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군대에 갔다.

일상 2008. 2. 27. 11:27

어제는 동생의 입대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의정부에 갔는데 그곳이 바로 306보충대. 눈이 별로 없는 겨울이었는데 어제 아침에는 눈이 엄청 쌓여 있었다.
어제 군대가는 인원이 약 2400명이라는데 다들 어찌나 어리든지 내가 나이 먹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일이 많으셔서 못갔는데 지금 생각으론 안가시길 잘한 거 같다. 가면 100% 많이 우셨을 것 같아서..
집앞에서부터 우셨는데 가셨음 많이 우셨겠지.
내가 보기엔 그냥 군대 보낼때 안울고 잘가~~ 라고 말하는게 가는 사람한테나 가족한테나 좋은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냥 잘 갔다오라고 하고 울진 않았다. 몸 아파서 안가는 거 보단 낫잖어~ 하고 말았지.
2월 말에 들어가는 거고 3월부턴 점점 따뜻해질테니까 날짜는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100일휴가가 없어졌기 때문에 동생은 7월 경에나 휴가를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아직은 실감이 안나는데 나중에 동생 옷이 소포로 도착함 진짜로 실감 나겠지.

내가 가봤던 훈련소는 친구들 & 나 & 전 남자친구가 갔던 공군 진주 훈련소 인데, 4월이라 날씨가 징그럽게도 좋았다. 걔 갈 때는 눈물 났는데. 흐흐. 뭐 많이 어렸으니까.
근데 내 주변에 의외로 그 진주 훈련소 다녀온 여자들이 많다. 흠.. 공군 가는 애인 둔 사람들은 많이들 가는건가? 내가 그냥 흘리는 말로 나 진주 훈련소는 가봤는데. 라고 말하면 주변에서 나도. 나도. 이런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란다는 거.

동생을 보내고 차를 타고 오는데 차가 어찌나 밀리든지,(밀리는 게 당연하지만) 5시쯤 집에 도착해서는 눈알이 튀어나올 듯 머리가 아파서 허겁지겁 타이레놀 이알을 먹고 잤다. 자고 일어나니 8시. 그렇게 자고도  밤 되니까 졸려서 컴퓨터 좀 하다가 12시 쯤 잤다.

오늘 아침까지도 우리 엄마는 기분이 완전히 다운된 상태. 하지만 뭐.. 내동생이 바보도 아니고 대부분은 몸 건강히 다녀오는 군대니깐 잘 다녀오리라 믿는다.

거기 있던 2400명 남자애들 오늘부터 어제와는 전혀 다른 하루가 펼쳐질 거란 생각이 하니 쌩뚱맞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하는 일을 안해도 되고, 매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당연해지지 않아 지는, 한 사람의 인생이 변하고 인생이 너무 거대하다면 하다못해 한 사람의 생활패턴이 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은 얼마일까?
난 단 1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귀던 사람이 헤어지자고 하는 순간. 내가 사표를 내는 순간. 한국을 떠나는 순간. 결혼하는 순간. 등등 모든 게 다 순간인데. 그 순간을 전후해서 더 행복할 수도 더 불행할 수도 있는건데.
쉽게 변할 수 있을 것 같은 내 일상은 왜이렇게 하루하루가 구질구질하고 재미없고 지루한걸까. 다만 지금 여기만 아니면 어디라도 더 즐거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뭐가 있을까.
문득 내가 직장인이 되었다는 게 지금 인생에서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적어지는 거 아닌가 싶었다. 사실은 그럴만한 용기가 없어진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몸이 안좋아서 그런지 우울한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 제발 뭐라도 하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여행은 이미 한 1년전에 갔다온 것 처럼 까마득해진지 오래고.

P.S 저번에 엘리베이터에서 이사님을 만났다. 처음 들어올 때 면접을 보셨던 분이라 날 기억하고 계셨는데, 오랜만에 본거라 그런가 "일은 이제 좀 재밌나?" 하고 물어보시는 거다. 한심하게도 난 거기에 대고 되물었다. "근데.. 일을 재미로 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나요? " 라고. 크하하하하. 나 참. 간도 부었다. 그 때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진 못할지언정 이런 망언을. ;; 내 물음에 대한 이사님의 대답은 당연히 있다면서 그 사람 중 하나가 나라고 하시는거다.
난, 흥! 거짓말! 말도 안돼! 라고 생각했다. 물론 속으로만.


절실했다.

일상 2008. 2. 21. 17:13
어제는 전철안에서부터 완전 재수 옴 붙은 날이다.
그런 날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날.
어제는 하루종일 진짜 재수가 없었다.
피곤한 하루가 지나고 금요일. 금요일임에도 전혀 힘이 나지 않는다.
내일도 일하러 와야하기 때문이다.
피곤이 뚝뚝 떨어진다. 우리나라 평범한 직장인 중 만성 피로 아닌 사람이 있겠냐만은..
2월은 여행도 갔다왔는데 왜이렇게 하루하루가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피곤해서 나타나는 증상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이제 한차례 마무리 되었나? 했는데 이젠 귀에 염증이 생겨버렸다.
아.. 내일은 하루종일 바깥에서 일해야하는데 아. 피곤해.
마음껏 자고 싶어. 집에 가고 싶다고!!!! (절규)
의도적으로 어제 점심 때 말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웃긴 것도 많이 봤는데 상태가 워낙 메롱이라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으으. 만성피로여!

