 왜이래) 어찌되었든 견딜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너무 일이 하기 싫어서 미뤄두고 이런 글을 끄적거리고 있는데, 컴퓨터를 켜도 할 게 없고 읽을 것이 없어서 큰일이다. 정말 재밌는 걸 읽고 싶은데. 출퇴근길에 책읽기는 너무 심심해서 열심히 하고 있지만 일하는 시간 중에 책을 꺼내서 볼 수도 없고.
아. 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책이 깊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경영학 서적들과 이 책대로 하지 않는 당신은 우주에서 가장 멍청한 꼴통이라고 말하는 듯한 계몽서적이다. 그 책과 관련하여 요즘 난 좀 웃긴 사진을 봤다.
잊고 있었는데 내일은 대선투표일. 나는 쉬지 않지만, 다른 분들은 민주시민의 권리 행사하시고 푹 쉬는 하루 되셨음 좋겠다. 흑!
어제 모 협회에서 주관하는 연말행사에 갔다. 협회이니만큼 여러 회사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다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다. 보면서 참 중년이 되도록 회사에서 버티려면 장난아니었겠다 싶기도 하고 사회생활을 5개월 남짓한 나에게는 존경스럽기도 하고 그랬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그 사람을 잘 모르지만.
거기서 그냥 마지막 행사로, 재미삼아 경품 추첨 행사를 했다. 참가한 회사들이 협찬한 경품을 주는 거였는데, 원래 경품 같은 거 응모하면 1등은 못해도 3등 4등 정도는 잘 되는 편이라 나도 한 개는 되겠거니 하고 있었다. 내가 눈독들이고 있었던 건 리바이스 청바지랑 가습기랑 건강검진상품권, 글로코사민이었다. 내 번호는 38번이었는데. 오오 38광땡 이러면서 행운의 번호다. 하면서 좋아하고 있었다. 화투는 태어나서 한번도 못쳐봤으면서 이런 건 또 알고 있어서.
상품소개를 마치고 사회자는 38번! 을 외쳤다. 오오오. 아저씨들이 엄청 부러워한다.
내 상품은 벤츠 산 사람들한테 주는, 메르세데츠 벤츠 무뉘가 어지러이 찍혀 있는 골프용 가방, 골프 장갑, 골프용 우산, (골프용인지 뭔지 모를) 카드지갑 이었다. '이걸 어디에 쓰라고!' 라면서도 공짜라 받아서 가져왔다. (소시민이라 주변에 골프치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음) 골프용 가방은 다행히 골프채 넣는 가방은 아닌데 너무 커서 어디에 쓰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옆에 있는 주머니에 캐리어가방처럼 끌 수 있는 장치를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밑에 바퀴도 있고. 흐흐. 이건 여행을 위한 하늘의 선물??;; 벤츠 당첨이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크큭. 벤츠경품은 있지도 않았지만...;; 골프장갑은 운전할 때 끼면 좋다고 하니까 고모드리고 골프우산은 큰 우산 좋아하는 아버지를 드리기로 했다. 캐리어가방 없어서 하나 사려고 했는데 잘됐지 뭐. 청바지가 안된 게 못내 아쉬웠지만 어차피 사이즈가 안 맞는 거였고, 가치로 따지면 내 것이 더 비싼거라고 하니 그냥 참아야지.
돌아오는 길에는 나의 중대 결심에 대해 말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사실은 요즘 정말 큰 고민 한가지와 두번째 큰 고민 한가지가 생겼다. 저번 블로그에도 몇 번 등장한 오빠가 한 명 있는데, 내가 23살때부터 어찌되었든 날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근데 내 감정은 음.. 농담이 아니라 그냥 고등학교 친한 친구만큼 편하다. 이게 끝. 한 번은 오빠는 내가 왜 좋은데. 물어봤더니 그냥 너랑 있으면 제일 재밌어. 이렇게 말을 했다. 재밌어. 재밌다. 재밌어. 흠.. 그래 아주 솔직한 대답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재밌어. 음..