그냥 내가 본 웃긴 것들이 혼자 보기 아까워서 포스팅 한다. 한 번은 헛웃음이라도 웃게 된다.





내가 쓰는 사무실 컵

일상 2008. 2. 21. 15:19
지다님께서 올리신 글 보고 갑자기 나도 내 컵을 소개하고 싶어서 이렇게 급 포스팅!

난 밥을 먹자마자, 컵을 쓰자마자 바로 설거지 하는 깔끔한 성격이 아니라 자취할 때도 자기전 딱 한번 설거지를 했는데 하루종일 집에 있다보면 가장 헤프게 쓰게 되는 것이 바로 컵 이었다. (여담이지만 저번에 친구가 새언니 성격 진짜 드럽다고 밥 먹고 설거지도 안해놓고 상도 안 닦아놓는다고 하는데 솔직히 좀 놀랬다. 원래 밥 먹자마자 설거지 하는건가..싶어서.. ; 친구네집 놀러갔을 때도 친구가 밥 먹자마자 설거지 바로해서 놀래고.)

그래서 난 혼자 살면서 컵을 진짜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손잡이 떨어지고 깨지기도 많이했다. 근데 손잡이 떨어진 컵은 그냥 뭐 쓰는데 문제 없어서 청승맞게 손잡이도 없는 컵 대충 쓰고.. 그랬다. 근데 난 손잡이 떨어진 컵은 그냥 써도 이빠진 그릇에 밥 먹기는 죽어도 싫다. 저번에 친척언니네집에서 한달정도 얹혀 살 때 그 언니네 집 밥 그릇 중 이 안 빠진 그릇이 하나도 없었다. 맘 같아선 그냥 사고 다 갖다 버리고 싶었는데 사주는 것도 건방지고 남 살림에 신경쓰는 것 같아서 참았다.

우리집에는 엄마가 시집올 때 사온 그릇이 아직도 많은데, 난 엄마한테 '엄마 안 쓰는 그릇 나 시집갈 때 그냥 가져간다. 모자르는 것만 살거야.' 라고 말했는데.. 거의 진심이다. 별로 그릇 욕심이 없다.
우리 엄마는 국그릇, 밥그릇, 접시 같은 것엔 나와 마찬가지로 관심이 전혀 없는데 유독 반찬그릇 욕심이 많다.
그릇은 아니지만 또 특이할만한 점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쓰던 수저 젓가락을 아직도 사용한다는 거. (어린이 용이라 젓가락도 짧고 수저도 작지만 그냥 쓴다) 이것 역시 엄마가 시집갈 때 가져가랜다. 흐흐.

서두가  길었지만 내가 사무실에서 쓰는 컵은 바로 이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치 옷차림에 전혀 매치되지 않는 모자를 쓴 것처럼 어색해보이는 저 뚜껑은 예상하셨다시피 지 짝이 아니다. 그냥 어찌어찌 하다보니 딱 맞길래 같이 사용하고 있다. 이 컵은 원래 2개가 한 세트인데 한 개는 자취하다가 깨졌다. 저기에 커피도 마시고 우유도 마시고 차도 마시고 그런다. 그리고 내가 퇴근하기 전 꼭 하는 일은 컵 설거지 해 놓기다. 근데 사무실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수세미가 너무 불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개인 수세미를 하나 사놓고 싶은데... 요즘에는 너무 더러운 생각이 들어서 그냥 손을 깨끗하게 씻은 후 손에 세제 묻혀서 컵을 닦는다.

메모의 기술(?)

일상 2008. 2. 13. 16:36

1 26일에 오랜만에 신촌에서 친구를 만났다. 다른 선배도 동감하는 바 중 하나가 요즘에는 남자 만날 때보다 (근데 나 남자 만날일도 없지만) 여자 만날 때 겉모습에 더 신경이 쓰인다. 뭐 내가 쟤한테 기죽지 말아야지 이뻐보여야지 그런 수준을 다 떠나서 그냥 나랑 걸어다니는 거 자체가 꺼려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고, 솔직히 말해서 친구가 이뻐 보임 샘나기도 하고.;; 흐흐.


겨울이 시작되면서 거금 20만원을 주고 원피스를 구입하고 딱 한 번 입고 안 입었던 원피스까지 챙겨입고 나갔더랬다. 뭐 사실 입을 일이 없기도 했다. 외출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니다보니. 입고 나갔다가 낮 온도가 영상 8도 이상이 되기 전에는 다신 치마를 입지 않으리 결심했다. 그 다음 이튿날 까지 기침 나고 콧물 흘리고 고생했다. 아니 다른 여자들은 도대체 이런 날씨에 어... 치마를 입고 다니시는 건지!!! 난 온몸이 지방질인데도 이렇게 추운데.

 

신촌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현대백화점 가서 구경하다가 모자를 하나 샀는데 일명 탕웨이 모자다. 기회가 되면 사진 찍어 올리겠지만, , 계 마지막 장면에서 탕웨이가 썼던 모자랑 모양이 거의 비슷한데, 모자 안달린 코트 입을 때 하도 추워서 샀다. 살 때는 어후. 이거 쓸 수 있으려나? 했는데 어찌나 잘 쓰고 다니는지. 대만족 중이다. 새벽에 사람도 별로 없고 내가 추워서 쓴다는 데 뭔 상관.; 전철 탔을 때 다른 때와는 다른 시선이 느껴지긴 하지만. (대략 쟤 뭐야? 이정도?)

 

백화점을 구경하고 올리브영, 토다코사 같은 데서 향수도 뿌려보고 화장품도 구경했는데 거기서 우리 새해에는 좀 이뻐져야지! 하고 결심을 하면서 친구는 한번도 해본 적 없다는 ‘어두운 초록색아이섀도를, 나는 한번도 그려본적 없는 리퀴드 아이라이너를 샀다. 예뻐지기 위한 노력 치고는 너무 소극적이지만 말이다. 근데 결국 뭐 이럴 줄 알았지만 아이라이너 사놓고 한번도 안그렸다. 난 대학때 화장 기술이나 연마하지 당최 대학내내 뭐 했는지 모르겠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먹고 나가기 바빠서 색조화장은 꿈도 못꾸는데 아이섀도는 한 때 이상하게 여러 경로로 내 손안에 많이 들어왔다. 다들 싸구려고 얻은 것이지만, 심지어 금자씨에서 나왔던 빨간색도 있다. 근데 원체 내 눈 자체가 지방을 잔뜩 머금은 너무나도 몽골리안 스러운 모양을 타고 나서 아이섀도 해도 보이지도 않고 그런다. 아 다음 생에는 이목구비 뚜렷한 미인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하나님.

 

따뜻한 저녁을 먹고 차 마시고 친구가 나 서점 좀. 메모의 기술 좀 사려고.” 이러는 거다.

나는 막 과민반응을 보이면서 어머 어머!!! 그런 책이 다 있어? 왠일이야~~”

난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 얘가 왜 그런 책을 사지?” 이러면서 잠시 심각해 하면서 망설였다.

그 다음 친구가 회의하면 도저히 어떻게 적어야 할 지 모르겠어서~” 라고 말을 하기 전 까진 몰랐다. 그 책의 이름이 메모의 기술인 줄은.

부끄럽지만 난 그걸 애무의 기술로 알아들었다.

 

난 회의할 때 메모도 거의 안하고 대충 낙서나 하고 도대체 언제 끝나나만 생각하는데 메모의 기술까지 읽으면서 회의 내용을 메모한다니!

뭐뭐 하는 방법’ ‘뭐뭐 하는 기술’ ‘뭐뭐 해라이런 류의 책들 너무 싫은데. (괜한 심술은)

발등에 불.

일상 2008. 1. 31. 23:17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5박 6일 오사카 여행 일정을 이번주에야 눈 벌게지면서 짰습니다.
제 동생이 책 두권에 있는 일정 그대로 움직이면 된다고 배짱을 부리고 안한 결과지요.
뭐 애초에 예상은 했지만 말입니다.
그 덕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피곤이 누적된 상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저는 '내가 이것 때문에 산다.' 대략 이런 상태랄까요.
또 한편으로는 갔다와서 우울해서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왜 벌써 걱정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2월 2일 12시 20분 비행기로 떠납니다.
비행기도 처음. 해외도 처음. 일본도 처음. 입니다.
저 생각보다 촌스럽게 살았더라구요.

통장잔고는 바닥나고 있지만, 그래도 재밌을 것 같아서 기대되고 있어요.
무사히 갔다오도록 응원해 주세요!

P.S 저 TV 틀어놓고 컴퓨터를 하고 있었는데요. 이 글과 전혀 상관 없는 글이지만, 저는 마지막에 예고 안해주는 드라마 너무 싫어요. ;;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없어!!!! 왜 뉴하트 예고 안해주는거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옆의 사진을 공개하는 건 내가 내 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는 줄 알면서도, 워크샵때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선 이 사진만큼 적절한 것이 없기에 공개한다.
옆에보이는 저 쭈그려 자고 있는 인물은 여러분들도 예상하셨다시피 본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사진이 찍혔는가. 그렇다. 난 워크샵을 갔던 금요일 밤 술에 완전히 취해서 화장실 앞에서 잤다. (왼쪽에 조금 열린 문이 화장실 문 임)
  우리회사는 그닥 큰 회사가 아니라서 숙소를 좋은 곳을 잡지 못했는데 뭐 자는 곳이야 그렇다치고 금요일날 4시간 넘게 행사가 있었던 '실내'는 말이 실내지, 사람들이 물을 바닥에 흘리니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버리는 그야말로 바깥 보다 못한 실내였다. 진짜로 발이 얼어서 죽는 줄 알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부장님의 동물적 센스로 인해 우리팀은 워크샵 행사에 참가 안하고 주관하는 쪽으로 빠지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뮤지컬이나 난타 마임 탈춤 등 다른 사람들이 하는 초큼 민망한 행사에 다 열외로 빠질 수 있었다.