입사초기가 힘든 시기인만큼 내가 이 오빠에게 전화하는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는데, 어제도 역시 요즘 정말 큰 고민 한가지와 그에 대한 내 결단을 대해 말을 했다. 왠지 예감이 좋으니 잘해보랜다. 아아. 이제서야 좀 안정이 된다. 전화를 끊고 전철안에서 졸리는 가운데 든 생각이, 언제부턴가 내가 뭘 결심하거나 하려고 하면 이건 어때. 저건 어때. 하고 그 오빠에게 물어보게 되고 그 오빠는 하면 괜찮겠다. 안하는 게 낫다. 말을 해주고 난 거의 100% 그 말에 따르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내 행동은 그 오빠가 생각하는 범위에서 단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데, 처음에는 설마 설마 하다가 한 2년 지나고보니 정말로 다 그 오빠 말대로 되어버린 경우가 99.9% 인거지. 아니 어떻게 그렇게 잘 맞춰? 물어봤더니 난 예상보다 굉장히 단순하고 행동을 예측하기 쉬운 애 랜다. ;; 흠. 난 내가 굉장히 복잡미묘한 존재인 줄 알았는데. 어찌되었든 2년간 나에 대해 어느정도 연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어느새 그 오빠에게 의지하고 있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귀고 싶냐? 오오. 이기적이게도 또 그건 아니다. 이거다. 정말로 고등학교 친구 같다니까. 근데 만약에 그 오빠가 갑자기 내 곁에서 휙 하고 사라진다면? 오오. 난 누구한테 조언을 구하나. 이런거다.
요즘 나의 두번째 고민은 바로 이거다. 이것도 사랑의 다른 모습인걸까? 만약에 그렇다면 사귀어볼까. 하는 것. 내년에는 그냥 자기랑 연애를 하자는데. 그럴때마다. 왜이래 또. 우울해? 라고 말을 하는데. 아악. 사실 우울한 건 나다. 이러다 실컷 사귀어놓고 헤어지면 어떡해? 으으. 모르겠다. 정말로.
참고로 내친구는 그냥 만나보랜다. 하긴 2년 넘게 이렇게 잘해주기도 힘들지.; 흠. 열정보다 강한 건 순정이라던데, 나 사실 말은 이렇게 고민중이라고 해도 80% 정도는 넘어간 거 같다. 근데 문제는 내년에 이 오빠가 취직해서 내려가면 거의 못 볼거라는거지.
예전에 재수할 때 논산훈련소 나온 게 훨씬 좋은 데라고 하던데. 90%는 전방으로 빠진다는 의정부 훈련소가 나왔으니.
내동생은 4살 때 뇌막염에 걸려서 거의 죽다 살았다. 당시 8살 이었던 나는 그때 집안의 분위기를 똑똑히 기억한다. 난 그때 1학년이라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살던 곳이 너무 시골이라 매일 1시간 넘게 산을 넘어 학교에 다녔다. 다른 애들보다 항상 성장이 뒤쳐졌던 나는 학교를 왔다갔다 할 때마다 기진맥진 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많이 아프다는 것은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부터 느껴지는 것이리라. 8살 짜리 내 머리속에는 어렴풋하게 동생이 크게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고 한 번은 학교에 있다가 수업도 다 안듣고 집으로 와버린 적도 있다. 너무 우울한 마음을 어떻게 감당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장 고생한 건 내동생이겠지만 말이다.
당시 내동생은 성인 남자들도 고통에 몸부림친다는 골수주사를 눈물은 커녕 비명 한번 내지르지 않고 견뎌내서 간호사와 의사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만큼 독한 꼬마였다. 그 뒤로 며칠 간 실어증 걸린 애처럼 한마디도 안해서 온가족이 공포에 떨긴 했지만. 독해서인지 내 동생은 일체의 합병증을 얻지 않은 채 퇴원했다. 그렇다하더라도 뇌막염의 휴유증은 꽤 큰 것이라 몇 년동안은 내동생은 잘 아팠고 그에 맞추어 나의 하루 일과 중 학교 갔다와서 동생 병원 데려가기는 제일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다행히 중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동생은 많이 건강해졌는데 걔네 중학교가 체육시범학교라 매일 아침 운동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정책을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은 권투다. 하면 권투하고 그 다음날은 축구, 하면 축구하고, 그 다음날은 허들 이렇게. (운동장에 육상 트랙까지 있었으니) 중학교 졸업하면서 엄마가 교장선생님한테 건강하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편지 쓴다는 걸 나랑 동생이 간신히 말렸다. (운동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직접 눈으로 보고도 이 누나는 운동을 안한단다. 흑)
어찌되었든, 2급 현역 판정을 받고 육군훈련소로 갈 날짜를 받아놓은 동생이 조금 안쓰럽다. 그래도 건강해서 군대 가는 게 많이 아파서 군대 못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