  금요일 행사가 다 끝나고  술을 마셨는데, 솔직히 말하면 난 어느자리에서고 술 못마셔서 고생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감사하게도 난 우리 집안의 나름 탁월한 알콜분해효소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알콜분해효소와 함께 술을 사랑하는 마음도 타고났다. 헐)
  1차로 식당에서 팀끼리 술을 적당히 마시고 방으로 왔는데, 우리 방은 사원급만 5명이서 쓰게 되어 있어서 그나마 맘이 편했고, 또 다들 나랑 친한 선배들이랑 방을 같이 쓰게 되서 난 매우 만족하면서, '우리 다른 방에서 안부르면 그냥 나가지 말고 씻고 윤도현의 러브레터나 보다가 잠들어요. 호호호!!!' 하고 짝짜쿵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왠걸. 우리 팀 최고 주당인 대리님께서 바로 전화를 하셔선 당장 내려오라고 하시는 거다.(대리급들 방은 밑에 층 이었음) 거깃다 그 대리님은 대학 선배이기 까지. 이미 1차에서 나를 '자기~~ ' 라고 부르시며 옆에 끼고 연거푸 쏘맥을 들이키라고 강요하셨던 대리님이셨다. 아아. 맞다. 예전에 '난 니가 탐나' 비법을 알려주신 대리님이라고 말하면 편하겠구나. 워낙 대리님 성격이 호탕하고 웃기기까지 하셔서 내가 좀 따르는 분이라.. 안내려가기도 뭐했다.
  이미 1차에서 그 대리님이 쏘맥을 직접 제조해서 주시며 원샷 원샷을 외치셨고, 내가 좀 끊어 마시니까 "식도를 열고! 한번에 원샷!" 라고 뭐라 하신 상태였고, 내려가서도 날 옆에다 앉히고 컵 없으니까 아쉬운대로 커피잔에라도 마시라면서 손잡이 달린 커피잔에 계속 쏘맥을 주시는거다.

  난 순수하게 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술자리는 별로 즐기질 않아서 대학 내내 쏘맥을 마셔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내 주변도 쏘맥 마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솔직히 말하면 쏘맥은 소주와 맥주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또한 이제까지 10명이상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남자가 없었던 적도 한번도 없었다. 친구들이랑 마실때 많아야 3명이지 여자 10명이서 미친듯 술을 마시는 시츄에이션은 평소 때 만들기 힘든 시츄에이션 아닌가.
 도저히 못 마시겠다고 도망도 가봤지만 결국엔 발을 잡고 질질 끌려와서 술을 마셨는데 심지어 내가 옷장안에 숨으려고 까지 했댄다.(본인은 기억 안남) 그때 난 이미 적어도 소주 2병 맥주 3병 이상을 섞어마신 상태였다.
이 다음부터 필름이 끊긴 것 같은데, 지금 상태에서 기억나는 상황을 말하자면.

  더 이상 못 마시겠다고 아예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옴 - 술을 깨야겠다고 생각하고 야외 주차장을 두바퀴 걸음 - 그래도 술이 안 깨서 로비에 있는 쇼파에 앉으려다 강하게 엉덩방아 - 전화함 - 전화 내용 기억 안남 - 전화하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 방으로 돌아감 - 어쩌다 화장실 앞에서 자게 되었는지 기억 안남 - 화장실에다 두차례 토함 - 지쳐 잠듬.

  일단 취중에도 내 방을 제대로 찾아간건 칭찬해줄만 하다. 취한 기분에 다시 그 술판이 벌어지는 방으로 들어갔음 진짜 큰일날 뻔 했지. 그 술판은 새벽 4시경 끝났다는데 4시에 돌아와보니 내가 위에 보이는 사진 처럼 화장실 앞에서 자고 있었다는 거다. 더욱 충격적인 건 내가 토하느라고 입과 머리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있고 나머지 목부터는 방바닥에 있었다는 건데, 다행이다. 그 사진은 안 찍혔다. ;; 근데 이 사진을 찍은 분들 진짜 야속한 게 날 아침까지 저 상태로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방안에서 이불 덮고 자고 나는 화장실 앞에서 자다가 너무 추워서 아침에 깼다. 흑. 내가 도대체 왜 나를 그대로 두신 거냐고 뭐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웃겨서' 였다. 아니 웃겨서라니!!!!!!!

  토요일에 일어나서도 나는 속이 미식거려서 밥 한 술 못먹었는데, 토요일에 저 진짜 미칠 것 같다고 말했더니만 어제 뛰쳐나갈 때 '겉보기에는' 지극히 정상이었댄다. 절대 정상이 아니었는데. 또 하나의 실수는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토를 했다는 건데 이것 때문에 같이 마신 사람들이 다 내가 '술 엄청 마시고도 멀쩡한 애' 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뭐 술병이 나고, 쏘맥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진 것과 나중에 또 술을 엄청 마실 가능성이 높아진 것 이걸 다 제쳐두고라도 사실 진짜 큰일은 따로 있다. 위에서 강조한 것으로 예상하셨겠지만, 저 전화가 문제다. 왜 전화를 그 오빠한테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도대체 왜 예전에 사귀던 사람한테도 안하고, 죽도록 좋아했던 사람한테도 안하던 짓을 도대체 왜 한 건지!!!! 여기서 말한 그 오빠는 힘든 일 있음 매일 상담해준다는 그 오빠인데. 토요일 아침에 밥을 못 먹겠어서 충주호 주변을 혼자 산책하다가 불현듯 내가 어제 전화한 게 꿈이었나 아니었나 긴가 민가 해서 전화목록을 봤더니 떡하니 그 분 이름 세글자와 함께 새벽 1시 58분 이 찍혀 있는 거 아닌가. 거기에 전화도 짧게 한 것도 아니고 14분 09초 씩이나.

  토요일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걸 어떻게 하나 하다가 '그래 그냥 아예 기억 안나는 척 하는거야!' 라고 마음을 굳힌지 5분도 안되서 결국 궁금한 마음에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한거냐고 전화로 물어봤는데, 한동안은 얘기를 안해주다가 저번주 금요일에서야 그 답을 들었다. 일단 그 당시 나는 4개의 문장을 무한 반복했고. (무려 14분 동안이나) 막판에는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 하다가 끊었다는데, 그 말을 그 분에게 들으면서 얼굴이 어찌나 화끈 거리든지.
  거기에 한 편으로는 그 분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 지 뻔히 아는데 취중에서까지 미안하단말만 되풀이 한 것 때문에 미안해져버렸다. (헉. 미안한게 또 미안해져버렸네) 하긴, 미안하단 말 듣는게 얼마나 짜증나는 건지 아는 나는 맨정신에선 미안하단 말을 한 번도 안했지.
 
  웃기는 건 이정도 했음 좀 쪽팔리고 어색해질만도 한데 결국 또 그 분과는 예전 그 상태로 그대로 돌아왔다는 거다. 역시 우리 둘이 그 분이 원하는 대로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장애물은 너무 편해서인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 분과 이제 약 7주간은 연락을 못하게 되었다. 7주동안 있어보면 결판이 날 지도 모르겠다. 허전할 수도 있고,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고.


비애

일상 2008. 1. 26. 00:32
이렇게 말하면 거창하지만,
인간으로서 필연적으로 느끼는 외로움을 맞대하면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 건지 막막하다.
단순히 말하는 애인이 없기 때문에 친구가 없기 때문에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르다.
이런 외로움은 내가 처음으로 구구단을 외울쯤때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으로 이유는 전혀 없는 순도 100%의 비애다.
이유도 없기 때문에 해결책도 없고 당분간은 그저 이러고 있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안다.  
저번에 박완서 소설 중에서 어렸을 때 마루에서 서서 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는 것과 똑같은 경험을 한 적 있는데,
8살 때였나 9살 때였나 혼자 놀러 나간 날, 산 뒤로 해가 기울기 시작해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광경을 바라보는데 그 자체가 갑자기 너무 슬퍼서 눈물만 뚝뚝 흘렸던 경험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 나이 때부터. 그리고 지금 26살이 된 지금까지도 잊을만 하면 고개를 쳐드는 이 감정은
어차피 안될 걸 알기 때문에 정신없이 그 감정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결국에는 자기 전 혼자 훌쩍 거리며 우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버리는 그런 감정.
그렇게  울다가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스스로가 가증스러울 정도로 내가 언제 울었냐는 듯.
원래 하던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하고 또 그냥 그런 하루가 끝나버리는.

하지만 아무도 모르겠지.
나 조차도 외면하고 싶어 발악하는 그 끝도 없는 외로움을.

 




친한 언니 만나기

일상 2008. 1. 14. 19:00
일요일에는 학교다니면서 친했던 언니를 만났다. 얼마만인지 모를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언니를 2006년 여름 이후로 처음 만난 거였다. 1년 반 만에 만난 언니였다.
만나려고 맘만 먹으면 이렇게 쉬운 걸. 그동안 이상하게 시간도 안맞고 여러가지가 안 맞아서 못 만났다.

그 언니는 일본에서 약 1년정도 살다 온 언니라, 일본 여행에 대하여 물어보려 했으나, 애초에 머릿속이 백지장 상태라 물어볼 것 도 없었다. 일본 여행 갔다온 다른 오빠는 계획 세워서 제대로 갔다와야 한다고 하고, 이 언니는 그냥 책 한권만 가져가서 그날 그날 일정 잡아도 된다고 하니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둘다 일본어 능통자라 결국 나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지만.

토요일에 아주 쪼금 맛보기로 여행 첫날 일정을 잡았는데, 이렇게 책으로 보아한들 뭐가 도움이 되랴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떤 전철 타고 가는지는 알아야지.

홍대에서 오랜만에 만난 언니와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밀도 높은 수다를 떨 수 있을까. 감탄할 만큼 수많은 주제에 대해서 말을 했는데. 일단 내가 요즘 회사에서 겪고 있는 고민에 대하여 언니한테 상담한 결과.

결론은 이렇고 저렇고 피곤하고 힘들지만 '일단 버텨' 이거였다.

그 언니는 이번 여름에 2년차가 된다. 나는 이번 여름에 1년차가 된다. 부러웠다. 그런데 나의 문제는 일단은 이 경력이 쌓여도 이 경력으로 똑같은 일로 이직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언니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어찌되었든 1년 더 직장생활을 했다는 것은 진짜 대단한거다. 그리고 내가 이직 어쩌고 말하고 있을 군번이 아니다. 겨우 6개월 정도 해놓고. ㅠ

아. 참. 어제 언니 만나러 가면서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다.
핸드폰이 없으면 얼마나 무기력해지는지 깨달은 순간이랄까. 평소에 친한 사람들 번호는 거의 다 외우고 다니는 편인데, 괜히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도 핸드폰을 잘 놓고 다니니 이렇게 된거다. 또 검색하는게 너무 귀찮아서 일부러 외워버린 것도 있고.
일요일에 홍대가는길에 신도림역에서 갈아타면서 깨달았다. 집에 핸드폰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총 3명한테 "저기요. 죄송한데요. 핸드폰 한번만 써도 돼요?" 라고 말하며 최대한 불쌍한 태도로 핸드폰 동냥을 해서, 집에서 놀고 있던 동생한테 전화해서, 언니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고, 홍대 공중전화에서 언니한테 전화하고 해서 다행스럽게 언니를 만났다. 공중전화가 그렇게 소중해질 줄이야. 홍대에서 전화하자고 약속을 정해놓은 터라 하마터면 못 볼 뻔 했다.;
학교 다닐 땐 이 언니 번호도 당연히 외우고 있었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까먹었다. 다시한번 리마인드 하여 외워버려야겠다. 그 이전에 핸드폰을 잘 챙겨야겠지만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핸드폰보다 더 고이 챙겨 다니는 내  MP3 Player, 언제나 내 곁을 지켜줘!!!!
1기가 짜리 쓰다가 완전히 고장나서 산 4기가 짜리 인데 아직까지도 그 큰 용량에 적응을 못해서 4기가 가득 채워본 적이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잘 때 온 몸을 다 웅크리고 자는데, 특히나 뭘 껴안고 자야지 잠이 잘 온다.
저 하마는 껴안고 자기 딱인데 쪼금만 더 솜이 들었으면 좋겠다. 아동용으로 나온거라 약간 작은 듯 하지만, 원래 키와 체형 자체가 아동수준이라, 사용하는데 큰 무리는 없다.
저 가운데 형광 주황색 수건은 엄마가 때 탄다고 감아주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년 나와 함께 했던 다이어리. 던킨에서 주던 다이어리인데 이번년도 부터는 안 주나보다. 기대했는데.  12월 31일에 중요한 사건을 정리해봤는데, 간단히 정리하니 딱 두페이지 밖에 안나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년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는 'Slow but steady' 라는 스티커를 붙여놨었다. 당시 나에게 있어 시급한 건 취직. 사실 취직도 취직이었지만, 저 다이어리 첫장을 펼칠 때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었다. 크큭. 첫 단추부터 잘못된 것을 그냥 다른 사람들보다 '느릴 뿐' 이라고 착각했었다. 다이어리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안그랬음 이번년도 다이어리에도 slow but steady 라고 써 놓을 뻔 했으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번에도 포스팅 했던 내 다이어리. 매일 매일이 똑같아서 별로 적을 것도 없겠지만, 이제는 벗어날 수 없는 나의 취미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매일 매일이 똑같을 거라고 예상은 하지만 또 혹시 알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년부터 갑자기 향수에 관심이 생겼다. 생겼다고 해서 눈에 불을 켜고 막 모으러 다닌 것은 아니지만, 선물로 향수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 생일 때는 2명한테 향수 선물을 받았다. 가장 좋아하는 향수는 .. 당연히 최근에 선물 받은 페라가모.(두번째 줄 맨 오른쪽에 있는 놈) 그리고 내가 첫번째로 소장하게 된 향수는 휴고보스인데. 그렇다. 사실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가 사준 것이다. 난 전에 사귄 애가 사준 옷도 그냥 잘 입고 다니고 향수도 그냥 잘 뿌리고 다니는데 동생이 그러지 좀 말랜다. 설마 내가 4년째 혼자인게 첫째 남자친구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 (그나저나 내 나름대로 배경까지 신경쓴다고 찍은 사진인데 '국세청'의 압박이;)


1월 14일 단상
오늘은 야근이다. 그런데 혼자 고요하고 평화롭게 하고 있다. 밀린 업무하면 다음날이 편하겠지만, 오늘은 왠지 땡기질 않는다. 수요일까지 계속 추워진다고 한다.
오늘 또 새삼스럽게 깨달았는데, 난 아픈게 싫다. 특히 열나고 콧물나고 목아프고 기침하는 게 너무 싫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옷을 잘 껴입고 다닌다. 오늘도 (혹시 아플까봐) 곰처럼 옷을 많이 껴 입고 왔는데, 얼굴은 옷을 껴입질 못하니.. 볼이 시려웠다.
후딱 시간이 가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다. 또 다른 한주를 버텨내야 함을 깨달으며 우울해지는 추운 월요일이다.


연말 연시 내가 했던 일을 쓰느라 좀 길어질 것 같지만, 그래도 정리하는 의미에서.

 

12월 24일 월요일 종로

대부분은 이 날 휴가를 내고 4일 연속의 연휴를 즐겼다. 나는 휴가를 낼 수 있는 부서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휴가를 내도 할 일도 없고 나중에 일본여행 갈 때 연차가 부족할 수 있는 여러 상황 때문에 그냥 나와서 일 했다. 대신에 5시부터 출근 준비를 해서 5시 반 땡 하자마자 퇴근을 했다. (빨리 한다고 했는데 내가 우리 팀 일등 퇴근자가 아니었다.) 5시 반에 충무로에서 출발하니 6시가 되기 이전에 시청역 앞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6시에 시청 앞 루체비스타가 켜지는데 날이 날이니만큼 사람들이 엄청 많았고 난 그 인파들 가운데 혼자 서 있었다. 얼마간 그 주위를 혼자 맴돌았는데, 우울할 수 있는 상황인데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그 날은 월급날이기도 했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뭐 하지만 6시 넘어서는 혼자가 아니었다. 명동을 갔는데 아마 그때 당시 대한민국에서 인구밀도가 제일 높았을지도 모른다.

 

12월 25일 화요일 백화점

휴일이니만큼 난 그냥 집에서 쉬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약속이 없기도 했고. 24일이 월급날이고 이틀 뒤가 내 생일이니 나에게 뭔가 선물을 사야겠다 결심하고 백화점에 갔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하긴, 크리스마스에 그런 일상적인 곳에 올 사람이 별로 없겠지. 가서 맘에 드는 바지와 니트를 샀다. 바지에서 좀 무리를 했다. 정말 맘에 들긴 했지만, 내가 가진 바지 중 제일 비쌌다. 원래는 좀 여성스러운 원피스 같은 거 사려고 갔는데, 한 번 입어보고 그냥 맘에 들어서 그만 백화점 갈 때 모르고 핸드폰을 안 가지고 갔는데 들어와서

엄마 나 핸드폰 놓고 갔지? 물어봤더니 엄마께서 말씀하시길.

. 문자 하나 안 오더라.

하하하하하하.. 확인해보니 엄마 말이 진짜였다.

 

12월 27일 목요일 내 생일

그냥 평소와 똑 같은 날이었다.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했다.

 

12월 28일 금요일 종무식

사옥이 없어서 그럴 가능성이 최고 높지만 우리회사는 공장에서 종무식을 한다. 흠. 하긴 공장 인원이 본사 인원보다 많기도 하고. 회사 행사가 싫은 게 아니다. 그냥 공장까지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싫은 거다. 행사가 끝나면 충무로로 오고 나는 충무로에서 다시 한 시간 반 동안 차 타고 집에 가는 거 자체가 너무 피곤해서. 그 날은 행사가 끝나고 나니 비가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충무로에서 다시 집으로 오는 게 싫어서 그냥 그 동네 터미널에서 인천 시외버스를 타고 왔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면 고등학교 때 엄마랑 헤어져 살았을 때, 자취하면서 전주 갔던 일 이 생각나서 우울해진다. 특히 밤에 버스를 타면.. 예전에 어떤 게시판에서 어떤 대학생 여자가 집에 내려갔다가 버스 타고 자취방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써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밤에 자취방으로 뛰어가면서 우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그냥 일반인일 뿐인 그 여자가 글을 너무 잘 써놓은 바람에 게시판 글 보면서 나도 덩달아 운 적이 있다. (뛰어가면서 우는 상황이 어찌 보면 굉장히 코믹하지만) 나 역시 터미널에서 내려서 엄마가 싸준 음식을 낑낑대면서 들고 오랫동안 보일러를 틀지 않아 냉골 같은 방으로 혼자 기어들어간 그 날 밤은 항상 울다가 잠들었던 것 같은데.

 

12월 31일 월요일 고흐전

12월 31일은 왠 일로 우리회사에서 쉬게 해줘서 쉴 수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라 생각하고 고흐 전에 갔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예술가들이 남겨놓은 작품 중 가장 좋은 작품을 내놓는 시기는 항상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닐까. 원래 내가 느꼈던 감동이나 생각을 전달하는 것에는 잼병이라 표현을 제대로 못하겠지만, 틀림없이 멋진 그림들이었다. 역시 난 넘치는 기쁨을 표현한 작품보다는 슬픔이나 고뇌 등을 잊기 위해 혹은 위로 받기 위한 작품에 더 끌리는 것 같다 노래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그림도 역시 마찬가지다. 궁지에 몰려서 유일하게 이것 이외에는 달리 이겨낼 방도가 없을 때 나온 작품들, 한마디로 말하면 처절함 이 느껴지는 것 들 말이다.

 

1월 1일 화요일 목욕재계

나는 원래 뜨거운 방이나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 견디는 것을 잘 못한다. 찜질방에 한번도 못 가봤지만, 안 갔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듯 하다. 목욕탕도 안가고 온천도 그닥 끌리지 않는다. 근데 1월 1일에는 욕조에 물을 받아서 꾹 참고 들어가서 앉아있다가 나와서 목욕을 깨끗하게 했다. 4일간의 연휴가 끝나고 회사에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지만, 어찌되었든 2008년이 되었고 이젠 26살이 되어서 뭔가 새로 시작한다는 기분을 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래놓고 고작 한 것이 집에서 혼자 목욕하기 다. 크큭)

 

1월 2일 수요일 연말정산

생전 처음으로 하는 연말정산이라 아예 개념이 잡히질 않았다. 1월 2일에 전 직장 이상형 과장님께 전화한 이야기는 이미 썼으니.. 넘어가도 될 듯 하고.

 

1월 3일 목요일 비법전수

7년 동안 남자친구가 없다는 대리님이 남자친구가 무려 5명이나 된다는 친구에게 도대체 비법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한가지 비법을 알아왔다면서 나한테 얘기해주시는 거다. 그 비법은 우선 1. 남자들이 많이 가는 모임에 간다.  2. 괜찮은 남자를 찾는다.  3. 전화번호를 받는다.  4.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나는 니가 탐나. 라는 문자를 보낸다. 이거 였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푸하하하하. 하고 웃는데, 대리님께서는 야 진짜래 진짜. 이렇게 하면 남자들이 반응이 온대. 이모티콘은 넣지 말고 진짜 딱 저렇게 나는 니가 탐나. 이렇게 도발적으로 하면 된다고 그랬다니까. 라고 하시는 거다. 나는 니가 탐나. 라니!

 

1월 4일 금요일 소개팅

저번에 친구가 외국으로 파견 나가는 남자도 괜찮냐고 물어봤을 때 지나가는 말로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라고 말을 했는데 갑자기 친구가 소개팅을 하라는 거다. . 진짜로 하는 거였어? 라고 물어봤더니 그럼 진짜지. 라면서 결국 약속이 잡혀버렸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한참 얘기하고 있는데 내가 타는 버스 왔다고 그냥 버스 타고 가버리는 바보 같은 행동도 안 했는데, 그냥 끝나버렸다. 서로 오늘 즐거웠어요. 라는 예의 상 하는 문자 하나씩만 주고 받고. 흐흐. 흠.. 소개팅을 이제 딱 두 번 했지만, 이게 참 웃긴 거 같다. 그래도 3시간이면 꽤 긴 시간 아닌가? 그동안 이런 저런 말 해놓고 다시는 안보는 거 자체가 좀 웃긴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또 한가지 깨달은 게 난 뭐 외롭다 어쩌다 해도 결국 아직은 남자 사귈 생각이 없다는 거. 그냥 억지로 사귈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거지. 그나저나 이번 소개팅에서 위에 말한 비법이나 한번 써 먹어볼걸 그랬나.

 

1월 9일 수요일 비극적인 현실

친구가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있는 사진을 봤을 때 난 엇 이사람이지! 하고 딱 알아 맞췄다. 그냥 딱 봐도 그 친구가 좋아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문제는 여러 정황 상 저번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딱 짝사랑인 것 같다는 거다. 짝사랑 경험자로서 속상했다. 그 친구는 2월부터 5월까지 인도로 현장실습을 간다. 걔네 회사는 좋은 회사라.. 태국 가고 싶었는데 인도 걸렸다고 우울해 하고 있었다. 수요일 근무시간에 걔랑 채팅을 하는데 그 오빠도 인도 걸렸단 소문을 들었다는 거다. 난 혼자 흥분해선 왠일이야! 그럼 인도가서 매일 보는거야? 진짜 매일?  잘하면 잘될 수도 있겠다~~!!!!! 라면서 난리를 쳤다. 근데 그 친구는 요 며칠 상황을 봐선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그냥 인도가서 정리나 해야겠다. 했는데 이게 뭐냐면서 진짜 빨리 맘정리 해야겠다고 말을 하는 거다. 예전의 나 같았음 포기하긴 이르다 면서 독려할텐데, 어떤 상황에서는 그냥 맘정리 해버리는 게 덜 상처 받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서 오히려 너한텐 그게 좋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만약에 이 상황이 영화라면 중간에 그 남자가 여자가 인도로 실습가는 소문을 듣고 자기도 인도로 간다고 말을 한다든지 하는 러블리한 장면이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  좋아하는 사람을 집 떠나서 매일 보는 거 어떻게 보면 엄청 괴로운 상황 일텐데 친구가 지혜롭게 대처했으면 좋겠다.

 


이 이외에 요즘 회사에서 여러 복잡한 일들이 있었다. 이거는 나중에 따로 정리해야 할 듯싶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진정한 위기가 왔다. 위태위태하다. 내 자신이. 새해부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버티자. 일단은.